#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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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배우들은 다음 장면을 촬영하기 위하여 준비를 시작했다.
민수는 다행히 바로 다음 씬에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떨어져 배우들을 살필 여유가 있었다.
정장을 입고 온 남자가 청월 연기학원의 실장이었는데 저 사람이 조우명 피디님이랑 약간의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네 명의 배우들, 민수가 배우들을 잘 살펴봤는데 세 명은 전혀 기억에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제법 준수하게 생긴 한 명은 민수도 익히 알고 있는 배우였다.
‘아.. 박현승… 저 사람이 청월 출신이었구나. 꽤 괜찮은 배우인데…. 박현승이라면…’
민수의 전생에서 박현승은 제법 이름을 날린 배우였다.
하지만 무명생활은 제법 길었는데 젊어서부터 상당한 연기력을 갖춘 박현승은 운이 없었는지 초반에 조금씩 출현한 드라마들이 다 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덩달아 빛을 보지 못한 그런 케이스였다.
하지만 연기력은 죽지 않는 법이라 몇 년의 무명생활 끝에 결국 제대로 된 조연 배역을 쟁취하고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무명배우들 사이에서도 소문이란 것이 있고 민수는 연기를 잘하지만 빛을 못 보고 있다는 박현승의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 번 전해 들었었다.
그리고 박현승이 드디어 자리를 잡아 가는 모습을 보며 민수는 그의 연기력과 위치, 모든 것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지금 당장은 내가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네.’
조금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던 민수는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박현승이 있다는 것은.. 이 드라마도 그냥 별 볼일은 없었다는 건데….’
자신의 합류로 약간 바뀔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이번 드라마가 별 볼일 없이 끝났다는 사실을 의외의 방법으로 확인하게 되자 민수는 조금 목이 탐을 느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전생보다는 더 괜찮겠지. 좋은 변화들이 몇 가지 있었잖아’
애써 자신을 위로한 민수는 마음을 편히 가지고 리온과 수연 그리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장면을 관찰했다.
민수는 네 명의 배우들이 몸에 조금 힘이 들어가 있는 데다가 리온과 수연을 보는 눈빛에서 조금 업신여긴다는 느낌을 받게 되자 조금 기가 막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어이가 없네.
리온이나 나라면 몰라도 수연 선배를 업신여긴다고.?
하긴 청월이면 수강생들 기세 올려준다고 맨날 기존 배우들 까면서 가르치니 수연 선배 같은 경우라면 아마 어지간히 자주 씹혔겠어.
그리고 박현승도 연기는 잘해도 에고가 너무 강하다는 주변인들의 평이 있었는데.
에고가 강한 게 별다른 의미가 있나.
그냥 싸가지 없다는 걸 돌려 말한 거지.
그리고 결국 오늘 촬영이 편하게 가진 못하겠군.’
그리고 민수의 예상대로 초반 힘이 들어간 네 명의 배우들이 조금씩 NG를 기록하며 시간이 지연되자 피디는 하는 수 없이 욕심을 버리고 씬을 잘게 짤라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씬을 짤라 가면서 입맛을 다시는 피디님을 보자 민수는 헛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피디님 애당초 저기 사람이 몇인데 길게 길게 가려고 하셨어요.’
어쨌든 촬영 방법에 변화를 주자 조금씩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박현승을 제외한 세 명은 몸이 다소 굳어 있었다.
‘역시 진주 때도 느꼈지만 촬영장에 주연급 베테랑이 없으니까 이런 경우에 참 문제가 되네.
진주 때야 그래도 수연 선배가 나서 주었지만, 저 사람들은 누가 케어해 주나’
그러나 민수의 걱정을 듣기라도 했는지 현승이 나서서 나머지 세 명을 케어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현승의 말에 힘이 좀 나는 듯한 세 명을 보니 그래도 이젠 다행히 진행이 잘 되나 싶었다.
(씬 4-7-2)
굳은 얼굴로 네 명의 남자들이 대기하는 공연장 대기실을 찾은 미주와 최준
걱정하는 표정으로 최준을 바라보는 미주. 최준의 얼굴은 굳은 결의가 가득하다.
최준이 문을 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서자 네 명의 시선이 바로 최준에게 모인다.
그리고 최준은 그들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들 앞에 양팔을 벌리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를 쳐라! 마음 풀릴 때까지”
그런 최준의 모습을 본 네 명의 남자는 그냥 크게 한숨만을 쉬고 있다.
그런 대치가 잠시 이어졌을까.
한 남자가 타박하며 최준을 자리에 앉힌다.
“야, 이 중2병 자식아.
4년 만에 얼굴 내밀고는 오자마자 무슨 소리야?
자기만의 세상에서 혼자 있지 말고 어서 나와서 알아듣게 말을 해봐”
험악한 분위기를 예상했던 미주는 상황이 조금 다르게 돌아가는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남자의 말에 굳은 표정의 최준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내가.. 너희를 배신한 내가 지금 다시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최준이 운만 띄었을 뿐이었는데 남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니, 갑자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니. 너 설마 다시 밴드라도 할 생각이야?”
한 남자의 말에 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본 남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온다.
“하… 잘 됐네. 뭐 다시 하면 되지. 어차피 보컬도 없어서 빌빌 싸고 있었는데. 좋아. 해.”
남자들이 너무나도 쿨하게 받아들이자 미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고 최준은 조금 감격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너희들을 그렇게 배신하고 떠났는데 이렇게 날 다시 받아 주다니..”
혼자 감격에 쌓인 최준의 모습에 남자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되었다.
“야, 배신은 무슨. 똥 싸고 있네.
네가 떠나면서 받은 계약금으로 악기 다 바꿔주고.
나중에 연습실 대여료까지 다 대줬는데 배신은 무슨 배신 타령이야?”
그 말에 옆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받았다.
“뭐, 우리한테 말 안 하고 나간 거랑 몇 년 연락 안 한 것은 조금 기분 나쁘지만..”
“원래 좀 친한 애들도 바쁘면 몇 년 동안 연락 안 하다가 다시 하고 그러잖아”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미주는 최준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야, 이 화상아. 그럼 지금까지 악기값이랑 연습실 대여료 다 내주고 혼자 배신했다고 고민하고 있었던 거에요?”
미주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휘청하던 최준은 다시 자세를 잡고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말도 없이 상의도 안 하고 떠난 게 나니까 배신이 맞아. 그리고 원래 난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해준 건 딱히 기억하지 않아. 그건 남자답지 못하니까.”
최준의 말에 미주는 머리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대체 최준 씨에게 남자란 뭔가요? 이해가 안 되네요”
그리고 그런 미주의 모습을 4명의 남자가 실소하며 바라본다.
“OK!!”
촬영 자체는 여러 번 끊어서 가면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씬 자체는 잘 촬영될 수 있었다.
민수도 촬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촬영되었네.
저 네 명에 비하여 리온씨랑 수연 선배는 확실하게 잘 연기해 주었고 말이야.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진 않겠지.’
민수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오늘 촬영의 중심인 공연장 씬을 촬영하기 위해 이동하는 촬영팀을 바라보았다.
‘내 씬은 아니지만 말이야.. 궁금하니까 한 번 따라가긴 해야지. 걱정되기도 하고’
저녁 시간 작지만, 이 근방에서는 제법 이름난 공연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전에 이미 카메라의 설치가 완료되어 있다. 오늘 이곳에서 찍을 건 아주 간단한 장면이다.
그냥 아까 4인방이 음악에 맞추어 악기를 연주하는 척하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찍고 미주와 최준이 그 장면을 보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씬 그러니까 오늘 낮에 찍은 씬의 앞부분을 촬영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카메라 등을 바라보고 의아해하는 관객들에게 촬영진들은 오늘 촬영하는 내용과 협조를 부탁했다.
관객들은 생각하지 못한 작은 이벤트에 기뻐하며 잘 협조하겠다고 손을 흔들며 회답하고 있었다.
“하.. 음악 여행 때도 느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협조해 주네요.”
민수가 말하자 옆에 있던 조연출은 웃으며 민수에게 설명해 주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나 음악 여행에 모인 사람들이나 그냥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랑은 본질적으로 좀 달라요.
보시다시피 여기 모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공연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촬영은 그냥 공연에 추가된 작은 이벤트 같은 거니까요.
당연히 흔쾌히 도와줄 마음이 생기는 거고요.”
조연출의 말에 민수는 그 차이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그렇구나.. 애초에 마음가짐이 다르구나…. “
그렇게 민수가 생각하는 찰나에 촬영 준비가 완료되고 피디의 사인이 들어갔다.
(씬 4-7-1)
환호하는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입구 쪽 미주와 최준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네 명의 남자가 무대 위에서 신나게 악기를 연주한다.
그리고 한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지만, 노래는 엉망이었다.
다만 화려한 연주에 사람들은 방방 뛰며 소리 지르고 열광한다.
그런 무대를 최준은 아련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미주는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막고 인상을 쓴다.
“그런데 저 보컬은 좀 이상하네요”
미주가 최준의 귀에 소리를 지르자 최준은 피식하고 웃으며 미주의 귓가로 입을 가져간다.
그러자 미주는 움찔하며 몸을 움츠리지만 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쟤는 원래 보컬이 아니야. 저 팀에 노래 부를 사람이 없어서 그냥 부르고 있는 거지”
최준의 말에 미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 저 팀의 보컬은 나지.. 아니 나였지 라는 게 정확 하려나..”
최준은 작은 소리로 혼자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그들의 무대를 계속 바라본다.
“OK!!”
피디는 단박에 OK사인을 냈고 거기서 촬영은 바로 종료 촬영팀은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하여 신속하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객들은 일제히 리온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한다.
한 명 두 명이 부르던 이름은 서서히 커지고 이제는 모든 사람이 리온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난처해하던 리온은 잠시 피디는 바라보았고 피디 역시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조금 고민하던 리온은 피식 웃고는 다시 피디를 보며 손가락으로 무대를 가리켰다.
피디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리온은 웃으며 무대 위에 올랐다.
무대 위에 오른 리온은 자연스러운 제스쳐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가볍게 마이크를 잡았다.
“하하 이거.. 애타게 부르셔서 제가 올라오긴 했는데요. 절 부르신 게 저한테 노래라도 하나 해달라고 하신 거 맞겠죠?”
리온이 말하자 관객에서는 일제히 “네!”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 말을 들은 리온은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하하, 이거 곤란하네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제가 노래 부를 때는 항상 떡대 같은 네 명의 친구들이랑 같이 하잖아요.
그래서 불행히도 제가 혼자 노래를 불러 드릴만 한 것이 없어요.
그리고 지금 바로 뒤에서 여러분들이 기다리던 훌륭한 밴드 친구들이 여러분들을 불태워 버릴 준비가 다 끝났고요.”
리온의 말이 이어지자 조금 실망한 관객들이 조금씩 야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리온은 손을 들어 진정을 시킨 후 말을 이었다.
“음, 그러면 이렇게 하죠.
오늘 많은 친구들이 여러분과 함께 노래 부르면 놀 거에요.
그러니 전 노래가 아닌 다른 것을 보여 드릴게요
제가 여러 친구들의 무대에 앞서 작은 재롱 하나 보여드리고 내려갈 테니 오늘은 이걸로 이해해 주세요”
마이크를 내려놓은 리온은 음악 달라는 신호를 내보냈고 공연장 안은 조금 빠른 비트의 거친 사운드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명이 일제히 리온에게 집중되자 리온은 음악에 맞춰서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다 서서히 빨라지는 몸 그리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손끝과 발끝 몸 선 전체가 유려하게 움직이다 순간적으로 격해지는 동작들.
민수는 리온의 춤사위를 보며 이것이 도저히 즉흥적으로 결정된 무대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와, 음악 여행 때도 이런 생각을 했지만… 진짜 리온의 춤은 다른 애들하고는 주는 느낌이 뭔가 달라. 이 느낌이 뭘까…”
리온의 춤이 격해지면서 관객들의 환호성 소리도 덩달아 높아만 졌다. 그리고 대충 3분 정도의 시간이 끝나고 리온의 춤이 멈추자 관객들은 격하게 소리지르며 리온에게 감사했다.
“하..하.. 좋네요. 여러분. 오늘 촬영에 협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고요. 저희 송포유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리온이 손을 흔들고 촬영팀과 밖으로 서둘러 이동했고 무대 위에서는 이제 정식으로 공연을 시작할 팀이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공연장 입구 쪽에서 보고 있던 민수는 리온이 나오자 가만히 엄지를 치켜들었고 그 모습에 리온은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