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48화 (48/325)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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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다시 촬영장을 찾은 민수는 촬영장이 조금 어수선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슬쩍 주위의 눈치를 바라보던 민수는 옆에 지나가는 AD님께 찔러보듯 물었다.

“오늘 좀 이상한 느낌인데요. 무슨 일이에요?”

민수의 말에 AD는 살짝 난처한 얼굴로 민수에게 대답했다.

“아, 이수연 배우님이 지금 벌써 와서 대기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대기실 분위기가.. 아까 이수연 배우님 대기실 들어갔던 스텝 하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왔다네요.

분위기가 완전 얼음장이라고..”

대강의 설명을 마친 AD는 쏜살같이 이동했고 민수는 그냥 피식 웃으며 촬영장소 쪽으로 다가갔다

“그래, 그래야지. 수연 선배.”

오늘의 촬영은 정말 중요했다.

오늘 찍는 씬들로 최준은 미주에게 서서히 의지하기 시작하고 미주는 결국 준성을 끌어다가 최준에게 붙이고 만다.

서로가 정말 물과 기름 같은 둘이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마음을 모으게 된다.

대기실 문이 열리고 인상을 찡그린 수연이 민수 옆을 지나쳐 스튜디오로 이동한다.

그렇게 지나가며 민수를 한번 슬쩍 바라보는 수연의 눈빛이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하하, 베이겠구먼 베이겠어..그런데.. 저런 상태로 연기가 되나?’

민수는 수연이 긴장하는 것은 좋지만 저렇게 날 선 모습으로 행동방식이 다채로운 미주의 연기가 제대로 될까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런 민수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촬영은 시작되었다.

(씬 3-4-1)

미주는 자리에 자신의 자리에 앉아 각종 스타일의 의상들을 체크한다.

그리고 지금 인기 있는 가수들의 메이크업 스타일부터 소품들까지 꼼꼼하게 체크한 후 근래 인기 있는 쇼핑몰의 의상들까지 꼼꼼하게 점검한다.

그렇게 다 챙겨 자료를 정리해놓고 최준의 사진을 보며 최준에게 어울릴 만한 의상 디자인을 구상한다.

그리고 그런 미주의 옆에는 가라앉은 표정이 최준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하.. 코디. 지금 뭐 하냐?”

최준의 말에 미주는 자기 일에 열중하며 대충 대꾸한다.

“보면 몰라요? 가수님 의상 점검하잖아요.

지금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가수님 앞으로 의상협찬이 전혀 안 들어오니까요.

그러면 제가 만들어서라도 좋은 옷 입혀드려야죠.”

무심한 어투로 말하는 미주를 보며 최준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말이 없다.

말이 없는데도 미주의 작업은 계속된다.

잠시 후 최준의 입이 억지로 열리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야, 협찬이 아주 안 들어올 정도로 너희 가수가 나락으로 갔다는 생각은 안 드냐?

넌 너희 가수가 아직도 일어 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순간 잠시 미주의 작업이 멈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최준을 바라본다.

그런 미주의 표정은 단호하기 그지없다.

“남일 말하듯 말하지 말아 줄래요? 바로 당신 이야기거든요 그거.

솔직히 당신이 일어 설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모르겠네요.”

미주의 말에 최준도 김빠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다음 미주의 말에 순간 멈짓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당신이 그랬죠.

한 명을 위해서라도 노래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그 무대에 설 거라고.

난 그런 무대에 설 때도 당신에게 최고의 의상을 입힐 거에요.”

미주의 말에 최준의 표정이 오묘해진다.

“당신의 포기가 온당한 것인지. 잘 생각해봐요.

그리고 당신이 서고 싶었던 무대가 어떤 것이었는지도요.”

미주가 다시 고개를 돌려 자기 일에 열중한다.

그런 모습에 준성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컷! 자 카메라 이동하며 바로 다음 씬 이어서 가요”

피디의 사인에 맞춰서 민수가 스튜디오 구석에 섰다. 그리고 둘을 바라보고 섰다.

“자 3-4-2 GO!”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준성이 바라 보고 있다.

잠시 바라보던 준성은 몸을 돌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잠시 바라본다.

그런 준성에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살짝 올라온다.

“후…”

그리고 작게 한숨 쉬며 이 장소를 떠나간다.

“컷!”

컷 사인과 동시에 민수는 조금 떨어져 다시 촬영 장소를 바라보았다.

수연은 의상을 갈아입으러 이동했고 리온은 같은 장소에서의 단독 씬이 하나 더 있었다.

이제 리온의 단독씬을 촬영하고 다시 의상을 교체한 리온과 수연의 씬을 촬영하게 될 것이다.

(씬 3-4-3)

미주가 일을 마치고 자리를 옮긴 후에도 최준은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원하는 무대.. 내가 원하는….”

최준은 그렇게 계속 중얼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모르겠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렇게 머리를 쥐어 싼 최준의 목소리에서 그의 고뇌가 그대로 들어났다.

“OK!”

피디의 싸인을 받은 리온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스템들에게 감사하고는 의상을 갈아입으러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러는 때 옷을 갈아입은 수연이 민수 옆으로 슬쩍 걸어왔다.

“너, 딱 기다려라.”

수연이 그렇게 말하고 옆으로 지나가자 민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저 씬이 끝나면 수연과 민수의 씬이 있었다.

그리고 민수도 수연과의 다음 씬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다시 리온이 들어오고 수연과 리온은 자리를 잡았다.

(씬 3-5-2)

미주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미주에게 최준이 다가와서 슬쩍 옆에 앉는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최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맞아, 네 말이.

너 말대로 예전에 난 그냥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즐거워하던 그런 가수였어.

그리고 너 말대로 그냥 한 명의 팬이라도 내 노래를 들어 준다면

당연히 최선의 무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지.

그런데 정말로 있을까.

아직도 나의 노래를 들어줄 그런 팬이?”

최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자 일을 하던 미주는 자기 일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최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있어요. 여기.

내가 들어 줄게요.

당신이 노래하는 곳에서라면 어디라도 따라가서 당신의 노래를 들어 줄게요

정말 세상에 아무도 당신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나만을 위해서 노래해 주세요”

그런 미주의 미소를 최준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OK! 컷!”

‘세상에….’

컷 사인과 함께 끝난 방금 씬에서 민수는 조그맣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렇게 오그라드는 대사를 저렇게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연기하다니.’

민수는 자신이 가장 약한 부분을 수연이 가장 부드럽게 연기하는 모습에 조금의 긴장을 느꼈다.

‘하지만.. 나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야!’

그렇게 마음을 다시 다 잡아 먹은 민수는 다음 씬을 수연과 촬영하기 위하여 천천히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씬 3-5-1)

진주의 곡 작업을 하며 자신의 작업실 안에서 작업을 하는 준성

미주는 그런 준성의 작업실의 문을 열고 살짝 들어온다.

준성은 그런 미주를 보고 가볍게 인상을 쓰고 무시한 채 자신의 작업을 이어간다.

“야, 이준성. 사람이 왔는데 왜 아는 척도 안 해?”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 준성의 모습에 미주의 표정이 점점 찌푸려지다가 고개를 한번 저으며 심기일전하듯 다시 웃는 표정이 된다.

그리고 민수는 시선을 수연에게 주지 않은 상태에서도 감각적으로 수연을 표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예전에 윤배우랑 연기할 때 느껴졌던 그 감각인가..’

생소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이 예민해지던 그 감각, 민수는 태준과 같이 찍던 그 마지막 씬 같은 감각을 느끼며 자신과 수연이 감정적으로 교류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너랑 나에게 따로 더 할 말이 남았나?

분명 네가 네 입으로 넌 내일 난 내일.

그렇게 하기도 했던 거 같은데.”

냉정하기 그지없는 준성의 말에 미주는 준성이 아주 얄밉게 느껴졌다.

그냥 저 숙이고 있는 머리를 한대 세게 때려주고 싶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주는 준성의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는다.

자리에 앉는 동안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미주.

미주는 크게 용기를 내며 다시 준성을 설득하기 위하여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소속사 가수를 점검하고 길을 알려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너의 일이잖아.

그럼 결국 넌 지금 너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거 아니야?.”

미주의 말에 준성은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미주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고 인상을 쓰면서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말해봤자. 서로 말 돌리기 밖에 안 되겠지.

솔직히 말을 해보자 그럼.

난 그냥 최준이 싫어. 그래서 최준을 도와주고 싶지 않아.

그럼.. 넌 뭐지?

넌 대체 왜 최준을 도와?

네가 나한테 직접 손을 내밀고 도움을 청할 정도의 의미가 최준에게 있나?

내가 내밀던 손은 매정하게 거절하고 도망갔던 너인데?”

분노한 듯 말하는 준성의 표정은 슬픔과 자책감 그리고 한편의 후회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미주를 바라보는 준성의 눈은 깊은 애달픔과 미련이 담겨 있었다.

그런 준성의 말을 들은 미주의 표정도 점점 고조되어갔다.

그리고는 미주는 슬쩍 준성의 눈을 피한다.

그리고는 툭 던지듯 말을 꺼냈지만, 그 목소리는 조금씩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왜냐고?

내가 너에게 손 내미는 게 이상하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지금의 최준이 그냥 예전의 미주 같아.

반가워 하던 이 아무도 없는 외로운 얼간이 미주.

그래서 결국 다시 도망쳐 올 수밖에 없었던 나.

그때 내 옆에 응원해 주던 사람 하나라도 있었으면 나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아직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그래서 난 그냥 최준 씨에게 그 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그냥.. 이겨낼 수 있고 .. 견뎌낼 수 있게 옆에서 힘을 주는 그런 사람이 말이야.

그럼 안 되는 거니?

그게.. 그렇게 못마땅해?”

말을 하는 동안 자신의 슬픈 과거를 떠올린 미주의 눈에는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고여 들었다.

차라리 흐리지 않고 한껏 맺힌 눈물이 더 애타게 느껴졌다.

‘와, 수연 선배 이건 반칙인데..’

지금 수연이 연기하는 미주는 미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수연의 과거이기도 했다.

그리고 민수도 이런 연기를 했었다.

“서쪽 해변” 에서 태준과 연기할 때, 바로 감정으로 연기력을 보충할 때 말이다.

철저히 미주와 본인을 동일시 해버리고는 폭발시킨 수연의 연기에 민수는 자신의 감정이 조금씩 수연에게 먹혀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는 안돼.. 반칙은 선배가 먼저였어요..나중에 날 원망하지 말아요’

준성은 지금의 최준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고 괴로워하는 미주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듯 떨리는 손을 느리게 올려 손가락으로 미주에 눈에 고인 눈물방울을 닦아 낸다.

미주가 조금 놀란 눈으로 준성을 바라보자 정신이 번쩍 든 듯 의자를 돌려 미주를 등지고 앉았다.

그리고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미주에게 말한다.

“그래.. 좋아..

내가 졌어. 너 말대로 해.

최준 도와줄게.”

준성의 말에 미주의 표정이 한껏 밝아진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할 때야. 내가 먼저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아.”

준성은 최준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준성의 머릿속에 최준은 그냥 자기 자신만 잘난 줄 아는 그런 남자니까.

“응, 고마워 준성아 최준 씨가 분명 너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야.”

준성이 허락이 떨어지자 미주는 미소를 머금으며 준성의 작업실을 나섰다.

그러나 미주가 나가고 나서도 준성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 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이 묻은 한쪽 손은 계속해서 떨리고만 있다.

“OK! 컷 좋아.. 좋아요”

컷싸인이 떨어져 다시 의자를 돌리고 일어선 민수는 자신의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 피디님과 스탭들 그리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수연을 볼 수 있었다.

“와, 수연씨도 그렇고 민수 씨도 이번 씬은 정말 아름답게 나왔어요.

크~ 특히 그 눈물을 살짝 닦아 주는 거.! 와 이거 대본에 없는 거잖아요.

어떻게 거기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피디의 부산스러운 말에 민수는 미소만 조금 지었다.

그렇다. 민수가 수연의 감정에 먹히지 않으려고 임기응변으로 한 그 행동은 대본에 없는 애드립이었다.

물론 상대 감정에 지장을 줄 만한 행동이었으면 수연이 기를 쓰고 욕을 했겠지만, 이 행동은 수연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편승하고 준성의 미묘한 감정 표현을 추가로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게다가 후에 의자로 돌아 손이 떨리는 장면까지 이어져 준성의 심정을 더 세심하게 표현되게 되었으니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꽤 반길 만한 애드립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수연의 처지에서 보면 완전히 자신이 다 먹은 씬이었는데 내가 손짓 한 번으로 저울추를 다시 중앙으로 옮겨 놓은 셈이니 아마 제법 약이 오르리라.

수연은 민수를 미묘하게 째려보다니 고개를 획 돌려 자신의 대기실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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