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47화 (4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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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민수가 찍을 부분은 진주와의 씬으로 진주의 앨범을 녹음하는 중 진주의 엉뚱한 행동을 나무라는 씬이었다.

‘음.. 수연선배랑 씬이 아니라 그래도 마음이 좀 편하겠군.’

녹음실 스튜디오 안에 진주가 래코딩하는 자리로 민수가 이동하자 피디는 바로 시작 사인을 던졌다.

“씬 3-7-1 Go!”

평소의 교복이 아닌 짧고 몸에 딱 붙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진주.

진주는 엉덩이를 방실방실 흔들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런 진주를 조금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준성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진주를 제지한다.

“이 진주, 노래만 하자 노래만.

너 엉덩이 흔들 때마다 음도 조금씩 흔들려.”

준성의 지적에 입을 샐쭉하게 내민 진주는 다시 가만히 서서 노래를 부르지만 이번에는 노래에 자꾸 애교 섞인 콧소리가 추가된다.

“하…”

작게 한숨 쉰 준성은 진주를 녹음 부스에서 밖으로 불러다 자리에 앉혔다.

“자, 이게 대체 무슨 짓인지 이야기 해봐.

그 춤은 뭐고 또 그 콧소리는 또 뭔지.”

그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진주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휘리릭 돌더니 준성을 바라본다.

“어때요? 예쁘죠? 귀엽죠? 사랑스럽죠?

준성은 가슴속에서 화가 올라오고 있었지만 엉뚱한 진주의 행동에 그냥 맥이 빠져서 기운 없이 묻는다.

“그래, 그렇다 치고 대체 그 율동이랑 콧소리는 뭐야? 오늘 녹음 안 해?”

준성의 핀잔에 입을 삐쭉 내민 진주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쌤이 이렇게 여성스럽고 애교 있는 거 좋아하신다면서요..”

진주의 말에 준성은 기가 막혀 잠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은 준성은 다시 차분하게 진주에게 말한다.

“하, 그런데 그런 것을 굳이 녹음하는 때에 해야겠니?

이거 네 데뷔 앨범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좀 더 집중해주면 안 될까?”

최대한 이성적으로 말하는 준성을 보며 진주는 소리를 빽 질렀다.

“이때가 아니면! 쌤은 저 안 봐주시잖아요!”

그리고 잠시 씩씩대는 진주는 준성을 노려보며 계속 말한다..

“흥, 쌤이 그렇게 뻣뻣하게만 구니까 코디 언니한테 차인 거예요! 그렇게 평생 혼자 사세요!”

말을 마친 진주는 총총걸음으로 달려 녹음실에서 벗어난다.

“야, 이 진주! 녹음해야지 어디가!?”

혼자 남은 준성은 급하게 진주를 부르지만, 진주는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

“OK 컷! 자바로 진주 씨 3-7-2 들어가요. GO!”

(씬 3-7-2)

녹음실 문을 열고 나온 진주는 총총걸음으로 계속 걸어 휴게실까지 이동한다.

“하..하..하.. 히히. 오늘은 이걸로 끝~ 아마 몇 일간은 녹음하자고 못하시겠지.

아 마음이 뒤숭숭해서 연습을 거의 못 했으니 아마 오늘 녹음했으면 내가 살아서 못 나왔을 거야.

호호호~

쌤. 녹음은 며칠 후에나 다시 하자고요”

“컷! 좋아요”

진주의 씬까지 촬영한 민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왠지 불타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연의 눈빛을 느끼며 자신의 계획이 조금씩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진짜 진심을 끌어 오기에는 지금까지는 조금 부족했지’

수연이 자신에게 접근하자 민수는 의아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배님, 무슨 일이시죠?”

민수의 물음에 수연은 최대한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하여 차분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까 누가 찾아 왔던데요. 그분은 누구였나요?”

뻔히 아는 사실을 떠보듯 묻는 수연의 모습에 민수는 작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하하하, 선배님 지금 저희가 다른데 신경 쓸 때가 아니잖아요.

지금 바로 다음 주에 첫 방 들어가고 그전까지 최대한 영상 뽑아 놓아야 그나마 숨 쉴 틈이라도 있을 텐데요”

민수의 말에 수연은 뭐라고 덧붙여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민수가 한발 앞서 입을 열었다.

“선배님 우리 이러지 말고 첫 방 나가는 날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떨까요? 서로 궁금한 것 한가지씩 물어보기.

저도 선배님께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전까지는 연기에만 집중하기.

저도 선배님 앞에서 존재감 뽑아내려고 집중하는 건 정말 피곤한 작업인데.

그만큼 선배님도 집중해 주셔야죠.”

민수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낀 수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설마 민수 씨 지금까지 일부러.. 그렇게 연기 했다는 거예요?”

민수는 왜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수연을 바라보았다.

“선배님, 제가 그렇게 한 이유는 선배님이 더 잘 아실 거 같아요.

어때요? 공평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잠시 생각을 하던 수연은 한숨을 푹 쉬었다.

민수의 말대로 지금은 상당히 급박하게 촬영이 이어져야 할 시기였고 민수의 말이 아니라도 자신은 자신의 배역에 따라가기에 급급해 집중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부러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민수의 말이 배알이 좀 꼬이긴 하지만 그의 말대로 지금 상황에 자신의 연기력을 가장 잘 뽑아내기 위해서는 민수의 방법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그러하다 할지라도 짜증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자업자득으로 연기력은 개판을 치고 있었고 그냥 신인의 템포조절 미숙으로 생각하던 것이 자신을 자극하기 위하여 잔뜩 힘을 주고 한 연기였다는 후배의 말.

게다가 싹수 좀 있어 보이는 선생님 제자에게 알짱거리기 시작한 RD, 계속 쌓여오는 스트레스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며 수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성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 미치겠네 진짜.

이놈이고 저놈이고 사람 열불만 쌓이게 하는데 아주….

야, 너 그래. 똑바로 해

한번 두고 보자. 누가 더 제대로 하는지

아주 선배를 개똥으로 아는구나. 네가.”

수연의 평소 어투와는 다른 다소 거친 말에 민수는 그냥 웃으며 듣기만 한다.

수연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이리된 거 마음이나 풀자고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하, 그래 그런데 하나만 묻자. 왜 첫 방 날이야?

그날이 별다른 특별한 날은 아니잖아?”

민수는 그런 수연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 얼굴로 대답하였다.

“특별한 날이죠.

이수연 배우님이 RD랑 계약이 완전히 마무리되는 날인데요”

그리고 민수는 바로 다음 촬영을 위하여 이동했다.

수연은 조금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떠나는 민수를 잠시 바라보았다.

민수가 촬영에 한창일 그 시간

민수와 대화를 마친 김주성 팀장은 바로 김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사님, 김주성 팀장입니다.”

[그래요. 어떻게 됐나요?]

김 이사의 물음에 주성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우선 시간을 달라고는 하는데 당장은 가능성이 작아 보입니다.”

주성의 말을 마쳤지만, 전화기에서는 잠시 정적만이 흘렀다.

[….좋아요. 그래도 계속 접근해 보세요. 대표님에게 바로 보고 드리겠어요. 수고해요. 김팀장]

전화가 끊어지고 김주성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딱 봐도 흔들리는 사이즈가 아닌데.. 어쩌시려는 거지?”

의문이 들어도 어쩌겠는가.

위에서 요구하니 자신은 지시대로 하는 수밖에.

주성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었으니까.

하루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민수는 가장 먼저 대표실을 찾아갔다.

자신이 RD로 옮길 일은 없으니 그쪽에서도 무슨 행동에 나설 것인데 적어도 하루라도 빨리 알려야 대책이라도 세울 시간을 벌지 않겠는가.

민수가 윤 대표에게 RD에서 자신에게 접근했고 이런 계약서를 제시 했다는 말을 전달하자 윤 대표의 표정이 미묘하게 찡그려졌다.

“허.. RD란 말이지…”

하지만 민수는 마지막에 주성이 자신에게 한 말은 윤 대표에게 전달 하지 않았다.

민수가 기획사 대표로서의 윤 대표의 진면목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우를 키우는 능력이 탁월한 윤 대표.

민수는 그런 선생님으로서의 윤 대표는 전적으로 신뢰하지만, 아직 대표로서의 윤 대표의 능력과 연기 외적으로 케어하는 윤엔터의 모습을 살펴보지 못하였다.

김주성 팀장과 만남은 기분 좋은 만남이 아니었지만 그의 말 중에 정확히 맞는 말이 하나 있었다.

루머나 찌라시는 항상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을 막거나 그 여파를 줄여주는 것이 소속사의 능력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민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윤엔터를 확실히 신뢰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물론 윤엔테가 그런 쪽으로 케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이곳을 떠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RD가 콘텐츠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긴 하지만 그게 배우에게 당장 이익이라고 볼 수는 없어.

하지만 네가 정말 제대로 된 연기를 계속한다면 그 영향력이 너에게 큰 날개가 되어 줄 거다.

만약 네가 RD로 간다고 해도 내가 너를 막을 생각은 없구나.

RD는 다른 방향으로 널 케어 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RD로 간다 해도 계약조항은 손 보고 들어가거라.

그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면 정말 괴로운 5년이 될 거야.”

민수는 윤 대표의 말에 윤 대표가 참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돈 때문에 기획사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는 말은 100% 사실일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배우가 떠나는 것에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지..

자신의 옆에서 그 배우가 성공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배우 육성의 완성이니까.

내가 확신을 얻고 싶은 만큼 나도 확신을 드려야겠다.’

“하하, 대표님.

대표님이 윤엔테 문 닫을 때까지 전 절대 윤엔터 안 나가요.

아니, 못 나가요.

그러니 저 빨리 보내버리고 편하게 노후 보낼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전 100억을 준다 해도 관심 전혀 없으니까요.

그러니…”

여기까지 말한 민수는 윤 대표를 바라보며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전 끝까지 지켜 주세요. 전 대표님만 믿으니까요”

민수의 말에 윤 대표의 입에서는 작은 신음성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민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선생님께 연기를 배운 사람이면 다 그렇게 생각 할거에요.”

민수는 말을 마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민수가 나가고도 윤 대표의 머릿속에는 민수가 한 말이 계속 남아 맴돌고 있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민수는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감정과 진실, 신뢰 그리고 윤 엔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하고 한편으로는 간사하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정작 가장 중요하거나 심각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하고들 한다.

민수가 살아온 30년의 세월 동안 보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했다.

그러니 중요한 운동경기에서 마지막 순간에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게 골을 넣는 선수들을 보며 “차가운 심장”을 가졌다느니 하면서 치켜세우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 수연도 결국 참다못해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민수에게 반말을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한번 감정이 폭발하면 다음에 더 쉽게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곤 한다.

아마도 다음에 사적인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되어도 서로 격식을 차릴 때 보다는 솔직하게 서로 이야기하게 되리라.

그런 의미에서 민수는 자신이 수연에게 접근한 목적은 제법 잘 이루어졌다고 자찬했다.

그리고 오늘 민수는 오늘 자신이 윤엔터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윤 대표에게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바로 서로의 관계가 신뢰로 굳건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신뢰라는 녀석은 상황이 변함에 따라 계속 확인을 요구받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게 된다.

민수는 계속 그런 신뢰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신뢰받고 싶어지기도 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서로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변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던 민수는 지금의 자신이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최적화된 연기환경에서 연기 하는 자신이라니. 두 명의 선생님이 자신에 맞춰 연기를 가르쳐주고 자신의 단점을 고쳐주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연기철학을 강요하지 않고 나만의 연기 방식을 스스로 터득하게 도와주었다.

어떤 배우가 이런 축복을 쉽게 받을 수 있겠는가.

최근 민수는 자신의 회귀 이후 가장 큰 축복은 아마 이곳 윤엔테일 거라고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곳의 사람들이 그렇게 점점 좋아졌다.

그래서 반드시 이곳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 일원으로 같이 행복해지고 싶었다.

자신이 조금 움직여 이곳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하다면 민수는 당연히 그럴 의사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수는 이곳에서 끊어진 신뢰 하나를 다시 묶어오고 싶었다.

민수에게 그것은 자신이 처음부터 믿음을 쌓아 올라가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일이었다.

자고로 제 일이라 가장 어렵게 느껴질 뿐. 수연과 윤 대표 간의 문제는 사실 별것이 아니었다.

민수는 이 문제에 대하여는 확실한 판단이 섰다.

민수가 생각하기에 이 일은 설아의 대사를 고쳐주는 것에 비한다면 그냥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다.

다만 민수는 해결방법을 알긴 하지만 그 결과의 내용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유일한 문제일까.

그리고 오랜 기다림의 결론이 비극보다는 희극임을 기대하며 민수는 눈을 감았다.

또한 불이 붙어 버린 이수연의 연기를 내일 볼 수 있기를 마음속 한편으로 작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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