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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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으로 향하는 민수의 차 안에서 민수는 제작발표회에 대한 기사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송포유 배우들 “시청자님들이 판단할 것이다. 호언장담은 만용인가 자신감인가]
[유니(Yuni) 드라마틱블루. 이번 시즌 신상품. 빛나는 리온의 자태]
[배우들의 자신만만한 신경전. 내 연기가 최고다! 시청자들이 판단할 것]
[송포유 이수연 내 연기를 지켜봐라]
“헤… 기사가 많이 났네요…”
역시 매인 기사는 리온이 예상한 대로 리온의 시작했고 모든 제작진이 받은 그 말이었다.
그리고 리온의 의상에 주목한 기사들도 쏠쏠찮게 보이곤 했다.
“히야.. 역시 아직 제 기사들은 없네요.
나쁜 기사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아니면 무관심에 걱정해야 할 지 잘 모르겠네요”
민수의 말에 동원은 웃으며 민수를 달랬다.
“그렇지 않아도 민수 씨에 대한 문의가 홍보팀을 통하여 많이 들어오고 있긴 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표님이 원체 촬영 중에는 그런 문의들을 다 커트하는 스타일이셔서요.
태준 씨도 촬영 중에는 인터뷰나 그에 관련된 요청들은 일절 받지 않거든요.”
동원에 말에 민수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저도 그 점은 정말 대표님 생각에 동감이에요.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인터뷰가 있을 순 있겠지만 가능하면 무조건 촬영 중에는 인터뷰를 피하고 싶네요.”
민수는 촬영 중 인터뷰에 신경 쓰는 것보다 차라리 관심을 받지 않는 지금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민수의 차량은 무사히 촬영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촬영장은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촬영 스튜디오에서는 오늘 민수보다 빠르게 촬영을 시작한 리온과 수연이 한창 촬영중에 있었다.
(씬 3-1-2)
최준이 머무는 최준의 집.
집의 문이 열리며 화난 미주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그리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최준을 한심스럽게 잠시 쳐다본다.
그리고 이불을 번쩍 들어 최준을 내팽개치고는 바로 커튼까지 활짝 열어 버린다.
“아씨.. 뭐야? 누구야?”
침대에서 늘어져 있다가 봉변을 당한 최준은 번쩍이는 빛에 눈을 가리고는 상대를 확인한다.
“야, 이 화상아. 당장 못 일어나요?”
막말하며 방방 뛰는 미주를 보며 최준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꾸한다.
“아 진짜, 왜 또 너야? 매니저는 어디 가고 네가 여긴 왜 오냐?”
처음에는 제법 무서운 최준이이었지만 강하게 나가면 의외로 약해지는 모습.
그리고 음악 방송을 찍는 동안 미묘하게 역학관계가 넘어가 버린 상태라 미주는 이제 최준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흥, 매니저도 싫다고 도망갔어요.
얼마나 들들 볶으면 매니저가 버티질 못해.
지금 그래서 내가 최준 씨 매니저 겸 코디 겸 스타일리스트에요!
그러니 당.장! 일어나서 준비해요!”
소리를 버럭 지르는 미주의 모습에 최준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다시 이불을 잡는다.
“야, 이제 좀 내버려 둬. 어차피 끝난 거잖아.
끝. 오버(over) 이해가 안 가? 가수 최준은 끝났다고.
이제 너도 빨리 새길 찾아. 나 귀찮게 하지 말고”
“OK.! 바로 다음 씬 갈게요.”
감독의 사인이 났지만 두 배우의 긴장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리온의 불안한 눈빛을 보면서 민수는 작게 실소 할 수 밖에 없었다.
“킥킥, 그래도 저건 무섭나 보네..”
민수가 중얼거리는 동안 감독의 사인에 맞춰서 다음 씬의 촬영이 바로 시작되었다.
(씬 3-1-3)
최준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미주는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최준이 다시 자리에 눕자 화가 난 미주는 바로 부엌으로 달려가 물을 받아 바로 최준에 머리에 붇는다.
“야이씨! 뭐 하는 짓이야!”
난대 없는 물벼락에. 최준은 번쩍 일어난다. 그러나 불행히도 물에 너무 정통으로 맞아서일까 최준의 머리가 두 갈래로 얼굴에 완전히 밀착되고 말았다.
“히야 저건 … 못쓰겠는데..”
“무슨짓이고,..”
수연이 대사를 이어가려는데 감독님의 사정없는 NG 사인이 울려 퍼지고 리온의 표정은 세상을 다 잃은 남자의 표정이 되었다.
“이야 .. 난 조금 더 대기해야겠는데..”
씬의 특성상 저런 씬은 한방에 촬영이 안 되면 분명 수많은 NG를 부른다.
이걸 징크스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민수가 지켜본 바로는 언제나 그래왔다.
그리고 실제로도 민수가 촬영을 위해 나온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후였다.
민수가 리온과의 씬을 촬영하러 대기실을 나서서 세트장으로 이동하면서 바라보니 세트장에는 불퉁한 표정의 리온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민수는 그런 리온에게 빙긋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하하, 리온씨 수고가 많네요. 물 많이 맞으셨어요?”
리온은 민수의 말에 한숨을 푹 쉬면서 한탄하듯 대꾸했다.
“하… 올해 맞을 물은 다 맞은 거 같아요. 설마 수연 선배님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거 아니겠죠?”
리온의 탄식에 민수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닐 거에요. 그 이쪽 계통 선배의 말이 원래 따귀나 물 맞는 씬 같은 거 첫 큐에 실패하면 그날은 그거만 찍어야 한다네요.
징크스 같은 거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한번 실패하면 미안해서 더 잘하려고 몸이 굳어져서 그런 거라네요.
그 말인즉슨 수연 선배는 리온씨를 안 맞추려고 노력하다가 그냥 실패한 거다?”
민수의 말에 리온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 마지막에 말이 올라가는 게 왠지 불안한데요.
그나저나 민수 씨는 그런 말을 또 어디서 들었어요?”
호기심으로 조금씩 물 들어가는 리온의 표정을 보며 민수는 그냥 웃으며 말을 넘겼다.
“그냥 통설이나. 떠도는 말 같은 거예요”
‘내가 겪은 거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뭐 내가 거짓말하는 건 아니니까’
이 계통 선배의 흘러가는 말. 민수는 자신의 표현이 너무나 정확하다고 자부했다.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이 계통의 대선배 아니겠는가.
“자바로 갑시다. 민수씨 리온씨. 씬 3-3-1 START!”
미주의 등살로 소속사로 돌아온 최준.
최준은 결국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하여 준성을 찾는다.
“좋아요. 앨범 실패는 그냥 노래가 그따위라고 생각합시다.”
진성이 운이 띄우자 최준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소리친다.
“뭐?”
그런 최준을 보며 진성은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최준에게 말한다.
“하, 최준 씨는 차트도 안봅니까? 댓글이 쓰레기장인 건 그래.
블랙 미스트 팬들이 싸 내린 거로 생각해도.
차트 스트리밍 순이나 다운로드 수만 보면 그 노래가 가히 얼마나 가공할 노래인지 감이 올 텐데요?
원래 가수가 거지 같아도 노래가 좋으면 차트에선 살아 있어요.”
준성이 설명하자 최준은 그냥 마냥 고개를 숙이고 한숨만 푹푹 쉰다.
최준을 이해시켰다고 생각한 준성은 이제 다시 자신의 궁금한 것을 물어가기 시작한다.
“좋아요. 우선 하나 집고 넘어갑시다.
최엔터 거긴 대체 왜 최준 씨 못 잡아먹어서 난리에요?
무슨 폭탄이라도 던지고 나왔어요?”
준성의 말에 최준은 잠시 고개를 들어 준성을 바라보고 피식 웃는다.
“흥, 그래 폭탄.. 폭탄이라면 폭탄이지.”
비웃음을 짓는 최준의 모습을 바라보는 준성의 표정이 의문으로 가득하다.
‘이제 컷 사인이 나야 하는데.. 아…그냥 붙여서 가자는 건가. 하긴 지금 둘 다 감정 상태가 좋긴 한데…’
배우들의 상태가 좋아지면서 가끔 이렇게 그냥 이어지는 씬을 바로 붙여서 가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이런 촬영 방법들이야 피디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만, 리얼버라이어티를 중점으로 찍었던 조PD는 그냥 가능하면 바로 길게 찍고 그사이를 편집으로 끼워 넣는 방식을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좋아. 피디님이 가자는데 그냥 가야지..;
(씬 3-3-2)
“좋아요. 그 폭탄 뭔지 들어나 봅시다.”
컷 싸인 대신에 민수가 대사를 치자 리온은 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다시 집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자신감 없이 축 늘어졌던 최준은 그때를 생각하면 힘이 난다는 듯 살아난 표정으로 거만하게 말을 시작했다.
“후후, 최 대표가 나를 따돌리고 팀 내 불화를 내 탓으로 만들려고 하는 내용의 대화를 내가 우연히 녹음하게 됐어.
그리고 난 그걸 빌미로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을 해제 했지.
그리고 계약 해지하는 날 딱 하고 최 대표 면상에다가 그 녹음기를 던져버리고는 쿨하게 최 엔터를 나섰지.”
당당하게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는 최준을 보며 준성이 간략하게 정리했다.
“그러니까 최 대표는 당신이 훗날 그 녹음을 공개할 때까지 당신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하여 당신의 앞길을 기를 쓰고 막고 있다는 거군요”
준성의 말에 최준은 무슨 소리냐며 내용을 수정했다.
“면상에 던져 버리고 왔는데 공개는 무슨 공개..”
최준의 말에 준성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설마 원본을 던져버리고 왔다는 말은 아닐 거라고 믿어요”
준성에 말에 최준은 어림없다는 듯 말하며 준성을 경악시켰다.
“흥, 남자가 공개 안 한다면 공개하지 말아야지. 복사본 따위 던져주고 왔을까.”
최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준성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뭐..이런 머저리가… 최준 씨. 생각은 하고 살아요?”
그 말에 최준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준성을 노려봤다.
“뭐라고!? 말 다 했어? 자신이 한번 내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는 게 진짜 남자야.
너 같은 놈이 그런 걸 알 리가 있나!?”
한참을 준성을 노려보던 최준은 씩씩거리며 작업실을 나섰고 그런 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준성은 그저 머리를 부여잡을 뿐이었다.
“하..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남자의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니가 꼴통인 건 알겠다.”
“컷! OK”
컷과 동시에 촬영본을 확인하러 모인 배우들을 보며 피디는 기분 좋게 칭찬했다.
“하하하 신인 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롱테이크에서도 실수가 없어요.
카메라를 여러 대 붙이는 보람이 있어요 하하”
화면에는 동시에 여러 각도로 촬영한 장면들이 계속 이어졌다.
민수는 확실히 여건만 되면 롱테이크로 길게 가면 좀 더 영상이 자연스럽게 나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온도 민수의 옆에서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잠시의 휴식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민수는 자신의 촬영을 시작했다.
수연과 민수의 씬.
자꾸 최준에게 관심을 가지는 미주가 못마땅한 준성이 미주를 불러내 설득하는 씬이었다.
(씬 3-5-1)
“하, 이미주 대체 너 왜 그래?
네가 최준에게 신경 쓰는 이유가 뭐야?
넌 그냥 코디잖아.
최준의 일거수일투족을 네가 왜 참견하는데.
그냥.. 니 일만 하면 안 되는 거야?”
처음에는 다소 화가 난 듯한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조금씩 잦아 들어갔다.
미주는 준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왜? 난 지금 매니저 겸 코디 겸 스타일리스트잖아. 난 그냥 내 일을 하는 거야.
매니저니까 너 말대로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지”
미주가 정 대표를 찾아가 스스로 매니저를 자청했다는 것을 아는 준성은 그런 미주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미주, 네가 나서서 최준 매니저 하겠다고 한 거 내가 모를 거로 생각했어?
넌 대체..왜…”
이어지는 준성의 말을 미주가 끊고 들어온다.
“왜? 상황이 어려줘 지는 사람 좀 도와주면 안 돼?
이준성, 넌 왜 이렇게 변했니?
난 예전의 착한 네가 그리워.
너도 어려운 사람 보면 팔 걷어붙이고 그랬었잖아.
지금 최준 씨도 난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넌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니야?
하, 됐다. 넌 네일을 . 난 내일을..
서로의 일에는 참견하지 말자.”
냉정하게 말한 미주는 준성을 돌아 보지도 않고 멀어진다.
그런 미주를 준성은 그저 아련하게 쳐다보기만 한다.
“그래.. 그랬지.. 거기에 네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이제 못 그래..
니가 바라 보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 버렸으니까..”
“OK!”
연기를 하면서도 민수는 슬쩍 수연의 눈치를 보았다.
‘흠.. 무슨 계기를 찾아야 하는데… 사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난데없이 찾아갈 수도 없는 거고.’
민수가 고민하며 촬영을 마치고 있는데 한 남자가 수연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수연은 그 남자를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본다.
“아이고, 이수연 배우님. 그냥 이렇게 재계약 없이 계약 종료하시는 겁니까?”
남자가 웃으며 말하자 수연은 고저 없는 억양으로 대답했다.
“그러네요. 이유는 그쪽이 더 잘 알겠고. 내용증명 이미 보냈는데 확인 안 하고 오셨나 보네요”
수연의 말에 남자는 그냥 고개를 으쓱하며 대꾸한다.
“하하, 확인이야 했죠. 혹시나 해서 여쭈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목적은 이수연 배우님이 아니니까요”
남자는 슬쩍 수연에게 인사하고는 천천히 민수에게 다가왔다.
‘엥? 나?”
민수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순간 남자는 천천히 다가와 민수에게 명함을 건네었다.
“하하 RD 엔터에 캐스팅 팀장 김주성입니다. 시간 되시면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인상을 잔뜩 쓴 수연이 이곳을 노려보는 것을 보며 민수는 어쩌면 기회를 좀 빨리 잡을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러죠. 잠시 제 촬영이 없으니까요. 제 대기실로 가실까요?”
민수는 웃으며 주성의 손을 잡았다.
웃는 얼굴과는 달리 주성의 손은 아주 차가웠다. 마치 얼음장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