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41화 (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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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표정의 리온을 보면서 같은 멤버인 태호는 조금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이 리더, 대체 왜 그렇게 뭐 씹은 표정이야.

리더 때문에 전 멤버가 연습도 못 하고 행사를 뛰고 가는데 말이야.

대체 이유가 뭐야

우리가 이런 뜬금없는 타이밍에 행사를 뛰어야 하는 이유.”

태오의 말에 오늘 카메오로 리온이랑 같이 촬영장을 찾아야 하는 랩 퍼 K-G 가 대신 대답했다.

“우리 리더님이 상대 신인 배우님에게 무시 받기 싫으셔서 기선 제압을 하시겠단다.”

K-G의 대답에 태호는 다소 어이없다는 얼굴로 리온을 향하여 말하였다.

“오.~노 우리 리더 갑자기 왜 이렇게 유치해졌어? 예전에 판타즘이랑 같은 무대에서 붙을 때도 이렇게 유치하지는 않았잖아.”

판타즘은 RD엔터의 대표적 보이그룹으로 이카루스와 대등한 팬텀을 보유한 유명한 그룹이었다.

태호는 판타즘하고 신경전할 때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리온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전혀 이해 할 수 없었다.

태호의 말에 리온은 인상을 잔뜩 쓰며 대꾸했다.

“에이, 그건 아이돌 대 아이돌이니까 그랬던 거고.

아이돌 중에는 어차피 우리가 최고인데 왜 우리가 판타즘을 신경 써?

하지만 배우들은 달라.

배우 놈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돌을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족속들이야.

조금만 얕잡아 보여도 바로 무시 모드로 들어갈걸….

난 이카루스 리더라고, 내가 무시당하는 건 팀이 무시당하는 거랑 같아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어?”

태호는 그렇게 흥분하는 리온을 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효과는 좀 있었나?”

태호의 말에 리온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다.

“전혀.. 그냥 방긋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하더라고.

적어도 몇 시간은 지연됐을 텐데.”

리온의 말을 가만히 듣고는 팀에서 브레인을 자처하는 소울이 정리했다.

“그러니까, 상대를 엿 먹이려고 우리 리더께서는 똥을 퍼먹었는데.

엿 먹은 상대는 개의치 않고 엿을 아주 맛있게 드셨다?”

소울의 말에 차 안의 멤버들은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리더, 이런 허튼짓도 오늘로 끝이야.

대표님이 내일부터는 그냥 얌전히 연습이나 하라시는 데 이제 어쩔 거야.”

소울의 말에 리온은 한숨을 푹 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행사를 마치고 K-G와 함께 촬영장을 찾은 리온은 대선배 창식과 피디에게 인사하고 다음으로 수연에게 인사하러 찾아갔다.

리온의 인사를 받은 수연은 리온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꼬맹이, 오늘은 친구 데리고 왔어?”

다소 까칠한 수연의 말에 리온은 작게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카메오는 촬영 전부터 작가님이 부탁하신 일인데요.”

리온의 대꾸에 수연은 피식 웃더니 리온에게 충고했다.

“꼬맹이, 누나가 우리 꼬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를 하는데..

민수씨 콧대를 꺾고 싶으면 그런 거 말고 진짜 완벽하고 멋진 연기를 보여줘.

그럼 민수 씨 눈이 휘둥그레 질 테니까.

내가 우리 꼬맹이가 자꾸 헛발질하는 거 같아서 안타까워서 그래.”

수연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리온은 살짝 인상을 쓰며 고개를 숙이고 수연의 대기실을 나섰다.

그렇게 자신의 대기실에 들어선 리온은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깐만.. 어디라고? 유니? 거기가 PPL도 해?”

자신이 오늘 촬영에서 유니의 옷을 입게 되었다는 말을 코디에게 전해 들은 리온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자 코디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리온에게 전달해 주었다.

코디의 말을 들은 리온의 표정은 더욱 아리송하게 변하였다.

“그러니까.

민수 씨한테 유니 쪽에서 PPL 조로 협찬요청이 들어갔는데.

그 옷이 준성이가 입기에 너무 고급이라서 민수 씨가 유니 쪽에 말해서 그 옷을 나한테 돌렸다고?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아?”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리온은 다시 코디에게 물었다.

“유니가 협찬이든 PPL이든 드라마나 영화, 시상식 같은 거에 의상 제공한 것이 처음 아니야?”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는 코디의 말에 리온은 허탈하게 웃었다.

“원 세상에…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배우들이든 아이돌이든 자신 앞으로 넘어온 고급브랜드의 의상을 다른 곳으로 넘기는 초유의 상황을 직접 체험하게 된 리온은 이 상황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살펴보던 K-G는 쓰게 웃으며 리온에게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 어째거나. 네가 기죽이겠다는 상대가 너무 그릇이 큰 거 아니야?”

K-G의 말에 리온은 뭐라고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리온이 도착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촬영팀은 음악 여행을 촬영하는 무대로 빠르게 이동했다.

오늘은 진짜로 음악 여행이 녹화되는 날이고 피디가 음악 여행 피디랑 친분이 깊어 겨우 리허설 전에 잠시 촬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니만큼 신속하게 촬영할 필요가 있었다.

카메라가 따로 설치되는 동안 스텝 중 일부가 무대 아래 실제 음악 여행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무대 위의 변화들을 의아하게 생각하던 관객들은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에 신나 하면서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

스텝들이 나누어준 응원 도구들을 들고 관객들이 준비를 마치자 무대 위에 리온 그리고 K-G하고 3명의 백댄서가 드라마 내에서 인기 그룹인 블랙 미스트 인 것처럼 대열을 잡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관객들은 약속에 맞추어 실감 나게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수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작가님이 실감 나게 찍으려면 실제 음악 여행 무대에서 찍는 게 최고일 거라더니 진짜 그 말이 맞네. 엑스트라 분들을 써도 저런 리얼한 함성이 나오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민수는 저 위에서 춤추는 리온의 모습에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따로 안무를 정할 정도는 아니라 다소 자유롭게 춤추는 리온은 남자가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와, 진짜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라더니.. 리온 춤 추는 춤선 자체가 다르네… K-G도 잘 추긴 하지만 저 사람은 거의 오리지날에 가까운 랩퍼이니…”

민수는 확실히 리온이 연기도 잘하지만 진정한 리온의 매력은 무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작중에 최준이 블랙 미스트로 인기 있던 모습의 촬영이 끝나자 바로 이어 솔로로 데뷔하는 최준이 무대 리허설에 스는 장면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단정한 옷을 입은 최준이 서서히 무대 위로 걸어 간다.

무대 위에 최준이 섰지만, 아까와 같은 환호성은 전혀 없었다. 다소 웅성거리는 분위기에 무대였지만 최준은 자신의 집중력을 최대한 모으려는 듯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때 관객 중 한구석에서 하나의 달걀이 날라와 최준의 몸에 정확히 적중한다.

“예이, 배신자! 팀을 버리고 네가 혼자서 잘될 거 같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관객들이 일제히 야유와 욕설을 내뱉는다.

최준은 그 모습을 충격받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스텝들에게 끌려 자신의 대기실로 도망간다.

“컷!”

그리고 서둘러 대기실로 돌아가서 오늘 받은 옷을 입은 리온이 최준으로서 다시 무대 위에 올라온다.

그렇게 올라온 최준이 자신의 솔로곡을 무사히 끝까지 부르고 내려가는 것이 오늘 무대 촬영의 마지막이었다.

민수는 리온이 옷을 입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작게 탄성을 지었다.

“히야.. 옷 빨 진짜 사네.

리온이 키도 크고 춤을 춰서 그런지 몸에 군살도 전혀 없어서 저 옷도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민수가 탄성을 지으며 리온의 연기를 바라보는 시간에 리온은 대본대로 최준의 다소 엉성한 노래를 열정적으로 불렀다.

차라리 가수라서 저런 엉성한 노래를 엉성하게 열창하는 것이 더 어려울텐데 수월하게 해내는 모습에 민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민수의 모습을 K-G가 유심히 바라보며 고개를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통제에 잘 따라준 관객들의 활약으로 우선 초반부에 무대에 스는 장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촬영을 마쳤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복장 그대로인 리온과 K-G는 같이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관객들은 앨범 준비 기간이라 잘 보지 못한 리온과 K-G의 모습에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제 대기실에서의 장면만 촬영하면 음악 여행에서 촬영은 당분간 없으리라.

혹시 작품 후반부에 다시 최준이 무대에 선다면 모르겠지만 민수는 아직 드라마의 후반부가 어찌 흘러가는지 모르니 그것을 짐작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대기실로 촬영 장소를 옮긴 촬영팀은 다음 촬영을 준비 하였다.

“2-5-2번 씬 스타트!”

다시 아까 달걀 맞은 옷과 같은 디자인의 옷으로 갈아입은 최준은 처량한 표정으로 대기실 의자 위에 쪼그리고 누워있다.

잠시 후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K-G가 껄렁껄렁한 걸음으로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하, 준. 이 시건방진 자식. 네가 그렇게 혼자 나가고도 잘나 갈 줄 알았어?”

K-G가 거친 표정으로 말했지만, 최준은 슬쩍 그를 쳐다보는 것을 끝으로 아무런 대꾸도 없다.

최준의 그런 모습에 신이 난 듯 K-G는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다.

“블랙 미스트 나가고 넌 그냥 인간쓰레기밖에 안돼.

이제 널 응원하던 애들도 다 싸잡아 널 욕해. 휴먼 가비지라고.

그래 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아까 날아온 그 썩은 달걀.

앞으로도 달걀이나 맞으면서 영영 반성해. 너의 과거를”

랩도 아닌 대사를 랩인 것처럼 리드미컬하게 읊어대는 K-G의 모습에 민수는 작은 감탄의 탄성을 터트렸다.

‘허.. 우리 작가님 어떤 의미로 대단하네..

연기 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랩 한다 생각하고 대충 읽으라고 하시더니.. 화면으로 보면 나름 재미있겠어 리온을 디스하는 K-G라니 크크’

그때 갑자기 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미주가 들어온다.

“뭐야, 이 덩어리 아저씨는. 아저씨 빨리 나가요. 여기 잡상인 출입금지에요”

K-G를 쫓아내려고 팔을 잡아끄는 미주의 모습에 최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억지로 끌려가는 K-G는 속절없이 밀려서 밖으로 쫓겨난다.

“아이씨, 이 껌딱지만 한 여자가 왜 이렇게 힘이 세.”

껌딱지라는 소리에 눈에 불을 켠 미주는 발로 K-G를 가볍게 몰아내고 있는 힘껏 문을 닫는다.

“흥, 왜 약 먹은 닭처럼 비실대고 있어요?

온종일 나를 갈구던 그 패기는 다 어따 팔아먹고.

어서 본무대 준비해야죠.

그리고 그 아저씨가 막말하는데 왜 그건 듣고만 있어요”

미주가 묻자 최준은 슬픈 표정으로 대답한다.

“틀린 소리는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진짜 무대에 슬 자격이 있을까..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데..”

기운 빠진 최준을 보고 미주가 한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럼 어쩌게요? 오늘 무대 그냥 도망이라도 치게요? 어서 정신 차리고 가수답게 죽어도 무대에서 죽어요. 이런 데서 까무러치지 말고”

미주의 강권에 최준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거칠게 말한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환호 없는 무대가 가수에게 얼마나 마음 아픈 것인지 네가 알기나 해?”

미주는 그런 최준을 바라보며 인상을 팍 쓰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네네, 제가 알 리가 있나요. 제가 가수가 아닌데. 그런데 한가지는 딱 알겠네요.

지금 무대를 서는 것이 낫지 만약 무대에 안 서면 더 엿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요.”

미주의 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는 최준은 한숨을 쉬며 미주를 바라본다.

“야, 넌 왜 이렇게 내 일에 적극적이야. 내가 밉지도 않냐?”

“물론 밉죠. 무지무지”

1초의 틈도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살짝 기대하며 물었던 최준은 김빠진 표정으로 미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 가수잖아요. 당신. 내가 보조하고 내가 주는 옷을 입어주는 내 가수.”

내 가수라는 미주의 말에 최준의 표정이 살짝 펴진다.

그리고 최준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미주의 입이 열리고 마주가 계속 말한다.

“그래서 까도 내가 까요. 내 가수가 남한테 까이는 건 도저히 못 참으니까.”

까도 내가 깐다는 미주의 선언에 최준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미주를 바라보고만 있다.

“컷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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