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40화 (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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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서 작가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옷이 음.. 우선 민수 씨 앞으로 PPL 들어온 옷이에요.”

자신의 앞으로 들어왔다는 말에 민수는 서 작가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PPL이면 PPL이지, 제 앞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민수가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 오늘 입을 의상을 체크하던 조수정 코디가 민수에게 달려왔다.

“배우님! 배우님! 이럴 수가! 유니(Yuni) 에요! 유니!”

방방 뛰고 있는 조수정의 모습을 보던 서 작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젯밤 CP에게서 유니로부터 PPL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서 작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유니라니요.?

왜 그곳에서 저희에게 PPL을 넣어요?

아니, 그전에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 하다못해 시상식이라도 유니가 협찬을 지원한 적은 없었을 텐데요.”

미국에서 상당한 고가 브랜드로 유명한 유니(Yuni)는 광고 전략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는 브랜드였다.

사실 미국 내 이미지 광고만으로도 매우 높은 판매량을 이루고 있었고 그 독특하면서도 과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많은 고정 고객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국 내에서도 홍보전략에 무신경한 유니가 타국에서의 홍보를 신경 쓸리는 만무하고 그렇게 홍보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유니 라는 이름값 자체로 한국에서도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역사가 길지 않아서 그렇다 뿐, 품질이나 디자인의 우수성은 명품보다 더욱 명품 같다는 평으로 젊은 세대들은 기존 유럽의 명품 브랜드 보다 유니를 더 높게 평가했다.

어쨌거나 그런 브랜드에서 따로 민수의 이름으로 PPL이 들어오자 서 작가는 서둘러 대본과 앞으로의 진행을 살펴보았다.

대본을 살펴본 서 작가의 인상은 점점 구겨져 갔다.

“하.. 이건 안 되는데.. 어쩌지..”

서작가는 PPL왔다는 의상의 모습과 자신의 대본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의 스토리 진행 방향을 생각하며 밤새도록 깊게 고심하게 되었다.

민수는 방방 뛰는 조수정을 애써 진정시키고 서 작가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다고 요청했다.

“후 .. 맞아요. 유니에서 민수 씨의 이름을 거론하며 PPL을 신청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좀 있어요.”

서 작가가 어렵게 말을 잇자 민수는 서 작가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후, PPL 들어온 의상이 너무 고급스러워요.

그래서 준성이가 입기에는 부적당하다고 생각 돼요.

준성은 기본적으로 케쥬얼한 의상을 즐겨 입고 복장에서조차 효율성을 추구하는 다소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예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는 장면을 상상하기 힘들어서..

설정을 바꾸거나 해야 할 것인데..”

서작가가 거기까지 설명하자 민수는 바로 수정에게 의상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민수의 말을 들은 수정은 번개같이 뛰어서 옷 한 벌을 가져왔다.

민수는 수정이 가져온 옷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와.. 옷 진짜 예쁘네요”

수정이 가져온 것은 한 벌의 정장이었는데 옷의 색 자체가 단순히 검은색이 아니었다.

분명 검은색인데 은은하게 푸른빛이 감돌았다. 색상 자체도 범상치 않은데 디자인은 놀랍도록 맵시가 살았다.

민수의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본 옷 중에 가장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냥 보기만 해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태에 민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와, 이걸 준성이 입고 있으면 진짜 웃기겠네요”

자신이 딱 봐도 엄청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 옷은 아마 시청자가 보자마자 엄청 비싼 옷이라고 한 번에 알아보리라.

“이건 그냥 최준이 시상식 같은 데서나 입을 만한 옷인 거 같은데요.

우리 드라마가 재벌이 나오는 드라마도 아니고..”

민수가 지나가듯이 말하자 서 작가는 반색하며 민수의 말을 받았다.

“맞아요! 사실, 이 옷은 최준이 입으면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서..그러니깐 민수씨.. 이런 말 하긴 정말 미안한데요.”

서 작가가 말을 이어가자 옆에 있던 수정이 분노하며 외쳤다.

“와! 말도 안 돼! 지금 이걸 리온한테 양보해 달라고요? 와…세상에… 지금 유니 최초 협찬이라는 타이틀을 양보하라는 말씀이네요.

배우들한테 그런 타이틀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면서..

이런 타이틀이 있으면 앞으로 들어오는 협찬의 급이 하나 이상 올라갈 건데..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하실 수가..”

자신의 일인 양 화내는 수정을 보며 민수는 피식 웃으며 서 작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제 앞으로 들어온 의상이라면서요.

그런데 제가 마음대로 리온씨한테 양보해도 되는 건가요?”

서 작가는 민수의 말에 더 미안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서 작가의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지막하게 작아졌다.

“그 PPL 들어올 때 같이 들어온 연락처가 있었어요.

혹시 의문 사항이나 문제점이 생기면 연락을 해달라고.

그래서 문의를 넣었어요. 그랬더니 번호 하나를 알려 주시더라고요. 우선 민수 씨랑 이야기 해보고 싶다고요."

거기까지 말하자 폭발한 수정은 대기실로 들어가 버렸다.

“와 세상에…. PPL 날아가는 것도 서러운데 허락까지 받아 달라고..”

짜증내며 들어가는 수정을 보자 민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서 작가에게 사과했다.

“아직 어린 녀석이라 감정조절이 서투네요. 죄송합니다. 작가님”

민수가 사과하자 서 작가는 한숨을 지었다.

“후. 저라도 화가 날 만한 일이긴 하죠.

저도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정말 미안하고요.

준성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거나.

아니면 극 상황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전 지금 제가 생각해놓은 진행에 확실한 자신이 있거든요.”

단단한 서 작가의 표정에 민수는 웃음 지으며 서 작가가 내민 연락처를 받았다.

“우선, 제가 연락 드려보죠. 우선 감사 인사도 드려야겠고.

저것이 왜 저에게 들어 왔는지부터 알아봐야 할 거 같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작가님”

민수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자 서 작가도 한결 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진짜 이해가 안 가네. 저런 고급브랜드에서 나한테 PPL이라니..’

아름다운 클래식이 잠시 통화대기음으로 흐르고 전화기 너머로 단정한 음성이 민수를 반겨 주었다.

[여보세요. 조윤희입니다.]

‘아.. 조윤희 선생님이셨어…’

“아, 안녕하세요. 정민수라고 합니다. 혹시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전화기 너머 윤희의 목소리가 밝게 올라갔다.

[어머~ 민수 씨. 호호 반가워요. 이렇게 통화를 하게 되네요. 오늘 의상 잘 도착했나요?

갑자기 결정돼서 놀라지 않으실까 모르겠네요.

어때요? 제 선물은 마음에 들었어요?]

민수는 윤희와 필담하던 글에서 느껴지던 미묘한 기품이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더욱 깊이 있게 느껴졌다.

섬세하면서 부드러운 윤희의 목소리에 민수는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를 품게 되었다.

“아이고, 선생님이셨구나.. 누가 갑자기 저한테 PPL을 맡기셔서 제가 많이 놀랐습니다.

옷이 진짜 너무 예쁘네요. 세상에서 이렇게 남자 옷이 아름다운 것은 처음입니다”

민수의 너스레에 윤희는 곱게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호호, 그랬어요? 제가 디자인한 옷인데 다행이네요.

아마 이번 시즌에 그 옷하고 유사한 디자인으로 남성복이 출시될 거에요.

물론 그 옷이랑은 디자인이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에요.

민수 씨 마음에 든다는 참으로 기쁘네요]

윤희에 반응에 민수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 선생님. 그 참 옷이 너무 좋아서 문제가 생겼어요”

[어머..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민수는 차근차근 자신의 캐릭터와 지금의 상황에 대하여 윤희에게 설명했다.

[아..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윤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민수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

[제가 민수 씨를 위해서 한 행동이 민수 씨에게 독이 되어서야 어디 쓰나요.

그럼 그 옷은 좋을 대로 사용해 주세요.

그 옷을 쓰는 것만으로 드라마에 도움이 될 거 같으니까요.

제 옷을 민수 씨가 입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건 저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윤희가 기분 나빠하지 않고 흔쾌히 허락하자 민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윤희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다.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민수가 감사를 표하자 윤희는 차분하게 설명을 더 했다.

[옷 자체보다 제가 옷을 건넨 그 행동 자체가 제 선물이에요.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잘 이용해 보세요]

사려 깊은 윤희의 말에 민수는 감사 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저, 선생님 그런데 어떻게 저에게 협찬하실 수 있게 된 겁니까? 유니와는 어떤 관계 시길래..”

민수의 질문에 윤희는 작게 웃으며 민수에게 대답했다.

[제가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에 말한 전 있죠.

제가 운영하는 곳이 유니 코리아 디자인 스튜디오에요.

그리고 유니는 제가 미국에서 있을 때 만든 브랜드고요..

음.. 제 미국 이름이 유니 조 이거든요.]

윤희의 대답에 민수는 조금 허탈한 기분이 되었다.

‘아이고, 선생님.. 전혀 작지 않은 스튜디오잖아요…’

그렇게 윤희에게 허락을 받은 민수는 서 작가에게 결과를 전달했다.

민수의 말에 서 작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유니의 옷을 자신의 드라마에서 최초로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당장! 저 옷을 투입하겠어요!

결의에 찬 서 작가의 모습에 민수는 작게 웃으며 자신의 대기실로 이동했다.

대기실 안에 있는 수정의 모습은 가히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아니, 배우님이 괜찮다는데 네가 왜 이렇게 뿔이 났냐?”

동원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수정은 민수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배우님! 무슨 호구예요? 보살이에요? 인간 아니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어떻게 승낙하실 수가 있어요?”

아직까지 방방 뛰는 수정에게 민수는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네. 나에게 있어서 의상은 그냥 껍데기에 불과하거든.

좋은 껍데기를 걸치면 좀 더 때깔 나긴 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싶고..

게다가 문제는 내가 생각해도 저 옷이 내 배역에는 전혀 안 맞는다는 거야.

아무리 옷이 좋아도 배우가 그런 배역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연기를 해서야 쓰겠어?

나도 서운하지.

조윤희 선생님이 나한테 보내준 옷인데.

최초로 유니의 협찬을 받았네 이런 건 사실 관심 없고 다만 조선생님이 나한테 보내준 옷을 내가 못 입는다는 건 사실 조금 서운하네.

그래도 선생님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신다고 했으니 정말 다행이지.”

민수의 말에 수정은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와, 그 옷을 조윤희 님이 보내신 옷이었어요?”

민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윤희 선생님이 유니 조라고 미국에서 활동하셨을 때 그런 이름으로 디자인을 하셨나봐..”

민수가 말하는 동안 수정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와.. 조윤희 님이 유니 조… 세상에..”

그 시간 수연은 서 작가에게 오늘 대본의 변경 점에 대하여 듣고 그 속사정까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옷을 민수씨가 리온씨에게 양보했고 오늘 그 옷을 입히겠다고요? 그래서 이런 대사로 바뀐 거고요?”

서 작가는 수연의 질문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수연씨 좀 대사가 이상해도 이해를 해주세요.”

기분 좋은 듯한 서 작가에 표정에 수연은 그냥 웃으면서 알았다고만 대답했다.

서 작가가 나가자 매니저는 수연에게 다소 의아하다는 어조로 감탄한다.

“허, 기가 막히네.. 그 사람은 이 일의 파급력을 전혀 모르는 거 아니야?”

매니저의 말에 수연은 약간 기분 좋은듯한 표정으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알 수도.. 혹은 모를 수도..

여배우들 사이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

나중에 시상식에서 협찬 들어오는 등급이 완전히 바뀔 만한 사건이니까.

게다가 신인 때는 더더욱 그렇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민수 씨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원래 선생님도 아무리 고급 브랜드에서 협찬이 들어와도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할 만한 옷이나 소품은 절대 거부하셨었거든.”

그렇게 말하는 수연은 다시 한번 대사를 살펴보더니 피식하고 웃는다.

“서 작가님도 진짜 웃기네 쿡쿡.. 이 대사 봐. 그래도 서 작가님 성의를 봐서.

제대로 소화를 해주긴 해야겠어.”

한편 지방에서 서울로 차로 이동 중인 이카루스의 맴버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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