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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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대기실로 들어온 수연은 잠시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후, 매니저가 피디에게 사과하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우선 시간 좀 벌었어. 이수연 너 무슨 일이야?”
매니저의 걱정스러운 말에 수연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글쎄, 대체 이건 무슨 일일까..”
수연이 자조석인 한마디가 있고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수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녀석, 누구야?”
매니저는 수연이 가리키는 저 녀석이 정민수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누구긴 누구야. 신인 배우 정민수지. 너도 들었잖아.
준성 역으로 신인 들어간다고. 어제 보기도 했고.”
매니저의 말에 수연은 마른 웃음을 짓더니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쟤가 어디 애냐고?”
매니저는 수연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윤 엔터 쪽 신인배우야.”
수연은 헛웃음을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윤 엔터.... 그런데 오빠는 나한테 말도 안 해줬고..”
수연의 말에 매니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연을 바라봤다.
“그래서? 알면 달라질 게 있어?”
매니저의 반문에 수연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창 밖의 풍경을 응시했다.
“그러네.. 없네.. 달라질게..”
잠시 그렇게 있던 수연은 쓸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빠는 알고 있었지? 내가 이번 드라마를 끝으로 연기를 그만할 생각이란 거..”
수연의 말에 매니저는 별 감정 없이 대답했다.
“그래. 아마 너를 지켜봤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코디. 스타일리스트 나 우리 팀 모두.
정 대표는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야.”
매니저의 말을 들은 수연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오빠는 이제 어쩔 셈이야?”
수연의 질문에 매니저는 잠시 말을 아꼈고 둘 사이에는 약간의 침묵이 지나갔다.
“그래.. 어쩔까. 우선 RD는 나가겠지. 자의든 타의든 말이야.
나도 정 다 떨어지긴 했으니까.
반골이라도 이 바닥에서 나름 능력은 인정받았으니 어디든지 갈 수 있겠지.
적어도 배우한테 병신 짓은 시키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네. 이번엔”
매니저의 대답을 들은 수연은 다소 격한 대답에 실소를 머금고는 조용히 고개를 뒤로 넘겨 의자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렇구나..”
잠시 생각을 하던 수연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빠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내가 역시 근성이 없는 것일까나…
그런데 저 아이가 나에게 눈으로 말하고 있네.
똑바로 하라고..
우스운 이야기지만 선생님이 날 야단칠 때마다 저런 눈으로 야단치곤 했거든.
말은 날카롭지만.. 눈빛은 전혀 달랐지.
그러고 보면 연기를 그렇게 잘하시는 분이 왜 그러셨나 몰라..
연기자가 당장 내일 무대를 떠나도 오늘의 연기는 혼신을 담아야 한다.
항상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이…
난 너무 못된 제자라.. 다 잊고 있었나 봐..
그런데 갑자기 들려오네.. 그때 내가 들은 말들이..
그러더니.. 갑자기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그냥 내 몸이 멈춰버렸어.
잠시 말을 멈춘 수연은 매니저를 다시 바라보며 말한다.
“오빠에게는 너무 미안해”
수연의 사과에 매니저는 슬며시 웃으며 대답한다.
“미안하기는.. 자기 배우한테 배역하나 제대로 못 갖다 주는 매니저인데.”
자조 섞인 매니저의 말에 수연은 매니저를 달래듯 그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그게 오빠 잘못인 것도 아니잖아. 내가 계약을 그 따위로 해서 그런 거지.
잠시 말을 멈춘 수연이 표정이 점점 비장해진다.
“내가 그냥 이렇게 물 타듯이 떠나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선배가 되어서 후배 앞길에 재 뿌리는 거 같아서 너무 부끄럽고..
나중에 내가 선생님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
그러니 마지막까지 한 번만 도와줘 오빠.”
수연의 말에 매니저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그래, 이래야 이수연답지. 이왕이면 제대로 보여줘.
정 대표한테 한 방 먹여 줬으면 좋겠어.
네가 배우 보는 눈이 해태 눈깔이라고 말이야.”
매니저의 말에 수연은 웃으며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두세 번 내리친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민수는 멍하니 수연의 대기실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허….참..’
당황하며 서 있는 민수에게 피디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너무 당황하지 말아요, 민수 씨.
수연씨가 갑자기 집중력이 떨어진 모양이에요.
배우들이 갑자기 집중이 떨어지면 조금 추스르는 시간을 가지곤 하잖아요.”
피디의 말에 민수는 작게 고맙다고 대답하고는 심호흡을 하고 수연을 기다렸다.
그리고 수연의 대기실 문이 열리고 수연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수연의 눈에는 독기와 오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민수는 수연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면서 수연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수연이 나오자 다시 촬영이 제게 되었다.
“씬 1-5 스타트”
직장을 잃은 미주는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절친 준성을 보러 온다.
그리고 미주는 어떻게든 준성에게 일자리를 부탁할 생각이었다.
준성이 기둥으로 있는 정엔터 그곳이 당장 미주가 취직하기로 마음먹은 다음 일자리였다.
자리에 앉아 준성을 기다리고 있는 미주 앞으로 준성이 걸어 들어온다.
‘달라.. 아까의 연기가 아니야…’
수연은 아까처럼 그냥 앉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까처럼 마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연의 표정에는 민수가 다가가고 있는 동안에도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긴장감 기대감 걱정 부끄러움. 갖가지 감정들이 수연의 얼굴 위에서 변화했다.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미주의 앞에 앉은 준성은 미주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 이미주 네가 이 시간에 왜 나를 찾아? 일하고 있을 시간 아니야?”
미주는 준성의 말에 배시시 웃으며 준성을 바라본다.
“헤.. 준성아…”
미주의 표정을 본 준성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미주에게 말한다.
“너.. 설마..”
“아이씨 내 잘못 아니었어. 고년이 우리 배우님이 입을 옷을 그냥 채갔었다고..”
미주의 한 마디에 사실관계가 바로 파악된 준성은 작게 한숨 쉬며 미주를 바라본다.
준성의 눈빛이 걱정과 안쓰러움으로 가득하다.
“하, 그래서 내가… 대체 한국에 왜 온 거야. 그 좋은 학교 때려 치우고..”
준성의 말에 미주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말한다.
“씽.. 내가 뭐 오고 싶어서 왔어..? 쫓겨서 왔지. 너도 친구가 그러는 거 아니야.
오죽하면 내가 그러고 왔을까.
맨날 핀잔만 주고.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게 어떻게 그러니?”
퉁퉁 부분 표정으로 투정 부리는 민주를 보며 준성은 한숨을 쉬지만 준성의 눈은 계속 따듯하게 미주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용건은 뭐야?”
짐짓 차가운 말에 미주가 움찔하지만,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배시시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저, 그러니까 말이야.. 음… 그러니까… 나 일자리 좀..”
“OK!”
오케이 사인이 나자마자 민수의 눈빛이 평소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후…”
한숨 쉬는 민수를 수연은 피식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자, 여기서 이제 정 대표 등장합니다.”
문창식이 저쪽에서 걸어오면서 다시 씬이 시작되었다.
“자, 씬 1-5-2 탁!”
슬라이트를 치는 소리와 동시에 민수는 연기에 몰입해 갔다.
“하.. 이미주…”
미주는 살짝 울상이던 표정을 급하게 방긋 웃는 얼굴로 바꾸었다.
“작은 소속사지만 분명 연예인이 생길 거고.
자, 날 봐. 코디로 써도 되고. 스타일리스트로 써도 되고.
자, 이런 작은 회사에 더더욱 어울리는 인재라 이 말씀.
자자, 기회는 지금 밖에 없으니 어서어서 나를 잡아요~!”
준성은 미주의 저런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인상을 쓰고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굳이 이런 작은 회사에 들어오시겠다.?”
준성의 말이 마치자마자 옆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거, 이 PD 듣는 사람 서운하게 자꾸 작은 회사, 작은 회사 할 거야?”
옆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정 대표를 보고는 준성은 바로 일어서서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주는 준성의 팔을 아래로 쭉쭉 내리며 누구냐는 표정을 지었고.
준성은 한숨을 쉬고 대표님이라고 넌지시 일러 주었다.
대표님이라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 미주는 성급히 일어나더니 90도로 2번 인사한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이미주라고 합니다.”
다소 과장된 미주의 행동에 피식 웃은 정 대표는 준성에게 누구냐고 눈짓했다.
“제, 친구예요. 코디인데 구직 중 이라네요.”
준성이 냉정한 말투로 소개하자 정 대표는 미주를 위아래로 한번 살펴보더니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성은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흘러가는 이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며 정 대표를 바라본다.
“좋아, 합격! 내일부터 출근해요!”
정 대표의 입이 떨어지자마자 미주는 아싸를 외치며 펄쩍 뛰어올랐고. 반면 준성을 할말을 잃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 대표를 바라보았다.
“OK, 좋아요!”
피디의 말을 들은 수연은 웃으며 자신의 차로 이동했고 민수와 창식은 바로 이어지는 씬을 찍기 위해 다음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겼다.
“좋네.. 민수씨. 강철이 형이 기대할 만해….”
부드럽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는 창식의 말에 민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형이 사람은 제법 좋은데 연기만 걸리면 사람이 변해요.
내가 예전에 “레전드” 찍을 때는 그 형 기세에 무서워서 접근도 못 했다니까.
설마… 민수 씨도 그런 건 아니겠지?”
창식의 말에 민수는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그런 사람이 여럿 있으면 무서워서 촬영하겠어요?
대표님은 특별한 배우. 그리고 전 그냥 흔한 배우.”
민수의 말에 창식은 피식 웃으며 스튜디오에 발을 내디뎠다.
“자 씬 1-5-3 GO”
대표실까지 따라온 준성은 정 대표를 잡고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대체 왜요? 저희가 지금 코디가 왜 따로 필요한데요?”
준성의 말에 정 대표는 웃으며 대답해 준다.
“하하. 이번에 최 준을 우리 소속사에서 받기로 했잖아. 준씨 전속 코디가 있어야지.”
정 대표의 말을 들은 준성의 표정이 단박에 구겨진다.
“아니, 그 트러블매이커를 소속사로 받으신다고요?”
준성의 말에 정 대표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준성을 타일렀다.
“이 PD, 그거 월권이야. 소속사 연예인 받는 건 내 재량이라고”
정 대표의 말에 준성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다리를 꼬며 말을 받았다.
“대표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입장은 아니죠.
지금 소속사 다 제가 곡 판돈으로 굴러가고 있는데”
준성이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냉정하게 말하자 정 대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씨, 준성아! 좀 봐줘. 어쩔 수 없단 말이야.
누나가 어 그 자식 받아주지 않으면 아버지한테 말해서 호적에서 파버린다더라.
그리고 조카 하나 못 받아주는 소속사를 대체 왜 하느냐고 그냥 소리를..”
거기까지 들은 준성은 대충의 흘러가는 이야기를 짐작하고는 한숨과 함께 대표실을 나선다.
“망할, 그놈의 인맥은….”
“OK!”
이번 씬을 다 찍은 피디는 우선 방금 까지 찍은 씬 들을 화면으로 확인하며 부족한 점이나 잘못된 점들을 체크 했다.
“어때? 괜찮은 거 같지?”
피디의 말에 카메라 감독이 같이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네. 그리고 배우들 믿고 조금 길게 롱 테이크로 간 것도 나쁘지 않았어. 촬영시간 조금 줄일 수 있겠는데.”
카메라 감독의 말에 피디는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3명이 찍는 건 그렇지.
그런데 아직 리온이나 진주는 어떨지 몰라.
짧게 짧게 가야 할지도 모르지.”
피디의 말에 카메라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 다음 씬이 진주 나오는 씬이니까 한번 찍어보고 생각해 보자고”
민수는 한쪽에서 다음 씬을 준비하고 있는 진주를 바라보았다.
다소 줄인 교복을 입고 화려한 갈색으로 염색한 진주의 모습은 자신의 배역 “진주”와 제법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서 작가가 상상한 “진주”는 평소에 통통 튀고 자유분방한 진주와 너무나 흡사한 배역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던 이 배역의 이름이 그냥 “진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딱 보니 저 진주는 지금 연기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기합 100%의 상태였다.
“하.. 저러면 될 것도 안 될 텐데…”
온몸에 힘이 빡 들어간 진주의 모습에 민수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