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6화 (3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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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한동안 말없이 민 여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입을 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 아니 대체.. 그게 무슨.. 결국 그렇게 5년 동안 바라보기만 했다고요?”

민수가 고구마를 100개는 씹어먹고 답답해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자 민 여사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진짜 설아 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인데 윤 배우나 대표님이나.

진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민 여사는 민수의 말에 크게 동감했지만 민수의 말을 일부분 수정해 주었다.

“정확히는 대표님. 태준이는 대표님을 설득할 능력이 없는 것이고.”

민 여사의 말에 고개를 저은 민수는 다시 민 여사에게 물었다.

“그럼 그동안 수연 선배하고 연락은 해보신 거예요?”

민수의 말에 민 여사가 고개를 젓자 민수는 정말 속이 터질 거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아니, 그렇게 배우가 소속사를 떠나갔는데 연락도 안 해 봤다고요?

와.. 집에 있던 똥개가 집을 나가도 찾아보러 다니는 게 사람 마음 아닌가요?”

민수가 말하자 민 여사는 민수에게 윤 대표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대표님은 수연이가 새로운 소속사에서라도 좋은 연기를 하기를 바랬어.

원래 바라는 것이 그것뿐인 분이지. 그래서 괜히 마음 흔들리거나 할까 봐 연락하지 못 한 거야.”

민수는 민 여사의 말에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을 이었다.

“기가 막히네요. 그 소속사가 지금 수연 선배에게 별로 좋은 기획사는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럼 윤 배우는요. 윤 배우는 수연 선배랑 연락하는 거예요?”

혹시나 하고 민 여사에게 민수가 물었지만, 대답은 역시 아니었다.

“사실 진짜 상처받은 건 태준이였어.

대표님이야 수연이가 연기만 잘해 주면 수연이를 자랑스럽게 보내 줄 수 있는 양반이었지.

하지만 태준이는 자신에게 말도 없이 소속사를 바꿔버린 수연이에게 정말 큰 배신감을 느꼈었거든.

사정을 알고 나서야 누그러들고 다시 데려오자고 말하긴 했지만 차마 연락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 모양이야.

어떤 이유였든지 수연이가 말도 없이 소속사를 옮긴 것 자체는 사실이었으니까.”

무언가 이상한 것으로 꼬여버린 듯한 이 상황을 민수는 무엇이라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수연이의 계약이 끝나. 며칠 남지 않았거든.”

민 여사의 말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은 민수는 다시 민 여사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 건가요? 그냥 마음에 걸리면 다시 계약 제안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 아닐까요?”

민수가 말하자 민 여사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그게 지금 상황이 간단하지가 않네. 대표님은 아직도 고민하고 계셔.

수연이가 윤 엔터가 다시 몸담는 것이 도움이 될지, 아니면 오히려 수연이의 문제를 더 크게 만들지.”

정확히 윤 대표의 고민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민수는 윤 대표의 외골수적인 신중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하하, 참 이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해탈한 듯한 민수의 표정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 민 대표는 민수에게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래, 우리 귀염둥이가 보기에 오늘 리딩에서 수연이가 어땠니?”

민 대표의 물음에 한숨부터 나오던 민수는 오늘 자신이 느낀 것을 조심스럽게 민 여사에게 전달했다.

“후… 이수연 선배. 의욕이 전혀 없는 모습이었어요.

사실 그것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민수의 말에 민 대표의 표정이 좋지 않게 물들었다.

“역시, 그러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한숨을 쉬는 민 여사를 바라보며 민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 어쨌든 제가 궁금한 점은 대충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여사님.

수연 선배에 관한 건 차차 더 알아보고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것은 우선 대표님 의중일 테니까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민수의 모습을 보며 민 여사는 그래도 웃으며 배웅해 주었다.

“그래… 귀염둥이 첫 데뷔작인데. 연기 잘하고. 수연이 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

자신의 방에 돌아온 민수는 지금의 상황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더럽게 꼬인 느낌이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우선 당장 내일 촬영부터가 문제네. 와 무슨 드라마 하나 제대로 찍기가 이렇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거 같은 불안함에 민수는 기운이 빠졌지만, 내일 촬영을 위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리딩을 마치고 돌아가는 송포유의 중심배우 3인은 서로 자신의 숙소로 향하며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헤, 민수선배님은 그래도 레이디밤을 알고 계셨어요. 우리 팀도 가능성이 있겠죠?

이번에 반드시 잘해 내서 우리 레이디밤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기억시켜야 하는데…”

의지를 다지고 있는 진주가 있는 가 하면…

“어땠어! 오늘? 배우들은 괜찮은 거 같아?”

“글쎄.. 언제나 처럼 다 그렇지 않을 까요. 물 흐르듯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거…

아무 생각 없는 눈망울로 하렴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매니저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이수연이 있었고..

그리고 그 시간 리온은

“와, 미치겠네… 잘하네…진짜..”

리딩을 마친 리온은 자신의 밴에서 끊임없이 투덜대고 있었다.

그런 리온의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본 매니저는 어쩔 수 없이 리온을 달래기 위하여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구시렁대? 야. 어차피 대본리딩이 그냥 그런 거지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잖아.”

매니저의 말에도 리온은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그냥 나지막하게 대사만 치는데도 대사를 가지고 노는데.. 아 나랑은 수준이 약간 다르다고.

와, 이거 곤란한데.

이러다가는 그냥 촬영 중에 개 무시 당하겠는데 그래도 주연인데 서브남주한테 개 무시 당하면서 촬영할 순 없잖아.

안되겠다.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겠어.”

매니저는 리온의 모습에 그냥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고 리온은 소속사로 길을 돌려 소속사에 도착하자마자 대표실로 직행했다.

다음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민수는 바로 촬영장으로 출발했다.

이수연의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민수는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민수는 도착하자마자 리온이 늦어진다는 소식을 전달하는 피디를 보며 상황을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했다.

리온이 촬영 전부터 미리 잡혀 있던 지방행사에 내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리온의 계약서에는 탑 아이돌답게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중요한 공연이나 행사의 경우 사전에 알리고 촬영시간을 늦출 수 있다는 특약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은 민수도 알고 있는 조항이었는데 지금보다 더 미래에는 아이돌들이 더 많이 배우로 진출하고 있었고 혹시나 정말 중요한 자리가 있는 경우를 대비하여 자연스럽게 추가하고 있던 조항이었다.

하지만 민수가 당황하고 있는 것은 이 조항이 적용되는 경우는 정말 드문 경우에 불과했고 소속사들도 가능하면 아이돌들이 연기에 집중 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촬영 일정 근처에는 일체의 스케줄을 잡지 않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온의 그룹인 이카루스는 리온이 드라마 촬영을 마친 이후에 바로 컴백이 준비되고 있어서 지금은 한창 연습할 시기이니 더더욱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어쨌든 상황은 벌어진 것이고 민수는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꺼낸 피디의 의도가 궁금했다.

“아, 그렇게 된 것이군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피디가 미안해하며 꺼내는 말의 요지는 이러했다.

결국 리온이 없는 부분을 먼저 촬영하고 나중에 리온을 기다리고 촬영해야 하는데 촬영순서를 조금 조정해서 여배우인 수연과 원로배우인 문창식의 부분을 먼저 촬영하고 민수의 부분을 가장 나중에 촬영해야 할 것 같다는 사과였다.

민수는 어찌 보면 당연한 관례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고 자신의 연기를 준비했다.

리온이 없으니 예상보다 좀 더 빠르게 촬영이 진행되리라.

민수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피디가 직접 찾아와 소식을 전해 주는 것으로 자신에 대한 대우는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동원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사실 피디보다는 리온을 향한 성토였지만 말이다.

“와, 기가 막히네요. 아무리 아이돌이라고 해도. 무슨 어떤 행사를 하러 가길래 촬영 일정을 미뤄버리는 건지… 이거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배우님 제가 대표님이나 다른 분께 연락을 드려서 여쭈어볼까요?”

당장이라도 윤 대표님에게 일러바칠 거 같은 분위기의 동원을 보며 민수는 그냥 피식 웃고 넘어갔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기다리라면 좀 기다려 주면 되는 거죠.”

말을 마친 민수는 대기실을 나서면서 크게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리온이 없기 때문에 가장 먼저 촬영하게 된 씬은 미주 역을 맡은 수연의 씬이었다.

민수는 가만히 떨어져서 연기하고 있는 수연을 바라보았다.

짧은 단발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있는 수연의 얼굴은 전혀 화장하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품이 넉넉한 바지에 개성 있는 면티에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전혀 꾸미지 않았다고 온갖 티를 다 낸 모습이었다.

“하.. 진짜 코디랑 스타일리스트의 승리네. 저렇게 안 꾸민 티를 잔뜩 내면서 꾸미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이 씬은 미주의 등장 부분으로 미주가 자신의 일하던 전 직장에서 강제 퇴사하는 내용이었다.

민수는 이 씬에 대하여 미주의 평소 성격을 한 장면으로 잘 드러내는 씬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미주는 고개를 숙이며 코디팀 팀장에게 혼나고 있었다.

“아니, 미주 씨.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이미정 배우님 코디랑 한바탕했다고요? 정말 제정신이에요?”

팀장의 비난에 미주는 최대한 미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옷 진짜 우리 배우님 앞으로 PPL 들어온 의상이었단 말이에요.

그 옷 당장 바로 입고 연기 들어가실 옷이었는데..”

미주의 말에 팀장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다.

“그렇다고 이미정 배우님 코디한테 그렇게 소리치시면 나중에 이미정 배우님이 우리 배우님 안 좋게 생각하시고 까기 시작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팀장의 말이 격해지자 미주는 점점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지만..”

팀장의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내일 당장 이미정 배우님이 화가 나서 말하기 시작하면 우리 배우님은 아직 신인이라 그 자리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적어도 무엇이 배우님을 진짜 위하는 건지부터 생각했어야지. 어떻게 허구한 날 사고만 칠 수가 있어요.

도저히 안 되겠어요. 미주 씨 당장 사표 써요!”

팀장의 해고선언에 미주는 울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사정한다.

“팀장님…한번만 ..봐주세요”

애처로운 미주의 말에도 팀장은 코웃음만 치고는 돌아서서 나간다.

“컷”

민수는 그 장면을 처음부터 바라본 후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표정이나 표현 자체가 죽어있네. 그럭저럭 컷할 수준의 연기밖에 안돼..

차라리 소리 지르는 단역의 연기가 더 눈에 들어올 정도야.

하. 예전에 내가 연기 연습할 때 본 수연 선배의 연기는 저렇지 않았었는데..’

그리고 이제 다음 장면은 민수와 수연이 연기하는 장면이었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오늘 자신의 최고의 연기를 할 것이라고 단단히 마음먹은 민수는 천천히 세트장으로 들어섰다.

직장을 잃은 미주는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절친 준성을 보러 온다.

그리고 미주는 어떻게든 준성에게 일자리를 부탁할 생각이었다.

준성이 기둥으로 있는 정엔터 그곳이 당장 미주가 취직하기로 마음먹은 다음 일자리였다.

자리에 앉아 준성을 기다리고 있는 미주 앞으로 준성이 걸어 들어온다.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미주의 앞에 앉은 준성은 미주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 이미주 네가 이 시간에 왜 나를 찾아? 일하고 있을 시간 아니야?”

미주는 준성의 말에 배시시 웃으며 준성을 바라본다.

“헤.. 준성아…”

미주의 표정을 본 준성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미주에게 말한다.

“너.. 설마..”

“아이씨 내 잘못 아니었어. 고년이 우리 배우님이 입을 옷을 그냥 채갔었다고..”

미주의 한 마디에 사실관계가 바로 파악된 준성은 작게 한숨 쉬며 미주를 바라본다.

준성의 눈빛이 걱정과 안쓰러움으로 가득하다.

민수가 따듯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수연은 잠시 한순간 동안 지금의 상황을 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수연은 지금 민수의 모습에서 자신이 다시는 볼 자신이 없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을 느꼈다.

“아…”

자신이 한동안 잊어 왔던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바람. 자신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순간 수연의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NG”

바로 NG 사인이 나고 수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대기실로 달려갔다.

“이수연 씨!”

피디가 급하게 외쳤으나 수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대기실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바로 이수연의 대기실에서 매니저가 튀어나와 피디에게 사과했다.

“아이고, 피디님 지금 수연씨가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전해 달라 내요. 부탁드린다고.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는 매니저의 모습에 피디는 허탈한 한숨을 쉬고는 잠시 휴식을 지시했다.

그리고 민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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