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5화 (3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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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긴장된 표정의 민수는 대본 리딩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피디님과 작가님에게 인사를 하고는 가장 경력이 오래된 배우인 문창식 선배님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었다.

“아, 니가 정민수구나. 반갑다. 연기만 잘해줘. 하하하”

호쾌하게 웃는 문창식 선배님은 조연만 주로 맞는 배우였지만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였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민수의 배역인 이준성이 몸담은 소속사의 대표인 정 대표를 연기하게 되었다.

윤강철 대표님을 안다며 윤 대표에게 싹수 있는 놈이란 소리를 들었다는 문창식 선배는 민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선전을 기원해 주었다.

다음으로 인사를 하러 찾아간 배우는 주연 배우 이수연이었다.

이수연은 인사하는 민수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그냥 살짝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와, 이수연 선배 전혀 열의가 느껴지지 않네 후..’

이수연의 모습에 잠시 고개를 흔든 민수는 바로 리온을 찾아 갔다.

리온은 민수를 발견하고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최준 역할을 맡은 리온이라고 합니다.”

리온의 손을 잡은 민수는 바로 자신을 소개했고 민수의 소개를 다 들은 리온은 살짝 조소를 보이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허.. 이건 또 뭐지.. ‘

민수는 리온에게서 느껴지는 약간의 적대감과 호승심 그리고 경계심을 느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왜 적개심을 가지는지는 모르겠다만.. 아? 설마… 그 기사를 보고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나..

그렇다기에는 적개심이 너무 적은 거 같은데…’

민수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민수를 찾아 온 것은 제법 많은 씬을 같이 촬영할 레이디밤의 리니아. 이 진주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선배들에게 인사하고 온 듯한 진주의 말에 민수는 그냥 작게 웃음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

“선배라는 말을 듣기에는 경력이 일천 하지만 어쨌든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진주 씨.”

부드러운 민수의 말에 진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앗, 저를 아세요?”

놀라는 진주를 보며 민수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잘은 모르지만 레이디밤이라는 그룹에서 리니아 라는 활동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연습 기간은 짧지만, 연기도 제법 잘한다고 들었고요”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감격을 느낀 진주는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는 민수와 함께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헤… 절 알고 계신 분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작게 중얼거리는 진주의 모습을 본 민수는 자신이 진주를 아는 것이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어 의문을 느꼈지만 대본리딩이 시작할 시간이 다 되어서 서둘러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파란의 대본 리딩 시간이 폭풍같이 지나갔다.

무성의한 수연과 왜인지 의욕이 넘쳐 보이는 리온을 보며 민수는 가능하면 얌전하게 대본 리딩에 임하였다.

자신이 대사할 때 수연이 왠지 자신을 흘끔 보는 기분이 들었으나 수연의 태도에 맥이 좀 빠진 민수는 그 이유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민수도 대본리딩 자체는 처음인 상황이라 자신의 대사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렇게 맥 빠지는 상대가 있으면 연기력이 반감 할 수밖에 없는 민수의 입장에서는 집중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대본리딩을 마치고 다른 배우들에게 인사한 민수는 자신의 밴에 올라섰다.

“후… 이거 왠지 쉽지 않겠는데..”

민수의 한숨을 들은 동원은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차를 몰아 소속사로 이동했다.

자신의 방에 도착해 곰곰이 오늘의 대본 리딩을 생각한 민수는 고민에 휩싸였다.

“이거 이수연 선배가 실전에서도 저렇게 연기하면 진짜.

이 드라마 그냥 답이 안 나오게 될지도..”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저런 생태까지 이른 것은 몰랐던 민수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이거 이대로 있을 수가 없겠어.. 그런데 무슨 이유를 알아야 대처를 하든지 포기를 하든지 하지.. 우선 수연선배에 대하여 좀 알아야겠어. 누가 좋을까…”

윤태준은 탈락. 그냥 말만 꺼내도 말을 돌리는 태준은 전혀 민수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설아도 탈락.

설아는 저번에 대화했듯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윤 대표도 탈락. 이 상황에 가장 큰 키를 들고 있을 듯한 윤 대표지만 민수의 감은 윤 대표에게서 전혀 답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수연 선배의 일을 가장 잘 알만하고 가장 객관적으로 말해 줄 수 있을 만한 사람…”

민수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바로 민 여사였다.

“하지만 민 여사님께 뜬금없이 찾아가서 수연 선배에 관하여 묻는다고?”

민수는 민 여사님을 찾아가는 것에 조금 회의를 느꼈다.

그렇게 민수의 생각이 길어 질 때쯤 민수의 전화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민수의 상념을 깨웠다.

“어!?”

민수는 전화기에 쓰여진 발신자의 표시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민 여사님]

“와… 민 여사님 진짜.. 이분 “

탄성을 뱉으며 전화를 받은 민수의 귓가로 민 여사의 나긋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 귀염둥이. 오늘 대본리딩 잘 갔다 왔니? 잠깐 내려와서 잠시 놀다 가지 않으렴~?]

“네, 여사님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민 여사의 요청에 민수는 아직 신이 자신을 버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며 서둘러 4층으로 이동했다.

아리 재단 4층은 4개의 사무실과 이사장실이 있는 층이었다.

4개의 사무실은 문을 굳게 닫고 있어서 무슨 일을 하는지 밖에서는 알 수 없었다.

평소에 아리 재단에 대한 의문이 있던 민수는 무슨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계속 기웃거렸지만

문을 열지 않는 한 내부를 살펴볼 방법은 전혀 없었다.

딱딱한 느낌을 주는 복도를 따라 쭉 올라가자 큰 글씨로 [이사장실]이라는 표시가 있었고 민수는 한숨을 들이쉬고 이사장실의 문을 크게 노크하고는 이사장실 내부로 발을 내디뎠다.

이사장실에는 민 여사 혼자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머~ 귀염둥이 왔니. 저쪽에 앉으렴”

민수가 민 여사가 가리키는 방향에 자리 잡자 민 여사는 가볍게 홍차 한잔을 타서 민수에게 내밀었다.

“줄게 이것밖에 없구나. 이거라도 마시렴”

민수에 눈에 비친 이사장실은 별다른 장식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단아한 느낌을 주었다.

벽면의 색도 밝은 편이었고 하나 있는 데스크는 은은한 나무색으로 단단한 원목으로 보였다.

그리고 데스크에 음각된 기하학적인 무늬도 제법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 밖에는 민수가 지금 앉은 소파와 차를 놓은 테이블뿐이었는데 테이블에 새겨진 문양도 데스크의 문양과 같은 것으로 보였다.

또한 테이블 자체도 통짜 원목을 잘라 만든 듯 촉감이 좋고 은은한 향까지 느껴졌다.

사무실 자체가 민 여사의 고상한 느낌과 전체적으로 너무나 잘 어울렸다.

“네, 감사합니다. 여사님”

민수가 차를 받아 한 모금을 삼키자 민 여사는 웃으며 말을 꺼냈다.

“호호, 오늘 대본 리딩을 갔다지. 가서 수연이 그 아이도 보고 왔니?”

민수는 민 여사가 대번에 이수연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마시던 차를 뿜을 뻔한 위기를 겨우 넘기며 조심스레 말을 받았다.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조금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민수의 말에 민 여사는 방긋 웃으며 민수에게 말하였다.

“그렇구나. 나도 궁금한 점이 있었으니 우리 서로에 궁금증을 풀어 주도록 해볼까?”

고개를 끄덕인 민수는 민 여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체 수연 선배는 우리 소속사와 무슨 관계입니까? 윤배우와 대표님이 수연 선배를 대하는 태도는 왜 그런 것이고요?”

민수의 질문을 다 들은 민 여사는 작게 한숨 쉬고는 천천히 대답했다.

“후.. 수연이는 우리 윤 엔터 두 남자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야.

우선 정확한 사실관계만 이야기 해 볼게.

수연이는 9년 전 처음 대표님을 만났어.

고등학생의 몸으로 서울로 올라와 연기자를 지망하던 수연이를 촬영장에서 처음 본 대표님은 단박에 그 재능에 반했고 그때 처음으로 윤 엔터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

윤 대표가 연기자 생활을 사실상 은퇴하고 수연이와 태준이를 대리고 엔터를 차리고 그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지.

진성 오빠랑 해숙 언니 그리고 환이가 윤 엔터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단다.

그냥 소소하게 배우 한둘을 키우고 싶었던 우리 윤 대표는 일이 커져서 당황했지만 뭐 어쩌겠니? 일은 다 벌어졌는데.

할 수 없이 아리 재단 건물 위쪽 전체를 소속사 건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서울에 막상 살 곳이 없는 수연이를 위하여 윤 대표가 옥상을 개조해서 집으로 만들었단다.

바로 민수 네가 지금 사는 그 집을 말이야.”

말을 멈춘 민 여사는 가볍게 차로 입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수연이랑 태준이는 대표님께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하나부터 열까지. 대표님에게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수연이랑 태준이는 점점 실력이 일취월장했어.

그리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은 점점 친해졌단다.

수연이는 태준이 설아랑 정말 친남매 이상으로 지냈었어.

태준이도 수연이를 친 누나처럼 따랐고 설아도 수연이는 그냥 언니 자신의 언니라고 생각하고 따랐었단다.

사실 나에게도 윤 대표에게도 수연이는 그냥 새로 생긴 딸이었어.

밝고 긍정적인 모습에 우리는 항상 웃음 지을 수 있었지.

그래 어쩌면 지금의 혜민이 같은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그래, 분명 설아 씨도 옥상 방이 자기의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도망쳤던 피난처라고 했었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태준이와 수연이가 데뷔하게 되었지.”

“하이스쿨 시즌2 맞죠?”

민수의 대답에 민 여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어머, 알고 있구나. 그래 맞아. 하이스쿨 시즌2로 데뷔한 수연이와 태준이는 단박에 하이틴 스타로 자리 잡게 되었단다.

그렇게 순조롭게만 흘러갔으면 정말 좋았었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

그 당시를 생각하는지 한숨을 작게 쉰 민 여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수연이의 아버지가 잘못된 빚보증으로 큰 빚을 지게 되었단다. 설상가상으로 건강하던 아버지까지 병원에 몸져눕게 되었지.

그때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차용증을 들고 나타난 RD 엔터 사람들과 수연이는 계약하게 되었단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기획사의 계약은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니? 그렇게 수연이는 RD엔터의 배우가 되었지.

여기까지가 단순히 사실을 열거한 것이고….”

말을 마친 민 여사는 민수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뒷이야기.

수연이가 그렇게 떠나가자 초반에는 태준이도 윤 대표도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돈 때문에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배신하고 떠나갔으니 말이야.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한 윤 대표는 수연이에 대하여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지.

그리고 그 당시 수연의 상황을 그때 알게 된 거야.

윤 대표도 태준이도 기가 막혔지.

같이 살던 가족 같은 사람이 그런 위기에 처해 있었다니.

그리고는 그때부터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했어.

윤 대표는 자신이 수연이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했지.

자신이 조금 더 자상했더라면 그 아이가 나에게 자신의 문제를 상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태준이는 자신이 더 믿음직스러웠으면 자신에게 수연이가 자신에게 의지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후회하면서 시간이 지나갔어.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지.

그래도 RD에서 배우 생활을 하면서 활동하는 수연이를 보며 두 남자는 마음에 작은 위안을 했어.

훌륭한 배우가 될 수만 있으면 그곳이 어디면 어떠하냐고 생각한 것이지.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

RD에서 무슨 생각인지 수연이 이게 단편적인 배역만을 엮어 주기 시작한 거야.

배역이 고정되면 배우가 죽는다. 이건 대표님의 대표적인 연기 철학이지.

역시 대표님의 예상대로 수연이의 연기가 점점 죽기 시작했어.

태준이는 무조건 저딴 곳에 두지 말고 다시 강제로라도 데려오자고 했지. 자신이 어떻게든 설득하겠다고.

계약금이 얼마였던 그깟 돈 몇 푼 던져주면 다시 데려올 수 있지 않겠냐고 말이야.

하지만 대표님의 생각은 조금 달랐어.

배우가 소속사와 계약을 파기한다는 것이 배우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게 태준이랑 대표님이 갈등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렀어.

그렇게 결국 수연이가 점점 안 보이기 시작했어.

최근도 일 년 정도는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지?

그리고 수연의 문제는 아직도 두 부자 사이에서는 진행 중인 문제야.”

민 여사의 말을 다 들은 민수는 어이없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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