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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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로부터 다시 며칠이 지났다.
“오늘은 된장 찌개네.. 웃차웃차”
식당으로 들어서 기분 좋게 음식을 받아 설아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하는 민수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설아씨. 윤엔터에 직원들이 이렇게 많았어요?”
왠지 하루가 다르게 점심시간에 식사하고 있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리가요. 아리 재단 분들이 조금씩 식사하러 오시고 계신 거예요. 할머니 음식이 맛깔 난다고 입소문이 나서…”
밥을 크게 한 입 떠서 야무지게 먹던 설아는 민수의 말에 고개를 저의며 대답했다.
“아니.. 무슨 동네 맛집도 아니고 입소문으로 손님이 늘고 있나..”
씹던 밥을 꿀꺽 삼킨 설아는 침착하게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손으로 주방 쪽을 기리켰다.
밥을 뜨는 한 남자가 주방에 불평하고 있었다.
“할머님, 된장찌개 말고 김치찌개요 같은 거 얼큰한 거 해주셨어야죠.”
사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주방에서 크게 소리가 들려온다.
“썩을..! 주는 데로 쳐먹어 이눔아! “
할머니가 크게 소리치자 남자는 키득 하고 웃으며 음식을 가지고 재빨리 이동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수가 기가 막힌 표정을 짓자 설아가 작게 보태어 설명했다.
“그, 뭔가 정감 있고 좋다고 할머님이 엄청 인기에요.”
설명을 들은 민수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무슨 욕쟁이 할머님같이 생각하는 건가..’
민수가 식사를 다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잠시 더 이상 직원들이 밥을 먹으러 오지 없는 틈에 할머님이 나와서 민수에게 다가왔다.
“어때요? 민수총각. 음식이 입에 맞아요.?”
부드러운 할머님의 말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어르신 정말 맛있네요.”
“참 다행이네요”
민수의 말에 할머님이 푸근한 표정으로 대답할 때 옆에 있던 설아가 할머님에게 물었다.
“할머니, 와.. 찌개 완전 맛있어요. 이거 장을 막 직접 담그시거나. 시골에서 가져오신 그런 장인가요?”
할머님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묻는 설아를 조금 어이없게 바라보시며 대답했다.
“아니, 서울 한복판에 장 담글 곳이 어디 있어? 쯧쯧. 아직 어린 처자가 이리 세상 사정을 몰라서야. 그거 그냥 XX된장이야 마트에서 산”
된장에 대하여 잘못 물었다가 바로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가 된 설아를 보며 할머님의 독설은 설아도 피할 수 없구나 싶은 민수는 할머님 앞에서는 말을 좀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할머님의 말에 설아의 눈에서 지진이 일어난다.
“어.. 그거 우리집에서도 쓰는 된장인데.. 이상하다.. 엄마가 해주시던 건 맛이 전혀 달랐는데..”
당황하는 설아를 보며 민수는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아니, 당연히 다르겠지. 된장이 같다고 된장찌개 맛이 같겠니?
민 여사님이 음식 솜씨가 그리 대단하시진 않은 모양이다.
윤 대표님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신 건 한 끼라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욕망 아니었을까?’
민수가 그리 잡생각을 할 때 할머님이 말을 이으셨다.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나도 이렇게 번듯이 일하고 있고. 준수도 당장 그 아래에 아리 재단에서 써준다고 해서 일하고 있고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할머님의 말에 민수는 작게 웃었다.
“저야 그냥 잠시 마음 내키는 대로 기분 낸 거뿐이고, 진짜 감사할 분은 대표님하고 여사님이죠.”
민수는 민 여사님이 준수를 아리 재단에서 쓰고 있다는 소리를 준수가 찾아온 그다음 날 알게 되었다.
이제 파트타임이라도 일하게 되었으니 매달 조금씩 상환하겠다는 준수의 말에 민수는 그냥 거절하지 않고 그러라고 했었다.
사람이 빚이 있고 갚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나태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평소 민수의 지론이었다.
민수는 가족이 있는 준수가 나태해지지 않길 바랐고 만약 2억2천 만원을 다 갚는다면 그 돈을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대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한 달 동안 별다른 특별한 일은 없었다. 외부적으로는 태준이 열연하고 있는 “별에서 온 당신”이 첫 방영을 시작했다.
첫 방은 민수와 설아가 민수의 방에서 같이 시청했다.
태준은 영광스러운 첫 방을 동료 배우들과 같이 시청한다고 오지 못했다.
민수가 걱정했지만, 여주 차미애 선배님의 연기는 느낌 있고 산뜻했다.
민수가 예전에 태준에게 주연이 원래 차미애 선배였냐고 넌지시 물었었는데 태준이 말하길 원래 정지연 선배로 진행되는 중이었는데 정지연 선배가 실수인지 사고인지 느닷없이 임신하게 되셨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배우를 물색하다가 차미애 선배가 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민수는 그런 식으로 미래의 한 부분이 바뀔 수도 있구나 하며 탄식했었다.
“차미애 선배님도 배역에 어울리긴 하네.”
민수가 보았던 정지연 선배의 연기와는 사뭇 다르지만 차미애 선배의 연기도 적당히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와.. 저 역할은 설아씨가 했어도 잘 어울렸을 거 같네요”
약간은 푼수 같은 차미애 선배의 연기를 보며 민수가 설아에게 말하자 설아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뭐에요? 오빠. 제가 저렇게 푼수 같다는 거예요?”
민수는 자기 생각을 정확히 간파한 설아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며 말을 돌렸다.
“아니, 뭐 그냥 저 역할이 딱 인기 탑의 여배우잖아요. 그게 설아씨 같다. 뭐 그런 거죠.”
민수의 말에도 설아는 표정이 풀어지지 않았다.
“저에게는 저런 푼수데기 같은 역할보다는 좀 더 우아하고. 고상한 역할이 어울리거든요”
어림없는 소리를 하는 설아를 보며 민수는 조용히 혀를 차며 드라마 감상에 집중했다.
전생과 같이 “별에서 온 당신”은 첫방부터 15%가 넘어서는 좋은 출발을 시작했다.
아마 이대로 순항하면 좋은 결실이 있으리라.
“힐링멘토”에서는 조언왕 민수의 입지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혜민이 치료로 많은 회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 민수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있었다.
그 중 “조윤희” 라는 분이 있었다.
이분은 민수의 행동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며 감사해하시던 분이었는데 민수는 이분과 그 뒤로도 계속 필담을 나누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신다는 이분이 예전에 민수와 상담했던 그 여학생을 고용해서 가르치고 있다는 말에 민수 역시 큰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른 시간 드디어 준수의 동생 혜민이가 완벽하게 정상이 된 모습으로 민수 앞에 인사하러 왔다.
“오빠 고맙습니다”
예전에 보던 파리한 안색과 고통을 억지로 참고 있던 그 소녀가 아니라 발그레하고 혈색 좋은 통통한 두 뺨에 생기 넘치는 표정 그리고 활짝 웃은 얼굴의 귀여운 소녀.
민수는 혜민을 보자마자 가슴 한구석에서 묘하게 격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기를 하면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그런 감정이었다.
‘이건.. 어떤 감정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할 순 없지만.. 아마도 가장 가까운 것은.. 부정.. 부정이 아닐까?’
그렇게 혜민은 등장부터 민수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첫발을 내디딘 혜민은 그날부터 아리 재단 건물을 제집처럼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고 할머니도 오빠도 다 이곳에 있으니 혜민의 입장에서는 이곳이 더 집 같으리라.
다행히 사람들은 귀엽게 통통거리며 여기저기 들쑤시는 혜민이의 모습을 활력소라고 생각하는지 모두 혜민에게 친절했다.
혜민이는 식당에서 이지영 조리사랑 놀거나 아니면 헬스장에서 설아랑 자주 놀았는데 설아는 아예 혜민이의 재활 운동 관리자를 자청했다.
적당히 재미있게 몸을 움직여서 활력을 돋구고 건강한 몸을 만들 거라나 머라나.
민수는 혜민이가 설아의 다소 맹목적인 막무가내 정신은 배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윤 엔터 뿐만 아니라 아리 재단 내에까지 활보하는 혜민의 모습을 보며 민수는 적지 않게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기에 그때부터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윤 엔터야 그렇다 치고 저 아리 재단에 어린아이가 뛰어 다니는데 이거 괜찮은 건가?”
오늘도 민수의 머리 속에 아리 재단에 대한 의문이 한 가지 더 쌓이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별에서 온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별에서 온 당신”이 32.6%의 정점을 찍고 비슷한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을 때쯤 민수의 연기력에 확신을 가지게 된 윤 대표는 결단을 내렸다.
민수의 앞에 윤 대표는 여러 개의 대본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대표님?”
민수가 의아해하며 묻자 윤 대표는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다음 분기쯤에 시작하기 위하여 사전 작업 중인 드라마 대본이다.
우선 드라마부터 하나 찍어보자. 배역이 확정된 것은 배우 이름이 옆에 쓰여 있고 아직도 구하는 배역은 공란으로 처리해 놓았다.
어떤 배역이라도 좋으니 하고 싶은 배역을 선택해라.”
윤 대표의 말에 민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그 말씀은… “
“그래 정 배우 잘 해주었어. 내가 생각한 만큼의 수준에 도달했구나. 이제 날개를 달고 날 일만 남았다.”
윤 대표의 말에 민수는 감개무량한 기분을 느끼며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할 말은 많았지만 민수는 말을 아꼈다. 그 뒤 이야기는 정말 좋은 배우가 된 후에 다시 하리라 마음먹은 민수는 조용히 대본을 챙겼다.
“보면 알겠지만 조금 급한 배역도 있고 약간 여유가 있는 배역도 있으니깐 신중하게 선택하되 가능하면 빠르게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윤 대표의 말에 민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대표님 그러겠습니다.”
민수가 대표실을 나서자 윤 대표는 민수가 어떤 배역을 선택할지 기대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방으로 돌아온 민수는 받은 대본들을 살펴보았다.
다음 분기쯤에 방영한다는 드라마들의 제목을 보니 특별히 대성공을 거둔 작품도 없었고 완전히 망한 작품도 없었다.
민수는 선택의 폭이 좀 넓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대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경력도 없는 내가 처음부터 주연을 할 수는 없을 거고.. 아무리 대표님이 남의 배역이라도 오디션 보게 해준다 했어도 그건 너무 민폐지.
선택된 배우는 선택 될 이유가 있어서 선택되었을 테니까..”
대본들 중에서 주연배우가 너무 유명한 작품은 제외했다.
첫 작품이니만큼 다른 배우 덕을 보았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와, 이게 이성진 배우가 출연했었구나. 이성진 배우 몸값 생각하면 별 이득 못 봤겠는데.”
그렇게 하나둘씩 대본을 살펴보던 민수는 재미있는 대본을 하나 발견했다.
“어? 이거 봐라.. 주연에 리온 여주 미확정 서브 남 미확정 게다가 비중 있는 조연에 리니아? 하하 메인 캐릭터 4명 중 2명이 아이돌이라고?”
대본을 첫 장을 편 민수는 캐스팅 상황을 보고 크게 웃었다.
“와, 재미있네. 이거 난 대충 아니까 상관없지만 웬만한 배우들은 무서워서 들어가겠나.”
보통 배우들은 아이돌 출신이나 현역 아이돌과 연기하는 것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
그건 민수도 일순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다. 만약 그 아이돌이 연기를 못한다면 말이다.
아직 연기자 데뷔를 하지 못한 리온과 리니아 였지만 민수는 둘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이카루스의 리온은 민수가 맡았던 “서쪽 해변”의 윤 진을 그럭저럭 이지만 준수하게 연기했던 배우였고 후에 개인 활동으로 연기를 여러 번 하게 되는 전형적인 연기돌 트리를 타게 되는 배우였다.
민수가 알기에 리온은 애초에 연기자 지망생이었다가 노래와 춤에까지 재능이 있어서 아이돌로 먼저 데뷔하게 된 케이스였고 아이돌로 명성을 얻으면 연기 활동을 지원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한 경우였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춤과 노래만 연습하던 아이돌들과는 입장이 좀 달랐고 연기도 제법 준수했다.
그리고 리니아.
레이디밤(Lady Bomb) 이라는 그룹으로 올해 데뷔한 리니아는 경우가 좀 다른데 레이디밤이 아예 망하게 되면서 조연으로만 얼굴을 비추던 리니아는 아예 연기자로 전향하게 된 케이스였다.
레이디밤이 아직 망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완전한 전향은 아닐 테고 얼굴알리기 명목으로 출연하게 된 거 같은데 떡하니 케스팅보드에 확정된 것을 보니 오디션을 아주 잘 보았나 보다.
“이 아이도 진정한 재능충 이었지.”
민수는 대본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