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4화 (2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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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지낼 곳도 마땅치 않다는 형우의 말에 민수는 대뜸 형우를 이끌고 자신이 전에 살던 원룸으로 안내했다.

“붉은 범”의 위치가 그곳과 사뭇 가까우니 아마 형우가 지내기에 좋은 곳이 되어 주리라.

형우를 데리고 이모님께 인사드린 후 형우가 잠시 자신의 방에 묵어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는데 주인 이모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당분간 여기서 살아. 나중에 따로 나가 살고 싶으면 새로 방을 구하고. 내일 당장 “붉은 범”으로 갈 거 아니야?”

민수의 말에 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야지. 오래 끌 일도 아니니까..”

그리고 떠나가는 민수의 모습을 본 형우는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잘 들어가쇼. 형 요즘 진짜 좋아 보이네. 표정이 아주 좋아졌어.

예전에는 거의 죽지 못해 사는 표정이었는데.

형이 좋아 보여서 나도 기분이 좋네.

나중에 좀 떴다고 모른 척하는 건 아니겠지?”

민수는 가볍게 형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좋네. 너도 잘 지내라 인마. 나중에 연락해.”

그렇게 형우와 해어진 민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이 새롭게 자리잡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소속사에 도착한 민수는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춘섭 어르신을 발견했다.

뭐라고 인사를 하고 가려고 했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깊이 빠진듯한 춘섭의 모습에 말을 걸기 무안해서 슬슬 피해 조심스레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이상하네. 언제나 활기찬 어르신이었는데…”

춘섭의 우울함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던 민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옥상 방으로 향했다.

5층을 거쳐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려 하던 민수는 5층 연습실에서 의외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울고 있는 설아와 그런 설아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태준의 모습이었다.

화가 난 듯한 태준의 모습을 보니 왠지 당장 들어가 우선 둘을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 민수는 서둘러 연습실에 들어서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하.. 윤 배우 이거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좀 진정해야 할 거 같은데…. 설아 씨는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자신의 예상 못 한 등장에 당황해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민수는 설아는 바로 밖으로 내보내고 태준을 데리고 의자에 앉혔다.

“하, 윤배우.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내 물음에 태준은 크게 한숨을 쉬고는 어렵사리 대답했다.

“설아가 울고 있었어. 서럽게…”

태준이 뭔가 화가 나서 설아를 울린 것은 아닌가 보다 민수는 자신이 태준의 행동을 약간 오해했다는 것을 느끼며 사과하려는데 이어진 태준의 말에 미안함이 안개처럼 사라짐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괴로워 할 거면 연기 연습을 때려치우라고 말했어.”

자신의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태준이 말을 이었다.

“그랬더니… 더 서럽게 펑펑 울더라…. “

민수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태준을 계속 말했다.

“아버지가 반대할 때도 난 설아가 연기하는 것에 찬성했었어.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한적이 없었지.

하지만 저런 식으로 하는 건 찬성할 수 없어.

왜 꼭 저렇게 무식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을 택해야 해?

때에 따라서 샛길이나 우회로를 따라 갈 수도 있는 거잖아?”

태준의 말에 민수는 의문을 느꼈다.

“지금 설아 씨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 거야?”

설아가 연습실과 녹음실을 오가며 연습하고 있다는 사실과 현재 별로 성과가 없다는 사실만 알고 있던 민수는 지금 설아가 어떤 식으로 연습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같은 대사를 몇 번이고 번복하지.

최대한 다른 소리, 그리고 감정이 들어간 소리를 내기 위해서 그렇게 반복해서 녹음하고 녹음실로 가져가.

그리고 소리를 일일이 분석하고 달라지는 점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그걸 계속 반복. 될 때까지.”

태준의 말에 민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맙소사.. 그냥 그렇게 무식하게 들이 박고 있었다고? 아니 그것을 윤 대표님이 보고만 계셨어?”

민수의 말에 태준은 인상을 잔뜩 쓰면서 대답했다.

“아마 그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시고 말리지 않으시는 모양이야.”

태준의 말을 들은 민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래서 안간힘을 다 쓴 자신의 대사가 그냥 그대로 아무 변화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그리고 다시 안간힘을 써서 녹음하고 확인하면서 실망하고.

그것을 지금 반복하고 있었다고? 온종일 무려 3주씩이나?”

민수의 말에 태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와.. 윤 대표님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대단하네.

딸이라도 연기에 대해서는 정말 직진만을 생각하시는구나.

그리고 넌 그런 무식한 방법보다 좀 더 덜 다치는 방법으로 설아씨가 연습하길 바랐던 것이고?”

“맞아. 난 처음부터 듣자마자 반대했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죽을 듯이 노력하고 자기의 대사를 확인하는 설아는 몇 번이나 번복해서 허탈감과 허무함을 맛봤겠지.

그 절망감이 눈에 선해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계속 권유했는데 설 아가 요지부동이었어. 아버지는 그냥 지켜보는 입장이었고.

그러다가 녀석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그대로 화가 나서…. “

태준의 설명을 대충 들은 민수는 어떤 상황인지 이해 할 수 있었다.

결국 태준의 투철한 동생 사랑이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되어 둘 사이에 오해로 확대된 것이리라.

하지만 민수가 보기엔 특별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설아의 연습 방향을 바꾸기만을 바랐던 태준의 태도에도 문제가 없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설아 입장에서는 자신의 오빠가 자신이 연기 연습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여길 여지가 충분하리라.

“후, 윤 배우. 동생의 일이라 침착함을 잃은 건 일면 이해하지만 말이야.

울고 있는 동생을 보면 우선 달래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을까 싶네.

좋아 한번 내가 윤 배우를 위하여 움직여 주지. 너무 효과가 좋아서 놀랄지도 몰라.”

민수는 밝은 목소리로 태준을 위로했고 태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부디 자신이 매우 놀랐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민수는 전화를 걸어 설아가 있다는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설아와 처음 연기를 연습했을 때 민수는 전생의 “세라”를 떠올리며 어쩌면 설아가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한 사실은 아마 못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것을 극복했으면 아마 전생에 “세라”라는 가수는 탄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참견할 자격도 없는 것이고 그럴 이유는 당연히 없었으니까.

그리고 몇 주의 시간을 설아와 지내며 민수는 설아가 가능하면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연기자 윤설아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설아가 가수”세라”로 산다면 아마 지금처럼 행복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연기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설아가 연기를 버린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완전한 진실은 알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자신의 눈으로 본 “세라”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설아의 인생에 끼어들 생각은 별로 없었다.

설아의 주변에는 연기에 대해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전문가 들이 즐비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설아가 표기하지 않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응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깐 오늘 조금 전까지는.

‘세상에 그렇게 무식하게 직진하고 있었다니.

대체 저 부녀의 머릿속에는 요령이란 단어가 없는 것일까?

윤 대표님의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그렇다는 것은 연기교육 때의 태도를 보고 대충 짐작 할 수 있었다만.

어린 설아 씨까지 그런 저돌적인 면이 있었다니.. 바위가 있으면 돌아가야지 왜 그걸 망치로 깨부수고 가려고 하냐고..’

사실 민수가 설아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방법이 한가지 있긴 했다.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방법이다 보니 윤 대표님이 알아서 설아를 잘 지도하리라 생각해서 굳이 떠올리지 않은 방법이.

민수의 전생에서 어떠한 배우가 자신의 특별한 경험 때문에 연기를 전혀 못 하게 되었을 때 미봉책으로 취한 방법이었는데 그 방법을 계속 사용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민수는 설아의 연기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렸었다.

어느 세 자신의 방 앞에 도착한 민수는 잠금장치의 번호를 누르며 어떻게 설아를 설득할지 고민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릎을 모으고 고개를 그 위에 포개고 있는 설아의 모습이 민수의 눈에 들어왔다.

“아니, 설아 씨는 대체 왜 이곳으로 온 겁니까?”

설아가 자신의 방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하고 전화했다가 놀랐던 민수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가볍게 물었다.

“후.. 원래 몇 년 전에는 여기가 제가 우울할 때마다 오는 곳이었어요. 이곳에 오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거든요.”

“아.. 설아 씨의 아지트 같은 곳이군요. 흠 좋네요. 그래도 이젠 함부로 막 들어 오시며 안 돼요. 집안에 늑대가 살고 있잖아요?”

웃으며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민수를 보며 설아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선배님이 그런 농담도 다 하고 제가 우울해 늘어질 만하네요”

설아의 표정이 약간 밝아지자 민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음.. 우선 윤 배우의 말을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윤 배우가 설아 씨에게 연기연습을 때려치우라는 건 설아 씨가 연기하는 거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설아 씨가 그런 영양가 없는 연습에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이 보기 안타까워서 그런 것이니까요.”

민수의 말에 설아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오빠는 항상 연기연습 때려치우라고 그렇게만 말해서 그런 의미인지는 전혀 몰랐어요”

‘하, 윤 배우. 대체 기승 전은 어따 팔아먹고 결만 말해서 그런 오해를 사는 거야.. ‘

“이따가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윤배우의 말을 다 들어보면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거예요.

그건 이제 두 분이 해결할 문제고, 설아 씨 연기 연습은 요즘 어떤가요?”

연기연습에 관하여 묻는 민수의 질문에 설아는 맥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답이 안 보여요. 빛 한줄기 없는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수백 번 반복해서 녹음해도 전혀 달라지는 게 없어요. 과연 전 정상적인 배우가 될 수 있는 걸까요?”

설아의 넋두리를 들은 민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문제는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이겠지.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사람은 달릴 수 있는 동물이니까..’

“설아씨, 그러면 혹시 조금 다른 방법으로 연습해 보는 게 어떨까요?”

민수의 말에 설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땅히 방법이 있을까요. 선생님도 분명 이것이 근본적으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셨는데요.”

설아의 말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맞을 거예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런데 길은 하나가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 눈앞에 바위가 있으면 그냥 그걸 깨버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냥 살짝 돌아가는 방법도 있는 거 아닐까요?”

설아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여 보이자 민수는 말을 계속했다.

“전 솔직히 설아 씨가 조금 답답해요.

설마 그런 방법으로 연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녹음실에서 녹음하면서 연습하는 거 예전부터 그냥 해오던 거 아니었나요?

몇 년을 해서 안 되던 것이 윤 대표님이 조금 조언해준다고 당장 효과가 있을 거 같진 않은데…

솔직히 저는 윤 대표님이랑 상의해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도전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냥 그렇게 무작정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요.”

여기까지만 할 민수는 이 상황에서 윤 대표님의 뚝심 태도를 탓해야 할지 설아의 곧은 심지를 탓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 어쨌든 지금 방법으로 당장 효과가 없으니 다른 길도 잠시 살펴보죠.

과연 저 길에 바위가 있나 자갈이 있나. 길에 들어서 봐야 뭐가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다른 길을 구경하자는 민수의 말에 설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좋아요. 답이 없으니 너무 지치네요. 그럼 다른 길은 어떻게 가는 건데요?”

설아가 승락하자 민수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자.. 그보다 먼저, 예전에 헬스 시작할 때 저에게 부탁 한 가지 들어 주신다고 했었죠?

그럼 제가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흠흠 그 설아 씨 노래를 한번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생각지 못한 민수의 부탁에 설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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