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3화 (23/325)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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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한동안 잠자고 있던 전화기의 벨이 울리자 민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어? 처음 보는 번호인데.. 여보세요?”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 민수의 귀에 기억에 생생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성~ 정하사님 접니다. 형우입니다~]

“야.. 밖에서 무슨 정 하사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너 전역 한 거냐?”

[어차피 저야 진급 누락 확정이잖습니까? 밀려나서 떠나느니 그냥 제 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형우의 말에 자신의 과거 행적이 떠올라 민수는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야, 밀려서 떠난 사람이 듣기에 그리 좋지 않구나”

[하하하.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저 내일 서울로 올라갑니다. 한번 만나 주시는 거죠?]

형우의 너스레에 민수는 피식 웃으며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는 내일을 기약했다.

형우는 타인과의 교류에 무관심하던 민수와 유일하게 교류하던 후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뛰어난 병사였지만 도통 말이 없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민수는 동기들이나 후임들에게 경원시 되곤 했다.

그런 민수를 살갑게 대한 것이 바로 형우였다.

아무리 민수라도 항상 웃으며 다가오는 형우를 막을 수 없었고 항상 실실거리면서 실수하는 형우를 곧 잘 도와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자 형우와 민수는 정말 친한 관계가 된 것이다.

‘아마 내가 군대에서 그나마 소통이 있었다면 그건 형우였겠지.

형우가 없었으면 군대에서조차 과몰입 현상이 심화 되었을지도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도 이때쯤 형우에게 연락이 오긴 했던거 같은데’

자신이 전생에서 형우의 연락을 받고도 만남을 꺼렸다는 것을 기억한 민수는 자신의 그때 이미 과몰입 상태에 들어섰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 내가 제정신으로 형우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니 어쨌든 지금 하는 운동이랑 커뮤니티 활동이 그래도 과몰입 현상을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긴 하구나…

으아 운동할 시간이네..”

오랜만에 만날 악우의 모습을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은 민수는 바로 헬스장으로 이동했다.

헬스장에서는 설아가 미리 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오늘은 제가 이길 거에요!”

첫날 체력적으로 완패한 설아는 거의 3주가 지난 오늘까지도 민수를 이기기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첫날과는 다르게 설아의 복장은 점점 가벼워졌는데 지금은 7부였던 레깅스는 3부가 되었고. 탱크톱은 튜브톱이 되었다.

1g이라도 복장을 무게를 줄이려는 건지 점점 공격력이 높아지는 설아의 복장에 민수는 마냥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게 열을 올리고 있는 설아가 지금 민수가 처음보다 월등하게 체력이나 신체 능력이

좋아져서 이제는 그냥 설렁설렁 설아에게 맞춰서 운동하고 있다는 점을 안다면 아마 민수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네, 네 오늘은 꼭 이기세요”

민수가 건성건성 대답하자 설아는 더욱 분해하며 열을 올렸다.

분노하며 움직이는 설아를 보며 민수가 조용히 물었다.

“요즘은 어때요? 진척상황이 있나요?”

숨을 몰아쉬며 뛰던 설아는 민수의 질문에 러닝머신에서 내려서서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전혀요. 전혀 달라지지 않네요. 후… 이거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슬퍼지긴 하네요”

씁쓸해하는 설아를 보며 민수도 기분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 할거에요?”

포기라는 단어를 들은 설아는 더욱 전투력이 고취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설마요. 그럴 리가 없죠.

안되면 될 때까지. 내가 죽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이말 모르세요?

에이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선배님이 말씀하시는 바람에 또 생각났잖아요.

어떻게 책임지시겠어요?”

아직 근성을 발휘하는 설아를 보며 민수는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했다.

지금 설아의 모습이 마치 아무런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연기를 하겠다고 달려들던 전생의 자신과 겹쳐 보였다.

분명 자신보다 환경은 좋다고 하지만 답 없는 상태라는 점은 같으리라.

그리고 자신은 30년 동안 경험하며 자기에게 맞춘 호흡과 조절하지 못하지만 내뿜을 수 있는 감정연기를 얻었지만, 과연 설아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민수는 설아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달려나갈 의욕이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음, 내일은 하루 운동을 쉬어야겠어요. 오랜 지인을 하나 만나야 하거든요”

민수가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에 설아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선배님. 지인이 있었군요. 전 맨 날 소속사에만 있어서 아는 사람도 없는 줄 알았는데. “

진심으로 놀라는 설아의 모습에 민수는 살짝 울컥함을 느꼈다.

“아니.. 설아 씨도 종일 녹음실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저에게 그런 말 하실 입장은 아닌 거 같은데요”

민수의 대응에 설아는 움찔하더니 콧대를 세우며 무난하게 대응하다.

“전 틈틈이 나가서 친구들도 보고 하거든요.

선배님처럼 혼자가 아니라. 어쨌든 그렇다면 내일은 하루 쉬어야겠네요.

저도 요즘 좀 지쳤거든요. 운동에 너무 열을 올렸어요”

잘되었다는 듯이 쉬겠다는 설아를 보며 민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냥 적당히 무리 안 가는 수준에서 하면 되잖아요. 왜 그렇게 열을 올려요?”

“흥, 그렇게 하면 운동은 늘지 않거든요.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서야 체력이 느는 거라고요. 언젠가는 선배님을 이겨주겠어요”

자신을 이기려고 바락바락 기를 쓰는 이 철없는 아가씨를 보여 민수는 자신이 설아를 대견해 하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다음날 형우가 도착하는 서울역 근처로 약속을 잡은 민수는 시간에 맞추어 출발하기 위하여 소속사 건물을 나섰다.

그러나 건물을 나서려고 하는 그때 갑자기 자신의 등 뒤로 접근하는 그림자가 느껴졌다.

의아한 생각이 든 민수가 뒤돌아보니 보안요원 박춘섭 어르신과 같은 복장의 어르신 두 분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춘섭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한 두 분의 어르신이 같이 다가오자 민수는 약간의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 청년 잠시 나 좀 보고 가지.”

손으로 부르는 춘섭을 보며 민수는 의문을 느꼈지만, 별생각 없이 춘섭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아, 그려. 잘 지냈..”

민수가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자 자연스럽게 웃으며 받아주려고 하던 춘섭은 순간 인상을 구기며 말하였다.

“지는 못 했지… 이거이거 아주 고단수구먼.

내가 순간 분위기에 휩쓸렸어. 자네 이제는 아주 여기서 사는 모양이여..”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민수는 사뭇 웃음이 났지만 민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민수의 말에 춘섭의 인상이 더욱 구겨진다.

“게다가 3주 동안이나 작은 아가씨랑 단.둘.이 헬스장에서 운동도 같이 하고 있는 모양이고..”

‘와.. 어르신 소속사에 무슨 스파이라도 심어 놓으셨나.. 왜 이렇게 정보가 빠르시지..’

“아, 예.. 그러고 있는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민수가 의아해하자 춘섭은 울분에 찬 노성을 내지른다.

“있지.! 당연히! 다 큰 남녀가! 단둘이! 매일 매일 얼굴 맞대고! 좁은 공간에서! 운동하고 있는데! 어! 운동하면 그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서로 부대끼면서 할 거 아녀!?”

민수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라. 뒤에서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온다.

“어머~ 귀염둥이 민수 아니니~ 어디 나가는 길이니?”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자랑하며 여유 있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민 여사의 모습을 본 춘섭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민 여사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인다.

“아가씨. 나오셨어요?”

‘아가씨…?’

민수도 덩달아 같이 민 여사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사님. 그래도 귀염둥이라뇨. 제가 어린아이도 아닌데.. 그렇게 부르시면…”

민수가 난감해하며 말하자 민 여사는 더욱 환하게 웃으며 민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차피 아들뻘인데 뭐 어떠니?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니?”

민 여사의 물음에 민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근데 저 그 아까 춘섭 어르신이 여사님을 아가씨라고..”

민수의 물음에 아리가 작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 모르고 있었니.. 내 이름이 민 아리.

저기 아리 재단의 재단 이사장이야.

춘섭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를 도와주시던 삼촌 같은 어르신이고.

이게 답이 되었을까?”

“아, 네. 그러시군요…”

말을 마친 민 여사는 민수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어디 가는 길이지 않았니? 어서 가보렴.”

민 여사의 재촉에 자신이 약속이 있음을 기억한 민수는 서둘러 떠나려 하였다.

“아, 그래. 혹시 무슨 어려운 일이나 문제가 생기면 날 찾아오렴.. 난 4층 이사장실에 항상 있으니까.”

민 여사의 말을 뒤로하고 민수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떠나는 민수를 바라본 민 여사는 춘섭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저.. 아가씨. 저 녀석이 옥상 집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춘섭을 잠시 바라보던 민 여사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예, 제가 저 아이에게 옥상 집에서 살라고 권유했었죠.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춘섭은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다.

“아가씨, 전 조금 걱정이 됩니다. 작은 아가씨가 아직 어리신데…”

“호호 아저씨 과보호가 너무 심하세요.

소속사 내에서 무슨 별일이 있겠어요? 그리고 설아도 이미 성인이에요.

마냥 어려 보이긴 하지만. 전 그 나이때..”

민여사의 말을 춘섭이 서둘러 막았다.

“아가씨, 그러니깐 문제죠. 아가씨 가문에 집안 내력이… “

민 여사는 피식 웃으며 춘섭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어째든.. 아저씨 그렇게 간섭하려 하시면 설아가 싫어 할거에요.

한창 자유에 민감할 나이잖아요? 괜히 엇나갈지도 몰라요~?”

민 여사가 웃으며 말하자 춘섭은 할 말을 잃고 그냥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길을 나서는 민수는 아리재단에 대하여 작은 의문을 가졌다.

‘아.. 민아리 여사님이 이사장이시라 아리 재단이라고 이름 지은 건가?

아니 그런데 재단 보안 직원이 방검복을 갖춰 입을 정도로 위험한 직업이었어?

삼촌 같은 분인데 아가씨라고 존칭하는 것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데… 알다가도 모르겠군..

어쨌든지 조금 조심해야겠다.

춘섭 어르신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어.

친근감 느껴지는 어르신이었는데 아쉽게 되었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민수는 본의 아니게 건물보안을 책임지는 어르신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서울역 앞에 도착한 민수는 약속장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형우를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갔다.

“와.. 형우야 일년 만인가?”

“오~ 민수형~ 진짜 사회물 1년 먹더니 진짜 달라졌는데요. 역시 사람은 사회물을 먹어야 해.”

군에서 나온 지 하루 만에 완전히 군인의 말투를 벗어 던진 형우의 말에 민수는 헛웃음이 낫지만, 저놈이면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부대에 있을 때도 자신은 진급신청 안 하고 무조건 그냥 나간다고 했던 형우이니만큼 사회에 대한 그리움도 매우 컸으리라.

가볍게 식사 자리를 가지던 둘은 예전의 이야기로 잠시 웃음을 나누었다.

“그나저나 그럼 이제 어쩔 셈이야? 당장 벌어 놓은 돈이야 적당히 있겠지만.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 봐야 하잖아?”

민수의 말에 형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죠. 음 우선 생각하고 있는 곳은 붉은 범인데…”

적호 부대 전역병 출신으로 운영되고 있는 경호 단체 “붉은 범”은 분명 형우에게 좋은 직장이 되리라.

하지만 부대에서도 사회를 부르짖던 형우가 선임들이 무더기로 근무하는 “붉은 범”에서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 지는 민수로서는 걱정 될 수 밖에 없었다.

“야, 거기가 군대랑 뭐가 다르냐? 너… 거기서 잘 적응 할 수 있겠냐?”

민수가 걱정스레 말하자 형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24시간이랑 근무 시간에만 마주하는 거랑 어디 같아? 뭐 정 안되면 그건 그때 생각해 보지 뭐…”

민수는 가볍게 생각하는 형우의 모습에 자신도 저런 점은 좀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형은 지금 연기 하는 거 같더라. 내가 형이 화상 자국 달고 티브이에 나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형우의 말에 민수는 작게 웃었다.

“하하, 그걸 알아봤어? 당연히 몰라 볼지 알았는데.”

“딴사람들은 다 모르겠지. 난 형이랑 그래도 자주 접했으니 아는 거고 형이 어디 사람들이랑 부대끼며 살았어? 그냥 고고한 학처럼 혼자 살았지.”

형우의 나무람에 민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이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작게 중얼거리는 민수의 목소리에 조금의 후회와 회한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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