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2화 (22/325)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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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강환은 다음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호흡에 대하여는 이제 내가 할 말이 없어.

내가 이야기해준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는 너의 선택이고 그것을 숙달하는 것도 너의 노력일 테니깐.

그러면 이제 다른 것을 이야기해 보자.

감성조절. 대본의 이해 이런 부분은 너의 가장 큰 단점이었는데 그것은 지금 대표님하고 공부하고 있지.

난 너의 또 다른 단점을 하나 알려 주고자 한다.”

자신의 단점을 알려 준다는 말에 민수는 조마조마하며 귀를 기울였다.

“자, 정 배우. 넌 발음이 너무 구려.

일반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보통 발음이지만 네가 진짜 배우가 되려고 한다면 넌 우선 발음부터 교정해야 해.”

강환이 자신의 발음을 지적하자 민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그런데 발음이 너무 선명하면 감정을 전달하는데 차라리 방해되지 않나요?”

민수의 반론에 들은 강환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 잘못 생각을 하는 면이 있어.

감정연기가 격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음이 안 좋아지고 그게 더 좋은 연기라고 말이야. 그건 일순 맞는 말 이긴 해.

사람이 울부짖고 있는데 그 와중에 선명한 발음을 한다. 그건 말이 안 되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정 배우,

영화나 드라마나 배우가 시청자나 관객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행동이랑 말뿐이고 시청자들에게 상황을 이해시킬 수 있는 수단은 대사뿐이야.

배우는 관객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대사를 통하여 감정 외에 여러 가지를 말해 줘야 해.

잘 생각해봐. 배우가 울면서 대사를 치고 있어.

그런데 얘가 막 울부짖으면서 뭐라고는 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럼 시청자들은 그 배우의 감정은 확실히 이해하겠지.

지금 쟤가 아주 슬프구나.

그런데 저게 무슨 상황인지 잘 알 수 있을까?

때에 따라 조금 다를 순 있지만 아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강환이 말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감정 전달 만큼 대사의 전달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

민수의 말을 듣고 강환은 말을 계속 이었다.

“그리고 넌 지금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는데 만약 아나운서처럼 하고 정확한 발음을 하는 사람이 연기한다고 대사를 말하면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는 것처럼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까?

선명한 발음은 감정을 전달하기 어렵다.

이거 분명 예전에 정론이긴 했어.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어.

내 생각에는 발음도 배우가 가진 하나의 무기야.

참고로 태준이도 설아도 어렸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발음 교정이었어.

태준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지금 감정 전달하는데 전혀 문제없어.

표현력은 더 올라갔지.

발음이 정확하면 상황에 따라 더 작은 목소리로 연기 해도 돼.

작게 말해도 시청자들에게 명확하게 다 들리니까.

그리고 지금 그 소리의 고저를 가장 잘 이용하는 배우가 태준이고.”

강환의 말을 들은 민수는 자신도 발음을 교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설명을 들으니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배우로서 분명한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 발음 교정의 목표는 흐느끼면서 말하는 대사의 의미가 정확히 들리는 것이야.

하나하나 차분하게 정확하게 대사를 끊어 읽어

그렇게 읽으면서 소리와 입과 혀의 모양과 위치를 의식하려고 노력해.”

그 날 민수는 강환에게 배운 호흡을 흘리는 연습과 동시에 단어 한 자 한 자 명확하게 하는 연습을 병행했다.

민수가 호흡을 흘리는 타이밍을 조절하는 훈련을 하며 캑캑거리자 강환은 민수가 쓸데없는 짓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저것에 그리 집중하나 궁금하기도 했다.

“야, 너 그거 어차피 안 되는 건데 왜 그렇게 그것에 집착하는 거야? 차라리 발음에 더 신경 쓰는 게 맞는 거 같은데”

강환의 말에 민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발음도 계속할 거고요.

호흡 흘리는 것도 좀 더 해보게요. 혹시 모르잖아요.

제가 정말 이상한 체질이라 호흡의 주기를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지.”

“야, 그게 되면 넌 그냥 기네스북감이야. 아주 제대로 시간 낭비 하는구먼”

강환이 어림도 없다는 듯 타박하자 민수는 웃으며 연습을 계속했다.

“혹시 만약에라도 이게 성공하면 전 저만의 무기를 하나 장착하게 될 테니까요.”

자신만의 무기라는 말에 강환의 얼굴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물들었다.

“야, 넌 네가 가진 가장 큰 무기가 뭔 지나 알고 있냐?”

갑작스러운 강환의 말에 민수는 잠시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음.. 감성은 이제 3단계 정도로 조절 가능하니 아직 감성은 낙제.

이해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지만 윤 대표님이 만족하시지 못하고 있으니 아직 멀었고.

일반적인 호흡과 발성은 이제 안정될 것이지만 지금은 아직 불완전해’

여기까지 생각이 든 민수는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후.. 제가 가진 무기가 아직은 없네요”

민수의 말을 들은 강환은 인상을 쓰며 민수를 타박했다.

“야, 이 바보 같은 놈아. 너희 집에는 거울도 없냐. 네놈의 가장 큰 무기는 그 희멀끔하게 생긴 낯짝이다. 이놈아.

원래 이 바닥이 연기 잘하는 놈이 잘생긴 놈 못 당하는 거야.

특히 너처럼 야리야리하게 생긴 놈은 어, 적당히 연기해주면서 시크하게 쏴악 웃어주면 그냥 사람들이… 아후.

어쨌든 그런 안 되는 것에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더 채울 수 있는 부분에 더 집중하도록 해.

넌 그런 쓸데없는 거 안 해도 충분히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으니깐.

이거 내가 괜히 햇병아리한테 나는 법을 가르쳤구만. 쩝”

민수는 강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강환은 좋게 말해도 호남이라고 말할지언정 미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지금은 좋은 연극배우로 인정받고 있지만 아마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데 많은 고난이 있었으리라.

“에이, 선생님. 그래도 진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그냥 잘생긴 배우들보다 더 인정받잖아요”

민수의 말에 강환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야, 그건 그 배우가 조오오오오올라 연기를 잘하거나 잘생긴 배우가 조오오오오올라 연기를 못하면 그렇긴 하지.

근데 일반적으로 그렇진 않잖아.

하긴 난 연기를 조오오오오오올라 잘해서 인정받긴 하지만 말이야.”

결국 마지막에 자기 자랑으로 장식하는 모습에서 역시 강환은 강환답다 생각한 민수는 교육을 마치는 강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수업을 마치고 고단하게 계단을 오르는 민수 앞에 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민수는 자신이 익힐 가능성이 거의 없는 강환의 비기(?)를 태준이 암기력 하나로 불법(?)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 소리쳤다.

“에이, 기만자!”

민수가 말을 내뱉고 황급히 계단으로 올라 사라지자 태준이 어이가 없는 이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잠시 후 바로 강환이 계단을 올라왔다.

“어? 삼촌. 오랜만이에요”

태준이 반갑게 인사하자 강환은 태준을 위아래로 훑어 보고는

“에이, 더러운 세상 같으니”

한마디만 남기고는 쏜살같이 계단 위로 사라졌다.

태준은 잠시 동안 멍하니 강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뭐야.. 대체 왜들 저래?”

태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갔다.

대표실의 윤 대표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환을 반갑게 맞이했다.

“여.. 강환이 수고했어. 어때 오늘 수업은 괜찮았나?”

환하게 웃는 윤 대표를 바라보며 강환은 거만하게 자리에 앉았다.

“당연하지. 형님 나 강환이에요. 대학로의 지배자 강환.”

강환의 허세에 윤 대표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어떻던가? 그 녀석이 잘 이해하던가?”

“네, 바로.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몇 번은 설명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강환의 말에 윤 대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녀석 이상하게 감정을 느끼는 감각이 매우 예리하더라고.

같은 대사를 같은 감정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까.

어려서부터 본능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태준이 같은 놈을 빼고는 그렇게 감정에 대하여 그렇게 예민한 녀석은 거의 못 봤어.”

기분 좋은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윤 대표를 바라보며 강환은 조금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형님. 그런데 이거 내가 괜한 짓 한 것 같기도 해요.

그 녀석이 의식적으로 호흡 흘리는 거 연습하던데 괜히 자기 호흡까지 흐트러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강환이 걱정하자 윤 대표가 안심 하라는 듯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냥 연기를 보는 안목만 늘려 주려고 한 것인데..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어차피 인간의 신체 구조상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니깐.

아마 조만간 스스로 느끼게 되겠지.

원래 그런 녀석들은 자기가 스스로 느끼는 수밖에 없어. 옆에서 뭐라고 참견해 봤자 어차피 안 들어 처먹는 스타일이니깐.

그래도 안목은 넓어지지 않았나.

나중에 상대 배우가 같은 장면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감정변화 주면서 대사를 쳐도 당황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강환은 윤 대표가 낙관하고 있지만 자신의 본 민수는 절대 포기할 거 같지 않아서 이것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자신의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민수는 강환의 말이 생각나서 잠시 거울을 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자신의 젊은 모습.

하지만 분명 자신의 기억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얼굴선이나 눈매 하나에도 사람의 인상이 달라진다더니 미묘하게 변해 버린 요소요소가 민수의 얼굴을 전혀 다른 느낌의 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럭저럭 잘생기긴 했네. 외모는 전혀 의식한 바가 없었는데 말이야.”

민수는 기본적으로 좋은 배우의 조건에 외모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나 잘생긴 사람만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실제로 좋은 외모를 가지고도 배우의 외모가 아니라고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또한 특별히 잘생기거나 특별히 못생긴 경우 배역의 스펙트럼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차라리 좀 무난무난 적당한 게 가장 좋은데 말이지.. 외모가 무기가 될 수 있다.. 라. 흠…”

자신 자신의 외모에 대하여 생각하던 민수는 문득 자신의 변화를 이제 좀 집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수첩을 꺼낸 민수는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신체”라고 적고는 동그라미를 2번 겹쳐 그었다.

“우선 외모는 좀 더 선명하고 뚜렷해졌지. 그 결과 좀 잘생겨진 거고. 체력 근력 지구력 민첩성 반사신경까지 몸의 성능 자체가 매우 올라갔어.

게다가 쓰면 쓸수록 더 좋아지고 있는 느낌이니..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 그리고 웃기는 일이지만 키가 조금 자랐어.

분명 전생에는 더는 자라지 않았었는데 말이야.”

민수는 같이 운동하던 설아가 자신의 키가 좀 큰 거 같다며 그 나이에 다시 성장기가 왔냐고 놀리길래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고 시작한 내기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키가 조금 자라 패배하고 굴욕 당한 기억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민수는 “감각”이라고 쓴 후에 동그라미로 2번 겹쳐 그었다.

“감각.. 집중하게 되면 상대의 감정이 느껴져.

상대가 강한 감정을 느끼거나 강한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 좀 더 선명하게 말이야.

그리고 연기를 할 때는 보이지 않는 상대의 감정까지 느껴질 정도야.

그리고 공명.. 이거 정말 말이 안 되는 건데.

일종의 교류 같은 느낌이야. 서로 감정을 교류한다. 이것을 정말 의도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연기에 엄청난 도움이 되겠어.”

그리고 민수는 “감” 이라고 쓰고는 동그라미로 세 번 네 번 칠해 겹쳐 그었다.

“이게 지금 가장 웃기는 건데. 무엇인가 특별한 느낌이 있어.

그냥 그래야만 할 거 같은 그런 느낌.

아직은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뭔가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어..”

그렇게 세가지를 체크한 민수는 조용히 한숨을 쉬고 침대에 누웠다.

“신님. 대체 저에게 무엇을 준 것인가요? 황금 늑대…. 황금 늑대… ”

민수가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황금 늑대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을 때 민수의 전화기가 소란스럽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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