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1화 (21/325)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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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민수는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연습실에서 강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생에 민수는 강환과 약간의 인연이 있었다.

아마 지금도 강환이 지원하고 있을 극단 “천지” 이곳이 갈 곳 없던 민수가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극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민수가 몸에 익히고 있는 호흡 방법도 강환이 극단 후배들에게 가르치던 그 호흡법이었고 말이다.

‘그때는 몇 번 못 만났었지. 강환 선생님.

말년에 병상에서 제법 오래 계시는 바람에.. 내가 너무 늦게 극단에 몸담았었어.

이번 생에선 만약 친분이 더 생긴다면 과도한 음주는 피하시게 해야겠어..’

민수는 말년에 강환이 과도한 음주로 인하여 간에 문제가 생겨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이번 생은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강환이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 반가워. 연극배우 강환이야.”

유쾌하게 웃으며 강환이 들어오자 민수는 바로 일어나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 정민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우선 앉자.”

민수가 의자에 앉자 강환도 민수 옆에 있는 의자에 착석했다.

“그래, 내가 너에게 무엇을 가르치기로 했는지는 대표님께 들었겠지?”

“네, 선생님 호흡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맞아. 내가 너에게 가르칠 건 호흡이다.

일반적으로 호흡이라고 하는 거, ‘연기의 베이스가 되며 균등하고 깊은 호흡을 통해서 발성을 더욱 선명하고 명확하게 해주기 위한 일반적인 숨 쉬는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지.

원래 내가 너에게 가르칠 것이 이거였어.”

여기까지 말한 강환은 민수를 보며 피식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너의 연기를 처음부터 그리고 어제 네가 녹화해놓은 거까지 차근차근 살펴봤는데.

넌 따로 호흡 방법 배울 필요가 없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호흡 방법대로 연기 해도 전혀 무리가 없으니까.

넌 아마 어디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몸에 맞게 호흡 방법을 숙달하고 있는 거 같았다.

내 말이 맞니?”

따로 배울 것이 없다는 강환에 말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여기저기서 좀 보고 연습하고 있는 것이 있긴 합니다.”

“그래, 사실 호흡법이란 게 정해진 법칙은 몇 가지가 있지만 정확히 옳은 호흡법이란 존재하지 않아.

그냥 자기 자신이 연기할 때 제일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자기 자신에게 맞는 호흡법이야.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네가 연기할 때 너 스스로 문제를 못 느낀다면 넌 그냥 지금 그 호흡법대로 연기하면 되는 거야.”

“예..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진 않아서 발성 시에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민수에 말에 강환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좋아. 그럼 일반적인 호흡법은 이걸로 끝.

원래 이것만 가르치고 그냥 내빼려고 했는데 말이야

우리 위대한 대표님이 그러면 극단 지원금은 기대하지 말라고 해서 말이야.

내가 너에게 뭐라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 되었어.

그래서 내가 너에게 뭘 가르칠까 어젯밤 새 고민했지.”

강환이 아무리 잘나가는 연극배우라도 연극무대에서만 번 돈으로 극단 전체를 꾸려가는 것은 불가능할 터 아마 윤 대표가 극단을 지원하는 명목으로 강환과 딜을 했으리라.

‘강환 선생님은 여전하네..’

이 시기부터 벌써 “천지”에 자신의 돈을 다 쏟아붓고 있는 것 같은 강환의 모습에 민수는 사람이란 게 참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내 작은 꼼수? 내가 쓰는 방법 한 가지를 너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뭐 익힐 수 있고 없고는 다 네가 하기 나름이고.”

민수를 웃는 모습으로 한번 바라본 강환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자.. 기본적인 호흡은 이제 생각에서 지운다.

연기할 때 배우들이 호흡을 이용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네가 저기서 여기까지 뛰어왔다는 연기를 해야 해.

그런데 그렇다고 진짜 배우가 뛰어갔다 오는 게 아니잖아. 그럴 때 배우들은 어떻게 표현을 하지?”

강환의 질문에 민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숨을 헐떡이며 쉬는 것으로 표현하겠죠?”

“그래, 맞아. 그리고 그 외에도 공포나 긴장 그밖에 감정적인 상황들을 표현할 때 배우가 의식적으로 숨을 쉼으로 그 표현을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바로 이차적인 호흡의 이용이지.

여기까지는 배우가 모든 배우들이 배우고 실행하는 호흡 연기지.

자. 난 여기서 조금 다른 호흡 연기를 말하려고 한다.

같은 감성 같은 대사를 연기한다. 그런데 그사이에 미묘하게 호흡이 들어간다.

잘 들어 봐. 조금 약간 과장해서 표현한 거야.”

민수에게 말한 강환은 연이어서 2개의 같은 대사를 연기했다.

“동굴에 들어간 건 김 박사야. 하지만 책임은 네가 져야 하지.”

“동굴에 들어간 건 김 박사야. 하지만 책임은 네가 져야 하지”

대사를 들은 민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분명 같은 대사고… 감정도 거의 같은 거 같았는데.. 뭔가 느낌이..”

“어떠냐? 이번 것은 내가 일부러 호흡을 드러나게 뺐으니 잘 들렸을 거야.

그럼 이번엔 같은 걸 다시 한번 들어봐라”

강환은 아까 말했던 대사를 다시 한번 반복했다.

이번 것은 민수의 귀에도 호흡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민수가 느껴지기에 같은 감성을 가지고 말한 대사가 조금 미묘하게 다른 느낌으로 들리고 있었다.

“와… 대체…”

감탄하는 민수를 보며 강환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자, 봤지. 이게 내가 조금씩 하고 있는 일종의 꼼수 같은 거야. 좋은 말로 하면 비기. 나쁜 말로 하면 수작질.

설명하자면 음.. 이건 그냥 대사 중에 아주 약하게 호흡을 흘리는 거다.

그 호흡이 흘러가는 부분이 어디냐에 따라 같은 대사도 약간 느낌이 달라.

자 이게 어떤 식이냐 하면.

네가 여기 이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연기해봐.

그럼 내가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다가 딱 피는 순간에 호흡을 살짝만 추가로 내뱉어.

자 고고 한번 해봐.”

강환이 보채듯이 재촉하자 민수는 강환이 내민 대본 하나를 건네 들고 대사를 읽기 시작했다.

“저기 빨간 집에는 말이야. 네가 생각하지도 못한 비밀이 있어. 저기 문 뒤 켁켁..”

대본을 연기하다 말고 느닷없이 올라온 손가락의 타이밍에 맞춰 숨을 추가로 내뱉으려던 민수는 엇박자로 꼬여버린 호흡에 그만 숨을 잘못 쉬고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그래. 그렇게 호흡을 갑자기 불규칙하게 가져가면 그렇게 고통이 뒤따르지.”

천연덕스레 말하는 강환이 왠지 얄밉게 느껴져 살짝 인상 쓰던 민수는 그럼 강환은 어떻게 호흡을 따로 썼는지 궁금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냥 헐떡이거나 숨을 몰아쉬거나 숨을 가늘게 떨면서 내뱉는 것처럼 단순한 표현에 호흡을 추가하는 방법 외에 그냥 대사 자체에 미묘하게 호흡이 추가되냐 안 되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그렇게 호흡을 한 단계 더 자유자재로 넣고 뺄 수 있으면 더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될 수 있다.

난 이런 말을 하고 싶단 말이야.”

강환의 말을 들은 민수는 곰곰이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럼 선생님은 연기할 때 배우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원하면 바로 호흡을 빼고 넣을 수 있으면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네요.

그럼 선생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민수의 말을 들은 강환은 민수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하긴 뭘 해.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아까 너도 해봤잖아. 호흡하면서 대사 치는 중에 갑자기 호흡 내려고 하면 바로 호흡기에 응징이 들어오는 거. 후. 잘 들어봐.

사람의 호흡은 무의식중에 일정한 리듬을 타고 움직여 심장이 일정한 박자를 타고 뛰고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자기의식대로 호흡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으면 그게 말이나 되겠니?

그건 그냥 이상적이란 거지 내가 생각하는 배우 호흡의 이상향..”

강환의 말을 들은 민수는 기가 막혀 계속 물었다.

“좋아요. 자유자재로 빼고 넣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치고요.

선생님은 그럼 그 호흡의 사용법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고 계시는가요.?”

“그래. 이제야 제대로 된 걸 묻는구나. 난 대본을 받으면 기본적으로 읽어 보면서 모든 부분에 내가 호흡할 곳을 체크한다.

근본적으로 크게 기본적으로 숨 쉬는 곳 그리고 작게 섬세하게 내뱉어 줘야 하는 부분을 다 체크하고 외운 후에 그렇게 연기하는 거야”

호흡 부분까지 다 외운 후에 연기한다는 강환에 민수는 강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허, 그걸 일일이 다 체크하고 외운다고.?’

민수는 그 세세한 것을 다 기록하고 외우는 강환의 노력이 그런 기적 같은 호흡만큼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그러면 그냥 선생님이 하시는 방법대로 하면 원하는 곳에 호흡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선생님은 자유롭게 호흡을 넣고 빼는 것이 이상적인 배우의 호흡이라고 생각하세요?”

민수의 말을 들은 강환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 배우, 잘 들어봐. 우리가 연기하는데 혼자 하는 것이 아니잖아?

그래서 상대 배우의 연기방법 상태 스타일에 따라 자기 자신의 감성까지 조금씩 바뀌게 되지.

상황이 바뀌고 느낌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는데 처음에 자기 생각대로 호흡을 흘리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연기일까.

원래 목적은 더 좋은 표현을 위해서 연습하는 건데 상황에 맞추지도 않고 그냥 자기 생각대로 연습해온 대로 연기하면 그게 죽은 연기밖에 더 되겠어?

반면에 만약 내 말대로 그렇게 자유자재로 호흡하면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원하는 부분에서 호흡을 흘릴 수 있겠지?

그래서 연습해서 외우는 거보다 자유자재로 호흡하는 것이 더 이상적인 모습이다. 라고 말하는 거야.”

거기까지 말한 강환은 옆에 놓아두었던 생수를 따서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대 배우 강환이가 연극판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이다.

드라마 판에 가면 뭔 쪽대본이다 뭐다 하면서 시시때때로 상황이 변해 버리고 극장판에 가면 시간이 돈이라고 하면서 재촬영 할 때마다 눈치 보이고 말이야.

반면에 연극은 미리 정해진 상대와 정해진 장소 정해진 상황에 미리 다 맞춰보고 같은 연기를 반복하니 내가 원하는 연기를 원하는 수준으로 할 수 있다. 이 말씀이지.

이 강환님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연기를 다른 사람에게 돈 내고 보라고 하는 것을 혐오한다 이거지.”

민수는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연기를 할 바에는 하지 않겠다는 강환의 말에서 가벼워 보이는 말투 안에 내재한 장인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참 확고한 사람이네. 전생에서도 그랬지.’

강환의 말에서 작은 존경심을 느끼며 민수는 질문을 이어갔다.

“선생님, 그러면 혹시 선생님처럼 연기하는 다른 배우가 또 있나요?”

민수의 말에 갑자기 인상을 강하게 쓴 강환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모르지. 내가 모든 배우를 다 아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내 말을 이해하고 그렇게 연기하는 배우는 한 명뿐이야.”

한 명뿐이라는 강환의 말에 민수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윤태준 그놈뿐이야.”

연극배우 중 한 명을 기대하고 있던 민수는 그 한 명이 태준이라는 소리에 살짝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렇게 연기하는 게 죽은 연기라 연극판에서 밖에 쓸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민수의 말에 강환은 입맛을 크게 다시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지. 대본을 미리 그렇게 외우면 그 말이 그런데… 그 녀석 머리는 더럽게 좋아서 그날 촬영하기 전에 맞춰서 새로 외우더라고.

대본은 한번 보면 바로 외우니까 쪽대본이라도 바로바로 바꿔서 외우고 에잉 그래서 사람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야 해..”

강환의 말에 민수는 크게 헛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와.. 윤태준. 진짜… 네가 인간이냐?’

민수의 말에 강환은 싱글싱글 웃으며 민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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