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0화 (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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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볍게 샤워를 하고 앉은 민수는 바로 노트북을 켰다.

정신과 상담 이후에 민수는 일과를 마친 이후에는 꼭 선생님이 추천했던 “힐링멘토” 라는 사이트에 접속하곤 했다.

선생님이 추천한 이 “힐링멘토”는 정말 일반적인 사이트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곳이었다.

우선 무조건 실명과 병력이나 가족들의 병력을 인증해야 가입 할 수 있었고.

게시물이나 댓글도 무조건 실명으로 달리게 되어있었다.

또한 토론은 괜찮지만, 과도한 분쟁이나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하면 무조건 경고 조치, 비속어나 타인이 혐오할 만한 언사를 사용하면 무조건 강제퇴장 후 삭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강경한 운영 방침이 초반에는 작은 소동들이 있었지만 어떤 몰지각한 사람들이 “힐링멘토” 회원들을 향한 과도한 비방이나 욕설을 기재한 후 즉각 신고당하고 일명 “인실좆”을 당한 후에 사죄하게 된 사건 이후에는 “힐링멘토”의 운영방침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이트 내에 떠도는 “카더라”에 의하면 사이트 내에 회원으로 서울 검찰청의 부장검사님의 딸이 있다느니 “인실좆”당한 사람들이 고소 취하 후에도 이상한 경로로 피해를 보고 있다느니 이상한 소문들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힐링멘토”는 지금 어떤 사이트의 “식물 갤러리” 나 “동물 갤러리” 등과 함께 가장 청정한 인터넷 커뮤니티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확실히 청정한 커뮤니티를 위한 운영진의 단호한 정책은 “힐링맨토” 회원들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자면 정상적인 활동을 위하여 당연하고 필요한 운영 정책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크고 작은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고 마음 편하게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고 마음의 위안을 가질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자는 것이 “힐링맨토”의 창립 목적이었으니까 말이다.

회원들도 생성 초창기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언사를 사용하고 단어의 수위를 조절하는 그런 행동들을 불편하게 생각했지만, 자신이 존중하는 만큼 자신도 남에게 존중받는 다는 점

그리고 자신에게도 상대방이 격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점점 커뮤니티에 만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도 이젠 옛말이고 현재 “힐링멘토”는 심각한 정신적 질환을 경험한 사람들과 그 가족부터 아주 가벼운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고민을 상담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는 대안정의 장이 되고 있었다.

민수는 상담의 선생님의 충고에 따라 이곳에 가입하게 되었고 도피성 몰입 증후군이라는 정신적 질환을 병력이 인정되어 바로 가입할 수 있었다.

민수는 이 곳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고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었다.

물론 처음에 가입 의사를 표했을 때 윤 대표는 다소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배우로 데뷔했을 때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활동했다는 점이 배우로서 손해가 될 수가 있다.

사람들은 아직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으니까 말이다.”

윤 대표가 반대한 말에 그 당시 민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글쎄요. 미친 배우가 연기한다고 사람들이 비난할 수도 있고 아니면 카메라 공포증이나 과몰입을 극복한 배우라고 찬사 할 수도 있겠고.. 반반이긴 하네요.

하지만 그건 잠깐이고 제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그런 공감이나 연기 외에 다른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 할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은 윤 대표는 다소 불안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민수를 막지는 못하였다.

민수는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이야기들을 들으며 처음으로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한다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고 이러한 경험은 민수가 연기에만 과몰입해 시야가 편협해지는 것을 적절히 견제해 주고 있었다.

다시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민수는 여전히 아침부터 밤까지 연기 연습과 감정제어에 매진하고 밤에는 설아와 함께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며 체력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설아, 태준이 민수의 방에 모여들었다. 바로 “서쪽 해변”의 첫 방송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윤 배우 왜 첫 방을 여기서 보겠다는 거야? 원래 첫 방영은 배우들이랑 스탭들이 모여서 보는 거 아니었어?”

느닷없이 들이닥쳐 자신의 방에서 같이 첫 방을 보자는 태준과 심심한 차에 따라붙은 설아를 해충 보듯이 바라본 민수는 못마땅해하며 태준을 타박했다.

“아, 좀 같이 봐줘. 정 배우도 같이 출연한 배우잖아.

작가님이 어차피 시청률 죽 쓸 텐데.

같이 속상하지 말고 그냥 따로 보자고 하시더라고. 생각보다 잘 나오면 종방연이나 같이 하자고 하시면서 말이야.”

태준의 말에 설아가 냉큼 말을 받았다.

“아, 난 태풍 보고 싶었는데 이거 억지로 봐야 하는 거야?”

설아가 웃으면서 말하자 태준은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설아를 타박했다.

“야,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존경하는 오라버니가 나오는 드라마를 안 보고 어떻게 다른 드라마를 볼 생각을 해?”

“에이, 이건 그냥 딱 봐도 재미없을 거 같은데…. 본방은 태풍보고 모니터링은 VOD나 재방이나 보려고 했었지 헤.. 역시 본방은 가장 재미있는 거 보는 거 아니겠어?”

대놓고 재미가 없을 거라는 설아의 폄하에 민수는 웃으며 동의했다.

“그러게. 내가 봐도 “서쪽 해변”보다는 태풍이 재미있을 거 같은데..”

‘물론 실제로도 태풍이 압도적으로 시청률이 높기도 했고..’

전생에 대하여 생각이 미치자 민수는 “서쪽 해변”이 태준의 연기 경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기만을 조심스레 바랬다.

‘드라마는 망했어도 윤 배우의 연기 자체는 호평을 받긴 했으니 그건 그렇지 않으려나..’

민수가 생각하는 사이 오프닝과 광고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했다.

“음. 방송 전 광고가 9개인가? 역시 광고가 완판되진 못했네?”

민수의 물음에 태준은 상관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태풍 쪽으로 다 붙었지. 체급 자체도 차이가 났으니깐 태풍에 완판 들어가고 추가적으로 6개 더 들어갔다나?

그만큼 시간 틈 만들려고 피디님이 힘 좀 썼다는 말이 있던데.

그래도 태풍이 워낙 제작비가 세게 들어가서 시청률 20% 이상 못 당기면 그래도 손해일걸?”

“수출에 대하여는 별말이 없나 보네?”

“중국 쪽으로 말은 나오고 있는데 확실한 대답은 없나 봐.

조 선배가 한국에선 탑이라고 하지만 막상 영화만 해서 중국에선 그렇게 인지도가 높진 않아.

영화가 중국 가서 성공하려면 걸리는 부분들이 많잖아. 규제도 좀 많은 편이고.

애당초 조 선배 영화는 조 선배가 탑인데 조 선배가 중국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으니 더 안 가져가려고 하는 거지.

그러니 자연히 인지도가 높아지지 않고 이건 무슨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은 이야기 같은데 사실이 그래.

그래도 시청률 잘빠지고 드라마 완성도가 높다고 확신이 들면 중국 쪽에서도 가져갈 거야. 아마 이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화면 안에서는 피곤해 보이는진 수가 동료 의사와 이야기하고 있다

[야, 닥터 진. 왜 그렇게 피곤해 보여. 정신상담과 쪽으로 자리 옮겼는데 어째 외과 쪽에서 공부할 때 보다 더 힘들어 보이냐.

조금 쉬엄쉬엄해. 환자들이 자기보다 더 아파 보이는 의사를 보면서 안심하고 상담받을 수 있겠냐?]

동료 의사의 타박에 진 수는 애써 웃음 지으며 기지개를 켠다.

[여기도 편하진 않네.

몸을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사람들만 상대하다가 정신으로 섬세하게 대해야 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려니 더 힘든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내가 도움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좀 쉬면서 하라고 타박하던 동료 의사가 떠나가자 작게 웃음 짓던 진 수의 표정이 다시 피곤함과 씁쓸함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외과 의사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진 수가 얼마나 노력하고 고통받고 그리고 결국 손 떨림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여 수술 중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 외과를 포기하는 장면들이 적절하게 소개되었다.

[후.. 사람 살리러 외가로 갔다가 사람 망치고 쫓겨났으니. 여기에서라도 어떻게든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진 수는 조용히 자신의 일터인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윤 진이 등장하는 모습이 잡혔다.

설아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윤 진이 진 수와 상담하는 내용을 한 컷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와, 선배님. 협박꾼 전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환자 전문이네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설아가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민수는 작은 만족을 느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제가 또 전문 분야를 이렇게 넓혀 가네요.”

화면에서는 자신의 노력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고 있는 윤 진의 상태에 기운 빠져 하는진 수의 모습과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윤 진의 상태를 완화 시키기 위해 공부하는진 수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간다..

점점 병력이 심각해지는 윤 진 결국 윤 진은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악몽에 절망하여 주저앉게 되고 세면대에 부여잡고 울부짖는 씬으로 그 정점을 표현했다.

“어쩜.. 저 장면은 나중에도 이야기가 좀 나올 거 같은데요. 영상 자체가.. 드라마라기보다는 그냥 영화 같네요”

“맞아. 주연 배우가 둘뿐이라 킵한 제작비로 영화 쪽 스텝하고 장비들까지 다 빌려 왔더라고.

촬영 감독님도 그쪽 분인데 섬세하게 잘 찍기로 유명하신 분이야.

다른 건 몰라도 영상미는 아마 최고일걸”

태준이 설명하는 동안 결국 자살을 결심한 윤 진이 마지막으로 진 수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약을 삼키고 약통을 떨어뜨리는 장면으로 죽었음을 암시했고 그 시간에도 서적을 탐구하는진 수의 모습에서 상반되는 애잔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다음날 윤 진의 사망 소식을 접한 진 수는 윤 진의 빈소에 혼자 상주로 자리 잡았고 아무도 오지 않는 빈소를 지키며 멍하니 웃고 있는 윤 진의 영정 사진만 바라본다.

[그래.. 너도 저렇게 웃고 있던 시간이 있었구나]

진수의 작고 허망한 목소리는 텅 빈 빈소에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3일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화장을 한 윤 진의 뼛가루를 든 진 수는 의사 가운을 바로 벗어 던지고 무작정 서해안으로 향하여 차를 몰았다.

[그래.. 보러 가자.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그 서해안 바다를.]

그렇게 “서쪽 해변” 의 제1화가 막을 내렸다.

“흠… 이거 생각보다는 재미있는데요.”

설아가 평가하자 태준은 가볍게 웃었다.

“아, 그래? 생각보다는 다행인데. 내가 봐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잘빠진 거 같아.”

안심하고 있는 태준을 보며 민수는 “서쪽 해변”의 1화가 자신이 보았던 전생의 1화보다는 더 잘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어쩌면.. 생각보다는 망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래도 이거 앞으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잖아.?”

“그렇지. 원래 목적이 힐링 드라마니까.

피폐해진 진 수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고 웃음을 얻는 것이 드라마의 주제니까 아마 분위기는 점점 달라 지겠지..”

민수는 태준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윤 배우님. 제가 처음 찍은 드라마가 개 망작이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데요. 주연배우로써 끝까지 수고해 주시죠?”

“네네, 정 배우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네..”

우리가 웃으며 장난칠 수 있었던 만큼 만족한 “서쪽 해변”은 생각보다 선전하고 있었다.

이희연과 윤태준의 이름값으로 4.5 프로라는 케이블 드라마 치고는 엄청나게 좋은 시작을 한 “서쪽 해변”은 3화 4화에 빚을 받으러 나타난 불량배들을 배에서 따돌려 도망치는 장면에서 자체 시청률을 갱신하여 6.7%를 기록하는 등 좋은 분위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

예상외의 선전에 좋은 기사들도 양산되었고 아마 이대로 간다면 나름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리라.

물론 대작이라는 드라마 “태풍”은 이미 시청률 24%를 넘어가며 축제 분위기를 이어 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초반 네거티브만 빠졌는데 이 정도로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다니. 드라마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군”

민수는 자신의 참전이 드라마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렇듯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민수는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연기 밤에는 운동, 끝나고는 “힐링멘토” 탐방 이라는 판에 박힌 듯 같은 일과를 보내고 있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강환 선생님에게 호흡에 대하여 교육받기로 한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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