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9화 (19/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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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면.. 그 7층 헬스장에서 설아씨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 운동 말이죠?”

“네! 그 운동이요.”

민수의 얼굴이 썩 좋지 않자 설아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 원래 처음부터 권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선배님 사시는 곳이 너무 멀기도 했고 9시면 바로 돌아가시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여기서 바로 머무르시니 충분히 시간이 되시지 않겠어요.

오고 가며 버리는 시간 대충 3시간, 운동하는 시간은 대충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적으로도 충분히 여유가 있고.

그리고 사람이란 게 원래 한 가지만 너무 몰입하면 시야가 좁아져서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 법이라고 했어요.

건강도 챙기고 여유도 챙기고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어때요?

끌리지 않나요?”

마치 렙퍼처럼 말을 다다다 이어 나가는 설아의 모습에 민수는 어이가 없긴 했지만,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었다.

연기에 집중할 3시간을 벌기 위해 숙소를 옮긴 것이지 다른 것에 투자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깐.

“아니, 지금 그 표정 딱 거절하려는 거 같은데요. 지금 제 착각이겠죠?

설마 진짜 거절인가요?

아니 도대체 왜? 선배님 진짜 남자라면 저처럼 절정 미녀의 러브콜을 냉정하게 거절할 수가 있어요?”

바로 거절하려는 민수는 설아에 말에 순간 멈칫하게 되었다.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군.

아마 내가 보통 내 나이 때의 남자였으면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연기 연습을 하는 중에 10시간을 12시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설아의 제안을 거절하진 않을 거야.

설마 벌써 연기에 대한 집중력과 몰입도가 생각 이상으로 올라간 건가..’

그리고는 연기에 대한 욕심 자체를 조금 내려놓고 객관적으로만 생각해 보려 노력했다.

민수는 분명 설아에게 관심이 있었다.

아름다운 용모와 목소리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적인 모습.

그리고 가끔 보여주는 엉뚱한 귀여움.

비록 여성적으로 보다는 인간적인 관심이 훨씬 크더라고 할지라도 관심이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좀 가져도 괜찮을 거 같았다.

상담의 선생님이 같은 부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했으니 제법 좋은 시간이리라.

그리고 민수는 요 며칠 연습실에서 온종일 연기연습만 하고 차량에 탑승해 있는 시간만 가진 자신의 몸이 조금 뻐근해진다고 느꼈다.

‘그렇네.. 몸이 건강해야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설아의 제안은 제법 얻는 바가 많은 좋은 제안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는 모습에 댕댕거리고 있는 설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니, 중간 중간에 이상한 단어가 끼어 들어가 있는 건 제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설아 씨가 제 몸 걱정해서 운동하자고 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솔직히 이유 정도는 듣고 싶네요”

설아는 민수의 말에 조금 고민하더니 주저하며 대답했다.

“저.. 그럼 정확히 이유를 대답하면 같이 해주시나요?”

민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설아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요즘 너무 힘들어요.

안 되는 대사 연습만 주구장창 하는데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없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원래 제가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단순히 운동으로 풀 수 있는 스트레스의 정도를 넘어섰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누구를 가르치면서 빡빡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같이 할 사람이 없어요”

“아니, 설아 씨. 친구 없어요?”

친구 없냐는 민수의 말에 설아가 빽하고 대꾸한다.

“있거든요. 친구. 완전 있거든요.

그런데 친구를 어떻게 소속사 헬스장으로 데려와요?

걔들은 제가 배우 지망생인지도 모르는데.”

설아의 말에 민수는 한숨을 지었다.

“설아 씨, 세상에는 참 많은 헬스장이 있어요. 여기만 헬스장이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민수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하자 설아는 완전 전투 모드에 들어간 듯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저도 알거든요.

세상에 헬스장 많은 거.

근데 다른 곳에 가면 운동을 못 하는데 어떡해요.

뭐, 좋아요. 전 다 말했어요. 할거에요. 말 거에요?”

“그러니깐 한마디로 내가 지금 스트레스가 왕창 쌓여서 데리고 놀 심심풀이 땅콩이 필요한데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 장난감이 되어서 좀 놀아줘라.

이거네요?”

민수의 한마디에 설아의 전투모드는 단박에 식어서 우물쭈물 대답한다.

“아니, 뭐 꼭 그렇게 얘기 할 건 없잖아요.

제가 이래 봬도 나이는 어리지만 정말 유능한 피지컬 트레이너랍니다.”

“아니, 굳이 배우가 피지컬 트레이닝까지 필요하진 않을 거 같지만 어쨌든 알았어요

좋아요. 같이 같이해요.

대신 설아 씨도 나중에 제 부탁 한 가지 들어주시는 겁니다?”

“네, 좋아요”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신나 하는 설아를 보며 민수는 피식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참 아직 어리긴 어리네’

“그나저나 운동은 몇 시부터 하는데요?”

설아는 시계를 보며 인위적인 상큼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바로 지금부터요!”

민수가 시계를 보니 시간은 8시에 이르러 있었다.

“일부러 이 시간에 온 거군요.”

설아는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흔들었다.

“물론이죠. 사람들이 약속만 하고 잘 지킬 질 않아요. 특히 저희 오라버니가.”

설아의 말에 웃으며 민수는 설아를 따라 헬스장으로 향했다.

가벼운 운동복차림의 민수가 헬스장의 여러 기구를 살펴볼 때 설아는 바로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에 들어갔다.

‘참.. 어이없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그야말로 개인 헬스장 아냐 이거.’

민수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설아가 나왔다.

가벼운 칠부 레깅스에 탱크 톱형 상의 운동복 일반적이라면 일반적인 평범한 운동복이지만 설아가 입으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설아의 남다른 굴곡에 민수는 순간적으로 눈을 돌리고 말았다.

‘와.. 씨.. 뭐야 저거 저 정도면 그냥 평범한 운동복인데.. 와.. 윤설아 참 대단하긴 대단하네.

다른 헬스장 가면 운동 제대로 못 한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파리들이 미친 듯이 들끓을 테니 어떻게 운동을 집중해서 할 수 있겠어?’

자신의 상식이 조금 파괴는 기분을 느끼며 곤란해하는 민수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설아는 배실배실 웃으며 민수에게 말을 건넸다.

“자자, 운동의 기본은 우선 러닝 이죠. 러닝으로 슬슬 몸을 풀고 본격적으로 시작해 봅시다.”

‘후.. 진정하자 앞으로도 당분간 같이 운동할 건데. 익숙해 져야지’

애써 침착함을 되찾은 민수는 설아와 옆에서 같이 러닝머신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한참을 같이 운동했을까. 설아는 자신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이 상황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무슨.. 선배님 무슨 운동을 이렇게 잘해요?

체력은 또 왜 이렇게 좋고요? 아니 자고로 트레이닝을 받는 학생이면 어? 처음 하는 동작에 괴로워도 하고 근력운동 하면서 엄살도 부리고 어?

스트레칭을 하면서 비명도 지르고 어?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설아가 발을 구르며 억울해하자 민수는 그 모습이 사뭇 귀여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러게요. 그래야 하는데.. 제 몸뚱이가 생각보다 성능이 좋네요”

사실 설아의 트레이닝 코스는 남자라도 비명을 터뜨릴 정도로 힘든 코스였다.

운동이 유일한 취미인 설아답게 설아의 체력은 보통의 남자보다 월등이 우월했고.

그런 설아도 완벽히 운동이 될 정도로 하드 트레이닝이었다.

예전에 태준도 같이 하루 해보고 다시는 설아랑 운동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힘든 과정을 민수는 너무나도 수월히 소화해 내고 있었다.

“체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유연성은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건 진짜 남자가 못할 만한 거로 완전히 노린 거였는데”

억울해하는 설아의 모습을 보며 민수는 자신도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체력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아졌네.

날 잡고 한번 심각하게 정리를 해봐야겠어. 내가 얻은 것에 대하여.’

민수는 평소에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부대에 있을 때도 체력은 거의 최상급으로 인정받았고 훈련도 무조건 요령 부리지 않고 FM으로 소화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상태는 그것과는 완전 달랐다.

평소에 그냥 연기 연습 같은 정적인 생활을 할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몸을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자 그 차이가 확연했다.

민첩성, 근력, 반사신경, 지구력 모든 것이 우월했다.

그리고 애당초 근육의 질감 자체가 완전 달랐다.

예전에 단단한 근육이 아니라 부드럽지만, 탄력 있는 근육이었다.

‘단단하지 않고 탄력적인 근육인데 이런 엄청난 힘을 낼 수 있다니.’

그리고 가장 다른 것은 몸의 제어였다.

지금 민수는 자신의 생각대로 몸 하나하나 모든 부분을 제어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바로바로 반응하고 조절되는 몸의 움직임은 민수로서도 생소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우씨..”

운동을 마치고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실망한 설아를 웃으며 배웅하며 민수는 자신의 집으로 결정된 옥상 집으로 천천히 걸어 갔다.

한편 자신의 집에 도착한 설아는 불퉁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현관에 들어섰다.

집안에는 자신의 엄마와 오늘은 야간 촬영이 없는 윤태준이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왔어요”

설아가 퉁명스레 인사하자 민 여사는 웃으며 설아를 반겨 주었다.

“우리 공주님, 또 왜 이리 뿔이 났어?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니?”

“아니에요.”

설아는 아직도 무엇이 억울한지 투덜대며 헬스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하하, 그러니깐 너의 그 지옥 18단계를 아무런 고통 없이 그냥 통과했다고.”

“어, 깨끗하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그러니깐 요약하면 골려 줄 생각으로 같이 운동하자고 했는데 너보다 더 잘해서 심통이 났다

그런거지? 이것아 마음을 좀 곱게 써. 야.

그리고 그 녀석 부대에서 전문적으로 몇 년은 훈련한 사람인데.

네가 아무리 일반인 중에 좀 체력 좋아도 쉽게 이길 수 있겠냐?”

부대에 훈련에 대하여 뭔가 착각을 하는 태준의 말에 설아는 빽하고 소리쳤다.

“아니거든! 부대 훈련보다 내 18코스가 더 빡세거든! 운동은 나의 자존심이거든!”

설아의 운동코스가 힘들다는 것은 한번 경험했다가 학을 떼고 다시는 헬스장에 접근도 하지 않는 태준도 인정하긴 하는 바였다.

“그 아이가 체력도 그렇게 좋구나.

오늘 그 아이가 날 보고 설아의 언니 되냐고 묻는데 그 샤방한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얘기하는데 제법 귀여운 것이 살짝 마음이 설레는 거 아니겠니?”

자신의 엄마의 말에 설아는 무언가 잘못 먹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엄마가 좀 심히 동안이긴 하지만 그건 너무 아부성 멘트 아니야?”

“어머 어머, 얘는.. 그런 예쁜 말을 진심으로 했으니깐 귀여운 거지.”

어머니의 말에 피식 웃으며 태준이 말했다.

“야, 너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정배우랑 잘 지낸다. 너 남자들한테는 엄청 거리감 멀게 대하잖아?”

태준의 말에 설아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민수와 퍽 사이좋게 지낸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며 대답했다.

“그건 그렇네, 근데.

음.. 민수오라비는 좀 다르달까. 음… 우선 좀 편한 느낌이고.

게다가 날 보통 배우 지망생만으로 봐주는 것 같아서 그것도 좀 좋고.

그 왜, 나 예뻐진 후부터 남자들이 얼굴하고 몸만 보면서 질척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짜증 났는데 민수오라비는 전혀 그럴 생각 없어 보이니깐.

그 오늘 보니 운동복 입고 짠하고 나갔더니 슬쩍 보더니 훅 놀라서 고개 살짝 돌리더라고.

보통은 그 뒤에 은근슬쩍 힐끔대는데 민수오라비는 전혀 관심 없고 운동만 하더라고.

뭐 두서는 없는데 종합하자면.. 역시 그냥 좀 느낌이 좋고 편하다. 그런 거겠지.

아니 그러는 오빠도 첫날부터 끌고 가서 폭풍 수다 떨던데.”

태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냥, 나도 그렇게밖에는 말 못 하겠네.

야 내가 사람을 가리고 싶어 가리냐?

예전에는 머 얻어먹을까 기웃거리는 애들뿐이었고.

요즘은 다 깎아내리려고 번뜩이는 하이에나뿐이라서 그런 거지.

근데 그 녀석은 그냥 뛰어난 선배 배우로의 선망이나 향상심만 느껴지더라고.

사감 없이 그냥 배우 윤태준만 보는 거지.

나한테 바라는 게 없으니 그래서 나도 편한 거 같아.”

“어머… 그 아이. 샤방하니 잘생겼고 말도 예쁘게 하니 귀엽고 윤 대표님이 정성을 다할 정도로 재능있고 태준이랑 마음 맞게 잘 지낼 정도면 인성도 괜찮고, 심지어 체력까지 좋다니.

설아야. 딱 이구나.

결혼하는 게 어떻겠니~?”

“큭큭. 나도 찬성. 저 망나니를 데려갈 용사가 드디어 우리 곁에 강림했도다.!”

“됐거든!!!”

엄마와 오빠의 장난에 설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그렇게 윤 대표의 집은 평화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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