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8화 (18/325)

# 18

1

본격적으로 연기 수업을 듣게 되면서 민수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면 바로 소속사로 출근 그리고 밤늦게까지 주어진 대본 분석 그리고 연기 촬영.

그리고 다른 배우들의 대본과 흡사한 연기 영상 분석까지.

그리고 밤늦게 퇴근하여 바로 숙소에서 취침.

이렇게 3일을 보낸 민수는 점점 출퇴근하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시간도 아까운데 말이야. 게다가 오랜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몸의 피로도를 누적시킨단 말이지. 뭔가 특별한 방법을 생각해 봐야 되겠는데..”

결심한 민수는 우선 자신의 매니저인 이동원에게 자신의 의견을 물었다.

민수의 말을 들은 동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민수에게 사과했다.

“제가 조금만 빨리 준비가 끝났으면 직접 모시러 갔을 텐데. 앞으로도 며칠은 더 기다려야 차량이 나옵니다. 그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하지만 민수는 동원이 자신을 데리러 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동원이 사는 곳은 서울 동쪽 외곽 지역이라는데 민수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소속사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동원은 6시 이전에 출발해야 한다.

스케줄 때문도 아니고 배우의 개인 연습 때문에 그 정도의 수고를 끼치는 것은 적어도 민수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민폐였다.

민수의 뜻을 전해 들은 동원은 그것이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피력했지만, 민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나중에 진짜 자신이 너무 유명해져서 혼자서 길을 못 걸을 정도가 되면 그때 부탁하자고 웃으면서 동원을 달랬다.

“음.. 우선 제 생각은 가까운 곳으로 잠시 숙소를 옮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해 보여요.

그런데 이 근처에 마땅히 머물만한 곳이 있는지가 걱정이네요.”

민수의 말을 들은 동원은 잠시 생각해다 대답하였다.

“이 근처에 아파트나 오피스텔도 있긴 합니다만.. 음.. “

뭔가 떠오른 듯한 동원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주위를 살짝 살펴보고 민수에게 말했다.

“그.. 차라리 대표님께 여쭈어봄이 어떨는지요.

사실 대표님이 허락할 지는 모르겠지만 대표님께 좋은 장소가 하나 있긴 합니다.”

조심스럽게 말하는 모양이 이상스럽긴 했지만, 대표님께 좋은 방법이 있다는 소리에 민수는 용감하게 대표실로 출발했다.

대표실에 앞에 도착한 민수는 대표실에 노크하고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문안에서는 윤 대표와 설아를 매우 닮은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민수는 대충 훑어보고 설아로 착각하고 인사를 건네려다가 설아보다 많이 성숙한 모습에 당황하며 말을 건넸다.

“아, 그 죄송합니다. 혹시 설아 씨 큰 언니 분 되시나 보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정민수라고 합니다.

민수의 말을 들은 여성은 입을 가리고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호호, 말을 기분 좋게 하시는 분이시네요. 설아 어미 되는 민아리라고 해요. 반가워요.”

민수는 이제 30대 초 중반 밖에 되어 보이지 않은 여성이 설아의 어머니라는 소리에 놀란 표정으로 윤 대표를 쳐다보았다.

“그.. 그럼 대표님의 사모..님??”

민수가 놀라서 윤 대표를 날강도 보듯이 쳐다보자 윤 대표는 짜게 웃으며 민수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래, 정 배우는 웬일로 연습실이 아니라 대표실을 찾아 왔나?”

윤 대표가 목적을 묻자 민수는 번뜩 제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용건을 천천히 윤 대표에게 풀어 놓았다.

“그래? 흠. 그럼 주변에 오피스텔을 알아보는 게 나으려나…”

윤 대표가 혼자서 생각에 잠기자 민 여사가 조용히 말했다.

“왜 굳이 외부에서 찾아요?

내부에 기거할 만한 곳이 있잖아요.

민수 씨라고 했죠. 나를 따라올래요?”

민 여사가 민수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윤 대표는 성급히 민 여사를 막으려 했다.

“민여사, 설마….”

윤 대표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민 여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윤 대표님, 제가 안내할게요.”

그렇게 윤 대표는 말을 하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고 민 여사는 민수를 데리고 대표실을 나섰다.

민 여사가 민수를 이끌고 이동한 곳은 이 건물의 옥상이었다. 옥상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옥상 한 편에 조그마한 집이 지어져 있었다.

민 여사가 집의 현관문의 번호키를 눌러 열자 민수의 눈앞에 집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은 하나였지만 한쪽에 부엌과 이어져 있었고 벽면 침대 정면으로 벽걸이식 티브이가 설치되어있었다.

그리고 화장실과 연결된 목욕탕도 제법 넓었다.

방안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은은하게 좋은 향이 민수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몇 년 동안 쓴 사람이 없는 방이지만 깨끗할 거에요.

그냥 이불 하나와 옷가지만 들고 들어 오시면 돼요.

티브이나 노트북 가전제품은 편하게 사용하시고요.”

“네, 사모님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들뻘인데 말씀 편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민수의 말에 민 여사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호호, 그럼 그럴까. 그럼 잠시 밖으로 나와봐.”

민수가 민 여사를 따라 밖으로 나서자 민 여사는 설명을 시작했다.

“따로 밤중이라도 나갈 일이 있으면 외부 계단을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가면 돼. 물론 보안은 걱정하지마.

올라오는 계단은 번호 키로 잠겨있고 비밀번호는 직원들만 알고 있으니깐.

물론 CCTV도 24시간 촬영 중이고.

현관문의 번호키도 같은데 그것도 직원들은 알고 있어.

혹시나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들어와서 조치를 취해야 하니깐 그 정도는 이해해 주길 바랄게.”

“네, 감사합니다. 사모님.”

민수의 대답을 들은 민 여사는 민수를 살짝 흘겨보았다.

“얘는 그 얼굴로 자꾸 사모님 사모님 하지 말아 줄래?

내가 제비 키우는 강남 여회장 같잖니…. 그냥 민 여사님이고 불러.”

장난스러운 민 여사의 말에 민수는 윤태준과 윤설아의 장난기가 어디서 왔는지 한 번에 확신할 수 있었다.

“네, 민 여사님 감사합니다.”

민수가 고개 숙여 감사해하자 민 여사는 조용히 돌아 대표실로 돌아갔다.

민 여사가 대표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후 민수는 다시 한번 집 안으로 들어섰다.

“와.. 집 진짜 좋네.. 누가 살던 집이지?

대표님은 이 집을 나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하시지 않는 눈치였는데.

뭐 누구 집이면 어떠하리.

지금 당장은 내가 묵게 되었는데. 당분간 감사히 묵겠습니다.”

민수는 집을 확인하고는 바로 자신의 숙소로 짐을 가지러 돌아갔다.

한편 민 여사는 다시 대표실로 들어가 윤 대표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방이 매우 깨끗하더라고요. 그 집.. 아마 당신이 가끔 정리 하고 있는 거였겠죠?”

“그래, 맞아. 그랬지.”

“왜 그러셨어요?”

“글쎄, 왜 그랬을까.”

대답하는 윤 대표의 얼굴에 짙은 허무함이 묻어있었다.

“제가 말해 볼까요? 당신이 왜 그랬는지?”

“아니, 그러지 마. 나도 알고 있으니깐.”

잠시의 시간 동안 대표실은 정적으로 물들었다.

“민수란 아이 3일 동안 새벽 출근하고 막차 퇴근하고 있다죠?”

민수의 이야기가 나오자 윤 대표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렇다는군. 찍어 올라오는 영상도 하루에 수십 개씩 되지. 내 생각에는 아주 빠르게 연기가 자리 잡을 것 같아.”

“온종일 연기만 하니까요?”

“이제 며칠 되지 않았는데 이런 말 하기는 좀 웃기긴 하지만 그 녀석은 투자하는 시간의 밀도가 달라 그 녀석의 한 시간과 다른 배우의 연습시간 한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더라고.

“그럼 좋은 배우가 되겠네요.”

민 여사의 좋은 배우라는 말에 윤 대표는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래.. 좋은 배우 좋은 배우가 되어야지…. 그랬으면 좋겠네..”

민수는 자신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이불 하나와 옷가지를 큰 가방 하나에 담았다. 그리고 자신의 방을 잠시 살펴보았다.

“방을 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얼마나 그곳에서 묶을지 모르니깐.

게다가 올해 1년 방세는 이미 이모님께 드린 상태고. 흠 그래도 이모님께 인사는 드리고 잠시 방을 비운다는 말씀은 드려야겠다.”

근래 워낙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서 인사를 드리지 못했지만 민수는 그래도 이모님께 자주 인사를 드리곤 했다.

아니 사실은 인사를 드릴만 한 분이 이모님뿐 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이모님은 민수가 인사를 드리러 벨을 누르자 평소의 그 푸근한 표정으로 민수를 반겨 주었다.

“어머, 민수총각 잘 지냈어?”

환한 미소를 짓는 이모님께 민수는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아마 당분간 집에 들르지 못할 거 같다고 알려 드렸다.

“어머, 그럼 민수총각이 티브이에 나오는 거야?

오늘 얼굴을 보니 민수총각 얼굴이 완전히 피었네.

호호 연기 연습하는 것이 재미있나 봐. 요 일 년 아니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본 표정 중에 제일 보기 좋네. 호호”

이모님의 말씀을 들은 민수는 작게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그러게요. 이모님 재미있네요.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호호,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고들 하잖아.

내가 민수총각 티브이에 나올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

이모님의 응원 아닌 응원을 들으며 출발한 민수는 다시 소속사 옥상 이제는 잠시 기거할 자신의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짐을 풀고 있는데 노크를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설아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와.. 선배님 옥상 집 주거 허락받으셨다면서요?”

웃으며 들어오는 설아를 보며 민수는 목소리를 깔고 조용히 말했다.

“어딜 과년한 처자가 남정네 혼자 묵는 방에 함부로 들어오십니까? 당장 나가시지요.”

민수의 말에 설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방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우, 우리 선배님 참 처음 뵀을 때부터 느꼈는데 너무 세련되지 못하셔.

요즘 시대에 어떤 남녀가 그렇게 내외하면서 지내요?

그러니깐 아직까지 연애 한 번 못 하시고 고백연기에 버버벅 대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의도치 않은 모쏠 커밍아웃 이후에 그것과 관련되는 주제가 나올 때마다 나오는 설아의 맹공격에 민수는 이를 바득 갈았다.

“아니, 그러는 설아 씨는 참 연애 경험이 많아서 좋으시겠습니다?”

민수의 말에 흠칫한 설아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콧대를 세우고 턱을 치켜세웠다.

“다. 당연하죠. 호호 전 무수히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답니다.

사람의 얼굴은 써먹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선배님 얼굴처럼 뒀다 국 끓여 먹으라고 있는 게 아니고요”.

설아의 말을 들은 민수는 피식 웃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설아 씨, 전 설아 씨가 지금까지 모태솔로라는 것에 제 두 팔모가지를 걸 수 있습니다. 설아씨는 무엇을 걸 수 있으신가요?”

민수는 설아가 모태솔로임을 확신했다.

그것은 전생에 우연히 윤태준이 예능에서 나와 자신의 동생인 세라가 24살까지 모태솔로였다고 말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설아가 태준 몰래 연애를 해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보이는 설아의 행동 양식을 미루어 봤을 때는 그런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민수의 확신에 찬 발언에 설아는 가만히 인상을 쓰며 말을 돌렸다.

“역시 방이 참 좋네요. 예전에 제가 여기서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한테 등 짝을 얻어맞았는데 말이죠.”

설아의 말에 민수는 웃음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저라도 모태솔로 딸아이가 아무리 소속사 건물이라지만 밖에서 산다 그러면 등짝을 때려서 응징할 것 같네요”

“에이, 선배님 자꾸 그러실래요?”

이제 짐을 다 풀고 설아 곁으로 다가온 민수는 설아를 바라보았다.

“자, 그래요. 설아 씨. 단순히 방 구경하러 오신 건 아니실 테니 이제 목적을 슬슬 말씀해 보실까요?”

민수가 묻자 설아는 놀라며 대답한다.

“와, 눈치 되게 없는 거 같은데 이런 때는 참 귀신이시네요”

감탄하던 설아는 민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한다.

“저, 사실은요. 그게… 음… 저랑 운동을 같이 해주세요!”

당당하게 같이 운동을 해 달라는 설아의 말에 민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운동이란 게 여기 헬스장에서 같이 운동을 하자 뭐 그런 뜻인가요?”

민수가 확인 차 묻자 설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말이에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