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7화 (17/325)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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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모든 고민을 정리하고 가뿐한 기분으로 윤엔터에 도착한 민수는 대표실에서 윤 대표와 마주했다.

윤 대표는 민수의 얼굴에 근심 한 점 없는 것을 보고는 작게 한숨을 지었다.

“네 녀석 얼굴을 보니 전혀 연기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구나.”

“에이, 대표님. 어차피 지금 당장 제 병, 특별히 병은 아니지만, 그냥 병이라고 표현할게요.

제 병을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몰입증상을 계속된다고 하는데.

조금 더 위험하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걸 피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니 이제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민수가 밝은 표정으로 말하자 윤 대표도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나도 막지는 않으마.

대신 사후관리는 확실히 받자. 되도록 예방도 잘해 보고.

더 큰 건이 걸려 버려서 잊혔지만 카메라 공포증에 대한 징후도 섬세하게 관찰하도록 해야겠다.”

민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 동의했다.

“좋다. 그럼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연기 교습은 일주일에 하루만 하게 될 것이다. 하루 동안 교습과 과제를 받고 그 다음 주에 과제를 확인하고 그에 관련된 교습을 받고 그렇게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3주 뒤부터는 따로 호흡과 발성에 대하여 교육도 같이 진행될 것이야. 호흡에 관련된 것은 그쪽으로 전문가인 강환이가 봐주게 될 거야.”

민수는 강환이 호흡을 봐준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허.. 연기 호흡 스페셜리스트 강환 선생님이..’

전생에서 민수는 강환과 약간의 인연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민수가 몸담게 된 극단이 강환이 지원하는 극단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민수가 연습하여 몸에 익히고 있는 호흡 방법도 강환이 평소에 극단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던 호흡이었다.

“좋네요. 강환 선생님이라니..”

연기 경력이 일천하고 나이가 어린 민수가 방송이나 영화로 활동하지 않는 강환을 알고 있다는 것이 윤대표에게는 의외라고 생각하였다.

“너도 강환이 누군지 알고 있었니?”

“그럼요. 지금 대학로에서는 가장 잘나가시는 배우님으로 알고 있는데요.

윤배우가 강환선생님이 우리 소속사에 속해 있다고 말해서 조금 놀란 적이 있었거든요”

“알고 있다면 설명이 쉽겠구나.

환이가 연극판에서 몸을 오래 담고 있어서 호흡에 관해서는 전문가야. 그러니깐 배울 기회가 있을 때 많이 배우도록 해라.”

“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럼 정작 연기는 어느 분이 가르쳐 주시나요?”

민수의 의문에 윤 대표는 헛기침을 하면서 대답했다.

“연기는 내가 가르친다. 지금 소속사에 노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연기지도 선생님이 윤 대표임을 안 민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와, 윤 대표님께 배운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구나.’

예전에 보아온 윤강철의 연기는 그 자체로 민수에게는 이상향과 같았다.

게다가 윤 대표가 직접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 민수는 자신이 소중하게 대우받는다고 느꼈고 전생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특급대우에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민수가 진심으로 인사하자 윤 대표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야지. 한국에서 나 정도 되는 연기 선생에게 연기 지도받을 수 있는 신인배우는 손에 꼽을 거야.

그러니 열심히 해야지. 자 그럼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자.

제1 연습실에 가 있어라 필요한 것을 가지고 바로 내려가도록 하마”

연기 교육이 결정되자 민수는 서둘러 1 연습실로 내려갔고 윤 대표는 자료실로 가서 한가지 자료를 챙겨 1 연습실로 이동했다.

제 1 연습실에 도착한 윤 대표는 민수가 촬영한 1번씬을 재생한 후 같이 시청하며 몇 가지 사항을 지적했다.

“우선 민수, 너의 연기는 기본적으로 너무 과장되어있어.

이게 무슨 말이냐면 너는 모든 상황에서 감정을 끝까지 뽑아내려 한다는 것이야.

같은 슬픔이라도 강도에 따라 슬픔의 표현을 조절 할 수 있어야 해.

적어도 감정의 고조 정도에 따라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정도는 스스로 제어 할 수 있어야 기본적으로 감정연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너는 지금 처음부터 끝까지 10단계로만 감정을 표현하고 있어.

강환이는 이거 보고 연극에서 단역으로 10년을 굴러먹은 거 같이 필사적으로 감정을 뽑는다며 단역으로 경력이 많은지 궁금해하더구나.”

윤 대표의 말을 듣던 민수는 속으로 뜨끔한 생각이 들었다.

윤 대표의 말대로 단역들은 자신을 조금이라도 어필하기 위하여 발악하듯 감정을 뽑아내곤 했는데 아마 자신도 오랜 기간 무명으로 지내면서 그런 식으로 연기하는 것이 무의식중에 몸에 밴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고쳐야 하는 버릇이야.

어떠한 감독도 자기감정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배우를 주연배우로 쓰지는 않아.”

그러면서 다시 윤 대표는 씬2를 재생하였다.

“차라리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연기한 이 씬이 첫 번째 감정연기보다는 훨씬 좋은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선 감정 부분에 관하여는 그 조절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도록 해.

특히 너처럼 연기 자체를 과몰입하는 배우는 더더욱 감정 조절에 민감해야 해”

그리고 다시 윤 대표는 씬1을 재생했다.

“그리고 다음 이해와 해석에 대하여서 인데.. 넌 경험이 아직 너무 적어서 그런지 해석 자체가 너무 일방적이고 편협적이야.

이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이해도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고.

대본을 그냥 써진 대로만 연기한다고 표현 할 수 있겠지.

여기서 넌 스스로에 대한 절망감과 상대를 매몰차게 대하는 것만 연기 했는데 그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겠니?”

민수는 대본을 보고 자신이 느낀 것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음.. 대본에 자신의 상황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강제로 떠나보내려 한다고 표현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러한 상황에 부닥친 자신에 대한 절망과 그 여자를 떠나보내기 위해 어투와 태도를 매몰차게 표현하게 되었어요”

민수의 말에 윤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하지만 정 배우 잘 봐. 대본의 뒷부분에 보면 그 뒷이야기가 있어.

그곳을 읽어 보면 배역의 인물은 지금 스스로 처한 절망스러운 상황에 굴복하지 않았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따로 돌파 점을 모색하고 그에 대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거지.

그에 따라 절망의 표현도 조금 달라져야 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비교를 하자면. 음.. 그래. 같은 장소에 같은 금액을 빚진 두 남자가 있는데 한 명은 스스로 전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을 생각하고 있고.

한 남자는 어떻게든 빚을 갚기 위해서 요행이라도 바라는 심정으로 복권을 꾸준히 사고 있어.

과연 이 두 남자가 느끼는 절망감은 같은 것일까?

둘 다 빚을 갚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 같다고 할지라도 말이야.

내 생각에는 이 부분에서 정배우가 한 연기는 첫 번째 남자에 가까운 것 같아.

그러나 실제로 대본 전체에서는 저 남자가 최소한 두 번째 남자에 더 가깝다고 서술하고 있지.

어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니?”

윤 대표의 말을 민수는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일관적으로 매몰찬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꾸나. 남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자. 남자는 여자를 보낼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대사가 표현된 대본에는 분명 남자는 여자를 떠내 보내게 일부러 매몰차게 대꾸한다고 적혀 있었지. 그런데 과연 남자의 마음속에는 그런 마음밖에 없었을까?

잘 읽어 보면 남자는 자신이 성공한 후에 다시 여자를 찾아 나서 물론 찾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네가 만약 이런 내용을 전체를 가지고 찍는 영화에 주연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넌 방금이 씬도 찍어야 하고 나중에는 여자를 찾아 헤매는 씬도 촬영을 해야 해.

그런데 너처럼 그렇게 연기를 하면 관객들이 나중에 남자가 여자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고 과연 너의 연기에 공감 할 수 있을 까.

아마 많은 관객들이 의문을 가질 거야. 내가 보기에 지금 네가 한 연기에서는 여자에 대한 미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윤 대표의 두 가지 지적은 민수에게 자신의 연기 경력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허허.. 그러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뒤 장면을 염두에 둔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어.’

항상 단역으로 연기해 오던 민수는 진정 뒷이야기를 염두에 둔 연기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오직 지금 나오고 있는 장면을 그대로 연기하는 습관 때문에 캐릭터 구성을 위해서는 대본을 전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부분을 망각해 왔던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캐릭터는 일관성이 있어야 해. 그래야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그 캐릭터에 공감할 수가 있어.

그래서 최초에 캐릭터를 잡을 때 극본의 전체적인 상황을 전부 고려하는 습관을 지녀야 하는 거야.”

설명을 마친 윤 대표는 자신이 가져온 자료 하나를 재생하였다.

“음, 이것이 모범답안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대본 자체의 해석을 충실히 했다고 할 수 있는 자료야 한번 보고 참고하도록 해.”

윤 대표가 재생한 자료에는 윤태준과 처음 보는 여성이 윤엔터 연습실이라고 짐작되는 곳에서 연기하고 있었다. 민수는 태준의 연기를 집중하며 살펴 관찰하였다.

태준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슬픈 눈을 하고는 있었지만 여성을 거의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태준의 눈과는 상반되게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 반면 태준을 설득하려던 여자의 목소리는 비교적 지쳐 보였다.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차갑게 말하는 태준을 보며 여성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태준이 뒤를 돌아서자 눈물을 흘리며 서서히 떠나간다.

하지만 여성은 설아처럼 뒤돌아보거나 그러지 않았다. 반면 태준은 여성이 서서히 멀어져 가자 뒤로 돌아 여성이 떠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태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 내렸다.

이 장면을 보며 민수는 상황에서 주는 몇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남자는 철저히 미련을 가지고 있고 여자를 억지로 보내고 있다.

여자는 이미 여러 번 남자를 찾아왔고 남자의 반응에 서서히 지쳐 가고 있다. 여자를 보내는 남자는 여자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 대하여는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자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를 떠나면서 완전히 남자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다.

이러한 정보들이 예상되면서. 민수는 저 씬의 연기가 대본에 적힌 뒷이야기의 내용과 대부분 상통하며 연결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태준이가 나에게 연기를 다 배웠을 때 졸업시험처럼 테스트했던 영상이야.

아마 처음 보는 대본을 바로 이렇게 분석해서 촬영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하지만 방향은 이런 방식이란 것을 생각하면서 연기 했으면 좋겠구나”

태준의 연기를 보니 자신이 어떤 식으로 대본을 분석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우선, 당분간은 익숙해질 때까지 여러 가지 상황을 받고 그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이해에 대한 것은 재능이라기보다는 경험과 숙달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말아라.”

그리고 남은 시간 윤 대표는 다른 2개의 씬 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3번째 씬을 보던 윤 대표는 바로 인상을 썼다.

“이건.. 이해나 표현 이런 걸 언급할 만한 게 못 되는 구나..”

어색하게 대사를 내뱉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민수는 고개를 숙이며 할 말을 잃었다.

“음… 연기를 하다 보면 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배역을 연기하게 될 수도 있는데 만약 그 배역이 네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배역이라면 우선 그 배역의 전문가를 모방해.

다른 연기자의 연기를 이해하고 따라 하다 보면 자연히 그 배역에 대한 너의 이해도 조금씩 늘어나게 될 거야.”

그렇게 하나하나 지적하고 대화하며 민수의 첫 번째 연기 교습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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