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6화 (1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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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의 인도에 따라 도착한 병원은 그리 크지 않은 정신상담 전문 병원이었다.

윤 대표에 말에 의하면 알게 모르게 많은 연예인들이 상담을 받은 병원이며 윤태준이나 윤설아도 이곳에서 상담받았다고 한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민수의 표정은 편하지 않았다.

윤 대표는 그런 민수를 보며 부드럽게 달래듯이 이야기했다.

“민수야, 카메라 공포증 그거 사실 별거 아니다. 슬럼프를 겪는 많은 배우들이 가볍게 카메라 공포증을 경험하고 그리고 쉽게 극복하곤 했어.

오늘 상담받는 것은 단지 그냥 확인하고 예방하기 위해서야.

증상 초기의 경우는 조금만 신경 써서 관리해 주면 아무 문제 없이 극복 할 수 있을 거다.”

윤 대표의 말을 들으며 민수는 자신이 큰 문제 없기만을 기도했다.

간단한 접수는 이미 완료되었는지 도착하자마자 상담의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와.. 윤 진으로 연기 할 때만 해도 내가 진짜 정신과 상담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어서 오세요. 정민수 씨. 어서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의사의 가운이 아닌 케쥬얼한 복장을 입고 계신 선생님은 전혀 의사 같지가 않았고 그냥 옆집 아저씨 같았다.

민수가 의자에 앉자 상담 의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민수의 기본적인 사항이 적힌 차트를 보며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다.

“아, 정민수 씨 예비 배우님 이시군요. 카메라 공포증이시라고요?”

“음.. 정확히는 카메라 공포증이 예상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군요. 우선 민수 씨의 이야기를 몇 가지 듣고 싶네요”

민수와 상담의의 대화는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상담 의는 민수의 과거의 행동 그리고 그때의 생각을 모두 알고 싶어 했고 민수도 기왕이면 정확한 진단을 받고 싶은 생각에 자신의 과거를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상담 의는 정말로 좋은 청자였다.

민수는 자신의 치부와 같은 과거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중에도 전혀 부끄러움이나 창피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이미 지난 일을 이야기 하듯 그래서 털어 버리는 듯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었다.

긴 이야기가 끝나자 상담 의는 민수에게 물었다.

“음.. 대부분의 내담자분 들은 보호자님들과 같이 상담 결과를 들으시는데 민수 씨는 지금 마땅한 보호자 분이 없으시군요.

그래서 동행하신 윤 대표님과 같이 상담결과를 알려 드리려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마음이 내키지 않으시다면 혼자 들으셔도 무방합니다.”

상담의의 말에 민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윤 대표님과 같이 듣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만약 제게 문제가 있다면 가장 먼저 아셔야 할 분이 바로 그분이니까요”

상담 의는 민수가 허락의 뜻을 표시하자 바로 외부에서 대기 중이던 윤 대표를 호출했다.

윤 대표가 자리에 앉자 상담 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카메라 공포증 여부는 사실 지금 판단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카메라 공포증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인데, 민수 씨의 과거와 지금 말씀하신 증상을 살펴보면 카메라 공포증으로 발전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카메라 공포증에 대하여서는 윤 대표님이 정말 잘 아실테니..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사실 이건 가벼운 문제고요. 사실 좀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항이 있습니다.”

카메라 공포증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항이 있다는 말에 민수는 가볍게 인상을 썼다.

“사실.. 정민수 씨는 도피성 몰입 증후군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병명에 민수의 눈이 커지자 상담 의는 설명을 이었다.

“도피성 몰입 증후군은 자신의 과거나 아니면 지금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어떠한 업무나 작업에 과하게 집중하는 일종의 도피 행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민수 씨는 자신이 입대를 결정했다고 말한 부분에서 “그냥 그렇게 도망가고 말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입대라는 일생에 큰 방향을 결정하는 행위를 “도망”이라는 목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죠.

게다가 입대 후 민수 씨의 행동을 살펴보면 아무런 방향성 없이 자신이 맡은 임무 수행에만 집중해 오셨더군요.

특히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과의 교류 활동조차 등한시 한 부분에서 거의 확정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몰입 증후군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 외에는 모든 부분에서 무관심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 예상됩니다.”

상담 의가 말을 마치자 윤 대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많이 위험한 증상인가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도피행위의 원인이 무엇인가. 몰입하고 있는 현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민수 씨의 경우는 도피행위의 원인이 아마도 자신이 겪은 큰 사고가 되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카메라 공포증의 원인일 수 있는 언론의 집요한 취재행위일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지금은 분명히 몰입하고 있는 행위가 없지만 아마도 앞으로는 연기 활동에 몰입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원인이 된 도피행위가 일생에 잊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이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앞으로 몰입할 행위의 집중도 역시 매우 깊어질 수 있습니다.

몰입 증후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런 몰입도의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몰입도가 극도로 올라가는 경우 식음조차 전폐하고 한 가지만 몰입하는 경우까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가볍게 카메라 공포증 여부만 판단하러 왔다가 생각 외의 이야기를 들은 윤 대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몰입도를 제어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선생님”

상담의의 설명을 듣고 짚이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민수는 우선 가장 궁금한 점을 물었다.

“음.. 단순히 후행 몰입행위를 하면서 몰입도를 제어한다고 한다면 역시 가장 큰 방법은 만족이겠지요.

만약 민수 씨가 배우로서 큰 성공을 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도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룩한다면 연기행위에 대한 과 몰입을 막을 순 있을 것입니다.”

말하던 상담 의는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의사로서 전 가능하면 민수 씨의 증상을 근본적으로 완화 시키고 싶군요. 정신질환이 완치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완화해 이상 증상 발발을 견제할 수는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치료 방안이라고 한다면 역시 도피행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고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이겠지만.

민수 씨 같은 경우는 그 사고가 워낙 강렬하고 파괴적이라 그 사고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근간이 되는 자기혐오와 자책감을 벗어던지는 것이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이런 도피성 정신질환의 시작은 모두 자기 부정과 자기혐오에서 출발 하는데 아마 사고에서 혼자 살아왔다는 점이 민수 씨가 가진 자기혐오의 시작점일 것입니다.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자기애를 가지는 것이지요.

저는 민수 씨가 자기애를 가지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행동을 하기를 추천합니다. 반대로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행동은 가능하면 피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당당한 행동만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자기 자신을 인정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점점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잠재된 혐오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도피성 몰입 증후군을 겪고 있는 민수 씨가 연기를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가장 도피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연기를 해야 하는 당위성이 민수 씨에게 있다면 연기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민수 씨에게 있어서는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제가 연기를 포기하라고 권유하지는 못할 거 같군요.

그리고 만약 연기를 정말 하게 된다면 꼭 성공하시길 당부드립니다.

민수 씨가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때마다 몰입도는 떨어질 테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생길 테니 도피적인 정신질환도 완화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상담 의는 한 인터넷 사이트 주소가 적인 쪽지를 민수에게 건네었다.

“여기는 힐링 멘토라고 가벼운 정신과 상담을 받은 분들이나 그 친지 분들이 가입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이곳에 가입해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정신적인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과몰입 증상이 심해지면 연기자 활동은 중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기를 추천합니다.”

상담이 끝나기 직전 민수는 상담의에게 자신의 전생에 대한 확인을 받고 싶었다.

“혹시 선생님. 제가 만약 연기를 시작해서 계속 실패만 경험한다면 전 어떻게 될까요?”

민수의 질문에 상담 의는 넉넉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글쎄요. 윤 대표님이 계시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음.. 만약 그렇다면 아까 제가 말했던 데로 과몰입 증상이 점점 심화 되었을 것이고 아마 혼자서는 그 몰입증상을 극복하지는 못했을 것 같군요.

그러니 민수 씨 꼭 주기적으로 상담을 요청해 주시길. 아셨죠?”

당부하는 상담의에게 알겠다고 말하고 나오는 윤 대표와 민수의 어깨는 납덩이를 짊어진 듯 무겁기만 했다.

“음, 오늘은 우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좀 가져야겠구나.”

피곤해 보이는 윤 대표의 제안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저도 생각을 좀 정리해 봐야겠어요 그럼 내일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민수는 윤 대표에게 인사하고는 멍한 정신으로 집을 향해 출발했다.

집에 도착한 민수는 침대에 누워 오늘 상담 의가 말한 내용을 상기했다.

“허허, 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네 그려.. 참 기가 막힐 일이구만.. 하긴 어쩌면 당연한가 그런 큰일을 겪고 아무렇지 않게 정상인 것이 아마 더 말이 안 되는 일이겠지.”

“연기하기로 결심했는데 오늘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구나.

그냥 얌전히 살다가 얌전히 죽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전생과 같은 삶을 살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감수하고 그냥 연기에 다시 도전할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민수는 자신의 고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미 없는 물음이네.

연기를 배우려고 마음먹기 전이었으면 몰라도 이미 결심을 했는데 다시 고민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어차피 딴 일 해도 과몰입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그냥 연기하는 게 과몰입이 더 강하게 온다는 것뿐이지. 그래 까짓것 성공 해주면 되지. 어떻게 비벼서라도 내가 만족할 때까지 성공해주마.”

민수는 이제 자신이 연기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를 완전히 배제했다.

자신의 전생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짐작이 도피성 과몰입의 결과였다는 실체로 완전히 파악하게 되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결국은 전생같이 거지같이 살지만 않으면 별문제 없다는 것이군. 그리고 의식적으로 연기 말고도 여러 가지를 생각 할 수 있게 노력하면서 말이야.”

이제 연기에 대한 확고한 욕심이 생긴 민수에게 이 정도 상황변화는 전혀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한편 대표실로 돌아온 윤 대표는 오늘 들은 이야기를 상기하며 고민에 빠졌다.

“연기에 과몰입하는 배우라….”

수많은 배우를 보아온 윤 대표는 배우가 연기에 과몰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무기가 되고 또 그 자신에게 얼마나 위험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진정한 양날의 검이란 것인데….”

윤 대표는 민수가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대로 배운 민수가 집중하여 몰입하는 연기를 보고 싶었다.

“아마.. 특별한 연기가 튀어나오겠지? 게다가 저런 족속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지.”

윤 대표는 금전적 가치나 인기보다 연기하는 행위 자체에 집착하는 배우를 여럿 보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분명 민수는 그러한 부류였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녀석이 들을 리가 없지. 제 딸도 설득하지 못한 내가 그 녀석을 무슨 수로 설득해”

잠정적으로 설득을 포기한 윤 대표는 그냥 차라리 케어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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