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4화 (1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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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을 정리한 민수는 설아에게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음, 우선 지금 설아 씨의 대사 연기가 전 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닌 거 같아요. 그러니깐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현상이란 거죠.

윤 배우나 윤 대표님도 다 아는 사실이라니 이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닌 거 같은데.

제 생각이 맞나요?”

민수의 물음에 설아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어느 순간인가.

이유도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대사가 딱딱하게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는 제 의지로 강약이나 고저도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죠.”

“그리고 분명 해결을 위해 큰 노력을 하셨을 것이고요?”

“네, 병원이란 병원은 다 갔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요.

사실 녹음실도 제가 대사 연기하는 거 정확하게 녹음해서 분석하려고 설치해 놓은 것이거든요.”

‘역시.. 7층이 대표님이 관리하는 공간이라더니… 딸 사랑 케어 공간이었나..’

“그.. 혹시 헬스장은?”

“아, 그것도 아마 저 때문에? 아니면 겸사겸사? 사실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운동하는 걸 즐기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깅이나 러닝 할 때라던지,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 남자들이 자꾸 접근해서 속상하다고 했더니 아빠가 딴 데 가지 말고 여기서 하라고…”

‘맞구만… 놈팽이가 붙을까 봐 안으로 고이 모셔 놓은 거..’

“그렇군요. 제 호기심 때문에 말이 좀 샜네요.

자 다시 본제로 돌아와서 그렇다는 것은.. 그것이 하루 이틀 이내에 고쳐질 문제는 아니라는 거네요.”

“네.. 의사들도 아마 심리적인 요인이 아닐까 의심만 하는 상황이에요”

설아의 이야기를 듣는 민수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진다.

‘당장… 해결할 수 없다. 그건 결국 오늘은 그냥 저렇게 찍어야 한다는 건데.’

민수는 당장 문제는 설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 설아의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윤태준이나 다른 배우였으면 이렇게까지 연기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문제는 민수 자신의 감각이었다.

‘그래, 회귀 이후에 감각이 놀랄 정도로 예민해졌어.

집중력이 고조 될 때는 상대편의 기분이나 감정이 느껴질 정도였지. 그래서인지. 설아가 대사 칠 때마다 내 감각이 흔들리는 거 같아.

그래서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 거지. 아무리 배우들이 상대 배우의 수준에 따라 연기력이 들쑥날쑥 해 진다지만 이건 그 범주를 넘어서고 있어.

어떻게 해서든 감각을 제어할 방도를 찾아야 해. 하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지.

소속사에 속한 이후 처음 받은 요청이자, 다음 수업의 기초가 될 자료의 촬영이야.

이렇게 터무니없이 수준 낮은 영상을 대표님께 보여 드리고 싶진 않아.’

민수가 심각하게 생각만 하고 있자 설아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안해했다.

“죄송해요. 선배님. 제 연기가 엉망이라 덩달아 선배님께 폐만 끼치는 거 같아요.”

설아의 사과에 민수는 자신만의 생각에서 벗어나 설아를 바라보며 위로 했다.

“아, 사실 설아 씨 때문이 아니에요. 제가 지금 유독 별나게 상대 역의 감정에 민감해진 상황이라 그런 거에요.

아닌 말로 설아 씨 상대역이 윤 배우였으면 윤 배우는 그냥 자기 할 연기 알아서 잘했을 거에요.

그리고 설아 씨 연기가 엉망인 건 정말 아니고요.

대사만 연기는 아니니….어?”

‘뭐야, 생각해보니 진짜 대사만 연기는 아니잖아. 그렇게 하면… 나도 설아 씨도 이익이 될 수 있겠어.’

“설아 씨, 그럼 설아 씨 대사연기 하는 거 보고 윤 대표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민수가 갑작스럽게 말을 돌리며 물어보자 설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뭘 뭐라고 하시겠어요. 망한 연기니깐 넌 배우 못되겠다 하셨죠.”

역시나 윤 대표의 대답은 민수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런데도 설아 씨는 테스트 영상 촬영에 동의하셨고요.

설아 씨는 대표님께 어떤 것을 보여 드리고 싶은 건가요? 제 생각에는 대사는 어떻게든 고치면 되고, 대사만 고치면 나도 연기자가 될 수 있다.

이런 거 보여 주고 싶으셨던 거 같아요. 제 말이 맞나요?”

민수의 물음에 설아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맞아요. 바로 그거에요. 저도 이 대사론 당연히 안 되는 거 잘 알죠.

하지만 대사는 또 갑자기 고쳐질 수도 있잖아요.

마치 제 대사가 갑자기 엉망이 된 것처럼요.

그러니 최소한 다른 것이라도 보여 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줘서 작은 가능성이라도 인정 받고 싶어요.”

자신의 생각이 맞자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정 났네요.

전 솔직히 설아 씨 대사를 들으면서는 전혀 연기를 못하겠어요.

하지만 설아 씨가 연기를 못하냐? 전 절대 그렇지 않다고 봐요.

아까 시작할 때 전 설아 씨 표정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 감성 넘치는 표정이었거든요.

그냥 말 안 해도 무슨 말 할지 느껴질 정도로요.

어차피 윤 대표님 설아 씨 대사 엉망인 거 다 알고 있고 당장은 못 고친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그럼 그냥 설아 씨 표정 연기 보여드려요.

대사만 고치면 대성할 배우라고 한번 투자해보라고 시위라도 한번 해보죠. “

민수의 표정에 설아는 자신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 될까요? 더 실망만 하시는 게 아닐지…”

“에이, 설아 씨. 전 설아 씨 믿어요

아니 설아 씨 표정연기를 본 내 눈을 믿어요.

어차피 실망이에요.

그냥 실망인지 대 실망인지 그 차이인데 같은 실망이면 뭐라도 해보고 실망 드리자 고요.”

“대”라고 말할 때의 민수가 과장된 표정을 짓자 설아가 살포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좋아요.

어차피 주는 실망 대실망은 안 주도록 노력해 봐야겠어요.

그럼 선배님 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주 쉬워요.

대사는 그냥 제가 할거에요.

설아 씨는 대사를 듣고 그 상황의 기분을 표정으로 표현만 해주세요.

그렇게 한번 찍어봐요.”

그렇게 결정한 둘은 다시 연습실로 들어갔다.

아까처럼 다시 카메라와 마이크를 켜고 민수는 정신을 집중해 자신의 감정을 잡고 한편으로는 설아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감각을 예리하게 가다듬었다.

순간 처음처럼 아련한 표정의 설아가 민수에게 다가왔다.

설아를 본 민수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후, 윤설아… 난 이제 끝났어. 너도 알잖아. 우리 집 지금 빚만 20억이야.”

대사를 마친 민수가 뒤로 돌아 멀어지려 하자 설아는 살며시 민수의 팔을 잡았다. 자연히 민수는 돌아서 설아와 마주보게 되었다.

설아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네 집안이 망했다고 우리 사이가 끝난 건 아니라고.

그러나 민수의 태도는 매몰찼다. 마치 하나의 미련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널 떼어내겠다는 듯.

“허.. 끝나지 않았다고? 설아야 정신 차려.

사랑이 현실을 이겨 낼 수 있을 거 같아? 사랑은 아마 현실에 휩싸여 그렇게 식어 갈 거야.

그리고는 아마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증오와 미움뿐일 거야.”

설아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 내렸다.

민수는 설아로부터 거칠게 몸을 돌렸다. 마치 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이제 끝내자. 내가 너무 못나서. 미안했다. 앞으로 건강해라. 그리고.. 좋은 사람 만나라”

말을 마친 민수는 뒤로 돌아 다시 자기 일을 하기 시작한다.

설아는 멍하니 민수를 잠시 보고는 뒤로 돌아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몇 발자국을 걷고는 다시 돌아 민수를 잠시 본다. 그리고는 다시 서서히 멀어져 간다.

“컷”

스스로 컷을 외친 민수는 설아랑 같이 촬영한 영상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설아 씨?”

민수의 질문에 설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처음보다 훨씬 좋아요.

거추장스럽던 대화가 빼고 표정과 감정에만 집중하니 훨씬 연기 하기 편했어요.

이 정도면 아빠도 대실망은 안 할 거 같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우선 이렇게 찍도록 해요”

민수도 내심 자신이 찍은 영상에 만족했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어차피 윤 대표가 평가할 것이니

자신이 생각할 이유는 없고 그래도 현 상태로서는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민수는 설아와 2번째 영상의 촬영을 시작했다.

두 번째 영상의 촬영은 순조로웠다.

민수는 시종일관 거칠게 몰아쳤다. 어르면서 동시에 협박했다. 특히 민수의 협박하는 비열한 표정은 일품이었다.

반면 설아는 계속 당황했다.

몰아치는 민수를 지진 난 동공으로 응시하며 몸을 떨었다.

그러다가 마음의 결심을 한 듯 눈을 빛냈는데 마음 읽은 듯한 신들린 민수의 협박에 다시 동공이 지진 난 상태로 돌아갔다.

우울증 증상이 있는 소심한 여자 그 자체였다.

민수는 동공이 흔들리며 갈팡질팡하는 설아의 모습이 왠지 귀엽다고 생각했다.

“후…”

2번째 촬영을 마친 설아는 깊게 한숨을 들이쉬었다.

“와, 선배님 협박 좀 해보신 분이신가요? 전 완전 협박 전문이신 줄…”

“설아 씨, 연기자란 어떤 연기든지 다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진정한 연기자란 것입니다.”

“악, 그런 교과서에 쓰여 있을 법한 그런 말을…”

한 씬 두 씬 다시 촬영하며 민수는 설아가 친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설아의 감정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유대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설아 역시 마친 가지로 자신의 눈빛만 보고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 가는 민수의 모습에 조금씩 처음 느꼈던 서먹함을 지워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두 씬을 찍은 둘은 세 번째 씬에서 위기의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하늘의 태양보다도 찬란하고 밤하늘의 별보다 반짝이는 당신이 나에게 와 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민수는 설아와 두 손을 맞잡고 고백했다. 민수를 바라보는 설아의 눈빛은 꿀이라도 떨어지는 듯 달콤하고 우유보다도 부드러웠다.

“이제 나의 심장이 된 사랑스런 우리 얘…얘..”

“스톱!… 선배님.. 너무 딱딱하잖아요.. 좀 더 부드럽게 사랑스럽다는 듯 그렇게 하셔야 할 거 같은데요.

제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겠네요. 이건 잘못되었다는 것을요.”

제대로 대사를 뱉지도 못하고 자꾸 더듬던 민수는 한숨을 쉬며 한탄했다.

“그..그게 후.. 아니.. 이거 대사가 너무 유치하고 오글거리잖아요.”

민수의 한탄에 설아는 짜게 식은 눈으로 민수를 쳐다 보았다.

“아니, 이게 뭐가 유치해요. 사랑하면 이 정도는 다 하는 거죠.

선배님 자신이 사랑할 때, 고백할 때 그때를 떠올리면서 해보세요.”

민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죄송하네요. 불행히도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안타깝군요”

‘어이없게도 전생의 30년 동안에도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지.’

민수의 말에 설아는 민수를 짠하게 바라보았다.

“아니, 생긴 건 전문 픽업아티스트 같이 생기신 분이… 무슨..”

말을 하던 설아는 양손을 허리에 받치더니 한껏 예쁜 표정을 지으며 민수에게 말을 이었다.

“아니, 그리고 아무리 연애 세포가 죽은 연애 고자라도 이렇게 예쁜 제가 바로 앞에서 방실방실하고 있는데 당연히 감정이 솟아올라야죠.”

설아에 강짜에 민수는 이 아가씨가 이제 저를 제법 편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헛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예이 예이, 아가씨. 예쁜 아가씨 믿고 다시 한번 가 볼게요”

건성 100% 진심 0%의 민수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리던 설아는 다시 민수가 대사를 시작하자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욱더 열심히 예쁜 척하면서 민수를 바라보았다.

가식적으로 예쁜 척하는 것이 민수의 집중에 더욱 방해가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른 체 말이다.

겨우겨우 3번째 씬을 마무리 지은 민수는 온몸이 녹초가 되는 듯 피곤함을 느꼈다. 아침부터 이어진 감정노동 때문에 쌓인 정신적 피로 때문이었다.

그는 어제 자신이 태준과 대화했던 그 소파로 와서 빨랫감처럼 널브러졌다.

그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대사 없이 표정과 눈빛 제스처 만으로 3장면을 수 차례 반복한 설아도 같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게 수 분을 널브러져 있던 민수는 파김치처럼 흐물거리는 설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지금 시기에는 카리스마와 색기 넘치는 세라는 없고 그냥 귀염 터치고 순수한 연기자 지망생 설아만 있구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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