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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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을 마친 윤 대표의 민수는 앞으로 민수의 행보에 대하여 논의를 나누었다.
“이제는 식구가 되었으니 내가 말을 좀 편하게 해도 될까요?”
“네, 그래 주세요. 부디.”
“좋아, 정 배우 우선 정 배우를 좀 가르치고 싶어. 지금 당장 오디션에 전전해도 내 생각에는 크게 주목받을 거 같진 않아. 지금은 좀 연마해야 할 때야. 정 배우 연기를 한 지가 얼마나 되었지?”
윤 대표의 질문에 민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 이거 뭐라고 하지? 30년 빡빡 굴렀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여기저기 연기학원에 좀 기웃거리고 독학으로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그렇구먼. 여기저기 손볼 데가 좀 있어.
하지만 그전에 지금 자네의 수준이 어떤지부터 정확하게 파악해 볼 필요가 있어.
당장 이번에 맡았던 그 역할로는 자네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어.”
말을 마친 윤 대표는 대본 하나를 꺼냈다.
“여기 대본에 있는 3장면을 연기해봐. 장면마다 하나의 씬으로 되었고 씬 앞에는 이 배역의 배경설명이나 앞으로의 전개가 적혀있지. 다 읽어보고 정배우의 해석으로 연기해 주었으면 좋겠어.
자네 지금 머무는 곳이 어디지?”
“지금 원룸에서 살고 있습니다.”
“원룸에선 연습하기가 힘들지 소음문제도 있고 말이야.
그럼 내일 바로 여기로 나와.
그리고 연습실에서 스스로 마음에 들 때까지 연습해.
연습하는 거 그대로 촬영하고.
그러면 내가 그걸 보고 자네의 연습 방향에 대하여 고민해 볼 테니깐.
내일 나오면 같이 연기할 애 하나 있을 거야 1 연습실에 상대역 해 줄 거야.
집중해서 촬영해.
쉽진 않겠지만 뭐 그것도 훈련이 될 테니… 그리고 나에게는 시간을 2일 정도 주면 되겠구먼.”
중간에 말을 좀 흐리는 듯한 모습이 의야 했지만 민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말을 마칠 때쯤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각지게 깎은 단정한 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는 윤 대표에게 인사하고 민수의 정면에 착석했다.
“여기는 자네의 매니저가 되어줄 이동원 매니저일세 얼굴이나 먼저 익히라고 불렀어.”
“안녕하십니까. 이동원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정민수 배우님을 보필하게 되었습니다.”
공손한 남자의 태도에 민수는 멋쩍은 기분을 느끼며 인사를 받았다
“반갑습니다. 정민수입니다.”
“당장은 무리고 인수인계하고 차량 문제 해결하고 하면 며칠은 걸릴 거야. 그때까지는 좀 번거롭더라도 혼자서 잘 부탁하네 정배우”
“네. 아, 아닙니다. 번거롭긴요. 언제부터 정식으로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벌써 매니저님이랑 같이 다니는 게 더 번거로울 거 같은데요.”
“아직 데뷔는 안 했지만 그래도 매니저는 있는 게 좋을 거야. 걱정하지 말게 여긴 의외로 제일 남아도는 게 노동력이니깐.”
이해하지 못할 윤 대표의 말에 민수는 의문을 느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럼 며칠 후에 보지 정 배우 나가보게. 동원이 자네도 나가보고 인수인계 마치면 바로 정 배우 쪽으로 합류해.”
윤 대표와의 대화를 마치고 민수는 동원과 대표실을 나섰다.
“그... 저 동원 씨라고 했죠?”
“아.. 그냥 동원이나 매니저 등으로 편하게 불러 주십시오. 제가 24살로 한 살 어리니까요”
‘으..그렇게 안 보이는데 나보다 동생이라고? 저거 왠지 다 근육 같은데 원래 로드가 저래? 물살로드는 많이 봤어도 근육로드라니..’
각진 머리에 덩치가 커서 185는 되어 보이고 전체적으로 좀 두꺼워 보이는 남자 동원은 투박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신사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 그럼 그냥 이 매니저로 부를게요.”
“네, 인수인계 마치고 준비 되는 대로 바로 정 배우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자신의 할 말을 다 마친 동원은 서둘러 5층 사무실로 내려갔다.
‘사족 없이 필요한 말만 하고 일 처리를 하러 간다. 저런 유형이 좀 딱딱해도 일 처리에서는 매끄럽지. 괜찮은 사람인 것 같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민수 앞에서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일남 일녀가 걸어 나왔다.
일남 일녀중 일남이 윤태준임을 알아 본 민수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 윤태준 씨. 안녕하세요.”
“하하, 정민수 씨군요. 혹시 계약 이야기 나누러 오셨나요?”
“아.. 네. 오늘부터 윤 엔터테인먼트 식구가 되었습니다.”
“하하,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아 그리고 여기는..”
민수는 그때서야 태준 옆에 있던 한 여성에게 눈길들 돌렸다.
키는 160대 후반. 데님 스타일의 스키니진에 가벼운 티셔츠 그리고 재킷을 걸치고 있는 여성.
쌍꺼풀 없지만 큰 눈은 눈동자가 매우 맑았다.
적당히 높은 콧날과 갸름한 입술도 적절히 잘 어울렸다.
얼굴선은 매우 유려했고, 아직 앳된듯한 뽀송뽀송한 피부는 그녀의 나이가 어림을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는 큰 반전이 있었다.
적당히 붙은 스키니로 들어나는 그녀의 곡선은 매우 공격적이었고 재킷으로 가려지지 않은 흉부는 매우 파괴적이었다.
방송가에서 30년은 굴러먹었던 민수의 눈에도 정말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어?..근데..뭔가 익숙한데…’
“여기는 제 동생입니다. 설아야 인사해 앞으로 우리 식구가 되신 정민수 배우님이야.”
“안녕하세요. 윤설아에요. 잘 부탁드려요.”
소개를 들은 민수는 그녀가 누군지 기억 할 수 있었다.
‘허… 세라 윤설아라고…. 그러고 보니.. 쟤가 윤태준 동생이었지. 배우가 아니라서 연관성을 잊고 있었네.. 허허 진짜 다시 살고 볼 일이구만 세라를 눈앞에서 보다니.’
“세라” 라는 활동명으로 활동한 윤설아를 민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아시아권에서 살아가는 남자들 중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었을 것이다.
20대 초중반에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한 세라는 데뷔하자마자 차트를 씹어먹기 시작. 한국을 평정하고 바로 중국으로 진출했다.
탁월한 중국어 실력으로 수월하게 중국에 진출한 세라는 특유의 감성으로 중국을 침몰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세라의 얼굴 몸매 감성을 들어 “三絶”이라는 별명으로 불렀고 젊은이들은 세라의 아름다운 외모에 열광했고 중국의 기성세대는 자신의 세대까지 어우르는 세라의 깊은 감성에 매료되었다.
특히 세라의 특유의 애절하고 애틋한 감성은 민수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었다.
한편 민수는 세라가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세라의 삼절은 몸매 외모 감성이 아니라 발성 호흡 감성이라고 생각하며 가수보다는 배우에 진정 어울리는 인물이라며 안타까워했었다.
‘여전히 목소리는 대박이구만.. 진짜 아름다운 소리야. 눈 화장을 안 했으니 내가 알아볼 리가 있나..어쨌거나 신기 하긴 하네’
“네, 잘 부탁드려요. 설아 씨”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는데 태준이 설아에게 말했다.
“야, 넌 빨리 올라가 봐야지. 난 민수 씨랑 이야기 좀 더 하게 빨랑 사라져.”
태준의 핀잔에 설아의 입이 삐쭉 솟으며 눈고리가 올라간다.
“말 좀 이쁘게 하자. 응? 그럼 민수 씨 나중에 뵐게요.”
곱게 고개 숙여 인사한 설아는 조용히 계단으로 올라갔고 민수는 태준의 손에 끌려 식당 옆에 소파로 앉혀졌다.
다시 대화를 나누는 태준은 여전히 털털했다.
스타임에도 전혀 거들먹거리지 않았고 시종일관 밝은 모습에 민수는 큰 호감을 느꼈다. 태준도 민수를 좋게 봤는지 같은 나이의 둘은 금방 말을 놓기에 이르렀다.
다만 그냥 이름을 부르기에는 좀 멋쩍었는지 호칭은 윤 배우 정 배우로 결정되었다.
“여기가 식당이란 말이지?”
“어, 직원들이 점심은 대부분 저기서 해결하지”
태준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민수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솔직히 맛은 별로 없어 기대하지마. 저기 저 조리사 보이지? 저 사람이 이지영 조리사라고 그 홍보부서 실장인 이미영 실장 동생인데 사람들이 마녀라고 불러”
“아니.. 왜? 성격이 안 좋아?”
조리사의 성격이 좋지 않냐는 민수의 질문에 태준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성격 끝내주게 좋아. 성격은 천사지.
근데 그 왜 만화 같은데 보면 마녀의 솥 이런 거 있잖아.
막 이것저것 넣고 저으면 전혀 엉뚱한 거 나오는 거.
이지영 조리사가 영양사라 영양 벨런스는 기가 막히게 맞추는데 음식을 만들다 보면 전혀 엉뚱한 맛이 나와.
넣은 재료 맛은 안 나고 전혀 엉뚱한 맛이 난다고 사람들이 마녀라고 불러.”
“재미있네..”
“근데 또 성격이 너무 착하니깐 사람들이 맛없어도 적당히 불평 없이 잘 먹어.
초창기에는 맛 지적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는데 그때 매다 고개 90도로 숙이면서 미안하다고 울먹이는데 사람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은 거지
나도 한번 봤는데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사과하더라고.
그때 이후로 사람들은 다 노코멘트.
너도 잘 기억해. 괜히 말 잘못해서 계속 민망하지 말고”
“그러네, 나도 조심해야겠어. 근데 난 입맛이 저렴해서 그냥 먹을 만 할 거 같아.
군대에 간 남자들은 아마 다 그럴걸..”
“어? 너 군인 출신이었어? 생각도 못 했네. 군대 밥이 맛이 없나?”
“어. 영양은 잘 챙기는데 반면 맛은 전혀 신경 안 써서. 어떤 의미로는 여기 식당하고 비슷하겠네.”
“그렇다면 그렇겠네. 그나저나 너 계약서는 봤지?”
이야기가 계약에 대한 것에 이르자 민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 세상에 난 그런 계약서가 존재한다는 건 생각도 못 했어.
게다가 이런 기획사가 왜 사람들한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거야?
까놓고 레전드 윤강철이 대표에 그 아들인 네가 소속되었다는 점만 해도 기사가 오백 개는 나올 만한데.”
“아, 그거? 하하. 지금 표면적으로는 바지 대표님이 있거든.
그 예전에 아버지 매니지먼트 했던 매니저님이 표면상으론 대표이사야.
아버지가 회장 같은 거고 이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거긴 한데 관계자들은 차라리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거든 우리 소속사의 존재가.
우리가 너무 주목받아서 자신들이 받을 관심까지 빼앗길까 봐 뭐 그렇게 쉬쉬하게 된 거고 우리도 굳이 주목받고 싶진 않아서 뭐 그렇게 된 거야”
“그 정도라고? 윤 대표님이 대표란 게 그 정도 일거 같진 않은데…”
“뭐..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것저것 좀 그래.
그래 제일 단순한 거 우리 소속사에 다른 배우님들이 조진성 선생님이랑 정윤숙 선생님 그리고 강환 선생님이야.”
“뭐?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민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레전드 윤강철과 함께 충무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한국의 숀코네리 조진성 선생님.
그리고 그 시절 브라운관을 정복한 안방의 여제 정윤숙 선생님. 그리고 연극판의 절대 강자 강환 선생님.
이름만으로도 배우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배우들이 세 명이나 소속사에 몸담고 있었다니.
“딱 보니 알만하네.
자기 배우들이 우리 소속사로 기웃거릴까 봐 다들 입 다물고 있는 거구먼.
세분이 어디 가서 그런 거 말씀하실 분들도 아니고.
내가 기획사 대표라도 굳이 세 분이 한곳에 계시는 걸 떠벌리고 싶진 않네.”
“그렇지. 내가 이래서 정배우가 좋아.
한마디만 해도 딱 철석같이 알아듣잖아. 연기 할 때도 말이야.
탁 눈빛만 보내면 딱하니 바로 감정조절 들어가고.
서로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없어요.”
태준의 말을 들은 민수는 조금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러네. 뭔가 이상하네 내가 이렇게 눈치가 좋았나.
전에 연기 할 때도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지.
내가 감정 과잉이고 윤배우가 그거 제어 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방금 계약할 때도 대표님의 진심이 느껴졌고. 흠…’
“뭐.. 어쨌든 그런 거구먼. 그러면 이해할 만하네.
와 그나저나 조진성 선생님 이라니 한번 뵙고 싶다.”
배우 조진성은 젊은 시절부터 잘생긴 외모로 이름 높았지만, 연기력은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실 외모 덕분에 배역을 채간다는 조롱 아닌 조롱을 받으며 외모는 화무십일홍이라 롱런 하지 못할 배우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조진성의 연기력은 일취월장했다.
게다가 어이없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외모까지 중후함이 추가되며 더 멋있어지더니 50대에 이르러 거의 모든 배우가 존경하는 대배우가 되고 말았다.
민수는 전생에 그런 조진성의 끊임없는 노력과 집념을 크게 존경하고 있었다.
“뭐.. 솔직히 세 분 다 각자의 이유로 개점휴업 상태잖아.
금방 뵙기는 힘들걸. 지금은 이 윤태준이가 이곳 윤엔터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
태준의 너스레에 민수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네, 대단하구만. 윤배우.”
민수는 빛나는 듯한 태준을 보며 적잖은 갈증을 느껴갔다.
‘그래, 나도 언젠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