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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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전생에서는 “서쪽 해변”의 실패에 대하여 약간의 뒤 사정도 있었다.
결국 윤 진 배역에 대하여 마음에 차는 인물을 구하지 못한 이희영 작가는 배역의 선택을 방송국에 맡겼고 방송국에서는 조금의 홍보 효과라도 더 얻을 생각으로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는 보이 그룹인 “이카루스” 리더 “리온”을 적극적으로 캐스팅 하게 된다.
“이카루스”의 소속사인 날개 엔터테인먼트는 그 당시 가수에서 배우 쪽으로 조금씩 입지를 넓혀 가려 하는 입장이었고 “리온” 역시 연기자로서의 전향을 고려해 보는 중이었기 때문에 이희연 작품에 단역이라도 비중 있는 배역을 소화했다는 경력 한 줄을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서쪽 해변” 합류에 긍정적이었다.
“리온”은 아이돌 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준수한 연기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인지도로서 홍보 효과도 가져오고 이슈 몰이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법 괜찮은 선택으로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은 홍보 과정이었다.
날개 엔터테인먼트의 홍보부서에서 고의인지 실수인지 알 수는 없으나 홍보 과정에서 “리온” 의 배역이 적어도 조연급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결과 사람들과 “이카루스” 팬덤의 흥미를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1화가 마치고 리온이 자살로 하차하게 되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카루스” 팬클럽은 벌 때 같이 일어섰고 그들이 성토하는 욕설 비난 댓글들로 “서쪽 해변”에 관련된 기사들이 더럽혀져 갔다.
방송사에서는 자체 진화해보려 했으나 불가능했고 결국 시간이 지나고 “리온”이 직접 나서 처음부터 1화 하차로 정해진 출연이었고 비록 짧지만 임팩트 있는 배역이기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인터뷰하고 나서야 논란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하지만 논란이 잦아들어 갔을 때는 이미 “서쪽 해변”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되어 있었고 애당초 인기보다는 휴머니즘을 표현하기 위한 드라마가 시작부터 어마어마한 네거티브를 안고 시작했으니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거기까지 기억해 낸 민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내일 있을 촬영을 생각했다.
“아니, 도대체 저 작은 드라마 하나에 몇 가지 문제가 있었던 거야?
하긴 전생에선 저거 마치고 이희영 작가님도 한두 달은 앓아누웠었다 하니 참 다른 의미로 세기의 드라마 구만.
뭐 그건 그렇고 이거 남자 주연이 윤태준 이였지 아마… 와..윤태준 ..윤태준이라…”
윤태준, 민수의 기억 속에 윤태준은 진정한 워너비 스타였다.
지금은 단순히 연기 잘하고 인기 있는 젊은 배우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대한민국 남자 탑 배우 하면 윤태준밖에 남지 않게 된다.
지금 태풍을 촬영하고 있는 조태식도 몇 년 후에는 윤태준이 자신보다 급이 높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 기세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윤태준은 애당초 연기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고 외모도 워낙 출중한 데다 인성조차 좋다고 소문난 데다가 민수가 죽기 직전까지도 연기 활동을 이어나갔으니 민수로서는 어찌 본받고 싶지 않았겠는가.
“전생에서는 한 번이라도 같이 연기해 보고 싶은 배우였는데 이게 이렇게 되네… 아 근데 “서쪽 해변” 이거 윤태준 출연작 중에 유일하게 망한 거 아니었나.
뭐.. 하긴 무슨 상관이겠어. 한 번이라도 같이 해본다는 게 중요한 거지.
내가 잘한다고 망할 게 안 망하게 되는 건 아니니. 난 내일 가서 윤태준이랑 연기하며 내 실속이나 채워야겠다.”
처음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설렘과 우상으로 생각하던 배우와 연기한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상기된 민수는 자신이 회귀한 첫날 연기를 하지 않고 다른 길로 가야겠다고 다짐한 사실조차 잊고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다음날이 밝아 오고 민수는 어김없이 호흡과 발성을 연습한 후 거울 앞에 섰다.
“어….진짜 이상하네 이거 진짜 뭐 있는 거 아냐?”
민수는 거울 속에 모습에서 다시 어제와 미묘하게 달라진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빼박이네…..상식적으로 이건 말이 안 되지…어떻게 얼굴은 그대로 두고 분위기만 달라질 수가 있어? 그것도 미묘하게..”
자신이 뽑은 권능에 외모에 대한 미묘한 보정 효과가 있음을 확신한 민수는 자신의 선택이 신체 외형적인 효과라고 확정 짓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다.
“그래도 좋긴 하네. 어쨌든 요즘 외모지상주의인데 외모보정효과라니 이제는 신경 쓰지 말고 살아야겠다”
거울을 보며 크게 심호흡을 한 민수는 어제 입고 나갔던 옷을 그대로 꺼내 들고 촬영장으로 향해 출발했다
“오늘 나는 25살의 정민수가 아니야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19살의 정민수다.”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특수분장이었다.
윤 진은 얼굴에 반 정도가 화상을 당한 역할이라 촬영의 시작하기 전에 제법 많은 시간을 공들여 분장해야 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민수가 대기하고 있던 대기실에 박 PD와 윤태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윤태준을 보여 민수는 솔직히 남자가 봐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진수”역에 윤태준입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역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좋은 연기 기대하겠습니다.”
전혀 관례에 없던 주연 배우의 환대에 민수는 내심 당황함을 느꼈으나 민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아, 윤 진 역에 정민수입니다. 제가 먼저 가서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촬영이 첨이라 긴장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민수의 말을 들은 태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환한 얼굴로 화답했다.
“누가 먼저 인사하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원래 궁금한 사람이 움직이는 게 맞는 거죠. 그럼 전 먼저 촬영장소로 가 보겠습니다. PD님 세트1에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나가는 윤태준의 뒷모습을 보며 민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느껴져…. 느껴지는 건….호기심, 기대…. 설마 이게 윤태준이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윤태준의 뒷모습만 멍 하는 바라보던 민수는 박 PD의 말에 정신이 번득하고 돌아왔다.
“민수 씨,오늘 민수 씨는 태준 씨하고 1씬 2씬을 찍고 혼자서 3씬 4씬 을 찍고 스튜디오 촬영을 마칠 거 고요 나가서 한 씬 만 찍으면 촬영 끝이에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 짧게 잘 끝내 봅시다.”
“네,PD님. “
민수는 박 PD의 말에 짧게 심호흡하며 촬영 장소로 이동했다.
민수가 오늘 찍을 첫 번째 씬은 윤 진이 상담의인 진수를 만나서 괴로움을 토하는 내용이었다.
윤 진이 직면한 고통을 대화만을 통하여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장면 이였다.
시작 신호에 맞춰서 윤 진이 병원 복도를 걸어간다.
마스크를 쓴 얼굴 평범한 청바지 차림의 윤 진의 걸음걸이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몇 걸음을 걸었을까.
윤 진은 상담실 1 이라고 쓰여 있는 문 앞에 서더니 상담실 1 이라고 쓰여 있는 문패를 잠시 보고는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와,저거 뭐야. 그냥 걷기만 했는데 애가 다 죽어가는 거 같잖아..”
민수가 걸어가는 모습을 찍던 촬영 스텝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문안에는 하얀 가운을 걸친 남자 하나가 윤 진 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트를 살펴보고 있던 남자는 들어오는 윤 진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진이 왔니? 어서 앉아.”
윤 진은 힘없이 걸어가 진 수가 앉아 있는 의자 맞은편에 털썩 하고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서서히 마스크를 벗는다.
마스크가 벗겨지고 윤 진의 얼굴에 반을 뒤 덮고 있는 화상 자국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마스크를 맘 편히 벗을 수 있는 공간도 여기 뿐이네..”
말하는 윤 진의 목소리에는 깊은 모멸감이 묻어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걱정스러운 진 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윤 진은 쓴웃음을 짓는다.
“어제 길을 가다가 마스크 끈이 떨어졌어.
마스크가 내려가면서 내 상처가 드러났는데 길 가던 아이 하나가 그걸 보고는 신기한 듯 쳐다보더라고.
나도 당황해서 그냥 같이 쳐다보고 있는데 아이 엄마가 달려오더니 아이를 때리면서 서둘러 데리고 도망갔어.
마치 더럽거나 무서운 것을 보듯이 말이야.”
말하는 윤 진의 목소리에 어디에도 분노나 울분은 없었다. 그저 공허함과 허무함만 담겨 있을 뿐.
“아니, 무슨 그런..”
울분에 찬 진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윤 진은 그냥 고개를 가로젓는다.
“됐어, 형. 어차피 나도 흉측하다는 것은 아니깐. 딴에는 애 엄마도 놀랐겠지. 내가 괜히 말했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상담이나 하자.”
윤 진의 어이없는 말에 진 수는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말을 삼킨다.
말이 길어져 봤자 상처받는 것은 윤 진 뿐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후.. 그래.. 요즘 약은 어떻게 먹고 있니?”
약 이야기에 윤 진은 한껏 인상을 쓰며 대답한다.
“형 말대로 약 먹는 양을 줄이고 있어. 덕분에 낮에 멍하게 몽롱해지는 건 많이 줄었지. 대신 밤에 너무 힘들어.”
윤 진의 대답을 들은 진 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밤에는 어떤데 잠을 전혀 못 자는 거야?”
진 수의 물음에 윤 진은 나지막하게 말한다. 윤 진의 말소리가 조금씩 떨려오고 표정은 점점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눈을 감으면 소리가 들려 무언가가 타고 있는 소리.. 그리고 원망하는 소리 두려움을 참고 억지로 잠자리에 들면 무언가 불타고 있는 게 보여 그리고 날 잡아끌지.
내가 겁에 질려 억지로 떼어내면 날 계속 비난하고 저주하며 내 곁을 맴돌아. 그리고 계속 날 원망하고 원망해.”
민수가 대사를 시작하자 모든 스텝들의 눈이 민수를 향했다.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 촬영장에서 스탭 한 명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때 진 수의 대사가 이어졌다.
“그래도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보자 진아 약을 줄이지 못하면, 넌 진짜 죽을 수밖에 없어”
진 수의 안타까운 말에 윤 진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겠지.. 나도 그걸 알아서 약을 조금씩이라도 줄이고 있는 거고…. 근데 형. “
윤 진이 말하다 잠시 뜸을 들이자 진 수는 진지하게 윤 진을 응시한다.
“예전에 우리 엄마는 내가 나가는 거 보고 무슨 생각 했을까?”
윤 진의 뜬금없는 말에 진 수의 얼굴에 의문이 서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 어머니가 널 밀쳐서 네가 밖으로 밀려났다면서”
“그래, 맞아.. 그랬어 난 처음엔 엄마가 나라도 살리려고 나 밀어낸 줄 알았거든..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때 진짜 엄마가 나 살리려고 밀었으면.. 왜 맨날 밤마다 날 찾아올까.
엄마는 …. 날 살린 걸 후회하는 걸까…”
고통에 찬 윤 진의 말에 진 수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진아, 그거 어머니 아니야.. 니가 본거 그냥 네가 상상으로 만든 허상이야. 어머니는 지금 네가 살아 있는 거 자랑스러워하셔 그건 분명해.”
진수에 말에도 윤 진이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컷!”
컷 사인이 나자 사방에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배우들 의상 교체할게요”
컷과 동시에 스탭들이 분주 하게 움직였다. PD 앞으로도 카메라 감독과 음향 스텝이 모여들었다.
“PD님 이거 이렇게 긴 테이크 아니잖아요?”
“네, 원래 한번 끊고 가야 하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못 끊었어요. 이거 촬영은 어떻게 됐죠?”
“어, 2번 3번 카메라로 민수 씨하고 태준 씨 상반신 컷은 땄고 2명 같이 있는 거 메인 카메라로 땄어. 그냥 그대로 가도 편집만 하면 될 거 같아”
“음향은요?"
"음향도 다 잡았어요”
“오케이 잘됐네요. 의상 갈아입고 바로 이 자리 에서 씬2 찍으면 되겠네요”
“저거 이희연 작가가 한 번에 오케이 했다더니 장난 아니네”
카메라 감독이 웃으며 말하자 박 PD도 같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게요. 생각보다 더 괜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