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3화 (3/325)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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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흐릿했던 눈의 초점이 서서히 맞아가며 그는 자신 주변을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다.

그가 있는 곳은 7평 정도의 원룸치고는 넓은 방.

그리고 방 안에 있는 것은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대와 컴퓨터 그 외에는 옷걸이를 겸하는 작은 옷장이 가구의 전부였다.

삭막할 정도로 단조로웠지만 그래서인지 방은 매우 깔끔해 방 주인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민수는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서둘러 휴대폰을 찾아 날짜를 확인했다.

“허….2013년….2월….”

날짜를 확인한 민수는 자신이 진정 30년을 돌아왔으며 어제 자신이 본 빛덩어리가 예술의 신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술의 신을 인지하자 그의 손에는 2장의 카드가 생겨났다.

“..이런 식으로 주어지는 거였어?”

민수는 뒷면이 보이는 카드 한 장을 긴장하며 뒤집었다.

“…(인연)….”

민수의 눈앞에 나타난 첫 번째 카드는 (인연) 카드였다.

(인연)카드는 이름 그대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능력이었는데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나쁜 인연보다 좋은 인연이 소유자를 찾아올 가능성을 높여 주는 권능이었다.

“뭐…좋긴 하지 전생(회귀 전 삶을 편의적으로 전생이라고 칭하고 있음)에는 워낙 폐쇄적으로 살았지만 이번엔 그렇게 살면 안되니….가능하면 좋은 사람들 만나면서 살아가고 싶긴 하네..”

민수는 두 번째 카드를 뒤집으며 자연스럽게 (진화)를 예상 했다.

“어…?”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민수가 뒤집은 카드는 거대한 황금 늑대가 그려진 카드였다.

“(???) 카드라고? 아니…신님 이거 안 나온다고 하셨잖아요”

민수는 심각하게 새로 나온 (???) 카드를 주시 했다. 거대한 황금 늑대가 그려진 카드, 문제는 이 카드를 아무리 살펴봐도 도무지 어떤 카드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느껴지는 점도 전혀 없고 …..아..”

민수가 카드에 계속 집중하자 카드에 (???) 명칭이 서서히 (야수)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카드의 능력은 여전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야수)….야수라…그냥 신체 능력에 관한 카드인가? 지금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인데…살아 가는 데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런 능력이라니…”

민수가 생각을 마치자 두 장의 카드는 서서히 가루가 되며 민수의 몸속에 흡수되었다.

카드가 사라지자 그는 고개를 들고 탄성을 터트렸다.

“하…이젠 저게 뭔지 알 길도 없고… 기대했던 (진화)는 못 건졌고….”

민수는 주변을 살펴보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민수가 지금 묵고 있는 이 방은 서울로 처음 올라올 때 묵었던 그 방이며 군대를 전역하고 무의식중에 다시 찾아 왔을 때 운 좋게 다시 비어 있어 얻게 되었으며 심지어 민수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마치 자신의 고향 같은 그 방이었다.

서울로 옷가지만 들고 도망 와 물어 물어 묵을 만 한곳을 찾아다니다가 지쳐 잠시 앉아 쉬던 곳이 우연히 이 건물 앞이었고 돌아오던 주인 이모님이 내 옷가지 가방을 보고 원룸 찾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서 시작한 인연은 생각보다 질겨서 그가 죽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아들 내외가 독립하고 소일거리로 원룸 운영을 생각한 주인 이모님은 금전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매우 넉넉하고 너그러운 분이었다.

몇 달의 방세가 밀리는 것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이었고 심지어 도망치는 사람들도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잡지 않으셨다.

그야말로 지금 시절에는 마냥 호구 같은 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니, 방세도 못 내고 도망가는 사람들은 오죽 힘들겠냐며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하시던 주인 이모님을 생각하며 민수는 어쩌면 저런 면이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작은 일면이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곳에 계속 살아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모님은 내가 죽을 때까지도 건강하셨어.”

좋은 사람은 빨리 떠난다는데 자신이 죽는 날까지도 건강하셨던 이모님을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정말 가족같이 대해 주셨지… 전역하고 제일 먼저 먹은 것도 이모님이 차려주신 밥상이었고.. 심지어 못난 놈인데 맞선까지 주선해 주시려고 까지 했고….”

그 당시 정말 자신은 연기에 미쳐 있었는데 자기 앞가림도 못 하는 자신한테 무슨 생각으로 맞선을 주선하려고 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민수는 문득 어쩌면 자신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좋은 관계로 발전했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 다시 돌아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며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한편으론 전생에서 그렇게 갑자기 사망했으니 만약 그대로 죽었으면 이모님이 얼마나 놀라셨을지 생각하니 그래도 다시 살아 좋은 점이 한가지는 있다고 위안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받은 게 많은데 참 제대로 감사나 선물 같은 것도 못 해 드렸구나”

이 방과 이모님으로부터 시작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어이없게 군대에서 강제 전역 한 일, 건강한 몸으로 스턴트맨으로서는 제법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일, 극단에서 20살짜리 어린애가 자신보다 감정연기가 더 능숙해서 부끄러웠던 일 크고 작은 소소한 일들이 민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어진 생각은 민수의 미래에 대하여 까지 이르렀다.

“생활 면이라면 아마 군대에서 벌어 놓은 돈으로 아마 오랫동안 사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테고 연기는 아마 잘은 몰라도 이때쯤의 풋내기 정민수 보다야 어찌 되었건 30년을 연기에 목매어 살았던 지금의 정민수가 더 낫긴 하겠지”

비록 큰 재능이 없다손 치더라도 시간의 힘을 무시하진 못할 테니 예전의 자신보다는 더 완성된 연기를 할 자신이 있는 민수였다.

“다만 성공할 만큼의 자질은 없다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 어쩌면 더 근본적으로 내가 앞으로도 연기를 더 하고 싶어 하는 의지와 열정이 남아 있느냐가 더 문제라고 할 수 있으려나.”

30년을 실패로 보낸 자신이 자신의 재능이 가진 끝을 본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고 전생처럼 몸을 불사 지르듯 집중 할 수 있을지 민수는 그 점은 전혀 자신이 없었다.

“그래, 아마 못 할 거야. 항상 실패를 생각하겠지.

예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도 아니고, 노력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던 순수함은 이미 사라졌으니.

게다가 전생에서 느꼈던 이유 모를 맹목성도 왜인지 많이 약해진 거 같고, 아마 죽음과 회귀라는 너무나 비일상적인 상황에 직면해서 일까..”

민수는 전생에서 되지도 않는 연기에 미쳐있던 자신이 지금 생각하기에는 뭔가 이해 안 되고 불편하다고 느껴졌다.

“허..생각할수록 복잡해만 지네…”

민수는 문득 연기를 안 하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음…전역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경호업체 쪽도 알아볼 수는 있겠네.

붉은 범 쪽으로 가면 거의 확실하려나 외국어는 그래도 자신 있으니 해외파견 인원은 언제나 모집하니까 그건 확실하겠군.

아.. 그냥 통역이나 이쪽 방면도 생각할 만하겠네”

붉은 범은 적호 사단 전역자들을 모아서 만든 경호 단체로 적호 사단 출신을 최우선으로 선발하고 있었다.

민수는 자신의 외국어 실력을 생각하며 붉은 범은 충분히 입사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나.. 생각보다 능력 있네. 내 전생의 최고 선택은 연기가 아니라 외국어네, 외국어야.”

연기를 제외하고도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복잡한 민수의 마음을 조금 편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작게 실소하며 민수는 다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민수는 침대 위에 몸을 눕히며 지금이 상황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의문을 가졌다.

“이때쯤이라…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을 때쯤 일터인데, 근데 왜 지금이지?”

자신이 기억하기에 민수는 전역을 하고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해 겨울이 시작 되기 전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게 아마 2012년 늦가을 일거고 그때부터 연기학원이니 현장출근이니 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시간은 2013년 2월

민수가 느끼기에 지금의 시기는 너무 뜬금없었다. 연기를 마음먹은 날도 아니고 연기 학원을 시작한 날도 아니고 엑스트라라도 배역을 맡은 날도 아니다.

“과연…왜일까 왜 오늘일까.. 오늘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그때 민수의 휴대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 이찬성 조연출…”

발신자는 이 찬성 조연출로 민수가 현장에서 만났던 조연출 중에 하나였다.

민수는 현장을 여기저기 다니며 여러 명의 조연출을 만났는데 이 찬성 조연출은 그 중에서도 가장 성격 좋은 사람이었다.

조연출들은 기본적으로 잡무도 많고 앞날도 명확하지 않아 성격이 날카로운 것이 보통이었다.

이는 그 사람의 인품이 좋고 나쁘고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세세한 것 하나하나 점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체크 하지 않은 부분에서 자신의 실수가 아닌 문제가 나타나도 깨지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에 촬영장에서 항상 초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촬영 중이 아닌 경우에는 그 들의 인품이 명확히 드러난다.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는 바로 보조출연자 즉 엑스트라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어떤 이는 보조출연자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모멸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보조 출연자를 같이 촬영하는 배우로 대우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민수가 겪어 본 바로는 후자가 더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바닥이 알게 모르게 좁아서 인성 바닥이라는 인식이 박히면 잘나갈 때는 상관없는데 조금만 미끄러져도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져 아무도 건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 좋은 이 찬성 조연출은 좀 다른 경우였다.

사람이 쓸데없이 좋아서 보조출연자들 하나하나까지 다 정을 주는 편이었고 오지랖도 쓸데없이 넓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법 따랐으나 문제는 이분이 너무 줄을 못 탄다는 것이었다.

모든 피디들한테 다 허허거리니 누구의 사람도 못되고 모두에게 구박받는 그런 안 좋은 상황이 이어지다가 민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아마 어느 피디에게 이용만 당하다 팽 당했거나 어쩌면 피디가 되었지만 어느 한직만 전전하다 은퇴했거나 아마 이 두 가지 중에 한 경우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일반적으로 피디가 못 되거나 아니면 빠르게 퇴직하는 피디들이 거치는 수순이 대부분 그러했으니 줄도 없고 능력이 특출나게 뛰어난 것도 아닌 사람 좋은 조연출이 가는 길 역시 그러했으리라.

민수는 이 당시 본인의 문제도 감당 못 하고 허덕이던 때라 신경 쓰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아까운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으면 최소한 받은 정성에 대한 보답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찬성 조연출이..전화를 왜… 아…..설마 오늘이 .,…”

민수는 전화를 서둘러 받았다.

“네, 조연출님. 안녕하세요”

[야,조연출님은 무슨 형님이라고 부르라니까]

그렇다. 이 찬성은 민수에게 좀 더 각별히 대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유는 이 찬성의 동생이 군인이라는 점이었는데 찬성은 군대를 갓 전역하고 나온 민수에게서 자신의 동생 친구 같은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보조출연자들보다는 민수에게 더 친밀하게 대하곤 했었다.

[오늘은 안나 왔더라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요. 특별한 건 아니고요. 다만 몸이 조금 안 좋은 거 같아서요”

[저런 몸이 재산인데 관리를 잘했어야지. 많이 안 좋은 거니?]

“아니에요. 이제 괜찮아졌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때 쯤이였지. 이제야 알겠네.’

[그래,그거 다행이네. 흠흠 사실 너한테 물어볼게 있는데 혹시 오디션 하나 볼래?]

오늘은 민수 인생에서 최초로 오디션 제의를 받은 날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민수는 왜 자신이 이 시간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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