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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1
어느 무명배우의 담담한 회고
나는 그냥 평범한 소년이었어.
엄마 아빠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평범한 학생이었지.
철없고 놀기 좋아하는.
뭐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엄마 아빠 모두 고아 출신이라 친척 하나 있지 않다는 점과 아빠가 진정 호인이었다는 정도였어.
호인 아빠와 자상한 엄마, 우린 정말 그렇게 평범한 가족이었어.
그래. 그때 그 사고가 있기 전까진 말이야.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어.
우리 세 가족은 강릉의 해안가로 나들이를 떠났지.
맞벌이하는 빡빡한 삶 속에서 정말 어렵게 낸 시간이었어.
하루 동안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날은 정말 행복했어.
그런데 그 날밤 우리가 묵고 있던 그 모텔에서 화재가 발생하게 된거야.
모텔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밖으로 탈출할 수 밖에 없었어.
성수기에 해안가 모텔은 많은 사람들이 묵고 있었고 출입구는 좁았으며 사람들은 판단력을 상실했지.
밀고 당기는 아수라장에서 아빠와 엄마는 나오지 못하셨어.
그래. 그곳에서 나는 유일한 가족을 잃고 세상에 단 혼자가 되고 말았던 거야.
정말 행복했어야 할 그날은 내 생에 가장 비참한 그런 날이 되고 말았지.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호인이었던 아빠가 지인들을 통해 들어놓았던 여러 보험이 당장 끼니를 걱정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 화재는 많은 인명을 앗아갔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어.
살아나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몇 명 되지 않았던 모양인지 나에게 많은 기자들이 달려들었고, 취재하겠다고 달려드는 기자들을 피해서 난 서울로 도망쳤어.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자퇴했고 그 해 바로 검정고시를 통과했지.
공허한 삶 속에 때때로 그날의 꿈이 나를 괴롭혔고, 그때마다 난 차라리 나도 그곳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어.
아니면 내가 조르지 않고 얌전히 생일을 집에서 보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하는 그런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거나 혹은 내가 조금만 제정신을 차리고 부모님을 업고라도 나왔더라면 하는 후회, 그런 감정들로 하루하루 침식되어 갔지.
나는 정말 모든 것을 잊고 싶었어.
그런 나의 선택은 군대였어.
내가 입대한 곳은 일반 병과 중에서 가장 훈련이 힘들다는 적호 군단이었어.
의주, 압록강 근처 경계선을 지키는 최전방 부대, 그런 부대답게 1년 동안의 예비 훈련은 정말 힘들었고 나로 하여금 내 상황을 잊게 했지.
일병으로 소속부대를 배치받았고 그 뒤에 2년 동안 그곳에서 일반병으로 복무, 그 뒤 부사관 훈련을 1년 받고 단기 하사로 다시 1년을 복무했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사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겠다 생각이 들었던 나는 미련 없이 장기 부사관 신청을 하게 되었어.
그러나 나는 장기 부사관이 될 수 없었지.
사유는 어이없게도 사회성 부족이었어.
아니, 그래 인정할게. 내가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진 않았어.
오죽했으면 2소대 A급 아싸가 내 별명이었을까, 하지만 임무 수행능력은 좋았어.
임무 수행평가에서는 항상 최상위권이었다고.
졸지에 전역하게 된 나는 다시 서울로 내려갔어.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서울.
그런데 의외로 내가 잠시 묵던 원룸의 사모님이 나를 기억하고 계시더라.
결국 나는 다시 그곳에 보금자리를 꾸리고 살기로 했어.
그곳에서 또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나는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지.
계기가 분명 무언가 있었을 거야.
물론 지금에 와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 일이지만 아마도 별 볼 일 없는 이유였던 거 같아.
중요한 계기였으면 분명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지 않았겠어?
그렇게 나의 고난 넘치는 연기인생이 시작되었어.
처음에는 그냥 무작정 여러 촬영현장을 찾아다니며 엑스트라니 연출 보조니 닥치는 대로 그리고 맹목적으로 따라다녔어.
그리고 여러 연기학원을 전전하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연기를 배웠지.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보조출연자로 연기하는 내 모습을 보고 어느 작은 기획사의 실장이 내가 명함을 주며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어.
좋은 기회라 생각한 나는 별 고민 없이 그곳과 계약을 했어.
처음에 1년 동안 실장을 따라 다니며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
하지만 결국 아무런 배역도 얻지 못했지. 아마 그게 당연하였을 거야
그때의 나는 정말 연기를 잘 못 했으니깐.
아마 그래도 그럭저럭 반반했던 외모가 아니었으면 소속사 계약 자체도 못했을 거야.
분명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을 테니.
1년동안 성과가 없자 소속사에서는 나에 대한 관심을 끊었어.
그제야 난 뭔가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왜냐하면...아무도 내게 내가 왜 오디션에서 떨어졌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으니깐.
소속사 계약이 이어진 남은 2년 동안 난 외로운 독학의 시간을 보냈어.
연기에 관한 서적을 수십 권을 찾아보고 명성 높은 선배 연기자의 연기를 계속해서 모니터링 했지.
그렇게 집중하는 동안에는 난 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니 그리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어.
아무 일 없이 계약 기간이 끝나고 소속사는 미련 없이 계약 해지했어.
나 역시 아무런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고 그다음 내가 선택한 곳은 스턴트스쿨이었어.
몸은 건강했고 군에서 훈련받던 경험도 있고 몸을 쓰는 것이 익숙하니 액션으로 부족한 연기력을 보충하는 액션 배우가 되려는 계산이었지.
그리고 10년 동안 그곳에 몸을 담게 되었어.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내가 배우가 될 길은 보이지 않았지.
운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실력이 아직 멀었던 걸까. 난 번번이 모든 오디션에서 낙방하고 말았어
그 10년은 결국 큰 의미는 없었지만 아무 의미도 없진 않았어.
10년간의 꾸준한 연습은 나에게 맞는 호흡 방법과 발성 방법을 깨닫게 만들었고 어색했던 감정연기도 이제는 봐줄 만하게는 하게 되었으니깐.
또한 외국어도 미친 듯이 공부해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정도는 어느 정도 구사 할 수 있게 되었지.
처음에는 혹시 교포나 외국인 역할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외국 연기자들의 연기 감정선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외국어 공부를 쉬지 않은 거야.
그리고 호흡연습과 외국어 공부는 내가 죽을 때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았어.
삼십 대 중반이 넘어선 난, 내가 더 이상 스턴트를 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었어.
체력과 민첩성 완력 모두 떨어지기 시작해서 잘못하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까지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결국 스턴트 스쿨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
스턴트 스쿨을 떠나서 내가 몸담은 곳은 극단이었어.
스턴트맨 생활 중에 알게 된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극단은 작은 곳이지만 탄탄한 곳이었어.
그리고 이곳에 배우들은 정말 연기를 잘했지.
나도 이젠 어느 정도 연기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던 거 같아.
이곳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 특히 감정표현을 중점적으로 말이야.
난 이곳에서 별다른 큰 배역을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배우는 것 자체로도 만족했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 자체도 좋았어.
다만 이곳은 정말 돈이 안돼서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투자할 수 밖에 없었어.
그래도 난 극단에 온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의 연기도 점점 좋아졌지만, 나의 외모는 풍파에 점점 시들어 갔고 건강했던 육체도 서서히 녹슬어 가고 있었던 거 같아.
그냥 자연스럽게 말이야.
그렇게 10년 동안 극단에서 생활했어
하지만 극단의 경영상태는 나날이 악화 되었고 경영난에 문을 닫으면서 난 다시 세상에 홀로 설 수밖에 없었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십 대 중반의 나이. 그때야 난 비로소 허무감을 느꼈던 거 같아.
그리고는 문득 느끼게 되었지
‘아 난 진짜 배우로서 재능이 없구나’
그것을 느끼고 나니 세상 모든 게 허탈하게 느껴졌어.
무기력하게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예전에 연기를 처음 공부할 때 보았던 영상 속에 대배우들의 연기를 보게 되었지.
연기를 20년 이상 공부하고 그들의 연기를 보니 그들이 보여준 감정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것들을 조금씩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
다시 닥치는 대로 영상을 보면서 공부했어.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을 때 다시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했지. 어떤 역할이라도 좋으니 한 번만 연기하게 해달라고.
그러나 50대가 다 돼가는 경력 미천한 연기자가 얻을 수 있는 배역은 거의 없었어. 그래도 단역과 엑스트라를 오가면서 기다렸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 나이 오십 대 중반이 되면서 단 한 번의 기회가 왔지.
나를 유심히 보던 조연출이 나에게 오디션을 제안했어.
배역은 중국인 교포 사업가, 조연이지만 제법 비중이 있는 역할이었어.
영화는 중국에서 동시 개봉 예정이었는데 역할은 교포 역할이라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유창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었던 거야.
조연출은 내가 단역을 하면서 중국어를 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이 역을 제안하게 된 거였어.
나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
감독도 매우 흡족해했고 이제 촬영만 남은 상황 그 전 날밤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하고 잠자리에 들었지.
내일이면 드디어 제대로 된 배역을 연기 하겠구나.
그러나 그날 밤 나는 가슴에 강한 통증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어.
지금까지의 모든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나는 내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지.
그래. 그렇게 내 인생이 끝났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안타깝지만, 후회나 미련은 없어.
아마 다시 살아도 지금보다 열심히 하진 못할 테니깐 .
그래 이제는 나도 쉴 수 있겠구먼….
아버지 어머니께도 열심히는 살았다고 웃으며 말 할 수 있을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