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3/40)

세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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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쉽게 말하기는 했지만 세뇌는 솔직히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었다. 원석처럼 광고나 기업의 CM송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TV라는 매체가 검증되어 신뢰받기 때문이었다.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신뢰가 입증되었으니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쉽게 받아들이고 쉽게 마음과 기억에 남아버린다.

'나도 이런 수준으로 가야하는데... 쉽지는 않겠군.'

운현이 기를 쓰고 윤지와 찬성의 신뢰를 얻어내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가상 현실의 세계를 구축하여 그 안에 자신을 넣는 것은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과 같았다. 그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정확하고 정밀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나도 광고는 좀 생각해봐야겠군. 음... 원석이 그룹을 제대로 잡으면 괜찮은 연예인을 골라야겠군.'

"그래서... 어쩌시려구요?"

"세뇌의 기본 법칙인 BITE와 72시간의 법칙을 이용해서 한번 해봐야지. 솔직히 나도 세뇌는 처음이라 좀 긴장되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경험을 미리미래 해놔야 한계를 알 수 있지."

"무슨... 한계요?"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한계."

"뭐에 얼마나 버텨요!?"

무슨 악의 조직 간부 훈련을 하는 기분이다. 아니. 이 인간은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알고 담담히 말하는 것인가. 원석이 떨떠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운현은 이상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야. 넌 기업 운영할거라면서 이것도 모르면 어떡하냐? 기억해둬. 기업을 운영하는 이상 사람들의 마인드 컨트롤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니까."

"아, 알겠습니다."

세뇌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기본상식이 부족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운현의 모습에 원석은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운현은 인벤토리에서 두꺼운 책 몇권을 꺼내어 그에게 던졌다.

"...이게 뭡니까?"

"세뇌에 관련된 좋은 책들."

"오옴진리교... 프로파간다. 나에게 문장만 주면 저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인간 심리학... 이걸 다 읽은 겁니까?"

"응. 도움이 되니까."

"...도대체 뭘 하고 싶은겁니까?"

"인간의 심리와 정신을 파악하려고. 아무튼 난 하러 갈테니까 어디 나갈거면 라티나 데리고 나가. 그리고 정운택 움직임 잘 살피고."

"아, 알겠습니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운현은 양미혜의 옷을 모두 벗긴 후 다시 원래의 복장으로 갈아입힌 후 그녀를 짊어지었다.

"아. 밑에 있던 걔는 어쨌냐?"

"지금 서해 바닷속에 있을겁니다."

"잘했다. 아. 그리고 몇가지 좀 알아와줘."

"뭡니까?"

"양미혜에 대한 거. 네시간 줄테니까. 그리고 밑에서 뭔 소리 들려도 들어오지마. 세뇌에서 중요한 것은 외부 정보의 통제이니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소리만으로도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면 그녀의 마음이 닫힐 수 있어. 만약 방해했다가 실패하면..."

"시, 실패하면요?"

"널 실험도구로 써주지."

"절대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식량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통조림이랑 빵이랑 가져갈거야. 그 외에 필요한 것은 내가 직접 가지러 가지."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운현은 양미혜를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 벽에 만들어 놓은 사슬로 그녀의 양 팔을 묶어 고정시킨 후 올라 온 운현은 식량을 들고 밑으로 다시 내려갔다.

'이제 어쩐다...'

팔짱을 끼고 생각을 하던 운현은 일단 인벤토리에서 블랙 오크의 피가 들어 있는 앰플을 꺼내었다. 세뇌의 기본은 상대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입 안에 앰플에 있는 피를 흘려 넣은 운현은 그녀의 눈을 천으로 가리고 그레이터 힐을 걸었다.

"으으음..."

그레이터 힐에 걸린 양미혜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자 운현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자신의 양 팔이 구속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고 안대가 채워진 것에 당황했다.

"뭐, 뭐야! 누구야!?"

"양미혜."

"너 누구야! 어떤 새끼야!"

"정운택의 애인. 양미혜가 맞나?"

"너... 씨발!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거냐!? 뭐하는 새끼야! 좃같은 새끼야! 이거 안풀어! 본부장님이 알면 널 찢어죽이실거다! 이거 당장 풀어!"

책에 의하면 양미혜와 같은 기득권층은 납치를 당했을 때 기본적으로 큰 저항과 함께 협박을 하여 상대방의 우위에 서려고 한다. 그런 것을 일단 가라앉히고 자신이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줘야 하기에 운현은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뭐, 뭐야...!!"

센 척은 하지만 그녀는 지금 두려울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자신은 구속당해 있고 아무런 정보도 가지지 못한 상태이니 말이다.

"이거 안풀어!? 풀어! 이 개새끼야!! 아악! 어딜 만져!!"

운현의 손이 양미혜의 블라우스를 풀어내었다. 그가 자신의 옷을 벗겨내는 것에 기겁하며 육덕진 몸뚱이를 크게 흔들었지만 튼튼한 사슬이 풀릴리는 만무했다.

"놔! 놔!! 손대지마! 개새끼야!!"

이쁜 입술로 신랄하게 욕을 터트려대는 그녀를 무시하며 운현은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갔다. 상대가 누군지도, 그리고 이곳이 어딘지도. 거기에 자신이 기절한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는 그녀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도, 돈이 필요한거라면 얼마든지 주겠어! 그러니까 이것 좀..."

"얼마까지 줄 수 있지?"

"어.. 얼마를 원하는데?"

운현이 반응하자 그녀는 반색하며 물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피식 웃은 운현은 양미혜의 하얀 귓가를 쓰다듬었다. 마치 벌레가 자신을 만지는 것같은 기분에 양미혜는 몸을 흔들었고 운현은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한 이조 정도 줄 수 있나?"

"미친 새끼가...!?"

이정도면 자신과 협상할 마음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양미혜는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 저항했지만 그녀의 저항은 정말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고작해야 몸을 흔드는 것이 다인 그녀가 마음대로 몸을 흔드는 것을 지켜보던 운현은 그녀의 몸에 점점 힘이 빠지자 피식 웃었다.

"이제 좀 얌전해졌군."

"하아... 하아... 이 개새끼가...!"

"그럼 다음으로... 이 가슴을 볼까?"

"하지마!! 하지마아아아!! 이 씨팔놈아!!"

"부득!"

"아아아아악!!"

그녀의 욕설 섞인 저항을 비웃으며 운현은 그녀의 붉은색 브래지어를 가볍게 뜯어 버렸다. 그 순간 아까 보았던 커다랗고 모양 좋은 가슴이 출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긴장한 탓일까? 아니면 아까 전에 블랙 오크의 피를 먹은 탓일까. 분홍빛 유륜 위의 유두는 딱딱하게 돋아 있었다.

"히이..."

"핥짝."

"아아악!!"

또다시 몸이 흔들린다. 커다란 가슴이 자신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에 운현은 빙긋 웃었다. 어디 마음대로 해보라지.

'세뇌의 첫번째. 상대에게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상대가 싫더라도 생존을 위해 상대에게 기대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왜 잡힌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그딴 것을 생각할 여유따위는 줘서는 곤란했다. 그렇기에 운현은 그녀를 가볍게 취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시간을 들여 그녀가 저항하게 내버려 두었다. 한참을 몸을 흔들며 저항하던 그녀가 지친 듯 숨을 헐떡거리자 운현은 다시 가슴을 쪽쪽 핥고 유두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것에 양미혜는 또다시 몸을 흔들며 저항했고 그녀의 저항에 운현은 그녀의 가슴을 놓고 뒤로 빠졌다.

"헉헉..."

그러기를 수차례. 몸을 흔드는 것도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더 사슬에 묶여진 팔목은 다 까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녀의 풍만한 몸에는 땀방울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이제 다 했나? 쪽... 핥짝..."

"으윽... 이 개자식...!"

몸을 흔들며 저항을 해봤자 결국 반복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양미혜는 헛된 저항을 멈췄다. 그녀가 이를 빠득빠득 가는 것을 보며 유두를 괴롭힌 운현은 양미혜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나?"

"닥쳐! 개새끼야!"

"헤에... 좋아보이는데."

"으으으읏!?"

운현의 손이 천천히 치마 안쪽의 허벅지를 쓰다듬자 생리적인 혐오감에 양미혜는 또다시 몸을 떨었다.

'이거 우습군.'

참으로 가녀리고 우습다. 양미혜가 헛된 저항을 하는 것을 보며 운현은 다시 아까의 행동을 반복했다. 유두를 핥고 커다란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뭍은 후 스타킹에 감싸진 탄탄한 허벅지를 쓰다듬는다. 그것에 양미혜가 저항하면 또다시 반복.

몇번을 그렇게 하고서야 양미혜는 결국 눈물을 주륵 흘려버렸다.

"흑흑... 개새끼... 하지마... 하지말란말야..."

'일단 어느정도는 누그러트린 것 같고...'

처음의 쌍욕이 줄어들고 눈물이 나온다. 물론 저 눈물이 진짜라고 볼 수는 없으니 할 일은 계속했다.

"그런 것 치곤..."

"찔꺽."

"흐읏!?"

"꽤나 젖어 있군. 이런 상황을 즐기는건가?"

"아, 아냐!!"

끔찍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와 손길이다. 혐오감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은데 어째서인지 몸은 일일히 반응해버린다. 이렇게 저항을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필사적으로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몸이 반응하는 것에 대한 부정을 위해서일지도 몰랐다. 양미혜는 눈물을 흘리며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고 운현은 양미혜의 커다란 가슴을 주무른 후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맞췄다.

"퉷! 퉸! 우웩!!"

입술이 닿기가 무섭게 양미혜는 고개를 돌려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운현은 오히려 더욱 만족스러웠다.

'이정도는 되야 세뇌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할 수 있지.'

격한 반응은 실험을 위한 좋은 척도가 된다. 운현은 빙긋 웃은 후 그녀의 갸냘픈 턱을 잡은 후 다시 강제로 키스했다.

"우웁...!"

혀가 들어오지는 않지만 입술이 빼앗겨버렸다. 이제는 정운택에게만 허락한 입술인데...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의 입술이 벌어지는 것 같다. 의식하지 않으면 상대의 타액을 탐하려 할 것 같은 불안감에 그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우웨에엑!!"

"솔직하지 못하구만."

"닥쳐... 개새끼야!! 치졸한 새끼! 비겁한 새끼! 여자 하나 따먹는데 이렇게 묶지 못하면 못하는 거냐!? 씨발 고자같은 새끼야!!!"

"칭찬 고맙군. 그렇지만 너도 만만치 않은 변태 같은데? 이렇게 납치당한 상태에서 뉘신지도 모를 사람에게 음부가 만져지는데 느낀다라..."

"아흑... 그, 그런거 아니야!"

운현의 손이 팬티 위에 보이는 흠뻑 젖은 음부를 만지작거리자 양미혜는 허리를 빼며 허벅지를 오무렸다. 하지만 탄력적인 허벅지가 그저 손을 감싸기만 할 뿐 이었다. 이미 달아오른 그녀의 음부는 운현의 자극을 원하는 듯 끈적한 애액을 더욱 뱉어내고 있었다.

"찔꺽..."

"으읏... 읏..."

아까 신나게 움직인 탓인지 블랙오크의 피가 빠르게 몸에 퍼진 모양이다. 운현은 이런 상황에서 흥분해버린 자신의 몸을 저주하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양미혜를 보고 히죽 웃었다.

"그럼 한번 제대로 쑤셔줘야겠군."

"뭐? 하, 하지마! 하지마아아아!!"

큼지막한 유방을 주무르던 손이 멈춰지고 치마를 벗기기 시작했다. 그것에 당황한 양미혜는 자신의 양 다리를 움직여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그의 손은 가볍게 치마의 지퍼를 풀어버렸다. 툭 떨어진 치마를 옆으로 치운 운현은 이제는 속옷의 역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녀의 팬티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렇게 젖어놓고 하지말라라..."

"쯔릇..."

"아흐으읏!!"

흠뻑 젖은 팬티를 옆으로 젖힌 운현은 말랑거리는 도톰한 계곡 입구를 벌렸다. 그것만으로도 쾌감을 받은 것인지 양미혜의 계곡은 애액을 쭉 뿜어내었다.

"호오."

"...하지마!! 하지말라고!! 그 더러운 손 치워!"

"손이 더럽다면 입은 어떨까?"

"핥짝."

"히잇!?"

그의 혀가 딱딱히 부푼 클리토리스를 핥았다. 그것만으로도 온 몸에 전기가 도는 듯한 충격을 받은 양미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그것을 본 운현은 자신의 입가에 주륵주륵 흘러내린 끈적한 애액을 맛본 후 히죽 웃었다.

"이정도면 더 이상의 애무는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진짜 변태년이군."

"아니야... 아니야..."

자신이 고작 이정도의 애무로, 누군지도 모를 자의 애무로 젖어버린 것이 꽤나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허망하게 중얼거리자 운현은 바지를 벗은 후 자신의 양물을 그녀의 계곡에 가져다 댄 후 쓱 밀어 넣었다.

처녀도 아니고 이미 농익은 여인의 계곡은 운현의 남성이 다가오자 꿈틀거리며 그것을 쉽게 받아들였다. 블랙 오크의 피로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본능적으로 남성의 양물을 탐하는 계곡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그의 남성을 꽉 조였다.

"하윽...윽... 으흣...흑... 어, 어째서...!?"

달아오른 몸이 이제는 뜨겁게 느껴질 정도다. 계곡 안으로 양물이 파고든 것에 몸이 쾌감의 기쁨을 느낀다. 여자인 자신이기에 안다. 이미 정운택에게 개발당할대로 개발당한 몸이기에 알고 있었다.

'왜 기뻐하는거야...!?'

더럽다고, 역겹다고 생각되면서도 그녀의 몸은 남성이 들어 온 것에 너무나도 기뻐하고 있었다. 팔만 멀쩡하다면 상대를 끌어안고 싶을 정도다. 필사적으로 그 생각을 지우며 입술을 꽉 깨문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을 시도했다.

"....."

"찔꺽...찔꺽...."

허리가 움직이며 계곡 벽을 자극한다. 그때마다 움찔거리는 양미혜를 보며 운현은 빙긋 웃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보인다.'

아마 자신이 쾌감을 느끼는 것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겠지. 운현은 양미혜의 사고를 한가지로 돌린 것에 일단 만족했다.

'납치되었다는 것보다 자신이 섹스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에 집중하게 한다. 사고를 바꾸는 것은 다음 일.'

일단 그녀의 경계심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운현은 허리를 흔들며 양미혜의 반응을 주의깊게 살폈다. 입술을 앙다물고 있지만 운현의 양물이 계곡의 끝부분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움찔움찔 몸을 떨고 있었다.

그렇게 십여분동안 허리를 흔들던 운현은 양미혜의 오독한 유두를 슬슬 문지르며 볼을 핥았다. 살며시 입술이 열린다. 천천히, 절정에 도달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허리를 움직인 효과가 슬슬 보이는 것에 만족한 운현은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가져갔다.

"쭈릅...쪽...!"

아까 전까지만 해도 키스를 해도 절대 혀를 내주지 않으려던 그녀가 스스로 혀를 내미는 것에 운현은 만족했다. 블랙 오크의 피가 가져 온 흥분을 결국 참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잘났다고 해봤자 결국 이정돈가... 확실히 블랙 오크의 피가 세긴 세군.'

"하아...아으으으! 흐아아아앙!!"

이제 더 이상 참지 않으려는 듯 그녀는 쾌감을 토해내며 자신이 운현의 움직임에 맞추어 허리를 움직였다. 들어 올려진 양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매끈한 다리가 자신의 허리를 꽉 끌어안자 운현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인정하나? 네가 개변태라는것을?"

"하윽...읏...아, 아냐... 아냐... 난..."

'몸은 반응하지만 의식은 아니라는 건가... 뭐. 이건 준비작업이니까.'

"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한발 빼고 시작해볼까...?"

"하윽! 으으윽!!"

운현은 그녀의 얇은 허리를 잡고 허리의 피스톤질에 박차를 가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천천히 움직이던 그의 허리가 고속으로 움직여지자 그 쾌감에 양미혜는 혀를 빼물고 신음을 토해냈다.

"하윽! 으윽! 으하아아앙!!"

"으읏... 싼다!"

"아, 안에는 안돼에에에에엥!!"

운현이 안에 싼다고 말하자 양미혜는 비명을 내지르며 거부했지만 그녀의 몸은 더더욱 깊숙히 그의 남성을 받아들이려 했다. 허리를 안은 다리에 힘이 가해진다. 그녀의 안에 남성을 쑤셔 넣은 후 운현은 그대로 사정했고 자신의 안에 정액이 주입되는 것에 양미혜는 혀를 빼물며 절정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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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됩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자 운현은 양미혜를 감정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남성을 물수건으로 닦은 운현은 헐떡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싸늘히 말했다.

"어때? 좋았나?"

"조, 좋기는..."

한번 한 정도로 만족할리는 없었다. 하지만 양미혜는 기특하게도 증오심 섞인 목소리로 운현에게 말했고 그것에 운현은 히죽 웃었다.

"네 애인보다는 내가 더 잘하는 것 같은데..."

"개소리 집어 치워. 쓰레기 같은 새끼야... 하나도 안좋았거든?"

"그래? 하긴 나도 너같은 갈보년은 딱히..."

"그럼 날 빨리 풀어줘!"

"그건 좀 곤란하지. 정운택에게 사람을 보냈다. 널 구하고 싶으면 이곳으로 혼자 오라고..."

"......"

"그가 오면 널 풀어주지. 기한은 일주일. 일주일 안에 그 새끼가 오지 않으면 네 양 팔의 힘줄과 혀를 잘라 섬에 가져다 놓겠다. 물론 이것 역시 정운택에게 말해 놓았다. 그가 널 구하고 싶다면 당장 내가 말한 곳으로 오겠지."

".....!"

섬이라는 말에 그녀는 움찔 몸을 떨었다. 섬이 무엇인지는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성경 그룹과 얽힌 여자들 중 위험하다 싶은 여자나 막대한 빚을 진 여자를 가져다 파는 곳. 그곳에서 삼류 인생들을 상대하는 창녀가 되는 것이 바로 섬이다.

"너... 너 성경 그룹 사람이었냐?"

"그렇다면?"

"......"

영특한 그녀이기에 지금 자신을 이렇게 만들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한참 생각하던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강원석..."

"내가 모시는 분이지."

"씨발...!!"

이제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무슨 이유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알게 된 그녀는 이를 갈며 운현에게 싸늘히 말했다.

"강원석 그 씨발새끼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이거지!? 네놈! 강원석의 부하!? 줄 잘못 섰어! 강원석 그 새끼는 이제 끝이라고!"

"끝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이지."

"하하... 이봐. 나 같은 여자를 안아서 기분 좋았지? 응? 이렇게 하는 거 어때? 솔직하게 나 네 섹스 정도면 만족해. 어때? 내 애인이 되는 것은? 날 풀어줘. 날 풀어서 정운택 본부장님께 데려가주면 널 강원석 그새끼의 자리에 앉혀줄게. 그리고 나랑 하는 거라고. 어때? 땡기지 않아?"

"흐음... 그거 매력적인 제안이군."

"그렇지? 그렇지?"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으니 교섭을 진행한다. 양미혜는 희미하게 웃으며 자신의 다리를 살짝 벌렸다. 방금 전 싼 운현의 정액과 양미혜의 애액이 섞인 백탁의 액체가 그녀의 계곡을 타고 쪼르륵 흘러내렸다.

"한번 더 하게 해줄게. 응? 이번엔 내가 제대로 스킬을 발휘해줄테니까 말야... 어때?"

"그것도 무척 땡기는 제안이기는 하지만..."

운현은 준비한 마취약을 손수건에 흠뻑 적신 후 그녀의 코와 입을 막았다.

"아직은 아니야. 정운택 본부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생각해보지."

"으으음..."

마취제에 의해 양미혜가 기절하자 운현은 의자를 끌어 그녀를 앞에 둔 후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실질적으로 내가 지금 쟤에게 걸 수 있는 세뇌는 그리 강하게 걸 수 없을거야. 단순히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지속적은 고통만으로도 정신을 놔버리게 할 수 있겠지만...'

기껏 막 굴려도 괜찮은 실험체를 구했는데 이유없이 그녀를 파괴할 필요는 없었다. 피스나의 연구자료에서도 이미 나와 있는 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운현은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양미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보자. 그녀의 사고를 전환하는것이 어렵지 않다면... 가상의 세계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진짜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아..."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은 아직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양미혜는 강원석에 대한 증오심이 강하고 정운택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 거기에 그녀는 꽤나 똑똑한 편이었기에 그녀를 세뇌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게 뭐지?"

블랙 오크의 피로 양미혜의 몸이 쉽게 발정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이것으로 그녀가 이상성욕자임을 주지시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굴복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두번째. 정운택이 자신만큼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토록 만든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그리고 기절과 깨어남의 반복을 통해 시간을 알 수 없게 만들어 정운택이 그녀를 버렸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세번째... 같은 일의 반복을 경험하게 만들어 그녀가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일단 이정도로 만족해야겠군.'

"일어나."

지하실에 비치해 둔 시계의 시간을 여덟시간 후로 바꾼 운현은 마취제로 인해 정신을 잃었던 양미혜를 흔들어 깨웠다. 인벤토리에서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린 그는 그녀의 안대를 풀어 준 후 물었다. 서서히 정신이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인 줄 아냐? 그렇게 쳐자게?"

"으으... 내가 얼마나..."

"여덟시간. 잘만 자더군."

"윽..."

실제로는 십분도 채 되지 않지만 정신을 잃었다가 깨는 것인만큼 양미혜가 정확한 시간을 알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운현은 양미혜가 천천히 눈을 뜨며 자신을 바라보자 비릿한 어조로 말했다.

"정운택의 연락은 없었다."

"...안오시는게 차라리 나을거다. 넌... 한운현인가?"

"뭐야. 날 아나?"

"...강원석의 부하였나."

"그렇다면?"

운현의 말에 양미혜는 입을 다물고 생각을 이어나가려 하였다. 하지만 운현은 그녀가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하게 그녀의 양 다리를 잡고 벌렸다.

"뭐, 뭐하려는 거냐!"

"뭐긴. 한번 더 하려는 거지. 정운택이 오기 전까지 당신은 내꺼야."

"놔! 놔!!"

양미혜는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며 저항했다. 그녀가 몸을 흔들자 뒤로 물러난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싸늘히 물었다.

"그렇게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거부하는거지?"

"개자식... 어린 놈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날 아는 걸 보니 나에 대한 뒷조사를 했나보군."

"흥!"

양미혜는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탁자 위에 놓아 둔 단검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뭐하려는 거지? 날 죽이면 정운택 본부장님이 너와 네 가족을 산채로 씹어삼킬텐데?"

"글쎄. 과연 그가 널 구하러 올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텐데. 설마 내가 정운택을 여기로 불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흥...!"

운현의 말에 양미혜는 자신의 옷을 힐끔 보았다. 납치되기 전에 입고 있던 옷이다.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데다가 장신구도 모두 착용하고 있었다.

'모르는 것이겠지?'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것에 초소형 GPS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옷의 천이 겹치는 딱딱한 부분에 숨겨져 있기에 알고 있지 못하는 이상 절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것만 믿으며 양미혜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나와 하고 싶어?"

"하고 싶다면? 그냥 순순히 해줄건가?"

"몇가지 답변만 해준다면."

GPS를 보고 정운택이 찾아와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보면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양미혜는 운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강원석의 밀수는 네가 도운 것인가?"

"글쎄."

"사람들을 죽인 그 가드는 누구지?"

"글쎄."

"...지금 장난하는거야?"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양미혜. 당신 제정신인가?"

운현은 그녀의 볼을 단검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은 후 그대로 단검을 그녀의 복부에 찔러 넣었다.

"푹!"

"아아아아아악!!"

복부에 칼날이 쑤시고 들어오는 고통에 양미혜는 비명을 내질렀다. 엄청난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그녀가 울기 시작하자 운현은 그녀의 갸름한 턱을 잡은 후 담담히 말했다.

"지금의 당신은 정운택의 애인도, 그리고 성경 그룹 본부장의 비서도 아니야. 그저 살려달라고 빌어야 할 약하디 약한 여자에 불과하지."

"흑...흐흑...흑..."

자신을 보지도 못하고 울기 시작한 그녀를 보며 운현은 이를 드러낸 후 잡고 있던 단검의 자루에 힘을 넣고 돌렸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그녀가 허덕거리다가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버리자 운현은 단검을 뽑은 후 피를 잘 닦아내고 바닥에도 흐른 피와 그녀의 몸에 흐른 피도 모두 닦아내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에 피가 뭍을까봐 그것을 옆으로 치워 놓은 후 시계를 아까 전의 시간으로 돌려 놓고 그레이터 힐을 걸었다.

"으으음..."

"일어나."

"으... 개새끼... 여자를 이렇게..."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인 줄 아냐? 그렇게 쳐 자게."

"으으... 내가 얼마나..."

"여덟시간. 잘만 자더군."

"......"

양미혜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담담히 말했다.

"정운택의 연락은 없었다."

"아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분명히 자신은 복부에 칼을 맞았다. 그 끔찍한 고통에 기절을 했다 깼다고 생각한 양미혜는 놀란 얼굴로 자신의 배를 보았다. 여전히 군살 하나 없는 아름다운 배다. 자신의 기억에는 저 탁상 위에 있는 단검이 꽂혔었는데...? 그녀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운현을 보며 물었다.

"방금... 날 찌르지 않았어?"

"팔자 좋군. 납치당한 상황에서 꿈까지 꾸면서 자다니."

양미혜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와 자신의 어깨를 번갈아바라보았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가 곤혹스러워하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그녀의 양 다리를 잡았다.

"자, 잠깐!? 뭘 하려는거야!? 대, 대화를 하자! 너 한운현... 맞지?"

"뭐야. 날 아나?"

"강원석의... 부하?"

"그렇다면?"

그의 말에 양미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뭐지? 어떻게 된거지? 분명 어깨에 칼을 맞기 전에 나눴던 대화인데? 그녀가 당황하자 운현은 다시 그녀의 양 다리를 잡았다.

"뭐, 뭐하려는 거냐!"

"뭐긴. 한번 더 하려는 거지. 정운택이 오기 전까지 당신은 내꺼야."

"놔! 놔!!"

양미혜는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며 저항했다. 그녀가 몸을 흔들자 뒤로 물러난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싸늘히 물었다.

"그렇게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거부하는거지?"

운현이 이죽거리며 말하자 양미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에 그는 자신을 칼로 찌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냥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까? 그녀가 고민하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양미혜의 볼을 핥았다.

"네 입으로 말해보시지. 제발 해달라고..."

"개자식... 어린 놈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확실히."

운현은 그녀의 다리를 놓은 후 탁자에 올려 놓은 단검을 잡았다. 아까 전 저 단검이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하는게 옳지? 그녀가 고민하는 동안 운현은 양미혜를 향해 싸늘히 말했다.

"양미혜. 당신 제정신인가?"

저 말 저 말 이후 그의 단검이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 데자뷰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감각이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뜨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그녀의 복부에 망설임없이 단검을 찔러 넣었다.

"지금의 당신은 정운택의 애인도, 그리고 성경 그룹 본부장의 비서도 아니야. 그저 살려달라고 빌어야 할 약하디 약한 여자에 불과하지."

"아흐으윽!!"

뭐였지? 아까와 똑같은 일이 왜...? 양미혜는 눈물을 흘리며 운현을 보다가 또다시 쓰러졌고 운현은 그녀의 복부에서 단검을 뽑은 후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같은 상황의 반복을 통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지. 일단 자신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여 그녀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 확인하자. 그리고..."

운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검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과도할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켜 사고를 바꿀 수 있는지도 알아보자.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면... 패턴의 파악에 더 도움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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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양미혜의 GPS 반응이 사라지고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처음에는 그저 어딘가 나간 것이겠지. 라는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는 불안했다. 그가 불안해 할 수록 그의 부하들도 불안해졌다. 정운택의 짜증이

"본부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진정!? 진정하게 생겼냐!? 이 씨발새끼야!?"

자신을 말리는 부하의 멱살을 잡아챈 정운택은 빠득 이를 갈았다. 양미혜는 자신의 애인이고 수족이며 비서였다. 그것도 최측근이며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많은 것을 하게 했다.

'만약 그년이 야반도주한것이라면...?'

그냥 다른 젊은 놈과 눈이 맞아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혹여 그런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강원석, 혹은 자신과 척을 지고 있는 다른 놈들에게 납치되어버린 것이라면 상당히 곤란했다. 양미혜는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자금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범법행위, 그리고 이중장부. 그 외 대부분. 세간에. 아니 그룹에 알려져도 자신에게 치명타가 될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정운택은 초조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씨발!! GPS는 왜 안되는거야!?"

애꿎은 GPS추적기만 내려치며 그가 외치자 그것을 작동시키는 기사는 움찔했다. 아무리 추적하려 해봐도 GPS는 잡히지 않았다. 여분의 GPS는 양미혜의 집 안에만 있을 뿐 그녀의 위치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돈을 처 먹였는데 실제로 쓰지도 못해!?"

"죄, 죄송합니다!"

정운택이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기사는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가 이를 드러내었을 때 문이 열리며 부하 한명이 들어왔다.

"보, 본부장님!"

"뭐야!?"

"이걸..."

"이게 뭔..."

그가 가져 온 것은 작은 상자였다. 양미혜의 오밀조밀한 글씨가 적혀 있는 상자. 그 상자를 본 정운택은 불안감에 휩쌓였다. 설마...

'그 썅년이 배신한건가? 설마... 그럴리 없지. 그럴리 없을거야. 그년이 날 배신할리 없어.'

지금까지 자신에게 고분고분히 안긴 여자다. 자신을 배신해봤자 좋을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은 여자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절대 배신할 리 없다고 애써 생각하면서도 정운택은 포장된 상자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꿀꺽..."

침을 한번 삼킨 그는 상자의 포장을 뜯었다. 상자에 있는 것은 투명한 CD케이스와 그 안에 들어 있는 CD였다. 그것을 본 정운택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부하들에게 말했다.

"다들 잠깐 나가 있어."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나가자 자리에 앉은 정운택은 컴퓨터에 CD를 넣었다. CD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창이 뜨자 그 안의 폴더를 본 정운택은 동영상파일 하나가 있는 것에 긴장했다. 설마 협박범이? 그는 긴장에 가득한 손길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

어딘가의 모텔같은 방이었다. 그 방 안에 마스크를 쓴 남자 하나가 누워 있었다. 그것을 본 정운택은 빠득 이를 갈았다.

'저 새끼는 누구지?'

"어서 오도록 해.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는거야?"

"으읏..."

화면에 한 여성이 모습을 보였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매력적인 둔부를 가진 여인이 창녀들도 거절할 법한 야한 속옷을 입고 나긋한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정운택은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양미혜!? 어째서!?"

왜 그녀가? 왜 그녀가 저런 속옷을 입고!? 정운택은 분노로 이를 갈며 영상에 집중했다. 양미혜는 마치 스스로 원하는 것처럼 그에게 다가가 침대에 누웠다. 마치 연인처럼. 그의 몸 위에 긴 다리를 올리고 안았고 마스크의 사내는 양미혜에게 팔베게를 해준 후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아응..."

낮은 신음성이 터져나온다. 마치 사랑하는 애인에게 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하는 것보다 더욱 더 농밀하고 즐겁게 양미혜는 마스크의 사내를 애무해나갔다. 마치 연인들이 하는 것처럼 장난을 치며 양미혜의 몸을 가지고 놀던 사내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은 후 조용히 말했다.

"그동안 정운택 그 같잖은 새끼랑 하면서 많이 힘들었겠군."

"아아... 당신이 최고야... 그 사람보다..."

"...빠득...!"

"후후... 그래도 당분간은 정운택과 함께 있어. 그래야 내 목적을 이룰 수 있거든."

"알겠어요. 당신의 말대로... 으음..."

양미혜의 말이 들리자 정운택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이를 갈며 모니터를 잡았다. 더 이상 그것을 들을 수 없다. 그가 분노하며 모니터를 집어 던졌을 때 아직 연결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양미혜의 신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앙... 이거야... 이게 진짜."

"으아아아아아아!!!"

"와직!!"

"크아아아!! 양미혜!!  이 개썅년이!!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감히!!"

스피커를 뽑아 던져버리고 컴퓨터도 들어 박살낸 그가 분노를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란 부하들이 들어오자 정운택은 빠득빠득 이를 갈며 외쳤다.

"당장 양미혜 찾아와!!! 그리고 그 개 갈보년과 같이 있는 새끼도 잡고!!"

'생각보다 쉽군.'

하이딩을 건 채 벽에 기대 서서 정운택이 발광하는 것을 지켜보던 운현은 히죽 웃은 후 몸을 돌려 나갔다. 고작 동영상 하나만으로 이렇게 그가 분노할 줄이야. 혹시 몰라서 영상 두어개를 더 준비했었던 운현은 그게 별로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에 딱히 기분나빠하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 슬슬 풀어 줄 차례인가.'

당연하겠지만 영상에 나온 사내는 운현이었고, 양미혜가 그렇게 반응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안하면 죽으니까다. 정말 양미혜는 어떻게든 꾸준히 저항하고 꾸준히 거절했다. 그럴때마다 운현은 CCTV로 지켜보고 있는 원석에게 신호를 보내 들어오게 한 후 양미혜에게 임팩트가 갈 정도의 상처를 입히고 기절시키고 그레이터 힐로 회복시켜 다시 시작했다. 계속된 반복. 그 패턴 속에서 양미혜는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해왔다. 동영상의 그 장면 역시도 그녀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에 불과했다.

'참 저 장면 찍기 힘들었는데.'

저 반응을 이끌어내려고 그레이터 힐을 몇번이나 썼던 것일까. 마력이 간당간당해져 모은 스탯을 지력으로 투자까지 해야 했던 운현은 생각 외로 단단한 양미혜의 정신력에 감탄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지...'

운현은 양미혜가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이 그녀가 가진 정운택에 대한 사랑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정신적 , 물질적 지주인 정운택이 남아 있기에 그녀는 저렇게 버티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얼마나 갈까?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버팀목이 그녀들을 구하겠다는 목적이었지... 뭔가 버팀목이 있어준다면 인간의 정신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억에는 없지만 과거의 자신은 수십, 수백번의 회귀를 겪으며 절망하고 좌절하고 고통을 겪으면서도 반드시 가능하다는 기원과 같은 목적만으로 이렇게 버티고 남았다. 아마 양미혜 역시도 그럴 것이다. 정운택에 대한 사랑. 그것이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버팀목을 바꿨을때 어떻게 될까?'

그녀의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릴 지도 모를 상당히 위험한 실험이었지만 운현은 그것 역시도 실험을 해 볼 생각이었다. 양미혜는 윤지나 찬성과는 달랐다. 이런 일을 반복함으로써 그녀의 정신이 파괴되거나 망가질 가능성이 무척 높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원석이 그룹을 소유하려면 이 둘을 제거해야 할텐데. 어차피 제거될 거 나 필요한데 쓰는게 낫겠지. 최소한 죽지는 않을테니까.'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가 이런 짓을 한다면 양심의 가책이 조금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양미혜의 경우는 일반인과는 달랐다. 정운택의 애인으로 있으며 그가 벌어들인 수익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고 그 힘을 공유하여 타인을 강제하려 하였다.

힘이 있는 자에게는 그 힘에 따르는 책임이 존재한다. 운현은 그 말을 정면에서 부정할 수 있었다. 힘이 있는 자는 그 힘에 따른 책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휘둘렀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반응이든, 비웃음이든. 아니면 파멸이든.'

양미혜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돈이라는 힘을 써서 운현을 건드렸다. 그렇다면 당연히 건드린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나머지 일을 하러 가볼까..."

거리로 나온 운현은 골목에서 하이딩을 풀고 느긋한 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넌 오늘은 안나가냐?"

"그게..."

"대충 의사소통은 될텐데."

"그렇긴 하지만... 아직은 제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숙소로 돌아 온 운현은 원석이 자신을 반기자 그를 향해 퉁명스레 말했다. 그룹을 접수해야 한다고 한지가 언젠데 왜 아직까지 얌전히 있는 것인가. 그의 불만에 원석은 웃으며 답했고 운현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짧게 혀를 찼다.

"됐고. 슬슬 정운택이 움직일거야. 양미혜가 없어지고 그녀에 대한 신뢰가 깎였으니 그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는 예상이 되는군."

"예? 그게 무슨..."

"양미혜랑 내가 하는 동영상을 보내놨어. 이제 정운택은 눈이 시뻘개져서 너를 비롯한 자신의 적들을 조지러 다닐거야. 그러면서 많은 힘을 소모하겠지. 다른 이들과도 반목하게 될것이고. 이정도로 물리적인 힘을 깍아놨으니  좀 더 빨리 그를 잡을 수 있겠지?"

"어... 그, 그렇겠죠?"

"이제 좀 나가서 움직여라. 응? 햇볕도 좀 쐬고. 바람도 좀 쐬고. 기껏 라티나 붙여놨는데 왜 안써먹냐?"

"끙... 일단 알겠습니다. 몇가지만 더 조사한 후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운현의 말에 원석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양미혜와 한 동영상을 정운택에게 보냈다면 그는 분명히 분노할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다른 이들에게 튀겠지. 가뜩이나 으스대고 다니지만 정운택이 가진 힘 때문에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마인드로 얌전히 있던 다른 이들도 정운택이 본격적으로 지랄을 하기 시작하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부하들이 얼마나 모였지...'

과거 자신의 부하들을 모아도 정운택과 상대하기에는 어렵다고 볼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세력 역시도 마찬가지다. 양미혜를 자신들이 데리고 있다고 하지만 양미혜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정운택 역시도 알고 있는 정보이기에 원석은 함부로 움직이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왜."

"음... 몇일만 더 기다리겠습니다."

"하여튼 겁은 많아서..."

"주의깊은 것이라고 해주십쇼."

"야야. 됐고. 어제 말했던 것처럼 그 상황 발생하면 라티나랑 같이 내려와서 말했던 대로 해."

"으음... 알겠습니다."

운현의 말에 원석은 빙긋 웃었고 그의 웃음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마음에 들었다. 정운택처럼 자기 기분나쁘다고 다 뒤집어 엎으며 지랄을 하는 것이 아닌 몇차례나 생각과 궁리를 하여 냉정히 움직이는 점. 그것이 마음에 든 운현은 그의 어깨를 툭 쳐준 후 지하실로 내려갔다.

"......."

마취제를 제대로 먹여 둔 덕분인지 양미혜는 지하실에 마련해 둔 침대 위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지하실에 마련해 놓은 CCTV를 봐도 깬 흔적은 없었다.

'슬슬 깨워야겠군.'

계곡에서 주르륵 정액이 흐르고 있는 양미혜를 깨운 운현은 그녀가 몸을 비틀며 살며시 눈을 뜨자 마스크를 벗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살짝 손을 잡고 일으켜 그녀를 테이블 근처의 의자에 앉힌 운현은 그녀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자 부드럽게 웃었다.

"여긴..."

"뭐야. 아까 하고 나서 정신을 잃더니... 내 얼굴도 못알아보는건가? 식사해야지. 배고프지 않아? 좋은 것을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먹어두는게 좋아."

운현이 웃으며 말하자 양미혜는 잠시 당황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몇시지?"

양미혜를 컨트롤해가며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답변이나 행동을 했을 때만 시계를 움직여 루프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해 준 운현은 시계를 본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웃으며 물었다.

"시간은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역시 그게 현명한 선택이었던가..."

양미혜는 이제 의식적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이든 운현에게 가끔씩 존대를 하게 되었다. 자신을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정도의 막강한 힘. 그리고 자신의 달아오른 몸을 달래 줄 수 있을 정도의 정력. 음식과 물을 가져다주고 씻겨주는 것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양미혜는 고작 이틀만에 운현에게 어느정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

양미혜가 가지고 있는 정운택이라는 벽을 부수고 나서 그 벽을 자신으로 바꿔줘야 한다. 운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차분히 말했다.

"정운택은 아직 연락이 없어. 이거 좀 미안하네."

256====================

세뇌

"....."

그녀의 표정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양미혜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벽을 부수기 위한 흠집을 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의도했다는 것처럼 하면 안되기에 그 말만을 하고 운현은 양미혜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힘없이 끌려 온 양미혜가 자신에게 안기자 운현은 그녀의 매끄러운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걱정할 것 없어. 강원석 팀장님은 널 죽이라고 하겠지만... 그분께 나는 꽤 중요한 위치란 말이지. 정운택이 널 버렸다고 하더라도 내가 널 버릴 일은 없을거야."

슬슬 판을 깔아야 했다. 양미혜의 표정에 감정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운현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정운택을 그녀의 안에서 빼낼 준비를 하며 운현이 담담히 정운택의 이야기를 꺼내자 양미혜의 눈에서 주륵 한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날 죽일거잖아. 강원석은 날 죽일거라고..."

'잘못 건드렸나.'

처음을 제외하고 원석은 계속해서 양미혜를 공격했고 그것을 운현은 말리는 척 하며 그녀가 공격당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런 식으로 가짜 죽음과 가짜 회귀를 반복하며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빨리 양미혜가 무너지려 하자 운현은 당황했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이미 해 놓은 상태였다.

운현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말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마저도 싫었는지 양미혜는 거칠게 몸을 흔들었고 운현은 그녀를 안은 손에 힘을 풀었다. 운현의 얼굴이 딱딱히 굳자 양미혜는 질렸다는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건데... 왜!?"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군. 넌 지금 잘해주고 있어."

"아니야... 그런게 아니라고!!"

그녀가 흔들린다. 하긴. 그녀가 지금 체험했다고 생각하는 죽음은 벌써 수십번이 넘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겠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죽고, 행동 한번 잘못했다가 죽고.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좀 더 버텨줬으면 좋겠는데... 어쩔 수 없군.'

운현은 소꿉친구를 NTR당하고 가족과의 불화가 최고조인 상태에서 이계로 넘어가 그녀들을 만나 치유되었고 그녀들을 잃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양미혜는? 그녀에게 있어서 과연 정운택이 운현의 그녀들과 같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거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으니... 결국 그 수 밖에 없나?'

"그럼 뭔데."

"나... 나 같은 상황을 계속 반복하고 있어..."

멍한 얼굴로 양미혜는 운현을 보며 말했다. 그녀가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자 운현은 멍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운현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 양미혜는 붕붕 고개를 저으며 증오감 가득한 눈으로 운현을 노려보았다.

"나를!! 강원석이 계속 죽이고 있다고!! 내가 말 한마디 잘못할 때마다! 행동 하나를 잘못할 때마다 저 CCTV로 보고 있는 강원석 그 개새끼가!!!"

양미혜의 얼굴에 서려 있는 귀신같은 얼굴에 운현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녀의 증오와 슬픔. 분노, 좌절감.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던 운현은 한숨을 내쉬고 양미혜에게 단검을 꺼내 주었다.

"...뭐야?"

지친 얼굴로 양미혜는 운현을 보았다. 그녀의 맥없는 시선을 마주하며 운현은 그녀의 손에 단검을 쥐어준 후 차분히 말했다.

"난 형님에게 받은 은혜가 있어. 그러니 형님의 허락 없이 널 놔줄 수는 없어."

"그래서? 그래서 어쩌려고? 이 단검으로 널 찔러 죽이고 도망이라도 가라는거야"

양미혜는 허탈한 얼굴로 운현을 보고 비웃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은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

처음에는 운현에게 죽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한 양미혜는 운현의 씁쓸한 표정과 자신의 손에 쥐어진 단검에 당황했다. 그를 죽이라고? 만약 이 경험을 하기 전이라면 망설임없이 그를 죽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운택이 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며 고통스럽게 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지탱해주고 강원석의 마수에서 지켜 준 것도 운현이었다. 그런 그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양미혜는 떨리는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았다.

"널... 죽여서 이걸 끝내라고...?"

"...그래."

"그, 그러라면 내가 못할 줄 알아!?"

단검을 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 처음에 자신을 강간했을 때는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존재다. 그런 자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인데도 양미혜는 차마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뭐하는거야."

"죽일거야!! 널 죽일거라고!!"

양미혜의 눈에 광기가 서렸지만 그녀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미친듯이 떨리고 있을 뿐. 운현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뭐... 하려고?"

양미혜의 목소리가 떨린다. 운현은 그녀를 보며 빙긋 웃은 후 그 칼을 자신의 복부를 향해 끌고갔다.

"뭐야!? 뭐하는거야! 너 미쳤어!? 야!! 당장 이거 놔!!"

"네가 못하겠다면 내가 하는 수 밖에. 날 죽이고 나가. 지금은 형님도 안계시니까... 밖에 사람은 없으니까 조금만 나가면 민가에 갈 수 있을거야. 내 지갑에 돈이 있으니까 그걸로 도망쳐."

"그 칼 놔!! 이 손 치워!! 병신아!! 자살하려는거야!? 놔!!"

운현은 양미혜의 손을 잡은 채 단검을 끌고와 복부 앞에 놓았다. 그 모습에 당황한 양미혜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이렇게 그를 죽인다? 아니야. 이건 잘못됐어. 머리는 그를 죽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죽는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운현에게 많은 세뇌를 당한 마음은 운현을 죽여선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날 지금까지...'

수십번의 죽음 속에서 그나마 작은 행복을 가져다 준 사람이다. 비록 증오해 마지 않는 강원석의 사람이지만 이젠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양미혜는 운현을 죽여야 하는 것이 맞는지. 틀린지 고민했다.

"쭉..."

날카로운 단검이 운현의 복부를 찢는다. 그녀가 고민하는 와중에도 단검은 천천히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단검을 잡은 자루에서 느껴지는 살을 찢는 감각에 양미혜는 손을 놓으려 했지만 단단히 쥐어진 운현의 손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네가 죽는 걸 보느니... 크윽..."

"놔아아아아아아!!"

"차라리 네 손으로 죽는게 낫지..."

운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손에 힘을 넣었다. 그 순간 단검은 쑥 그의 복부를 꿰뚫고 안으로 파고들었고 그것에 양미혜는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의 복부를 꿰뚫은 흔적이 손에 남는다. 기분나쁠 정도로 생생한 감각. 손에 잔뜩 뭍어 있는 피. 복부에 단검이 꽂힌 채 창백한 얼굴로 피를 흘리고 있는 운현이 보인다. 그는 오히려 안도한 얼굴이었다. 고통에 찡그려져 있지만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아아아아... 우, 운현! 야!! 너 왜... 죽지마!!"

그토록 죽어주길 원했던 운현이 죽어가는 모습에 양미혜는 피가 잔뜩 뭍은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며 당황했다. 그녀의 끔직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오자 지하실의 문이 열렸다.

"이 썅년! 운현을 죽이다니!!"

들이닥친 라티나는 지하실의 풍경을 보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라티나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이 번쩍인다. 그것을 보며 양미혜는 쓰러진 운현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후우."

"...진짜 인간 맞나 몰라. 괜찮으십니까?"

"인간이다. 인간. 끄윽... 아픈거 참느라 죽는 줄 알았네."

아무리 내구성이 높고 체력이 대단하더라도 복부에 생으로 칼을 쑤셔 넣는 것이니 운현으로서도 아프지 않다고 할 수는 없었다. 천천히 복부에 박혀 있는 단검을 빼낸 운현은 고통을 참으며 자신의 몸에 그레이터 힐을 걸었다.

"잘못하면 죽을 뻔 했습니다. 저 여자가 목이나 심장을 노렸더라면..."

즉사를 하면 그레이터 힐도 답이 없다. 그것을 생각하며 라티나가 조심스레 말하자 운현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복부를 찌르게 했잖아."

사람은 칼빵 한방 맞는다고 절대 죽지 않는다. 물론 여러방을 맞으면 쇼크와 과다출혈로 훅 갈 수도 있지만 예상한 상황에서 칼빵을 맞아도 절대 즉사를 하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저 양미혜가 있지 않은가. 운현은 라티나의 가검에 맞고 기절해버린 양미혜를 가리켰다.

"야야. 잘 닦아놔라."

"네."

"근데 쟤 기절한거 맞지? 죽은거 아냐?"

"스킬을 썼으니 확실합니다. 맥을 짚어보면 살아는 있습니다만."

라티나의 공격을 맞고 기절만 한 것이 다행이다. 운현은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양미혜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빨리 치우자."

운현과 원석, 라티나는 후다닥 바닥에 뭍어 있는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피를 모두 닦아내고 주변의 정리를 끝내자 원석은 준비한 옷을 운현에게 주었다. 구멍이 나고 피가 잔뜩 뭍어 있는 옷을 벗어 그에게 준 운현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지금 정운택 상황은 어때?"

"운현님 말씀대로더군요. 지금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불만을 보이고 있어요."

"걔들과 손을 잡으면?"

"그럼 정운택을 치는 것이 빨라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나중에 정운택의 힘을 흡수할 때 불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냥 얌전히 있다가 힘이 모이면 나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그럼 그래야겠지. 아. 양미혜가 서포트 해주면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양미혜가요? 운현님을 죽이려고도 했는데요?"

"흠. 만약이야. 만약. 나도 확신을 할 수 없으니까 말이지. 그렇지만 아마 그렇게 될거야."

자신이 생각한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양미혜는 좋은 스파이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운현이 느긋한 어조로 묻자 원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적어도 한달은 기간을 줄일 수 있겠군요. 양미혜는 정운택의 약점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가 가진 재산을 관리하기도 하니까... 만약 양미혜가 제 손을 들어준다면 반드시 가능하겠죠. 하지만 양미혜는 절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과연 절 도울까요? 거기에 지금 세뇌를 건 걸로 저에 대한 증오심이 장난이 아닐텐데..."

"널 돕는게 아니다."

"예? 그럼요?"

운현은 그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녀가 필요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

아까의 상황을 만들고 시계도 아까의 시간대로 바꿨다. 운현은 양미혜가 누워 있는 침대에 아까처럼 다가간 후 그녀의 얇은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여긴..."

"뭐야. 아까 하고 나서 정신을 잃더니... 내 얼굴도 못알아보는건가? 식사해야지. 배고프지 않아? 좋은 것을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먹어두는게 좋아."

"너!!"

멍하니 눈을 뜬 양미혜는 운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행동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었다.

"이상한 꿈이라도 꾼거야? 어린애처럼 그렇게 악몽에 놀랄 필요 없잖아. 뭐하면 안아줄까?"

테이블 위에 음식을 준비하는 운현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양미혜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아직도 감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저 운현을 죽인 자신. 그가 웃으며 자신을 죽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버린 느낌을 받은 자신. 그 모든 것을 떠올리며 양미혜는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흑..."

"너 왜 그래? 진짜 무서운 꿈이라도 꾼거야?"

"흐흑...흑...다행...다행이야..."

"...뭔 소리야."

운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 양미혜는 눈물만 펑펑 흘린 채 운현을 꼭 끌어안았다.

"다행... 다시... 다시 돌아와서... 널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야...흑흑...흐흑...으아아아앙!!"

"하아... 정말 애도 아니고. 어이. 누님. 정신 좀 차려봐. 왜 그래."

운현은 양미혜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살냄새. 그리고 자신을 꽉 끌어안고 펑펑 울며 느껴지는 여인의 몸. 그것을 느끼며 운현은 차분히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 색욕보다는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와 함께 등을 토닥여주는 것에 양미혜는 안정을 느꼈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운현은 천천히 그녀를 떼어낸 후 눈물젖은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에구. 이쁜 얼굴 다 망가졌네."

"흑...흐흑..."

"자자. 그러지 말고 좀 자. 너 너무 지친 것 같아."

"아냐... 내가... 내가 널 죽였어... 내가..."

"난 이렇게 살아있다고. 그리고..."

운현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너에게라면 죽어도... 괜찮을지도."

"...응?"

"아냐. 하하. 이런 상황에서 말하는 건 좀 그렇지?"

그의 말에 양미혜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살며시 고개를 숙였고 운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이를 드러내며 싸늘한 비웃음을 던졌다.

257====================

세뇌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됩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스톡홀롬 증후군이 괜히 생기는게 아니지.'

죽음과 회귀의 반복이라는, 일반적으로는 겪을 수 없는 상황을 반복하며 양미혜의 정신을 갉아먹으며 운현은 일부러 그녀에게 신사적으로 대했다. 물론 공격 할 때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그녀를 공격했지만 그녀가 '현실'이라고 파악하는 모든 순간 순간만큼은 운현은 그녀에게 있어서 친절하기 그지 없는 착한 남자였다. 그리고 실질적은 공격은 처음 한번 뿐. 나머지는 모두 원석이 했으니 그녀가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리마 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으니까... 이정도면 지금은 양미혜에게 할 일은 없겠군.'

운현은 양미혜의 탄력적인 둔부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계곡에 손을 가져갔다. 만족스러울 정도로 한 덕분인지 양미혜는 그의 손길에 저항하는 대신 살며시 긴 다리를 벌려 계곡을 드러내주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나오겠지만 자유롭게 되면 바뀌겠지.'

그녀가 자신에게 끌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녀가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운현은 양미혜가 원석과 한편인 자신을 적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고작 72시간동안 세뇌를 걸어봤자 아마추어인 자신이 제대로 된 세뇌를 걸 수도 없고, 또 그것이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의도치 않은 상황 속에서 인간은 크게 혼란한다... 어느정도의 제어는 필요하겠군.'

가상현실을 구축하게 된다면. 현재의 상황을 되돌리고 싶은 욕구는 반드시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된다면? 인간이 과연 그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실험까지 겸해서 양미혜에게 이러한 거짓된 회귀를 심어 준 운현은 그녀가 꽤나 흔들리는 것에 계획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데이터를 얻었다.'

앞으로 더 해야겠다. 괜찮은 잉여인간들을 잡아와 하나씩 하나씩 실험하는 것으로 책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에 운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나머지는...'

자리에서 일어난 운현은 양미혜를 내버려 둔 채 1층으로 올라갔다. 이젠 그녀가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도 상관없다. 1층으로 올라간 운현은 치킨을 뜯으며 TV화면을 보고 있는 원석에게 말했다.

"녹화 다 했냐?"

"네."

"걔한테 보내게 CD로 만들어놔."

운현이 말하는 '걔'가 정운택임을 원석은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전 운현과 양미혜가 나누던 정사. 그야말로 서로 사랑하는 이들이 하는 것과 같은 농밀하고 농염한 정사 영상을 씨디에 담아 운현에게 넘겼다.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어쩌긴. 제대로 엿을 먹여야지."

"...적당히 하십쇼. 적당히."

"야. 이정도면 진짜 적당히거든?"

운현이 히죽 웃으며 말하자 원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이거 하면 양미혜가 너 진짜 원수로 생각할텐데... 어쩌냐."

"어차피 지금도 원순데요. 뭐. 상관없습니다."

정운택의 애인으로 있을 때부터 사사건건 자신이 하는 일에 태클을 걸던 그녀다. 그녀가 이제와서 자신을 원수 취급한다 해서 달라질 것이 없었던 원석은 운현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 그럼 잘 됐네. 아. 양준철이라고 했나? 정운택과 대립관계에 있는 놈이?"

"네? 네."

"그 새끼 이름으로 보낸다."

"에... 그렇지만 이름을 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아닐까요?"

이름을 적어서 보내면 이간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던 원석이 떨떠름히 말하자 운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냉정하게, 제 3자적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러겠지. 하지만 지금 정운택에게 그런 정신이 있을까?"

운현은 지금의 정운택이 절대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정운택은 꼭지가 돌다 못해 눈에 거슬리는 것은 다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야말로 폭탄창고라고 볼 수 있는데 자신이 이름을 적어 씨디를 보내면 정운택은 폭발하여 그게 누구의 계략이든간에 미쳐서 날뛸 것이 분명했다.

"내기할까?"

"...뭐로요?"

"내가 이기면 너 양미혜랑 해라."

"에엑!? 싫어요!"

원석은 질색하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양미혜가 원석을 싫어하는 것처럼 원석 역시도 양미혜라면 이를 갈기 바빴다. 앞으로 같이 일해야 할 사이인데 그래도 몸이라도 좀 섞으면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 생각해 원석에게 말한 운현은 그가 거절하자 손을 올렸다.

"그거 하셔도 안돼요. 극혐. 걔 보는 것만으로 자지가 죽어버린다구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양미혜는 나름 미녀 축에 속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면 자지가 죽어버린다는 말에 운현은 딱하다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아, 아니거든요!? 라티나씨만 봐도 빨딱 스는데요!?"

"......"

그의 말에 라티나는 원석을 향해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안그래도 힐끔 힐끔 보는 시선이 거슬렸는데 이번 기회에 작살을 내서 그 시선을 차단할까 생각한 라티나가 일어나자 원석은 떨떠름히 웃었다.

"아니 그만큼 라티나씨가 미녀라는 거죠."

어쩌다가 신세가 이렇게 된 건지. 나름 높은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굽실거린 적도 별로 없는데 이 둘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약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가 애써 웃으며 변명하자 라티나는 운현에게 시선을 보냈다.

"때려도 됩니까?"

"하지 마라."

"...네."

아쉽지만 운현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지. 라티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단 몇일만에 꽤나 발전해서 이제는 소설책 정도라면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를 익힌 그녀를 보며 원석은 조심스레 말했다.

"끙... 아무튼 운현님 말씀대로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만약 그가 그렇게 반응안하면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름으로도 보내야지. 어디 한번 갈데까지 가보자고 그래. 영상은 꽤 있잖아."

강간당하는 영상부터 시작해서 자고 있을 때 덮치는 영상까지. 운현은 몇장 없는 신체 변화 스크롤까지 써가며 양미혜를 범했다. 다양한 인간으로 변해 그녀를 범했던 운현은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건 충격이 덜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정운택을 도발하는 거니까."

"...하아. 알겠습니다."

"젠장!! 그년은 도대체 어떤 새끼랑 붙어먹고 있는거야!?"

양미혜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납치할만한 놈들에게 시비를 걸고, 그들의 영업장을 털어보았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안감과 짜증. 그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뒹굴고 있다는 것. 거기에 그녀가 알고있는 자신의 치부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채 사무실로 돌아 온 정운택은 자신의 책상 위에 박스가 놓여져 있자 침을 꿀꺽 삼켰다.

"...양준철... 이 새끼!"

양준철의 이름이 적혀 있는 박스에 정운택은 이를 갈았다. 그때 보았던 박스와 똑같은 박스다. 이것을 열면...? 정운택의 감은 그것을 열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봐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것을 강하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게 마음처럼 움직이는가? 보지 말라는 마음과 함께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의 안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결국 상자를 열어버린 그는 안에 들어 있는 CD케이스를 보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설마... 이번에도? 그는 불안과 분노에 휩쌓인 채 떨리는 손으로 씨디를 들었다.

"...아니야. 봐봤자..."

하지만 보고 싶다. 어떤 새끼와 그 개같은 갈보년이 붙어먹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위이잉."

결국 정운택은 씨디를 노트북에 넣어버렸다. 씨디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폴더가 열리며 동영상 파일이 나오자 또다시 그는 갈등했다.

"아아아아!! 개썅년!!"

차라리 나가 뒤져버리지. 왜 딴 새끼랑 붙어먹어서 사람을 이렇게 분노하게 만드는 것인가. 차라리 싫다고 저항이나 할 것이지. 왜! 왜! 왜!

멘탈이 나가버린 얼굴로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재생버튼을 눌렀다. 저번의 그 장소였다. 이번에는 서로 끌어안은 채 격렬하게 키스를 하며 둘이 등장했다. 그것만으로도 정운택은 꼭지가 돌아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개 썅년!! 씨발새끼!! 양준철 이 개새끼!! 죽여버린다!! 죽여버린다아아아!! 으아아아아아!!!"

"본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양준철 이 개새끼가 양미혜를 잡아갔다!! 애들 집합시켜!!"

"예? 양준철이요? 하지만... 그 인간이 왜요?"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양미혜 개년이 양준철과 붙어먹고 있었다는게 중요한거지!! 지금 당장 애들 다 끌어모아!!"

"아, 네!"

뜬금없이 양준철을 치러가겠다는 말에 부하들은 당황했지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를 말릴 방법이 없었다. 저런 상태가 된 정운택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양미혜 하나 뿐이었는데 그 양미혜가 배신하고 양준철에게 붙었다고 하니 정운택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보였다. 괜히 불똥이 튈까 두려워진 그들이 후다닥 밖으로 나가자 정운택은 이를 갈며 벽장에서 자신의 일본도를 꺼내었다.

"개새끼들... 다 씹어삼켜주겠어."

정운택이 밖으로 나가자 벽에 기댄 채 모든 상황을 지켜 본 운현은 피식 웃었다. 역시나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려가고 있었다.

'내기를 할걸.'

원석이 계속해서 거절해서 결국 그냥 넘어가버린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사무실에서 나왔다. 느긋하게 숙소로 복귀한 그는 양미혜가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CCTV로 확인한 후 원석에게 말했다.

"야. 이제 슬슬 쟤 내보낸다."

"...마음대로 하셔요. 제가 뭘 해야 하죠?"

"음... 일단 연기를 좀 해야겠지. 너는 극구 반대를 하고 나는 내보내자고 하고."

"...그거 그냥 저만 나쁜 놈 만드는 것 아닌가요?"

"너 나쁜놈이잖아."

세상에. 인세에 강림한 마왕이 자신을 나쁜 놈이라고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진 원석은 운현을 말없이 바라보았고 그를 향해 운현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왜. 틀려?"

"네. 저 나쁜 놈 맞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뭘 그래서야. 그냥 대사나 맞춰."

느긋한 어조로 말한 운현은 양미혜가 기다리고 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가 내려오자 양미혜는 멍하니 운현을 보며 물었다.

"날... 언제 내보내줄거야?"

"안그래도 그것 때문에 형님과 이야기하고 왔어. 이제 널 내보낼거야."

"...응?"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인데 진짜로 내보낸다는 것인가? 그 강원석이? 자신을? 양미혜는 얼떨떨해하며 운현을 보았고 운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옆에 앉아 손을 꼭 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살릴거야. 형님은... 널 죽이자고 하지만."

"...네가 위험한 것은 아니지."

"...응. 난 신경쓰지마."

"그, 그래... 그렇구나..."

풀려난다고 하는데 어째서 아쉬운 걸까? 양미혜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운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된다.

'내가 왜...'

정운택을 사랑한다. 정운택만이 자신의 사랑이다. 그것을 다시 생각하던 양미혜는 그가 자신을 과연 사랑할까? 라는 생각이 들자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그래서 날 찾지 못한 것이겠지...'

"너. 우리편이 될 생각 없어?"

"미안. 그것만큼은 힘들 것 같아. 원석 형님에게는 신세 진 것도 많으니까..."

"돈을 원한다면 내가 얼마든지 마련해 줄 수 있어. 그래도?"

"미안."

운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양미혜의 제안에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양미혜는 지하실의 문이 열리며 강원석이 내려오자 이를 갈며 그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뭘 노려보는거냐. 지금 당장 죽고 싶은거냐?"

"형님. 약속하셨잖아요."

"하...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려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저년을 벌써 섬에다가 가져다 팔았을걸?"

"강원석 이 개새끼..."

"뭐? 썅년아?"

"형님! 그만하십쇼! 미혜. 너도 그만해. 내가 모시는 형님이야."

"...."

서로를 노려보던 둘이 얌전해지자 강원석은 운현에게 안대와 수면제를 넘겼다. 그것을 받은 운현은 쓰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보내면 안되겠습니까?"

"여기 위치를 정운택이 알면 골치아프다."

"하지만..."

"정 뭐하면 다른 애들이랑 같이 네가 데려다주고 오든가. 하지만 양미혜의 집에는 정운택의 부하들로 깔려 있을텐데? 그러다가 너 죽는다."

"...그래도 여자 혼자 이 산길을 보낼 수는 없죠."

"미친새끼."

원석은 진심을 담아 그에게 욕을 한 후 올라가버렸다. 그가 올라가자 운현은 쓰게 웃으며 양미혜에게 말했다.

"형님을 설득시키기는 했지만... 미안.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보다."

"...아냐.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258====================

세뇌

만약 운현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원석에 의해서 이미 섬에 팔려졌을 것이다. 섬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나올 방법은 없다. 평생 섬에 있는 노역꾼들과 뱃사람의 정액받이가 되는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운현이 막아 준 것이 아닌가. 비록 그가 자신을 죽이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서 실제로 죽었던 기억이 있었다.

'운현이 나쁜게 아니야... 내가 나쁜 것이지.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여. 운현이 원석의 명령에 따라 자신을 죽인 것이다. 라고 그녀는 자신을 합리화시켜나갔다. 점점 운현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원석을 자신의 적으로 상정하고 운현이 자신에게 한 잘못을 자신과 원석에게 나눠버린 양미혜는 운현의 볼을 쓰다듬은 후 그에게 살짝 키스했다.

"강원석은 용서할 수 없어. 내가 돌아가면 난 강원석을 죽일거야."

"...그럼 우린 적이 되겠네."

"..그러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운현은 양미혜의 볼을 쓰다듬은 후 그녀에게 달콤하게 키스했다. 서로의 혀가 오가는 농염한 딥키스가 끝나자 양미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만큼은 반드시 지키겠어."

"운...현."

"자. 헤어짐이 길면 아쉽기만 하지. 이제 가자."

운현은 양미혜에게 그녀가 납치되었을 때 가져 온 옷을 주었다. 지금 입고 있는 속옷을 벗고 원래의 속옷으로 갈아입는 그녀의 움직임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 아쉬움을 천천히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 표현해낸 양미혜는 운현이 내민 안대와 수면제를 받았다.

"...안녕."

수면제를 먹은 양미혜가 침대에 눕자 운현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뒤로 물러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효가 돌았는지 그녀는 작게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옮기자."

양미혜가 잠든 것을 확인한 운현은 그녀를 업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기다리고 있던 원석은 평소 타고다니는 자신의 외제차가 아닌 한도에게 빌린 중형차를 몰고 집 앞에서 기다렸다. 양미혜를 뒷좌석에 태운 운현은 라티나가 앞에 타자 말없이 손짓했고 원석은 얌전히 청담동으로 이동했다. 그가 청담동 인근에 차를 멈추지 운현은 양미혜를 짊어진 후 원석이 내민 옷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작게 심호흡한 그가 훌쩍 뛰어 사라지자 원석은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솔직히 좀 부럽네."

"뭐가 부러우십니까?"

"예? 아... 저 정도 힘이랑 머리 돌아가는 정도만 있어도 한국 정도는 가볍게 지배할 수 있을텐데요."

원석이 씁쓸한 어조로 말하자 라티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운현님께는 절대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네? 왜요?"

"그 분에게 있어서 저 힘과 능력은 저주나 다름없는 것이니까요."

"....?"

라티나의 말에 원석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유일하게 운현의 목적과 그가 해야 하는 엄청난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그녀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토리우스님...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후우."

순식간에 양미혜를 데리고 그녀의 집에 도착한 운현은 전기충격봉을 꺼낸 후 그녀의 도어락에 가져다 대었다. 강력한 전기충격과 함께 도어락이 파손되자 운현은 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미혜를 찾기 위한 정운택의 노력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집에 도착한 운현은 그녀를 거실 바닥에 눕혀 놓고 인벤토리에서 정장과 스크롤을 꺼낸 후 정장으로 갈아입고 스크롤을 사용했다.

'이것도 얼마 안남았군.'

형상변화의 스크롤을 이용해 자신의 외형을 바꾼 운현은 거울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정운택의 얼굴이 된 그는 시중에서 산 단검을 들고 양미혜의 방문을 걷어찼다.

"양미혜!!"

"으음..."

거친 소리에 정신이 든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 정운택으로 변신한 운현을 보았다. 그녀는 당황하며 그에게 외쳤다.

"보, 본부장님! 여, 여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지금 그 말이 나와!?"

으르렁거리며 정운택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양미혜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단검을 보고 기겁했다. 설마?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에게 외쳤다.

"자, 잠깐만요! 저는...!"

"닥쳐!! 어떻게 네년이 나를 배신할 수 있어!! 어떻게!!"

"아니 잠깐만요! 배신이라뇨!!"

"네년... 어떤 새끼랑 붙어먹은거냐? 응? 양준철 그 씨발새끼냐!? 응!?"

"양준철이라니... 가, 강원석이었어요! 강원석이 절...!"

"하... 이젠 뻥도... 개년. 양준철 그 씹빡쌔끼는 내가 조져버렸으니까 이제 개 걸레같은 네년 차례다."

정운택이 자신을 향해 씩씩거리며 다가오자 양미혜는 당황했다. 자신이 납치당했는데 찾을 생각조차 안한 인간이 이제와서 뭐 어째? 그녀의 안에 있는 정운택에 대한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을 때 정운택으로 변신한 운현은 양미혜의 뺨을 후려갈긴 후 그녀의 옷을 벗겼다.

"아악! 뭐하는거에요!? 아아아아악!!"

"닥쳐! 개년아!!"

"짜악!"

"꺄악!!"

거칠게 옷을 벗겨버린 그의 손길이 믿기지 않는다. 씩씩거리며 분노에 머리가 돌아가버린 듯한 그가 자신의 입술을 빨고 강간하려는 것에 당황한 양미혜는 그의 거친 손길에서 운현의 부드러운 손길을 떠올렸다.

"흑..."

"왜? 그 씨발 새끼 좃맛을 보니까 이제 나는 싫냐? 응? 씨발! 걸레같은 년아!? 오래간만에 네 서방이 맛 좀 보자는데!!"

"흑흑... 이, 이러지 마세요..."

양미혜가 서럽게 울기 시작하자 정운택으로 변신한 운현은 그녀의 뺨을 몇번이나 후려갈겼다. 입 안이 다 터져나가고 볼이 퉁퉁 부어올랐지만 정운택은 양미혜의 옷을 모두 벗겨버리고 헉헉거리며 그녀의 다리를 잡았다.

"으윽...!!"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이런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당하는 것은 싫었다. 그녀가 저항하자 정운택으로 변신한 운현은 이를 갈며 그녀를 몇번이나 후려갈겼다. 심하게 맞은 그녀의 코뼈가 내려앉고 입가에서 피가 주륵주륵 흘러내지며 신음하자 정운택으로 변신한 운현은 단검을 들고 그녀의 복부에 푹 찌르며 살벌히 말했다.

"나도 다른 새끼랑 붙어먹은 너같은 개 갈보년은 싫어. 이 씨발년아!!!"

"아아아..."

정신이 희미해진다. 일그러진 정운택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양미혜는 정신을 잃었고 운현은 그녀의 복부에서 단검을 빼낸 후 마취제를 얼굴에 가져다대고 그레이터 힐을 걸었다. 몸이 회복됨과 동시에 마취에 걸려 그녀가 정신을 잃자 운현은 벗겨 둔 옷과 피가 뿌려진 바닥을 깨끗히 닦은 후 그녀의 옷을 갈아입힌 후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시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가 돌아오자 담배를 피던 원석은 운현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라티나를 잡았다. 하지만 라티나는 정운택의 움직임과 그의 어깨에 들쳐매져 있는 양미혜를 보고 전혀 긴장하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어휴. 힘들어. 가자."

"...뭐야. 당신."

"아. 좀 기다려. 금방 풀릴거니까."

상아가 줬던 변신스크롤의 유지시간은 1시간이다. 집에 돌아갈 때 쯤이면 변신이 풀릴 것이기에 운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뒷좌석에 탄 후 눈을 감았다. 그런 그의 말에 원석은 당황했고 라티나는 별다른 불만 없이 차에 올랐다.

'진짜 마왕인가.'

아무리 봐도 정운택이다. 하지만 라티나가 반응하지 않고 상대도 너무 여유롭다. 결국 그들에게 말린 원석이 차를 몰고 다시 숙소에 도착했을 때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깜짝 놀랬다.

"뭐, 뭡니까!?"

"변신을 한거지."

"그런것도... 할 수 있습니까?"

"에... 어디보자. 이제 다섯장 남았으니 불가능하겠군. 이제 못써."

남아 있는 스크롤은 다섯장 뿐. 이것도 나중에 쓸 일이 있으니 쟁여놔야 한다. 운현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원석은 아쉽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이번이 마지막이죠?"

"응. 심어만 주면 돼는거야. 심어만."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시죠."

운현이 옷을 갈아입고 양미혜를 데리고 지하실로 들어가자 원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한다고 과연 그가 원하는 정도로 양미혜가 움직일까? 원석은 라티나의 팔을 톡톡 치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운현님이 하시는 일이니 잘 하시겠죠. 그리고 그냥 말 거십쇼. 손대지 말고."

"...아. 네."

"......."

"내 말 듣고 있어?"

"아? 으, 으응."

운현이 내보내주겠다는 말에도 양미혜는 멍하니 시계만 바라 보았다. 분명히 자신은 이곳에서 빠져나갔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정운택과 만났고, 그가 자신을 강간하려다가 분을 못이기고 자신을 공격했던 것이 기억났다.

'분명히...'

코뼈는 부러졌었는데. 어째서?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정운택이 자신을 버렸다는 건가?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의 애교 한번에 풀어지던 그가 자신을 때리고 공격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양미혜는 운현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저기 운현... 우리..."

"....?"

"...도망...가지 않을래?"

'이걸 기다렸다.'

정운택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그녀가 작게 말하자 운현은 아무런 말도 안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양미혜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냐. 미안해. 그동안 고생 많았지?"

"아니 고생은 네가 더 많았지. 그래도 다행이네. 이제 돌아가게 되어서."

"그럴까...?"

양미혜는 작게 중얼거린 후 운현이 건넨 수면제를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잠들자 운현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

"아하하핫!"

"먹는 척 하지 마."

"어떻게 알았어?"

장난스럽게 웃은 양미혜가 혀를 날름거리며 말하자 운현은 그녀의 볼에 키스해 준 후 속삭였다.

"널 계속 지켜봤는데 네가 잠들었는지 아닌지도 모를 것 같아?"

그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에 양미혜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정운택의 분노가 떠오른 탓인지 그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운현."

"왜?"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지켜준다고 했지."

"응."

"만약... 만약 내가 정운택에게..."

"왜?"

"...하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이왕 날 내려줄거면 내 숙소 말고 여기에 보내줄래? 비밀번호는 33112야."

"여기가 어딘데?"

"응... 내 개인 오피스텔."

양미혜가 적어 준 주소를 보며 운현은 빙긋 웃었다. 그의 미소에 양미혜는 고개를 끄덕인후 진짜로 수면제를 먹었다. 양미혜가 제대로 잠든 것을 확인한 운현은 자리에서 일어난 후 그녀를 내려다보며 차분히 웃었다.

'이걸로 끝이군.'

"후우..."

개인 오피스텔로 돌아 온 양미혜는 정신이 들자마자 오피스텔에서 빠져나왔다. 자신의 집에서 정운택에게 죽었다. 그렇다면 일단 벗어나는 것이다. 그녀는 차를 몰고 움직여 정운택의 사무소 앞에 서서 망설였다.

'정말 그가 날 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사무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에서 망설이던 그녀는 멀리서 검은 차들이 들어오자 후다닥 건물 근처에 숨었다. 그녀가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 한차례 싸움을 마친 것인지 정운택의 부하들이 여기저기 다친 채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양미혜 그 썅년은 없던데?"

"....!!"

"야야. 말 조심해. 썅년이라니. 형수님인데..."

"형수? 하이고. 딴 새끼랑 붙어먹었다고 지금 형님이 길길히 날뛰고 있는데 무슨 형수야. 그 개 갈보년. 잡히면 형님이 가만 안둔다고 벼르고 있던데."

"그게 사실이야?"

"그래. 저번에 형님이..."

'날... 가만 안둔다고?'

양미혜는 눈을 꼭 감았다. 정운택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은 꿈이 아니었다. 자신이 겪었던 현실이다. 양미혜는 눈을 감은 채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음이 무너진다. 자신이 사랑했던, 아니 사랑한다고 믿었고 의지했던 이는 결국 이런 남자에 불과했다.

'난 살아남아서 돌아가려고 그 고생을 했는데... 당신은... 당신은... 정운택... 이 개자식.'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한 도전에서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해왔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그 고통을 겪게 한 강원석보다 양미혜는 정운택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개새끼... 개새끼. 두고보자...'

분노와 증오로 이글이글 눈을 태우며 양미혜는 눈을 감았다. 그에게 버림받으면 마음이 허전하고 세상을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운현...'

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키려고 한 남자. 아직 어린 학생이지만 누구보다 듬직하고 멋지고, 상냥했던 그 남자. 심지어 밤일마저도 정운택보다 잘하는 남자. 그를 떠올린 양미혜는 주먹을 꽉 쥔 후 정운택의 부하들에게 들키지 않게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거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운현은 하이딩을 건 상태로 조용히 미소지었다.

259====================

세뇌

자신의 오피스텔로 돌아 온 양미혜는 정운택의 치부를 모두 챙기기 시작했다. 그의 은닉 자산. 그리고 회계 장부들. 그가 지금까지 빼돌렸던 문서들과 증거들. 그것들을 챙긴 그녀가 오피스텔의 주차장으로 이동했을 때 그녀는  검은 정장을 입은 이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너희들...!?"

"형수님. 어딜 그리 가십니까. 바리바리 싸들고."

"...."

정운택의 부하들 중 하나인 진사운이다. 그가 능글맞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양미혜는 빠득 이를 갈았다.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인가? 아까 전 정운택의 사무실 근처에 있던 자신을 발견한 것일까? 그녀가 뒤로 물러나자 진사운과 그의 부하들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형님이 아주 보고 싶어 하십니다."

"내가 나중에 찾아가겠어."

"어휴... 그럼 곤란하죠. 이 개년아!"

정운택이 양미혜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몇몇 부하들은 당황했지만 대부분의 부하들, 그 중에서도 진사운은 크게 기뻐했다. 정운택의 옆에서 알랑거리는 양미혜가 거슬렸던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거기에 그녀의 몸매와 미모. 볼때마다 그녀를 먹고 싶었던 그들에게 있어서 정운택의 명령은 기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형님 배신하고 딴새끼랑 붙어먹으니까 좋디? 어디 나랑도 붙어볼래?"

"꺼져! 개자식들아!! 사람살려!! 사람살려!! "

양미혜가 거칠게 외쳤지만 진사운과 그의 부하들은 그저 실실 웃을 뿐 이었다. 지하 주차장은 입구부터 이미 다른 부하들이 막고 있었다. 그녀를 잡기 위해 꽤 많은 이들이 몰려 온 것이다. 그들이 1층부터 시작해서 경비실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떠올리며 진사운은 자신의 뒤에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년이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네. 야. 잡아."

"꺄아아악!!"

양미혜를 향해 그가 말하자 그의 뒤에 있던 사내들이 움직였다. 덩치 큰 사내들 넷이 달려들어 자신을 잡자 양미혜는 끔찍하다는 듯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아악! 사람살..."

"퍽!!"

"어억...!"

양미혜가 거칠게 날뛰며 비명을 내지르자 지시한 사내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배를 후려쳤다. 숨이 막힐 정도의 고통에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그는 킬킬 웃었다.

"내가 네년을 한번쯤 꼭 이렇게 해보고 싶었지."

"하악...윽... 이 개자식..."

"어디 내 밑에 깔렸을때도 그런 소리 나오나 보자."

양미혜의 머리를 잡아 올린 그가 싸늘히 말하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여기까지란 말인가? 어디로 도망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단 말인가? 양미혜의 감겨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우는 것이 오히려 더 기쁜 진사운은 재갈을 들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 양미혜로 인해 생긴 색욕과 분노를 모두 풀어주리라.

"띵!"

1층에 있던 엘레베이터가 지하로 내려와 멈췄다. 그것을 본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사람들을 통제하라고 했을텐데. 뭐 상관없다. 진사운은 사나운 눈으로 엘리베이터를 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것은 캐쥬얼한 복장을 입은 애송이였다. 많이 봐줘도 대학생? 새파란 애송이가 쇠파이프를 들고 내리자 그를 보며 진사운은 피식 웃었다.

"넌 뭐하는 애새끼냐?"

"너희 뭐냐."

애송이의 말에 진사운은 기가 막혔다. 척 봐도 비실비실해보이는 꼬맹이가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에 키득거린 그는 품에 숨겨 둔 사시미를 꺼내 그에게 겨눴다.

"까불지 말고 가라? 응?"

"그 여자 놔."

"하 시발. 너 이년이랑 무슨 관곈데?"

"글쎄... 그것까지 말해 줄 필요는 없을텐데."

"읍! 으읍!"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사내를 보며 양미혜는 당황했다. 어째서? 어째서 저 사람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왜?

"으읍! 읍!"

도망가야 한다. 자기는 잡히더라도 저 사람만은. 이제는 자신의 유일한 벽이 되고 안식처라고 할 수 있는 사내인 운현이 이들에게 당하기 전에. 그는 도망쳐야 한다. 이렇게 많고 잔인한 사람들과 그가 싸우면 그는 다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며 양미혜는 필사적으로 외치려 했지만 그녀의 입에 걸려 있는 재갈은 그녀의 말을 봉인했다.

"그래서? 칼빵 맞고 싶다고?"

"할 수 있겠나?"

운현은 쇠파이프를 들어 진사운에게 겨눴다. 그런 그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은 그는 사시미를 꽉 잡은 후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하 시발. 요즘 영화가 진짜 애들 다 버려놨네. 애새끼 담구는 거는 취향이 아니지만... 죽겠다고 나서는 새끼는 어쩔 수 없지. 야. 갔다와."

양미혜를 네명이나 잡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진사운은 그녀를 잡고 있는 덩치 큰 조폭 중 하나에게 명령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성큼성큼 나갔다. 운현보다 세배는 더 커보이는 덩치를 가진 그는 고개를 비틀어 풀고 주먹을 꽉 쥐었다. 쇠파이프를 들고 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저딴 애송이가 움직이는 쇠파이프래봐야 무섭지도 않다.

"어이 꼬맹아. 형한테 존나가 두드려 맞고 울지 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그냥 집에 가라?"

"부웅!"

"이 새끼가!?"

그의 말을 무시하며 운현은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그것이 자신의 머리를 노리자 그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망설임따위는 전혀 없는 듯한 그 움직임에 그는 빠득 이를 갈았다.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푹!"

"컥...!"

운현이 든 쇠파이프가 사내의 명치를 제대로 찔렀다. 달려오는 속도와 찌르는 속도. 그것이 맞춰진 덕분인지 그는 일격을 맞고 바닥에 굴렀고 그런 그의 머리를 강하게 짓밟은 운현은 진사운에게 쇠파이프를 겨누며 말했다.

"여자 내놔."

"아 이 병신새끼."

고작해야 한대 맞고 저렇게 쓰러져? 한심하기 그지 없다. 그는 다른 조폭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결과 역시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아까 전과 다르게 한대가 아닌 두대를 맞기는 했지만 두대 맞고 기절해버린 것이다.

"이 씨발 애새끼가! 다 나가!! 칼 써! 병신새끼들아!!"

양미혜의 팔을 자신이 잡으며 진사운은 분노했다. 뭔 정정당당한 승부라고 쇠파이프 든 놈한테 빈손으로 다가가는 건가. 조폭이면 조폭답게 움직여야지. 그의 외침에 두 사내들은 사시미를 꺼내 그에게 다가갔다. 둘이 무기를 들고 다가오자 운현도 당황했는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것을 본 그들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을 때 운현은  쇠파이프를 움직여 그들의 손을 쳐낸 후 한명의 어깨를 쇠파이프로 후려치고 다른 한명의 가랑이 사이에 다리를 울렸다.

"퍽! 퍽!"

"악!"

"아이고!! 어머니!!"

한명이 어깨를 부여잡고 쓰러지고, 다른 한명이 가랑이를 잡고 쓰러지자 진사운은 당황했다. 애새끼 아닌가? 그 애새끼라 보일만한 녀석이 순식간에 네명을 쓰러트린 것에 진사운은 당황했다.

"너... 보통 애새끼가 아니구나?"

"보통 놈으로 보였나?"

운현은 무감정한 눈으로 진사운을 바라보며 쇠파이프를 겨눴다. 그것에 그는 빠득 이를 갈고 사시미를 들어 양미혜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이 여자 구하러 온거지? 그럼 그거 내려놔."

"....."

"얼른! 이 여자 목에서 이쁜 피 나오는거 보고 싶냐!?"

"땡그랑."

양미혜의 하얀 목에 붉은 실선이 그려지자 운현은 손에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놓았다. 그것이 바닥을 구르자 운현은 양 손을 들어 올렸다.

"씨발년... 저 새끼랑 붙어먹은거냐?"

"....으읍! 읍!"

운현이 순식간에 네명이나 잡아버리자 양미혜는 놀랐다. 매일 생글생글 웃으며 순박한 얼굴을 하던 그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을 줄이야.

진사운은 양미혜를 잡은 채 핸드폰을 들어 운현의 사진을 몇방 찍고 그것을 정운택에게 전송했다. 이제 저 새끼는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닐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며 진사운은 이를 드러내었다.

"씨발... 거기 얌전히 있어."

"...."

운현이 이를 갈며 한걸음 물러나자 진사운은 양미혜를 차에 밀어 넣은 후 시동을 걸었다. 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며 운현이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지만 그는 운현을 향해 차를 질주했다.

"우당탕!"

운현이 차에 치여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본 양미혜는 눈물을 흘렸다. 또 그가 자신 때문에? 바닥을 구르던 운현이 신음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는 모습에 그녀는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듯 진사운은 후진을 걸었다.

"개새끼야!! 죽어!!"

운현이 비틀거리며 서 있는 것을 보며 진사운은 강하게 외치고 엑셀을 밟았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쪽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저 여자는?'

강원석의 부하, 운현의 동료다. 미모라면 자신이 있는 자신마저도 주눅이 들 정도의 미를 가진 그녀는 무감정한 얼굴로 뛰어와 진사운이 앉아 있는 운전석을 향해 뛰었다.

"아아악!?"

"와장창!!"

앞좌석 창문이 깨지며 진사운의 얼굴에 발이 꽂혔다. 달려오는 기세 그대로 날아오른 그녀의 발차기가 창문을 부수며 진사운의 얼굴을 친 것이다. 그가 축 늘어지자 양미혜는 황급히 핸들을 잡고 돌렸다.

"쿵!"

차가 운현이 아닌 그 옆의 기둥을 치자 양미혜는 충격에 흔들리면서도 안도했다. 겨우 살렸다. 그가 무사한 것에 안도한 그녀가 눈물을 흘렸을 때 라티나는 차 위에서 떨어져 운현에게 걸어갔다.

"괜찮으십니까."

"난 신경쓰지말고 양미혜나 구해."

"예."

아파보이는 척을 하는 것 뿐이지 운현은 전혀 아프지 않았기에 작은 소리로 말했고 라티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차로 다가갔다.

"......"

저 정도의 미녀가 운현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니 기분이 나빴다. 아니, 아마 이젠 미녀든 아니든 상관없겠지. 그녀는 재갈을 잘근잘근 깨물며 자신을 꺼내주는 라티나를 노려보았다.

"뭡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라티나의 무뚝뚝한 어조에 양미혜는 그녀를 노려보다가 휙 고개를 돌리고 운현에게 다가갔다. 주저앉아있는 운현에게 다가간 그녀는 라티나에게 대할때와는 천양지차의 태도를 보였다.

"바보!! 왜 나섰어! 왜!!"

"말했잖아. 아이고... 아파라. 널 지키겠다고."

"왜...!! 네가 왜!!"

"글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가슴을 토닥거리는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보인 운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윽..."

말을 하다 말고 운현이 인상을 찡그리자 양미혜는 당황하며 그의 몸을 만졌다. 자신의 손이 닿을 때마다 운현이 고통스러워하자 양미혜는 휙 고개를 돌려 라티나를 보았다.

"당장 병원으로 가야겠어요!"

"병원보다 급한게 이 오피스텔을 빠져나가는 겁니다. 운현은 지금 팀장님 명령을 무시하고 온 것이거든요. 당신을 구한걸 팀장님이 알면..."

"강원석은 내가 어떻게든 할테니까!! 빨리 병원으로!!"

강원석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이 정운택의 심복이기 때문이었다.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할 정도로 속이 좋지 않은 양미혜였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운현을 도와야해.'

진사운이 운현의 사진을 찍어 정운택에게 전송했다면, 정운택은 운현마저도 노릴 것이다. 자신 뿐만 아니라 운현마저도.

'운현을 지켜야해.'

운현을 지켜야 한다. 이젠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안식처라고 할 수 있는 남자를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 싫고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강원석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

"강원석에게 연락해. 당장 병원으로 오라고. 정운택을 잡을 수 있게 해줄테니까..."

그녀의 말에 라티나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미혜가 운현을 부축하며 비틀거리자 라티나는 그녀를 도우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째릿 한번 노려보고는 혼자 운현을 부축하며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같이 가."

"... 빨리 타."

운현과 이 여자를 떨어트리고 싶지만 지금 운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 여자 뿐이다. 아까 전의 움직임을 보면 이 여자도 운현 정도로 강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모를 정운택의 습격을 대비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한 그녀는 내키지 않는 어조로 말했고 라티나는 그녀의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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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그래서?"

운현이 있는 병원으로 온 양미혜는 자신이 챙긴 자료를 원석에게 넘겼다. 그것을 받은 원석은 가는 눈으로 양미혜를 바라보았다.

"정운택을 끝장내줘."

"이걸 어떻게 믿지? 함정이라고 생각되는데."

"믿든 믿지 않든 그건 당신 마음이지. 하지만 이건 모두 진실이야."

양미혜가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자 원석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정운택의 비자금... 그리고 그가 숨긴 부동산과 이중장부. 좋아. 이게 진짜라고 치자. 근데 갑자기 왜?"

"그건..."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던 운현을 떠올렸다. 검사 결과 큰 부상은 없다고 한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이 행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운현을 지키고 싶어서."

"허... 제정신인가?"

아마 과거의 자신이 본다면 미쳤다고 하겠지. 하지만 지금만큼은, 지금의 자신만큼은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운택은 적이고, 운현은 지켜야 할 사람이다. 자신의 안식처인 사람이다. 그 사람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쩐단 말인가.

"그래. 그래서 지금 당신 보면서 이렇게 있는 거잖아."

"음. 좋아."

양미혜가 넘긴 자료들만 있으면 그의 힘을 크게 깍아놓을 수 있었다. 이 장부만 회장에게 보고하기만 해도 그룹 내에서 그의 위치는 축소될 것이다. 거기에 그가 숨긴 비자금을 자신에게 돌릴 수 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정운택의 비자금의 대부분은 그녀가 만든 계좌에 있었기에 그것을 옮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지금 당장 비자금을 옮긴다면."

"알았어."

핸드폰을 든 양미혜는 스위스 은행의 계좌에 접속해서 그 계좌에 있는 돈을 전부 원석에게 넘겼다. 달러로만 칠백만불. 칠십억이 넘는 돈이 자신의 계좌에 들어 온 것을 확인한 그는 계속해서 돈이 들어오자 어이없다는 얼굴로 핸드폰을 보았다.

"이렇게 많았어?"

"약이나 총, 그 외의 현물이 있는 창고의 위치는 내가 알아. 정운택이 치웠을지도 모르지만..."

"좋아. 그 위치를 보내줘. 애들을 보내도록 하지."

"알겠어. 창고의 비밀번호는 647112991234야."

그녀는 정운택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금과 자산을 아무 망설임없이 강원석에게 넘겼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자금을 제외한 전부를 그에게 넘긴 양미혜는 독기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운현을 이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줘."

"이 세계라..."

"너 같은 새끼를 형님이라고 부르게 하지 말라고!!"

"좋아."

양미혜의 외침에 원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허락에 양미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원석은 빙긋 웃었다.

"하지만 내가 놔준다고 해서 운현이 관둘까? 그는 이루고 싶어하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힘이 필요해. 그는 그것을 위해서 나와 손을 잡은 것이야. 만약 운현이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놔줄 수 없어. 그는 강하고 똑똑해. 나와 함께 이 나라를, 나아가 세계를 지배할 만한 그릇을 가진 자다."

"그 목표가 뭔데?"

"나도 몰라. 몇번이나 물어봤지만 가르쳐주지 않더군. 아무튼. 나조차도 설득하지 못한 운현이다. 네가 가능할 것 같아?"

"내가 설득하겠어!"

양미혜는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 그런 그녀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던 원석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운현이 있는 병실로 돌아 온 양미혜는 라티나가 과일을 깍아 운현에게 건네주는 것을 보고 빠득 이를 갈았다. 그의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싫다. 그를 지원하는 것은 자신이면 된다.

"뭐지?"

"잠깐 나가주겠어? 운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흠... 미안하지만 거절하지."

"왜? 너 설마..."

설마 이 여자도? 운현에게 매료되어버린 양미혜는 불같은 눈으로 라티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과를 다 깍은 라티나가 그것을 포크로 찍어 운현에게 주었을 때 운현은 그것을 받은 후 담담히 말했다.

"라티나. 나가."

"하지만."

"나가. 잠시면 되니까."

라티나는 양미혜를 잠시 바라 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양미혜는 그녀가 앉았던 의자에 앉은 후 그녀가 깍던 사과를 마저 깍았다.

"몸은 괜찮아? 나 때문에..."

"나 튼튼해.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부드럽고 선한 미소다. 그 웃음을 마주하니 진사운때문에 놀랐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정운택에게 배신당한 것에 생긴 허탈함이 사라지고 충족감이 생겨났다.

"다행이다..."

"할 말이 뭐야? 지금 이렇게 있는거... 위험하지 않아? 형님이 널..."

"그거때문에 할 말이 있어."

"뭐? 같이 도망치자는거? 미안하지만..."

"강원석에게 이야기를 들었어. 너에게는 목표가 있다면서?"

"......"

양미혜의 진지한 목소리에 운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던 양미혜는 운현의 손을 감싸쥐었다.

"그 목표... 포기할 수없어?"

"응."

"......"

너무나 단호하다. 생글거리던 얼굴이 사라지고 무서울 정도로 진지한 어조로 그가 답하자 양미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날...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미안."

"어떤 목표이길래..."

"있어. 그런게."

그녀의 슬픈 목소리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에게조차 말해줄 수 없는 목표라면... 양미혜는 운현을 말없이 응시했다.

"미안하지만 너를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목표를 포기할 수는 없어."

"날 위해서 목숨까지 걸어놓고서?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는거야?"

"미안해."

"왜? 어째서? 날 좋아하는 거 아니야? 사랑하는거 아니야?"

양미혜는 간절히 말했다. 제발 그가 이 위험한 세계에서 떠나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다물어진 입과 진지한 눈은 변하지 않았다.

"나... 잃어도?"

"......"

그녀의 말에 운현은 슬픈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제서야 양미혜는 눈치챘다. 자신의 이런 질문이 그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그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미... 미안해."

"아냐. 내가 더 미안하지."

운현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양미혜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강원석의 말대로 운현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막대한 힘과 자금이 필요하다면.

"...내가 도울 수 있을까?"

"왜? 괜찮아. 지금까지 너 힘들게 살아오고 버텼잖아. 이제 쉬어도 괜찮아."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난 원석 형님과 손을 잡았어. 네가 날 돕겠다는 것은 원석 형님과 같은 편이 된다는 것과 같아. 너 형님 싫어하잖아. 그래도 괜찮겠어?"

운현의 차분한 말에 양미혜는 빙긋 웃었다. 그와 손을 잡는 것? 운현을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얼마든지 해줄게. 그 대신... 넌 가급적 이 세계의 일을 하지 말아줘."

"하하하... 나보고 기둥서방 짓을 하라는거야?"

"뭐 어때? 나같은 미녀의 기둥서방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자신보다 열살은 어린 아이다. 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강원석마저도 인정하고 손을 잡고 싶어하는 남자다. 그런 남자를 어렸을때부터 키운다고 생각하자. 아니, 사실 능력따위는 상관없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다. 운현이라는 남자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면 강원석과 손을 잡는 것? 그 이상 힘든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너를 지킬게. 내가 너의 목표를 도울게. 그러니까..."

양미혜는 부드럽게 웃으며 운현의 볼을 쓰다듬고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내가 너의 곁에 있게 해줘."

'불안불안했지만 어떻게든 됐군.'

양미혜가 병실을 나가자 운현은 팔짱을 끼고 빙긋 웃었다. 처음 세뇌를 거는 것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조금 과하게 건 면이 있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다. 양미혜가 정운택을 버리고 자신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휴우... 되게 힘드네.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말자.'

자칫 잘못했다간 양미혜의 인성까지 바뀌는 수준이 될 수 있었다. 어느정도 위험성을 감수하고 그녀에게 작업을 걸었던 운현은 사과를 씹으며 생각했다.

'아무튼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남는 장사군. 양미혜, 강원석, 이한도, 그리고 라티나에 가끔씩 내가 낀다면... 강원석이 성경 그룹을 잡는 것도 문제는 아니겠군.'

"진짜 말씀대로 됐네요."

양미혜가 정말 자신과 손을 잡게 될 줄이야. 그녀가 자신의 밑으로 들어 온 것에 놀라며 강원석은 운현의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양미혜가 정운택의 비리와 범죄 행각에 대한 것을 들고 왔고 앞으로 절 돕는다고 했습니다. 이정도라면 지금 정운택을 쳐도 괜찮겠는데요?"

"부하는 얼마나 있는데?"

"이만큼 돈이 있다면... 조금 무리해서 끌어모으면 백명정도? 그리고 정운택이 뻘짓을 한 덕분에 그의 부하 수가  꽤 줄었습니다. 일주일에서 이주일 안에 정운택을 칠 수 있을겁니다."

지금까지 정운택을 공격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가진 자산과 비리의 증거를 파악하고 그의 부하들을 조금씩 갉아먹어 한타 싸움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양미혜의 합류로 한번에 해결되어버리고, 또 그의 부하들이 양준철을 치느라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부하들만으로도 정운택을 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됐어. 그럼 라티나랑 같이 알아서 잘 때려부숴봐."

"예. 근데 운현님."

"왜."

"그... 목표라는게 뭡니까? 혹시 인간 대량 학살... 뭐 그런건 아니죠?"

운현이 스스로를 마왕이라고 말했을 때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말도 안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운현이다. 철천지 원수라 할 수 있는 양미혜를 끌어들이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까지 가능했다. 그런 그가 점점 진짜 악마처럼 보인 원석이 떨떠름히 묻자 운현은 피식 웃었다.

"설마. 인간 대량 학살이라니."

운현에게 있어서 그런 일은 절대 피해야 할 만한 일이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해도 막아야 할 일인데 자신의 손으로 그런 짓을 할리 없었던 운현은 원석의 어깨를 툭 쳐 준 후 손을 내밀었다. 그가 담배를 달라는 것임을 눈치챈 원석이 담배를 꺼내 주자 운현은 여전히 어색하게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여러가지 세계를 만들어 볼 생각이야. 나쁜 일 아냐. 오히려 좋은 일이겠지. 물론 그 과정이 힘들겠지만 뭐."

또 뭔 허무맹랑한 얘기인가. 원석이 말없이 바라보았지만 운현은 굳이 설명을 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이제 자신이 원석과 할 일은 없다. 가끔씩 그와 함께 밀수나 하면 되는 것이다. 운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고 원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운현님이니 알아서 하시겠죠. 그럼 이제부터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밥을 퍼서 입에다 넣어줬는데 씹는것까지 내가 해줘야 하냐?"

양미혜를 주고, 라티나를 주고. 정운택의 힘을 대폭 깍아주었다. 운현이 황당해하며 묻자 원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운현님께 어떻게 해야 하냐구요."

"일단 집세 다 내고... 내가 필요할때마다 자금지원이나 해줘. 지금 당장은 그거면 된다. 아. 그리고 조직 내에서 처분해야 될 사람 있으면 잘 쟁여놔. 내가 실험에 써먹어야 하니까."

운현이 조폭인 원석과 손을 잡은 이유도 이것이었다. 거대한 조직 폭력배인만큼 그들 중에 처리를 해야 하 사람은 반드시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막 굴려먹을 수 있는 실험체가 필요하니 말야.'

그의 말에 원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분해야 될 사람? 넘쳐난다. 당장 정운택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위협할만한 자들은 하나씩 하나씩 꺽어야 한다. 적어도 열명 이상은 나올 것이라 생각한 그는 운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숙소로 보내면 되나요?"

"응."

"잘 알겠습니다. 그럼 라티나씨는 제가...?"

"아. 걔 잘 데리고 다녀. 어디가서 처맞고 뒤지지 말고."

"알겠습니다."

"여보..."

미경의 안타까운 목소리에 장천후는 당황했다. 주니어가 또다시 시들해져버린 것이다. 김비서가 준 약을 먹어봐도 주니어는 미경의 몸에 반응하지 않았다. 십여분동안이나 그녀가 빨아줘는데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에 장천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설마 그 사람이 준 약 때문이었나...?'

"여보... 오늘은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 것 같은데..."

"으음... 아냐.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그를 찾아야 한다. 찾아서 그 약을 다시 받아야 한다. 장천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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