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7/40)

fana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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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aticism

아르의 파티가 이렇게 빠르게 레벨업을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축복을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축복을 받으면 체력이 빨리 빠진다고 하니 전투를 하지 않을 때 굳이 받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 운현은 사양했고 마이엘은 아쉽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아르의 뒤로 물러났다.

"자. 여기 십골드."

"많지 않아?"

"하하하! 요새 꽤 벌고 있거든.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야. 그럼 간다! 안녕!"

아르가 마이엘과 함께 2층의 숙소로 올라가자 운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피식 웃었다.

"왜요?"

"아니, 고작 3, 40골드로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순박하다 싶어서. 그보다 얼마나 썼어?"

"어휴. 성물 가격이 엄청 비싸던데요? 은화살이랑 성물 가격이 대부분이었어요."

운현의 질문에 대답한 헤스티아는 돈주머니를 운현에게 넘겼다. 나가기 전보다 반은 넘게 비어 있는 돈주머니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벌기는 많이 버는데 쓰기도 많이 쓰는구나."

"나중에 길드원이 된다면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을테니까요. 그것을 위한 투자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맞아. 거기에 우리는 코어를 팔지 않고 레벨업을 위해서 쓰고 있잖아?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고. 나중에 3계층에 들어가고 나면 의뢰도 꽤 좋은 의뢰들만 받으니까 그걸로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지금 너무 돈에 집착하지 말자."

헤스티아와 바제트의 말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만 다급하게 돈을 벌려고 하고 있지 다른 동료들은 그다지 돈에 집착하지 않는 듯 보였다.

'다들 금수전가...'

"어이! 운현!"

사무소에서 나온 상아가 어깨를 툭 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저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 된 듯 하자 운현은 헤스티아와 바제트에게 말했다.

"밤에 돌아올테니까 먼저 자고 있어."

"알았어요. 오늘은 어디로 올거에요?"

"으음... 글쎄. 미야에게 가줘야되지 않을까? 오늘 좀 많이 힘들었을테니까..."

아까 전 교육을 받을 때 그녀를 마구 괴롭혔던 것을 떠올리며 그가 말하자 헤스티아와 바제트는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대한 힘내서 모두에게 들릴게."

"정말이지!?"

"약속이에요!?"

그녀들이 금방 반색하자 운현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또 하드코어하게 전투를 해야 하는데 남아 있는 흥분을 처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운현에게 약속을 받아낸 그녀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라가자 운현은 상아를 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야해?"

"으음... 나는?"

"엥?"

"나한테는 안올거야?"

"너한테 왜 가냐? 바보야."

운현은 상아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술을 삐쭉이며 그녀가 궁시렁거리자 운현은 상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자. 어디로 가야해? 나 오늘 할 일 많으니까 빨리 얘기하자."

"으으... 빨리 듣고 싶기는 하지만 보내면 딴 여자들이랑 할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구만. 내 방으로 가자. 거기가 제일 안전하니까."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그녀의 방에서 긴 의자에 벌러덩 누운 운현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동안 상아는 몇가지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으음... 요새들어 신규 유입자가 많아지는 걸 보니 확실히 전쟁이 나긴 날 것 같은데..."

"신규 유입자라면 던전 도시에?"

"응. 던전 도시는 어떤 왕국의 영향에도 없는 중립지대니까. 안전하기도 하고 많은 자금이 돌아서 다른 왕국에 비해서는 꽤 살만하거든.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이곳으로 피난을 오는 왕족이나 귀족도 있을 정도야."

"오오... 그럼 여기 있으면 공주님도 만날 수 있다는 거네?"

"뭐, 부정할 수는 없지. 망국의 공주가 될지도 모르지만 말야."

"똑똑."

"들어와."

노크 소리가 들리자 운현과 상아는 문쪽을 보았다. 필레인가 싶었던 그들은 문 앞에 펠리시아가 당황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을 보고 서로를 보았다.

"왜?"

"길드장님. 이거 큰일이 벌어졌는데요."

"무슨 일이길래 그래?"

"파르티 성당의 대사제 레나씨가..."

"레나? 아아. 그 사람이 왜?"

"피살당했어요. 지금 당장 성당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길드장님도 어서 준비해주세요."

말을 마친 펠리시아가 후다닥 다른 곳으로 가자 상아와 함께 그녀의 말을 들었던 운현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이거 느낌이 안좋은데..."

'4대 이단 심판관이 죽었을 때 세계를 위협할 존재가 나타난다. 대비하라. 대비하라. 대비하라. 검은 날개를 가진 의지 없는 정의의 후예가 움직이며 교단은 불탈 것이고 세계는 정의로 뒤덮히리라...'

"운현? 무슨 소리야?"

"아니 그게."

운현은 일전 레나와 나눴던 이야기를 상아에게 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상아는 딱딱히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다난이 움직인다는 건데..."

"알아?"

"그야 당연히. 그 미친 광신도들이 이단 심판관들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라면... 그리고 이 던전 도시에 다난의 신자들이 있다면 곤란한데."

"어? 야."

"왜?"

"그게..."

전에 시장 선거를 위해 레밍의 집을 털었다가 그녀의 집에서 다난의 디바인 마크를 봤었던 운현이 그것을 이야기하자 상아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진짜야!? 상인 조합의 간부가 다난 교라고!?"

"응."

"그게 진짜라면 큰일인데..."

상아는 당황했는지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망토를 걸치고 운현에게 말했다.

"운현. 같이 가자."

"어딜? 거길 내가 왜..."

"같이 가. 너라면 뭔가 알 것 같으니까 말야."

상아와 함께 밖으로 나간 운현은 곧장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는지 복잡한 대성당의 앞에서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간 운현과 상아는 파르티 여신상의 밑에 나신이 된 레나가 눈을 부릅 뜨고 죽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강간이라도 당한 것인지 하복부에는 피와 정액으로 보이는 하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길드장님."

먼저 와 있었던 필레는 상아를 보자 그녀에게 다가갔다. 상아의 옆에 운현이 있는 것을 본 필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넌 별 일 없었구나. 다행이다."

"왜?"

"이건 아직 비밀인데. 지금 던전 도시에서 레나 대사제님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오늘 모두 실종되었어."

"...무슨 소리지? 너 레나 대사제와 무슨 관계야?"

"무슨 관계라고 해봤자 보면 서로 으르렁거리는 관계일 뿐인... 아."

"...또 무슨 관계가 있어?"

상아는 걱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녀의 표정을 보며 쓰게 웃은 운현은 상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레나 대사제와 했어."

"...그 했어가 내가 생각하는 했어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좀 야한 의미라면..."

"넌 이따 보자."

운현을 가는 눈으로 바라보며 상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래서 필레. 지금 시청의 대응은?"

"주변을 조사하고 있어요. 문제는 용의자가 없다는 거죠. 레나 대사제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했으니까요."

"필레!"

사람들을 밀치며 윈드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가 다가오자 필레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윈드는 그녀들과 함께 있는 운현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이런... 너 여기 있었나?"

"전 왜요?"

"오늘 어디에 있었지?"

"예? 저 오늘 던전에 있다가 나와서 계속 길드에서 교육 받았는데요?"

"맞아. 내가 한 교육에 참가하고 있었어."

"...하아. 운현. 저번에 레나 대사제와 카페에 간 적이 있나?"

"음. 네."

윈드는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지금 조사를 하던 도중에 너와 레나 대사제가 카페에서 말다툼을 하는 것을 봤다는 증언이 있어. 거기에 강간 살인이라서 더욱 네가 의심되고 있는 상황이야."

"사망 시간이 언젠데요?"

윈드의 말에 운현은 짜증과 분노, 그리고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말투가 거칠어지자 윈드는 한숨을 내쉰 후 그의 어깨를 잡았다.

"널 의심하는 건 아니야. 다만 시청의 경비대장으로서 신고가 들어 온 이상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단 말이지. 미안하지만 잠시 동행해 줄 수 있겠나?"

"거절한다면요?"

"...협조해다오."

"싫은데요."

운현이 거칠게 나오자 윈드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그녀의 뒤로 경비대원들이 몰려들자 상아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고 필레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말하지 않았나? 운현은 오늘 내 교육을 받았다고."

"압니다. 하지만 그게 절차이니..."

"윈드. 적당히 하는게 어때?"

"너야말로 적당히 해. 난 공무를 수행하는 중이라고. 그리고 내가 운현에게 해가 될 짓을 할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막는다. 가문의 힘을 이용해서라도 운현은 내가 지켜! 하지만 지금 운현이 가지 않으면 그가 더 의심받는다고! 그가 더 위험해 질 수 있어!"

"그럼 지금 포기하지 그래? 운현의 결백함은 우리가 보장할 수 있어. 그리고 시청에서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데려갈거면 우리가 데려간다."

"상아님!"

윈드와 윈드가 이끄는 경비대, 그리고 상아와 필레가 마찰하려는 분위기에 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개겨봤자 좋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와는 다르니까...'

자신이 어디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상아와 필레를 말리려 했다. 그 순간 윈드는 손가락을 튕긴 후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상아님이나 필레. 아니면 누구라도 좋아요. 운현과 함께 시청으로 함께 가시죠. 그럼 괜찮나요? 저도 운현의 결백을 믿는단 말이에요!"

"후우.. 그정도라면 양보하는 수 밖에 없나."

"좋아."

윈드가 중재안을 내놓자 상아와 필레는 겨우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녀들이 무기를 천천히 거두자 한숨을 내쉰 윈드가 다른 경비병들에게 말하려는 순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람?"

태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목소리에 운현은 온 몸에 오한이 들었다. 당분간 마주칠 일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목소리에 그가 움찔하자 상아는 더더욱 성을 내며 이를 갈았다.

"아르토리우스. 네가 여긴 왜."

"아~ 왜냐하면요."

히죽 웃은 그녀는 원형의 작은 패를 들어 올렸다.

"저희 용병 연맹에서 이번에 던전 도시의 경비직을 맡기로 했거든요. 아직은 윈드씨가 경비대장이지만 차후의 경비대는 저희가 맡기로 했으니까 그 연습삼아 나왔답니다."

"...아르토리우스 연맹장. 지금은 당신이 낄..."

"아, 물론 제가 낄 것은 아니에요. 우리 차기 경비대장인 티르빙이 낄거랍니다. 그렇죠? 티르빙?"

"하아. 네. 윈드씨."

"뭡니까?"

"신고를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건... 그냥 레나 대사제와 운현이 다투는 것을 본 카페의 점원이라고 하던데요."

"이 사람입니까?"

티르빙이 손을 들어 올리자 용병들이 한 여인을 끌고 나왔다. 그녀는 악에 바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그것을 본 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가 맞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티르빙은 아르토리우스를 바라보았고 아르토리우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윈드에게 말했다.

"윈드씨."

"네. 연맹장."

"혹시 명령서 못받았어요?"

"무슨...?"

"댕! 댕! 댕!"

그녀가 의문을 표한 순간 성당의 종이 울렸다. 저녁 7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아르토리우스는 환하게 웃은 후 명령서를 들어 올렸다.

"오늘의 시청 업무 시간은 끝났습니다. 윈드씨. 당신은 오늘부로 발티르 도시 경비대장직에서 일시 정지 되셨답니다. 축하해요~ 결혼준비를 하셔야 한다면서요?"

"무, 무슨!? 그런 명령서는 받은 적이 없는데!?"

윈드는 당황하며 아르토리우스에게 외쳤다. 그런 그녀를 향해 까르륵 웃은 아르토리우스는 품에서 자신이 들고 있는 명령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상하다~? 여기 현 시장인 윈디아씨가 직접 서명한 명령서가 있답니다. 이걸 확인해주시죠."

"...이런... 말도 안되는."

윈드가 명령서를 받고 부들부들 떨자 아르토리우스는 부드럽게 웃은 후 몸을 돌려 운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꽂힌 운현이 이를 갈자 상아와 필레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운현씨."

"네."

"제 말 믿나요?"

"...그거 말인가요?"

운현의 질문에 아르토리우스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둘도 없는 아군이라는 아르토리우스의 말은 솔직히 믿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르토리우스와 싸운다면 득보다는 손해가 더 많았다. 그녀의 뒤에는 비만 외에도 라티나, 그리고 고급 용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꽤나 많이 서 있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자 상아와 필레는 자신들의 무기를 꺼낸 후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펠리시아와 제니스씨가 올거야."

"나오기 전에 에리스씨에게도 말해놨으니까 걱정마. 조금만 더 버티면."

"어머~ 정말이지 사람을 뭘로 보고. 운현씨는 저희가 하루 정도만 잘 보호했다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하고 보내드릴게요."

"개소리 집어치워!"

상아가 거세게 말하자 아르토리우스는 쓴웃음을 지은 후 운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 목을 걸게요. 어때요?"

"...하아. 상아. 필레."

"왜?"

"이상한 짓 하지마."

"이번에는 믿어보자."

"바보냐!?"

"웃기지 마!"

그녀들이 거세게 거부하자 운현은 손을 뻗어 그녀들을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 안기게 된 상아와 필레가 아무런 말도 못하자 운현은 빙긋 웃은 후 자신의 목걸이를 툭 치고 말했다.

"아르토리우스와는 약속한게 좀 있거든. 그리고 위기시에는 널 부를게. 이정도면 됐지?"

"...너 진짜."

"갔다와서 봐. 다 토해내게 할테니까."

운현이 또다른 비밀이 있다는 것에 상아는 한숨을 내쉬었고 필레는 이를 갈았다. 그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에 빙긋 웃은 운현은 천천히 걸어 아르토리우스에게 다가갔다.

"진짜지?"

"물론이죠."

티르빙과 헥토르를 비롯한 용병들에게 이끌려 떠나가는 운현을 상아와 필레는 이를 갈며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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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속셈인가요?"

"무슨 속셈이냐뇨?"

아르토리우스가 운현을 데리고 간 곳은 시청이 아닌 용병 연맹의 건물이었다. 조사를 한다고는 했지만 아르토리우스의 집무실에서 라티나에게 차만 대접받고 있던 그가 떨떠름히 묻자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의 옆에 앉은 후 그의 입에 케이크를 넣어주었다.

"아~"

"아니 무슨..."

"그리고. 아스라고 불러달라니까요. 말도 편하게 하시고."

"아니 그래도 연맹장님이신데..."

"정말. 상아는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시면서 당신의 둘도 없는 아군이자 검인 저에게는 그렇게 거리를 두실 거에요? 저 삐질거에요. 자꾸 그러시면."

아르토리우스가 토라진 얼굴로 휙 고개를 돌리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아. 아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주겠어?"

"아... 이게요. 뭐가 궁금하신데요?"

"왜 시청으로 가지 않았지? 티르빙이 시청의 경비대장이 되었다면 시청으로 가야 하는게 맞지 않아?"

"네. 정상적이라면 그렇죠."

빙긋 웃은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의 입에 케이크를 한조각 넣어주었다. 그것을 받아 먹은 운현이 무언가 말하려고 할때 라티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아르토리우스에게 말했다.

"연맹장님. 지금..."

"아아. 그래요? 고생해요."

라티나가 자신의 할버드를 들고 밖으로 나가자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의 입에 다시 케이크를 넣어주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단 케이크를 먹는데 모래를 씹는 기분이다.

"으음... 일단 시청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요."

"......"

"그리로 가면 운현씨가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게 무슨 소린지...?"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갑작스러운 폭음이 들렸다. 그것에 놀란 운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아르토리우스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를 자리에 앉혔다.

"별 거 아닌 트랩이에요."

"아니 별 거 아닌 트랩 치곤 소리가... 그리고 용병 연맹에 왜 트랩이 발동되는건데!?"

"그거야 설치했으니까죠? 이상한 운현씨~"

아르토리우스와 이야기를 나누니 더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운현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아르토리우스는 빙긋 웃고 나머지 케이크를 들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앙~"

"빨리 말 안하면 나 그냥 나간다."

"아이 참. 좋아요. 운현씨. 카를로스와 적대관계죠?"

"음.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

"헤에~ 역시.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니구요. 카를로스가 다난 교들과 손을 잡았거든요."

"다난교... 아니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카를로스는 원래부터 날 죽이고 싶어하던 녀석이잖아."

그의 말에 아르토리우스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하는거야?"

그녀가 한꺼풀 한꺼풀 옷을 벗기 시작하자 운현은 떨떠름히 물었고 아르토리우스는 그의 질문에 빙긋 웃었다.

"지금의 당신과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너 설마!?"

운현이 놀라자 아르토리우스는 마지막 상의마저 벗어던졌다.

"일단 한발 빼고 이야기하시는게 어떨까요?"

생글 생글 웃으며 그녀는 운현에게 다가갔다. 알고 있단 말인가? 운현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려 하자 아르토리우스는 빠르게 움직여 운현을 끌어안고 그의 머리를 잡았다.

"쪼옥...핥짝...후룹..."

"으읍!"

갑작스러운 키스에 운현이 저항하려 했지만 그녀의 손은 그의 머리를 꽉 잡고 있었다. 이 얇은 팔에 무슨 힘이 이렇게 강하길래 이정도란 말인가. 그가 몸부림을 치자 아르토리우스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하아... 제가 싫은가요?"

"싫고 자시고 무서운데..."

"아. 물론 제가 운현씨를 잡아먹기는 할거지만요."

생긋 웃은 그녀는 운현을 부드럽게 안아들었다. 공주처럼 아름다운 여자에게 공주님 안기를 당한 운현은 방에 놓여져 있는 침대로 이끌려갔다.

"그래도 절 무서워하면 상처받는다구요. 제가 운현씨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럼 그냥 안하면 안될까?"

"후후후후... 그냥 천장의 얼룩이나 보고 계시라구요."

생긋 웃은 아르토리우스는 능숙하게 운현의 옷을 벗겨나갔다. 저항하려고 해봤지만 힘에서 밀린다. 그가 이를 드러내자 아르토리우스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물었다.

"제가 안예쁜가요?"

미모만 따진다면 상아와 동급, 취향에 따라서는 아르토리우스에게 더욱 매력을 느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서글픈 어조로 묻자 운현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예쁜데."

"제 몸매가 나쁜가요?"

"끄, 끝내주지."

속옷만 입은 채 자신의 조각같은 몸매를 드러내고 있는 아르토리우스의 질문에 운현은 그녀의 몸을 흝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남성이 천천히 바지 앞으로 솟아 오르자 아르토리우스는 베시시 웃었다.

"기뻐요~"

그의 볼을 핥은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의 목덜미와 가슴 주변을 핥짝거리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우유가 담긴 접시를 핥는 것처럼 정신없이 그의 몸을 핥아대던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이 그 쾌감에 낮게 신음성을 토해내자 짖궂은 웃음을 지었다.

"입은 싫다고 하면서 몸은 솔직하네요."

"야! 너같은 미녀가 이렇게 하는데 안서면 그게 사람이냐!?"

"제가 미녀라는건가요~? 아이~ 기뻐라. 키스해드릴게요. 쪼옥... 핥짝..."

"우웁!?"

도무지 말이 안통한다. 운현은 그녀를 밀어붙인 후 말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사람하고만 해."

"저랑은 하기 싫으세요?"

"그건..."

아르토리우스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운현이 당황하자 아르토리우스는 침대보를 살짝 쥐며 울먹거렸다.

"저는 운현씨를 무척이나 좋아한다구요. 그리고 운현씨를 위해서 많은 것을 했는데... 시장 자리도 양보하고, 그리고 오늘 일만 해도 그렇고."

"오늘 일?"

"...네."

"...으으으으음..."

"사랑이 없으면 여자를 안지 못한다. 그런건 아니죠?"

"그, 그런건 아닌데."

"그럼 됐잖아요."

"아. 그! 난 버진 헌터라서 말이지!"

운현이 손가락을 튕기며 쓰레기같은 변명을 던졌다. 그런 그를 향해 아르토리우스는 활짝 웃었다.

"그거 잘됐네요! 저 처녀에요!"

"...네?"

방금 전의 테크닉을 보면 절대 처녀처럼 보이지 않는데 처녀라니. 운현이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아르토리우스는 생글생글 웃었다.

"남창들을 불러서 놀기는 했지만 삽입이랑 키스는 한번도 해본 적 없어요. 아, 남창을 부른것도 부하들때문에 부른 거지만 말이에요."

"...왜?"

"제 처녀는 당신에게 주기로 결심했거든요."

"왜?"

운현은 아르토리우스의 지대한 관심과 알 수 없는 애정에 혼란스러웠다. 물론 이 세계에서의 처녀성은 운현이 살던 세계에서의 동정만큼이나 꽤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지만 자신과 하기 위해서 처녀성을 간직했다니. 운현이 어이없어하자 아르토리우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현씨는 처녀 좋아하지 않아요?"

"...사실 딱히 그렇지만도 않습니다만."

운현이 안은 여자들 중에 처녀가 많았을 뿐이지 처녀만 안는 것은 아니었다. 아스티나나 힐더크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그녀는 볼을 빵빵히 부풀렸다.

"그럼 왜 저랑은 하기 싫은건데요?"

"아니 난 널 잘 모르기도 하고..."

"헤에~ 잘 아는 여자들이랑만 한거에요? 제가 보기에는 처음 만난 여자랑도 잘만 할 것 같은데."

"....."

아르토리우스의 말에 운현은 입을 다물었다. 사람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 있는 듯한 그녀의 말에 더 할 말을 찾지 못한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래서?"

"제가 묻고 싶은 말이네요. 그래서요? 제가 싫어요? 정 제가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흑흑..."

결국 그녀가 눈물을 흘려버리자 운현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당하는 것은 자긴데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왜 내가 이런 여자를 앞에두고 이런 고민을 하는거지?'

생각해보니 아르토리우스같은 미녀가 제발 먹어주세요. 라고 눈 앞에서 알짱거리는데 거부를 할 이유가 없었다. 운현은 볼을 긁적거린 후 말했다.

"그, 그럼 잘 부탁해."

"에헤헤헤~ 신난다~ 잘 해줄게요~"

방금 전의 눈물은 거짓이었던 것인가. 금새 웃는 얼굴이 된 그녀는 다시 운현에게 키스했다. 아까와 같은 저항이 없는, 서로의 타액을 갈구하는 키스가 끝나자 아르토리우스는 황홀한 얼굴로 그의 볼을 핥았다.

"으으음~ 역시..."

"응?"

"운현씨랑 하는 키스가 제일 좋네요."

"...뭔가 나랑 해봤던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건 비밀.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것보다..."

그녀는 천천히 운현의 옷을 다시 벗겨나갔다. 능숙하게 그의 옷을 모두 벗긴 아르토리우스는 자신의 속옷도 모두 벗어버린 후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핑크색 계곡의 속살을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은 이 안에 당신의 물건을 넣고 싶은데 말이죠..."

"으음..."

낮게 신음한 운현은 아르토리우스가 천천히 눕자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자세를 바꾼 운현이 진지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녀는 생긋 웃은 후 긴 팔을 뻗어 그를 끌어안았다.

"대화는 지금의 당신이랑 하면 답답하지만... 이것도 나중에는 같아지겠죠?"

"너 진짜 나중에 꼭 정체 밝혀라. 사기치면..."

"당신이 밝히지 말라고 해도 밝힐거니까 걱정말아요. 그보다 빨리..."

촉촉하다 못해 음액이 샘솟듯 배어 나오고 있는 의 입구에 남성을 가져다 댄 운현은 살며시 양물을 밀어 넣었다. 빡빡할 정도로 좁은 계곡의 입구는 운현의 남성을 처음부터 조여오기 시작했다.

"아흣..."

진짜로 처녀인 것인지 처음으로 아르토리우스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운현은 더더욱 깊숙히 남성을 밀어 넣었다. 얇은 저항감이 양물의 진행을 막는다. 그것이 진짜 처녀막이라는 것을 눈치챈 운현은 아르토리우스의 도톰한 입술을 부드럽게 만졌다.

"핥짝..."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르토리우스는 그의 손가락을 핥았다. 긴 붉은색 촉촉한 혀가 손가락을 정신없이 핥자 운현은 천천히 손가락을 떼어낸 후 그녀와 키스했다.

"쪼옥...쭈룹..."

"찔걱!"

"흐읏!!!"

저항감이 사라진다. 허리를 깊숙히 밀어넣은 운현은 아르토리우스가 낮은 신음을 터트리며 양 팔과 양 다리로 자신의 몸을 꽉 끌어안자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이마에 키스했다.

"아파?"

"조, 조금요. 역시 처녀가 뚫리는건... 아, 아프네요. 그래도 운현씨에게 줄 수 있어서 다행... 하으으! 우, 움직이지 말아봐요!"

"아니 그래도 이렇게 조이면... 우웃...!"

완전히 자리잡은 남성을 아르토리우스의 뜨거운 계곡은 그것을 잘라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꾹꾹 조여오기 시작했다. 수천개의 돌기가 양물을 비비며 쾌감을 만들어내자 운현은 그녀의 탱글거리는 두개의 유방을 거칠게 부여잡았다.

"흐읏...으윽..."

낮은 신음성과 함께 아르토리우스는 그의 머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를 안음으로서 파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듯한 모습에 운현은 그녀가 예상 외로 연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아...하아... 이,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

"정말?"

"조, 조금 아프긴 하지만..."

살짝 얼굴을 붉힌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운현의 이마와 볼, 코끝에 키스한 후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잖아요. 그리고... 으읏... 우, 운현씨도..."

"...조, 조금 참기 힘들긴 하다만. 그래도..."

"괜찮으니까요. 저는..."

살며시 고개를 돌린 아르토리우스는 침대보를 꽉 잡았다. 그것으로 고통을 버텨보려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속삭였다.

"조금만 참아줘."

"알겠... 하윽! 으읏! 아, 아팟...!"

운현의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르토리우스는 눈물을 머금으면서도 멈춰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길고 아름다운 다리가 힘없이 흔들린다. 아르토리우스는 하얀 이를 꽉 깨물고 고통과 쾌감을 버텨내었고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한숨을 내쉰 후 천천히 그녀를 애무해나갔다.

"으응... 읏..."

"정 힘들면 그만..."

"싫어요. 운현씨와의 첫 경험을 여기서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아요."

아르토리우스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침대보를 잡고 있는 양 팔을 끌어 그를 꽉 끌어안았다.

"참을테니까... 어서..."

"으휴..."

여기서 뺏다간 오히려 더 안좋아 질 듯 했다. 운현은 천천히, 그녀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허리를 움직였다. 자신이 쾌감을 느끼기 위함보다는 그녀가 익숙해지도록 하는 부드러운 움직임. 아르토리우스는 아까보다는 고통을 덜 느끼게 되었는지 조금씩 쾌감에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하으...읏...으흥...읏..."

아르토리우스의 귀여운 신음성에 남성이 더더욱 커졌다. 자신의 안에서 그의 남성이 커진 것을 느낀 그녀는 살짝 웃은 후 운현이 입술에 키스하고 힘없이 흐느적거리던 긴 다리를 움직여 그의 허리를 꽉 안았다.

"이, 이제 괜찮으니까..."

"알았어. 그럼 간다."

운현도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리는 아름다운 유방을 양 손으로 잡고 핑크색 유두를 손가락으로 튕겨 조금이라도 더 쾌감을 느끼게 해 준 운현은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계곡이 뜨거워지자 허리끝에서 차오르는 사정감에 이를 악물었다.

"흐아아앙!"

"으윽!"

남성을 부숴버릴 듯 조여오는 압박감에 운현은 강한 쾌감을 느꼈다. 결국 버티지 못한 운현이 계곡의 깊숙한 곳에 양물을 꽂아 넣고 사정하자 아르토리우스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생긋 웃었다.

"하아...하아... 후후후... 어땠어요?"

"조, 좋았어."

"그렇지만 아직 만족은 하지 못했죠?"

자신의 계곡 안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그의 양물을 느낀 아르토리우스는 자신의 매끈한 복부를 꾹 눌러본 후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그의 양물이 자신의 계곡에 자극을 주자 쾌감에 부들거린 그녀는 운현을 눕힌 후 양 손을 그의 가슴 위에 올렸다.

"이제 제가 해드릴게요."

요염히 웃은 그녀가 천천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하자 운현은 양물에서 오는 쾌감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와장창!"

문 바깥쪽에서 무언가가 부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현의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아르토리우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하윽! 읏...! 하아아아앙!!"

몇번째 절정에 도달한 것일까. 운현은 또다시 그녀의 안에 사정한 후 축 늘어졌다. 이제는 더는 못하겠다. 아르토리우스 역시 배가 꽉 찰 정도로 그의 정액을 받고 나서야 운현의 위에 쓰러지듯 안길 수 있었다.

167====================

fanaticism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이젠 못해... 하으응... 배가 꽉..."

"....."

성욕이 줄어들자 운현은 서서히 자신의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제 바깥의 소란에 신경이 쓰인다. 아르토리우스와 할때까지만 해도 창가 쪽에서만 들리던 소란이 이제는 복도까지 전해지는 것에 운현은 아르토리우스를 톡톡 친 후 말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으음... 아직은요."

"흐으음... 일단 빼자."

운현은 천천히 그녀의 계곡에서 남성을 빼내었다. 그와 동시에 애액과 정액이 섞인 액체가 계곡에서 주르륵 흘러내려왔고 아르토리우스는 아깝다는 듯 자신의 하복부에 손을 가져다 댄 후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임신하면 좋을텐데..."

"모험가는 상시 피임중이라서 말이지."

"후우... 그래도 이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네요."

운현은 엎드린 채 자신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넌 누구냐."

"아르토리우스. 용병 연맹의 맹주. 그리고... 당신의 둘도 없는 아군이죠."

"...그것 말고는? 내가 지금 그걸 묻는게 아닌 것을 알텐데. 이 상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안거지?"

운현의 질문에 아르토리우스는 싱긋 웃었다.

"그건 비밀. 300레벨을 찍어주세요. 이제 슬슬 손님들이 올 것 같은데 옷을 입어주시겠어요? 이 용병 연맹의 안주인답게 손님맞이를 해야 할 것 같네요."

빠르게 옷을 챙겨 입은 아르토리우스는 자신의 검을 든 후 말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이 옷을 챙겨 입은 순간 문이 부숴지듯 열리며 검은 로브를 입은 사제가 들어왔고 그녀는 운현과 아르토리우스를 보자마자 살벌히 웃은 후 외쳤다.

"다난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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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검은 로브를 입은 사제 한명이 단검을 들고 달려드는 것을 여유있게 바라보던 아르토리우스는 옆의 검을 뽑아 가볍게 그를 베었다. 단 일격에 가슴이 두쪽나버린 검은 로브의 사제가 쓰러지자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을 향해 싱긋 웃었다.

"네가 대화하고 싶은 상태는 지금의 상태인가?"

아르토리우스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운현은 무감정한 어조로 물었고 그것에 아르토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의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죠? 그나저나 참... 용병들을 열심히 키워놨고 함정이랑 매복으로 잘 막아놨는데 이렇게 쉽게 뚫리다니. 정말 개노답이네요. 간부들과 고급 용병들을 너무 다른 곳으로 돌렸나?"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아르토리우스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듯한 그녀의 모습에 안도한 운현은 단검을 손에 쥔 후 물었다.

"이것 때문에 날 용병 연맹으로 데려온건가?"

"네. 당신이 시청에 있었다간 이들과 카를로스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을테니까요. 용병 연맹의 본부에 설치한 함정이랑 복병, 그리고 용병들이 없었다면 지금쯤 이 방은 다난의 광신도들과 카를로스가 차지하고 있을 걸요? 당신의 머리를 가지고 놀면서 말이죠."

"푹!"

천장을 뚫고 뛰어내린 검은 옷의 사제가 검을 들자 운현은 망설임없이 그의 목을 단검으로 찔렀다.

"끄르르륵...! 커헉!"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너스 스탯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피끓는 기침소리와 함께 그 사제가 쓰러지자 운현은 아무런 흔들림 없이 단검을 뽑아 당겨 역수로 쥐었다. 루비와 용병 연맹의 다른 용병을 죽였을 때 느꼈던 죄책감과 흔들림따위는 없었다. 그저 몬스터를 죽이는 것처럼, 아니 그냥 통나무에 단검을 쑤셔 넣은 것처럼 운현은 여유롭게 사제를 죽였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이들은 누구지?"

"맞춰보세요."

"다난의 집행자들인가?"

"정답."

문을 열고 달려드는 다난의 집행자들의 공격을 아르토리우스는 여유롭게 피해낸 후 한명당 한번씩 검을 휘둘렀다. 빛과 같은 움직임을 보인 검격에 그들의 목이 날아가자 운현은 팔짱을 낀 채 바라보다가 문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난을 위하..."

"촤악!"

"여으아아아악! 아아아악!!"

가시 줄 함정이 발동되어 입구를 통해 들어 온 다난의 집행자들 네명을 감쌌다. 그들의 연약하기 그지 없는 살가죽을 찢어발기며 피가 터져나오는 것을 본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을 향해 싱긋 웃었다.

"역시 지금은 망설임이 없네요."

"목을 내어 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네가 이 상태를 어떻게 알고 있었지? 내가 너와 잔 적은 없었던 것..."

"푹!"

"끄억!"

"같은데."

운현이 던진 송곳은 함정에 걸린 집행자 중 하나의 이마에 정확히 박혔다. 그가 절명하는 것을 본 아르토리우스는 싱글거리며 놀리듯 말했다.

"그것도 레벨 300이 되면 가르쳐드릴게요."

"도대체 레벨 300에 무슨 일이 있길래 다들 300을 말하는거지?"

"300이 되면 특수한 스킬이 생김과 동시에 직업을 하나 더 가질 수 있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가지 직업만 파지만... 전 당신이 용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왜?"

"그것 역시 300이 되면. 지금 말해 드릴 수 있는건...욥! 당신이 당신의 필요에 의해서 당신이 용병이 되길 요청할 거라는 거죠."

가볍게 몸을 비틀어 다난의 집행자가 던진 도끼를 피해낸 아르토리우스는 두번째로 날아든 단검을 허공에서 잡아 채 그대로 던져 반격했다. 날아올때 이상의 속도로 되돌아 온 단검에 심장을 공격당한 그가 쓰러지자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을 잡아 당긴 후 말했다.

"거기 있으면 위험해요."

"우지끈!"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지금까지의 집행자와 다른, 이형의 존재가 모습을 보이자 아르토리우스는 씨익 웃었다.

"잡을 수 있겠어요?"

"글쎄."

운현 키의 두배, 덩치는 네배는 되어보이는 괴물이다. 가슴에는 다난의 문장이 박혀 있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고함을 내지르려 하자 아르토리우스는 빠르게 달려 검을 휘둘렀다.

"촤악!"

"크어어어어!!"

"역시 한방에 죽지는 않네요."

"어때요? 해보시겠어요?"

생글거리며 아르토리우스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장검을 운현에게 던졌다. 그것을 가볍게 낚아 챈 운현은 검을 몇번 휘둘러 본 후 비틀거리는 거대한 괴물을 향해 다가가 검을 휘둘렀고 수십차례의 검격이 몸에 새겨진 괴물은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르토리우스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운현은 그녀의 앞에 함정을 설치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런 그녀를 향해 운현은 무덤덤히 말했다.

"뒤로 물러나. 2초 후 앞차기."

"네? 알겠어요."

그의 말대로 뒤로 물러난 아르토리우스는 천장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조금 더 화려한 검은 옷을 입은 사제가 뛰어내리자마자 그를 향해 앞차기를 먹였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맞은 사제가 뒤로 물러났을 때 그의 몸을 가시 줄 함정이 포박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아르토리우스는 빠르게 검을 휘둘러 그자의 목을 베었다.

"우와. 이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자... 슬슬 마무리 되는 분위기인데."

"아직 아니네요."

"우지끈!"

"여기 있었구나!!"

노성과 함께 큰 덩치의 사제가 천장을 부수며 내려왔다. 다른 사제들과 다르게 로브를 뒤집어 쓰지 않은, 얼굴에 몇개의 흉터가 있는 험상궂은 여인이 자신의 장창을 들며 외치자 운현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풀 스트립."

"헉!?"

그의 스킬이 작렬하자 여인의 몸을 가리고 있던 옷과 장비가 해체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에 당황한 여인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장창을 짚으려는 찰나 운현은 하이딩을 걸고 그녀의 뒤로 이동한 후 밧줄활용을 시전해 그녀를 포박한 후 장검으로 그녀의 오른쪽 다리 근육을 깊게 밴 후 그녀를 힘껏 끌어당겼다.

"으윽!?"

"헤에... 잘싸우시네."

아르토리우스의 말을 귓등으로 넘긴 운현은 그녀가 알몸이 된 채 냉기의 밧줄에 의해 동상을 입기 시작해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자 그녀의 입 안에 단검을 넣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그대로 입이 찢어지게 된 여인은 운현을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름."

"...퉷!"

"말하기 싫으면 관두고. 어차피 너희들은..."

"아안이이여! 어이를 우오아...!"

그녀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자 운현은 망설임없이 그녀의 입안에 넣고 있던 단검을 크게 흔들어 베었다.

"아아아아악!!"

입이 찢어지는 고통에 주문을 외우지 못한 그녀가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자 운현은 장검을 들어 올린 후 망설임없이 그녀의 목을 향해 그대로 내리쳤다.

"서걱!"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너스 스탯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내 적인 듯 싶으니까."

장검으로 있는 힘껏 베었지만 목의 반도 제대로 베지 못했다. 하지만 지극히 치명상은 입힌 듯 그녀는 피 끓는 신음과 함께 그대로 절명해버렸다.

"역시 한번에 머리 베는 것은 쉽지가 않네. 도끼가 있어야 하나."

장검이 만들어낸 상처를 보며 운현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따위는 없는, 그저 자신의 실력을 점검하는 듯한 그의 행동에 아르토리우스는 감탄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피식 웃은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말했다.

"우와... 레벨 차이가 꽤나 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쉽게 잡을 줄은 몰랐네요. 그나저나 의왼데요? 사람 죽이고 울고불고 질질 짤 줄 알았는데."

"그럼 쟤들이 나 죽이게 얌전히 목 내어주라고? 등신도 아니고 말야. 난 그렇게까지 속없는 좋은 놈이 아니야.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기로 각오를 다진 순간부터 이런 일 따위는 각오해야지."

루비와 다른 용병을 죽였을 때 이미 각오를 다진 일이다. 운현은 더 이상 사람 한 둘 죽이는 일에 연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다. 누군가가 앙심을 품고 자신을 공격하려 할 수도 있었고 누군가는 앙심을 풀고 자신을 죽이려 할 수 있는 세계였다.

'그런 세계에서 양심이나 인류애같은거 지켜봐야 내 손해지. 내 사람 지키는 것도 바쁘다.'

"헤에... 역시 대단하네요. 후후후후..."

"그나저나 카를로스는 네 말대로 여긴 안왔나보군. 지금 너와 있을 때 끝장내고 싶은데 말야."

"네. 그자는 지금 시청에 갔을 거에요.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 말이죠. 지금쯤 시청에 있는 티르빙과 윈드씨, 윈디아씨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그 셋 중 하나를 죽이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죽이려고 한 당신이 없어서 말이에요."

"카를로스는 그렇다고 치고."

운현은 창 밖을 보았다. 용병 연맹의 거센 반격에 검은 로브를 입은 이들이 물러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성큼성큼 걸어 벽장에 있는 와인을 꺼내었다. 아무렇지 않게 와인의 뚜껑을 열어 한모금 마신 후 운현은 담담히 물었다.

"쟤들이 왜 날 공격한 거지? 널 공격하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야."

"저를 공격하는 것도 맞아요. 물론 저는 덤이고 메인은 당신이지만 말이에요."

"왜?"

"레나와 잤죠?"

"응."

"그래서에요."

"의미를 모르겠는데?"

운현이 의문을 품자 아르토리우스는 부드럽게 웃은 후 말했다.

"4명의 이단 심판관이 가진 힘은 처녀성과 생명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에요. 파르티가 다난을 상대하기 위해 자신의 신자들에게 나눠 준 신성. 그 신성은 그녀들의 처녀를 취하고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

"롤랑이 처녀를 빼앗기고 목숨을 잃은 것. 당신은 알고 있지 않나요?"

아르토리우스의 질문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눈을 떴을 때 롤랑은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간살당했다. 그것이 신성을 빼앗기 위함이었단 말인가?

운현이 침묵하자 아르토리우스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가 생각을 정리하길 기다렸다. 운현이 와인을 잡아 벌컥벌컥 마시고 난 후 긴 숨을 토해내자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에게 물었다.

"이제 정리가 되셨나요?"

"대충. 다난교는 파르티의 이단 심판관이 가지고 있는 신성을 빼앗기 위해서 그들을 간살했다. 파르티의 예언에 따르면 네명의 이단 심판관이 죽었을 때 검은 날개가 움직인다고 했는데... 그럼 이제부터 다난이 움직인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겠지?"

"네."

"그 다난은 레나의 처녀를 빼앗은 나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고. 왜? 내 후장이라도 따려는건가?"

"아뇨. 그렇다기보다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반쪽짜리 신성을 빼앗기 위해서겠죠. 당신을 죽임으로서 그 신성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알지? 너도 다난의 신자인가?"

"어휴~ 그런 농담은 관둬요. 다난이라면 아주 이가 갈리다 못해..."

아르토리우스는 말을 멈춘 후 평소의 태평한 웃음이 아닌 이를 드러내는, 증오가 가득 담긴 웃음을 지으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산채로 씹어 삼키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니까요."

"그럼 어떻게 알게 된거지?"

"그건 제 정체와 깊은 관련이 있는 질문인지라 답변드리기 곤란하네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답변은..."

"레벨 300이 되어 용병이 되라?"

"네. 후후. 역시 당신과 이야기하는게 편하네요. 척 하면 착."

"흐음... 그럼 다난교의 목적은 무엇이지?"

"파르티가 신자들에게 내어준 신성을 빼앗아 다난을 강림시키고 그녀가 이 세계의 주신이 되게 하는 것. 다난 교의 교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하는 것. 정의와 선으로 가득 차 있는 낙원을 만드는 것."

"이야기만 들으면 진짜 좋은 놈들 같은데 말이지."

"물론 이야기만 들으면 말이죠. 아, 다난 교들에게는 낙원일 수 있겠네요. 아무튼 그들의 목적은 그것이에요. 지금 그들이 손에 넣은 신성은 여덟개 반. 파르티가 신자들에게 나눠 준 신성은 총 열. 파르티 교단의 교황이 가장 큰 하나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운현씨가 반개를 가지고 있군요."

"정말 잘도 움직였네. 나름 신에 대항하려는 주제에 신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건가?"

"아뇨. 다난에게도 신성은 있죠. 하지만 그 신성만으로는 파르티를 이길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파르티가 신자들에게 나눠 준 신성을 빼앗으려고 하는거에요."

"하아. 파르티의 사제들은 등신인가. 왜 그런 걸 뺏기는거지?"

"하하하... 그건 동감하네요. 애초에 뺏길 걸 생각하고 주지도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죠. 뭐, 자기들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쫓기는 사교인 주제에 파르티 교단의 신성을 잘도 빼앗았다. 운현이 파르티 교단의 등신같음에 감탄하자 아르토리우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운명이니까요."

"그 운명이라는게 도대체 뭔데?"

"그것 역시 같은 답변을 드릴 수 밖에 없군요. 나비효과를 조심해야죠."

"나에게 말해준다고 해서 그게 크게 바뀌는 건가?"

운현이 어이없어하며 묻자 아르토리우스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발설한다면 반드시 바뀝니다. 그것도 저와 당신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방향으로 말이죠."

"...하아. 골치아프군."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지금까지는 모두 예정대로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약간 오차는 있지만 그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들이에요."

"네가 내 적은 아니겠지?"

운현의 질문에 아르토리우스는 쓴웃음을 짓고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당신의 적이었다면 당신이 그냥 시청에 가게 내버려뒀겠죠? 윈드의 직무를 정지시키느라 전 제가 모은 재산의 1/10을 날렸다구요. 거기에 용병 연맹도 꽤 큰 피해를 입었고."

"왜?"

"네?"

"왜 그런 선택을 했지? 내가 시청에 가면 죽는다는 것은 이해를 했어. 네 말대로라면 시청에 무력이 별로 없다고 볼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모험가 길드로 가도 되지 않나? 모험가 길드는 용병 연맨만큼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데. 네 입장에서 용병 연맹의 힘을 그렇게 깍아먹는..."

"그건 안돼요."

"왜지? 모험가 길드는 너의 적이 아닌가?"

"저의 적은 다난교와 다난, 그리고 운명 뿐이랍니다. 상아씨... 그리고 모험가 길드는 아군이라구요."

"그 아군이 이용해야 할 대상이라는 건 아니겠지?"

"아하하하하하~!!"

운현의 질문에 아르토리우스는 깔깔 웃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용해야 할 대상이죠. 새삼스럽게 뭘. 절 너무 착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는데요. 전 그렇게 좋은 여자가 아니랍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이번에 당신을 모험가 길드로 보내지 않고 이곳으로 데려 온 이유도 나중에 모험가 길드가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위해선 힘을 보존해야 했기 때문이죠. 어머~? 제가 상아씨나 다른 모험가들이 예뻐서 이런 줄 아셨어요? 솔직히 저는 운현씨를 독점하는 그들이 질투나 죽이고 싶은 심정인데요."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가 말하자 운현은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차라리 이런 것이 낫다.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변을 보며 말했다.

"아무튼 목숨을 빚졌군."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앞으로 이런 일은 많을테니까요. 그러니까 빨리 강해지세요. 당신은 분명히 저 이상으로 강해집니다."

"집니다? 질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이미 결정된 사항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운현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묻자 아르토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운명의 흐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거든요. 길가의 벌레처럼 허무하게 죽는 당신이 아니라..."

아르토리우스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다난의 집행자의 사체를 보며 히죽 웃었다.

"저 벌레만도 못한 다난의 쓰레기들에게 공포의 존재가 될 사람, 그들에게 마왕, 불의의 결정체, 절대 악이라 불릴 존재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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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aticism

"마왕, 불의의 결정체... 절대 악이라..."

정의와 선의 여신이라 스스로를 자부하는 다난 교에 있어서 절대 악, 마왕이라는 이름은 그들에게 강력한 적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가능할까?"

아직 200레벨도 되지 못한, 그나마 전투직도 아닌 모험가인 자신이 다난이라는 광신도와 신을 상대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운현의 말에 아르토리우스는 빙긋 웃었다.

"가능합니다."

"확신인가?"

"뭐 그렇다고 해두죠."

"아르토리우스님! 괜찮으십니까!? 죄, 죄송합니다. 뚫렸습니다. 저들의 위세가 너무 강해서..."

몸 여기저기에 작은 상처들로 가득한 바민과 라티나가 들어오자 아르토리우스는 웃으며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토리우스가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바민은 빠득 이를 갈며 말했다.

"도대체 이 정신나간 광신도들이 왜 저희들을 공격한 걸까요?"

"글쎄요? 저희 용병 연맹의 용병들이 그들의 지부라도 부순 게 아닐까요? 내로남불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니까요."

"큭... 감히 용병 연맹을 습격하다니. 용서 못해! 용서 못한다고!!!"

바민이 빠득빠득 이를 갈며 분통을 터트리는 것을 본 아르토리우스는 싱글거리며 라티나에게 손짓했다. 그녀의 신호에 라티나는 바민을 데리고 나갔고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이런 시체들로 가득 찬 방도 운치있지만 그래도 자기에는 좀 불편하겠군요. 어떤가요? 오늘은 저와 함께 주무실 생각은..."

"없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같이 자는게 낫겠군."

또다시 습격이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시청에 갔던 카를로스가 침입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현 최강자인 아르토리우스와 함께 있는 것이 낫겠다 싶은 운현이 차분히 말하자 아르토리우스는 짧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후후후~ 오늘은 안재울거에요~"

"아니, 너랑은 한번 하면 이 상태가 되니까... 못한다고."

"그럼 지금의 상태가 풀리면 강제로 하죠. 뭐. 보니까 몸은 솔직하던데."

아르토리우스가 자신의 팔을 끌어안으며 생글거리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쉰 후 말했다.

"좀 봐줘..."

아르토리우스의 침대에서 잠에서 깨어난 운현은 별다른 습격이 없었다는 것에 안심했다. 침실에 들어가기 전 말했던 것처럼 아르토리우스는 그를 강제로 취하는 대신 팔베게를 해달라고 하고 그를 끌어안은 채 잠들었을 뿐 이었다.

다난의 집행자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여자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얼굴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그녀를 바라보던 운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아르토리우스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한참 생각하던 그가 몸을 움직였을 때 그가 움직이는 것에 잠이 깬 아르토리우스는 귀엽게 하품하며 운현의 팔을 꽉 끌어안았다.

"가면 싫어요오..."

"그래."

이럴때는 천사같다. 하지만 과연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 운현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비단결같은 머리칼이 손가락에 감긴다. 그것에 아르토리우스는 간지러웠는지 살짝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벌써 일어나셨어요? 그럼 어떻게 아침 기념으로 한번 할까요?"

"너 어제까지 처녀 아니었냐? 왜 이렇게 밝혀?"

"에... 그 답변은..."

"300을 찍으라고? 어휴. 더러워서 빨리 찍어야지."

"후후후후~"

운현이 투덜거리자 아르토리우스는 생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창문을 통해 비춰지는 아침의 햇살에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속옷에 감싸진 그녀의 조각상같은 몸매가 빛을 발했다. 군살따위는 한점도 찾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미술품같은 몸매를 운현이 바라보자 아르토리우스는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어때요?"

"아름답긴 한데 하기는 싫어."

"치."

아르토리우스는 혀를 날름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긋한 걸음으로 화장대 앞에 선 그녀는 간단하게 머리를 묶은 후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에요. 보내드리긴 아쉽지만."

"모험가 길드로?"

"네. 지금의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거기니까요."

"그리고..."

"똑똑."

"들어와요."

문이 열리자 용병 두명은 아르토리우스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한 후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 용병 연맹 밖에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과 길드 간부 두명, 그리고 모험가들이 와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응전 태세를...?"

"뭘 어떻게 해요. 그냥 기다리라고 하세요. 운현씨를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지요. 아침 식사는 어떤게 좋으신가요?"

"됐어. 그냥 갈게."

"괜찮아요? 아침 대욕탕을 즐길 수도 있는데. 저는 물론이고 다른 고급 용병들도 함께 들어가는데."

"그건 땡기지만 말야."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아르토리우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영 아쉬운 지 아르토리우스는 입맛을 다셨다.

"뭐, 지금만 날이 아니니까요. 오늘은 보내드릴게요. 운현씨를 그들에게까지 안내해드려요."

"알겠습니다."

운현이 옷을 입고 나오자 용병들은 그를 데리고 용병 연맹의 정문까지 향했다. 정문에 도착하자 그는 긴장과 걱정으로 얼굴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상아, 제니스, 펠리시아,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을 볼 수 있었다.

"운현씨!!"

운현이 나온 것을 본 헤스티아는 후다닥 그에게 달려가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았다. 어디 크게 다친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울먹거리며 그의 품에 안겼다.

"다행이에요...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미안. 걱정 많이 했어?"

자신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그가 말하자 헤스티아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살며시 떨어지자 미야와 바제트 역시 그의 품에 안겼다. 그녀들을 달래 주는 운현을 뚱한 눈으로 바라보던 상아는 툭 내뱉듯 말했다.

"어제 좋았나보지? 얼굴이 훤하네?"

"좋기야 좋았지. 세상에 그렇게 많이 달려들 줄은 몰랐네."

"...여자들이?"

"응. 아. 오해하지 마라. 다난 교의 집행자들이 공격한 거니까 말야."

운현의 말에 상아는 뚱한 표정을 풀었다. 그녀는 곧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운현에게 다가온 후 물었다.

"별 일 없었어?"

"응. 어떻게든 막아냈어. 시청에도 다난교의 공격이 들어왔을 거라던데. 이야기는 들었어?"

"어. 그것 때문에 필레와 칼리아스가 시청으로 갔어. 여기 오고 싶다고 난리를 치는걸 막느라 혼났다고. 그러니까 나도 보듬아줘."

운현의 가슴을 톡 친 상아는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운현의 품에 안겼다. 그런 자신을 동료들이 빤히 바라보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상아를 꽉 끌어안았다.

"날 막아주느라 고생 많았다. 모험가 길드에는 별 일 없었지?"

"응. 이쪽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어. 보아하니 용병 연맹은 꽤나 피해를 입은 모양인데..."

여기저기 파괴되어 있는 용병 연맹의 내부를 보며 상아가 말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창 밖에서 봤을 때 정말 많은 이들이 용병 연맹을 공격했었다. 비록 기습이라고는 하지만 던전 도시를 지탱하는 네개의 축 중 하나이자 전쟁으로 단련된 용병 연맹을 이만큼이나 몰아부칠 수 있었다는 것에 운현은 다난교의 힘이 우습게 볼만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문제는 그 힘의 표적이 내가 되었다는 거지.'

다난교는 운현이 보유하고 있는 반쪽짜리 신성을 원했고 그 신성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은 어제 다난교의 집행자들이 자신에게 대놓고 칼을 들이댔던 것을 보면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마왕, 불의의 결정체, 절대악이라...'

어찌 되었든 죽어 줄 생각따위는 전혀 없었다. 운현은 입을 다문 채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의 동료들을 보며 말했다.

"당분간은 어디 가지 말고 레벨업만 쭉 해야겠다."

"응? 응. 도시가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던전이 안전하겠어."

시청과 용병 연맹을 습격할 정도의 힘을 가진 조직이 있다면 도시 내부보다는 던전이 더 안전하다 생각한 바제트는 운현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운현은 손가락을 튕기고 물었다.

"아. 그러고보니 레나 대사제의 일은 어떻게 됐어? 범인은 찾았어?"

"아니. 실종자들도 아직 수색중이야."

"혹시 카야 대사제는?"

"그 사람...? 그 사람도 실종되었다고 하네."

"이런... 성물을 구입해야 하는데."

언데드들을 잡아 레벨업을 하려면 카야에게서 성물을 구입해야 했다. 그녀가 없다면 성물을 누구에게 구매를 해야 하는 것인가. 운현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자 제니스는 쓰게 웃었다.

"던전 도시 내의 성당을 오랫동안 비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근처의 도시에서 임시로 대사제가 오기로 했어. 아마 사흘 후 부터는 예배와 성물의 구입이 가능할거야. 삼주 정도 지나면 파르티 교단의 본단에서도 조사원들이 파견되겠지."

"그렇군요."

레나의 죽음은 일반 대사제의 죽음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려 교황의 신탁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조사를 위해 본단에서는 힘을 쓸 터. 그들이 온다면 다난 교의 움직임도 조금은 억제되지 않을까 싶었던 운현은 곧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등신들한테 기대를 하느니 그냥 내가 빨리 레벨을 올리는게 낫겠군.'

어서 레벨 300이 되어 아르토리우스에게 모든 사정을 듣고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운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어서 돌아가자."

"음... 이 아니라. 어제 하던 얘기는 어떻게 하지?"

"필레는 언제 온다고 했어?"

"정오 안에 일을 처리하고 온다고 했으니까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일단 길드로 복귀한 후 기다렸다가 전부 이야기해줘."

길드로 돌아 온 운현은 필레가 오자 그녀와 상아, 그리고 동료들을 모아 놓고 차분히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정체, 힘, 그리고 지금 처한 상황까지. 레나의 신성 중 반을 자신이 가지고 있고 이번 사건이 자신을 노린 다난교의 의도적인 습격이었다는 것까지 모두 말해 준 후 운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네."

"으음... 레나 대사제님이랑..."

"어쩌다가 하게 된거야?"

"강간 당했다니까!"

필레가 떨떠름히 묻자 운현은 그녀에게 버럭 화를 냈다. 물론 좋기는 좋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할 줄 알았으면 필사적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그의 말에 필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진짜 조심하는게 좋겠어."

"맞아요. 누가 다난 교도인지도 모르는데..."

"던전에서도 주의해야겠네. 다난 교도라면 몬스터들을 끌어모아 붙이려고도 할테니까 말야."

"음. 그러게."

"목걸이 잘 가지고 다녀.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부르고. 알았지?"

"어... 응. 야. 근데 저번에는 늦게 왔잖아. 그건 왜 그런거야?"

마인을 상대할 때 상아를 몇번이나 불렀지만 그녀가 오지 못했던 것을 떠올린 운현이 묻자 상아 역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특별한 마력 방해 때문인지 몇번이나 이동을 하려고 했는데 안되더라고."

"그럼 이것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의 말에 상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지고는 있어. 어쨌든 그게 있으면 위치는 파악할 수 있으니까 뛰어서라도 갈 수 있고 정 안되면 근처에 있는 다른 길드원을 보낼 수도 있지. 그리고 마력 방해가 그렇게 길게 들어오지 않으니까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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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aticism

"그럼 우리는 바로 던전으로 들어갈게."

"응.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구조 요청을 날려. 그리고 이거."

운현이 던전으로 향한다는 말에 상아는 그에게 스크롤 뭉치를 넘겼다. 현자가 만든 스크롤들을 잔뜩 받은 그는 상아를 향해 빙긋 웃었고 상아는 얼굴을 붉힌 후 그의 가슴을 톡 쳤다.

"말했지. 나에게 있어서 이제 너 이상으로 중요한 건 없다고."

"그래. 고마워. 잘 쓸게."

"응. 범위 방어막 스크롤도 있으니까 위기시에는 찢고 바로 구조 요청을 해. 1계층의 신전과 2계층의 신전, 3계층의 신전에 길드원들과 간부들이 있으니까 곧장 갈 수 있을거야. 부담갖지 말라고. 그리고 날 부르는 것도 잊지 말고."

상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헤스티아와 미야, 바제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상아 길드장님은 강하니까 저렇게 말할 수 있네요."

"조금 부럽네. 운현이 위험한 상황에 쳐해져도 우리는..."

"어떻게든 운현을 지키려고 해보겠지만 그래도..."

상아나 필레와 다르게 약한 헤스티아와 미야, 바제트는 자신들이 운현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들의 행동에 상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내가 함께 레벨업을 해줄 수는 없잖아. 개인적으로 코어를 모아 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운현이 제대로 레벨업을 하려면 너희와 함께 다니는게 제일 효율적이라고. 난 오히려 너희가 부럽다고. 늘 운현과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말야."

"그럼 갈까?"

1계층의 신전까지는 같이 가야 하는 필레는 배웅을 하는 상아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운현 일행과 함께 던전으로 이동했다. 1계층의 던전을 돌아 신전에 도착하자 그녀는 신전에서 대기하고 있는 길드원들과 교대를 하고 운현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난 1계층의 신전에서 대기하고 있을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았어."

"무리도 하지 말고."

"걱정 마."

"넌 왜 이렇게 매번 물가에 내 놓은 애 같을까..."

"그러게 말야. 하하하..."

쓴웃음을 짓는 운현을 못말리겠다는 듯 바라보던 필레는 그의 동료들이 먼저 마법문을 지나가자 그들을 따라가려는 운현의 손을 잡았다.

"왜?"

"가기 전에..."

빙긋 웃은 필레는 그를 끌어당긴 후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필레가 운현을 끌어안고 키스를 하는 모습에 길드원들은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부르고 놀렸지만 그녀는 그것에도 멈추지 않았다. 조금은 긴 키스가 끝나고 필레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운현과 시선을 맞췄다.

"무사히 다녀오라는 인사."

"이런 인사라면 매번 받고 싶은데."

"하하핫! 그럼 몸 조심해! 키스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으니까 말야!"

"근데 친구라더니 이제 좀 대담하게 나온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운현이 말하자 필레는 한쪽 눈을 깜빡이고 혀를 날름거렸다.

"응. 이제부터는 나도 직진이야. 네가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는 것은 나를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거잖아? 그럼 그 마음을 가질때까지 일직선으로 달려야지. 나는 다른 여자들처럼 심계를 쓸수도 없고 애교를 피우는 것도 힘들어. 그냥 우직하게 너를 향해 달려갈 뿐이야."

"허이구. 그래."

필레의 당당한 말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그녀의 입술에 키스해주었다. 그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필레는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당당한거 좋지. 그럼 다음에 보자."

실실 웃으며 그가 마법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필레는 아직까지 감촉이 남아 있는 입술을 매만지며 베시시 웃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원들의 박수와 휘파람 소리가 신전에 가득 울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아. 필레가 배웅해 준다고 해서."

"헤에..."

"좋았어? 어휴~ 입술에 루즈 자국 좀 보소."

운현의 입술을 보며 바제트는 피식 웃었다. 그가 자신들과 오지 않고 조금 늦은 것에 이유는 대충 눈치채고 있었던 그녀는 손수건을 들어 그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뭐, 내 남자가 이렇게 인기 만점이라는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속이 편하지는 않네."

"으음. 그건 나도 동감."

"후후후... 그래요. 운현씨. 앞으로는 조심해달라구요~"

장난스럽게 그녀들이 말하자 운현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일부다처제가 정립된 세상이다보니 큰 질투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들을 가볍게 안아 준 운현은 현재의 레벨을 확인했다.

"내 레벨이 좀 많이 올랐어. 용병 연맹에서 다난 교도들이랑 싸우면서 레벨업을 했거든. 나 지금 160이야. 잘만 하면 이번 던전행으로 200 까지 노려볼 수도 있겠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람 죽였어. 엄한 사람 죽인 건 아니고 날 죽이려는 다난 교도들이었지."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무덤덤히 말했다. 그의 말에 헤스티아와 미야, 바제트는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람 죽이는 것만으로도 레벨이 오르나?"

"전쟁터에 나갔던 부족의 언니들 말로는 오르긴 오른다고 하더라고."

"사람을 죽이면 꽤 고통스러울텐데... 괜찮나요?"

마법학교의 선생들 중에도 전쟁을 경험한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사람을 향해 마법을 쐈다는 것에 처음에는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었다. 그것 때문에 몇년 동안 마법을 쓸 수 없었다는 선생을 보았던 헤스티아가 걱정스레 묻자 운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단검을 잡았다.

"그렇다고 죽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생각보다 괴롭지는 않네. 아니 오히려 좀 무덤덤하다."

현자의 시간이 비활성화되고 꽤나 죄책감에 괴로워 할 줄 알았는데 아르토리우스의 품에서 일어났을 때 그저 개운하기만 할 뿐 그런 죄책감따위는 없었다. 함정으로 죽이는 것보다 더욱 잔인하게 죽였는데도 말이다.

'이게 각오를 다진다는 건가?'

"후후후. 운현씨는 강하신 분이네요."

"뭐 이정도 가지고. 그럼 슬슬 가볼까?"

"네!"

축복받은 메이스와 성유 함정, 그리고 전투를 하면 할 수록 레벨이 높아지는 덕분에 언데드들과 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구울이 낀 언데드들을 잡는 것도 여유가 있었던 운현 일행은 하루를 모두 소비하고 나서야 야영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얼마나 올랐어? 난 8."

"저흰 12요."

"으음... 전투 경험치는 모두 나눠갖는 모양이군."

중간중간에 흥분도를 가라앉히느라 일행 모두와 한 덕분에 능력치 하락 없이 싸울 수 있었다. 남자가 낀 파티가 이래서 유리한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운현은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던전 안인데도 하늘이 있단 말이지... 진짜 신기하네."

"던전에 대한 연구는 마법학교에서도 진행되고 있어요. 현재의 마법으로는 구현할 수 없을 고차원의 마법이라고 하네요."

"헤에... 얼마나?"

"어. 그게요..."

운현의 질문에 헤스티아는 당황하며 머뭇거리다가 부끄러운 듯 헤죽 웃었다.

"에헤헤~ 전 아직 거기까진... 마법학교의 고등부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 그리고 위원님들이 해석을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해요. 2계층 부터의 신전에 있는 마법문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마법 문자가 있는데요. 그것을 해석하면 어느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

"어? 진짜?"

"네."

운현은 이세계에 오며 배우지 않은 글자와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까먹고 있었던 운현은 손가락을 튕긴 후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나 이런 능력이 있어."

"또 무슨 능력? 양파야? 까도 까도 계속 나오게."

바제트가 질린 얼굴로 말하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도 잊고 있던 능력이다보니 헤스티아의 말에 겨우 떠오른 것이었다.

"나 배우지 않은 문자를 읽을 수 있어."

"그건 또 무슨 능력이야?"

"묘족의 언어, 그리고 이곳의 공용어. 그리고 내가 살던 곳의 다른 언어까지 다 읽을 수 있는 것 같아."

운현의 말에 바제트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종이를 꺼내어 무언가를 빠르게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종이를 내밀자 운현은 종이에 적혀 있는 글씨를 차분히 읽었다.

"운현은 바보, 변태... 죽을래?"

"진짜 읽네!?"

"이건 엘프어네요? 저도 알아요."

공용어와 비슷하지만 다른 생김새의 글씨다. 그것에 운현을 놀리는 글을 쓴 바제트는 그가 진짜로 읽자 떨떠름한 얼굴로 다시 글을 써서 보여주었다.

"그럼 이건?"

이상한 상형문자다. 곰과 토끼, 사슴과 나무 그 외에 몇가지 그림이 그려진 것을 적어 내민 바제트가 침을 꼴깍 삼키자 운현은 그것을 보며 무덤덤히 말했다.

"늙은 나무의 밑에서 편안히 잠을 자리라."

"...너 뭐야."

"이게 무슨 글잔데? 아니 글자긴 해? 읽혀지는 걸 보니 글자이긴 한 것 같은데..."

"이건 고대 드루이드들의 언어라고! 나도 아직 다 배우지 못한 언어인데..."

바제트가 경악한 얼굴로 바라보자 미야는 운현의 옆으로 다가온 후 그에게 차를 건네며 말했다.

"이야~ 좋겠다. 공부 안해도 돼서"

"응. 이세계에 오면서 이런 능력이 생기다니. 정말 개꿀이구만."

"운현씨! 마법 학교에 가요!"

"엥? 왜?"

헤스티아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운현씨가 그 마법 문자들을 읽을 수 있다면 이 던전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큰 도움이 될거에요!"

"흐음... 그것도 좋지만 지금은 다난 교의 습격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운현씨가 마법학교에 가면, 그리고 운현씨가 마법 문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마법 학교에서도 운현씨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거에요. 지금까지 마법학교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마법 학교가 운현씨의 힘이 된다면 다난교라고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거라구요!"

헤스티아가 환한 얼굴로 말하자 미야와 바제트는 손가락을 튕기며 감탄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 그럼 마법학교에 연락하는게 어때? 나는 어서 레벨 300이 되고 싶다고."

"아르토리우스씨의 말때문에요?"

"응. 내가 300이 되야 그녀에게서 뭔가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녀가 숨기고 있는 것이 뭔지 궁금하거든. 나도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 그녀가 더 잘아는게 이상하잖아?"

"그렇긴 하죠."

"그러니까 이번 던전행이 끝나면 헤스티아는 마법학교에 연락을 해서 내가 고대 언어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주... 아니 잠깐만."

운현은 피식 웃었다.

"조금만 더 레벨업하면 우리 레벨 200인데 2계층의 신전에 도전할 수 있잖아. 도전해서 그 마법 문자를 읽을 수 있다는게 확실해지면 그때 얘기하는게 낫지 않을까?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모든 것에 대해서 일단 준비는 해두자고. 그리고 날 생각해줘서 고마워."

헤스티아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말해 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괜한 기대감을 품을 필요는 없었기에 운현은 확실해지면 하자고 말했고 그의 말에 헤스티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70====================

fanaticism

"이제 전투 자체는 문제가 안되는구만."

운현은 마지막 구울의 머리를 메이스로 부순 후 말했다. 그의 말에 미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자의 팔찌로 데미지가 반감된다고는 하지만 팔찌를 착용하고 있는 동안에는 힐을 못받으니 체력관리를 해야 했다. 그것을 계산하며 싸우느라 피곤했던 미야가 털썩 주저앉자 사체들을 마석에 담던 바제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근처의 언데드는 거의 다 잡은 것 같은데?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아. 어디로 가는게 좋을까?"

지도를 펼친 바제트는 헤스티아와 운현, 미야를 불러 위치를 짚어 보았다. 조금 더 강한 언데드들이 있는 지역, 그리고 언데드들이 아닌 다른 종류의 몬스터가 있는 지역, 서로 반대편이라서 방향을 정해야 했다.

"좀 더 깊숙히 들어가는게 좋지 않을까요? 언데드들을 상대하는게 더 빠르잖아요. 운현씨 함정도 그렇고."

"그렇긴 한데 말이지... 운현. 넌 어떻게 생각해?"

바제트의 질문에 운현은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차분히 말했다.

"으음... 내 생각엔 아직은 언데드들을 상대하는게 나을 것 같은데. 어차피 성물을 구하지 못하는 이상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남은 성유 함정 카드와 성지 카드를 다 쓰고 차라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게 나을 것 같아."

"으음... 이곳의 전투 적정 레벨은 170정돈데... 운현. 넌 괜찮겠지만 우리는."

운현의 레벨은 171, 나머지 동료들은 160대에 불과했다. 적정 레벨보다 훨씬 높은 전투지라 바제트는 내키지 않은 듯 보였다.

"힐링으로 커버하기 힘들지도 몰라. 내 마력도 한계가 있다고."

마법학교에서 치마를 구입하여 마력 회복 속도가 늘어났고, 미야에게 힐을 주지 않아 마력에 여유가 있다고 치더라도 좀 더 강한 언데드들과 상대한다면 그 데미지가 어떻게 들어갈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흐음... 어떻게 할까?"

운현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게 맞다고 생각되었지만 동료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질문에 미야는 곰곰히 생각한 후 의견을 제시했다.

"조심해서 전투를 하면 되지 않을까? 난 운현의 의견에 찬성."

"저는 반대에요. 리스크를 굳이 감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바제트는 반대지?"

"응."

"2:2라... 그럼 어쩔 수 없나."

운현은 동전을 꺼내었다. 일행이 홀수라면 어떻게든 의견이 갈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의견이 나뉘어진다면 이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동전의 신님께 맡겨야지."

"고작 동전 튕기기로 무슨... 난 앞. 헤스티아. 동의하지?"

"네."

"그럼 우린 뒤군."

"팅!"

운현이 동전을 튕기고 잡아챈 후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 위에 놓여진 동전은 뒷면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에 바제트와 헤스티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험할지도 몰라."

"조심하면서 다니자고. 그리고 헤스티아."

"네?"

"이거 가지고 있어. 후방에서 위험하다 싶으면 이걸 찢어. 상아에게 받은 전체 방어막 스크롤이니까 이걸로 위기상황을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을거야."

"네!"

자신의 손에 파티가 위기에서 한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는지 헤스티아는 굳은 얼굴로 외쳤다. 그녀에게 스크롤을 쥐어 준 운현은 길잡이를 자처하는 바제트에게 물었다.

"여기 길은 알겠어?"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뭐. 지형은 저기 같네. 가자."

자신이 반대한 의견이었지만 이미 결정된 이상 그것에 대해 트집을 잡을 생각은 없었던 바제트는 지도를 보며 지형을 살핀 후 길을 제시했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주의를 살피며 걸어간 운현일행은 아까의 언데드들과 다르게 좀 더 강력해보이는 언데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와우."

스켈레톤이나 좀비가 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들의 장비가 달랐다. 좀비의 경우 천 옷만 입고 있었지만 이곳의 좀비들은 가죽 갑옷과 낡은 단검을 착용하고 있었고 스켈레톤은 갑옷을 입고 창이나 방패, 검을 쥐거나 몇몇 개체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저게 마법을 쓰는 언데드인가보군."

카야가 준 퀘스트에 마법을 쓰는 언데드의 코어를 가져다주면 은화살을 주겠다고 했던 것을 떠올린 운현은 아쉬움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좀 더 빨리 발견했다면, 그리고 카야가 실종되지만 않았어도 은화살을 날로 먹을 수 있었을텐데. 그가 아쉬워하자 바제트는 피식 웃었다.

"은화살때문에 그래?"

"응."

"하하하하... 어쩔 수 없지. 우리 레벨 조금만 더 올리면 코어를 경험치로 바꿔서 200레벨이 되잖아. 이제 3계층에 진입하면 다른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고. 거기에 언데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은화살에 집착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말야. 자. 그럼 어떻게 할까? 시작은 너?"

"늘 하던대로 해야지. 아니면 운현. 네가 먼저 갔다올래?"

운현이 하이딩을 써서 함정을 걸어보고, 그 함정의 데미지와 효과를 통해 전투법을 결정하는 것이 이 파티의 방식이었다.

"비록 종은 같아도 장비나 덩치를 보면 함부로 접근하긴 힘들겠군. 그게 낫겠다."

바제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운현은 이제는 대놓고 하이딩을 걸었다. 이미 한번 보기는 했지만 진짜로 갑자기 사라지는 것에 놀란 바제트는 운현이 있던 자리를 향해 손을 휙휙 휘저어보았다.

"간거야?"

"아니."

"꺄악!?"

하이딩을 건 상태로 운현이 자기를 끌어앉자 바제트는 깜짝 놀랐다. 그의 손이 자신의 치마 속으로 들어간 것에 부르르 몸을 떤 그녀는 팔꿈치로 운현이 있을 법한 곳을 푹 찔렀다.

"이, 이상한 짓 할거면 돌아가서 침대에서 해!"

"하하하! 알았어. 그럼 갔다올게."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만진다는 것이 이렇게 놀랍고 두려울 줄이야. 바제트는 쿵쾅거리는 심장에 혀를 낮게 찬 후 버럭 소리 질렀다.

"어디 다치고 오기만 해봐!!"

'일단은 성지군.'

사체값을 벌지는 못하지만 위기시, 그리고 강력한 언데드를 한방에 보낼 수 있는 성지가 이들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운현은 한무리의 언데드들의 근처로 이동한 후 곧장 성지를 발동시켰다.

"우우우웅!"

"카아아아악!"

"달각! 달각!"

좀비와 스켈레톤이 성지에 걸려 괴로워하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자 운현은 차분히 그들이 소멸되기를 기다렸다. 확실히 전보다 강한 탓인지 곧장 소멸되던 전보다 꽤 오래 버텼다.

'그래도 얼마 못가는군.'

성지의 효과가 끝나기 직전까지 버티던 스켈레톤과 좀비가 재가 되어 사라지자 운현은 바닥에 있는 코어를 주워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좀 더 강한 언데드면 성지로 데미지만 줄 수도 있겠는데.'

모든 언데드들을 한방에 보내는 것이 아닌, 강력한 정화력이라 빠르게 그들을 소멸시켰던 것이라면 좀 더 강한 언데드들을 상대로 성지를 쓴다면 소멸되기 아슬아슬할 때가지 체력을 깍을 수 있지 않을까?

운현은 씨익 웃으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이거 실험의 가치가 있군.'

"젠장."

결국 근처에 있는 언데드들 네 무리를 성지를 통해 잡아버린 운현은 안타까움에 욕설을 내뱉었다. 좀 강해보이는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성지를 버티는 언데드는 없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면 모를까 지금 이곳에서는 더 실험을 하기 힘들었다.

"그럼 성유 함정을 실험해봐야겠네."

근처에 있는 마지막 언데드 무리를 향해 다가간 운현은 마법사 스켈레톤이 지휘하고 있는 스켈레톤 다섯마리를 발견하고 그들의 진행 방향에 성유 함정을 설치했다. 함정이 설치된 줄도 모르고 걷던 스켈레톤들이 범위 안에 모두 들어오자 운현은 곧장 함정을 발동시켰다.

"달각! 달각!"

"치이이이익!!"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아랫턱만 달각거리며 스켈레톤들이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확실히 입고 있는 장비 때문인지 스켈레톤들은 전의 스켈레톤들보다 꽤 잘 버텼다. 쓰러져 움직이지도 못하던 때와 다르게 그들은 선 채로 고통스러워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힐을 못받는 상황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운현은 잠시 생각을 한 후 동료들에게 복귀했다. 그가 돌아와 자신이 본 것을 말해주자 미야는 잠시 생각하다가 차분히 말했다.

"잡자."

"괜찮겠어?"

"응. 애초에 운현의 함정으로 지금까지 쉽게 싸워왔던 것이 이상한거지. 매번 쉽게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계속 뒤로 물러날거야?"

미야는 담담히, 그리고 자신감을 다지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였지만 바제트는 걱정스러울 뿐 이었다.

"하지만... 바제트. 사자의 팔찌를 착용한 상태에서는 힐링을 받을 수 없어. 혼자서 체력을 아끼며 싸워야 하는데 괜찮아?"

"응. 힐링포션을 먹으면서 어떻게든 버텨봐야지. 그러니까 뒤에서 공격이나 잘 해줘."

"자신 있지?"

"물론."

"그럼 간다. 일단 적게 몰아와보자. 바제트, 셋이나 넷 정도의 무리를 몰아와줘. 보니까 그런 무리가 대부분이던데."

"알았어."

바제트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떠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바제트는 빠르게 뛰어 일행에게 돌아왔다.

"좀비 둘에 스켈레톤 둘!"

"좋아! 준비 됐지!? 간다!"

운현의 외침에 맞추어 미야가 튀어나갔다. 그녀와 자신들의 사이에 함정을 설치한 운현은 미야가 지뢰진으로 적들의 움직임을 멈추자 헤스티아에게 외쳤다.

"헤스티아! 함정에 걸리면 함정이 풀리는 시간에 맞춰서 파이어 볼 날려!"

"알겠어요!"

"바제트! 준비!"

운현은 메이스를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지뢰진과 도발로 어그로를 제대로 끈 그녀는 좀비의 펀치를 막아낸 후 뒤로 물러났다.

"후우!? 아픈데!"

"괜찮아!?"

"응! 이정도는 버틸만 해!"

전의 좀비보다 묵직한 주먹이긴 했지만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언데드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고 얼추 범위 안에 왔다가 생각되자 뒤로 훌쩍 뛰었다.

"캬아아아!"

"달각! 달각!"

어그로를 한참 끌던 미야가 빠지자 그녀를 쫓아 언데드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해 싸늘히 웃은 운현은 그들이 범위 안에 들어오자 성유 함정을 발동시켰고 달려오던 그들은 곧 바닥에서 터져오른 성스러운 기름에 몸이 적셔졌다.

"캬아! 캬아아아악!!"

"달각!!"

아까 봤던 것처럼 성유 함정에 언데드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전의를 잃지 않았다. 미끄러운 성유 함정에 의해 이동속도가 확 줄어들었지만 그들은 꼿꼿히 선 채 운현 일행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하하! 간다!"

미야와 운현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한 미야와 운현의 뒤로 바제트의 은화살이 날아들었고 그 공격에 언데드들은 성유 함정으로 인한 피해와 함께 추가적인 피해를 계속적으로 입었다.

"캬아!!"

성유 함정의 효과가 끝날때 쯤 되자 좀비는 바닥을 제대로 밟고 주먹을 내질렀다. 그것을 메이스로 막아낸 운현은 뒤를 보며 외쳤다.

"헤스티아!"

그의 신호와 함께 미야와 운현이 언데드들의 무리에서 멀어졌다. 언데드들은 운현과 미야 둘 중 누구를 쫓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멀리서 날아오는 불의 공에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콰아아아앙!!"

파이어 볼이 작렬하고 강력한 화염의 기운을 내뿜자 운현은 메이스를 든 채 그들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평소보다 더 때리긴 했는데 과연 이것으로 잡을 수 있을까? 사그라드는 불길 사이로 서서히 허물어지는 스켈레톤을 본 운현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정도라면 할만하겠군.'

171====================

fanaticism

"미야. 괜찮아?"

혼자서 꽤 공격을 막아낸 미야에게 다가간 운현이 걱정스레 묻자 그녀는 자신의 암가드를 보고 피식 웃었다.

"조금 아픈데? 그래도 못 버틸 정도는 아냐."

"미야. 팔찌 풀어봐. 힐해줄게."

미야의 팔목에 걸려 있는 사자의 팔찌를 가리키며 바제트가 말하자 미야는 팔찌를 풀었다. 그녀가 팔찌를 푼 것을 확인한 바제트는 그녀에게 힐링을 걸어주었고 곧 상처들이 치유되자 미야는 기분 좋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흐으응~! 이런 식으로 전투하면 괜찮을 것 같아."

"정 뭐하면 방패라도 빌려줄까?"

"난 방패 잘 못쓰니까 네가 갖고 있어."

운현은 자신의 팔에 걸려 있는 방패를 내밀었지만 미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에 고개를 끄덕인 운현은 헤스티아를 보며 말했다.

"헤스티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알았어요. 집중하고 있다구요~"

헤스티아는 위기시에 언제라도 스크롤을 찢을 수 있도록 허리띠에 있는 고리에 스크롤을 걸어 놓은 상태였다. 그녀가 자신의 허리를 톡톡 치며 방긋 웃자 운현은 안심을 한 후 말했다.

"그럼... 일단 미야가 익숙해졌다 싶을 때까지면 3, 4마리 무리를 몰아야겠다. 바제트. 그런 무리는 꽤 있었지?"

"응. 그렇긴 한데 마법사로 보이는 스켈레톤은 어떻게 하지? 코볼트 마법사 같은 경우라면... 혹시 그게 뭘 하는지 봤어?"

"아니. 못봤는데. 뭐 비슷하지 않을까?"

운현의 말에 바제트는 입을 다물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몰아올게. 일단 마법사가 없는 무리로만 몰아오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좋겠다."

리스크는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좋다.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제트는 다시 몬스터를 몰기 위해 움직였다.

몇차례 몬스터들을 몰아 성공적으로 전투를 마치고 미야는 레벨이 오르자 운현에게 다가가 밝게 웃었다.

"이제 괜찮을 것 같아?"

"뭐가?"

"더 몰아도 돼. 새로운 스킬 익혔거든."

"뭔데?"

"흑암권. 몸을 돌처럼 단단히 하는 기술이야. 봐봐. 하압!"

미야가 기합을 넣으며 스킬을 발동시키자 그녀의 몸 주변에 은은한 검은색 빛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에 운현은 감탄하며 그녀의 피부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았다.

"완전 단단한데?"

"공격해봐도 괜찮아. 고향의 언니들이 쓰던 기술인데 몽둥이에 맞아도 아프지 않다고 하더라고."

"오오... 진짜!? 그거 굉장한데!?"

그녀의 말에 감탄하며 운현은 주먹을 쥐고 그녀의 매끈한 복부를 몇번 쳐 보았다. 그것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미야가 씩 웃자 운현은 메이스를 들었다.

"어디 이것도 막나 보자."

"응. 그 대신 복부는 좀 그렇고 여기 때려 여기."

운현이 메이스를 들자 미야는 쓰게 웃으며 사자의 팔찌를 풀고 자신의 팔을 가리켰다. 그녀가 방어자세를 취하자 그는 메이스를 휘둘렀고 미야는 그의 공격을 간단히 막았다.

"어때?"

"와... 근데 이거 기력이 소모되는 기술아냐?"

"응.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많이 소모되는 것도 아니라서 괜찮아. 이정도면 혼자서도 꽤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그럼 좀 더 몰아와도 된다는 거지? 바제트. 괜찮겠어?"

"어... 응. 아까 보니까 다섯에서 일곱마리 정도 있는 무리들이 꽤 있더라고. 걔들을 끌어올 수 있을거야."

"그럼 다섯마리 있는 무리로 부탁해."

"알았어."

탱커인 미야의 방어력이 상당히 올랐다면 더 많은 수의 몬스터를 몰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제트가 언데드들을 몰아오자 미야는 앞으로 뛰어나갔고 그녀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던 운현은 그녀가 생각보다 잘 막아내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정말 이대로라면 금방 레벨업을 할 수 있겠는데?"

"이제는 스켈레톤 마법사를 불러도 괜찮겠다."

"그럴까?"

일곱마리의 언데드 무리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운현은 무덤덤히 말했다. 스켈레톤 마법사가 어떤 마법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코볼트 마법사와 비슷한 시간제 범위 마법이라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전투를 끝낼 수 있을 정도로 레벨을 올린 것이다.

"그럼 스켈레톤 마법사가 있는 무리를 데리고 와? 안그래도 이제 근처에 그런 무리 밖에 없어서 언데드 찾기 힘들었는데 잘됐네."

마법사가 없는 무리들만을 골라서 끌고 오느라 이제는 언데드 무리를 찾는데 더 시간이 걸렸던 바제트는 방긋 웃었다.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 운현은 메이스를 잡았다.

'마법사가 어떤 마법을 쓰는게 관건이겠군.'

"온다."

스켈레톤 창을 든 스켈레톤 셋과 지팡이를 든 스켈레톤이 달려오는 것을 본 미야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가 앞으로 달려나가자 운현은 그녀와 달리 일행 쪽으로 달려오는 바제트에게 말했다.

"바제트! 빠져!"

"응!"

"하아아압! 지뢰진!"

바제트가 무사히 뒤로 빠질 수 있도록 스켈레톤들 앞에서 지뢰진을 써서 그들을 쓰러트린 미야는 바제트가 여유있게 웃으며 자신을 지나치며 손을 내밀자 그녀와 손을 마주쳤다.

"짝!"

"터치!"

"맡겨두라고! 너희들의 적은 나다! 와라아앗!!"

쓰러져 있는 스켈레톤들이 아랫턱을 움직이며 일어나자 미야는 도발을 쓴 후 곧장 흑암권을 사용했다. 기합성과 함께 몸에서 피어오른 검은 기운은 미야의 몸을 빠르게 감쌌고 그 기운을 향해 창을 든 스켈레톤들은 자신들의 창을 찔러 넣었다.

"챙!"

검은 기운에 부딪힌 창이 튕겨 나갔다. 그 순간 스켈레톤 마법사는 지팡이를 들었고 운현은 메이스를 들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벌써 마법을 쓰면 쓰나!"

스켈레톤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붉은색 기운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미야가 스켈레톤 창병들을 잡고 있는 사이 운현은 마법사의 머리를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퍼걱!"

메이스에 맞은 스켈레톤 마법사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것을 본 바제트는 씨익 웃으며 외쳤다.

"역시 최고라니까!"

"피잉! 피잉!"

두발의 화살이 미야를 공격하는 스켈레톤 창병을 공격했다. 스켈레톤 마법사를 두드려 패던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빛이 사라지자 뒤로 물러난 후 미야의 뒤에 성유 함정을 설치했다.

"미야! 함정 준비 됐어!"

"알았어!"

흑암권을 사용해서 스켈레톤 창병들의 공격을 막아내던 그녀는 운현의 외침을 듣자마자 뒤로 빠졌다. 그녀를 잡기 위해 쫓아오던 스켈레톤 창병들이 성유 함정에 걸리자 운현과 미야, 바제트는 스켈레톤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여유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스켈레톤 마법사를 힐끔 보며 스켈레톤 창병들을 공격해나가던 운현은 마법사가 슬금슬금 일어나기 시작하자 스켈레톤 창병을 공격하던 자리에서 물러났다.

"10초 후에 성유함정 끝나! 헤스티아! 파이어 볼 준비해!"

"알았어요!"

운현이 함정의 남은 시간을 외치자 헤스티아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본 스켈레톤 마법사 역시 지팡이를 들었고 운현은 스켈레톤 마법사를 향해 달려갔다.

"어딜!"

"퉁!"

"어라!?"

운현의 공격이 투명한 벽에 막혔다. 스켈레톤 마법사의 눈에서 붉은 빛이 터져나오자 운현은 이를 악물었다.

"조심해!"

"파이어 볼!"

"딸깍! 딸깍!"

운현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헤스티아의 파이어 볼이 성유함정에서 풀려난 스켈레톤들에게 날아갔다. 그 타이밍에 맞추어 스켈레톤 마법사는 지팡이를 뻗었고 그제서야 배리어가 박살난 운현은 스켈레톤 마법사의 머리를 있는 힘껏 때렸다.

"콰직!"

"퉁!"

그의 메이스가 스켈레톤 마법사의 해골을 박살낸 순간 스켈레톤 창병들의 몸 주변에 은색 반투명한 벽이 생성되었다. 그것을 본 미야와 바제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반사마법이다!"

"피해!"

스켈레톤들에게 날아가던 파이어볼이 반투명한 벽에 맞아 다시 되돌아왔다. 자신이 쏜 파이어 볼이 자신에게 되돌아오자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헤스티아는 이를 악물었다.

"안돼!"

"콰아아아앙!!"

"헤스티아아아아!!!"

폭음과 함께 헤스티아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화염이 터졌다. 그것을 본 운현은 기겁하며 비명을 내지르고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너희들 상대할 때가 아니라고!!"

스켈레톤 마법사가 만들어낸 방어 마법에 의해 파이어 볼의 피해를 입지 않은 스켈레톤 창병들은 당황하는 미야를 향해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그것에 미야는 이를 갈며 지뢰진을 펼쳤고 바제트는 그들에게 인탱글을 쓴 후 화염으로 가득 차 있는 자리로 뛰어갔다.

"맙소사..."

"어째서 이런 일이..."

"헤, 헤스... 헤스티아!!"

"운현! 아직 마법의 영향이...!"

"헤스티아! 헤스티아!"

파이어 볼로 인해 피어난 화염 속으로 운현이 달려들려 하자 바제트는 자신의 손을 바라 본 후 피식 웃었다.

"헤스티아는 무사해."

"뭐?"

"미야. 저 녀석들부터 잡자."

"그게 무슨 소리야!?"

바제트가 냉정히 말하자 미야는 그녀를 향해 화를 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빙긋 웃은 바제트는 달려오는 스켈레톤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내었다.

"챙!"

날카로운 창날이 바제트의 몸에 맞고 그대로 튕겨나갔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운현의 얼굴에서 당혹감과 절망감이 사라지고 웃음이 피어올랐다.

"타이밍 좋네!!"

"무, 무슨 일이야!? 이게!?"

"어휴! 깜짝이야! 다들 괜찮아요?"

파이어볼의 폭염이 사그라들며 불길 속에서 헤스티아가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미야를 향해 베시시 웃었다.

"너. 너..."

"아. 그... 운현씨가 준 스크롤을 썼어요. 방법은 그것밖에 없겠더라구요..."

헤스티아는 볼을 긁적거린 후 운현을 향해 미안하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운현은 피식 웃어 준 후 말했다.

"아니! 이럴때 쓰라고 준거니까 잘했어! 타이밍 잘 잡았는데!?"

"헤헤헤~"

"뭐야아아... 진짜 걱정했다고!"

"걱정한 건 미야만이 아니지. 안그래? 운현?"

바제트의 말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헤스티아가 있던 자리에 폭염이 피어올랐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아니거든? 내가 뭘 걱정했다고.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쟤들이나 마무리 짓자고."

"부끄러워하는거야? 아하하하~!!"

운현이 휙 고개를 돌리고 스켈레톤들에게 달려가자 바제트는 그를 향해 꺄르륵 웃었다. 운현이 자신을 걱정했다는 말에 헤스티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운현씨! 정말이에요!?"

"쓸데없는 소리들은 나중에 하라고!"

헤스티아의 말에 소리치며 운현은 애꿎은 스켈레톤만 부숴나갔다. 미야와 헤스티아, 바제트가 가세하자 성유 함정에 큰 타격을 입었던 스켈레톤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씩 쓰러져나갔다.

"후우... 스켈레톤 마법사가 반사 마법을 쓸 수 있었을 줄이야."

"주의해야겠네요."

"거기에 방어막까지 쓰는 것 같던데?"

운현은 자신의 공격이 투명한 벽에 막힌 것을 떠올렸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을 생각한 그가 중얼거리자 바제트는 귀엽다는 듯 운현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에이~ 그래도 운현의 좋은 표정 봤네. 그 세상 다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은..."

"아아아아아아! 그게 무슨 소린데?"

"부끄부끄하기는. 귀엽게시리."

"헛소리는 작작하시지?"

"그나저나 파티의 리더면 좀 더 냉정해지라고. 파티가 위기에 처하면 네가 가장 빨리 정신을 차려서 모두를 케어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당황하면 어떡해? 역시 넌 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날 누나라고 부르렴. 누나가 많은 걸 가르쳐 줄테니까."

"까분다. 자꾸. 너 그러다가 침대에서 어쩔려고 그러냐? 한번 죽도록 앵앵거려볼래?"

운현과 바제트가 투닥거리는 것을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던 헤스티아는 찢어진 스크롤을 주머니에 넣고 운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혹시 모르니까 한장 더 주시겠어요? 이런 일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음? 응. 그게 낫겠지?"

만약 이 스크롤을 헤스티아에게 맡기지 않았더라면 헤스티아가 죽거나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다. 운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 스크롤을 넘겼다. 그것을 아까처럼 허리의 고리에 건 그녀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다.

"자! 그럼 힘내서 어서 사냥하자구요!"

"그래. 놀면 뭐하냐. 바짝 달려야지."

헤스티아를 향해 빙긋 웃은 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운현을 마주보던 미야는 벌떡 일어나 운현을 당겼다.

"위험해!"

"우웅!"

수풀 속에서 붉은색 빛이 터져나왔다. 방금 전 운현이 서 있던 자리를 빛이 지나갔을 때 그를 당기느라 그 자리로 이동하게 된 미야는 천천히 자신의 복부를 보았다.

"큭...!"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복부에 지금까지 없던 주먹만한 구멍이 뚫리고 그곳에서 울컥울컥 피가 터져나오고 있다. 미야의 작은 입에서 주륵 피가 흘러나온 순간 운현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외쳤다.

"미야!!"

"기습이다!!"

수풀에서 나온 스켈레톤 둘과 스켈레톤 마법사를 보며 바제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172====================

fanaticism

"짜악!"

"젠장!"

미야의 복부에 뚫려 있는 구멍,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선홍색 핏물과 점점 창백해지는 미야의 얼굴을 본 운현은 자신의 볼을 냅다 후려 갈겨 패닉에 빠지려는 자신을 붙잡았다.

"바제트! 미야 팔찌 풀고 힐링 걸어! 헤스티아! 저 마법사 새끼한테 바인딩!"

"아, 알았어!"

"응!"

당황하던 그녀들이 움직이자 운현은 인벤토리에서 밧줄을 꺼내 스켈레톤들에게 휘둘렀다. 긴 밧줄에 맞은 스켈레톤 둘이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자 운현은 곧장 성지를 설치했다.

"와라!"

운현을 표적으로 삼은 스켈레톤 창병 둘은 그를 향해 뛰어갔고 그 순간 성지가 발동되었다. 스켈레톤 창병들이 소멸되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운현은 헤스티아가 바인딩으로 스켈레톤 마법사를 구속하자 외쳤다.

"미야에게 힐링포션 있는대로 다 먹여!"

"알았어요!"

떨리는 손으로 힐링포션을 꺼내 미야의 입에 넣어주고 상처에 뿌린 그녀의 얼굴이 점점 파랗게 질려갔다. 상처가 너무 깊어 회복되는 속도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바제트의 힐링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벌써 미야가 죽었을 것이다.

"어떡해요!?"

"기다려! 저 새끼 잡고!"

당장 미야에게 가고 싶지만 저 마법사를 내버려 뒀다간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헤스티아의 바인딩에 걸려 있는 지금이 찬스다. 운현은 밧줄을 휘둘러 스켈레톤 마법사의 몸을 묶어 지속 냉기 데미지를 주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뒈졌으면 그냥 곱게 죽어 있을 것이지!"

"빠각! 빠각! 빠각!"

해골이 부숴지는 소리가 몇차례나 들렸다. 바인딩이 풀려도 밧줄에 묶인 탓에 움직일 수 없었던 스켈레톤 마법사가 힘을 주어 밧줄을 풀려 하자 운현은 그를 걷어찬 후 성지를 설치했다.

"딸깍! 딸깍!"

스켈레톤 마법사가 고통스러워하다가 소멸된 것을 확인한 운현은 빠르게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바제트는 연이은 힐링 때문에 마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가 창백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힐링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어떡해요! 히, 힐링 포션을 못마시고 있어요...!"

"이런 심한 상처는 힐링만으로는 무리야! 다른 방법이 필요해! 난 아직 큐어를 못배웠다고!!"

헤스티아는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덜덜 떨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복부의 구멍은 거의 막혔지만 미야의 입에서는 피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미야에게 계속 힐링을 걸고 있는 바제트 역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나보다. 그녀는 복부의 상처가 힐링포션에 의해 조금씩 회복되는 것을 보며 힐링을 걸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리고 자신의 마력만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힐링은 체력을 복구시키고 자잘한 상처를 회복시키는 마법이지 이런 큰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마법은 아니었다. 바제트는 정신을 집중해 미야에게 힐링을 건 후 운현에게 간절히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상아!!"

상아가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운현은 목걸이를 잡고 상아를 불렀다. 그의 외침이 끝나고 잠시 후, 빛의 문이 만들어지며 상아가 광검을 들고 튀어나오자 운현은 그녀를 잡고 다급히 외쳤다.

"미야가 크게 다쳤어!"

"뭐!? 그게 무슨..."

운현의 외침에 상아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를 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미야와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힐링포션을 퍼붓는 헤스티아. 창백해진 얼굴로 연신 힐링을 하고 있는 바제트를 보자마자 상황을 깨달은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방법 없어!?"

"나, 난 회복마법 못쓰는데."

"스크롤이라도!"

"가진 건 힐링포션 뿐이야..."

상아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자신의 허리에 걸려 있는 주머니를 내밀었다. 그녀의 주머니 안에 있는 힐링포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힐링포션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으로는 미야를 살릴 수 없다.

"일단 계속 힐링포션을 먹이고 상처에 뿌려!! 바제트. 힐링을 멈추면 안돼. 지금 당장 1계층에서 큐어가 가능한 길드원을 데리고 올게!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

지금 상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1계층의 신전에 있는 길드원을 부르기 위해 바람같이 뛰었다. 그녀가 순식간에 점이 되었을 때 바제트는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허억...어, 어쩌지...?"

"바제트. 왜?"

"마, 마력이..."

계속된 힐링으로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바제트의 안색이 점점 나빠져갔다. 이러다간 바제트마저도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파티의 리더라면 냉정해져야 한다. 방법을 생각하라. 방법을. 운현은 이를 악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도움이 될만한 것이 없나 싶었던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자의 팔찌를 발견했다.

'저거라면.'

그가 사자의 팔찌를 주워들자 바제트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을 응시하는 바제트를 향해 운현은 작게 숨을 들이마쉰 후 말했다.

"나한테 힐링을 걸어줘."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그런 짓 할..."

"훔쳐배우기로 내가 쓴다! 걱정하지마!"

"아! 훔쳐배우기! 하지만... 사자의 팔찌를 차고 힐링을 받았다간 네 몸이 부숴질지도 몰라!!"

운현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된 바제트는 눈을 빛냈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자의 팔찌를 찬 채 힐링이 걸린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운현에게 함부로 힐링을 걸 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좀 더 힘을..."

"지금 한번의 힐링도 힘겨워하면서 무슨 소릴 하는거야!?"

운현은 바제트의 멱살을 잡아채며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금 당장 나한테 힐링을 걸어."

"하지만!"

"빨리 해!!!"

그의 외침에 바제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말대로 이제 한두번의 힐링을 하면 자신의 마력이 바닥나버린다. 운현은 도적치고는 기형적으로 높은 지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라면 자신보다 더욱 빠르고 안정적으로 힐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상아가 길드원을 데리고 올때까지 버티는 것이라면 자신보다는 운현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제트는 눈물을 주륵 흘렸다.

"아플거야!"

"각오했다! 어서 해!"

"힐링!"

"커헉!!!"

바제트가 힐링을 시전한 순간 운현은 온 몸이 찢어지는 고통과 강렬한 구토감을 느꼈다. 그것에 그가 털썩 무릎을 꿇고 쓰러지자 바제트는 그의 몸을 잡았다.

"어서 팔찌를 벗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고통에 운현은 신음조차 하지 못했다. 고통의 비명을 토해내려고 벌린 입에서는 목구멍을 타고 올라 온 피가 섞인 타액만이 주르륵 흘러내릴 뿐 이었다. 그가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고통스러워하자 바제트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그의 팔에 걸려 있는 사자의 팔찌를 뜯어내듯 벗겼다.

"힐링!"

"크윽... 커헉! 허억...헉... 이, 이런 미친 고통... 하, 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구만."

"내가 말했잖아! 이 바보야!"

바제트는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운현의 가슴을 퍽퍽 때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운현은 무릎을 꿇은 채 스킬창을 열어보았다.

"힐링!"

다행히도 훔쳐배우기는 힐링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한번 더 이런 고통을 겪고 버틸 자신이 없었던 운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미야에게 힐링을 걸었다. MP의 소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정도라면 힐링을 계속 걸 수 있겠다 싶은 운현은 숨을 몰아쉬며 다시 힐링을 걸었다.

"바제트... 나 좀 부축해줘."

아직까지 고통의 여운이 남아 있는 운현은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바제트에게 힘겹게 말했다. 미야를 구하기 위해서라지만 운현에게 이런 고통을 주게 된 것에 슬퍼하던 바제트는 그를 꽉 안아 지탱했다.

"헤스티아... 힐링포션... 먹여..."

"알겠어요!"

이미 얼굴은 눈물로 완전히 젖어버린 헤스티아는 미야의 입 안에 힐링포션을 넣어주었다. 하지만 기침과 함께 그녀는 다시 토해냈고 헤스티아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운현을 보며 말했다.

"운현씨! 미안해요!"

"...힐링."

그녀의 말에도 운현은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그녀가 하는 것을 지켜 볼 뿐 이었다.

"꿀꺽."

힐링포션을 입 안에 잔뜩 머금은 그녀는 그대로 미야의 입술에 입맞췄다. 바람을 불어서라도 억지로 먹이려는 것이다. 그녀의 행동에 운현은 헤스티아가 미안하다고 한 이유를 알았다.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것 때문에...'

"힐링..."

헤스티아가 입으로 먹여 준 덕분인지 미야는 겨우 힐링포션을 마시게 되었다.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간 힐링포션이 체력을 채워줌과 동시에 상처를 조금씩 치료해나가자 헤스티아는 다시 힐링포션을 머금고 미야에게 입맞췄다.

"힐링..."

힐링 한번으로 어느정도 가라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자의 팔찌를 찬 채 힐링을 받은 고통의 잔재는 그의 몸을 괴롭혀가고 있었다. 정신이 점점 아득해져간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운현은 힘없이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었다.

"운현...?"

"날... 살리려다가..."

만약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면 스켈레톤 마법사의 마법에 맞아 자신이 죽었을 것이다. 미야가 저렇게 된 것은 그녀의 의지이지만, 그 의지는 운현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미야를 생각한다면 이런 고통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고통따위... 얼마든지 받아주마.'

운현은 단검을 잡은 손을 그대로 들어 올려 자신의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푹!"

"카학!!"

"미쳤어!?"

"저, 정신 좀 챙기려고..."

허벅지에서 타고 올라오는 고통이 오히려 정신을 일깨운다. 단검의 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넣어 상처를 더더욱 후벼파 고통을 불러 온 운현은 너무 큰 고통으로 잃을 뻔 한 정신을 고통으로 되찾는 아이러니함에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가 피식피식 웃자 바제트는 운현이 고통때문에 실성한 줄 알고 크게 놀라며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운현! 정신차려!"

"멀쩡하니까... 걱정마. 힐링."

자신에게 힐링을 거는 대신 운현은 미야에게 힐링을 계속 걸었다. 그렇게 헤스티아와 운현이 미야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야 상아가 나타났다.

"미야는!? 운현!? 넌 또 왜 이래!?"

길드원으로 보이는 성기사를 한명 데리고 온 상아는 아까보다 더 심해진 상황에 당황했다. 운현은 거의 쓰러져가는 상태로 허벅지에 단검을 꽂은 채 힘없이 손을 들고 있었고 헤스티아는 미야에게 계속 키스하고 있었다. 그것에 그녀가 당황하는 동안 상아와 함께 온 성기사는 미야에게 다가간 후 양 손을 펼쳤다.

"큐어!"

그녀의 손에서 밝은 푸른색 빛이 흐트러지듯 뿌려지며 미야의 몸을 감쌌다. 창백하던 미야의 안색이 점점 원래대로 돌아오자 헤스티아는 눈물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 다행이야..."

"그러게..."

"그럼 이쪽인가요? 어휴. 깊게도 찌르셨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운현의 허벅지에 박혀 있는 단검의 자루를 잡았다.

"이제 뽑을게요. 아플거에요."

"...."

그녀의 말에 운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것을 보고 부드럽게 웃은 그녀는 단번에 단검을 뽑았고 운현은 고통에 몸을 비틀었다.

"운현!"

"크학! 아으아...! 아, 아이고 아파 죽겠네~!!!"

"큐어."

허벅지가 타는 듯한 고통이 사그라든다. 그것과 동시에 아까 전 힐링에 걸렸을 때 얻은 고통이 사그라들자 운현은 숨을 헐떡이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운현씨는 우리 모험가 길드의 기대주인데요. 길드장님. 이제 더는 없나요?"

"응. 수고했어. 이제 쟤들 데리고 복귀하자. 지금 상태로는 더는 전투를 못할 것 같은데."

힘없이 바제트에게 안겨 있는 운현을 가리키며 그녀가 말하자 성기사는 빙긋 웃은 후 미야를 업었다.

"넌 내가 업어줄까?"

"다리가 질질 끌릴걸..."

힘없이 운현이 말하자 상아는 빙긋 웃은 후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손길에 몸이 허공에 붕 떠버렸다. 무중력 공간이 된 듯한 기분에 운현이 몸에 힘을 풀자 상아는 바제트와 헤스티아에게 말했다.

"근처에 있는 코어부터 좀 챙겨줘. 힘들게 얻은건데 그냥 버리고 갈 수는 없잖아? 너희들 레벨업을 위해도 필요한 거니까 말야."

상아의 말에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운현은 붕붕 뜬 상태에서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173====================

fanaticism

"으..."

정신을 차려보니 익숙한 천장, 그리고 익숙하지만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하얀 귀가 쫑긋 서 있는 미야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운현은 그녀를 향해 피식 웃었다.

"안죽고 살아 있네."

"바보냐!?"

운현의 말에 미야는 그의 얼굴을 꽉 잡았다. 그녀의 힘에 운현이 신음하자 미야는 그의 가슴을 두드리며 외쳤다.

"바보!? 너 진짜 제정신이야!? 사자의 팔찌를 차고 힐링을 받았다고!?"

"아프잖아."

"그게 더 아팠을 것 아냐!"

불같이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를 향해 씩씩거리던 미야는 곧 눈물을 주륵 흘려버렸다.

"무리하기나 하고..."

"넌 날 위해서 죽음을 각오했는데 뭘."

운현은 손을 뻗어 훌쩍거리며 흐느끼는 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의 손길에 더더욱 서럽게 울던 미야는 운현의 가슴에 얼굴을 파뭍었다. 귀는 축 늘어졌고 꼬리 역시도 살며시 운현의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근육으로 탄탄한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운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나저나 다들 복귀한거야?"

"응. 난 1계층의 신전에서 정신을 차렸고 넌 돌아오고 나서도 정신을 못차려서 내가 지금까지 돌보고 있었던거야."

"헤스티아랑 바제트는?"

"둘은 성당에 갔어. 네 몸을 회복시킬만한 성물을 구입하러 간다고..."

"성물? 왜?"

"사자의 팔찌를 착용한 채 힐링을 받으면 몸에 사기가 남아. 그것 때문에 네가 지금 힘을 제대로 못쓰는 거라고. 남아 있는 사기는 성물로 정화를 시키는게 일반적이야."

"흐음... 근데 사자의 팔찌를 차고 힐링을 받는 사람이 있어? 그걸 어떻게 알고..."

운현은 아까의 기억을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말에 미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파르티 교단에 죄를 진 죄인에게 형벌을 내릴 때 그렇게 한다고 하네."

"아..."

"파르티 교단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야. 그걸 자처하다니... 정말 제정신이야?"

"하하. 그래도 널 살릴 수 있었잖아."

뾰로통한 얼굴로 눈물을 쓱쓱 닦은 그녀가 거칠게 말했지만 운현은 그저 웃을 뿐 이었다. 그의 손길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자 미야는 감격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코를 훌쩍거렸다.

"그, 그래도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내가 너보고 이런 일이 있을 때 날 구하지 말라고 하면 넌 그렇게 할거야?"

"....."

운현의 말에 미야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빙긋 웃은 운현은 미야의 부드러운 볼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당겼다. 부드럽게 그와 입맞춘 미야는 운현이 자신과 이마를 맞대고 빤히 바라보자 살며시 눈을 피했다.

"그럼 나도 안해."

"하지만."

"네가 죽음을 앞에 뒀을때 진짜 무서웠다고. 그건... 진짜 끔찍한 공포였어."

운현은 미야를 천천히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진짜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공포였다.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면 운현은 고통을 선택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사자의 팔찌를 찬 채 힐링을 받는 것이 금기임을 알면서도, 바제트에게 경고를 들었음에도, 그것이 자신에게 큰 고통을 줄 것임을 알면서도 운현은 그것을 선택했다.

'정말 다시는...'

끔찍했다. 운현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응... 어?"

"왜?"

"후후후... 항상 '난 너희를 사랑하지 않아~' 라고 했던 주제에... 그런 말을 해도 괜찮아?"

"음. 그 뭐냐."

미야의 말에 운현은 볼을 긁적거린 후 퉁명스레 말했다.

"난 내 물건들이 부숴지는 건 싫거든."

"물건!?"

"그래. 내거."

"...이제는 물건 취급이냐. 하아... 솔직하지 못하긴."

"누가 솔직하지 못해? 누가?"

운현이 투덜거리자 미야는 피식 웃은 후 운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손길에 더더욱 운현이 짜증을 내자 미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좀 마실래?"

"물 좀 줘."

"잠깐만 기다려."

미야가 물을 가지러 간 사이 운현은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몸은 괜찮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 여기저기를 비틀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필레가 들어왔다.

"너 괜찮아!?"

"응? 언제 올라왔어?"

"으으으으... 진짜 맨날 걱정만 시키고! 키스한거 돌려줘!"

"키스? 아~! 아하하하하!! 읍!"

무사히 다녀오라는 의미로 운현이 던전에 들어가기 전 키스를 해줬던 필레는 그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고 끌어당겨 키스했다. 그녀가 입술을 빼앗은 것에 운현은 얌전히 있었고 까치발을 들고 키스를 한 필레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낸 후 말했다.

"다음에는 진짜 조심히 돌아와야 해. 알았지?"

"알았어. 그나저나 이렇게 와도 괜찮아?"

"안괜찮지! 잠깐 휴식시간을 틈타 너 괜찮나 보러 온거야. 그래도 아까 상아 길드장님한테 옮겨져서 왔던 것 치곤 꽤 멀쩡해보이는데?"

"으음. 딱히 아픈데도 없고. 고통도 거의 사라져서 괜찮아."

운현은 몸 여기저리를 비틀어보고 상태창도 보았지만 특별히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없어보였다. 자신이 직접 찌른 허벅지도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기에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필레에게 말했다.

"이야.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알면 좀 잘해..."

그의 부드러운 말에 필레는 한숨을 내쉰 후 운현의 볼을 한번 쓰다듬었다. 진짜로 상태만 보러 온 모양인지 그녀는 시간을 확인한 후 운현의 코를 잡고 비틀었다.

"또 다치고 오면 진짜 그때는 가만 안둘거야. 알았어?"

"그래. 그래. 알았다."

귀엽게 주먹을 들어 올려 화를 내는 척 하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필레는 피식 미소지은 후 방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야는 물통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필레씨 왔네?"

"응. 나 멀쩡한지 보러 왔다더라."

"후후후... 아까 필레씨 대단했지. 거의 실성할 정도로 너한테 달라붙던걸?"

"그랬어?"

저렇게 여유로워보이는데 아까 그랬단 말인가? 운현이 쓰게 웃자 미야는 컵에 물을 따라 운현에게 건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말고도 널 생각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좀 조심하라구."

"하하하. 알았어."

"그럼 좀 더 쉬고 있어. 이따가 바제트랑 헤스티아가 오면 정산하러 가자. 코어는 계산해보니까 우리 모두 200레벨에 오를 정도로 모았다고 하더라. 물론 네게 들어가는 경험치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운현이 다난교도와 싸우느라 레벨이 꽤 높아져 있었기 때문에 파티의 평균레벨을 맞추려면 코어를 이용해 그에게 주어지는 경험치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에 미안해하며 미야가 떨떠름히 말하자 운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괜찮아. 어차피 계층주를 잡고 다음 계층으로 나아가려면 평균을 맞추는게 좋으니까 말야."

"그래도..."

"그 대신 밤에 잘 해줘."

"헤헤헤! 그건 우리가 부탁할만한 일인데."

"어? 운현씨! 일어났어요!?"

"운현!"

미야와 실없는 농담을 하는 동안 성물을 구해 온 헤스티아와 바제트는 운현이 일어난 것을 보고 그에게 달려갔다. 두 미녀가 자신을 꼭 끌어안자 운현은 그녀들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난 괜찮으니까 걱정마."

"흑...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다시는 그런 거 시키지 말라고..."

미야를 구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극심한 고통을 받게 한 만큼 바제트는 무척이나 풀이 죽어 있었다. 그녀를 한참이나 달래 준 운현은 바제트가 조금 기운을 차리자 침대에 걸터 앉은 채 물었다.

"그런데 성물은 어디서 구해온거야? 벌써 다른 사제가 왔어?"

"으응. 아니. 성당은 아직 문이 닫혀 있는 상태야. 시청에 다녀왔어. 시청에서 성물을 보관하고 있다고 그래서... 거기서 사려고 했는데 윈디아씨가 줬어."

운현의 질문에 고개를 살레살레 저은 바제트는 고급스러운 주머니를 열어 그 안에 담겨 있던 은색의 목걸이를 꺼내었다. 달과 태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목걸이를 그녀가 꺼내자 목걸이에서는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발렌타인 가문의 인장이래요. 이거라면 몸 안에 남아있는 사기를 말끔하게 없앨 수 있다고... 어중간한 성물보다는 차라리 이게 나을거라고 하던데요."

"윈디아씨가..."

"아. 그리고 이 말도 전해주라던데요."

"무슨 말?"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헤스티아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떨떠름히 말했다.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때까지 언니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주지 못하시면... 알죠? 당신은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을 겁니다라고..."

"......"

좋은 성물을 빌린 것은 좋지만 섬뜩하다. 그의 떨떠름한 표정에 바제트는 더욱 떫은 얼굴로 말했다.

"이건 선물이래. 조만간 발렌타인 가문의 사람이 될 사람에게 주는... 그게 무슨 소리야?"

"어... 헛소리니까 신경 꺼."

윈드에게 소개 시켜 줄 남자는 제니스가 구해놨다. 그가 오기만 하면 냅다 넘겨버리고 신경을 끌 생각을 하고 있는 운현은 헤스티아와 바제트의 시선을 무시한 후 그 목걸이를 받았다. 확실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따뜻해진다.

"하루 정도 목에 걸고 있으면 될거야."

"그거면 괜찮아? 그보다 나 딱히 불편한데가 없는데?"

"그럴리가 있나. 사기가 몸에 꽤 남아 있어서 움직이기 힘들텐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데..."

운현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보았지만 딱히 거슬리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바제트와 헤스티아, 미야는 엄한 눈으로 그가 목걸이를 차길 기다렸고 그녀들의 시선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이고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자. 됐지?"

"그럼 오늘은 더는 무리하지 말자. 미야에게 들었어?"

"응. 이제 레벨 200이라면서?"

"들었구나. 응. 코어를 경험치로 환산하면 바로 다음 계층에 진입할 수 있어."

"지금 계층주는 누구래? 파티 대충 모이면 가자. 나 빨리 하고 싶은데?"

운현은 자신의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고, 이정도면 내일 바로 전투에 참가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동료들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여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떫은 표정을 지었다.

"으음... 그게요."

운현의 질문에 헤스티아는 난감해하다가 작게 한숨을 폭 내쉰 후 말했다.

"리치요."

"...응? 리치라니? 그거 혹시 내가 아는 그 리치를 말하는 거 아니겠지?"

"운현씨가 아는 리치가 뭔데요?"

헤스티아의 질문에 운현은 과거 게임에서 보았던 리치의 설명을 떠올리며 말했다.

"고레벨의 마법사가 스스로를 언데드화 하여 불로불사의 영역에 도달하려 한 몬스터 아냐?"

"대충 비슷하네요."

"2계층의 계층주는 고레벨의 마법사라고 보기는 어려우니까 말야. 실제로 사용하는 마법도 몇종류 안돼. 문제는 그 녀석이 혼자 싸우는게 아니라는 거지. 전투가 시작되면 5분마다 언데드 무리를 소환하는데 그 무리가 모이면 언데드 드래곤까지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있어. 언데드 드래곤의 추정 레벨은 320이래."

바제트는 볼을 긁적거린 후 말했다.

"상대하기에 따라 어쩌면 마인에 필적할 수준의 힘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는게 리치야. 리치가 언데드 드래곤을 만든 상태면 길드에서도 간부급 두명이 낀 공략대가 가야 수월하게 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마인과 더불어 클리어 난이도가 1, 2위를 다툰다고 해. 리치가 언데드들을 소환할 때마다 턴언데드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공략대에 성직자 계열의 직업군이 적으면 클리어가 거의 불가능이라고 볼 수 있어. 그런 녀석을 상대하기에는 좀..."

"허어... 그럼 어쩌지? 지금 파티는 어떤데?"

"아쉽게도 성직자는 얼마 없더라고. 그래서 내 생각엔 이번에는 그냥 넘기는게 좋을 것 같아."

바제트의 말에 미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언데드 마법사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던 그녀는 의자에 걸터앉은 후 말했다.

"코어를 일단 모아두고 전투를 통해 레벨을 200으로 올리자. 일주일 후면 계층주가 바뀐다고 하니까, 길드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리치 다음은 서큐버스라고 하니까 좀 쉽게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서큐버스라고!?"

"응. 무척 상대하기 쉬운 보스야. 공략대에 남성의 수가 적으면 그 힘이 반감된다고 하는데 이번 공략대에는 너 외엔 남자가 없거든. 그래서 지금 모이고 있는 파티도 리치는 넘기고 서큐버스를 공략할거라고 하더라고."

"서큐버스... 서큐버스라..."

드디어 판타지 세계에 그럴싸한 에로틱 몬스터를 만나게 되는 것인가? 운현이 히죽 웃자 바제트는 그의 볼을 잡고 쭉 잡아 당겼다.

"...저기요. 서큐버스에게 당하면 모든 정기를 빼앗길 정도로 하게 될텐데 괜찮아요?"

"으어. 아, 아니 그래도 그 남자의 로망이란게."

"하아..."

운현이 히죽거리며 말하자 바제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튼 리치는 건너뛰는 걸로 하자. 괜히 무리했다가 이번 일처럼 누가 다치거나 하면..."

바제트는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했는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래. 괜히 위험을 무릅 쓸 필요는 없지. 그리고 고급 언데드들을 잡는 것도 여기까지만 하자. 언데드 마법사가 그런 무시무시한 마법을 쓰는 걸 알았더라면 이렇게 안덤볐을거야."

"으음. 파티에 사제나 성기사가 있어서 큐어를 쓸 수 있는 사람만 있으면 크게 어렵지는 않은데 말야."

힐링으로는 체력을 채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큰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운현은 차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이야기는 끝. 파티의 리더로서 말하는거니까 내 말 들어."

"아니 안듣겠다는 건 아냐."

아쉬워하던 미야는 움찔한 후 방긋 웃었다. 그녀에게 미소지어 준 운현은 침대에 누운 후 말했다.

"난 좀 쉬어야겠다. 너희들은 뭐할거야?"

"우리도 이제 쉬려고.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

헤스티아와 미야는 죽을 뻔 했고 바제트는 한계까지 마력을 쥐어짜냈다. 거기에 운현은 비록 지금은 멀쩡하다고는 하지만 하마터면 정신이 무너질 뻔한 공포를 경험했고 사자의 팔찌를 찬 채 힐링까지 받았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하루 정도는 아무런 활동 없이 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편히 쉬어. 저녁에 밑에서 보자."

"응. 너도 무리는 하지 말고. 어디 돌아다니지마. 다난이 주시하고 있단 걸 기억하라고."

운현이 또 혼자 돌아다닐까봐 걱정된 미야는 그의 이마를 톡 치고 이마에 키스한 후 밖으로 나갔다. 헤스티아는 그의 입술에, 바제트는 볼에 키스하고 나갔고 홀로 남게 된 운현은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잘못하면 진짜 끌려가게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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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aticism

"몸은 좀 괜찮아?"

모두가 나가고 혼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문이 열리고 상아가 들어왔다. 우울한 얼굴로 들어 온 그녀는 운현의 옆으로 다가와 침대 근처에 앉았다.

"제발 사람 걱정 좀 그만 시켜라."

"하하하. 미안. 네 덕분에 이번엔 큰 위기를 넘겼어."

만약 상아가 아니었다면 미야를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운현은 그녀의 힘없는 말에 웃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만약 이번에도 마력 방해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리고 그쪽은 너희들 레벨에 맞지 않는 고급 언데드가 있는 곳인데..."

"미안하다니까."

"...으휴. 알았으면 됐어.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운현의 코를 잡아 살짝 비튼 상아는 부드럽게 웃은 후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손길이 이마를 쓰다듬는다. 열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본 손길이 천천히 내려와 볼을 쓰다듬자 운현은 그 손길을 즐기며 물었다.

"다난의 움직임은 어때?"

"딱히 없어. 실종자들도 아직 찾지 못한 상황이고..."

"그래?"

운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대로 눈을 뜬 채 말없이 상아를 응시했고 상아 역시 운현의 볼을 쓰다듬으며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 맞다. 그리고 이거."

"응? 이건..."

"사자의 팔찌."

"흐음..."

이 팔찌 덕분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이 팔찌 덕분에 미야를 살릴 수 있었다. 운현은 상아가 주워 온 사자의 팔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내일부터 다음 계층주를 잡기 전까지는 이 팔찌를 써야 했다.

그가 그것을 챙기는 것을 본 상아는 피식 웃은 후 물었다.

"두렵지 않아?"

"뭐가?"

"그 팔찌 때문에 엄청 고통을 받았잖아. 파르티 교단의 형벌을 받았던 사람들 얘기로는 사자의 팔찌는 이제 쳐다보기도 싫다고 하던데."

"필요하다면 사용해야지."

"뭔가 좀 바뀌어 가는 것 같은데."

"엥? 뭐가?"

운현이 어리둥절해하며 묻자 상아는 볼을 긁적거렸다.

"던전을 다니면서 점점 네가... 음. 뭐라고 해야 하나."

"....??"

"머, 멋있어져? 아, 그건 아닌데. 굉장히 그리워진다고 해야하나..."

"무슨 소리 하는거야."

"잘 모르겠어. 네 행동이나 말투 같은게 말이지."

상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평소에 보기 힘든 그녀의 그런 모습에 운현은 웃으며 손을 뻗었다.

"에?"

"어이구~ 우리 상아. 오빠한테 반했구나?"

"바, 반하다니!"

상아의 힘이라면 운현이 끌어당기는 이 힘 정도는 가볍게 뿌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운현이 끌어당기는 것에 순순히 이끌려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반한건 이미 예전이거든."

"내 매력이야 원래 넘쳐 흐른다지만 궁금한게, 너 왜 나한테 반했냐?"

"그러게. 이렇게 다른 여자가 많은 남자가 뭐 이쁘다고 반한걸까..."

자기도 궁금한 모양이다. 상아는 운현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중얼거렸고 그녀의 말을 들으며 운현은 손을 들어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그동안 내 도움 많이 받았지? 얘기 듣기로는 내가 준 스크롤 덕분에 헤스티아가 죽음을 피했다고 들었는데."

"응. 고마워."

"그럼 보상해줘."

"뭘로?"

운현이 묻자 상아는 베시시 웃으며 망토를 풀었다. 스르륵 흘러내린 망토. 상아의 몸은 그녀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슈트만이 가리고 있을 뿐 이었다.

"이걸로~"

"오우."

밝게 웃으며 상아는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운현은 손을 들어 다시 그녀를 안아주었고 자신을 부드럽게 받아주는 그의 행동에 상아는 생긋 웃었다.

잠시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상아는 천천히 머리를 뗀 후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위로 올라갔다. 상아의 작은 몸이 자신의 위로 올라오고 기분 좋은 무게감이 느껴지자 운현은 그녀의 작은 등을 차분히 쓰다듬었다.

"기분좋다~"

"그래. 그래."

달콤한 향기가 콧가를 간지럽힌다. 운현은 애교를 피우는 강아지처럼 자신의 위에서 뒹굴거리는 상아를 꽉 끌어안았다.

"헤헤~"

운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상아는 그의 입술에 살짝 입맞췄다. 짧은 입맞춤과 함께 이어지는 진한 키스. 그것에 상아는 작게 헐떡거리며 그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할까."

"음. 그래. 이제..."

"운현씨! 상아 길드장님 여기... 어머!"

"......"

"하아... 펠리시아."

운현과 상아가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키스를 하려는 순간 문이 열리며 펠리시아가 들어왔다. 좋은 분위기가 한방에 무너져버리자 운현은 눈을 감았고 상아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온거야? 쓸데없는 일이라면 용서하지..."

"어, 음. 그게요. 시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실종자들을 찾았다고..."

펠리시아는 미안한 얼굴로 운현과 상아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말했고 상아는 운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입술에 키스한 후 몸을 일으켰다.

"으으으으... 진짜!"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다. 상아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망토를 주워 입고 걸어가자 운현과 펠리시아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들의 웃음에 씩씩거린 상아는 펠리시아를 따라 밖으로 나가다가 문가에서 운현에게 외쳤다.

"갔다와서 나랑 자는거야! 알았어!?"

"그래. 알았어. 근데 이번 일에는 나도 나름 개입되어 있는데 난 안가도 괜찮으려나?"

"으음... 어쩌지?"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고민했다. 다난의 표적이 되어 있는 운현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싶었던 그녀는 고민을 끝마치고 고개를 끄덕인 후 펠리시아에게 물었다.

"누가 가지?"

"저랑 길드장님이랑 에리스씨가 갈거에요."

"그럼 가자. 셋이라면 네 한몸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과 간부들이 함께라면 걱정이 없겠다 싶었던 상아는 운현을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아는게 낫겠다 싶었던 그녀가 말하자 운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옷 갈아입고 갈게. 혹시 모르니까 갑옷은 챙겨 입어야겠네."

"그게 좋겠다. 기다릴테니까 입고 나와."

상아, 펠리시아, 에리스와 함께 운현은 던전 도시의 바깥으로 나갔다. 던전 도시에 들어 온 이후로 한번도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던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하자 펠리시아는 귀엽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가요?"

"아, 그러게요. 하하하하."

던전과는 다른 분위기에 운현이 머쓱하니 웃으며 답하자 상아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어딘지 펠리시아를 경계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펠리시아는 조심하는게 좋아."

"어째서?"

"후후훗..."

운현과 상아가 꼭 붙어서 속닥거리는 것을 보며 펠리시아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입술을 핥았다. 무척이나 매혹적인 장면인데 왠지 모르게 등줄기가 오싹하다. 그가 주춤 뒤로 물러나자 상아는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펠리시아는 남자 여자 안가린다고."

"...응?"

"너는 펠리시아가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구. 다른 여자들도 많은데 더 늘리게 하고싶지는 않아."

입술을 삐쭉 내민 그녀가 투덜거리자 운현은 피식 웃었다. 그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자 상아는 기분 좋음을 느낌과 동시에 그가 놀리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의미야?"

"그냥. 귀여워서."

"핫. 귀, 귀엽... 훗! 이제야 내 매력을 알게 되었나? 쯧쯧. 느려터지긴."

"후후후후~ 운현씨도 상아 길드장님의 매력을 알게 된건가요? 그럼 어때요? 오늘 밤에..."

펠리시아가 눈을 빛내며 다가오자 상아는 손을 흔들며 그녀를 쫓아내었다.

"쉿쉿! 저리가!"

"아니 무슨 사람이 개도 아니고. 쉿쉿이 뭐에요?"

"먹이만 보면 달려드는게 하도 개같아서 말이지."

"아이 참~ 개가 뭐에요~ 개가~ 이렇게 이쁜 개 봤어요?"

"저리 안가? 어디서 꼬리를 치려고. 쉿쉿!"

상아와 펠리시아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 온 에리스는 골치가 아팠는지 이마를 감싸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끙... 저 둘은 같이 있으면 항상 저러지. 이해해줘. 그래도 서로 친하니까 저러는거야."

"에리스씨는요?"

"나도 나름 친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내 성격상 저런 식의 장난은 힘들어서 말이지..."

그러고보니 에리스와는 꽤 자주 만났는데 간단한 인사정도 밖에 하지 않았다. 앞으로 길드의 간부들에게 꽤나 신세를 져야 했던 운현은 그녀에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전 에리스씨에 대해서는 잘 모르네요. 가르쳐주시겠어요?"

"나에 대해서? 어렵지는 않지만..."

그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에리스는 피식 웃은 후 상아와 펠리시아 쪽을 가리켰다.

"길드장님 허락은 받고와야 하지 않을까?"

"......."

어느새 펠리시아와 투닥거리는 것을 멈추고 상아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껏 접근하는 펠리시아를 막고 있는데 운현이 쫄랑쫄랑 에리스에게 다가가버린 것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우씨..."

"하하하하. 이건 그런 의도가 아니라."

"몰라! 이 등신아! 에리스랑 잘먹고 잘 살아라!"

"어!? 진짜!? 그래도 괜찮아!?"

"으...!"

그가 자신이 외침에 오히려 반색하며 에리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상아는 발을 동동 굴리다가 후다닥 그에게 다가갔다. 손을 꼭 잡으며 그녀가 눈물을 그렁그렁 맺자 운현은 웃으며 손을 들었다.

"책임지지도 못할거면서 무슨..."

"이씨...이씨...!"

씩씩거리면서도 상아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운현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잡고 있는 그의 손도 놓지 않고 얌전히 있는 상아의 모습에 에리스는 빙긋 웃었다.

"앞으로 길드장님의 컨트롤은 운현. 당신에게 맡기는게 낫겠군. 그간 펠리시아가 고생이 많았는데 말야."

"어머? 전 괜찮다구요. 그렇지만 뭐..."

화를 내지도 못하며 그의 손길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상아의 모습에 펠리시아는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상아가 무언가 말하려 하자 운현은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 안아 들었다.

"야! 너희들 진짜...!"

"우쌰! 이러고 갈까?"

"...응."

덩치에 걸맞는 가벼운 몸이다. 혼자서 마인을 상대하고 모험가들을 이끄는 길드의 수장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벼움과 함께 상아의 향기가 콧가를 간지럽히자 운현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대로 가자."

"알아 모십죠."

상아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의 살며시 말했고 운현은 그녀를 더더욱 강하게 안아들고 앞서 걸었다. 그에게 찰싹 매달린 상아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을 본 펠리시아와 에리스는 서로를 보며 키득거렸다.

"이, 이제 내려줘도 괜찮아."

"그래?"

어느정도 걸었을 때 얌전히 그에게 안겨 있던 상아는 버둥거리며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운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목적지 근처에 온 탓인지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들은 운현과 운현의 품에 안겨 있는 상아, 그리고 펠리시아와 에리스를 보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모험가 길드다."

"그런데 저 남자는 누구지? 길드장을 안고 있네."

"남창인가?"

"아, 저게 그 모험가 길드의 수퍼 루키라는 운현인가본데?"

"......"

"내려줘?"

"응..."

"진짜?"

"...응."

상아는 영 아쉬운 지 입맛을 다셨지만 이 상태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녀를 좀 더 괴롭혀볼까 싶었던 운현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에 피식 웃으며 손을 풀어주었고 폴짝 그의 품에서 뛰어내린 상아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올려보다가 손을 까딱거렸다.

"왜?"

"이번만 봐주는거야."

"하이고~ 무서워라 알았다. 알았어"

상아의 위협에 운현은 콧방귀를 뀐 후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일단 만족했는지 휙 몸을 돌렸다.

175====================

fanaticism

"상아 길드장님!? 오셨나요?"

경비병들을 제치고 달려 온 것은 윈드였다. 경비대장복을 입고 있는 그녀를 보며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직무 정지된거 아니었어요?"

"아아. 그거요. 티르빙씨가 다쳐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다시 하게 되었어요."

"다쳤다라... 어쩌다가요?"

"운현. 네가 용병 연맹에 간 날 시청에 습격이 있었어. 무시무시하게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과 다난의 집행자들이 수십이 몰려들었지. 티르빙씨와 용병 연맹의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밀렸을지도 몰라. 그 사람 때문에 몇명은 놓쳤고 그들은 심문장과 지하감옥까지 점거한 후 물러났어. 그러고보니 운현이 있었던 용병 연맹에도 다난의 집행자들이 습격했다면서? 너는 괜찮아?"

'정말 위험할 뻔 했네.'

아르토리우스가 자신을 용병 연맹으로 빼돌리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일이 날 번 했었다. 운현은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윈드에게 물었다.

"실종자들을 찾았다구요? 다들 어디 있나요?"

"그게..."

그의 질문에 윈드는 입을 다물었다. 말하기 힘들었는지 그녀는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끔찍한 시체로 발견됐어."

"예?"

"그게 무슨 소리야?"

"으음... 보시겠어요?"

상아와 운현, 펠리시아, 에리스를 데리고 윈드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경비병들이 막고 있는 커다란 오두막 안쪽으로 들어간 그녀는 오두막의 중앙에 있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가리켰다.

"저 안에..."

익숙한 냄새가 코를 건드린다. 분명 맡아봤던 냄새다. 운현이 인상을 찡그리자 상아는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시체 썩는 냄새군."

"언데드라도 만들려고 한건가요?"

"아뇨... 그것보다는..."

펠리시아의 말에 윈드는 경비병이 건네 준 횃불을 받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풍겨오는 진한 사체의 냄새에 운현이 인상을 구겼을 때 상아와 펠리시아, 에리스는 윈드와 함께 밑으로 내려간 후 이를 갈았다.

"이런 끔찍한 짓거리를..."

다양한 시체들이 있었다. 오두막의 몇배는 될 법한 공동에 있는 수많은 제단 위에는 사람들이 양 팔과 양 다리가 묶여진 채 누워 있었고 그들의 심장에는 모두 하나의 단검이 꽂혀 있었다. 남, 녀 가릴 것 없이 그들은 모두 간살당한 상태였다. 그들의 허벅지나 음부, 양물에 진하게 말라붙은 정액이나 애액을 손가락으로 만져 본 상아가 빠득 이를 갈았을 때 운현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 본 후 윈드에게 물었다.

"카야씨는요?"

"응?"

"실종자 중에 카야씨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녀는 어디에 있죠?"

"아... 그게."

운현의 질문에 윈드는 볼을 긁적거린 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시체만 유독 부패가 심해져서 확인하기 어려워 따로 빼논 상태야."

"부패가 심해 확인하기 어려운데 카야씨인지는 어떻게 알죠?"

운현이 궁금해하며 묻자 에리스는 씁쓸한 얼굴로 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아마 파르티 교단의 다른 신관이 와서 신분을 확인했나본데... 맞나?"

"네."

에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윈드는 운현의 질문에 추가적으로 답변했다.

"던전 도시의 관리를 위해 모실 예정이었던 대사제님께서 카야씨의 시체에 신성력을 넣어 그녀의 신성력의 흔적을 발견하셨어요. 그 시체는 카야씨의 시체가 맞다고 하더군요."

"흐음... 그런데 왜 그녀의 시체만 부패가 심했을까요?"

"그건 내가 알 것 같군."

에리스는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윈드의 횃불을 받고 제단의 시체들이 머리를 향하고 있는 벽쪽으로 다가갔다. 벽에는 커다란 날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인신공양. 다난의 신성을 올리기 위한 일이지. 다난은 파르티께서 이 땅의 주신이 되기 전 이 땅을 관리하던 대지의 신이다. 성격이 잔혹하며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몰살시키는 광신이지. 그녀는 잔혹한 인신공양을 즐기며 심장과 성기에 그 사람의 혼과 힘이 깃든다 하여 자신의 적을 잡았을 시, 혹은 포로를 잡았을 시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혼과 힘을 빼앗아 자신의 힘으로 삼는다."

"자기들은 정의와 선의 신이라던데요?"

"광신에게 있어서 자신의 질서와 법은 그야말로 정의이며 선라고 할 수 있겠지. 파르티 교단이 사교로 인정한 몇 안되는 교단 중 하나야. 다난교는."

"이런 짓을 하면서 정의와 선이라..."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이라는 것은 결국 동전의 양면과 같은거니까요. 바라보기에 따라서 같은 상황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선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악이 될 수 있겠죠."

운현의 중얼거림에 펠리시아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윈드와 에리스가 이상한 듯 바라보자 펠리시아는 당황하더니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 다난교가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구요! 저도 이런 방식은 싫어요! 마법을 공부하다보면 여러 방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구요!"

"으이그... 아무튼 그들의 행위가 정의든 선이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들은 던전 도시의 시민이고 우리에겐 이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은 우리를 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겠지."

"그렇죠. 선전포고나 다름없겠죠. 아니, 이미 선전포고는 시작됐지만 말이에요."

상아의 말에 윈드는 어깨를 으쓱인 후 싸늘히 말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피식 웃은 상아는 운현과 여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 밖의 다른 발견은 없었어?"

"이 오두막의 주인에 대해서 조사해봤는데 주인도 저 안에 있는 것 같더라구요. 결국 사건은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네요.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진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해봐야 파르티 교도라는 것 밖에는 없어요."

"다난은 심장과 성기를 통해 힘을 빼앗는다고 했잖아요. 파르티 교도들이 가지고 있는 신성력을 빼앗으려고 하는게 아닐까요?"

"그 생각도 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이들 중에는 신성력과는 관계가 없는, 그저 이름만 파르티 교도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흐음...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뭐, 나머지 부분은 조사가 끝나는대로 바로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운현이 중얼거리자 윈드는 쓴웃음을 지은 후 상아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상아는 주변을 둘러 본 후 물었다.

"이 근처에 다른 이들의 흔적은 없었어?"

"발자국 몇개가 있어서 추적을 해보기는 해봤지만 대로로 이어져서 결국 찾을 수 없었어요. 이 발자국 같은데..."

"운현. 추적술 쓸 수 있지."

"응. 한번 해볼게."

윈드가 가리킨 발자국에 추적술을 건 운현은 붉은색으로 표시된 발자국이 길가로 이어지자 천천히 그것을 따라 걸었다. 그가 걷기 시작하자 상아와 윈드가 그의 뒤를 따랐다.

"에리스, 펠리시아. 너희들은 여기서 일단 대기해."

"알겠어요."

혹시 이곳에 다난의 집행자가 나타날지도 몰랐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그들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그녀들을 남겨 둔 상아는 운현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잡을 수 있겠어?"

"글쎄... 큰 기대는 안하는게 좋겠어. 점점 흔적이 옅어져 가고 있거든."

길가를 지나쳐 흙길을 걷던 운현은 한참을 걸어 평원에 도착하자 그 흔적이 동굴 안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외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흔적은 없었다. 입구가 무언가에 의해 조금 부숴져 있고 주변의 두꺼운 나무들이 부러져 있는 동굴 주변을 보며 운현은 발걸음을 멈춘 후 천천히 말했다.

"여긴데. 그리고..."

"그리고?"

운현이 입을 다물자 상아는 힐끔 윈드를 보며 그녀에게 부탁했다.

"윈드. 펠리시아와 에리스를 불러와주겠어? 동굴 안쪽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방어를 할 수 있는 에리스와 마력의 흔적을 잘 잡을 수 있는 펠리시아가 있는게 나을 것 같아."

"알겠어요."

윈드가 바람처럼 달려나가자 운현은 동굴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저긴 내가 이세계에 와서 처음 눈을 뜬 동굴인데."

"어? 진짜? 근데 왜 그 흔적이 여기로 이어진거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전에 이야기했지? 여기서 롤랑이 죽은 것을 보았다고."

운현의 말에 상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안에 무엇이 있을까. 상아가 광검을 잡자 운현은 그녀를 말렸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괜히 무리하지는 말자."

"하지만."

"다난의 흔적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너도 소중해."

"그, 그래?"

운현의 말에 상아는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빙긋 웃었다. 둘만 남게 된 평원에서 묘한 분위기가 생성되자 상아는 살짝 웃은 후 그의 손을 잡았다.

"왜?"

"그냥. 잡고 싶어서. 싫어?"

"아니. 상관은 없는데."

"헤헤헤~"

그의 손을 잡고 이끈 상아는 운현을 나무둥지 밑에 앉혔다. 순순히 그녀가 시키는대로 앉은 운현은 자신의 위에 상아가 앉자 천천히 손을 움직여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있으니까 좋네."

"다난의 흔적을 쫓는다는 것만 빼면 말야."

"으음. 분위기 상하게 그런 얘기는 좀 관둬주라... 여기에서 이세계의 네가 시작된거란 말이지."

편하게 운현의 품에 등을 기대며 그녀는 동굴을 바라보았다. 무저갱으로 이어지는 동굴처럼 동굴의 안쪽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 안에 뭐가 있었어?"

"고블린이랑 알 수 없는 괴물, 그리고... 이제 와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다난의 제단. 그 외에는... 아. 레나와 롤랑이 잡혀 있었지. 그리고 시체들도 꽤 있었고 말야."

"안무서웠어?"

"되게 무서웠는데."

그의 말에 상아는 작게 키득거린 후 고개를 돌려 운현의 볼에 살짝 입맞췄다.

"우쭈쭈~ 이 할미가 지켜줄테니 걱정 말아요~"

"허이구. 그럼 괴물 나오면 난 바로 튄다."

"응. 넌 약하니까 그냥 뒤에 물러나 있어."

"들어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는거야?"

운현의 말에 상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안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사는 해봐야겠지. 다난은 너의 적이고, 그것은 곧 나의 적이기도 하니까 말야."

"훌륭하다."

피식 웃은 운현은 상아의 머리에 살짝 턱을 올렸다. 그의 위에서 운현이 끌어안고 있는 것을 즐기던 상아는 자신의 엉덩이에 무언가가 닿기 시작하자 묘한 미소를 지었다.

"참 상황 파악 못하는 녀석이네."

"너 같이 예쁜 애가 올라와 있는데 안서는게 이상한거지."

"후후후..."

그의 말에 상아는 베시시 웃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뭔가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일단 밖인데다가 조금만 있으면 펠리시아와 에리스가 온다. 어차피 시간은 있으니 돌아가서 그와 하면 된다 생각하던 그녀는 허리를 살짝 살짝 돌리며 그의 남성을 자극했다.

"어때?"

"느끼냐 안느끼냐를 묻는다면 그다지."

"에엑!?"

"이정도로는 힘들지."

먼저 공격을 한 것은 상아다. 운현은 씨익 웃으며 상아의 목덜미에 입맞추고 손을 움직였다. 매끈한 슈트 위에 봉긋 솟아 있는 가슴에 손을 올린 그는 그녀의 긴 귀를 핥은 후 말했다.

"싸움은 네가 더 잘할지 몰라도 이건 나도 만만치 않을걸?"

"자, 잠깐만!"

"네가 먼저 시작한거야. 냠."

"흣!? 잠깐! 잠깐! 지, 진짜!?"

"후후후후. 함부로 도발을 하면 큰코다친다는 것을 보여주지."

운현의 손길이 움직이자 상아는 당황하며 외쳤다. 하지만 운현은 그녀의 외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손과 입을 움직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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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aticism

"길드장님! 왜 부르신..."

"...뭔가 좋은 때를 방해한건가?"

펠리시아와 에리스가 도착했을 때 상아는 울상을 지으며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운현의 위에 앉은 채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달뜬 숨을 쉬고 있자 펠리시아는 볼을 긁적거린 후 상아를 끌어안고 있는 운현에게 물었다.

"했어요?"

"아뇨."

"...그럼 그냥 반죽음만 만들어놓은 모양이네요. 하아. 길드장님. 일어나요. 할거면 돌아가서 하든가."

"너, 너... 두, 두고봐!"

떨리는 몸으로 천천히 일어난 상아는 운현을 향해 도끼눈을 뜨며 말했지만 운현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귀엽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손길 한번 한번에 잘도 느끼는 주제에 겁도 없이 저렇게 말하는구나. 그는 싱글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무서워."

"전혀 무섭지 않아보이는데... 아무튼 왜 부른거에요?"

"후우...후우..."

계속된 운현의 손길에 당하고만 있느라 몸이 달아올라 있던 상아는 숨을 몰아쉬며 흥분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에리스는 운현에게 떨떠름히 말했다.

"적당히 좀 하지 그랬어."

"먼저 도발을 하더라고."

"그래도 그렇지... 애정표현은 나중에 둘이서 해."

운현과 에리스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힐끔힐끔 보며 신경을 쓰던 상아는 펠리시아의 질문에 천천히 답했다.

"으음. 그게 저 안에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냥 동굴인데... 왜요?"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혼자 들어가도 괜찮겠지만 만약은 대비해야 하는 법이잖아."

"으음. 뭐 그렇죠."

4계층도 조심하면 혼자 다닐 수 있는 실력인 상아가 바깥의 동굴 하나를 혼자 못들어간다는 것이 이상할만도 했지만 지금은 평시가 아니라 다난의 습격을 받는 비상시다. 그런 상황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상아의 말대로 그녀 혼자, 혹은 운현이라는 짐덩이를 들고 들어가는 것은 바보 짓이기에 펠리시아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작은 마법봉을 휘둘렀다.

"얍."

단 한번의 마법 시전으로 상아와 운현, 그리고 펠리시아의 몸에 배리어가 걸렸다. 그녀가 준비를 마치자 에리스는 등뒤에 짊어지고 있던 방패와 허리의 메이스를 꺼내 든 후 말했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응. 그리고 운현. 넌 에리스의 뒤에서 걸어. 에리스의 앞에 함정이 있으면 그것을 해제해줘."

"알았어."

"다음은 펠리시아고 그 뒤는 나네. 자. 대충 진형은 갖췄으니까 들어가자."

운현을 제외하곤 평균레벨이 400이 넘는 파티가 순식간에 결성되었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 들어서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는 좀 더 밝았던 것 같은데...'

"라이팅."

시야를 확보하기 힘들어지자 펠리시아는 마법봉을 들어 올린 후 마법을 시전했다. 그녀의 마법봉에서 쏘아진 빛의 구슬은 에리스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았고 그녀가 지나가는 길의 시야를 밝혀주었다.

"이제 좀 괜찮네. 고마워. 펠리시아."

"별말씀을."

빙긋 웃은 펠리시아는 운현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펠리시아씨는 레벨이 몇이에요?"

"저요? 441이요."

"고, 고레벨이네요."

캐스팅이나 마법 준비 자체가 거의 없이 바로바로 마법을 시전하는 속도에 놀라 물었던 운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레벨이라면 저정도의 마법 시전 속도가 이해가 갔다.

"갈림길이네. 어디로 갈까?"

"왼쪽으로 가는게 낫겠어요."

"뭔가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예전에 책을 봤는데 그 책에서 미궁을 헤멜때는 왼쪽 벽에 손을 대고 그냥 쭉 가면된다고 하던데요? 그럼 길을 잃지 않는다고 그래서."

에리스나 펠리시아에게는 자신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에리스의 말에 운현은 능청스러운 어조로 말했고 에리스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런 책은 본 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 의견은 어때?"

"상관없어요."

"나도."

펠리시아와 상아가 운현의 의견에 동의하자 에리스는 운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왼쪽의 통로로 발길을 옮기자 운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만요."

에리스가 움직이는 것을 따르던 운현은 그녀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후 앞을 보았다. 붉은색 원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을 본 그는 함정해제를 시전했다.

"함정이 있네요."

무덤덤히 말했지만 운현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어째서 여기에 함정이 있단 말인가. 레나를 데리고 도망칠때는 함정따위 없었다. 이 통로에 함정이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던 그는 뒤로 물러나 상아에게 말했다.

"뭔가 이상해. 바뀐 것 같아."

"뭐가?"

"분명히 이 동굴이 맞는데..."

뇌리에 새겨진 그 충격적인 기억을 잊을리가 있나. 그 괴물이 난동을 부려 동굴이 부서진 것도 동일했다. 운현이 조용히 말하자 상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함정 때문이라면 걱정마. 누군가가 와서 설치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별게 없으면 어때.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운현이 심각해지자 그의 허리를 툭 치며 달래주었다. 상아의 가벼운 응원에 빙긋 웃은 운현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후 혹시 모를 함정에 대비했다.

"여긴 뭐지? 탁자가 있는데... 누가 쉬기 위한 곳인가?"

통로를 빠져나온 에리스는 넓은 공간을 발견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탁자와 의자 몇개, 작은 상자 몇개가 있는 공간에 도착한 그녀가 차분히 말하자 운현은 과거를 떠올렸다.

'여기서 고블린 세마리를 잡았지. 근데 시체도 없는 걸 보니 누가 치운건가?'

"글쎄요. 함정같은건 없는 것 같은데 계속 들어가죠."

운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리스는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에리스는 동굴이 끝이 나고 넓은 공간이 나오자 낮게 신음했다.

"으음... 이건."

'뭐지!? 도대체 뭐가...'

수많은 고블린의 시체들이 한곳에 쌓여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제단에는 이미 부패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 세구가 있었고 그 시체들에게 다가간 에리스는 그들의 팔과 다리에 있는 장신구를 보며 이를 갈았다.

"파르티 교단의 성직자들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제단을 보아하니 다난교의 짓 같군요. 왜 몬스터들에게까지 이런 짓을..."

펠리시아는 쌓여 있는 고블린의 시체를 조사하며 말했다. 여성형 몬스터인 고블린의 음부에서는 정체불명의 흰색 액체가 굳어 있었다.

"인간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시체의 부패 상태를 보면 적어도 일주일에서 이주일은 지났는데 이정도로..."

"우왁! 펠리시아씨! 그걸 만지면...!?"

"네? 왜요"

고블린 시체의 계곡 안에 손을 넣어 흰 액체를 쭉 끄집어 내 본 그녀는 안쪽에서는 아직 점성을 유지하는 흰색 액체를 손가락으로 비볐다. 잘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싶었던 운현이 감탄하자 에리스와 상아는 다가가 그녀가 한 것처럼 다른 고블린의 음부에 손을 넣었다.

"흠... 시체는 이렇게 썩었는데 정액은 아직 남아 있다라... 에리스. 뭔가 아는 것 없어?"

"글쎄요... 본단에 요청을 해보겠습니다."

"....."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몬스터 사체의 음부에서 정액을 채취하는 모습에 운현은 당황했다. 확실히 숙련된 모험가와의 차이점이 여기서 난다는 것에 그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자 상아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은 후 운현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가 잡혀 있던 곳은 어디야?"

"어, 음. 여기."

몬스터 사체와 다른 시체들을 조사하는 에리스와 펠리시아를 내버려두고 운현은 상아와 함께 옆에 뚫려있는 통로로 들어갔다. 좁은 통로를 지나 조금 넓은 공간에 도착하자 상아는 역시 부패하고 있는 시체들을 발견하고 인상을 구겼다.

"이들은 다른 시체들과 다른 것 같은데. 여기저기 찢겨지고 뜯겨져 있는 걸 보면 고블린들이 먹은 것 같군."

"응. 그 장면을 직접 봤다니까. 완전 쫄았다고."

"후후후. 무서웠겠구나."

"사실 좀 지릴뻔..."

상아가 허리를 톡톡 두들겨주며 웃자 운현은 그녀에게 농담을 던지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겨우 자신이 처음 시작한 곳에 도착한 운현은 넓은 공간 안을 둘러보았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진짜 이게 뭔가 싶었는데...'

"흐음...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응... 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운현은 한쪽 벽이 붉게 빛나는 것에 당황했다. 함정의 표시다. 왜 여기에 함정이 있단 말인가. 그가 그곳을 향해 다가가자 상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뒤를 쫓았다.

"왜?"

"잠깐만. 여기 함정이..."

함정이 설치된 벽 근처에 도착한 운현은 벽에 걸려 있는 함정을 해제했다. 이쪽은 아예 건드린 적도 없는 벽이다. 그가 그곳의 함정을 해제하자 벽으로 위장하고 있던 함정이 사라지며 통로가 나타났다.

"이건...?"

"이건 어디로 통하는 통로야?"

"모르겠는데."

처음에는 함정 해제를 할 수 없었기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운현은 어두컴컴한 통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고 상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조사해보자."

"괜찮겠어?"

"음...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잠깐만 기다려. 그래도 모르니 애들한테 얘기는 하고 가야지."

상아는 빠르게 뛰어 제단 쪽에 있는 에리스와 펠리시아에게 새로운 비밀 통로를 발견했으니 그것을 확인하고 오겠다고 말한 후 다시 돌아왔다. 새로운 통로에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운현은 그녀를 뒤에 두고 앞장서서 걸었다.

"여기 함정 있다. 해제할게."

"응. 이야~ 역시 믿음직스럽구만. 3계층에 들어가면 제대로 활약하겠는데?"

"왜?"

"어? 필레가 말 안해줬어? 도적의 진가는 함정을 발견하고 해제하는 것이라고. 3계층부터는 제대로 된 전투를 하려면 이런 동굴 안의 적과 싸워야해. 바깥에 있는 몬스터는 200레벨 초반대나 상대하는 거고 안에 있는 녀석들과 싸워야 쉽게 레벨을 올릴 수 있지."

"허어... 거기에 함정이 많아?"

"응. 함정도 많고 몬스터도 많지. 좁은 통로들이 여기저기 연결된데다가 비밀통로도 많아서 지도가 없으면 움직이기 힘들거야."

"그렇구만..."

"그래도 너희 파티는 괜찮겠네. 네 능력 덕분에 말야. 어휴~ 역시 슈퍼 루키라니까."

"야야. 함정 해제하는데 엉덩이 토닥거리지 마라. 집중 깨진다."

상아의 손길에 투덜거리며 함정을 해제한 운현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직선 통로를 지나 오른쪽으로 꺽고, 또 다시 오른쪽으로 꺽었을 때 그들은 작은 방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방은 뭐지?"

"글쎄? 보니까 누가 살았던 흔적 같은데..."

방에 들어 온 상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흔적들을 조사했다. 책장과 책상은 깨끗했고 옆의 탁자에는 무언가를 연구라도 했는지 종이나 펜, 그리고 정체불명의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흠... 무슨 글씬지 모르겠네. 뭔가 암호같은데..."

책상을 뒤로 당기거나 책장을 밀쳐 본 상아는 책상과 책장 뒤에 굴러다니는 종이 몇장을 주워 운현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운현은 암호에도 자신의 능력이 통할까 싶어 그것을 차분히 읽어보았다..

"알겠는데? 몬스터의 신이 가지고 있는 신성은 모두 회수했으나 그들의 신성을 이용하기에 신체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렇기에 위신체. 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짜 신체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다음은 모르겠네. 글자가 뭉개져 있어서 해독이 안돼."

"몬스터의 신? 그런게 있나?"

"그걸 내가 아냐?"

상아의 말에 운현은 대충 대답해주고 다음 장을 읽었다. 종이의 질과 글씨체가 다른 것을 보니 다른 이가 작성한 내용같았다.

"연구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엘프를 이용한 일흔네번째 실험에서 운명의 틀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다난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 굳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 신성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이는... 다음 내용은 없네. 그 다음장은... 이건 요리재룐가? 생선 일곱마리, 치즈 다섯 덩이.."

"운명의 틀? 자, 잠깐만! 운명을 바꾼다!? 말도 안돼!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운현의 말에 상아는 크게 당황했다. 그녀도 엘프이기에 운명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운현은 팔짱을 낀 후 말했다.

"도대체 그놈의 운명이 뭔데 왜 이렇게 엘프들은 운명에 집착해? 운명을 왜 바꿀 수 없다는 거야?"

그가 질문하자 상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모든 것의 운명은 정해져 있어."

"도대체 운명이란게 뭔데 다들 운명 타령이야?"

"인간은 확실히 다르지. 하지만 엘프들에게 있어서 운명은 무척이나 중요해."

상아는 운현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천년의 삶이 약속된 엘프이기에 백년을 아둥바둥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정열과 도전은 이토록 아름다웠다. 그녀는 따뜻한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응. 이그드라실에 따르면 모든 것에는, 심지어 이 세상 마저도 운명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있는 존재라고 해. 운명에 따라 시작과 끝이 결정되지."

177====================

fanaticism

"웃기는 소리네. 정해져 있는 운명이 있다면 사람들은 왜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하는건데? 살아가다보면 얼마든지 선택의 순간이 오는데 그 선택이 이미 결정되어졌다는 거야?"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고. 나도 운명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말야. 그저 주워들은 정도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운명이 결정짓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라고 했어. 그 사람이 그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운명이 제시한다는 것이지."

"으음... 그러니까 내가 오늘 저녁밥으로 스테이크를 먹을지, 빵을 먹을지의 상황이 결정된다는거야? 운명이 스테이크를 먹기로 결정되어져 있다면 식재료가 없다거나 빵이 다 떨어졌다는 식으로 스테이크를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얼추 비슷해. 하지만 거기서는 네가 오늘 저녁을 굶는다는 선택지가 추가되지. 하지만 운명론에 따르면 그것조차 불가능해져.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스테이크를 먹게 되는거야."

"그게 뭔 소리야..."

운현이 이해를 못한 듯 하자 상아는 잠시 생각을 한 후 자신의 광검을 툭 쳤다..

"자. 봐봐. 만약 여기서 내가 널 죽이려고 마음먹고 휘둘렀다고 치자고. 하지만 넌 죽을 운명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될까?"

"그래도 네가 휘두른 이상 죽지 않을까?"

"아니. 죽지 않아. 물론 평생 침대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르지만 죽지는 않는다고. 이게 운명론이야. 과정이야 어쨌든 정해져 있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상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예로 설명이 되려나? 운명학에 있어서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한때 하이 엘프의 수장이 같은 하이 엘프가 아닌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어. 하지만 그의 운명의 상대는 같은 하이 엘프였지."

"호오. 그래서?"

"하이엘프의 수장 정도 된다면 이그드라실의 축복을... 아니, 이정도면 저주인가? 아무튼 운명을 읽을 수 있게 돼. 하지만 그것은 절대 말해서는 안되는 금기지. 그는 자신이 사랑한 인간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읽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많은 모험을 했어. 그녀에게 닥쳐오는 수많은 위험을 막고 수도 없는 위기를 겪으며 그녀를 구해내려던 그는 결국 자신의 힘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불로불사의 영약을 구하러 가게 되었어. 자신의 연인을 데리고 여행을 하던 그는 필사의 집념으로 결국 불로불사의 영약을 손에 넣게 되었지. 그 여자의 운명이 허락한 마지막 날에 말야."

"와우... 집념 참 대단하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 여자가 불로불사의 영약을 먹었어?"

"아니. 그의 연인은 죽었어."

"왜? 불로불사의 영약을 빼앗겼나? 아님 먼저 죽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녀는 그가 준 불로불사의 영약을 손에 든 채 심장마비로 죽었어. 그 많은 위험을 극복한 사람 치고는 허무한 결말이지."

"......"

"자신의 연인을 지키기 위해 운명을 읽고 최대한 위험을 회피했지만 결국 운명대로 그녀는 그녀에게 허락된 날짜만큼 살다가 죽어버렸어. 자신의 연인이 허망하게 죽어버리자 그것에 절망한 그는 연인을 따라 죽기 위해서 계속해서 죽으려 했지. 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어. 그의 운명의 끝은 아직 천사백년이나 남았거든."

"있어... 라는건."

"그의 운명이 아직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지. 그는 하이엘프의 수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하루에 한번씩 기도를 하는 것처럼 자살을 시도해. 매일. 매일. 매일. 죽기를 원하며 끔찍한 극독을 먹고 단검으로 심장을 찌르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어."

"아직도 하고 있단 말야!?"

운현이 기겁하며 묻자 상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누군가가 죽여줄 수는 없는건가?"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그의 자살 시도를 보지 못하고 그를 죽여주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도끼로 목을 자르려고 하면 멀쩡하던 도끼자루가 부러져버리고 검으로 심장을 찔러도 다음날이면 심장이 복구되지. 팔과 다리를 잘라 과다출혈로 죽이려고 해도 상처가 금새 아물어버려."

"....."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니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운명론을 믿지 않을 수 없어."

상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운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분위기가 무겁다. 운현은 그 분위기를 바꾸고자 애써 밝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바제트에게 물어봤었는데 엘프들은 열살이 되는 날 자신의 운명을 볼 수 있다고 하더만. 넌 뭘 봤어? 너도 날 봤어?"

분위기를 바꾸고자 운현은 웃으며 물었고 상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내 마지막을 봤지."

"...."

운현은 괜히 물어봤다 싶어 입을 꾹 다물었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라... 그런데 왜 아르토리우스는 자신의 목적이 운명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지? 왜?'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재밌게 해요?"

"우왓!? 깜짝이야!"

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운현은 깜짝 놀라 벽쪽을 향해 다가갔다. 벽에 가까워지자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구멍을 통해 벽 너머를 보았다.

"펠리시아씨?"

"여긴 제단이에요. 거긴 어디죠?"

"여긴... 상아가 말한 비밀통로를 지나면 도착할 수 있는 통로에요."

"흐음... 그곳에서 지켜보기 위함일까요? 뭔가 마법이 걸려 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해제되어버렸는지 없네요."

통통 얇은 벽을 손으로 두드린 펠리시아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에리스씨가 벽을 부술거라고 하네요. 운현씨. 뒤로 물러나주세요."

"네."

상아와의 무거운 분위기가 영 어색했던 운현은 뒤로 물러난 후 상아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오자 상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운현의 손을 잡았다.

"어떤 운명이든 난 너와 함께 할거야."

"그러길 비마."

상아는 빙긋 웃으며 그의 팔을 천천히 끌어안았다. 그녀가 자신의 팔을 안자 운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벽에서 큰 소리가 들리며 벽에 큰 구멍이 뚫렸다.

"기술 한방에 무너지다니. 이거 진짜 약한 벽인데?"

"아뇨. 에리스씨의 방패 밀치기에 맞으면 두꺼운 벽도 무너질거에요. 자신의 힘을 얕보지 말아요."

커다란 방패를 앞세우며 벽을 뚫어버린 에리스는 부숴진 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녀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던 펠리시아는 운현과 상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 빨리 돌아가줘야겠네요. 길드장님이 이러다가 발정, 아니 욕구불만 상태가 되어버리겠어요."

"발정이라고 하려고 그랬지!? 발정이라고! 이게 어디서 고아한 엘프님한테!"

안고 있던 운현의 팔을 풀며 상아가 달려가고 펠리시아는 웃으며 도망쳤다. 그 둘의 모습에 에리스는 쓴웃음을 짓고 운현에게 말했다.

"슬슬 돌아갈까?"

"아, 네."

아까 전 찾은 종이를 가방에 쓱 넣은 운현은 차분히 걸으며 생각했다. 아까 전 상아의 말에서 무언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운현은 앞서 걷는 상아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 얘기에서 궁금한게 있는데."

"응."

"그 연인은 어떻게 됐어?"

"무슨 연인?"

"지금도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하이엘프의 운명의 여인. 그럼 그녀는 다른 여자를 생각하며 매번 자살을 하고 있는 그 하이엘프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거야?"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일단 그 사람은 실종됐어.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미쳐서 다른 여자만 생각하고 계속 자살을 시도하는데 나같아도 떠나겠다."

"그 하이엘프는 그를 계속 사랑할까?"

"글쎄... 운명에 따르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까? 이 일은 하이엘프들의 일들 중에서도 치부에 가까운 일이라서 자세한 상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

상아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거 제니스씨한테 물어봐도 괜찮으려나?"

"괜찮지 않을까? 제니스씨가 이런 질문에는 잘 대답해주더라고."

"그렇군. 아. 그리고 하나 더."

"뭐?"

"그 불로불사의 비약은 어디갔을까?"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피식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운현이 의아해하자 상아는 앞서 걸으며 담담히 말했다.

"역시 인간은 인간이네. 운현. 너도 불로불사를 꿈꿔?"

"사람인 이상 죽음이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지. 그러고보니 제니스씨도 이런 질문을 했는데."

"아, 그래? 그럼 이 말은 해줄필요 없겠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는 그 고통과 괴로움? 야. 그거 한번 겪어보니까 진짜 죽을맛이더라. 절대 싫어."

제니스와 이야기했을때와는 사고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운현이다. 미야가 죽을 뻔한 것을 눈 앞에서 경험하고 그때의 공포를 떠올리니 다시 몸서리가 처진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상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 비약은 사라졌어."

"누가 훔쳐간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면 그가 누군가에게 줬을 수도 있고."

"그거 아쉽네. 비싸게 팔 수 있을텐데 말이지."

"저주의 비약을?"

상아는 피식 웃은 후 운현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축복이라고."

"내가 네 눈 앞에서 죽으면 그게 축복이라고 할래?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운현은 상아의 말에 짜증을 내며 자신의 볼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떼어내었다. 그의 말에 상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사는건 정말 어렵구만... 내 앞에서 네가 죽는다면 나도 그 하이엘프처럼 운명을 거스르려고 발악을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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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셨어요? 거긴 어떤 동굴이었나요?"

"음... 다난교의 신자들이 연구를 하던 곳 같았어. 인신공양을 한 흔적이 남아 있더라고. 여기처럼."

운현들이 복귀하자 기다리고 있던 윈드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가볍게 답해 준 상아는 팔짱을 끼고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자. 그럼 정리해볼까? 윈드. 이곳에서 알아낸 건 뭐야?"

"별로 없어요. 다만 시체들이 빠르게 부패했다는 거죠. 이들이 실종된 것은 길어여 이틀에서 사흘 정도인데 부패된 것을 본다면 거의 열흘 이상 지난 것 같단 말이죠. 마치 일부러 부패시키는 것 같은데... 그쪽은요?"

"우리 역시 비슷했어. 다만 그 동굴에는 몬스터들이 있었지. 아, 윈드. 정액이나 애액을 조사해봤어?"

"네? 아. 예. 특이하게 정액과 애액은 몇일 되지 않은 것 같더라구요. 체내에 있는 것들은 모두 똑같았어요. 마치 싼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끈적끈적한게..."

"이쪽도 마찬가지야. 공통점은 정액과 애액이라는 건데..."

"무슨 의미일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 그리고 그 동굴에서 이런 걸 발견했어. 운현."

"아. 응."

운현은 가방에서 아까의 비밀방에서 얻은 종이를 꺼내어 윈드에게 주었다. 윈드 역시 알 수 없는 언어인지 고개를 갸웃거렸고 상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운현을 보았다.

"아마 특수한 종류의 암호같은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모험가 중에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단 말이지. 운현. 해독해줘."

"에또..."

비밀방에서 발견한 암호문을 보며 운현은 차분히 그 내용을 읽어주었다. 그의 말에 윈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아에게 물었다.

"운명을 바꾼다는게 무슨 소리에요?"

"나도 몰라. 뭔가 정보가 더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발견한 것은 그것 뿐이라서 말이지. 혹시 그 안에서 이런 거 발견한 건 없어?"

"아무것도요."

"그럼 그 방은 연구실? 아니면 조사실인것 같네. 보니까 실험도구같은 것도 있더만. 아무튼 그쪽에서는 거의 다 발견한 것 같은데 확인해보고 싶으면 가봐. 이 길로 쭉 가서 평원을 지나치면 있는 숲 옆의 동굴이야."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상아 길드장님. 도움을 주셔서. 그리고 운현."

"네?"

"괜찮다면 이런 문서를 발견했을 때 도움을 요청해도 될까? 이야~ 네가 암호해독을 할 수 있다니. 다행이야. 주변에 암호해독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매번 가문에 지원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 의뢰를 모험가 길드에 요청하면 되겠지?"

윈드는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고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냥 글 읽듯이 쭉 읽으면 되는 것이라면 의뢰를 받아서 하는 것이 낫겠다 싶은 그가 허락하자 윈드는 상아에게 말했다.

"이야~ 정말 좋은 길드원인 것 같아요. 저한테 남자도 소개시켜주고... 근데 그 남자는 언제 온다고 하디?"

"그러게요? 그래도 약속한 날짜 전에는 올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후후후~ 어떤 남자일까~?"

기뻐하는 윈드를 보며 운현 일행은 길드로 돌아갔다. 길드로 돌아오자마자 필레와 에리스가 일을 보러 들어가자 상아는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한잔 할텐가."

"응. 여기 맥주 두잔이랑 과일 좀 줘요."

운현이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맥주 두잔과 과일안주가 나왔다. 과일을 깨작깨작 먹으며 운현이 맥주를 홀짝이자 상아는 그를 바라보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근데 말야."

"응? 뭐가?"

"아까 일 말인데..."

"아까 일이라면... 동굴에서?"

"응."

상아는 탁자를 톡톡 두들기며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아직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정리가 되지 않은 듯 그녀는 말없이 맥주를 마셨고 한잔의 맥주를 전부 마셨을 때가 되서야 그녀는 무거운 입술을 열었다.

"운명을 바꾼다는 것.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고 자시고, 난 아무 생각이 없는데?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

"장난치지 말고."

"흐음... 네 말대로 난 인간이라고. 운명이라는 것은 몰라. 그냥 열심히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바꾼다고 해봤자 어차피 그 운명을 읽을 수 없는 이상 정해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 나는 죽음을 보았지만 다른 엘프들은 자신의 연인을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지. 운명이 정해놓았다면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그들과 이어지게 되어버린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 운명의 상대는 과연 누구일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만약 네 운명의 상대가 나타난다면 다른 남자한테 쫄랑쫄랑 가버리겠다는거야?"

"그, 그런 거 아니야!"

운현이 자신도 모르게 차갑게 말하자 상아는 당황하며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자리에서 맹세할게."

상아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단검을 꺼내 자신의 손바닥을 쓱 긁었다. 그녀의 하얀 손바닥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자 운현은 당황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뭐하는거야!?"

"피의 맹세. 나 상아 위한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운현. 너만을 사랑할 것을 이그드라실에 맹세한다. 비록 운명이 거부할지라도, 나는 운명을 거스르려는 하이엘프 하우드의 뜻을 따를 것을 맹세한다."

"...이거 감동해야 하나. 그 하이엘프 하우드가 그 하이엘프야?"

"응. 매일같이 자살을 시도하며 운명을 거스르려는 자. 그의 이름이 하우드야."

"위한은 성?"

"응. 몰랐어?"

"몰랐지. 가르쳐 준 적 없잖아."

운현의 말에 상아는 피식 웃었다.

"그럼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가자. 으음... 일단."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운현의 옆으로 다가간 후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가장 약한 부위부터 가르쳐줄게."

"쪽!"

운현의 볼에 키스한 상아는 그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고 운현은 그녀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아. 그리고 잠깐만."

상아의 손에서 주르륵 흘러나오는 피를 바라보던 운현은 그녀의 손을 잡은 후 곧장 힐링을 사용했다. 그의 힐링에 손바닥에 난 상처가 사라지자 상아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그를 보았다.

"이걸 익히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꼬... 쯧쯧."

"진짜 죽는줄 알았다고."

"그래. 오늘은 이 할미가 보듬아주마. 자자. 어서 오려무나~"

178====================

fanaticism

상아와 함께 그녀의 방에 들어간 운현은 처음의 당당한 기세와는 다르게 머뭇거리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우왓!?"

"흐으으으으음~"

상아의 머리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며 운현은 그녀의 긴 귀를 살짝 깨물었다. 그것에 부르르 몸을 떤 상아는 몸을 비틀어 그에게서 떨어졌다.

"저, 저기 우리 씻고 하는게 낫지 않을까?"

"그것도 좋지만 난 지금의 네 향기도 좋은데?"

"그...래?"

"응."

떨떠름히 말한 상아는 운현이 다시 자신을 안아들자 그의 품에 안겼다. 헤스티아보다 조금 작은 상아를 데리고 긴 의자에 앉은 운현은 그녀를 자신의 뒤에 앉힌 후 말했다.

"아까 약한 부분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말야."

"흐읏?!"

"사실 알고 있어."

아까 나무 밑에서 열심히 만지며 반응을 확인했었던 운현은 상아의 깨끗한 목덜미를 살짝 깨물며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에 부르르 몸을 떤 상아는 당황하며 말했다.

"오, 옷 벗고 침대에서 하자!"

"응. 이따가."

"우우우..."

"왜 자꾸 그래?"

"으으... 그게. 슈트를 입고 다니면 땀이 좀 차서..."

"괜찮다니까."

상아를 향해 웃어보이며 운현은 슈트의 위로 그녀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능숙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가처럼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그의 손길에 상아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몸을 돌려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아, 아무래도 안돼겠어! 금방 씻고 올게!"

후다닥 달려 방 안에 있는 욕실로 상아가 도망치듯 가버리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훌러덩 옷을 벗었다.

"이제와서 도망치려 하다니. 간이 부었구만."

지금까지 도발한 대가를 치룰 때다. 운현은 욕실의 문을 만져보았다. 잘 잠겨져 있는 욕실문에 운현은 피식 웃었다.

"후후후후..."

인벤토리에서 락픽을 꺼낸 운현은 열쇠구멍에 락픽을 걸었다. 잠시 후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자 운현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히익!?"

욕조에 잠겨 있던 상아는 운현이 들어오자 화들짝 놀랬다.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운현은 빙긋 웃었다.

"같이 씻자."

"으... 으응. 근데 문은 어떻게... 아. 너 도적이었지?"

상아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이자 운현은 부르르 몸을 떤 후 터덜터덜 걸어 샤워기의 물을 몸에 뿌렸다. 욕조에 앉아 흥미진진한 눈으로 운현의 나체를 바라보던 상아는 생긋 웃었다.

"확실히 거친 몸이네."

"아무래도 모험가 생활을 하다보니까. 그러는 너는..."

"난 왜?"

항상 슈트에 감싸져 있어 노출된 피부를 본 적이 없었던 운현은 욕조 바깥에 머리와 팔을 꺼내어 기대고 있는 상아를 보며 말했다.

"피부가 굉장히 깨끗하네?"

백옥처럼 새하얀 살결이 물기에 젖어 욕실 조명에 의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운현이 묻자 상아는 베시시 웃었다.

"헤헤. 그래? 관리는 딱히 하지 않는데..."

"타고난거 라는건가..."

"등 씻어줄까?"

운현이 타월에 비눗물을 뭍히고 몸을 닦기 시작하자 상아는 싱글거리며 말했다. 그녀의 제안에 운현은 타월을 그녀에게 넘기고 욕조쪽으로 향했다.

"자."

"응. 잠깐만."

욕조에서 일어난 상아는 운현의 뒤에 앉았다. 그가 건넨 타월을 받은 그녀는 운현의 등을 닦아주다가 그의 목덜미에 키스했다.

"어때?"

"좋다. 그런데 너 체구치고는 의외로 가슴이 있다?"

작은 체구에 비하면 꽤나 커다란. 그간 슈트에 의해 가려지고 있었던 상아의 몸을 보게 된 운현이 감탄하자 그녀는 우쭐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벗으면 좀 굉장하지."

"앞으로는 슈트 잘 입고 다녀."

"응? 왜?"

"다른 녀석이 탐낼까봐 두렵다."

"하하하~!! 뭐야~ 으이구~ 다른 사람이 나 보는게 그렇게 싫어쪄요? 구래쬬요~?"

"야야. 나 나간다?"

상아가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운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그를 향해 키득거린 상아는 자신의 가슴에 거품을 뭍혔다.

"솔직하지 못한 꼬맹이를 위한 이 할미의 선물이지. 받아랏!"

"오옷!?"

자신의 상체에 비누거품을 잔뜩 뭍힌 그녀는 운현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탄력적이고 탱글거리는 두개의 가슴과 매끄러운 살결, 그리고 미끌거리는 비누거품이 등에 마찰되기 시작했다. 딱딱한 두개의 돌기가 등에 닿는 것에 양물에 힘이 들어간다.

"꽤, 꽤 하는데?"

"흐흐흐. 여기가 좋아? 여기가?"

운현이 신음하자 상아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가슴을 더더욱 강하게 문질렀다. 점점 진해지는 쾌감에 운현이 신음성을 토해내자 그녀는 씨익 웃은 후 운현의 앞으로 이동했다.

"이쪽도 해줄게. 오호. 많이 느꼈나봐?"

상아의 아름다운 몸을 정면에서 보게 된 운현은 그녀의 몸매를 보며 감탄했다. 예쁜 얼굴과 잘 어울리는 조각같은 몸매다. 그간 슈트가 얼마나 조인 것일까. 적어도 B, 잘 잡으면 C컵은 될 법한 그녀의 가슴에 운현이 아무런 말도 못하자 상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 진짜 생각보다 가슴이 커서..."

"후후후후... 그럼 어디 감촉도 즐겨보겠어?"

선홍색 유륜과 벌써 딱딱하게 솟아 있는 새끼손톱만한 유두에 운현의 시선이 닿자 상아는 비누거품이 묻어 있는 자신의 가슴을 쭉 내밀었다. 운현이 홀린 듯 그곳에 다가가자 상아는 손을 내밀여 그의 얼굴을 밀어내었다.

"헤헤~ 그냥은 안돼지."

"그럼?"

"으음... 일단 씻고?"

씨익 웃은 그녀는 운현의 손과 머리가 움직이려 할때마다 그것을 다 막아낸 후 운현의 앞부분을 모두 씻겼다. 뜨거운 물로 몸을 씻겨 준 상아는 자신의 몸도 씻은 후 욕조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들어와."

"그러지."

운현이 욕조 안으로 들어오자 상아는 베시시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살며시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은 상아가 편하게 등을 기대자 운현은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엉덩이에 닿는 감촉이 좋구만."

탱탱한 둔부의 사이에 운현의 남성이 끼어 있는 것에 좋아하던 상아는 살짝 고개를 돌려 운현의 볼에 키스했다. 자신의 복부를 두르고 있는 그의 손을 만지며 깍지를 끼고, 또 다리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치던 상아는 운현의 숨결이 거칠어지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이제 버티기 힘들어?"

"응? 아니."

"...에?"

예상 밖의 반응에 상아는 오히려 당황했다. 그의 몸을 애무하며 자신은 벌써 달아올랐는데 운현의 목소리가 너무 평온한 탓에 그녀가 당황하자 운현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정도론 곤란하자."

"무슨.. 히야앙!?"

운현은 상아의 몸을 살짝 올려 다리를 뺀 후 그녀의 양 다리를 다리로 걸어 잡아 벌렸다. 욕조 안에서 다리가 쫙 벌려지게 된 상아가 당황하는 사이 운현은 그녀의 몸을 한 팔로 끌어안아 꽉 고정한 후 속삭였다.

"잘도 까불었겠다."

"자, 잠깐만. 운현. 흥분한 것 같은데."

"난 지극히 냉정해."

"냉정은 무슨... 흐앙!? 힛!?"

물기와는 다른 계곡 안의 끈적함이 느껴진다. 운현의 손가락이 계곡의 안쪽을 부드럽게 쓸자 상아는 갑작스러운 쾌감에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자신의 품 안에서 느끼고 있는 그녀의 긴 귀를 살짝 깨문 운현은 상아를 안아 들었다.

"여기서만 하기에는 그렇지? 이제 내 차례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자. 잠깐. 잠깐만... 하으으응!!"

그가 자신의 몸을 잡고 일어나자 끌려 일어나게 된 상아는 운현의 움직임을 막으려 했지만 그녀의 좁고 뜨거운 계곡 안으로 들어간 운현의 손가락은 계곡의 말캉거리는 벽을 쉽게 자극했다. 손가락이 들어 온 것에 상아가 당황하며 몸부림을 쳤지만 운현은 그녀의 움직임은 무시하며 더더욱 그녀의 벽을 자극해나갔다.

"하윽! 윽! 흐앙...!"

상아의 도톰한 입술에서 쾌락의 비음이 연신 터져나왔다. 하얀 피부는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요염한 색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던 운현은 그녀의 작은 어깨에 키스한 후 살짝 깨물었다.

"아으으응...!"

"그러고보니 넌 매일 슈트를 입고 다녔지."

"에? 왜?"

"쪼옥!"

"흣!"

운현은 상아의 어깨를 깨물고 진하게 키스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슈트에 아슬아슬하게 가려질 위치만 골라서 키스마크를 남긴 운현은 그녀의 하얀 몸에 자신이 만든 흔적이 남자 뿌듯한 마음에 손가락을 더더욱 크게 움직였다.

"하그으으으읏!!!"

그가 키스마크를 만들어내는 것에 어쩔 줄 몰라하던 상아는 운현의 손이 음부의 안쪽 위험한 곳에 닿자 크게 몸을 떨었다. 바들바들 떨리던 그녀의 몸이 축 늘어지려 하자 운현은 그녀를 안고 있던 손에 힘을 넣어 그녀를 지탱했다.

"하아...하아..."

"벌써 이렇게 싼거야?"

"시, 시끄러워..."

운현의 말에 상아는 투덜거리며 손을 내려 계곡을 자극하는 그의 손을 떼어내었다. 순순히 그녀가 하는 대로 손가락을 뺀 운현은 상아의 몸을 잡아 돌린 후 그녀에게 키스했다.

"쭈룹...쪽..."

타액과 타액이 오가는 진한 키스가 이어진다. 상아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두 팔을 들어 운현의 목을 끌어안았고 운현 역시 나긋한 상아의 작은 허리를 부숴져라 꽉 끌어안았다. 키 차이 때문인지 상아가 거의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진하게 키스하던 운현과 상아는 천천히 입술을 떼고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침대로 갈까?"

"수건은 어딨어?"

"저기 벽장에..."

상아가 비틀거리며 욕조에서 나가자 운현은 그녀를 따라 나가 욕실 안에 있는 벽장의 수건을 꺼내어 상아의 몸을 닦아주었다. 뜨거운 물로 충분히 이완된 그녀의 몸이 뽀송뽀송해지자 운현은 자신의 몸을 닦아주는 상아의 긴 머리를 고정하고 있는 비녀를 풀었다.

"사르륵..."

은백색의 폭포수가 생겨나는 것 같다. 반짝거리는 머리칼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운현은 상아의 귀를 만지며 긴 머리칼을 쓸어냈다.

"왜?"

"아니. 예뻐서."

"후후후후... 그걸 이제라도 알았나?"

"아니 처음 봤을 때부터 예쁘다고는 생각했어."

"크, 크흠! 넌 가끔씩 이렇게 진지해져서 문제야. 다른 여자들에게도 이런 말 했겠지?"

"응. 솔직한 것이야 말로 내 장점 중 하나니까."

"이럴 때는 그냥 거짓말 좀 해라..."

운현의 말에 시무룩해진 상아는 다 닦은 운현의 몸에 수건을 휙 던졌다. 그것을 가볍게 받아 뒤로 넘긴 운현은 상아의 작은 몸을 가볍게 안아들었다.

"그래도 지금은 너만 보고 있다고."

"...그럼 키스해줘."

공주님 안기를 당한 상아는 운현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내밀었다. 도톰하고 반들거리는 예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친 운현은 천천히 혀를 밀어 넣었다. 살짝 벌려져 그의 설육을 받아들인 상아는 입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타액을 마시며 그에게 자신의 타액을 넘겼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혀가 겹치기 시작했다.

"쪽... 핥짝... 쪽..."

상아를 안아주며 그녀와 키스하던 운현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키스에 집중하고 싶지만 계속 이곳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녀를 데리고 침대로 이동한 운현은 살며시 상아를 위에 올려 놓았다.

"으음... 싫어. 좀더..."

운현이 입술을 떼어내려 하자 상아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 계속 키스를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키스 상태를 유지하며 침대 위에 올라간 운현은 목을 끌어안고 있는 상아의 손이 풀리자 피식 웃었다.

"어휴. 입술 좀 봐라."

"그러는 너는."

서로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바라보며 운현과 상아는 다시 키스했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농밀한 키스가 아닌, 그저 짧기만한 키스에 불과했다.

"이제부터 하는거네."

"응."

"으음... 그게 말야. 운현."

"응?"

"하기 전에 말할게 있는데."

"뭐?"

"나 처녀 아냐."

머뭇거리던 상아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게 뭐?"

"응? 아니 네가 신경쓸까봐... 아! 그래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스승님 뿐이고 처녀를 잃은 거는 같이 모험을 하던 여자 동료랑 밤을 지새우다가 불장난으로 한 것 뿐이야! 남자는 없다고!"

"아니 내가 듣기로 너 남창들이랑 자주 놀았다고 들었는데?"

"그, 그건. 그냥 접대 때문에... 남창들이랑 제대로 한 적은 한번도 없어. 키스도 그 여자랑... 그리고 펠리시아에게 당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음..."

사실 운현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 처녀이고 자신밖에 모른다면 남자의 독점욕이 채워지니 좋다지만 운현이 처녀에 고집하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600년을 넘게 살아 온 상아가 처녀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게 또 웃기는 일이다.

"신경 쓰지마."

"시, 신경 쓰인다고! 으으... 널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처녀였을텐데..."

"으음... 그게 그렇게 중요한건가."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떨떠름히 말했다. 상아가 자신과 만나는 와중에 다른 남자를 만나서 처녀를 잃은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까지 그걸로 고민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그는 팔짱을 낀 후 생각했다.

"으으으으음..."

조마조마한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던 상아는 운현이 눈을 뜨고 팔짱을 풀자 침을 꼴깍 삼켰다.

"생각해보니 중요한 것 같다. 나 기분 상했으니까 오늘은 그만 하자."

"에에에에에!?"

"왜?"

"그, 그런게 어딨어..."

"응. 그렇지?"

"에?"

운현의 말에 상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운현은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은 후 귓가에 속삭였다.

"내 고집에 어울려 주고, 그것을 인정까지 해 준 너에게 그럴리 없잖아."

179====================

fanaticism

"운현..."

상아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꽉 끌어안았다. 상아의 달콤한 향기를 느끼며 그녀를 안아 준 운현은 살며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런 고로. 이제 시작하겠어용."

"...꼭 그런 말투로 말해야해?"

"아니. 너 긴장한 것 같아서 말이지."

빙긋 웃은 운현은 상아의 다리를 살며시 벌렸다. 그것에 그녀가 움찔하자 운현은 것 보란 피식 웃었다.

"거봐."

"아, 아니 이건 겁먹은게 아니라..."

"실제로 남자랑 하는 건 처음이야?"

"...응."

운현의 말에 상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을 붉혔다. 지금까지 꾸준히 도발을 해왔는데 남자랑 제대로 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녀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술을 살짝 삐죽거리고 있자 운현은 상아의 가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하읏..."

그의 손길이 오똑 솟은 유두를 건드리자 상아는 낮은 쾌감에 신음을 토해냈다. 그런 그녀에게 싱글거린 운현은 상아의 매끈한 다리를 잡고 천천히 벌려 올렸다.

"어휴. 많이 젖었네."

"...그, 그렇게 빤히 보지 말라고."

"부끄러워?"

"안부끄럽겠냐!?"

운현의 말에 상아는 어이없어하며 버럭 소리쳤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지금 막 하려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다리를 쫙 벌리고 소중한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부끄럽지 않은 것이 더 웃기는 일이다. 상아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말하자 운현은 키득거린 후 그녀의 계곡 부근에 얼굴을 가져갔다.

"...야야. 너 뭐 하려... 으읏!"

"핥짝."

운현의 혀가 계곡의 틈새를 핥고 지나갔다. 그것에 상아는 매끈한 허리를 꿈틀거렸다.

"거, 거긴 더러... 으으읏! 하읏! 으윽!"

"핥짝. 쪽... 핥짝."

상아가 당황하는 것을 무시하며 운현은 그녀의 계곡을 연신 핥았다. 진한 타액과 함께 섞여 나오는 투명한 음액은 그의 혀가 더욱 자극해주기를 바라는 듯 꿀렁거리며 샘솟듯 솟아나오고 있었다.

"허읏! 으응! 그, 그만..."

"쪼오옥. 좋으면서 뭘."

운현이 음부를 직접 핥으며 웃자 상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 고개를 틀어버렸다. 침대보를 꽉 잡고 쾌감을 버티려는 그녀의 행동이 우스워 운현은 상아를 잡아 쭉 끌었다.

"에엑!?"

그녀의 양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건 운현은 눈 앞에 보이는 선홍빛 살결에 다시 입맞췃다. 도톰한 계곡의 살벽 바깥으로 나온 얇은 살을 핥고, 그것을 혀로 벌리며 음부 위의 작은 알을 코끝으로 자극하던 운현은 상아의 몸이 계속해서 떨리고 튕겨지자 손을 내려 그녀의 가슴을 잡았다.

"하윽! 으윽! 흐아아아앙!!"

작살에 꽂힌 생선처럼 상아의 몸이 퍼득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운현은 그녀의 계곡을 애무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아의 몸이 딱딱히 굳어졌다. 어깨에 걸쳐져 있던 긴 다리가 쭉 펴지고 앙증맞은 발가락이 꽉 오무려졌을 때 운현은 자신의 얼굴에 뜨거운 애액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이 축 늘어진다. 운현은 숨을 헐떡거리며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고 있는 상아를 향해 피식 웃었다.

"좋았어?"

"하아...하아..."

자신의 질문에 답도 못한 채 숨만 헐떡거리는 그녀를 향해 웃어보인 운현은 슬슬 준비가 되었다 싶어 천천히 그녀의 몸을 내려 놓았다. 아름다운 다리를 핥으며 상아의 어깨까지 쭉 민 운현은 투명하고 끈적한 애액이 약간의 열기를 내며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플만큼 딱딱해진 남성은 어서 계곡으로 들어가길 원하고 있었다. 자신의 남성을 상아의 좁은 계곡 입구에 가져다 댄 운현은 상아의 눈에서 빛이 돌아오자 차분히 말했다.

"이제 한다."

"으으응..."

생각할 여유따위는 없나보다.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대답하자 운현은 천천히 남성을 밀어 넣었다. 약간의 저항감이 있었지만 애무로 인해 꽤나 풀어져 있는 계곡은 점점 벌어지며 두꺼운 침입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도톰한 살벽이 머리가 들어간 양물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쾌감을 느낀 운현이 인상을 썼을 때 서서히 정신을 차린 상아는 운현을 보며 숨을 헐떡거렸다.

"하악...으윽... 배, 배가 이상..."

"아직 반도 안들어갔다."

"으... 이게 남자...야?"

"응. 할머니한테 남자 맛을 보여드리게 됐네. 이야. 이렇게 말하니까 진짜 쓰레기 같은데..."

"후후후... 그게 그렇게 찔리면 이 이쁜 할미한테 안기려무나."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상아는 더 없이 사랑스러운 것을 보듯 따뜻한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며 팔을 벌렸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빙긋 웃은 운현은 허리를 쭉 밀어 넣었다.

"허윽!"

"자... 이제 다 들어갔다. 우우... 엄청 조이잖아. 느낌도 좋고..."

"하아...하아..."

처음으로 남자를 받아들인 상아의 계곡은 살아 있는 독립된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그의 남성을 꽉 물었다.

"으으... 이제야..."

"이제야?"

"너와 하나가 됐어..."

꽤나 기쁜 모양이다. 상아는 밝게 웃으며 주르륵 한방울 눈물을 흘렸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가 흘린 눈물을 가볍게 핥은 운현은 상아의 입술에 입맞췄다. 혀와 혀가 오가는 키스가 아닌, 그저 입술만을 대고 있는 차분한 키스가 끝나자 운현은 상아의 볼을 살짝 꼬집은 후 말했다.

"앞으로 많이 할텐데 뭘 그러시나."

"흣... 그렇지만... 넌 동료들과..."

"응. 걔들도 날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니까 그걸 무시할 수는 없지."

운현은 싱글거리며 상아의 입술에 몇번 더 키스를 한 후 가슴을 주물렀다. 손아귀에 감기는 찰진 감촉이 좋다. 따뜻한 살결과 만질때마다 튕겨져 나오려는 가슴의 탄력을 즐기던 운현은 상아의 헐떡임이 조금 가라앉자 그녀의 이마에 키스한 후 물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으응. 배에 뭐가 가득 차 있는 것 같긴 한데... 아프지는 않아."

"그럼 이제 움직인다."

"하윽! 잠깐만 잠깐만!"

운현이 허리를 천천히 빼자 그의 양물을 물고 있던 음부가 끌려오기 시작했다. 그 쾌감에 상아는 몸을 버둥거리다가 그를 꽉 끌어안고 매달렸다. 상아의 외침에 운현은 히죽 웃은 후 속삭였다.

"싫어."

"히이잉!?"

거의 끝까지 빼버린 남성이 다시 깊숙히 들어왔다. 그것에 소리없는 비명을 내지르듯 입만 벌린 채 뻐끔거리던 상아는 자신의 입을 운현이 입술로 막아버리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눈물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쪽... 흐..."

"잠깐만이라고 했는데..."

상아가 자신의 목을 살짝 깨물자 운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을 느끼며 상아는 숨을 몰아쉰 후 말했다.

"이... 이제 됐어."

"그럼 한다."

"찔꺽!"

"캬흐응!"

"야. 넌 한번 할때마다 이럴래?"

상아의 이런 반응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며 또 어이없기도 한 운현이 투덜거리듯 말하자 상아는 눈물을 머금고 그를 노려보다가 주먹을 들어 그의 가슴을 툭 쳤다.

"그, 그럼 어떡해! 네가 한번 움직일때마다 진짜 감전되는 것처럼..."

"것처럼?"

"...정신을 잃을 정도로 좋은데..."

'이거 상성이 너무 좋은데?'

이정도로 좋을 수가 있는건가? 운현 역시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여인들을 봐도 상아처럼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엘프 종특인가...'

상아만큼은 아니지만 바제트도 자신과 할때면 매번 정신을 놔버릴 정도로 느끼곤 했다. 운현은 상아의 이마에 키스해 준 후 속삭였다.

"그럼 조금만 더 참아봐."

"싫어! 너랑 하는건데 정신을 잃기 싫다고!"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천천히 할게. 천천히."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지만 운현은 상아에게 말한대로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바제트와 할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그녀의 몸 여기저기를 핥고, 가끔씩은 키스를 하며 허리를 움직인 운현은 자신의 움직임에 상아가 조금씩 좋은 반응을 보이자 히죽 웃었다.

"이제 좀 괜찮아?"

"으응... 이정도라면..."

"쭈릅!"

"흐극! 그... 괜찮은 것 같아..."

상아는 쾌감에 고개를 쳐들고 바들바들 떨다가 힘겹게 말했다. 전혀 안괜찮아보인다면 운현도 더 이상은 한계였다. 따뜻하고 촉촉한 그녀의 음부가 주는 쾌감을 더 버티기 힘들었던 운현은 천천히 몸을 뗀 후 그녀의 양 다리를 잡아 올렸다.

"에!? 뭐, 뭐하려고...?"

"어쩔 수 없다. 미안."

"뭐가 미안...?"

"찔꺽! 찔꺽!"

"하윽! 윽!? 아흐으으읏!?! 가, 갑자기 이럼...! 으하으으응!!"

"조금만 참아! 으윽..."

운현은 폭발할 것 같은 양물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의 남성을 꽉 물고 놓아주지 않던 계곡은 점점 뜨거워졌고 운현은 결국 허리끝에서 차오르는 쾌감을 버티지 못하고 그녀의 안에 사정해버렸다.

"으읏...!"

"히이이이이이이잉!"

"하아...하아..."

운현은 상아의 위에 누우며 그녀의 입술에 입맞췄다. 절정의 쾌락에 정신이 나가버렸는지 상아는 그가 키스를 하고 있음에도 반응하지 못한 채 움찔거리고만 있을 뿐 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운현은 천천히 남성을 뽑아내었다.

"으읏...!"

양물이 뽑히며 만들어낸 작은 쾌락이 상아의 정신을 돌려 놓았다. 그녀의 눈에서 빛이 돌아오자 운현은 여전히 딱딱한 남성을 내버려 둔 채 상아의 옆에 누웠다.

"이...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아..."

혀를 빼물고 헐떡거리던 그녀는 운현이 내밀어 준 팔에 머리를 올렸다. 몸을 꼼짝도 하기 싫은 쾌락의 여운을 즐기며 상아는 그의 품으로 힘겹게 꼬물거리며 움직였다.

"그래. 그래."

"후후... 고얀 녀석이로고. 이 할미를 이렇게 기쁘게 하다니 말야."

손을 올려 운현의 볼을 살짝 꼬집은 상아는 그의 입술에 키스한 후 그를 꼭 끌어안았다.

"복 받겠네. 할머니한테 이런 거 해드려서 말야."

"그래. 복 많이 받아라."

자신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 친 운현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상아는 운현의 품에 꼭 안겨 얼굴을 문질렀다. 아기처럼 애교를 피우는 그녀의 행동에 운현은 손을 뻗어 그녀의 탄력적인 둔부를 쓸어만졌다.

"흐잉!? 또, 또 하려고?"

"응. 한번으로 만족해?"

"그런건 아니지만... 남자들은 한번 하면 만족하지 않아? 그리고 너 만족하면 이런 거 싫어해지는 상태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의 손길이 노골적으로 둔부를 더듬고 주무르자 그것에 쾌감을 느끼면서도 상아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상아의 이마에 키스하고 얼굴 여기저기에 키스한 운현은 눈을 살며시 감고 입술을 내미는 상아의 도톰한 입술에 마지막으로 키스한 후 그녀를 잡아 자신의 위로 올렸다.

"한번 하면 만족하긴. 아직 멀었는데?"

"그, 그래? 그럼 조금 쉬었다가 할까? 너 무리하면..."

"무리 아니야. 웃쌰."

"뭐하려고?"

운현이 몸을 일으키자 상아는 그의 위에 걸터앉은 채 물었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딱딱히 솟아 있는 남성을 본 상아는 얼굴을 붉히고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이 상태로 하려고?"

"일단 익숙해지는게 중요한 것 같은데. 한번 할때마다 그렇게 느껴대면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잖아."

"으으... 그렇긴 하지만."

"그럼 자. 이번에는 네가 직접 넣어봐."

"내, 내가?"

침을 꿀꺽 삼킨 상아는 크고 단단한 그의 남성을 보며 머뭇거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웃으며 운현은 얌전히 기다렸고 상아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 못해도 뭐라고 하지마."

"그럴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워낙 명기여야지.'

단지 넣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쾌감을 받는데 여기서 테크닉까지 살리면 피곤하다.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상아는 영 불안한지 그의 양물을 살며시 손으로 잡은 후 자신의 음부의 입구에 가져다 대었다.

"그럼... 넣... 하윽!? 읏!!!?"

입구 부분에 양물을 넣은 상아가 살며시 계곡의 입구에 넣은 순간 그녀는 진한 쾌감을 받았다. 그 결과 다리의 힘이 풀렸고 한번에 양물이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갑작스러운 삽입에 상아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운현의 위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야야."

"하으. 으아...아으으아..."

너무 큰 쾌감 때문일까? 상아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혀만 빼문 채 허덕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운현은 쓰게 웃으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하이고... 우리 할머니 적응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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