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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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에게 있어서는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식사시간이 끝났다. 만취한 필레와 헤스티아, 미야를 각자의 방에 던져 놓은 바제트는 피곤한 얼굴로 운현에게 물었다.

"괜찮아? 많이 못먹던데."

깨작거림. 그 이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운현은 저녁을 새 모이만큼 밖에 먹지 못했다. 어쩌면 이게 밖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정말 모래씹는 느낌밖에 들지 못했던 운현은 바제트가 하품을 하며 방으로 돌아가자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야~ 오늘따라 되게 귀여운데?"

"그렇지?"

"그럼 난 피곤해서 이만!"

상아가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운현은 척 손을 들어올린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 그의 뒷목을 잡아챈 상아는 그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그 전에 우리 할 말이 있지 않아?"

"어, 없는데?"

"그래? 그럼 난 시청에 좀 갔다와야겠네."

"시청에는... 왜요?"

운현이 불안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묻자 상아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 현상금도 받아야하고..."

"하하하하! 우리 귀여운 상아가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으려나? 자~! 어서 조용한데 가서 이야기할까?"

"그게 낫겠지?"

상아는 씩 웃은 후 운현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운현이 상아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그녀의 방 앞을 지키고 있던 에리스는 가볍게 인사하며 그를 통과시켜주었다.

'난 모르쇠로 버텨보자.'

방에 들어가며 운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방침을 정했다. 어차피 미믹을 소환하는 것은 스킬도 아닌데다가 옷은 인벤토리에 있으니 그녀가 알리가 없다는 생각을 한 운현은 아예 똥배짱을 부리자고 마음먹었다.

"야이 등신아. 숨기려면 잘 숨길 것이지."

"뭘 숨겨?"

"네가 빅 빌런인지 뭐시기잖아."

"무,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네."

운현이 웃으며 부정하자 상아는 팔짱을 끼고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운현은 아예 철판을 깔았다. 솔직히 걸릴게 뭔가. 상아의 분석 스킬이 걸리긴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 않은가.

"끝까지 부정하려고?"

"부정이고 자시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흐음... 그럼 어쩔 수 없나?"

상아는 귀찮다는 듯 입맛을 다신 후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예상 외로 쉽게 끝날 것 같은 생각에 운현이 반색하려 하자 상아는 방 구석에 있는 한쌍의 작은 팔찌를 가져왔다.

"그게 뭐야?"

"아. 이거. 사랑하는 달링에게~ 라는 팔찐데 말야. 이 팔찌를 차고 있으면 서로가 원할때 상대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마도구야."

"아니 그런 무시무시한 마도구를 왜 나한테 채우려는건데? 너 나 의심하는거야? 나 못믿어?"

"에이~ 내가 왜 널 못믿겠어~ 그냥 네가 좀 걱정되서 그렇지."

싱긋 웃은 상아는 빠르게 움직여 운현의 팔을 잡았다. 레벨이 100이 되었고 눈썰미가 올랐다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그녀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팔에 팔찌가 채워지게 된 운현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너 이거 채우면 나 너랑 이제 평생 말 한마디도 안할거야."

"상관없어. 네가 빅-빌런 미믹맨만 아니면 괜찮아. 지금 그 미믹맨을 잡으려고 용병 연맹에서 이를 갈고 있거든."

"....."

"그냥 내 오해로 끝나서 네가 날 피하는 정도라면 그정도는 감수해야지. 하지만 만약 네가 진짜 빅 빌런 미믹맨이라면... 나야 네 스킬을 알고 있으니까 빨리 눈치챈거지만 용병 연맹의 녀석들은 바보가 아니야. 그 녀석들이 맘잡고 털기 시작하면 너 하나 잡는 건 시간문제일걸? 그리고 용병 연맹의 간부까지 상대한 만큼 그 녀석들은 맘 잡고 털기 시작할거고."

상아의 담담하지만, 걱정이 잔뜩 섞여 있는 말에 운현은 입을 꾹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마주하던 운현이 한숨을 푹 내쉬고 입을 열려고 할 때 상아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먼저 말했다.

"난 널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어. 그리고 혼내야 할 권리도 있고."

"혼내야할 권리는 뭐냐?"

"길드장으로서 모험가가 사고를 치면 그 사고를 수습하는 대가로 얻는 권리지. 이 정도의 사고는 음... 지금까지 규정상 이런 사고를 친 사람은 없어서 모르겠는데 좀 많이 혼나야 할걸? 어때? 슬슬 자백할 마음이 생겼나?"

"잠깐 생각할 시간을 다오."

"좋아."

상아는 양 손을 들어 올린 후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런 그녀를 향해 운현은 한참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만약에 내가 진짜 빅-빌런 미믹맨이면 어떻게 되는거야?"

"솔직히 내 입장에선 별로 상관없는데. 도시를 공포에 떨게 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고, 다친 사람이래봐야 용병 연맹쪽에 불과하니까 내 입장은 감사합니다지. 나한테는 걸려도 큰 문제는 없어. 문제는 시청이나 용병 연맹에 걸리는거지. 시청에 걸리면 잘못했습니다 정도로는 안끝날껄? 용병 연맹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빨리 말하고 속 편해져. 난 그냥 훈계 정도로 끝내줄테니까."

"하아..."

"운현. 이제와서 말하는 거지만 난 솔직히 네가 참 좋아."

"응. 그건 알고 있어."

"그, 그랬어? 아무튼. 처음에는 단순하게 필레와 친한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너는 내게 있어선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어. 그런 사람이 아르토리우스나 윈디아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

상아의 부드러운 말에 운현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상아는 따스함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운현을 천천히 끌어안았다.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상아의 품에 머리가 안겨진 운현은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혼자서 힘들었지? 괴로웠지? 힘들었지? 이제 괜찮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편이 되어줄테니까. 네가 모험가라서가 아니야. 네가 나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사람이니까야."

"...상아."

"정 네가 그 미믹맨으로의 활동을 해야 한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나에게는 솔직하게 말해줘. 부탁이야."

운현은 상아의 부드러운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불렀다. 천천히 상아의 품에서 빠져나온 운현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자신이 움직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활동을 멈출 생각은 없었는데. 운현은 몇번이나 한숨을 토해낸 후 마음을 다잡고 담담히 말했다.

"제가 미믹맨입니다."

"겨우 말해줬구나."

상아는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을 쓱쓱 닦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깨가 흔들린다. 안심한 것일까? 아니면 무엇때문일까. 그녀가 우는 듯 하자 운현은 떨떠름한 입맛을 지우지 못한 채 그녀의 작은 얼굴을 잡았다.

"너 우..."

"이새꺄!!!"

"꿹!"

오른쪽 얼굴에 주먹이 꽂혔다. 눈 앞에 별이 보일 정도의 충격에 그가 나가 떨어지자 상아는 씨익 웃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뭐? 빅-빌런? 미믹맨? 아오! 너 제정신이냐!?"

"소, 속였구나! 상아!"

"속이긴 누가 속여!"

"훈계만 할거라더니!"

"맞아! 길드장으로서는 훈계만 할거다! 하지만 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아니야!"

상아는 이를 드러내며 운현에게 달려들었다. 가볍게 그를 뒤에서 잡은 상아는 운현을 냅다 공중으로 집어 던진 후 그대로 뛰어 그의 복부에 뒤돌려차기를 날렸다.

"크어억!"

"이건 내 놀란 시민들의 몫!"

"아이고!"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날아든다. 팔로 막아봤지만 팔만 아팠다.

"이건 내 앞에서 아르토리우스가 까불게 해서 기분 상하게 한 몫!"

"끄억!!"

왼발 하이킥이 머리를 후려쳤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고통에 운현이 비틀거리자 상아는 운현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이건 용병 연맹을 엿먹인 몫!"

"....."

"그리고 이건...!"

"우왓...!"

주먹을 꽉 쥔 그녀는 운현의 복부에 냅다 주먹을 날렸다.

"날 실망시킨 몫이다아아앗!"

"으아아아아악!"

온 몸이 부숴지는 고통에 운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의 뒤통수에 닿는 말랑말랑함에 눈을 뜬 운현은 눈 앞에 상아의 얼굴이 보이자 반사적으로 양 팔을 들어 올렸다.

"됐어. 때릴 건 다 때렸으니까 이제 훈계의 시간이다."

"으... 어떻게. 무릎이라도 꿇을까?"

"할 수나 있겠어?"

상아가 피식 웃으며 묻자 운현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뒤통수에 닿는 느낌이 좋아 움직이기 싫기도 했지만 온 몸이 쑤셔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많이 아플거야. 아프게 때렸으니까."

"으으... 어디 안부러졌나 모르겠다."

"잘 때리면 그냥 아프기만 하니까 괜찮아. 침투경을 활용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당분간은 움직이기 힘들테니까 그 상태로 들으라고."

상아는 무덤덤히 말하고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말대로 온 몸에 힘이 안들어가고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왜 그런 짓을 한거야?"

상아의 손이 얼굴을 만지작거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운현은 그녀의 손이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노는 것에 저항하지 못하고 인상만 찌푸릴 뿐 이었다.

"말 좀 하게 잠깐 가만히 있어주면 안될까?"

"못해?"

"아니 못하는 건 아닌데."

"그럼 해. 난 신경쓰지 말고."

"음..."

상아는 운현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작은 손이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는 것이 기분나쁠리는 없지만 그래도 이야기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결국 입을 다물자 상아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그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떼었다.

"자. 됐지?"

"용병 연맹과 시에서 힘이 넘쳐나니까 그 힘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도시의 안전을 위해 쓰라는 차원에서 그랬습니다."

"...바보냐? 너 하나로 뭐 어떻게 될 것 같았어?"

"그래도 미믹이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지. 여차하면 마인을 뽑으면 됐고."

"하아... 아니, 그보다 미믹은 어떻게 가지고 나온거야?"

"그건... 어쩌다보니."

"좀 더 맞을래?"

"사실 이계인의 능력입니다."

운현은 아까의 고통을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대답에 상아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이계인의 능력이라... 미믹만 가능한거야? 아니면 다른 몬스터도?"

"미믹만 가능합니다요."

괜히 맞기 싫었던 운현은 순순히 털어놓았다. 상아가 몇대 때리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처벌에 비하면 상당히 가벼웠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에 했던 말.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그녀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 같지는 않았기에 운현은 솔직히 답했고 그를 가는 눈으로 바라보던 상아는 운현의 코를 꽉 잡고 물었다.

"또 속이는거 없지?"

"엄능데영."

코가 잡혀 코맹맹히 소리를 내며 운현이 답하자 상아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때리고 갈궈봤자 운현은 한계까지 몰리지 않으면 솔직해지지 못한다. 그녀는 다시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장난을 치다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일단 말해두는데 다시는 빅 빌런인지 뭐신지 하지 마."

"그렇지만... 피스나를 시장에 올리려면."

"이미 용병 연맹은 간부들을 불러모았어. 전쟁도 좋고 확장도 좋고 시장도 좋지만 미믹맨에게 벌써 세번이나 당했단 말이지."

"그래서?"

"단순한 용병 연맹원이 아닌 간부들 중 무력만으로는 1, 2위를 다투는 우르나까지 엿을 먹은 셈이니 그들은 지금 시장 선거는 뒷전에 둘거야. 그걸 생각하면 미믹맨으로 깽판을 친게 어떻게 보면 잘 한 일이기도 하네."

상아의 말에 운현은 떨떠름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 상황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 그가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키자 상아는 운현의 코를 틀어 잡고 비틀며 즐겁게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미믹맨을 잡아 씹어삼키는 일이니까. 네가 하이딩을 써서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을 것 아냐. 용병 연맹이 마음먹고 각지에 있는 용병을 불러모은다면 네가 그 추격에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어... 음."

"거기에 시청은 내일부터 현상금을 걸거야. 어제 내가 잡았다면 모를까 놓쳐버렸으니까...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도 놓칠 정도로 위험한 상대라는 것을 인식했겠지."

"자, 잠깐만. 너 뭐라고 했는데?"

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 운현을 즐겁게 바라보던 상아는 운현의 입술을 잡아 쭉 늘어트렸다.

"나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안그랬으면 왜 못잡았냐고 캐물었을테니까."

"읍읍!"

왜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인가. 운현이 원망 섞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상아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내가 했던 것처럼 기척을 잡을 수 있으니까 하이딩도 만능은 아니야. 거기에 아무리 모습이 안보인다 하더라도 도적이 추적술을 쓴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고. 모험가 길드에도 시청의 공식 요청이 들어오면 도적들도 움직이게 될거라고. 너도 100레벨이니까 알겠지? 도적에게는 추적술이 있어. 만약 그 추적술로 수십의 도적들이 쫓기 시작하면 어떡할래?"

그녀의 말에 운현은 온 몸이 딱딱히 굳는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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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정도로 큰 일이 된건가...?"

"그래. 그러니까 다시는 하지마. 알았어?"

상아의 진심이 담긴 말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목적한대로 용병 연맹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끌었으니 다행이다. 그들이 미믹맨을 찾는다고 돌아다니는 동안 피스나의 지지율을 올려야겠다 생각한 운현은 고통이 가시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튼 고마워."

"알면 나한테 더 잘해."

"하하하하~ 여기서 더 어떻게 잘해줘."

운현은 투덜거리는 상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상아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말했다.

"이제 100레벨 됐다면서? 2계층에는 언제 들어갈거야?"

"파티 모집되는대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있겠지만 마인은..."

"알았어. 절대로 마인은 상대 안할게."

필레에게 들은데다가 실제로 마인을 보기까지 했었던 운현은 마인이 상대면 그냥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려 용병 연맹의 간부 둘과 헬하운드들까지 몰아붙일 정도의 강력함을 가진 상대와 싸울 이유가 없었던 그가 말하자 상아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때리기는 했지만 내가 한 말들은 모두 진짜야. 그러니까 명심해."

"어, 음. 내가 너의 소중한 사람이란것도?"

"윽. 그, 그건."

"짜식. 귀엽긴."

"흐흥! 내가 귀엽긴 하지."

살짝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상아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운현은 피식 웃었다.

"아무튼 날 마지막으로 상대한게 너고 네가 미믹맨을 쓰러트려 쫓아냈다는게 알려진다면 일은 재밌어지겠네."

"응?"

"기본적으로 인간은 같은 소식을 지겨워하지.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말야. 지금까지 나섰던 용병 연맹에서는 당하기만 했는데 네가 나선 순간, 즉 모험가 길드가 나선 순간 미믹맨이 도망가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똑바로 앉은 운현이 말하자 상아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떨떠름히 말했다.

"신나서 그거에 대해서 떠들겠지?"

"그래. 용병 연맹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 미믹맨을 찾으려고 할 것이고 많은 수의 용병을 투입해 수색작전을 펼치게 된다면 그들의 움직임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게 될거야.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을 진짜로 지켜주는게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겠지.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말야."

"하지만 경비 자체는 용병 연맹과 시청의 주도일텐데?"

"말했잖아. 사람들은 같은 소식을 지겨워한다고. 지금 도시 내에서 매일같이 들리는 소식은 용병 연맹이 던전 도시를 지키고 있고 용병 연맹만이 던전 도시의 희망이다. 이런 거라고. 그런데 여기서 모험가 길드가 도시를 위협하는 빅 빌런을 쓰러트렸다. 라는 이야기가 알려지면 반드시 그렇게 될거라니까. 내기할까?"

운현은 확신하고 있었다. 인간은 원래 타인이 잘되는 꼴을 절대 못보는 존재다. 만약 그것이 자신들의 삶을 귀찮게 하는 존재라면 말이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 좋은 소문은 한달이 걸리고 나쁜 소문은 하루가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지. 실제로 전례도 있고 말야. 용병 연맹은 내일부터 아주 재밌어질걸?"

운현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상아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인데?"

"어쩌긴. 계획대로 해야지. 넌 피스나를 지지하도록 해. 미믹맨의 활동이 중지되었을 뿐이지 계획은 그대로 실행해야 하니까 말야."

"흐음..."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몇가지만 준비하자. 일단 모험가 길드의 길드원들에 대한 신상명세. 간단하게라도 괜찮으니까 이름, 나이, 성별, 그리고 출신지 정도면 괜찮아. 그 외에 나머지 조직들의 간부들이나 길드원들에 대해서 조사할 수 있는만큼 같은 것을 조사해줘."

"길드원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다른 쪽은 좀 힘든데. 제작자 연합은 받을 수 있지만 용병 연맹과 상인 조합은 좀..."

"그럼 상인 조합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알았어. 내일 오후까지 준비해오도록 하지."

"그런 고로 운현을 좀 빌려야겠는데. 괜찮겠어들?"

상아는 팔짱을 끼고 있는 운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헤스티아와 미야, 바제트. 셋은 운현과 상아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왜 이렇게 자꾸 다른 일에 끼는지."

"그러게 말야."

"하, 하하하하. 너무 그러지들 말아요. 그럼 운현씨가 전쟁을 막는 사람이 되는거잖아요. 전 좋아요. 운현씨가 영웅이 되는 거니까."

"영웅이 좋아?"

"아무래도 악당보다는요."

헤스티아는 빙긋 웃으며 운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운현은 상아를 힐끔 보았고 상아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최선을 다해서 악당 짓은 안시킬게."

"네~!"

발랄하게 웃으며 헤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야와 바제트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의 동의에 운현은 상아와 함께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자. 지금 도시의 분위기를 파악해보니 확실히 전보다는 모험가들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어. 용병들처럼 떠드는게 아니고 묵묵히 던전을 위해서 일한다. 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더라고."

용병 연맹이 지금까지 신나게 떠들었지만 결국 미믹맨을 처리한 것은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이 되어버렸으니 용병 연맹에 대한 불신감이 늘어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거기에 어젯밤 용병 연맹은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마구 잡아 거칠게 확인을 해버린 터라 그것때문에 더더욱 인식이 나빠졌다.

"그래서. 시청은 언제 갈건데?"

"이제 가야지."

상인 조합의 조합장을 만나려면 시청으로 가야 한다. 운현의 말에 상아는 볼을 긁적거렸다.

"혼자 가려고?"

"글쎄? 사람 빼줄 수 있어?"

"으음... 에리스! 에리스!"

"부르셨습니까?"

에리스가 안으로 들어오자 상아는 그녀를 보며 대뜸 말했다.

"상아 대신 사무소 일 좀 봐줘."

"...제가... 말입니까?"

"응."

"...왜요?"

굉장히 싫은 모양이다. 그녀의 얼굴만 봐도 '싫어' 라는 감정이 듬뿍 담겨 있는 것에 운현은 혀를 내둘렀다.

"길드장의 권위따위는 정말 없구나..."

"모험가의 제 1 덕목은 자유니까. 길드장이고 나발이고 없어. 운현을 시청에 보내야 하는데 혼자 보낼라니까 애 하나 물가에 보내는 것 같아서 말이지. 아니면 네가 갔다올래?"

"......"

둘 다 싫은 모양이다. 에리스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자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혼자 갔다올게."

운현의 말에 에리스는 고개를 젓고 나가려고 하는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 본 운현은 에리스가 심각한 얼굴로 상아에게 묻자 피식 웃었다.

"펠리시아는 어디갔습니까?"

'진짜 하기 싫은가보다.'

"걔는 던전에 잠깐 일 좀 보러. 오려면 시간 많이 걸리니까 네가 잠깐 맡아줘. 반나절 정도면 괜찮아."

그녀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상아는 대신할 사람이 진짜 없었는지 다시 한번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에리스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힐끔힐끔 운현을 쳐다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전 서류업무에는..."

"다른 길드원들도 있잖아. 걔들한테 도와달라고 해. 괜찮아! 잡파인더 두어번 부숴먹은 게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이라고. 아. 다른 것도 있었나?"

"하아... 운현을 혼자 보낼 수는 없지요. 카를로스라는 자가 운현을 노린다고 하니... 필레를 보내시지요."

"오오! 그래! 이번 기회에 좀 사무소 일도 익숙해지고 해봐. 꽤 해봤으면서 왜 그래?"

"후... 그렇지만."

"그리고 네가 사무소 일을 할때마다 말하는 거지만 마법도구 좀 부숴먹지 마. 성기사 아니랄까봐 왜 이렇게 마법도구에 민감해?"

"제 신성력을 버티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제 잘못이 아니라구요."

운현은 왜 에리스가 사무소 업무를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무소에 있다보면 필연적으로 마법도구를 많이 만지게 된다. 마석을 정산할때부터 시작해서 신규 모험가의 직업을 결정하는 일, 그 외에 다수 마법 도구를 활용하는 일이 많은 사무소 업무에 자신의 신성력을 버티지 못하고 마법도구를 부숴먹는 에리스라면 그것을 꺼려할만했기에 운현은 쓰게 웃었다.

"그럼 다녀오라고."

"시청에는 무슨 일로 가는거야?"

운현과 함께 시청에 가게 된 필레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자신의 팔을 잡고 그녀가 즐겁게 웃는 것을 본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 시장 선거용으로 자료를 좀 받으려고."

"시장선거? 혹시 그거... 아냐?"

상아가 운현에게 선거를 도와달라고 한 것은 문서를 훔치거나 주요 자료를 빼돌리는 일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혹시나 위험한 일일까 해서 그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어보자 운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일은 아냐. 그냥 협상을 통해서 얻어보려고."

"협상을? 누구랑?"

"윈디아씨."

"윈디아씨면 윈드의 동생이잖아. 그 사람이랑 알아?"

"끙... 좀 일이 있었지."

한달 안에 윈드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주지 못하면 그녀의 어머니와 만나야 하는 자리에 나가야 한다.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파진 운현은 인상을 살짝 쓴 후 입맛을 다셨다.

"쩝.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헤에에..."

필레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신에게 향해지는 따끔한 시선에 운현은 낮게 휘파람을 부르며 딴청을 피웠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필레는 손가락으로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인기 많아서 좋으시겠어?"

"흐으음..."

신문을 확인한 아르토리우스는 신문의 기사를 보며 낮게 신음했다. 어젯밤. 미믹맨을 잡기 위해 용병 연맹의 인원을 대거 도시에 투입했지만 결국 미믹맨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 신문에서는 미믹맨을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이 쓰러트려 미믹맨이 도시에서 도망쳤다. 라는 기사를 내었고 그 기사의 여파는 용병 연맹의 인원들마저도 술렁이게 만들었다.

"어때요? 지금 분위기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상아 길드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연맹장님도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만... 용병 연맹의 내부에서도 그것에 대해 상당히 말이 많습니다. 왜 연맹장님이 직접 나서지 않았냐부터 시작해서 간부들의 실력이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도시의 분위기는요?"

"도시의 분위기도 그리 좋지만은 않더군요."

라티나는 아르토리우스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까지 계속 던전 도시 내에서 작업을 해 놓은 것이 미믹맨이라는 이상한 놈 하나 때문에 다 망해버렸다.

"후후.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아르토리우스는 그다지 기분이 상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웃음에 라티나는 더더욱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지만 아르토리우스는 차분히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말했다.

"내일까지 미믹맨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모두 철수시키고 원래대로 활동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다른 간부들도 주의시키시고요."

"하지만... 그랬다가 저희의 명예가."

"명예요?"

아르토리우스는 라티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큰 착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저희는 용병이에요."

"....."

"용병에게 명예따위는 없습니다. 명심하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르토리우스의 말에 라티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를 향해 다시 부드럽게 웃은 아르토리우스가 집무를 보기 위해 펜을 들자 라티나는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갔다. 혼자서 차분히 서류를 읽으며 집무를 본 아르토리우스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하느라 찌뿌둥해진 목을 앞 뒤로 비틀어 푼 후 즐겁기 짝이 없는 발랄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쓸데없는 이상한 짓은 관둬달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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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ion

"난 잠깐 일 좀 보고 올게. 서류 하나만 내면 되는거니까 저기 중앙에 가서 윈디아씨에게 연락해봐."

"어. 알겠어."

아까 나올때 서류봉투를 들고 나오던 것이 이것 때문이었던가.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고 필레는 미안하다는 듯 살짝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가르쳐준 곳으로 간 운현은 화려한 장식과 깔끔한 외관에 놀랐다. 정말 다른 건물들을 보면 볼 수록 모험가 길드는 산적 소굴 같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은 그는 정장차림의 요염한 미녀가 생긋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저긴가보군.'

생글생글 웃는 것이 무척이나 귀엽게 생긴 여인이다. 쫑긋 솟은 삼각형의 귀와 등 뒤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커다란 황금색 꼬리. 실눈이라 그런지 웃는 얼굴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녀에게 다가간 운현은 그녀가 가볍게 인사를 하자 마주 인사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아. 윈디아씨와 만나러 왔습니다만..."

다짜고짜 시장을 만나러 왔다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몇가지 서류를 뒤적거렸다. 한참이나 뒤적거리던 그녀는 시간을 확인한 후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시간에는 약속이 없는데... 혹시 약속은 하셨나요?"

"아뇨. 운현이 찾아왔다고 전해주시면..."

"일단 전해는 드리겠지만..."

던전 도시 발티르의 시장이자 상인 조합의 조합장인 윈디아는 약속 없이는 어지간해서는 함부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던전 도시가 가진 힘을 독점하기라도 한다면, 하다못해 다른 나라보다 더욱 친분을 가진다면 세계를 제패하는 것도 꿈만은 아닌 일이다.

거기에 대륙의 상회 중 가장 큰 상회 집단의 수장인 윈디아다. 그녀를 만나고자 하는 이들은 넘쳐났기에 그녀는 운현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윈디아 시장님은 지금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계십니다만... 어떻게, 연락이라도 남겨드릴까요?"

"중요한 손님. 음... 네. 그래주시겠어요? 그럼 윈드씨라도 불러줄래요?"

"윈드 경비대장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윈드는 소탈한 성격에 모험가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운현의 복장을 보면 영락없는 모험가의 복장이기에 그녀는 별다른 의심없이 마법구를 통해 다른 곳에 연락을 넣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금방 나오실 겁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기다리시는 동안 차라도 드릴까요?"

그녀의 말에 운현은 빙긋 웃었다.

"일행이 있는데 일행것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냥 홍차 두잔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후훗.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생긋 웃으며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는 작은 탕비실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그컵에 담겨 있는 한잔의 향긋한 레몬 홍차를 끓여 온 그녀는 운현에게 잔을 내밀었다.

"여기요.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장님과는 무슨 사이세요? 윈드씨야 모험가들과 잘 어울리시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시장님은 모험가들과는 그다지... 아. 모험가 맞으시죠?"

"네. 맞아요. 윈디아씨는... 으음... 뭐라고 해야하나."

윈드야 남자 소개시켜 줄 뚜쟁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겠지만 윈디아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운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볼을 긁적거렸다.

"무슨 사일까요?"

"제가 맞춰볼까요? 으음... 내연남!"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녀가 말하자 운현은 손사레를 붕붕 치며 피식 웃었다.

"무슨 내연남이에요. 그리고 윈디아씨는 아직 시집 안가지 않았어요? 아. 혹시 애인이 있나요?"

"그럴리가요..."

그녀는 귀를 축 늘어트리고 과장스레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척 봐도 일부러 짓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이 피식 웃었을 때 문이 열렸다.

"운현! 많이 기다렸... 헉! 미스티!? 너 오늘 쉬는 날 아니었어!?"

"어. 어서와. 제 일행인데 홍차 부탁드려도 될까요?"

"일행이란게... 필레님이었나요!? 아아아아! 오늘 근무 바꾸길 잘했어!"

"님? 우와~ 필레. 너 님이라고 불릴 정도였어?"

"으윽. 미스티. 네가 담당인줄 알았으면 안왔는데..."

필레는 낭패한 얼굴로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던 운현은 신기한 장면에 히죽거리며 팔짱을 끼고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네! 우와! 루타가 바꿔달라고 할때 그냥 바꿔주길 잘했네요! 필레님이라면 제 비장의 디저트를 가져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귀가 쫑긋 서고 꼬리가 바쁘게 움직인다. 그녀의 활짝 웃는 얼굴에 필레는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이야~ 우리 필레 많이 컸네~ 필레 주제에 님이라니~"

운현이 농담을 건네자 필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모습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 쟤는 좀 불편해서."

"네가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어?"

길드에서 모험가들이나 길드원들이 놀려도 그냥 부끄러워만 할 뿐이지 불편해하는 것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운현이 신기한 듯 바라보자 필레는 볼을 긁적거리며 머뭇거렸다.

"그게 뭐랄까... 그. 예전에 윈드와 함께 내가 큰 전투에 참가했다고 했잖아."

"필라니아 몬스터 웨이브였던가?"

"응. 필라니아 몬스터 웨이브. 그때 내가 간신히 구한 아이 중 하나야.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을 그곳에서 모두 잃은 미스티를 윈드가 발렌타인 가문의 하녀로 데려갔어."

"근데 왜 여기 있어?"

"윈드의 전속 하녀인데 워낙 똘똘한데다가 싸움도 곧잘하고, 그리고 업무 처리 능력이나 가사, 시중, 그 외의 대부분이 능숙해서 윈디아가 자기 비서로 데려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여기 있는거야. 윈드는 경비대장이라 비서가 필요 없으니까."

"오호..."

운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불편해해?"

"그게..."

"설마!? 필레님! 제가 불편하신가요!? 저, 전 그저 필레님을 동경하고, 꿈에서 그리며 원하신다면 제 처녀라도 바칠 생각을 하고 있는데... 흑흑... 필레님께서 주신 목숨. 필레님께서 절 불편해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콱 끊어버릴게요!"

암울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운현은 휙 고개를 돌렸고 깜짝 놀랐다.

일단 미스티가 들고 있는 커다란 파르페였다. 어떻게 이런 짧은 시간에 저런걸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핑크핑크함으로 장식된 큼지막한 파르페에는 하트모양의 초콜렛과 백합 모양의 수제 장식이 잔뜩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복장. 방금 전까지는 단정한 제복이었는데 어느새 짧은 메이드복으로 바뀌어 있다. 거의 팬티가 보일 정도의 짧은 치마와 아슬아슬한 가슴부분. 그 외에는 전부 노출된 미스티의 모습에 운현이 할 말을 잃자 필레는 얼굴을 감싸쥐며 힘겹게 말했다.

"저것때문에... 쟤는... 날 사랑하거든."

"흑흑흑... 필레님이 절 부담스러워하시다니... 전 이제 정말로 세상과 하직을 하겠습니다. 필레님과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아아! 안 부담스러워! 안 불편해!"

"정말요!?"

방금 전까지 울상을 짓고 있던 그녀는 활짝 웃으며 필레의 앞에 거대한 파르페를 놓았다. 그리고 힐끔 운현을 본 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필레님과 무슨 사이신가요?"

"친구요."

"치, 친구.... 그래. 운현과는 친구야."

"남자와?"

"그럼 친구 이상 연인 미만."

"뭣이라!?"

운현의 말에 필레는 부끄러워했고 미스티는 경악했다. 그녀의 얼굴 변화를 보며 운현은 키득거렸고 미스티는 부들부들 떨며 필레를 잡고 물었다.

"아, 아니죠? 그죠?"

"......."

미스티의 말에 필레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운현이 한 말만 되뇌였다.

"친구 이상... 에헤헤헤~"

"아아아아아! 거짓말이야!!"

충격을 받은 듯한 그녀가 아까의 탕비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가자 운현은 여전히 헤죽거리는 필레의 눈 앞에 몇번 손가락을 튕긴 후 말했다.

"이거나 먹으면서 기다릴까?"

"응!"

밝은 표정의 필레와 함께 부담스러운 파르페를 먹기 시작했다. 그 파르페를 반쯤 먹었을 때 문이 열리며 윈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엇? 운현 아니야? 필레까지?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윈드~"

"안녕하세요."

"응응. 반가워. 그래서. 요즘은 어때?"

윈드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그녀는 운현과 필레의 앞에 놓여진 파르페를 보며 움찔했지만 곧 밝은 표정으로 바꾸고 필레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뭐가요?"

"남자 잘 찾고 있지? 솔직히 말해서 내 취향은 약간 연하에 키가 좀 크고 장난기 넘치지만 가끔씩은 귀여울 정도로 솔직해지는 남자야. 거기에 검은 머리면 금상첨화지. 아무튼 그런 남자가 취향이긴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냥 취향 얘기하는거에요"

"아하하하! 참고만 하라고. 참고만."

윈드의 눈이 무섭다. 운현은 슬쩍 그녀의 시선을 피한 후 조심스레 물었다.

"좀 부탁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뭔데? 자금이 필요해? 아니면 장비? 그것도 아니면 애들 풀어줘? 뭐든 말해봐."

"용병 연맹의 길드원들을 조사하고 싶어요."

"으으으음..."

그의 말에 윈드는 신음했다. 그것을 요구할 줄은 몰랐는지 그녀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후 생각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 도시를 수호하며 경비를 서는 입장에서 위험인물이 될 수 있는 용병 연맹의 정보는... 솔직히 가지고 있어. 사실 모험가들의 정보도 가지고 있지만 말야."

"그럼..."

"하지만 줄 수는 없어. 미안. 그건 극비 정보거든."

윈드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줄 알았어요."

"헤? 그리 급한게 아니었어?"

"있나 없나가 궁금했거든요. 그정도면 괜찮습니다."

운현의 말에 윈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근데 미스티는?"

"저기 탕비실에 숨어 있어요."

"허... 손님이 왔는데 뭐하는거야?"

그녀는 운현의 말에 어이없어하며 탕비실로 향했다.

"미스티! 너 여기서 뭐... 너 우냐?"

"으아아아앙! 윈드님! 윈드님! 저 사람이! 저 사람이이이이!!"

"그래. 그래. 쯧쯧. 울지 마렴."

윈드의 품에 안겨 미스티는 훌쩍거렸다. 운현을 째릿 노려보며 그녀가 말하자 윈드는 알았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서 옷이나 제대로 입으렴."

"훌쩍... 네."

눈물을 닦고 탕비실에 들어가 다시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녀는 운현을 연신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아... 왜 전 여자인걸까요?"

"그건 운명의 세 여신님께 따져야지."

"운명의 세 여신? 그건 또 뭐야?"

미스티의 말에 윈드가 대꾸해주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놈의 여신이 이리 많나. 그의 질문에 필레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운명의 세 여신은 시간의 여신이라고도 불려. 과거를 담당하는 울드, 현재를 담당하는 베르단디, 그리고 미래를 담당하는 스쿨드. 그들은 파르티님의 뜻을 따라 세계를 구성하는 운명의 실을 자아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

"오... 그럼 꽤 높은 신 아니야?"

"그렇긴 한데 실제로 그녀들을 따르는 신자는 별로 없어."

"왜?"

"그녀들은 운명을 만들어낼 뿐이지 그 운명을 바꾸지도, 또 되돌리지도 않거든. 세 여신의 사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신성력으로 사람들을 보살피지도 않고, 또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 운명이니 받아들이라는 말 밖에 안해. 그런 신을 누가 따르겠어?"

다친 사람을 치유해주고 신성력으로 사람들을 보살피는 파르티나 다른 여신을 따르면 그들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그저 운명이니 받아들이라는 말만 하는 신전을 누가 따르겠는가.

필레의 말에 운현은 한방에 납득을 했다.

"그럼 파르티님은 무슨 신이야?"

"음... 평화와 자애의 신? 다친 이들을 살피고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해주는 신. 그래서 가장 인기가 많아."

"헤에..."

"예배도 다른 신전과 달리 강압적이지 않고 즐거운 분위기야. 다음에 같이 가볼래?"

파르티의 신도인 필레는 빙긋 웃으며 운현에게 권유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난 그다지. 신앙이란게 별로 없거든."

"같이 가면 좋을텐데. 뭐 어쩔 수 없네."

필레는 아쉽다는 듯 말을 하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잠시 서로 파르페를 먹는 동안 미스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윈드는 운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근데 그것때문에 날 부른거야?"

"네. 아. 그리고 혹시 제가 남자 소개시켜준다는거 가문에 알렸어요?"

"응."

"만약에 제가 실패하면 어쩌려고..."

"에이~ 난 널 믿어. 믿는다. 정말 믿는다고. 알았지? 응?"

"아, 알았어요."

운현은 그녀의 무거운 시선에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윈드는 아직까지 윈디아의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다. 운현이 실패했을 것에 대한 두려움 밖에 없었는지 그녀는 운현의 어깨를 꽉 잡고 말했다.

"만약 어머님을 헛걸음하게 했다간... 난 진짜..."

"어머님이라니? 오신다고 하셔?"

"응. 내가 매번 깨, 큿. 깨지니까... 어머님이 궁금하다고 내가 남자를 만날때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다고 하시네."

"...하아. 가주님도 참."

"어? 필레. 넌 윈드씨의 어머님을 본 적이 있어?"

"그야 당연하지. 발렌타인 가문에서 묵은 적도 있는걸."

운현의 질문에 필레는 웃으며 답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윈드는 빙긋 웃은 후 말했다.

"나중에 같이 발렌타인 가문에 놀러와. 우리 가문이 있는 곳은 자랑은 아니지만 굉장히 멋지다고."

"정말요?"

"그럼. 휴양하기에도 무지 좋으니까 사양말고. 나한테 남자를 소개 시켜 줄 사람인데 내가 그런거 하나 못해주겠어?"

"........."

137====================

election

'아 무겁다.'

정말 저 기대감에 어깨가 무겁다. 운현은 반짝거리는 윈드의 시선에 쓰게 웃었다.

"운현씨. 시장님이 찾으시네요. 들어가보세요."

"아, 예."

미스티의 말에 운현은 그녀의 뒤에 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필레가 따라오려 하자 그는 웃으며 그녀를 말렸다.

"혼자 갈게."

"하지만..."

"설마 윈디아씨가 날 어떻게 하겠어?"

운현의 만류에 필레는 걱정스레 바라보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간 운현은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과 마주쳤다.

"헉!"

"어머? 운현씨네요."

"...아르토리우스님."

"님이라뇨~ 저희 사이에. 그냥 씨 정도도 괜찮아요. 아니면 친애의 의미로 아스도 괜찮구요."

"아하하하하하. 아르토리우스님."

"흐음. 뭐, 아무튼 여긴 왠일이세요?"

운현은 경계의 시선을 풀지 않았다. 미믹을 한방에 보내 버릴 정도의 힘. 그리고 자신의 목을 감쌌을 때의 섬뜩함. 그리고 경고까지. 운현에게 있어서 아르토리우스는 솔직히 말해 공포의 대상에 불과하지 않았다.

'미인이기는 하지만 말이지.'

운현의 경계심을 느낀 아르토리우스는 작게 웃으며 자신의 뒤에 있는 라티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라티나가 먼저 내려가자 아르토리우스는 한걸음 내려와 운현에게 다가갔다.

"으음... 요즘 하고 계신 일은 잘되시나요? 외유는 줄이셨구요?"

"아하하하... 레벨업이 바빠서요."

"그러고보니 저번에 봤을때보다 무척 강해지신 것 같네요."

아르토리우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길이 다시 자신의 목을 감싸려 하자 운현은 한걸음 물러 계단을 내려갔다.

"호오?"

자신의 손을 피하는 그를 보며 아르토리우스는 재밌다는 얼굴로 다시 손을 뻗었다. 그것에 운현은 한걸음 더 내려갔고 아르토리우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무섭나요?"

"무, 무섭긴요. 아르토리우스님 같은 미인을 제가 왜..."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걸까요? 혹시 찔리는 것이라도 있으신가보죠?"

"하하하... 그럴리가."

"그럼 괜찮잖아요?"

"아니 백주대낮에 여인네가 남자를 그렇게 만지는거 아닙니다."

운현이 딱 잘라 말하자 아르토리우스는 피식 웃었다. 운현에게 뻗던 손을 당겨 입술을 가리고 키득거린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운현에게 손을 뻗던 것을 멈췄다.

"시장 선거때문에 오신건가요?"

"글쎄요."

"흐으음... 뭐 좋아요. 그럼 잘해보죠."

"네..."

운현이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자 그를 잠시 바라보던 아르토리우스는 낮게 신음한 후 고개를 작게 숙여 인사한 후 계단을 내려갔다.

'식은땀이...'

잠시 마주친것만으로도, 그리고 그녀가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범벅이 되었다. 운현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벽에 기댔다.

"진짜 무섭네..."

알아챈걸까? 아니면 허세인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자신을 다잡으며 운현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미믹맨인 상태일때라면 모를까 자신이 운현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일때는 아르토리우스가 대놓고 자신을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날 공격했다간 바로 전쟁이니까...'

그녀라면 일수에 운현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려면 이런 곳이 아닌 외진 곳에서나 가능할 일이다. 그게 아니면

운현이 미믹맨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던가.

아르토리우스가 표면적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운현을 죽이거나 괴롭히게 된다면 모험가 길드에 명분을 내어주게 될 것이고 그리 된다면 던전 도시에서 전쟁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모험자 길드가 얌전하기는 하지만 절대 약하지 않았다. 수장과 간부진만 봐도 용병길드와 비등함, 아니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모험가들의 수와 질을 따진다면 어쩌면 수만 적을 뿐 개별적인 힘은 모험가 길드의 모험가들이 용병 길드의 용병들보다 더 강할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나면 그녀가 원하는 바는 절대 이룰 수 없겠지.'

만약 용병 연맹과 모험가 연맹간의 전쟁이 난다면 용병 연맹은 모험가 길드가 가진 힘을 잃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코어와 몬스터 사체를 수급할 수 있다는 던전 도시 최고의 장점마저도 잃어버린다.

던전 도시에서만이 코어와 몬스터 사체를 채취할 수 있고 그것은 모험가만이 유일했다.

길드 내의 모험가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맞다면 용병들이 전장에서 더 강할지 모른다 하더라도 던전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모험가들이 더욱 유리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만큼 용병 연맹이 던전을 차지한다치더라도 그들은 모험가들 만큼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몬스터 사체와 코어를 수급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리 된다면 커다란 힘을 두개나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니 전쟁은 물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아르토리우스의 목적은 전쟁이니까...'

만약 그녀의 목적이 바뀐다면 모를까 전쟁을 위해서 시장이 되려 한다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이길 바래야할텐데...'

하지만 그것도 아르토리우스가 전쟁을 바라고 시장이 되려 할때의 이야기다. 바꿔 말한다면 그녀가 상아가 말한대로 미믹맨을 잡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면 운현도 그녀를 상대로 확실히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우우우..."

정말이지 한걸음 한걸음이 외줄을 타는 기분이다. 운현은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심호흡을 하여 마저 기분을 안정시킨 후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똑똑."

화려한 문 앞에서 운현은 노크를 했다. 잠시 후 그녀의 대답이 들리자 운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꽤나 넓은 호사스러운 방의 끝에 아는 얼굴이 앉아 있다.

"어서오세요. 운현씨. 무슨 일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윈디아씨.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상인 조합의 인명부를 원하시는 것이겠죠?"

"어떻게 알았어요!?"

운현은 기겁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윈디아는 안경을 고쳐쓴 후 차분히 말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운현씨는 모험가 길드의 선거 참모... 아닌가요?"

"참모라 할 정도는 아닌데요."

"그런가요? 상아씨와 함께 여기저기 다니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윈디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운현은 정말 속이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나름 열심히 머리를 굴렸는데 저 무표정한 여자는 자신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듯 보인다.

"아무튼 준비는 해놨으니 가져가시지요."

"주셔도 괜찮아요?"

"안될 건 없지 않나요?"

오히려 윈디아는 운현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시선에 운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윈디아는 보고 있던 서류를 덮은 후 커다란 책자를 들고 운현에게 다가갔다.

"자요."

"음... 주시니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운현씨가 상아씨를 시장으로 내세우든, 피스나씨를 시장으로 내세우든 그건 솔직히 관심없어요. 아니, 다음 대의 시장이 누가 되는지도 딱히 관심은 없죠."

"윈디아씨는 아르토리우스님을 시장으로 밀고 있는 것 아니었나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건 그저 제 유흥에 불과할뿐입니다."

윈디아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 후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자리를 권하자 운현 역시 자리에 앉았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제게 관심이 있는 것은 언니의 남편이 될 상대 정도죠."

"그, 그런가요."

윈디아의 시선이 무겁다. 자매가 쌍으로 이런 무거운 시선을 보내다니. 운현은 그녀의 말에 떨떠름히 답했고 윈디아는 안경을 벗고 그것을 수건으로 닦은 후 느긋하게 기지개를 폈다.

"으으으음...! 시장이라는 직위는 상당히 귀찮고 재미없는 자리입니다. 특별한 목적의식이 없다면 안하는만 못한 자리죠."

"윈드를 위해서 시장이 되셨다고 하셨죠. 이번 선거에서 윈디아씨는 아예 출마 자체를 안하신다고 하셨는데... 왜죠? 윈드는 그만두지 않을 생각인것 같던데."

"아뇨. 언니는 올해 안에 가문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발렌타인 가문의 가주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도 복귀합니다. 언니를 보필하여 발렌타인 가문의 일을 할거니까요."

"아, 그런가요. 아쉽게 됐네요."

"아쉽다면 운현씨도 오시는게 어떤가요? 언니와 저의 남편으로."

"아, 아니 그건 좀... 그리고 아직 시간이 남았잖아요."

"흠."

운현이 당황하며 말하자 윈디아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열심히 해보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헛수고라고 생각합니다만."

"예? 그게 무슨..."

"어떤 남자를 소개시켜줘도 언니를 마음에 들어 할 남자는 없을 것이라는 거죠."

이게 무슨 개소린가. 운현은 윈디아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신의 말에 운현이 어이없어하자 윈디아는 그가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 궁금하시다면 언니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줘보세요. 어떻게 되나."

"어떻게 되는데요?"

"글쎄요? 그건 그때의 여흥으로 남겨두지요."

윈디아는 말해 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가르쳐주면 윈드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어차피 밑에 윈드도 있으니 별 걱정이 없었다. 상당한 교섭과 설득, 정 안되면 남자 소개 안시켜주겠다는 협박을 해서라도 그녀에게서 이 인명부를 얻어내려 했던 운현은 예상 밖으로 쉽게 인명부를 얻어내자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이걸 저에게 쉽게 주신 건가요?"

"큰 이유는 없습니다. 다 가문을 위해서지요."

"예? 그게 무슨..."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군요."

윈디아는 말을 마치고 문을 가리켰다. 그녀의 축객령에 운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고 윈디아는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발렌타인 가문의 사위가 되려면 적어도 누군가를 던전 도시의 시장을 만들었다는 정도 타이틀은 있어야 하니까."

"별 이상한 일도 다 있네."

운현은 인명부를 인벤토리에 넣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를 기다리던 윈드와 필레는 운현이 내려오자 그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점심 먹으러가자!"

"윈드가 사준다네~"

"어? 응. 이야~ 잘 먹을게."

마침 잘 됐다. 운현은 윈드에게 물어 볼 것도 있었기에 그녀와 함께 시청의 식당으로 향한 운현은 윈드가 식사를 주문하자 물었다.

"그런데 윈드씨."

"음? 왜?"

"왜 맨날 남자한테 차여요?"

"......."

"우, 운현 그런 팩트 공격은..."

"아니 잠깐만. 확실히 이유를 알아야 남자를 소개시켜줘도 괜찮은 남자를 소개시켜주지."

"그... 그게..."

운현의 몸쪽 꽉 찬 돌직구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윈드는 부들부들 떨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예? 아니 뭔가 이유가 있는거 아닌가요?"

"몰라. 나도. 어떤 남자는 저는 긴 머리가 싫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잘랐더니 어떤 남자는 자기보다 작은 여자는 싫습니다. 어떤 남자는 가문이 좋은 여자는 싫습니다. 어떤 남자는 저보다 강한 여자는 싫습니다. 이유는 다 달랐어."

"...뭐 그런. 그 정도면 그냥 운이 안좋았다고 밖에는... 몇명이나 만나보셨어요?"

"한 서른정도?"

"...그 중에 가장 오래간 사람은?"

운현이 묻자 윈드는 더더욱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만해! 윈드의 HP는 이제 제로라고!"

"아냐... 이정도는 해야 제대로 만날 수 있겠지. 네시간."

"...네?"

운현은 자기가 잘못들었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일 잘된게 네시간이라니. 그가 당황하자 윈드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만진 후 천천히 말했다.

"네시간이야. 네시간. 그나마 윈디아가 남자에게 취향을 다 물어봐서 맞출 수 있다는 자신감에 데려왔는데... 옷 입는 센스가 마음에 안든다고 차였어. 됐어?"

"아. 네. 그... 죄송해요."

"아냐...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어. 만나는 사람들마다 뭔가 이유가 있더라고. 바꾸겠다고 해도 그들은 싫다고 하더라."

진짜 이유가 없어서 슬픈 이유였다. 운현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바제트의 말이 떠올랐다.

'운명은 정해져 있고 사람은 휩쓸릴 뿐이다... 라.'

설마 윈드에게 애인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그 운명이라는 것 때문일까? 운현은 피식 웃었다.

"에이 설마~"

"왜?"

"아냐. 아무것도. 그래도 동료 중에 친한 남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죠?"

"없었는데?"

"...아니 기사 중에서도요?"

"응. 아무래도 가문 때문인지 다들 어려워하더라고. 친한 사람은 몇 안돼."

"다른 귀족 중에도? 혹시 왕자나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귀족 중에 그나마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고백을 했지만 차였고 왕자님은... 우리 나라에 아직 왕자님은 없어. 지금 여왕님께서 임신을 하시긴 했지만... 만약 왕자님이 태어나시더라도 나랑 결혼하긴 무리겠지."

윈드의 말에 운현은 뒷목이 서늘한 것을 느꼈다. 이정도면 진짜 운명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빙긋 웃었다.

"금방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거에요."

"응.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저 필레도 봐봐. 너처럼 좋은 남자를 만났잖아."

"내, 내가 왜!?"

얌전히 이야기만 듣던 필레는 당황하며 윈드의 팔을 몇차례 때렸다. 그것이 아팠는지 윈드는 인상을 구겼고 운현은 예상 외로 일이 골치아프게 생겼다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잘 먹었어요."

"잘 먹었어~"

"별 말씀을. 그저 시청의 밥일 뿐인데. 나중에 운현이 남자를 소개시켜주면 더 맛있는 밥을 사주지."

"그, 그래요."

"후후후~ 그럼 수고해~"

시청에서의 볼 일은 다 봤기에 운현은 필레와 함께 길드로 복귀했다. 길드로 복귀하자마자 난처한 얼굴로 몰려든 사람들을 상대하던 에리스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필레를 불렀다.

"필레! 빨리 와! 빨리!"

"아, 네! 운현. 그럼 다음에 봐~"

운현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필레는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다가 온 필레와 자리를 바꾼 에리스는 운현을 향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지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시청은 잘 다녀왔나?"

"네. 고생하셔나보네요. 고작 몇시간만에..."

"끙.. .다행히 마법물품은 부수지 않았다만..."

"신성력이 굉장하신가봐요? 에리스님도 파르티님을 믿는 성기사세요?"

"응. 모험가 길드는 파르티 교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나는 파르티 교단에서 파견 나온 성기사다. 어쩌다보니 모험가 간부 역을 맡고 있지만... 만약 그 파견이 종료된다면 다시 복귀해야 한다."

"그렇군요."

자유로움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모험가들 치고는 꽤나 딱딱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건가.

"길드장님이 네가 오면 데리고 오라고 하시더군."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에리스와 함께 상아의 방에 들어간 운현은 상아가 한권의 책을 보며 인상을 쓰는 것을 보았다. 그가 들어오자 상아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고 에리스는 살짝 목례한 후 방 밖으로 나갔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음...제작자 연합에서 보내 준 인명부. 지금까지 피스나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간부직에서 많이 물러났네."

새롭게 바뀐 인명부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지 상아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되는데?"

"간부들 중 일곱이 피스나를 지지하지 않아. 그녀의 능력은 인정하니 장으로는 받아들이지만 그들은 대부분 무기나 방어구를 만드는데 종사하는 사람들이야. 전쟁을 싫어하는 피스나와는 맞을 수 없지. 아마 이들은 용병 연맹에 표를 던질거야."

"그래? 그 외에는?"

"길드원들의 2/3은 전쟁을 거부하는 추세야. 하지만 역시 무기나 방어구를 만드는 제작자들은 전쟁을 원하고 있지. 자신의 무기와 방어구가 어떻게 쓰일지 궁금해하는 작자들이니까."

상아는 골치가 아팠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얻어왔어?"

"응."

"오...? 어떻게?"

운현이 상인 조합의 인명부를 꺼내자 그녀는 감탄하며 물었지만 그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 그것보다 이 사람들을 포섭할 준비를 해야겠어."

"하지만 가능할까? 상인들은 다 필요 없고 돈이 최고다. 라고 말하는 자들이야. 전쟁은 돈이 된다고. 과연 그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피스나에게 표를 던질까?"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지."

상아의 말에 운현은 빙긋 웃은 후 생각했다.

'여차하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되고 말야.'

이럴때 쓰라고 스틸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상인이라면 자신만의 약점을 하나나 둘 이상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운현은 상인 조합의 인명부를 상아에게 넘기고 말했다.

"거기서 간부들 중에 전쟁을 원할만한 간부를 찾아봐. 그들을 찾아가봐야겠어."

138====================

election

"찾아가서 어쩌려고?"

"어쩌긴. 원래 네가 나한테 맡기려던 일을 해야지."

"허..."

운현의 말에 상아는 탄식을 토해내며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믹맨 때문에 경계를 서는 사람들이 늘어서 위험할텐데 괜찮겠어?"

"아니 뭐, 나한테는 하이딩도 있고 여차하면 미믹을 소환하지. 나 도망갈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은 벌지 않을까?"

"끙..."

미믹을 소환했다간 미믹맨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잡히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운현은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고 그것에 상아는 인상을 썼다.

"그냥 보내면 위험하니까 이것들 가져가."

자리에서 일어난 상아는 벽장을 옆으로 밀었다. 그녀의 손에 의해 벽장은 가볍게 밀려났고 작은 방으로 통하는 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게 뭔데?"

"스승님이 남겨 준 것들."

상아와 함께 안으로 들어간 운현은 물씬 풍겨오는 종이와 양피지의 냄새에 눈쌀을 찌푸렸다. 상아의 방만한 커다란 방 안 가득 마법책과 스크롤들이 있었다.

"스승님이 만든 스크롤들이니까 써. 파괴적인 마법은 거의 없어. 대부분이 보조 마법이야."

탐지 마법, 헤이스트, 디펜스 업. 그 외에 기타 스크롤들을 한무더기 운현의 손 위에 올려 준 상아는 운현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절대 걸리지마. 걸린다면 어떻게든 빼돌릴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한 모든 일들이 물거품이 될지도 몰라."

사람이 의심을 받게 되면 모든 것을 의심받게 된다. 지금 미믹맨을 퇴치한 것으로 모험가 연합의 주가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운현이 도적질을 하다가 걸리면 미믹맨이 모험가 길드의 짓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수 있었다.

"걱정하지마. 이정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스크롤에 대한 설명을 해줄게. 앉아봐."

"응."

상아는 수십장의 스크롤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가 준 스크롤은 세종류. 알람마법을 탐지할 수 있는 탐지 마법, 기척을 없애는 마법. 그리고 보호막 마법이었다.

"함정 탐지 마법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마법이 없으니... 함정탐지는 네가 할 수 있잖아. 차라리 잘됐네. 하이딩의 최대 약점은 어느정도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감으로 때려잡을 수 있다는 거야. 이 마법은 그 기척마저도 없애주는 마법이니까 꽤 쓸만할거야. 다만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까 주의하도록 해. 그리고 이건 보호막 마법. 위기시에 사용해. 세번 정도는 내 공격까지 막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변신의 스크롤. 얼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변화 마법이 걸린 스크롤이야. 제한시간은 한시간이고 몇개 없으니까 아껴서 써."

"이거 비싼거 아냐?"

"응. 이제는 만들지도 못해. 스승님이 만든 마법스크롤이니까. 대마법사의 반열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도 이정도의 스크롤은 못만든다고 하더라. 특히 변화 마법의 스크롤은 아예 감도 못잡던데?"

척 봐도 귀해보이는 스크롤인데 그것을 상아가 아낌없이 주자 운현은 놀라며 물었지만 상아는 차분히 답했다.

"귀하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너에 비하면 그저 종이조각에 불과해."

상아의 말에 운현은 입을 다물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한 그녀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단봉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상대를 기절시키는 용도로 쓰도록 해. 전기충격봉이야. 코어를 몇개 넣어뒀으니까 하루정도는 쓸 수 있겠지."

운현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린 상아는 피식 웃은 후 손을 뻗어 운현의 볼을 꼬집었다.

"말했잖아. 넌 이미 내게 소중한 존재가 됐다고."

"그, 그래. 고맙다."

"그게 다야?"

"뭐. 키스라도 해주랴?"

운현의 말에 상아는 키득거린 후 살짝 눈을 감았다. 기대감 가득한, 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얼굴에 운현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입맞췄다.

"....!"

그가 진짜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상아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왜? 해달라면서."

"아, 아니 그게... 진짜 할 줄이야. 으..."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던 상아는 얼굴을 붉히고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아무튼 조심해야해!"

"알았어."

상아의 방에서 나온 운현은 길드의 회의실에서 던전 도시의 지도를 살피며 자신이 공략해야 할 사람들의 주거지를 표시해나갔다. 그렇게 몇시간동안 작업을 한 운현은 어둠이 내려앉자 거리로 나왔다. 검은 로브를 입고 차분히 걷던 그는 자신이 목적한 곳에 도착하자 종이를 들었다.

'레밍. 상인 조합의 간부. 38세. 비토나 왕국 출신. 주 거래 종목은 무기 및 노예.'

윈디아가 준 자료에 적혀 있는 친 용병 연맹의 간부의 집 근처로 간 운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2층짜리 저택에 입구에는 경비병이 있었고 개들도 꽤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담장은 무척이나 높아 쉽게 오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루트는 저기가 좋겠군.'

빈틈이 없어보이지만 침입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 운현은 로브를 뒤집어 쓴 후 가면을 착용하고 밧줄을 잡았다.

"휙!"

밧줄이 벽 위에 있는 창살에 걸리자 운현은 밧줄을 잡고 가볍게 벽을 타고 올라갔다. 뾰족한 창살들에 걸리면 크게 다칠지도 몰랐지만 운현은 벽을 박차고 뛰어 오르는 것으로 창살의 위험에서 벗어난 후 가볍게 착지하자마자 바닥을 굴렀다.

'...아직은 괜찮은가보군.'

인벤토리에서 알람마법 탐지 스크롤을 꺼낸 운현은 그것을 북 찢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눈 앞에 붉은색의 알람 마법들이 모습을 보였다.

'이정도라면...'

나름 빽빽하게 한다고 해놓았지만 틈은 확실히 있었다. 운현은 검은 로브로 몸을 둘러 어둠에 녹아들며 조심스레 알람 마법을 건드리지 않고 움직였다. 군데군데에 함정도 있었지만 함정해제를 통해 함정을 해제하고 난 그는 어렵지 않게 벽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밧줄을 들어 위로 던진 운현은 밧줄이 건물의 끝에 걸리자 그것을 잡고 빠르게 올랐다. 여기서부터는 시간을 끌면 위험하다. 경비병이 움직이는 시간에 맞추어 그 공백에 벽을 타고 오른 그는 2층의 불이 꺼진 방의 창문을 밀어보았다.

'역시인가.'

창문은 꽉 닫혀 있었다. 그것을 보며 인상을 구긴 운현은 밧줄을 허리에 나 있는 고리에 고정시킨 후 락픽을 꺼내 창문을 열었다. 보물상자를 열때보다 더욱 손쉽게 창문이 열리자 운현은 경비병이 오기 전에 그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큰일날뻔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경비병이 지나갔을 것이다. 운현은 거울을 꺼내 창문 밑으로 횃불을 든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본 후 숨을 삼켰다.

'자... 그럼. 저택을 뒤져야겠는데. 그 전에. 되려나...'

운현은 기대감을 가지고 지도창을 열어보았다. 그 순간 그의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레밍의 저택 2F의 지도가 등록됩니다.]

'와우.'

넓은 저택의 구조가 한번에 보인다. 물론 무슨 방이 무슨 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직접 들어가봐야 하는 듯 했다. 운현은 현재 자신이 있는 방이 서재라는 것을 확인한 후 지도창을 닫았다.

'일단 다 들어가봐야 한다는 거군.'

단검 대신 상아가 준 전기충격 봉을 잡은 운현은 한국의 경찰봉과 비슷하게 생긴 봉의 손잡이를 꽉 잡고 서재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복도에 몇개의 촛불과 마법등만이 빛을 발하는 어두운 복도에는 이동하는 사람이 없는지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딸깍. 딸깍."

조용하다고 생각하자마자 복도의 끝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운현은 긴장하며 근처의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역시나 문은 잠겨 있었다. 락픽을 꺼낸 운현은 발소리가 커지는 것을 들으며 잽싸게 문을 열었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휴우...'

빈 방으로 보이는 방을 둘러본 운현은 화려한 장식들과 테이블이 놓여져 있는 방의 문에 귀를 대고 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만약을 대비해 전기충격 봉을 들고 있던 운현은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침을 꿀꺽 삼켯다.

"어휴. 레밍님도 참. 매일같이 남창을 부르시다니. 힘도 좋으시지."

"이번엔 또 누구래?"

"글쎄? 저번에 레밍님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하니까 새로운 남창을 보내지 않았을까?"

"언제 온다고 하디?"

"이제 곧 오지 않을까?"

"윈디아님께서 그렇게 간부들은 창남이랑 하지 말라고 얘기한데다가 조합 규칙으로 정해놨는데도... 진짜 대단해. 난 늙어도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어휴. 징그러워."

"어쩌겠어? 이제 한참 몸이 달아오를 나인데~ 그래도 돈이 많으니 이렇게라도 하지. 일반 창남들 한번 출장 부를때마다 백골드가 넘어간다면서? 그 돈이면 옷이 몇벌이야?"

시녀들이 지나가며 하는 목소리를 들은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씩 웃었다.

'이거 이럴 필요가 없겠군.'

그녀들이 지나가자 운현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저택의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운현은 자신과 비슷한 체형의 얇싸한 인상의 사내가 정장을 입은 채 저택을 향해 걸어오자 그의 뒤를 쫓았다.

"으휴. 진짜 돈만 아니었어도 그 아줌마랑 왜..."

레밍에게 가는 것이 상당히 불만이었나보다. 그는 궁시렁거리며 골목에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냄새... 으. 담배는 싫은데.'

아직 담배를 배우지 않은 운현은 골목에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에 인상을 구겼다. 그가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운현은 하이딩을 걸고 그에게 다가간 후 목에 단검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말했다.

"이름."

"힉!? 누구...! 아야!"

단검의 날이 목을 살짝 베었다. 그것에 놀란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자 운현은 그를 잡고 천천히 구석진 곳으로 끌고갔다.

"이름."

"하, 하이드라고 합니다."

"목소리 줄여."

"으으으..."

잔뜩 겁에 질려 있는 그를 보며 운현은 조용히 다음 질문을 했다.

"어디로 가고 있지?"

"레, 레밍. 상인 조합의 간부인 레밍의 출장 요청이..."

"얼마냐."

"돈은. 돈은 그게... 저는 그냥 가게 매니저가 가라고 해서... 살려주세요..."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그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자 운현은 몇가지 더 질문을 했다. 레밍에 대한 정보. 가게에 대한 정보. 그 외에 창남들의 행동 방식을 물은 그는 그가 모든 것을 답변하자 다시 한번 물어 거짓이 있나 확인했다.

"모두 진실이겠지?"

'네! 네! 이 정도는 창관에서 모두 가지고 있는 정보라구요! 제발 목숨만..."

"파직!"

"억...!"

낮은 신음성과 함께 그가 고꾸라지자 운현은 그를 가볍게 잡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자신들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운현은 그를 데리고 골목의 끝으로 간 후 그의 옷을 벗기고 그의 양 팔과 다리를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린 후 인벤토리에 있는 낡은 천을 위에 덮어 주고 그의 정장을 입었다.

'내가 다시 정장을 입게 될 줄이야.'

남창 소리 듣는 것이 짜증나 정장을 입지 않았던 운현은 자기 스스로 정장을 입게 될 날이 온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깔끔한 정장으로 차려입은 그는 정장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명함을 확인했다.

"발티르 넘버 원 창관. 미도리나. 하이드."

남자의 양물이 그려져 있는 명함에 새겨져 있는 글씨를 읽으며 운현은 그것들을 외운 후 상아가 준 변화 마법의 스크롤을 찢었다. 아무런 이펙트가 나오지 않아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린 후 거울을 꺼내 보았다.

"허. 이게 이렇게 바뀌나."

하이드와 매우 흡사한 얼굴로 바뀐 자신의 얼굴이 신기하다. 운현은 거울 속의 자신을 이리저리 살펴본 후 피식 웃으며 거울을 인벤토리에 던져 넣고 당당한 걸음으로 저택으로 향했다. 아까 전 숨어서 이동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저택에 도착한 운현은 경비병들이 창을 들고 자신을 막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도리나에서 왔습니다만..."

"미도리나? 아아. 창남인가. 늘 고생이 많군."

"아닙니다. 고객께서 원하신다면 어디든지 가야지요."

"후후후... 창남답지 않은 좋은 자센데? 잠시 기다려."

운현을 막은 그녀는 그에게 창을 겨눈 채 다른 경비병에게 손짓했다. 혹시 그가 무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몸수색을 해 본 그녀는 운현이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은 것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 안내할 사람을 데리고 올테니까."

"알겠습니다."

운현이 얌전히 서 있자 그녀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이야기하다가 볼을 긁적거리며 물었다.

"출장서비스는 얼마정도 하나?"

"어... 일반 창남이면 한 100골드면 됩니다."

"그것 밖에 안해!? 명함 있으면 하나만 주게."

싸다는 이야기에 경비병들이 놀라자 운현은 속으로 당황했다. 도대체 창남들은 얼마를 벌어들인단 말인가. 운현이 진지하게 창남으로 전직을 하는게 낫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이 문이 열리며 고지식한 얼굴을 한, 그래도 그럭저럭 미인의 수준에는 드는 메이드가 운현을 향해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따라오시지요."

"알겠습니다."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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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에게 이끌려 간 운현은 1층의 복도 끝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화려한 방문 앞에 멈춰서고 몸을 돌리자 운현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여긴가요?"

"네.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화려한 방문의 손잡이를 잡은 그녀는 문을 열고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인사를 받으며 당당히 안으로 들어 선 운현은 침실로 보이는 커다란 방에 압도되었다.

'와우.'

"으음...? 이제 온거야? 약속시간보다 늦었잖아?"

음탕함을 빚어서 목소리로 만들면 이런 것일까?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운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은은한 향기가 커다란 침대에서 퍼져오는 것에 운현은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아름답기로 소문난 레밍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에 긴장한 나머지..."

"후후후. 재밌는 얘기를 하는데? 입담만큼이나 잘 할 수 있을까?"

망사 휘장 너머의 여인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운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여자 정도인 줄 알고 긴장했는데 정말 다행이네.'

어차피 해야 한다면 그래도 좀 괜찮은 미녀면 좋다. 운현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육체를 보고 입술을 핥았다. 실루엣만 본다면 가슴은 거의 힐데크급. 엉덩이 역시 힐데크와 맞먹을 정도로 컸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육덕지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실루엣을 보며 운현이 가만히 서 있자 휘장 너머의 실루엣은 운현에게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와. 옷은 모두 벗고 말야..."

나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운현은 얼른 정장을 벗었다. 그가 알몸이 되어 휘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 실루엣의 주인은 벌써 흥분됐는지 자신의 커다란 가슴을 들어 그것의 한쪽을 날름 핥고 자신의 허벅지를 벌리고 있었다.

'와우.'

미모 역시 나쁘지 않았다. 옅은 갈색의 보브컷과 약간 통통해보이지만 그럭저럭 귀엽다고 평가할 수 있는 외모. 그에 반해 음란하기 짝이 없는 육덕진 몸매. 약간 배가 나왔지만 그정도는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호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 이번에 새로 들어 온 하이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들어와? 내가 제일 잘하는 녀석으로 보내라고 했는데?"

운현의 소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인상을 왕창 구겼다. 귀여운 외모였지만 그 외모가 순식간에 무서워지자 운현은 침대 위로 올라가 엉금 엉금 기어 레밍의 손을 잡았다.

"제가 제일 잘합니다."

"흥. 어디 한번 두고보자고. 일단 빨아보실까?"

"네? 아. 예."

레밍은 자신의 다리를 쫙 벌리고 기름진 계곡의 살을 가리켰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질퍽거리는 육즙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계곡을 보며 운현은 그곳을 향해 입술을 가져갔다.

'이미 젖을대로 젖어서 딱히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푹신한 침대 여기저기가 이미 젖어 있는데다가 그녀의 허벅지에는 애액이 말라붙어 있는지 하얀 자국이 있었다. 그것을 보며 운현은 살며시 혀를 내밀어 오똑히 서 있는 클리토리스를 자극했다.

"흣... 후후후... 그래. 거기부터... 으읏..."

살집 많은 계곡의 외벽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운현은 다른 손으로는 찰싹 달라붙을 정도로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레밍의 허벅지를 주물렀다. 그의 손길에 레밍은 기분이 좋았는지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후룹...쭙... 쪽."

운현의 혀가 클리토리스를 계속 애무하자 레밍은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혀가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주도적으로 자극하고, 그의 손가락이 계곡의 입구를 살짝살짝 긁어대며 자극을 더더욱 강하게 하자 그녀는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운현의 머리를 꽉 끌어안았다.

"아흐~! 조아앙!"

얼굴 가득 느껴지는 뜨거운 계곡에도 운현은 애무를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그녀의 하체를 잡고 일어난 운현은 핑크색으로 뻐끔거리는 그녀의 주름진 항문을 톡톡 건드리고 혀를 말아 계곡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어흑! 윽!"

그의 손가락이 항문을 괴롭히자 그것만으로도 놀랐는지 레밍의 신음소리가 거세어져갔다. 그것에 운현은 더더욱 집요하게 그녀를 공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밍은 긴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하으으으으! 좋아아아앙!"

"푸슛!"

한차례 작은 조수를 뿜어낸 그녀는 그것이 운현의 얼굴을 더럽히는 것에도 개의치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쾌락을 즐기던 그녀는 운현이 자신의 하체를 놓아주자 씨익 웃었다.

"말뿐이 아니었네? 후후.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 물건이... 헤에. 꽤 크잖아?"

"감사합니다."

발딱 선 운현의 남성을 보며 레밍은 음흉한 미소를 짓고 몸을 비틀어 그의 남성을 앞에 두었다. 그것을 손으로 감싸잡은 그녀는 달뜬 숨결을 그의 남성에 뿜어대며 말했다.

"영광으로 알아. 이 레밍님이 일부러 해주는 거니까..."

그렇게 말한 것 치고 레밍의 눈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던 운현은 살짝 허리를 빼며 말했다.

"거, 거긴 제가 민감해서... 괜찮습니다."

"괜찮아. 나한테 맡기라니까."

"아니..."

"창남주제에! 시키는대로 해!"

그녀는 거칠게 운현을 밀쳐 넘어트렸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좋았는지 그녀는 운현이 힘없이 쓰러지자 그의 위에 걸터 올라타고는 자신의 계곡을 운현의 얼굴 쪽으로 가져다 대었다.

"헛짓하지 말고 아까 하던거나 마저 해. 알았어?"

"흣...으윽..."

"후후후... 싫다고 하는 주제에 여기는 이렇게나 세워두고... 역시 남자들은 다 똑같다니까."

비웃음 섞인 말투를 내뱉으며 그녀는 운현의 남성을 잡고 핥기 시작했다. 꽤나 여유롭고 능숙한 척 말을 하지만 바제트에 비하면 딱히 좋지는 않았다.

'아니, 우리 애들에 비하면야...'

확실히 애정이 느껴지는 애무가 아닌, 개인의 욕심을 챙기기 위한 애무라서 그런지 좋다는 감각은 별로 없었던 운현은 하복부에 느껴지는 묵직한 가슴의 부드러움을 즐기며 말랑말랑한 둔부, 그리고 요염한 향을 내뿜는 그녀의 계곡을 주무르고 애무하기 시작했다.

"허윽! 윽... 이렇게 공격하기야? 후후... 벌써 쌀것 같나보지?"

'아니 싸기는 무슨...'

만약 운현이 이세계에 처음 와서 동정인 상태였다면 그녀의 이런 어설픈 애무로도 꽤나 느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벌써 수십번도 넘게 한 운현으로써 이정도 애무로 싸기는 어려웠다.

"으으... 그, 그래요."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창남. 고객을 만족시켜야지...'

일단 그녀를 만족시켜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 괜히 기분을 상하게 해서 꺼지라고 한다면 괜한 뻘짓만 한 셈이기에 운현은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그녀를 애무하던 움직임을 천천히 하고 허리에 힘을 풀었다.

"으읏... 싸, 쌀것 같아요."

"그래? 우후후후... 내 자랑의 가슴으로도 보내주지."

운현이 부들부들 떨며 말하자 그녀는 더욱 기분이 좋았는지 자신의 커다란 가슴으로 운현의 양물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운현은 사정감이 차오르자 참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싸버렸다.

"꺄악? 우후후후... 성대하게도 싸버리네. 아깝게 시리... 으음~ 맛있어. 역시 젊은 애들게 좋다니까."

운현의 양물을 위 아래로 흔들며 남은 정액을 쪽쪽 빨아 꿀꺽 삼킨 그녀는 운현의 허벅지에 뭍은 정액을 혀로 핥았다.

"자. 그럼 제대로 해보겠어?"

그녀는 양 다리를 벌리고 손짓했다. 일단 자기를 만족시켜보라는 그녀의 몸짓에 운현은 자신의 양물을 들어 그녀의 계곡 안에 쑥 밀어 넣었다.

'조이지도 않는군.'

몸매는 육덕지고 좋았지만 어찌나 쓴 것인지 힘이 별로 없었다. 그냥 살덩어리에 감싸진 듯한 느낌에 운현은 실망할 뻔 했지만 레밍은 그것만으로도 꽤나 좋은 모양이었다.

"으읏...어, 어때? 내가 꽤 명기라서 말야... 다른 남창들도 얼마 못가더라고."

'걔들이 찐따인건가. 아니면 내가 잘난건가. 하...'

레밍이 우쭐하며 말하자 운현은 그녀의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파뭍고 열심히 허리를 흔들었다. 마치 그녀의 계곡이 너무 좋아서 참을 수 없다는 듯, 그의 격렬한 허리 놀림에 곧장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아흐! 좋아! 어흐으으으! 더 세게! 더 세게!"

운현을 꽉 끌어안으며 레밍은 교성을 연신 터트렸다. 길고 기름진 다리가 허리를 꽉 잡자 운현은 그녀의 다리를 은근슬쩍 풀어낸 후 말했다.

"헉...헉... 싸, 쌀것 같아요."

"안에! 안에 해줘!"

"하, 하지만 임신하시면..."

"피임했으니까!"

그녀의 말에 운현은 얇은 사정감이 차오르자 더욱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것에 레밍은 더더욱 큰 교성을 내질렀고 운현은 레밍의 커다란 가슴을 쥐어짜듯 꽉 잡으며 그녀의 안에 사정했다.

"으읏...! 후후후... 굉장한데?"

"...."

"아직 안죽은 걸 보니 한번 더 할 수 있지?"

"물론이죠."

"정말 너 굉장해. 하마터면 기절할뻔 했지 뭐야... 이번에는 이 자세로 해줘."

그녀는 살짝 몸을 돌린 후 침대를 잡고 엎드렸다. 엉덩이를 크게 올린 레밍을 바라보던 운현은 자신의 양물을 그녀의 계곡 안에 밀어 넣은 후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찔꺽...찔꺽..."

"으흐흐흐! 조아아앙! 그래! 거기~!! 아흣!"

'역시 창남은 나랑 안맞는군.'

동료들과 할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감정이 안든다. 섹스도 즐거워야 좋지 의무감을 가지고 하다보니 영 아니다. 운현은 복잡한 생각을 하며 허리를 흔들었고 그렇게 십여분정도 레밍을 괴롭히던 운현은 그녀의 움찔거리는 항문에 손가락을 넣었다.

"어허어어어엉!?"

갑작스레 항문에 이물질이 들어오자 그녀는 고개를 치켜들고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고통의 비명이라기보다는 쾌락의 비명이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쾌락에 몸부림을 치자 운현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안쪽을 긁어대며 허리를 튕겼다.

"어흑! 어흐으윽! 어헝! 어허엉!"

동물처럼 비명을 토해내며 그녀가 꿈틀거리자 운현은 그제서야 계곡이 조금씩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어느정도 쾌감을 받기 시작한 운현은 손가락을 떼어낸 후 일부러 그녀의 계곡 벽을 긁어대는 방식으로 남성을 찔러나갔고 그것에 더더욱 쾌감을 느낀 레밍은 축 늘어진 채 운현의 남성을 받아들이며 움찔거렸다.

"웃!"

간신히 사정감을 느낀 운현은 그녀의 안에 자신의 정액을 폭발시켰다. 정액이 찾아오는 뜨거운 느낌에 레밍의 몸이 한차례 더 꿈틀거리자 운현은 그녀의 등 위에 몸을 가져다 댄 후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레밍님?"

"하아...하아..."

꽤 큰 절정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타액을 주르륵 흘리며 멍하니 헐떡거릴 뿐 이었다. 운현은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후 살며시 속삭였다.

"아직 만족하지 못하신 것 같으니... 좀 더 해드리지요."

"어아아..."

"아흑! 으흐윽!"

이제는 그냥 하체를 내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레밍은 운현이 허리를 튕길때마다 힘없이 이리저리 몸이 이끌렸다. 커다란 가슴은 침대에 눌려 옆으로 터질 듯 삐져나와 있었다. 그것을 본 운현은 레밍의 몸을 끌어 올린 후 그녀의 큼지막한 가슴을 꽉 주무르고 엄지손가락만한 큰 유두를 비틀었다.

"하으으으윽!!"

그 쾌감에 레밍이 비명을 내지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레밍은 혀를 빼물고 운현이 주는 쾌감을 즐겼고 운현은 그녀의 가슴을 주무를때와 항문에 손가락을 넣을 때 계곡에서 자극을 받았기에 그녀의 상태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레밍의 육덕지고 기름진 몸을 가지고 놀았다.

"으읏...!"

또다시 사정감이 차오르자 운현은 그녀의 안에 사정했다. 그 정액을 받으며 레밍이 헐떡거리다가 침대에 축 늘어지자 운현은 천천히 양물을 뽑아낸 후 한숨을 내쉬었다.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됩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하아...하아..."

숨만 헐떡이는 그녀를 무감정히 내려다보며 운현은 레밍에게 속삭였다.

"아직 안끝났습니다. 진짜 짜릿한 맛을 보여드리죠."

엎드린 채 누워 있는 레밍을 향해 운현은 인벤토리에서 전기충격봉을 꺼내 망설임없이 전기 충격을 먹였다.

140====================

election

"처음부터 이게 나을 뻔 했나. 괜히 시간만 버린 것 같군."

몇차례 퍼덕거리던 그녀가 기절하자 운현은 그녀의 눈 앞에서 손가락을 튕기거나 몇번 흔들어 본 후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림, 액자, 서랍. 벽장, 이곳 저곳을 뒤지던 그는 레밍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그림 바로 뒤에 금고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철컥."

자물쇠따기 스킬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금고의 문을 연 운현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락픽에 감탄했다. 아무리 특별한 락픽이라고 하지만 이정도로 쉽게 금고를 열 수 있다니. 보통 락픽이 아니라 생각한 운현은 다음에 아스티나를 찾아가 다른 물건도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싶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운현은 활짝 열려 있는 금고의 내부를 보았다. 수많은 금괴, 보석, 그리고 금화가 잔뜩 든 주머니. 그리고 금고 위에 올려져 있는 두개의 장부. 똑같은 생김새의 장부를 펼친 운현은 말없이 빠르게 그것을 흝어보았다.

"역시 있군."

이중장부를 찾은 운현은 장부 둘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금고 안의 많은 금은 보화를 건드리는 대신 금괴 하나, 보석 주머니에서 비싸보이는 다이아몬드 셋, 그리고 금화 몇개를 인벤토리에 넣는 것만으로 보물을 다 훔친 그가 금고의 문을 닫으려고 할때 그는 금고 바닥에 있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몰랐을 비밀 금고를 발견했다.

'이정도로 숨겨 놓는다는 것은 뭔가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

운현은 락픽으로 그것을 해제한 후 열어보았다. 그가 비밀 금고를 열었을 때 나온 것은 금괴도, 보석도 아닌 동그란 철판이었다.

"이건..."

원형의 철판에 새겨져 있는 날개의 모양. 운현은 그것을 보며 입을 꾹 다문 채 생각했다.

'이건 내가 처음 이세계에 들어왔을 때 보았던...'

레나를 구하기 위해서 홉고블린을 죽였을 때 홉고블린이 소지하고 있던 메달과 똑같이 생긴 그것에 운현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뭐지?'

아직 자신의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져 있는 그 메달을 꺼낸 운현은 그것과 레밍의 금고에 있는 메달을 비교해 본 후 약간의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메달의 날개의 깃털이 몇개 더 많았던 것이었다.

'이런 것을 만들대는 거의 주물을 이용해 만들텐데... 이런 미세한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

모험가 길드에 들어와서도 이것을 가지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것에 대해서 알려면 누구에게 가야 할까. 라는 질문이 떠오르자 운현은 피식 웃었다.

'레나지.'

레나가 그곳에 잡혀 있던 이유, 그리고 같이 있던 이들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것. 사교의 의식. 그 모든 의문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레나와 만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운현은 비밀금고를 닫은 후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르토리우스가 시장이 된다면 이 장부를 세상에 밝히겠다.'

이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윈디아는 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아르토리우스가 시장이 되지 않는다면 그 대상은 상아 아니면 피스나가 될 것이다. 거기에 상아 역시도 출마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그 대상은 피스나가 될 터.

'상인 조합의 간부쯤 된다면 영향력도 꽤 있겠지. 그렇다면 그 밑에는 내가 일부러 손을 쓰지 않아도 좋겠군.'

만약 숨기고 있던 치부, 이중장부가 없었다면 모를까 그것이 발견된 이상 레밍으로서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최대한 자신에게 협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정인이 당선되지 못하게 한다. 라는 것은 특정인에게 표를 준다와는 달랐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특정인이 당선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일부러 내가 다른 쪽까지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겠지.'

모든 작업을 마친 운현은 작업의 흔적을 인벤토리에 밀어 넣은 후 레밍에게 안겼다. 그녀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육체가 몸을 감싸자 운현은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그녀를 깨웠다.

"레밍님? 레밍님?"

"으으으... 진짜 제대로 가버렸네..."

아직까지 전기 충격봉으로 인한 기절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지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이 절정의 여운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그녀는 빙긋 웃으며 운현의 입술에 키스한 후 말했다.

"너 정말 대단한데? 진짜 전기충격에 당한 기분이 들 정도로 가버릴 줄이야... 후후후... 굉장해. 내 애인이 될 생각은 없어?"

"저를 찾으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대신 레밍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레밍님께 안기겠습니다."

"아아아... 정말 좋아. 훌륭해. 자. 이건 개인적인 포상금이야."

씩 웃은 그녀는 탁자 위에 있는 금 촛대를 운현에게 휙 던졌다. 척봐도 비싸보이는 그것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야말로 레밍님과 함께 자게 되어서 영광인걸요. 이런 것은..."

"흐음. 하긴. 이런 물건을 현금화시키려면 골치아프겠지. 자. 이건 어때?"

"어휴... 이렇게까지. 두번 사양하는 것은 레밍님께 실례겠지요. 감사합니다."

운현은 웃으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가 준 돈주머니를 받았다. 무게만 느껴도 금화 삼, 사십개는 들어 있을 법한 금화다. 그것을 챙긴 운현이 다시 레밍을 안으려 하자 레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 오래간만에 제대로 절정을 느꼈어. 오늘은 그냥 쉬고 싶은데..."

"그, 그런가요. 그럼 다음에도 꼭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레밍의 손등에 입맞춘 운현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웃음이 마음에 들었는지 레밍은 피곤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후후후... 너같은 이쁜이를 부르지 않으면 누굴 불러? 다음에도 꼭 와주길 바라."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응. 수고했어. 이만 가봐."

운현이 옷을 입고 문으로 향하는 것을 본 그녀는 그가 나가자 잠이 들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메이드는 운현을 데리고 나갔고 그가 나오자 경비병은 웃으며 운현의 엉덩이를 툭 쳤다.

"후후후. 다음에는 우리가 출장 불러도 와줘야해."

"얼마든지요. 수고들하세요~"

레밍의 저택에서 나온 운현은 아슬아슬하게 변신 시간이 다 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골목으로 들어와보니 하이드는 여전히 기절해 있는 상태였다. 그에게 옷을 입혀준 운현은 단검을 들었다.

'차라리 여기서 죽이는게 낫지 않을까?'

완전한 범죄를 위해서는 입을 막는게 좋았다. 비록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는 들려줬으니 만약 그가 자신의 목소리로 운현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만큼 일이 더욱 복잡해지게 된다.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해제됩니다.]

[지력이 99 하락합니다.]

"....."

잠시의 고민이 손을 멈추게 했다. 단검을 까딱거리며 한참 고민하던 운현은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단검을 내렸다.

'굳이 죽일 필요까진 없겠지..'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자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다음 집을 향해 이동했다.

운현이 떠난 골목으로 검은 로브를 두른 여인이 말없이 들어왔다. 그녀는 쓰러져 있는 하이드를 잠시 바라본 후 아무런 망설임없이 그의 심장에 쑤셔 넣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하이드가 절명해버리자 그녀는 운현이 떠난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쓸데없는 이상한 짓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 귀찮게 하시네요. 후후후... 그래도 그게 당신의 매력이니까 이해해줄게요."

그녀는 천천히 검을 뽑은 후 검에 뭍어 있는 피를 손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은 후 중얼거렸다.

"그래서 다난의 흔적은 찾으셨나 몰라...?"

"어이구 죽겄다."

다음날 동이 틀 때쯤이나 간신히 돌아 온 운현은 피곤함에 지쳐 후들거리는 다리로 상아의 방에 들어갔다. 그가 들어온 것을 반기며 상아는 운현이 어디 다친데는 없나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어휴, 마지막 비난의 집에 갔을 때 뒤지느라. 세상에. 어떻게 일곱명 중에 여섯명이 이중장부를 가지고 있냐."

운현은 챙겨 온 장부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며 투덜거렸다. 그의 말에 상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 그럼 이들은 문제가 없겠네."

"응. 아르토리우스가 시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버둥을 칠거야. 아마 이게 밝혀지면 난리가 날테니까 말야."

이중 장부를 차분히 흝어 본 상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 국가로 이어지는 과도한 세금과 던전 도시에 내야 햐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 만들어짐과 동시에 그를 무마시키기 위해 뿌린 뇌물들이 적혀 있는 장부들을 살핀 그녀는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히야... 많이도 해먹었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그냥 되는대로 살지 뭘 이렇게 더 먹겠다고 아둥바둥거리는지 원."

상아의 감탄에 운현은 투덜거리며 로브를 벗고 긴 쇼파에 누웠다. 많이 지쳐보이는 그의 옆으로 간 상아는 운현의 얼굴을 콕콕 찌르며 빙긋 웃었다.

"고생 많았네. 좀 쉴거야?"

"응. 좀 자야겠어. 피곤해 죽겄다."

"무릎베게라도 해줄까?"

"그거 좋지."

나가기 전에 상아와 키스를 했던 것을 떠올린 운현은 웃으며 말하고 그녀의 말랑말랑한 허벅지에 머리를 뉘였다. 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상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그 콧노래를 즐기며 운현은 서서히 잠이 들었다.

"크헉!"

한참 잘 자다가 얼굴에 축축한 무언가가 자꾸만 떨어지자 운현은 눈을 벌떡 뜨고 몸을 일으켰다.

"꺄악!?"

"어. 음. 뭐야?"

운현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뭍은 액체를 손으로 쓱 닦아보았다. 투명하고 끈적한 액체다. 그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상아를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왜?"

"너 잤냐?"

"윽... 나도 어제 너 걱정하느라 한숨도 못잤다고! 긴장이 풀려서 좀 잠들었다! 왜!"

"아니 그걸 뭐라고 할 생각은 없는데 침까지 흘리면서..."

테이블 위에 있는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은 운현은 아직 피로가 풀리지 않아 다시 누웠다. 상아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댄 그는 천천히 장부를 읽기 시작했고 상아 역시 다른 장부를 읽다가 그의 얼굴을 콕 찌른 후 말했다.

"오늘이 피스나와 약속한 날이야. 거기 가봐야하지 않아?"

"가긴 가야지."

"어쩔 생각인데?"

"음... 일단 화려한 홍보를 해야지. 피스나의 인지도를 올리는게 우선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다음은..."

"다음은?"

"제작자 연합의 간부들을 협박해야지."

"하지만 그들에게 약점이 있을까? 상인들과 다르게 제작자들은 탐욕이 아닌 연구와 그 연구성과가 어떤 식으로 활용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뭐 그래도 상관없어. 인간인 이상 약점은 있기 마련이지."

"...이왕이면 좀 덜 난폭한 방법으로 해."

"노력해볼게."

정 안되면 납치감금이라도 하고 싶지만 자신의 레벨로 그것이 가능할리 없으니 무리. 운현도 방법을 생각해봐야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뻗어 상아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응? 왜?"

그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자 상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와중 운현은 살짝 몸을 올린 후 상아의 입술에 키스했다.

"나도 모르게 그만."

"......"

"하하하! 그럼 난 피스나에게 다녀올테니 네 일이나 하시지! 그럼 사라바다!"

운현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멍하니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던 상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진짜! 아! 진짜! 뭐야아!"

한참이나 발을 동동 구르던 상아 때문에 문이 열렸다.

"무슨 일 있으세요? 운현이 무슨 짓이라도..."

"아, 아냐!"

그녀의 당혹감에 가득 찬 말에 에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붉어진 얼굴로 웃고 계세요?"

"...응?"

그녀의 말에 상아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은 붉게 달아 올라 있었고 에리스의 말대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141====================

election

피스나의 가게로 가는 대신 운현은 파르티 성당으로 향했다. 가기 전에 일단 의문을 좀 해결해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다른 간부들에게는 없었어.'

다른 상인 조합의 간부들이 비슷한 메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상인 조합의 메달이라고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메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레밍과 다르게 그 메달을 숨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어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까."

운현은 터덜터덜 파르티의 성당 앞에 도착하자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성당의 문이 열리고 레나가 모습을 드러내자 운현은 손을 들었다.

"여어."

"쾅."

레나는 운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뻘쭘해진 운현은 성당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야! 야! 문 좀 열어봐!"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겁니까?"

"아니 그게. 근데 넌 왜 나한테 그러냐?"

"말씀드렸잖습니까. 당신은 이곳에 오면 안되는 존재라고."

"내가 뭔 죄를 저질렀다고... 그럼 잠깐 얘기 좀 하자. 저기 분수대 옆 찻집에서 기다릴테니까 나와. 알았지? 안나오면 나 계속 여기서 깽판친다."

"끙... 알겠습니다."

운현이 진짜로 그럴 것 같았던 레나는 낮게 신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어거지로 약속을 잡은 운현은 그녀에게 말했던 찻집으로 가 홍차를 시켰다. 그가 한잔의 홍차를 다 마셨을 때 쯤 찻집의 문이 열리며 흰색 사제복의 레나가 들어왔다.

"여기야."

그를 보자마자 레나는 예쁜 얼굴을 팍 찡그렸다. 그녀의 반응에 운현은 기분이 나빴지만 물어 볼 것은 자신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기분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며 앉아 자신을 보지도 않자 운현은 차분히 물었다.

"차는 뭐 마실래?"

"물 주세요. 할 말이 뭡니까?"

"시간 오래 안빼앗을테니까 걱정마. 너 나한테 왜 그러냐?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래?"

"그럴리가요."

"그럼? 내가 니 처녀를 빼앗았다고 그러는거냐? 야. 그런거면 나도 할 말이 없는게 아니라고. 나는..."

"하아... 제가 그런 것 때문에 이러는 줄 아세요?"

"그게 아니야?"

운현은 그것 외에는 레나에게 찔리는 구석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처녀를 가져간 것에도 딱히 찔리지 않았다. 애초에 운현은 당한 입장이 아닌가. 피해자는 자신인데 레나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자 운현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저는 파르티님의 사제. 육체는 단명하고 영혼은 영원한 법. 고작 육체의 처녀를 빼앗긴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럼?"

"하아... 신탁 때문이에요."

"신탁? 야. 차라리 그냥 내가 처녀 빼앗아서 싫다고 해라.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레나의 말에 운현은 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그가 떨떠름하게 말하자 레나는 인상을 쓰며 화를 냈다.

"지금 사제 앞에서 신탁을 부정하겠다는 건가요? 이거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죠?"

"아니. 그렇게 화내지말고. 무슨 신탁인데?"

서슬퍼런 그녀의 기세에 눌린 운현은 조금 수그러든 태도로 물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레나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말했다.

"본단의 교황님께서 열흘간 잠드셨어요. 고위의 사제가 이렇게 잠드는 현상을 저희 교단에서는 신과의 만남이라고 하죠. 성녀님이나 교황님정도 되시는 분들은 그런 식으로 신탁을 받으세요. 하지만 모든 기록을 통틀어도 그정도로 오랫동안 신과의 만남을 가지신 분은 계시지 않았어요. 그리고 교황님께서 깨어나셨을 때 그분께선 파르티님의 말씀을 전하셨죠."

"뭔데?"

"4대 이단 심판관이 죽었을 때 세계를 위협할 존재가 나타난다. 대비하라. 대비하라. 대비하라. 검은 날개를 가진 의지없는.정의의 후예가 움직이며 교단은 불탈 것이고 세계는 정의로 뒤덮히리라. 대비하라. 검은 날개를 조심하라. 그들이 제시하는 정의를 받아들이지 말지어다."

"...뭔 신탁이 그렇게 두루뭉술해? 그리고 정의가 뭐가 나뻐?"

"말 끊으면 저 갈거에요."

"아, 알았어."

뭐가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위험하다고 딱 짚어주면 안되는 것인가? 운현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하자 레나는 또다시 인상을 구겼다. 아직 자기 본론은 물어보지도 못한 운현이 사과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검은 날개를 막으려는 이단 심판관의 죽음과 함께 나타난 사람을 경계하라. 그는 이 세계의 거짓이며 가짜이고 운명에서 벗어난 존재이니, 그와 함께 하는 이는 자신의 몸을 지켜 그를 거부하여야 한다."

"...그게 뭐야."

레나의 말에 운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세계의 거짓이며 가짜? 자신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운현은 마치 그것을 지적당한 것 같아 긴장했다.

"여기까지가 신탁의 내용이에요. 이 말씀을 마치신 교황님께선 그대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이단 심판관님이 누군가의 습격에 의해 돌아가시게 되었어요."

"...아니 잠깐만. 4대 이단 심판관이라면서. 다 죽.. 돌아가신거야?"

"아니요. 돌아가신 것은 북의 이단 심판관이신 바스터님. 그리고 서의 이단 심판관이신 롤랑님이에요. 남과 동의 이단 심판관은 아직 살아 있어요."

"그럼 됐잖아. 혹시 오늘 내일 하시나?"

"그런건 아니에요. 아직 팔팔한데요."

"허... 그럼 다행이네. 그 검은 날개가 뭔지 알아?"

"아마 다난을 의미하는 걸꺼에요. 정의와 선의 여신, 대지의 여신 다난."

레나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의와 선이 뭐가 나쁘다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그런 이명을 가지면 좋은 신 아닌가? 운현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자 레나는 쓰게 웃었다.

"정의와 선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다난이 제시하는 정의와 선의 기준은 다난의 교리를 따른다는 것이 문제에요.

"그게 무슨소리야?"

레나는 차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선은 그 존재의의를 잃어버리지요. 그것은 진리이고 진실이에요. 하지만 다난이 제시하고 추구하는 정의와 선은 달라요. 무조건적이죠."

"그게 무슨 소리야?"

"예를 들면... 그래요. 이게 좋겠군요. 배고픈 아이가 있어요. 그리고 당신은 하루 종일 일해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이 먹고 남을 정도의 많은 빵을 가지고 있지요. 당신은 그 아이에게 빵을 주실 건가요?"

"내가 왜? 내 빵인데."

"그것을 다난의 교리에서는 악이라고 해요. 가난하고, 불쌍하고, 굶주린 자를 돕지 않는다고."

"아니 잠깐만. 내가 열심히 일해서 빵을 많이 샀는데 게을러터져서 굶주리고 있는 거지에게 빵을 주지 않으면 그게 악이라고? 그게 뭔 개소리야."

레나의 말에 운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 비논리의 의미가 아니에요. 그들은 당장의 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악으로 규정짓고 배척하죠. 그 뿐만 아니랍니다. 그들은 사람의 욕심을 부정해요. 오로지 평균과 평화,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 다난이라는 년에게 조별과제를 맡기고 싶구만.'

다난이 바라는 것은 인간의 절대적인 선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맡은 몫을 해낸다는 것을 전제로 선을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잖아."

"네. 모든 인간은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죠. 좀 더 배부르고 싶고, 좀 더 편해지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욕심을 바탕으로 성장해나가죠. 다난이 바라는 것은 사람의 성장을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저 절대적인 선과 정의를 수행하는 가축이 되길 바라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 파르티 교단에서도 그들을 사교로 구분했답니다."

"허어..."

그녀의 말에 운현은 신음성을 터트렸다. 이 꿀같은 세계에 그런 정신나간 조직이 있었을 줄이야. 그를 바라보던 레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거 아닌가? 그 다난의 교리란것도 결국 정의와 선을 주장하는 거라면 그걸 다들 거절하면 어쩔건데?"

"그것 때문에 다난의 교단에서는 교황을 제외하고 나머지 신자들을 집행자라고 하고 교리대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타인을 강제하죠. 더 위대한 정의와 선을 구현한다는 말과함께"

"결과적으로보면 그들의 교리에 따라 악이되는거잖아. 그정도면 순교 수준 아닌가? 그게 말이 되는 얘긴가??"

"집행자들은 자신들 기준의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손을 더럽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죠. 그 후 다난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자신들이 행한 일을 용서받는다 생각하고 있어요."

"아주 개자식들이네."

듣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의 조직이다. 즉 다른 사람들은 욕심 챙기지 않더라도 자기들은 욕심 챙기겠다는 것들 아닌가. 정의와 선의 여신이라지만 아무리 봐도 악신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던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사교고 배척당하죠."

"으음... 아무튼. 그건 그거고 거짓된 존재는 뭐야?"

"그건... 그 동굴. 기억 나시나요?"

"응."

"그곳에서 돌아가신 여자분이 바로 이단심문관 롤랑님이세요. 롤랑님은 다난 교단의 흔적을 찾던 도중 저와 합류하여 던전 도시를 방문하시던 도중이었죠"

"...잠깐만. 그럼 내가 거짓된 존재라는거야? 다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저로서는 최대한 주의해야 한다구요."

"왜?"

"그거야... 제가 남쪽의 이단심문관이니까요."

"...야. 하나만 묻자. 너 날 그 거짓된 존재이니 뭐니로 의심하고 있잖아."

"그렇죠."

"그런데 그걸 이렇게 말해도 괜찮아?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운현의 말에 레나는 피식 웃었다.

"당신이 뭘 할 수 있는데요?"

"뭐, 뭔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레나는 그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운현이 이를 갈자 레나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고작 미믹 한마리에 그렇게 고생을 하는 사람이?"

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말했다.

"바리아나와 미리나는 알고 있죠? 그 둘은 제 소속의 이단 심문관이랍니다. 그들의 보고에 따르면 당신이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존재는 아니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거기에 다른 이들의 평판 역시도 나쁘지 않고. 만약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처단하는 것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네요."

"허술하네."

자기 목숨이 좀 안전해지기는 했지만 운현은 그녀의 허술한 대응에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삭초제근이라는 말이 있다. 뿌리가 보이면 당장 뽑아야 하는 법. 자신이었다면 보자마자 목을 땄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그녀의 행동에 운현은 차분히 말했고 레나는 피식 웃었다.

"다른 이단 심판관님들이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전 좀 달라요."

"그러다가 큰코다친다."

"그에 대한 대비는 하고 있는걸요. 그리고 지금은 사람도 없어서 당신을 치기 힘들어요. 당신. 모험가잖아요. 모험가를 저희 파르티 교단에서 공격했다간 곧장 전쟁이 날텐데요. 저희 입장에서도 그건 조금 골치아픈 일이랄까... 만약 당신이 위험인물이다 생각되면 본단에 바로 협조를 요청할거니까 함부로 까불지 마세요. 알겠나요?"

"하아... 아무튼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알겠어. 신탁때문이라니 어쩔 수 없군."

"이해해줘서 고맙군요."

"이해 안하면 어쩌겠어? 아무튼 그건 그렇다고 치고... 자. 다음 질문. 사실 이게 본론인데."

운현은 주머니에서 메달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것을 본 레나의 표정이 딱딱히 굳자 그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게 뭔지 알아?"

"이건... 다난의 디바인마크인데."

"뭐?"

예상 외의 답변이 나왔다. 운현이 당황하며 되묻자 그녀는 꺼림찍하다는 얼굴로 그 메달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 대사제급. 이 날개 모양을 보면 대사제급 이상일수도 있겠네요. 이걸 어디서 발견했죠?"

레나의 다급한 질문에 운현은 무덤덤히 답했다.

"그때 그 동굴에서. 널 가두고 있던 홉고블린이 가지고 있던거야."

"...그게 정말이에요? 잠깐만. 홉고블린이 이걸 가지고 있었다? 왜? 설마... 설마... 미안해요. 저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레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후 창백한 얼굴로 가게를 뛰어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린 후 메달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젠장.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정보만 주게 됐네."

그는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한숨을 푹 내쉬고 밖으로 나갔다.

"피스나한테나 가야겠다..."

142====================

election

"어머? 운현씨."

몇일 밤을 샌 탓인지 피스나는 꽤 초췌한 얼굴이었다. 씻질 못한 것인지 머리는 질끈 틀어 올렸고 눈 밑에는 거뭇한 다크 서클, 옷에는 여기저기 기름과 얼룩이 뭍어 있었다.

"고생 많으셨나보네요."

"어휴. 이정도야 가뿐하죠."

운현을 향해 빙긋 웃은 피스나는 그를 데리고 지하실로 들어갔다. 지하의 작업실은 난장판이었다. 작업 도구들이 널부러져 있는 그 안에서 운현은 넓은 지하실의 중앙에 있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오호..."

일반적인 마차와는 많이 달랐다. 일단 짐을 수납하는 공간을 칸으로 나눌 수 있고 흔들림에 의한 충격을 방지하기 위함인지 마차의 외벽과 내벽에 공간이 있었다.

"여기에 무중력 공간을 만드느라... 어휴. 엄청 힘들었어요. 인챈트를 몇번이나 했던지."

"굉장하네요. 잠깐 타봐도 괜찮나요?"

"물론이죠."

그녀의 허락에 운현은 마차 위에 올라탔다. 그가 올라타자 피스나는 구석의 장비를 조작하여 마차가 움직이게 해보았다.

"와... 승차감 좋네요."

흔들림이 하나도 없다. 밑을 보니 바퀴는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진동을 공간의 마법이 막아주는 것 때문인지 매우 안정적이었다. 운현이 감탄하자 그녀는 씩 웃으며 코밑을 닦았다.

"그리고 이걸 누르면요."

"우우웅!"

마차의 위에 튼튼한 철대가 움직여 고정되고 천이 그것을 덮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호루가 쳐지는 것에 운현이 감탄하자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날이 좋을 때는 이걸 벗기고, 비나 눈이 오면 이걸 치는 것으로 쾌적하게 움직일 수 있을거에요. 지금까지의 마차는 이걸 수동으로 해서 시간이 꽤 걸렸거든요."

"오... 자동이라는거죠. 그리고요?"

"그리고 이 버튼을 누르면요."

"우우우웅!"

피스나가 버튼을 누르자 마차의 하단 부분이 열리고 긴 판자가 나왔다. 판자의 밑부분에 있는 철봉이 바닥을 지지하며 버티자 그녀는 운현을 보며 말했다.

"마차 여행 중에는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이 여의치 않아요. 그렇다고 이런 테이블을 가지고 다니기도 어렵죠. 여기서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다면 좀 높으신 분들도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을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이쪽에는 무중력 마법을 이용해 만든 무진동 침대가 있어요."

"이야~ 이정도까지 만드실 수 있을줄은 몰랐네요."

"헤헤. 그리고 이건 마법 통신구. 전서구나 메시지 마법을 이용해야만 가능했는데 상아씨가 좋은 코어를 줘서 이걸로 원하는 곳과 연결하여 간단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비상시에 사용하기 좋죠."

"이게요?"

작은 구슬 형태로 만들어져 마차의 마부석에 있는 것을 가리키며 그녀가 말하자 운현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그것을 보았다.

"마법사가 아니라도 쓸 수 있는건가요?"

"네. 코어가 많이 소비되긴 하지만 말이죠."

"만들기 어려운건가요?"

"음... 네. 일단 이정도 장치를 만들려면 최소 4계층 이상의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코어가 아니면 불가능하죠. 4계층을 다닐 수 있는 모험가도 별로 없지만 문제는 이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없어서. 아마 던전 도시 내에도 저랑 부 연합장이 아니면 힘들걸요?"

"부 연합장님은 전쟁에 찬성하시는 분인가요?"

"아뇨. 그분도 전쟁이라면 이를 가시는 분이에요."

'그나마 다행이군.'

운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역시도 잘하면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피스나는 작게 숨을 내쉰 후 마부석에 있는 버튼을 가리켰다.

"마지막으로 자동 주행장치. 이건 좀 힘들었네요. 기존에 연구하던게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거에요."

그녀는 마차의 앞부분에 있는 버튼을 가리켰다.

"지금은 아직 연구가 덜 되고 도로의 상황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직진만 하는 것이라면 따로 말을 다루지 않아도 이 버튼을 누르면..."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바닥의 구멍이 열리고 두개의 철봉이 올라왔다.

"이 철봉의 윗부분에 있는 고리에 채찍을 연결하면 설정된 만큼 말이 직진을 할 수 있게 말을 이끌어 준답니다."

"굉장하네요. 그래서 비용은 얼마가 들었어요?"

"그다지 많이 들지 않았어요. 무중력 마법을 인챈트하는 비용이 좀 쎄긴 했지만 일반 고급 마차와 비교해도 가격차이가 크지 않아요. 조금 비싼 정도?"

가격까지 잘 맞췄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피스나의 어깨를 턱 잡았다.

"그럼 마차의 이름은 아직 안정했죠? 아이 마차라고 합시다. 이건 마차계의 혁신이에요!"

"그, 그런가요?"

'사실 모르겠지만.'

마차 여행을 해봤어야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지 않겠는가. 운현은 기뻐하는 피스나를 보며 빙긋 웃은 후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시장 선거 후보 등록일이니까 어서 씻고 오세요. 상아와 필레를 부를테니 바로 등록하러 가죠."

"알겠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씻으러 가자 운현은 마차를 바라보았다. 일단 다른 마차들의 스펙들을 살펴보면 이 마차가 확실히 좋긴 좋았다. 일단 무진동이라는 것만으로도 화물을 안정적으로 운반할 수 있었고 그 무진동이라는 장점은 고위직의 사람들을 태우는 것에도 용이할 것이다.

'문제는 가격이지만 가격도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고 하니...'

운현은 팔짱을 끼고 이것을 홍보하기 위한 쇼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물론 어느정도는 기획을 해 둔 상태였다. 문제는 피스나가 그것을 잘 할 수 있느냐인데 운현은 그녀의 느긋한 성격상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것을 만들어 이슈화 시키는 것으로도 꽤나 지명도를 올릴 수 있으니까...'

상인 조합의 조합 간부들의 약점도 잡고 있으니 상인 조합의 간부들이 피스나의 마차가 홍보되고 그녀를 치켜세울 것이라 운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들 역시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니 피스나의 마차가 유행하고 그것을 만든 이가 자신들이 시장으로 만들어야 할 사람이라면 그녀를 더욱 찬양할 것이 분명했기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중얼거렸다.

"문제는 제작자 연합인데... 에이 씨. 모르겠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머리가 안돌아간다.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일단 홍보회부터 하고 생각하자.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피스나가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운현은 그녀와 함께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그가 모험가 길드에 도착하자 회관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필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라? 피스나씨가 왠일이세요?"

"후후후... 시장 선거 후보로 등록하려구요."

필레와도 안면이 있는지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필레에게 다가갔다. 그 둘이 이야기 하는 것을 힐끔 본 후 운현은 곧장 상아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상아는 어디 갔는지 자리에 없었고 그 자리에세 펠리시아가 업무를 보고 있었다.

"어? 상아 어디갔어요?"

"글쎄요? 던전에 잠깐 간 것 같은데요?"

"으음..."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으신가보죠?"

"아. 시장 선거 때문에요. 음... 펠리시아씨.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남는게 시간이죠.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펠리시아는 보던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 놓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운현에게 다가왔다.

"얘기는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상아와 저는 피스나씨를 시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아아. 네.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래서요?"

"피스나씨가 후보 등록 전에 그녀를 보호해야 할 사람이 필요해서요. 만약 그녀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모든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이죠."

"그런 것이라면 사람을 빼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지금... 제니스씨만 시간이 남는 것 같네요. 그리고 필레씨랑. 칼리아스씨는 지금 다른 곳에 갔고 저도 시간을 빼기 어려우니... 두분만 모시고 가세요."

처음 듣는 이름이다.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펠리시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회관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제니스씨를 데리고 올게요."

"아. 감사합니다."

펠리시아의 답변에 운현은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필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피스나는 그가 혼자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아는요?"

"지금 자리에 없다네요. 필레. 잠깐 시간 괜찮지? 시청에 가야 하는데... 펠리시아씨한테 허락은 받았어."

"응. 알았어. 그런데 나만 가는거야?"

"아니. 그... 제니스라는 사람을 데려가라는데?"

"아... 제니스씨? 제니스씨면 안심이네."

"오. 제니스라면 나도 안심이야."

필레는 빙긋 웃으며 운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스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본 운현이 의아해하자 필레는 작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모험가 길드에서 최강자거든. 상아 길드장님보다 강해."

"어? 진짜?"

"저기 오네."

사무소의 문이 열리며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긴 머리의 작은 키의 소녀가 걸어나왔다. 클래스는 검사인지 그녀의 등에는 그녀의 키만한 긴 검이 들려 있었다. 상아처럼 엘프인지 양쪽 귀가 긴 그녀는 눈을 검은색 천으로 둘러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유있는 걸음으로 걸어왔다.

"당신이 운현인가?"

소녀같은 외향이지만 엘프이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다. 운현은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며 그녀가 묻자 운현은 허리를 숙인 후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운현이라고 합니다."

"후후후... 그래. 반가워. 나는 제니스라고 한다. 아. 말 편하게 해도 괜찮겠지? 이래보여도 너보다는 더 나이가 많으니까."

"물론입니다."

"우리 상아와 필레와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 매일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하는 짓이 아슬아슬해서 물가에 내 놓은 애들 같거든."

묘하게 할머니같은 말투다. 운현은 그녀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필레를 보았다.

"너 뭘 했길래 제니스씨가 걱정하게 하는거냐?"

"제, 제가 뭘 어쨌다구요!"

"던전에 들어가면 늘 앞장서서 위험한 일만 하려고 하잖아. 상아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정말이지 상황 봐가면서 움직였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이런 괜찮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니 다행이군. 운현. 당신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적절히 그 둘의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잘 부탁할게."

"하하하...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분명 잘 할 수 있을거야."

제니스는 운현에게 쓱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하얀 손을 마주하던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와 악수했다. 상아보다 더 작은 손이다. 이 작은 손과 팔로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저 긴 칼을 움직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손을 맞잡은 운현은 그녀가 손을 떼자 피스나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피스나도 오래간만이군."

"아... 제니스님. 오래간만이에요."

"그래. 요한은 아직인가?"

"...네."

쓴웃음을 지으며 피스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니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간 조용해진 분위기를 깨기 위해 제니스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갈까? 시청에 가는 것은 꽤나 오래간만이군."

"필레. 필레."

"응?"

휘적휘적 앞서 걷는 제니스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피스나 뒤에서 걷던 운현은 필레의 옷자락을 잡고 조용히 불렀다. 그의 부름에 필레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운현은 앞의 제니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제니스씨의 정체가 뭐야? 다들 굉장히 어른으로 모시는 것 같은데..."

"아. 상아 전의 길드장님이야."

"뭣이라!? 상아가 계속 길드장이었던 거 아니었어?"

"으응. 초대 길드장님은 제니스님이야. 던전도시의 시작을 함께 하신 분이지. 내가 알기론 엘프 중에서도 꽤나 고귀한 위치에 있는 하이 엘프라고 하시던데. 수명도 일반 엘프보다 훨씬 많으셔. 아마 현존하는 세계의 모든 이들 중에서 제니스님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은 없을걸?"

"우와..."

그녀의 말에 운현은 제니스를 보며 감탄했다.

"왜?"

"아니. 엘프들은 진짜 안 늙는구나... 부럽다."

"그렇게 부러워 할 필요 없어."

"윽."

운현의 말을 들었는지 제니스는 부드럽게 웃은 후 말했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산다 하여도 그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니까 말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네가 영원 불멸의 삶을 산다고 쳐보자. 그럼 좋겠나?"

"네. 좋겠는데요? 죽음은 두려우니까요."

운현이 무덤덤히 답하자 제니스는 그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발걸음이 멈춰진 상태에서 제니스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자신과 친한 사람들이 모두 죽어도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면? 가족, 친지. 심지어 적마저도 모두 죽어버릴텐데 그것이 두렵지 않나? 그 절망, 그 고독, 그 고통이 두렵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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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실감은 안나는군요. 그래도 크게 충격을 받을 것 같지는..."

어차피 이세계에 온 이상 가족과는 영영 헤어진 셈이고, 친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상아, 필레, 헤스티아, 미야, 바제트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이 늙어 죽는다면 분명히 슬프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두렵냐 하면 딱히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이정도면 병이구만...'

운현은 아직까지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좋냐 싫냐. 라고 물어본다면 이제는 그들에게 좋다는 감정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현은 그들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오픈하지 않은 상태였다.

'실제로도 오픈하기 그렇고...'

"과연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바라고 꿈꾸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 말하는거야. 내가 이렇게 눈을 가리고 다니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운현이 자신의 인간불신을 생각하는 동안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그녀의 말에서 그녀가 헤어져야 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눈이 안보여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것은 아니야. 눈을 뜨고 세상을 보았을 때 그 세상이 자신이 아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지 않기 위함이지."

"묘하게 현실적인데요.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있지. 내 부모님. 내 동생, 언니. 그들 모두의 장례를 내가 치뤘으니까. 거기에 내 연인마저도. 그는 죽는 순간까지 나를 사랑했어. 그런 그를 내 손으로 무덤에 뭍어 줄 때의 기분을 알겠어?"

"모르겠군요. 미안해요. 괜한 것을 물었나보네요."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은 희석되고 슬픔은 추억으로 변하기 마련이니까. 이제와서는 그들을 생각하는 것도 가끔씩 잊어먹는데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제니스는 운현의 사과에 쓴웃음을 짓고 그에게 다가가 이마를 톡 쳤다. 묘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며 머리가 어질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에 불과했다.

"으음... 어쨌든 사과의 의미로 맛있는 차와 케이크를 사드리지요. 어때요?"

"후후. 그것도 나쁘지 않지. 시청에 다녀 온 후 대접받도록 해볼까?"

운현이 일부러 분위기를 돌리려 말하는 것을 눈치 챈 그녀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둘의 노력에 의해 분위기가 훈훈해지자 피스나는 빙긋 웃은 후 제니스의 팔을 콕콕 찔렀다.

"제니스님. 제니스님. 그거 아세요?"

"음? 뭘?"

"상아가 운현씨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요."

"네!? 그, 그게 정말이에요!?"

피스나의 말에 놀란 것은 제니스가 아닌 필레였다. 그녀는 크게 당황하다가 운현의 팔을 꼭 잡고 물었다.

"지, 진짜야?"

"글쎄. 그런 것 같은데."

"이, 이럴수가..."

운현을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연적이, 그것도 직장 상사이며 미모만 따지면 자신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연적이 생길 줄이야. 그녀가 시무룩해하자 운현은 키득거리며 필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마려무나. 이 오빠는..."

"아니 그보다. 굉장하구만. 상아와 필레라니. 다른 여자는 없남?"

제니스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운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렇게 필레를 놀리거나 지금 운현의 여자들에 대해,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청에 도착했다.

"그럼 등록하고 올게요."

"나도 함께 가지."

"저도 갈까요? 저도 다른 일을 좀 봐야되서. 운현.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시청까지 왔으면 일단 안심이다. 별다른 위험없이 시청에 도착하게 된 피스나는 시장 후보 등록을 위해 접수처로 향했고 그녀와 제니스, 필레가 들어가고 운현은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힘들구만~"

의자에 편히 앉아 쉰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운현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건..."

"어머~ 운현씨 아닌가요?"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에 오한이 돈다. 운현이 흠칫 놀랬을 때 그는 자신의 뒤에서 시작한 달콤한 숨결을 느꼈다.

"어... 음. 아르토리우스님."

"싫다~ 아스라고 불러달라니까요~"

분명히 부드러운 손길이다. 그 막강한 무력을 보여준 손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 목덜미를 감싸고 쓰다듬자 운현은 온 몸에 오한이 돋았다. 그가 잔뜩 긴장하자 아르토리우스는 베시시 웃은 후 운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요새는 쓸데없는 이상한 짓은.... 안하시나요?"

"...아, 안하는데요."

"그럼 다행이군요. 착해라. 다음에 용병 연맹에 언제 오세요?"

"제가 거길 왜 가요... 히이익!?"

그녀의 손길이 자신의 목젖을 스치고 지나가자 운현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에 안쪽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필레와 제니스가 뛰쳐나왔고 아르토리우스가 운현에게 붙어 있는 것을 본 필레는 허리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운현을 놔주세요."

"어머. 필레씨. 후후후... 이건 그냥 친분을 표시하는거에요. 이거 봐요. 운현씨도 아주 좋아하잖아요."

"....."

좋아하기는 커녕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도대체 저 모습을 어떻게 봐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필레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반쯤 검을 뽑았다.

"더 이상 말로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지고 진심이 담긴 살기가 퍼지자 시청 내부에 있던 경비병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운현과 아르토리우스, 그리고 필레를 확인하고 당황하며 외쳤다.

"큰일이다! 윈드씨를 불러와!"

"시장님도! 이들이 여기서 붙으면...!"

"그만들 하지 그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를 제니스는 말 한마디로 가라앉혔다. 그녀의 부드러운 말에 아르토리우스는 빙긋 웃은 후 운현의 목에서 손을 떼었다.

"어머. 제니스씨. 계셨나요?"

"음. 아르토리우스. 넌 여전하네."

"제니스씨만 하겠어요? 어휴~ 피부 고운 거 봐. 당신을 보고 누가 천살이 넘었다고 생각하겠어요? 비법이 뭔가요?"

"뭐겠어. 타고난거지."

아르토리우스가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제니스는 어깨를 으쓱인 후 말했다.

"시장 선거를 등록하러 온건가?"

"네."

"그럼 잘해보자고."

"상아는 안온걸 보니 이번에 모험가 길드는 시장 선거에 참가하지 않으려나보죠?"

"응. 우리는 피스나를 밀어주기로 했거든."

"그런가요?"

지금까지 모험가 길드를 열심히 공격했지만 그것이 무용지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토리우스는 전혀 아쉽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이는 것만으로 제니스의 말에 답했다. 운현이 필레의 옆으로 가자 아르토리우스는 운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운현씨. 다음에 봐요~"

"....."

"넌 무슨 짓을 했길래 저 사람한테 찍힌거야?"

"내가 아냐!? 나도 몰라!"

운현도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저 사람은 왜 자꾸 이러는 것일까. 그가 한숨을 내쉬자 제니스는 피식 웃은 후 그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쁜 아이는 아니니까."

"제니스씨한테 있어서 나쁜 애의 정의는 뭔데요?"

"음... 뭐 나쁜 아이가 있겠어? 살아가다보면 다 이런 일 저런 일 겪는건데."

"....."

"저 왔어요!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아까까지 안에 있다가 나온 피스나는 아르토리우스와 필레의 대립으로 만들어진 흉흉한 분위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것에 궁금해했다.

그런 그녀에게 운현은 어깨를 으쓱였고 필레는 한숨을 내쉬었으며 제니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피스나만이 이상하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제 갈까요?"

"저는 조금 기다렸다가 갈게요. 시장 후보에 등록되면 암살의 위험 때문에 시에서 호위병력을 보내주거든요. 저는 그들과 같이 갈게요. 여러분 먼저 들어가세요."

"음. 그럼 그렇게 하지."

"어라? 늦으세요? 홍보회 관련으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아마 두, 세시간은 기다려야 할거라서. 저녁에 하시는게 낫지 않을까요? 저는 제 공방에 계속 있을거에요."

피스나는 운현의 걱정에 웃으며 답했다. 결국 그녀와 헤어지고 제니스, 필레와 함께 시청에서 나온 운현은 팔짱을 끼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거 불안한데."

"왜? 용병 연맹에서 공격할까봐? 에구~ 그런 걱정 말아요~"

"왜?"

"시청에서 보내주는 호위병력과 호위대장의 무력은 굉장하거든. 간부급은 아니지만 거의 간부급에 근접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서른이 넘어. 그들이 함께 한다면 아무리 아르토리우스라 하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녀를 암살할 수는 없을거야."

"암살자가 따로 있다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피스나씨가 무슨 일을 당하면 가장 의심받는 것이 아르토리우스일텐데?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아까 사기로 했던 차나 사."

운현의 말에 제니스는 그의 걱정을 일축했다. 결국 운현은 그녀들에게 이끌려 차와 케이크를 대접한 후 길드로 돌아오게 되었다.

"운현!"

"운현씨!"

"어라? 제니스님이잖아요!?"

운현과 제니스, 필레가 길드로 돌아오자 길드회관에 있던 운현의 동료들은 그를 향해 반갑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제트는 손을 들어 올린 후 웃다가 제니스를 보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하이 엘프를 뵙습니다."

"그만둬. 이제는 야인인걸."

"그렇지만..."

"이제는 모험가 동료일 뿐이야."

"어? 바제트. 제니스씨랑 뭔가 아느 사이야?"

"으음. 하이엘프는 엘프들 사이에서는 왕족과 같은 분들이라. 전에 이그드라실에 대해서 이야기해줬지? 하이엘프는 바로 그 이그드라실의 직계라서 엘프들은 함부로 대하지 못해."

"헤에... 그냥 나이만 많으신게 아니었구나."

"...내가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면 좀 슬퍼지는군."

"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하하하하. 그래도 액면가는 젊으시니까 괜찮겠죠."

"쯧... 아무튼 나는 들어가볼테니 다음에 보세."

제니스는 가볍게 인사하고 길드 사무소로 들어갔다. 필레 역시도 일을 하다가 시청에 온 것이라서 그녀도 운현에게 손을 흔들어 준 후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그녀가 늘상 앉아 있는 자리에 앉아 바로 모험가들의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어디 갔다왔어?"

"시청에. 시장 선거 후보 등록하려고."

"헤에... 이제 시작이구나. 운현. 고생 많겠네. 정말 우리가 도와줄 일 없어?"

"응. 괜찮아. 근데 여기서 뭐해?"

"아~ 저번에 운현씨가 가르쳐 주신 인챈트 가게에 갔다왔는데요. 이건 인챈트 할 수 없다고 하네요."

헤스티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장선거가 끝나면 당장 계층주와 싸우러 가야 하는데... 이걸 인챈트하면 더 강해질텐데 쓸 수가 없네요."

"으음...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는건가."

"마법학교에 다녀오면 되긴 한데... 운현씨. 같이 가실수는 없으시겠죠?"

원래는 인챈트하러 같이 가기로 했지만 운현은 지금 시장 선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다. 헤스티아는 아쉬움에 작게 한숨을 내쉰 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저. 마법학교에 금방 다녀올게요. 마차로 가면 일주일정도면 돌아 올 수 있으니까요. 더 강해져서 운현씨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운현씨께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어요."

헤스티아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고민을 끝내고 운현을 향해 말했다. 이번에 시장 선거전에 자신들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나보다. 그와 일주일이나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슬프기는 했지만 그녀는 운현을 돕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 운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혼자서 괜찮겠어?"

그녀의 말에 운현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미야와 바제트는 손을 들어 올려 운현의 시선을 받았다.

"우리도 같이 가기로 했어."

"너랑 이렇게 일주일이나 떨어지려니 가슴아프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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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진짜? 괜찮아? 내가 다른 여자 만날지도 모르는데?"

그녀들의 말에 운현은 감탄한 후 능글맞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미야와 바제트, 헤스티아는 시큰둥히 반응했다.

"아니 있어도 만나잖아."

"상아 길드장님이랑 필레씨한테도..."

"듣자하니 다른 여자들도 꽤 많던데요? 그럼 같이 있으면 안만나시는거..."

"잘 다녀와라! 아끼는 아이들일 수록 여행을 보내라고 했지! 으하하하하!"

아직까진 그녀들에게만 얽메이고 싶지 않은 운현은 여인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씨익 웃었다. 결국 여인들은 한숨을 폭 내쉰 후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으음... 그럼 난 상아와 잠깐 일 좀 보고 올게."

"그래요. 저희는 내일 아침에 출발할거니까... 오늘은 모두 함께 잘래요? 저번에 보니까 그런거 좋아하시던 것 같은데."

"내가 너희들이랑 같이 자면서 과연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쿡쿡쿡...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모두 모여 사이좋게 4P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난 좀 별로다. 옆에 있으면 난 반드시 할거거든. 거기다가 오랫동안 못본다고 했는데..."

"그, 그럼 운현씨가 체력 되는대로 저희랑 같이 자는건 어때요?"

"오... 그래?"

"네! 그 방법이 괜찮겠죠?"

헤스티아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랐다. 운현도 아직 정상적으로 둘이 하는 것 이외의 경험은 없었으니 말이다.

'하렘이라는 것도 쉬운게 아니구만.'

여성들간의 견제는 별로 없다 치더라도 막상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야동을 좀 다양하게 볼걸. 운현은 과거의 자신에게 수정 펀치를 날리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렀다.

모두가 동의하고 동료들이 마법학교로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운현은 상아의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상아는 없고 펠리시아만 있었다.

"상아는 아직 안왔나보네요?"

"네. 아마 저녁이나 해서 올 것 같은데요?"

"그렇군요. 에리스씨와 갔나요?"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오시면 운현씨가 찾으셨다고 전해드릴게요. 음... 시간이 좀 남으시나요? 운현씨도 이제 100레벨이고 계층주를 노리는 상황이라면 장비를 좀 더 강화하는게 어떨까요? 나이트 호크세트도 나쁜 방어구는 아니지만 장신구라든가 보조장비를 갖추는게 좋을거에요. 트롤이라도 만난다면 방패같은건 금방 부숴지기 마련이거든요."

"아. 그렇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펠리시아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 운현은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걷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보니 테이크 어 룩에 가봐야하는군."

이정도로 좋은 락픽을 보유하고 있으니 다른 좋은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단검이나 갑옷이야 지금 쓴다고 친다면 괜찮은 보조장비, 그리고 밧줄과 방패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운현은 곧장 던전 입구로 향했다.

여전히 복잡한 던전 입구의 시장가를 걸어 테이크 어 룩에 도착한 운현은 천막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 히사시부리!"

"무슨 소리를... 어라? 운현 아냐!?"

귀찮은 듯한 얼굴로 천막의 입구를 응시한 아스티나는 그가 운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반색하며 폴짝 뛰어 그에게 다가와 안겼다. 가슴에 닿는 커다란 유방과 탱글거리는 둔부. 그녀의 양 팔과 허벅지가 몸을 감싸자 운현은 그녀의 향기를 느끼다가 말했다.

"물건 좀 보러 왔는데."

"응응. 얼마든지 둘러봐."

운현의 볼을 핥은 아스티나는 생글생글 웃었다. 떨어질 생각따위는 조금도 없는지 그녀는 자신의 꼬리를 움직여 운현의 볼을 쓰다듬었다.

"좀 비켜주지 않으련?"

"무거워?"

"아니 뭐.. 그렇게 무겁지는 않은데."

"불편해?"

"조금..."

"여긴 안그런거 같은데~"

아스티나 정도의 미인이 이렇게 달라붙어 있는데다가 가슴에 닿는 유방의 감촉 때문에 운현의 남성은 벌써 벌떡 솟아 아스티나의 계곡부근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그것에 살짝 하복부를 비빈 아스티나가 요염히 말하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너 발정기야?"

"지났어. 저번에 온다더니..."

"하하. 그건 미안하게 됐군."

"치. 그 대신 오늘은 해줄거야?"

"글쎄. 시간이 안될 것 같은데. 만약 괜찮은 물건이 있어서 여기서 모두 구매할 수 있다면 생각해보지."

"좋아! 그럼 최선을 다해서 좋은 물건만 꺼내주지!"

폴짝 그의 품에서 벗어난 아스티나는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 뒤의 커다란 상자를 가볍게 들어 앞에 놓았다.

"자! 원하는게 뭐야?"

"일단 밧줄."

"어머~ 구속 플레이는 나도 꽤 좋아하지."

"아, 아니 그것 때문은 아니고. 밧줄 활용 스킬을 익혔는데 괜찮은 밧줄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럼 이건 어때?"

아스티나는 씨익 웃은 후 비장의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상자 안에서 커다란 밧줄 뭉치를 보여주었다.

"인피니티 와이어야. 코어만 넣으면 밧줄을 무한히 생성해내는 좋은 아이템이지. 이거 구하느라 엄청 힘들었다구."

"무한한 밧줄? 우와. 그거 굉장한데."

일반적인 밧줄처럼 생긴 밧줄더미의 끝에는 네모난 박스가 걸려 있었다. 꽤 묵직한 박스의 끝에서 밧줄을 쭉쭉 잡아 당긴 아스티나가 자신만만하게 웃자 운현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밧줄을 잡고 흔들며 물었다.

"밧줄의 특수 효과는 없어?"

"그런 건 없는데."

"...그럼 별로..."

어차피 운현에게는 인벤토리가 있었다. 무게나 부피는 그에게 있어서 큰 의미가 없었기에 차라리 특수효과가 붙은 밧줄을 사는게 낫다 싶은 운현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아스티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물건 볼 줄 모르는 안타까운 이 같으니라고."

"뭐!?"

"아냐. 아냐. 그럼 원하는게 뭐야?"

"뭔가 밧줄로 감았을때 좀 특수 효과가 있는거. 이를테면 데미지를 준다거나..."

"밧줄을 공격용으로 쓸려는거야? 별로일텐데..."

"아니 어차피 구속을 하는거라면 데미지를 줄 수 있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없어?"

"있긴 있어. 잠깐만."

운현의 말에 아스티나는 다시 상자를 뒤졌다. 잠시 후 그녀의 손에 백색의 밧줄 뭉치가 손에 들려 나왔다.

"빙결 밧줄이야. 이건 어때? 이걸로 묶으면 동상 효과를 입힐 수 있어. 물론 2계층 한정이기는 하지만 말야. 3계층부터는 안통해."

"흐음... 재활용은 가능하지?"

"물론. 하지만 너무 많이 쓰면 효과가 줄어드는데다가 사용자에게도 데미지가 전해지거든. 나 정도 된다면 괜찮겠지만 너는 괜찮으려나... 레벨 몇이야?"

"100."

"그럼 쓸 수는 있겠네. 잡아봐."

"웃..."

아스티나가 준 밧줄을 잡은 운현은 밧줄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깜짝 놀랬다. 밧줄을 잡고 있는 동안 손 안의 감각이 점점 사라지자 운현은 밧줄을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면 괜찮겠다."

"그럼 이건 200골드에 팔아주지."

"무슨 밧줄이 나이트호크 세트보다 비싸냐!?"

"야. 이거 귀한거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300골드에 파는거라고. 100골드나 깍아줬는데 감사합니다 하면서 당장 바지 벗고 내 품에 안기지는 못할 망정 비싸다고 투덜거리다니."

운현이 어이없어하자 아스티나는 더 어이없다는 듯 꼬리와 귀를 쫑긋 세우고 화를 냈다.

"전적이 전적이다보니..."

"야야. 갖고 나가서 확인해봐라. 필라이온의 밧줄 시세가 얼만지."

운현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자 아스티나는 밧줄을 내밀며 당당히 말했다. 이렇게까지 나오니 어쩔 수 없다. 운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200골드를 건네주었다.

"매번 감사합니다!"

"이거 아무래도 사기당하는 것 같단 말이지... 환불은 안되냐?"

"하하하하하! 세상이란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법."

"뭐라는거야."

"환불 불가."

"...너 진짜 사기친 거 아니지!? 솔직히 말해!"

"아니라니까!"

결국 운현이 밧줄을 들고 나가서 시세를 확인하고 오자 아스티나는 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래디?"

"싸게사면 200골드래. 300골드? 이게 어디서 사기를..."

"...이야~ 이거 내가 또 큰 실수를 했네. 요새 필라이온의 밧줄 시세가 이렇게 떨어졌는지 몰랐는걸?"

이번에는 사기라기보다는 실수였나보다. 그래도 어쨌든 싸게 산 것이긴 하기에 운현은 더 이상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이건 됐고. 다음은 방패."

"방패? 오. 방패. 그게 또 이 테이크 어 룩의 주요 거래 물품이지. 자자. 보라고."

아스티나는 웃으며 다른 상자에서 몇개의 방패를 꺼내었다. 그녀가 꺼낸 방패는 운현이 쓰던 버클러가 아닌 묵직한 카이트 실드와 타워실드 종류 뿐 이었다.

"이건 너무 큰데?"

"어우. 그래도 이거 진짜 괜찮은것들이야. 들어봐봐.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어서 무게도 그리 안나간다고."

그녀가 권한 방패들을 들어 본 운현은 그녀의 말대로 오히려 버클러보다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한 손으로 방패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본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근데 이런 방패는 방패로 밀치기도 하는 거 아냐? 가벼우면 오히려 안좋은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너 방패 밀치기써? 그건 탱커들이나 하는 전투법인데."

"그렇긴 하지만..."

"그럼 됐네."

"너무 커. 내 움직임에 방해 된다구."

운현은 아스티나가 내놓은 방패들의 사이즈를 보며 투덜거렸다. 그런 그를 보며 아스티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운현... 당신은 물건 볼 줄 모르는 안타까운 사람이에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버클러 정도 사이즈의 방패는 없어?"

"없는건 아닌데 이것들보단 좀... 보여는 주지."

아스티나는 다른 상자를 뒤져 암가드 하나와 버클러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장빈데. 저주받은 자의 팔목이라는 이름의 암가드야. 일단 걸려있는 마법은 두개야. 첫번째 마법은 헤이스트. 두번째는 파워 업."

"어? 두개나? 그럼 엄청 좋은거 아냐? 혹시 레벨 제한이 있는건가?"

"제한이라기보단..."

운현의 질문에 아스티나는 볼을 긁적거린 후 헤죽 웃었다.

"착용 해제 레벨 제한이 있어. 이 암가드를 벗으려면 레벨이 250이 되어야 하지. 다른 좋은 장비를 발견해도 착용할 수 없어."

"사겠냐!?"

운현은 그녀의 말에 버럭 화를 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스티나는 버클러를 내밀었다.

"이건 확장 마법이 걸려 있는 버클러야. 방어력은 좋지만 그게 다라서... 딱히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2계층 몬스터의 코어 수준이라면 100번 정도 확장할 수 있겠다."

"확장 마법? 그게 뭔데?"

"잘 봐봐."

운현의 질문에 아스티나는 버클러를 잡고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 순간 버클러의 크기가 커지며 타워 실드보다 커져버렸다. 거의 어지간한 대형 문짝 수준의 크기가 되어버린 방패에 운현이 황당해하자 그녀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정신나간 사람 같다니까. 이건..."

"어. 잠깐만..."

운현은 방패를 축소화시킨 아스티나가 방패를 상자에 넣으려 하자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그거 방어력은 어때?"

"방어력만은 발군이지. 2계층의 몬스터의 공격에도 버텨. 확장 마법이 걸리면 3계층에서도 쓸 수 있어."

"여기에 인챈트 가능한가?"

"무슨 인챈트? 확장 마법이 꽤나 고용량의 마법이라 한계일텐데..."

운현이 묻자 아스티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화속성."

"화속성? 그냥 방패에? 불타는 방패를 만들어서 뭐하려고... 불가능하진 않겠지. 그정도 인챈트라면."

'좋아. 이거 재밌는 실험을 할 수 있겠네.'

아스티나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얼마야?"

"이거 사려고? 야. 이거 사느니 그냥 다른 가게에서 버클러 사는게 나을걸? 확장마법으로 이따만한 방패 들어서 뭐하게? 서 있는게 고작일텐데. 무게야 버클러와 비슷한 수준이 되겠지만 들고 움직이기가 거추장스러울텐데? 차라리 카이트 쉴드가 낫지 않아?"

"아니. 난 이게 좋아."

"흐음..."

운현이 단호하게 말하자 그녀는 볼을 긁적거린 후 손가락을 다섯개 펼쳤다.

"오십골드."

"싸네?"

밧줄에 비하면 굉장히 싼 가격이다. 운현이 의아해하며 묻자 아스티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니 확장 마법이 인기 있는 마법도 아니고. 이 방패를 쓸바에는 그냥 다른 마법이 걸려 있는 타워 실드를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거든. 버클러를 쓰는 사람들은 다른 버클러를 쓰고. 나야말로 궁금하다. 이걸 왜 사는거야?"

아스티나의 질문에 운현은 빙긋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답변도 해주지 않았다.

145====================

election

"그럼. 다음은 뭐가 필요해?"

"장신구. 장신구에는 뭐가 있어?"

"장신구... 흐음. 뭐 괜찮은건 많은데 어떤 종류를 찾아?"

"팔찌나... 목걸이는 있으니까 됐고. 이왕이면 몸놀림을 빠르게 하는 장신구가 좋겠는데?"

운현의 말에 아스티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말했다.

"마땅한게 없네."

"엥?"

"아, 아니 내 가게에서는 장신구를 그다지 취급하지 않아서. 애초에 여기서 장신구를 파는 사람은 별로 없을걸? 코어를 가공하여 마법을 입혀야 하는거라서 말이지. 이 시장에서 파는 물품의 대부분은 던전의 보물상자에서 얻은 아이템이란 말야."

"보물상자에서 장신구는 안나와?"

"나오긴 나오는데 좋은건 별로? 있어도 네가 찰만한 것은 없어. 대부분의 레벨 제한이 300이 넘어가거든. 가격도 기본 이천골드 이상이고."

"우웩..."

듣기만 해도 토가 나오는 가격이다. 오크 학살을 통해 얻은 골드는 천이백골드 가량. 거기서 자신의 장비를 맞췄으니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의 장비를 맞춰야 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돈을 쓸 수 없었던 운현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군."

"어? 안해?"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은 좀 할일이 있어서 말야. 다음에 하자."

"씨잉!?"

"약속할게. 내일 모레 찾아올테니까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거라. 은총을 내려줄테니까."

"진짜지?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라가는 거지. 내일이면 동료들도 마법학교에 갔다온다고 일주일동안 없으니까 밤에는 프리하다고. 정 뭐하면 내 방으로 오든가."

"진짜!? 신난다~"

운현의 말에 아스티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꼬리를 신나게 흔들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운현은 천막의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몸을 돌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그냥 가려니까 아쉬워? 간단하게 한번 할래?"

아스티나는 자신의 다리를 쫙 벌린 후 핫팬츠의 사이를 보여주었다.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는 계곡의 살을 그녀가 벌리자 운현은 한숨을 내쉰 후 물었다.

"내일을 위해 참으려무나. 이 발정난 고양아. 혹시 이 락픽. 비슷한 수준의 다른 물건은 없어?"

운현이 보여 준 락픽을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작게 키득거린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없어. 그거 진짜 좋지?"

"응. 뭔데 이렇게 잘풀려?"

"대도 문댄서도 극찬한 물건이니까 잘 쓰는게 좋아. 나 아니었으면 넌 그거 구경도 못했을걸? 어지간한 클랜에서도 최고급 도적에게만 주는 거니까 말야."

그녀의 말이 진짜라면 이 락픽은 정말 귀한 것이었다. 그런 것을 잠자리 한번에 준단 말인가? 운현이 그녀를 가는 눈으로 바라보자 아스티나는 볼을 긁적거린 후 뻘쭘히 말했다.

"아니, 사실 나도 그건 내기로 얻은거라서. 만약 네가 대형 클랜에 들어간다면 쉽게 얻을 수 있겠지만 안들어갈거잖아. 보니까 동료들이랑 소수정예로 가려는 것 같은데 그런 도적은 구경도 못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왜 이걸 줬어?"

"딱히 이유는 없는데? 앞으로 잘 지내자는 친애의 의미 정도? 귀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못구할 정도는 아니니까. 뭘 그렇게 신경써?"

"아니 네가 이걸 순수한 의도로 준 것 같지는 않아서..."

"뭐어!?"

아스티나가 화를 내려 하자 운현은 그녀의 입술에 쪽 키스한 후 히죽 웃었다.

"아무튼 고맙다. 이거 진짜 잘 쓰고 있거든."

"후후. 그럼 내일 나한테 잘해줘야 할거야. 알았지?"

"성심 성의것 모시도록 하지."

내일을 기대하는 아스티나를 내버려 두고 운현은 곧장 힐더크의 가게 옆의 인챈트점으로 향했다. 가게 안으로 그가 들어오자 멍한 얼굴의 인챈터 이리나는 운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여긴 왠일이야?"

"인챈트 하려구요! 이거 화속성 부여 가능해요!?"

"화속성이라... 잠시만."

운현이 방패를 내밀자 그것을 받은 그녀는 방패를 이리저리 살핀 후 쓴웃을 지었다.

"가능은 하지만 방패에 불꽃을 만드는 정도밖에 안될 것 같은데? 확장 마법..."

"확장마법에 대해서는 알아요. 가능하다는거죠!? 얼마에요!?"

운현이 흥분하며 묻자 그녀는 떨떠름히 답했다.

"너, 너무 재촉하지 말라고. 3골드만 줘."

"여기요. 얼마나 걸리나요?"

운현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고 그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이리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한 십분이면...?"

"그럼 해주세요."

"굉장히 급한가보네.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런 건 없지만 확인해보고 싶은게 있거든요."

운현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 자리에서 인챈팅을 시작했다. 몇가지 약물과 바람의 마력석과 비슷한 크기의 붉은색 마력석을 가져 온 그녀는 그것을 방패 위에 올려 놓은 후 주문을 외웠다.

십분 정도 주문을 외우던 그녀가 마지막을 장식하듯 하얀 가루를 뿌리자 방패 위의 약물과 붉은색 마력석이 빛으로 변해 방패에 스며들었다.

"자. 다 됐어."

"끝?"

"응. 시동어는 화염이야."

"헤에..."

운현은 버클러를 착용한 후 나지막히 시동어를 말했다.

"화염."

"화륵!"

방패 전면에 불길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모닥불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화염이 만들어낸 열기에 이리나는 손을 뻗은 후 그 열기를 쬐기 시작했다.

"으... 따뜻해."

"마력이 지속 소모 되네요."

"응. 당연하지."

이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운현은 방패의 화염을 꺼트린 후 밖으로 나가 방패에 확장 마법을 걸었다. 쫄래쫄래 따라 온 그녀는 커다란 방패에 불꽃이 가득 피어오르자 그 옆으로 가 열기를 쬐었다.

"이게 이렇게 쓰니까 또 좋네."

"으하하하! 고마워요!"

"캠핑용으로 쓰려는거야? 그런거라면 더 좋은게..."

"아니에요! 그럼 이만!"

운현은 화염을 끄고 방패를 버클러 사이즈로 되돌렸다. 그가 방패를 들고 후다닥 뛰어가자 이리나는 입맛을 다시며 아까의 온기를 떠올렸다.

"나도 몇개 만들어 놓을까. 의외로 좋네."

"그럼 신나는 테스트 시간!"

운현은 곧장 던전으로 들어와 그동안 딜의 기준이 되어 주었던 늑대밭이 아닌 홉고블린이 서식하는 곳으로 향했다. 하이딩을 걸어 동굴 밖의 고블린들을 손쉽게 처리한 운현은 안으로 들어가 보물상자와 홉고블린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럼 이게 생각대로 되느냔데...'

운현은 방패를 확장한 후 침을 꿀꺽 삼킨 후 인벤토리에서 기름 함정 - 폭 카드를 꺼내었다. 워낙 위력이 강한데다가 범위가 좁아 함부로 쓰기 힘들었던 그것을 들고 운현은 함정 설치를 시전했다.

"되는구나!"

자신이 생각한대로 함정이 설치가 된다. 운현은 실실 웃으며 함정 설치를 취소한 뒤 나뭇가지를 모은 후 나무에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나뭇가지의 연기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자 운현은 조금 떨어진 후 거대 방패를 들고 그 방패에 기름함정 - 폭을 설치했다.

'이거 한방에 부숴지면 개망이지만... 그래도 이런 확장 마법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아무리 강해도 3계층 몬스터의 공격까지 막아낸다고 했는데 잘 버티지 않을까 싶었던 운현은 침을 꿀꺽 삼킨 후 홉고블린이 나오길 기다렸다.

"크어어어어어!!"

연기를 가로지르며 홉고블린이 나와 방패 뒤에 있는 운현을 발견하자 몽둥이를 들었다. 홉고블린이 위협하는 것을 보며 운현은 기름함정 - 폭을 작동시켰다.

"쿨럭! 꿀렁! 꿀렁!"

직각으로 세워진 방패의 중앙에 검은 얼룩이 점점 커지며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기름덩어리들이 울렁거렸다. 그것이 계속되자 홉고블린은 불안감을 느꼈는지 빨리 운현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왔고 그 순간 운현은 강하게 외쳤다.

"화염!"

"콰아아아아아앙!!!"

"아이고!!!"

반동이 장난이 아니다. 레벨업으로 힘이 엄청나게 상승했는데 자신이 쭈욱 뒤로 밀려날 정도의 반동에 당황한 운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홉고블린을 보았다.

"와, 와우."

홉고블린은 자신의 뻥 뚫린 복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허물어졌다. 그것을 본 운현은 방패를 바닥에 둔 채 방패에 얼마나 피해가 갔는지 확인해보았다.

"역시! 괜찮구만!"

생각 이상으로 방패는 잘 버텨주었다. 약간의 그을음만 있을 뿐 방패가 꽤 버텨준 것에 만족한 운현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HP가 꽤 많이 닳아서 불안했는데...'

반동으로 오는 충격을 혼자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꽤 데미지를 입은 반면 방패가 잘 버텨준 것에 운현은 빙긋 웃었다.

'굳이 내가 쓸 필요는 없겠지.'

이 기술은 미야에게 사용하면 될 것이다. 방패에 불꽃을 만들어내는 것이 마력을 소모하기는 하지만 미미한 정도에 불과하니 마력량이 적은 미야라고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문제는 이게 어디까지 먹히는 건지 모르겠네.'

위력이 문제다. 운현은 인벤토리를 보며 고민했다.

'홉고블린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레벨의 몬스턴데... 으. 미믹한테 써볼 수도 없고.'

미믹을 처리해 줄 사람이 없으니 미믹에게 써서 얼마나 데미지가 들어가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운현은 한숨을 작게 토해낸 후 방패를 해제하고 고블린과 홉고블린의 시체를 마석에 담았다.

'슬슬 가봐야겠군.'

장비를 구매하고 인챈트를 하고 데미지 시험을 하느라 피스나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 운현은 던전에서 빠져나와 길드 회관으로 올라갔다.

"운현!"

"어. 얘기들은 끝났어?"

"응. 저기... 미안한데 마법 학교에 괜찮은 장비들을 판매하고 있다고 하는데 거기서 구매를 하고 싶어. 돈 좀 줄 수 있어?"

"물론이지. 얼마 필요해? 마침 나도 장비를 구매했는데. 팔백골드 주면 괜찮아?"

"그, 그렇게나 많이 모았어요!?"

"응. 오크 엄청 잡았잖아. 그 사체만 팔아도 꽤 번다고."

운현의 말에 미야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사백골드만 줘."

"자."

어차피 그녀들과 함께 번 돈이다. 운현이 망설임없이 금화를 내주자 미야와 바제트, 헤스티아는 생글생글 웃었다.

"역시~!"

"운현씨!"

"믿음직스럽구만."

"엥? 뭔 소리야?"

"아니, 다른 파티 중에는 리더가 큰 돈을 가지면 그것을 가지고 튀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물론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미야는 생글생글 웃으며 다른 파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소탐대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기 마련이지. 너희들과는 이제 꽤 마음도 잘 맞고 다음 계층을 노리고 있는데 고작 이런 돈에 내가 흔들릴 것 같아?"

'훔쳐 온 돈도 있으니 여유지.'

상인 조합의 간부들의 저택을 털며 훔친 금괴나 보석, 금화만 해도 꽤 된다. 팔면 약 300골드는 나올 정도로 훔쳐내었던 운현이 웃으며 말하자 미야는 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우리는 이제 한 팀이니까! 으음.. 이제는 슬슬 연인으로 클래스 체인지 하고 싶지만 말야."

"하하하하! 경험치를 더 모아오려무나."

운현은 베시시 웃는 미야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고 헤스티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언제 출발해?"

"내일 정오에 출발하는 마차가 있다고 하네요."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배웅을 해야겠네. 알았어."

"운현씨! 오늘 약속 잊지 않았죠?"

"당연하지."

운현은 빙긋 웃은 후 손을 흔들어주고 길드를 나갔다. 곧장 피스나의 공방으로 향한 운현은 전과 다르게 피스나의 공방 앞에 경비병들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운현 아냐? 여긴 무슨 일이지?"

"켁. 왜 윈드 당신이?"

"아아. 피스나씨에게 지명당했거든. 뭐 피스나씨와는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허락했지."

시장 후보를 경호하는 임무를 맡게 된 윈드는 운현에게 웃으며 답해 준 후 자신들을 바라보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 남자의 신원은 내가 보장한다. 모험가 길드의 루키이자 발렌타인 가문의 은인이 될 사람이지."

"...앞의 것은 그렇다고 치고 은인은...?"

"차기 가주인 나에게 남자를 소개시켜 줄 사람이잖아. 그정도면 은인이지."

"아니! 잠깐만! 제가 소개시켜준다고 해서 잘 된다는 보장은 없는데요!?"

"그, 그러고보니!?"

운현의 말에 윈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남자를 소개시켜준다는 것에 기뻐했지만 그 남자와 잘 될거라는 보장은 확실히 없었다.그녀가 울상을 짓고 시무룩해하자 운현은 볼을 긁적거렸다.

"아, 아무튼 노력해볼게요."

"응. 힘내. 아무리 나라지만..."

".....?"

운현은 윈드의 시선이 번뜩이는 것에 식은땀을 흘렸다.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를 뺏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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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진짜 무섭다. 당장이라도 잡아먹힐것 같은 기분에 운현이 긴장하자 윈드는 그를 보며 말했다.

"뭘 그리 긴장해?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아니 그게... 혹시?"

"윈디아가 가르쳐줬어."

씨익 웃는 그녀의 시선에 운현은 움찔했다.

'죽도록 찾아봐야겠군.'

솔직히 잠깐 그녀의 애인 역할을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만약 발렌타인 가문에서 맘 잡고 엮으려고 한다면...'

그냥 윈드와 데이트 한두번 하는 정도는 괜찮겠지만 발렌타인 가문의 가주가 있는 자리에서 데이트를 하고 그녀의 어머니와 만나는 등의 일을 했다간 정말 빼도박도 못하고 발렌타인 가문으로 끌려갈지도 몰랐다.

"하, 하하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음. 그 자세야. 부담갖지 말고 열심히 하라구!"

윈드는 운현의 어깨를 팡팡 치며 방긋 웃었다. 그 환한 미소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운현은 그 아름다운 미소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없었다.

'앞으로는 절대 괜히 까불지 말자. 하아... 내가 왜 그랬을까.'

"아. 그리고 윈디아가 전해달라고 하더라. 만약 남자 소개 관련으로 이야기를 할거면 자기에게 해달라고..."

"왜요? 윈드씨가 직접 보는게 낫지 않을까요?"

"난 이제 누구든지 상관없어!"

"...아 예."

그녀의 강렬한 기세에 운현은 기가 팍 죽었다.

'빌어먹을.'

윈드만이라면 어떻게든 말로 꼬셔 볼 여지라도 있지만 윈디아는 택도 없다. 앉은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내는 여자다. 설득을 할 자신이 아예 없었던 운현은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럼 들어가봐도 될까요?"

"음. 물론이지."

"수고하세요~"

'나중에 모험가 길드에 요청해서 레벨을 최대한 올릴때까지 숨겨달라고 해야겠군.'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상아와 필레라면 결코 자신이 발렌타인 영지로 끌려가는 것을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운현은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정 뭐하면 던전에 틀어박혀서 레벨업을 한 후 힘으로 버티는 수 밖에.

"피스나씨. 저 왔어요."

"오? 왔어요?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그럴 일이 있었네요...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운현은 그녀에게 홍보회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을지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그의 설명을 들은 피스나는 운현의 앞에서 몇번 발표를 해보았고 운현은 자신의 기억대로 그녀의 행동을 지적했다.

"너무 딱딱해요. 자연스럽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야 합니다."

"어, 어렵네요,"

"아주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듯이. 혁신적인 물건이지만 피스나씨에게는 그다지 놀라울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이야기하셔야 해요. 다시."

"음... 그간 마차로 여행을 하실때는 어떠셨나요? 다가오는 바람, 찾아오는 햇살. 즐거운 여행이기도 하지만 잦은 비와 바람, 눈으로 인해 피곤하지 않으셨나요? 길을 잃으신적은? 계약된 마부가 도망간 적은?"

"좋아요. 그렇게..."

세시간 정도 운현과 계속된 연습을 한 피스나는 지친 얼굴로 말했다.

"개발하는 것보다 어렵네요..."

"원래 공돌이... 아니, 제작자들이 발표나 그런 거에는 약하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많이 괜찮아졌어요. 좀 더 자연스럽게, 발표회가 아닌 동료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하시는게 중요해요."

운현은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제작자 연합의 피스나가 만들면 모두에게 놀라운 것이 그녀에게는 당연하다. 그렇기에 그녀가 시장이 되면 그 놀라움이 당연함이 될것이다. 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했다.

"어이구..."

한시간을 더 연습을 하자 피스나나 운현이나 녹초가 되어버렸다. 피스나야 원래 이런 발표를 잘 못하기도 했고 운현 역시도 스티븐 잡스가 아이폰 출시 발표회를 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느라 죽을 맛이었기 때문이었다.

'땡큐! 잡스! 땡큐 대한민국 여당!'

잡스의 발표회와 선거철에 활발히 활동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쇼를 했던 여당의 정치인들을 떠올리며 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팔자에 없는 선거전을 할려니 죽을 맛이네. 으으...'

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피스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이정도면 됐나요?"

"이런 식으로 내일까지 연습하고. 내일 모레 홍보회를 시작하는 것으로 합시다. 어휴. 고생 많았어요."

"운현씨가 더 고생이죠..."

피스나는 씁쓸히 말한 후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준비한 찬 물을 벌컥벌컥 마신 운현은 그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운현씨는 왜 저를 돕는건가요?"

"상아가 전쟁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운현씨는요?"

"저요? 음... 글쎄요. 저도 바라지는 않죠. 제가 상인 조합의 사람이었다면 이해득실을 따져서 결정하겠지만 저는 모험자라서... "

"아뇨. 직업적인 질문이 아니에요. 운현씨 자체는 전쟁을 좋아하나요?"

"그럴리가요."

그정도로 싸이코 패스는 아니었다. 운현이 직접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었지만 운현은 교과서나 인터넷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나도 휴전국 출신이고. 그것때문에 군대 갈 뻔 했는데 여기와서 군대 갈 수는 없지.'

비록 개처럼 구르는 보병이냐, 전쟁 도중에 고생한 여군들을 달래주기 위한 기쁨조냐의 차이일 뿐이지만 어쨌든 전쟁이 나면 한국에서나 이 세계에서나 좋을 일은 전혀 없었다.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피스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마워요."

"네? 뭐가요?"

"전쟁을 싫어해줘서. 그리고 저희를 이렇게 도와줘서."

"아뇨. 서로간의 이해가 맞았기 때문이니까 그렇게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는 전쟁이 안났으면 좋겠고 상아는 귀찮은 시장일 안하니까 좋고 피스나씨는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거래라는 건 이렇게 하는 거죠."

"후후후. 그래도요. 그럼 이제 돌아가실 건가요?"

"네. 상아에게 좀 요청할게 있어서."

"아아... 근데 운현씨."

"네?"

"운현씨는 상아가 좋아요. 아니면 필레씨가 좋아요?"

"호불호를 말하라고 하신다면 둘 다 좋은데요?"

"꺄악~ 인기남~ 그럼 둘 모두를 사랑하시나요?"

"글쎄요..."

피스나의 질문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피스나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상아에게도 말했지만 저는 언제나 후회해요. 한번 더 그 사람을 사랑한다 말할껄. 한번 더 그 사람을 안아줄걸. 전 운현씨가 그 후회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보기에 운현씨는 상아와 필레씨를 아주 좋아... 아니, 사랑하는 것 같아요."

"과연 그럴까요... 아니 애초에 사랑이란게 뭔지도 모르겠는데요."

운현의 떨떠름한 말에 피스나는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하군요."

"... 아예."

더 얘기를 끌어봤자 좋을 것은 없어보였기에 운현은 대충 대답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사람의 얼굴이 바로 떠오르고, 무언가 맛난 것을 먹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나고, 즐거운 일을 할 때 그 사람과 함께 하길 바라고, 슬플때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것. 단지 그것만이라도 좋아요. 당신이 그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피스나의 말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밖으로 나갔고 그가 나간 문을 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아랑 필레씨도 고생이 많겠네..."

"상아 왔어요?"

길드로 돌아 온 운현은 곧장 길드장의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아는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펠리시아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운현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이상하네요. 길드장님과 에리스씨는 3계층에 갔는데.... 그 둘이라면 문제 없을텐데 왜 이렇게 늦게 올까요?"

"으음..."

빨리 기술의 데미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상아가 늦는다.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펠리시아에게 말했다.

"하아... 언제 쯤 올까요?"

"올때는 지났는데... 금방 오시지 않을까요? 여기서 조금 기다려주시겠어요? 전 다른 일이 있어서..."

펠리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운현에게 말한 후 밖으로 나갔다. 홀로 상아의 방을 지키게 된 운현은 긴 의자에 앉은 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얘는 진짜... 뭘 하느라 안오는거야?"

상아가 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운현은 고민했다. 이걸로 부르는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괜히 지금 전투 중인데 불렀다가 일이라도 생기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한단 말인가.

그가 한참동안 고민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을 때 방문이 열렸다.

"어이구~! 힘들다!"

상아는 운현이 기다리는지 아닌지 모른 듯 태평한 목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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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가 들어오자마자 운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넌 뭐하느라 이렇게 늦냐!? 빨리빨리 안올래!?"

"아니 일이 좀 있어서... 좀 늦을 수도 있지!"

자신이 늦은 것을 가지고 운현이 화를 내자 상아는 머뭇거리며 이야기하다가 그녀 역시 버럭 성질을 냈다. 그녀를 마주하던 운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상아는 그를 뚱한 눈으로 보다가 그녀 역시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니 피스나의 작업 홍보회때문에 상의를 하려고.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익혔는데 이게 얼마나 데미지가 들어가는지 알고 싶어서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

"흠. 그런거라면 어렵지 않은데. 너무 늦은 시간 아닌가? 피스나에게는 갔다왔겠지?"

"응. 그건 됐고. 새로운 기술만 시험해보면 될 것 같아."

어차피 피스나의 일은 자신이 다 끝냈다. 운현이 대답하자 상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얼른 끝내고 쉬자. 나 피곤한데."

"음. 그래야지."

오늘은 헤스티아, 미야, 바제트를 안아줘야 했다. 그 셋이 만족할 정도로 안아주려면 시간을 최대한 버는 게 나았기에 운현은 상아와 함께 던전에 들어갔다.

"그럼. 어디서 할건데?"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

그녀와 함께 홉고블린의 서식지로 향한 운현은 상아가 순식간에 고블린과 홉고블린을 순살시키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동굴에서 보물상자를 들고 나오자 운현은 기름함정 - 폭을 셋팅하고 보물상자를 가리켰다.

"저거 좀 부숴줘. 이거 맞고 미믹이 살아 있으면 죽여주고."

"아항... 그래서 내가 필요했구만. 좋아."

그녀가 광검을 뽑고 자신의 뒤에서 검을 당겨 크게 베었을 때 그녀의 광검에서 반월형 빛의 기운이 날아들어 보물상자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

"이건 실패네."

"끙. 그럼 다음..."

"너 미믹 가지고 있지 않아? 그거 소환하면 되잖아."

"그렇긴 한데... 얘들은 좀 위험해서 말이지."

"그거 뽑아도 괜찮아. 자자. 어서. 나 피곤하다구."

"음..."

상아의 재촉에 운현은 미믹을 꺼내 멀리 던졌다. 인벤토리에서 나온 미믹이 검은 기운을 일렁거리자 운현은 미믹에게 기름함정- 폭을 겨눴다.

"화염!!"

"콰아아아아아앙!!"

"...너 지금 뭐한거냐?"

운현이 쭉 밀려나가고 방패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폭염이 날아들어 미믹을 반파 내버렸다. 아직 100레벨에 불과한 운현이, 그것도 전투직도 아닌 운현이 이정도 위력의 공격을 한 것에 황당해하며 상아가 묻자 운현은 욱씬거리는 팔을 잡고 힐링포션을 마셨다.

"좀 특수한 함정인데. 폭발하더라고. 미믹은 못 잡는건가..."

전투력만 따지면 2계층의 계층주와 동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1계층의 미믹이다. 그것을 반파내어버린 그 공격의 위력에 황당해하던 상아는 미믹의 검은 기운이 일렁이자 아까의 공격으로 미믹을 끝장낸 후 말했다.

"상당히 제약이 있는 것 같은데."

"응. 이거 한번 쓰면 나도 꽤 데미지를 입거든. 뭐 그렇지만 내가 쓰지 않아도 되고..."

"이건 너만 쓸 수 있는 기술이야?"

"아마? 모르겠는데."

"흐음..."

상아는 팔짱을 낀 후 운현의 방패를 보다가 차분히 물었다.

"이것과 비슷한 다른 함정은 없어?"

"없어."

"음... 지금 네 레벨이 100이지."

"응."

"이거 받아."

상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운현에게 작은 반지 하나를 넘겼다. 그것을 받은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그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구한 반진데. 사이코 키네시스 마법이 걸려 있는 반지야. 아, 뭐 그렇게 강한건 아니고. 아무튼 착용 레벨 제한은 150이고 사이코 키네시스 마법을 쓸 수 있는데. 나중에 150되면 써."

"사이코 키네시스면 염동력인가? 막 초능력으로..."

"응. 생각한 것만으로도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던질 수 있어. 잘 될지는 모르겠는데 그 폭발의 앞에 나사나 칼날, 쇳조각들을 두면 어떻게 될까?"

"오!"

상아의 말에 운현은 감탄했다. 잘만 하면 클레이모어 수준의 위력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운현이 그녀의 발상에 감탄하자 상아는 피식 웃은 후 말했다.

"그리고 이런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어지간하면 남들에게 알리지마. 특히 용병 연맹이나 시청, 그리고 타 왕국에는."

"전쟁의 도구로 쓰일 수 있어서?"

"응. 이런 기술을 다른 이들도 쓸 수 있다면 대량학살을 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지. 그 기술의 정체와 습득법을 알아내기 위해 널 고문하거나 할 지도 몰라."

상아가 걱정스레 말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을 올리고 강해져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이 자신을 함부로 강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확실히 강해져야 한다.

"좋은 조언 고마워. 그럼 나갈까?"

필요한 테스트는 이정도면 된다. 운현은 상아와 함께 길드로 돌아왔고 상아는 사무소의 문 앞에서 그에게 물었다.

"이제 더 시험해 볼 것은 없지?"

"응. 내일은... 오후부터 같이 움직이자. 시간 비워둬. 오늘처럼 또 엄한데 가지 말고."

피스나의 홍보회 신청은 자신이 함께 간다고 치고 정오에는 동료들을 배웅한다. 그리고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운현은 차분히 말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느긋하게 기지개를 폈다.

"이 할미를 이렇게 고생시키다니. 고얀 녀석."

상아는 장난스럽게 웃고는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 다시 키스를 해달라는 그녀의 포즈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그녀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퉤퉤!"

"야. 너 늦게 와서 김 다 샜어."

"...아까는 지 맘대로 하더니. 나쁜 남자여."

"몰랐어? 나 원래 나쁜 남자야. 그래서 싫어?"

"호구같은 남자보다야 낫지."

"그렇지?"

운현은 키득거리며 상아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그의 거친 쓰다듬음으로 인해 머리가 완전 헝클어지자 상아는 부스스 한 머리를 한 채 운현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애도 아니고."

"크크크크..."

"그럼 나 들어간다. 굿나잇 키스해줘."

"자라. 그냥."

"쳇. 잘자~"

상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팔짱을 끼고 그녀가 간 것을 지켜보던 운현이 몸을 돌렸을 때 필레가 어색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음? 왜 거기 있어?"

"지, 진짜 길드장님이랑 친하구나..."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풀죽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피식 웃은 운현은 차분한 걸음으로 다가가 그녀의 이마를 톡 쳤다.

"아얏!"

"뭔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상아랑은 그런 관계 아니다. 괜한 오해 말거라."

"아, 아직!? 그럼 언젠가는 된다는거야!? 그런거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우..."

필레는 우울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우울해하자 운현은 그녀의 하얀 이마에 살짝 딱밤을 날린 후 말했다.

"야. 그리고 아까는 말 못했는데 뭐? 전투중에 무모하게 행동해? 적당히 해라. 사람 걱정시키지 말고."

"대, 대놓고 하지는 않는데? 전위직은 원래 그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니스씨가 그렇게 말할정도면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길래 그러는거야? 제발 그러지 좀 마라."

"에?"

운현의 말에 필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녀의 멍한 얼굴을 지켜보던 운현은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얼굴에 닿는 운현의 손길에 필레는 당황했지만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 그... 그게 무슨... 의미야?"

필레는 머뭇거리다가 기대감을 담고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운현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무슨 의미겠냐?"

"그, 글쎄?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라면..."

"그럼 그거라고 치고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알았어?"

"...으, 으응."

운현의 진지한 시선에 상아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작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운현은 살며시 그녀를 끌어당겨 안았다.

"에엣!?"

"친구야. 부탁이다. 우리 서로 걱정시키지 말고 살아가자꾸나. 사람 걱정한다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라고."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운현의 말에 필레는 살짝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등을 안았다. 잠시간의 포옹은 운현이 손에 힘을 푸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필레는 아쉽다는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다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살며시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정도까지 해놨으니 앞으론 주의하겠지.'

상아나 필레나 전위로 움직이며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스타일이라면, 그녀들이 진짜로 위험에 쳐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라도 그녀들의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걸어야겠다 생각한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 터덜터덜 2층의 숙소로 향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일 출발을 위해 짐을 꾸리던 바제트는 문이 열리고 운현이 들어오자 빙긋 웃었다.

"꽤 빠르네? 어!? 설마 내가 첫번째야? 우와~! 신난다!"

바제트가 눈에 띄게 기뻐하며 자신에게 다가오자 운현은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니 네가 제일 잘 느껴서 먼저 온 것 뿐이거든? 오해 마렴. 이 몸은 관대하니 누가 더 좋고 덜 좋고가 없으니까."

"꼭 이렇게 초를 쳐요..."

운현의 말에 바제트는 혀를 날름거린 후 그의 팔을 끌어 침대로 향했다. 침대의 옆에는 작은 가방에 단촐한 짐이 놓여져 있었다.

"일주일 가는데 짐이 얼마 없네?"

"응. 속옷이랑 옷은 마법학교에서 구입하려고. 헤스티아 얘기로는 그곳에서 특수한 재료로 만들어진 속옷이나 옷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가서 입고 버릴 정도만 챙겨가는거야. 그 외에는... 저기 다 있고."

영영 가는게 아닌 일주일 정도의 여행에 불과했고 갈때 갈아입을 정도만 챙긴 바제트는 운현이 가방에서 관심을 떼고 자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잡자 씁쓸히 웃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이나 너와 떨어져야 하다니. 슬픈데."

"그런데 가려고?"

"사실 가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마법학교에 있는 마법 물품에는 흥미가 있거든. 나도 널 위해서 강해지고 싶어."

"날 위해서..."

"응. 이번 시장 선거 뿐만 아니라 던전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네가 위험에 빠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적어도 내 활과 기술로 널 보호하고 싶다고."

"이거...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나?"

"후후후. 그러니까 잘 하라고."

운현을 향해 웃어보이며 바제트는 그를 끌어안았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달콤한 향기에 취하는 느낌이다. 운현 역시 바제트를 부드럽게 안았다. 서로 끌어안은 채 온기를 느끼던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키스를 시작했고 잠시 후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으으으..."

"꽤 버티기는 하지만 아직은 멀었네. 좀 더 정진하도록."

운현은 바제트의 나신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입술을 내밀었고 운현은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 키스해주었다.

"다음은... 누구한테 갈거야?"

"음. 미야에게."

"어휴... 힘도 좋아."

"날 감당하려면 넌 더 노력해야겠다. 이렇게 쉽게 느끼니..."

"히햐으으응!!"

운현의 손이 자신의 계곡을 어루만지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몸을 비틀며 신음성을 터트렸다. 바들바들 떨린 그녀의 몸이 축 늘어지가 바제트가 숨을 헐떡거리자 운현은 그녀의 볼에 쪽 키스해준 후 말했다.

"마법학교에 갔을 때 재밌는 마법도구가 있으면 사다줘."

"으으으...알았어..."

숨을 헐떡이며 그녀가 힘겹게 말하자 운현은 빙긋 웃은 후 옷을 대충 걸쳐 입고 옆방으로 향했다. 나란히 붙어 있는 방에 운현이 들어오자 운동을 하고 있던 미야는 바지만 입은 운현을 보고 피식 웃었다.

"바제트랑 한거야? 소리 다 들리더라."

"응. 지금은 너랑 할거고. 으음... 확실히 여러명이랑 하는 것을 연습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연습까지 필요한건가...?"

미야의 말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3p 이상부터는 체력도 체력이거니와 여러명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을 보여야했다.

"아무튼. 바로 안는 건 좀 그렇지? 씻고 올게."

"나도 씻을거야. 같이 씻자."

한참 운동을 한 덕분인지 그녀의 까무잡잡한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회색의 트레이닝 복은 이미 땀으로 검게 젖어 있었기에 그녀는 그 옷을 입은 채 운현과 함께 욕탕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욕탕에서는 미야의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148====================

election

"나 왔어."

"으음... 시간을 보니까 제가 마지막인가요?"

"응."

"절륜하시네요~ 괜찮아요?"

"문제없어. 자 이리와."

싱글벙글 웃으며 헤스티아는 운현의 품에 폭 안겼다. 이미 샤워를 마쳤는지 그녀의 몸에서는 향긋한 비누 냄새가 물씬 풍겼다.

"많이 기다렸어?"

"음... 조금요? 그치만 선물들을 준비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네요."

"뭘 준비했는데?"

"던전 도시의 특산 코어들이요.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좋은 연구 자료가 될거에요."

작은 상자들에 하나씩 코어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헤스티아가 말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침대에 앉았다.

"일주일간 운현씨 못보니까 오늘은 느긋하게 많이 하고 싶어요. 괜찮아요?"

"불가능한건 아닌데 네가 버틸 수 있을까?"

"읏..."

두 여인을 상대하고도 멀쩡한 운현이 씩 웃으며 말하자 헤스티아는 떨떠름한 얼굴로 볼을 긁적거렸다. 그녀가 다가오자 운현은 그녀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가끔씩 생각하는 건데 운현씨를 만난게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인 것 같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요~ 마법 학교에 있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면 다들 굉장히 부러워하거든요."

"친구라... 그 전에 누구였지? 걔는?"

"으음... 에릴이요? 소식이 끊겼어요. 사실 연락하고 싶지도 않고..."

그녀에게 뒤통수를 맞아 파티에서 쫓겨난 덕분에 운현과 만나게 되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그녀에게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헤스티아가 한숨을 내쉬고 운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렇게 운현씨에게 안겨 있을때마다 사실 이게 꿈이 아닌가 싶어요. 눈을 뜨면 마법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고. 운현씨와 지낸 나날들이 그저 로맨스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건 현실이고 진짜야. 그러니까 그런 생각 하지마."

운현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이마에 입맞추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운현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저도 이게 현실이기를 바래요. 후후후... 운현씨에게 안길때면 늘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거든요. 이만큼의 쾌락과 행복을 느끼면 꿈이라고 하더라도 깨버리겠죠?"

"그러겠지? 자자. 사설은 그만. 이제 할까?"

운현의 손이 자신의 치마 사이로 슬그머니 들어오자 헤스티아는 못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그의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간지럽히듯 깨물고 핥아오는 그녀의 애무를 받으며 운현은 손을 더더욱 깊숙한 곳에 넣었다.

"으응..."

손에 닿는 매끄러운 허벅지의 살결이 부드럽다. 말랑말랑한 살결을 느끼며 안쪽 깊숙한 곳에 도착한 운현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팬티 안쪽에 자리잡은 뜨거운 균열을 벌렸다.

"으읏..."

그의 손가락이 닿은 탓일까? 아니면 운현의 입술이 얼굴 여기저기를 키스하는 탓일까? 헤스티아는 살짝 몸을 떨며 쾌락의 비음을 토해내었다.

"하아...하아..."

달콤한 숨결을 연신 토해내며 헐떡이던 그녀는 붕붕 고개를 저은 후 반짝거리는 눈으로 운현을 보았다.

"오늘은 제가 먼저 해드리고 싶은데..."

"어? 괜찮겠어? 급한 것 아냐?"

"후후후... 급하지만 그래도 운현씨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거든요. 그 보답!"

밝게 웃은 헤스티아는 운현의 얼굴에 키스하고 그의 옷을 벗겨나갔다. 그가 속옷만 남은 채 알몸이 되자 살며시 밀어 침대 위에 눕혔다. 그의 위에 올라탄 그녀는 운현의 입술에 입맞춰 진한 키스를 한 후 운현의 탄탄한 복부 위에 앉고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안무겁죠?"

"응."

"다행이다... 요새 좀 많이 먹는 것 같았거든요."

"하하하. 이정도는 괜찮아. 레벨업을 해서 힘이랑 내구성이 높아졌으니까 말야."

"...그냥 가볍다고 해주시지. 치."

헤스티아는 살짝 입술을 삐쭉거린 후 천천히 자신의 옷을 벗었다. 하얀 블라우스를 벗어 살짝 흔든 그녀는 그것을 뒤로 휙 던지고 자신의 치마를 벗었다. 금새 상 하의의 속옷만 남기게 된 그녀는 운현에게 자신의 가슴을 가져간 후 말했다.

"이건 운현씨가 풀어주세요."

"그러지."

그녀를 끌어안고 등 뒤의 고리를 풀었다. 상의 속옷이 벗겨지자 그대로 가슴이 중력에 의해 얼굴에 닿았다. 코끝을 살짝 살짝 스치는 연분홍빛 유두가 운현의 입김에 의해 점점 딱딱해졌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쾌감을 받은 것인지 헤스티아는 마른 입술을 빨간 혀를 내밀어 침을 뭍힌 후 유두로 운현의 얼굴을 계속 괴롭혀나갔다.

"하음."

"으으으읏! 운현씨! 그러면 안된다구요!"

코끝을 지나 입술을 스치고 지나가는 가슴에 참지 못한 운현이 입술을 내밀어 그녀의 오독한 유두를 살짝 깨물었다. 그것에 쾌감을 느낀 헤스티아는 운현의 몸 위로 쓰러진 후 그의 이마와 얼굴 여기저기를 사랑스럽다는 듯 쪽쪽 키스하고 말했다.

"야! 그럼 어떡하냐!? 이게 눈 앞에 왔다갔다하는데!"

"그래도 참아줘요~"

운현이 화를 내자 헤스티아는 생글거리며 그에게 키스했다. 다시 시작된 괴롭힘, 그리고 복부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계곡과 허벅지의 감촉에 운현의 남성음 점점 화를 내기 시작했다.

"후후후... 벌써 이렇게 커졌어."

운현이 자신의 애무에 느끼는 것을 보며 기뻐하던 헤스티아는 살며시 몸을 내렸다. 점점 몸을 내려 그의 딱딱한 남성 위에 앉은 그녀는 계곡에서 느껴지는 남성의 감촉에 얼굴을 붉히고 침을 꼴깍 삼켰다.

"자... 그럼 다음은 여기를 괴롭힐거에요~"

"으으으..."

"힘들어도 참아요~!"

헤스티아는 자신의 유두로 운현의 유두를 비비기 시작했다. 딱딱한 유두끼리 비벼지는 묘한 쾌감에 운현은 낮게 신음했다. 그의 목을 핥고 손으로 다른 쪽의 유두를 간지럽히던 헤스티아는 그가 조금씩 허리를 움직이자 운현의 입술에 키스한 후 다시 몸을 내렸다.

"큭..."

"핥짝... 조금만 더 참아요~"

운현의 몸 여기저기를 핥으며 내려간 헤스티아는 드디어 운현의 하복부에 얼굴을 위치시켰다. 천천히 그의 팬티를 벗긴 헤스티아는 튕겨나오듯 그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꺼떡거리자 그것을 살며시 핥았다.

"읏...!"

알주머니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올라온 작고 촉촉한 혀가 양물의 머리를 감싸고 비볐다. 그 쾌감에 운현은 움찔했고 헤스티아는 그의 반응에 무척이나 즐거워하며 딱딱한 유두로 그의 남성을 괴롭혔다.

"큭... 야, 너..."

"바제트씨에게 배웠어요. 후후후후~ 자. 그럼...하음."

"오옷!?"

확실히 레밍보다 낫다. 자기 만족을 위한 애무가 아닌, 운현이 느끼게 하기 위한 성실하고 애정이 담긴 애무에 운현은 진한 쾌감을 느꼈다. 양물을 입에 물고 핥고 빨면서도 헤스티아는 손으로 운현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쭈룹...핥짝... 후후후... 자아. 그럼."

"야!? 자, 잠깐!"

"왜요오~?"

"너 지금 뭐 하려는거냐?"

"으음... 이것도 바제트씨에게 배운건데."

"...그건 좀 난이도가 있으니 나중에 하면 안될까?"

"치. 그럼 이것만. 쭈릅...쪽!"

운현의 양물을 입안 가득 넣고 타액을 흘려 그의 남성을 촉촉하게 만든 그녀는 작은 손으로 그것을 흝으며 살며시 얼굴을 내려 그의 알주머니에 키스하고 쪽쪽 핥았다.

"으읏...웃."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쾌감이 느껴진다. 매끄러운 타액과 마찰되며 손의 절묘한 압력에 허리가 뻐근해진 운현은 그녀의 손길이 더더욱 빨라지자 결국 쾌감을 참지 못했다.

"싸, 쌀것 같..."

"어머! 그럼!"

운현의 허리가 딱딱해지고 손 안의 남성이 크게 흔들리자 헤스티아는 얼른 그의 양물을 입에 넣고 손으로 알주머니와 항문을 건드렸다. 그 쾌감을 버티지 못한 운현이 거칠게 사정하자 헤스티아는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정액을 꿀꺽 꿀꺽 삼켰다.

"냠...쪼옥. 핥짝..."

"허억...허억... 바제트 이 무서운 기집애. 도대체 어디서 이런걸 배워와서..."

"후후후. 어땠어요? 핥짝."

운현의 남성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핥은 헤스티아는 물통의 물을 꿀꺽 꿀꺽 삼켜 입안을 헹군 후 운현의 위로 올라갔다. 그의 입술에 키스한 후 헤싀아가 묻자 운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완전 좋았어."

"기뻐라~ 그럼 좀 더 할게요~"

"으... 난 넣고 싶은데."

헤스티아의 쫄깃한 계곡의 벽을 즐기고 싶었던 운현이 말하자 그녀는 부끄러운 듯 살짝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헤스티아는 운현의 남성을 자신의 계곡 근처에 가져다 댄 후 서서히 허리를 내렸다. 처음과는 다르게 이제는 운현의 남성에 완전히 익숙해져버린 헤스티아의 음부는 그의 남성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딱 맞게 붙어버린 계곡 벽과 양물에 헤스티아와 운현 둘 다 진한 쾌감을 받았다.

"으으으..."

"흐아~ 좋다~"

"저, 정말요? 좋죠? 좋죠?"

"응응."

살며시 허리를 움직여 운현에게 쾌감을 준 헤스티아는 강렬한 움직임이 아닌, 느긋하게 움직이며 조금씩 쾌감을 높여 나갔다.

"하아...하아아..."

"왜 이렇게 천천히 해?"

"으음... 다른 모험가들한테 들은건데요. 이런 식으로 천천히 하는 것도 무척 기분이 좋다고 하네요."

"그래?"

처음은 헤스티아가 하자는대로 할 생각이었던 운현은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쾌감을 즐겼다.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헤스티아를 끌어안은 운현은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자 귓볼을 핥으며 속삭였다.

"천천히, 느긋하고 농밀하게 하는 것이라면 내가 만져도 괜찮지? 아, 아까부터 만지고 싶어서 혼났네."

"흐읏...읏...그, 그런거라면야..."

헤스티아 역시 운현이 만져주길 바라고 있었던 터라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흐읏..."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진다. 작은 어깨, 매끄러운 등, 그리고 탄력적인 둔부. 팬티를 약간 옆으로 걷고 양물을 넣은 것이라 그런지 맨살과는 다른 감촉에 운현은 그녀의 엉덩이를 집중적으로 주무르며 헤스티아의 얼굴을 핥았다.

"아흐...으으으..."

그의 손길이 점점 농염해지자 헤스티아는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그것을 참아낸 그녀는 질 수 없다는 듯 손을 내려 그의 알주머니와 유두를 괴롭혔다. 서로의 손길이 서로를 공격해나간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의 쾌감을 고취시켜나가던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시원하게 절정에 올랐다.

"으하으으응!!"

"으윽!"

뜨거워진 계곡 안의 깊숙한 곳에 사정한 운현은 느리게 한 만큼 더더욱 진한 사정을 한 것에 나른한 탄식을 내뱉었다. 헤스티아 역시 그 절정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는지 기분 좋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하아... 어땠어요?"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그럼 이제 운현씨 하고 싶은대로 해주시는건... 어때요?"

헤스티아가 기대감을 품고 묻자 운현은 그녀의 팬티 안으로 손을 넣고 탄력적인 둔부를 주무른 후 빙긋 웃었다.

"아니. 이거 좋은데 한번 더 하자."

"예? 아... 예에..."

운현의 말에 그녀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기는 좋았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공격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헤스티아가 다시 허리를 꿈틀거리자 운현은 히죽 웃은 후 속삭였다.

"평소대로 강하게 하고 싶다면 애원해봐."

"...가, 강하게..."

"으음?"

"강하게 절 안아주세요... 제가 운현씨를 계속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헤스티아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속삭이자 운현은 그녀를 꽉 안은 채 빙글 몸을 돌렸다. 그것만으로 자세를 바꾼 운현은 그녀의 양 다리를 잡고 쭉 올렸다.

"천천히 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역시 이게 낫지?"

"후후후... 네."

폭발하듯 밀려올 쾌감을 예상하며 헤스티아는 밝게 웃고 손을 뻗었다. 그녀에게 끌어져 진하게 키스를 한 운현은 서서히, 하지만 점점 속력을 내며 강하게 허리를 튕겨나갔다.

"아흑! 으흐으으응! 아하아아앙!"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짜릿한 쾌감이 온 몸을 후려친다. 잠시만 집중을 풀어도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은 쾌감의 파도에 헤스티아는 손을 뻗어 운현을 찾았다. 키스를 원하는 그녀에게 키스해주며 운현은 그녀의 양 가슴을 마구 주물렀다.

"어헝! 어허어엉!"

"쪽... 추릅...쭙..."

키스를 하고 양쪽 유방을 주무르며 허리를 튕기던 운현은 가볍게 그녀를 안아 들고 자세를 바꿨다. 그녀를 안아 들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운현은 침대의 반동을 이용해 그녀를 더더욱 강력하게 공략해 나갔고 헤스티아는 아까 전과는 다르게 금새 절정에 올랐다.

"아하아아아아아아앙!!"

"큿...나도...!"

비명을 내지르며 운현을 꽉 끌어안은 헤스티아의 안이 뜨거워지자 운현도 참지 않고 그대로 사정했다. 안쪽 깊숙한 곳에 뜨거운 정액이 뿌려지자 헤스티아는 그를 끌어안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하아... 하아... 조아어여..."

제대로 말도 못하고 혀를 빼문 그녀는 운현이 키스하자 힘없이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자. 그럼 다음으로 간다!"

"에? 에에에에?"

운현의 허리가 다시 움직여지자 헤스티아는 그 쾌감에 허우적거리다가 운현을 꽉 끌어안고 그에게 매달렸다.

149====================

election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됩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헐떡이는 헤스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야를 안아줬을 때 현자의 시간이 왔고 그때 기름함정 - 폭 카드를 세장 만들었다.

몇번이나 더 만들려고 해보았지만 이상하게 세장 이상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더 실험을 해보고 싶어도 늑대 이빨이 없어서 실험은 불가능했다.

결국 냉철한 이성 상태로 앉아 시간을 때울 수 밖에 없게 된 운현은 천천히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장 선거.'

시장 선거의 방향에 따라 자신의 활동이 결정된다. 전쟁, 혹은 던전 탐험. 둘 중 하나의 길을 걸어야 하고 운현은 자신의 행동 중 어느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볼 것도 없군. 모험가다.'

남자로서 전쟁에 참여한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거기에 실제로 전쟁을 했을 때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움직인다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적었다.

'휘말리는 것은 사양이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대로 이끌리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어느정도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운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약을 대비해야겠군."

시장 선거일은 이제 오일 남았다. 오일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치더라도 제작자 연합의 약점을 찾을 수 없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한정되어있지..."

절대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작을 하면 되지.'

이미 선동과 날조로 승부를 보기로 결심한 이상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것에 대한 양심의 걸림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운현은 차분히 현재의 선거 방식을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조작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후폭풍이 문제군.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최대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겠군.'

선거 결과에 사람들이 납득을 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만약 던전 도시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다면 의심해봤자 그들을 일일히 조사할 수 없으니 수긍할 수 밖에 없지만 시장선거는 한정적인 인원만으로 선거를 하게 된다.

즉 조사만 한다면 이게 진실된 선거인지 부정적인 선거인지는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납득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자."

대세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등한 수준까지는 끌어올려야했다. 피스나의 제품 설명회로 어느정도 인지도를 올린 후 제작자 연합의 간부들, 그리고 도시 내에서 피스나의 입지를 마련해야 한다.

각 조직의 간부들과 조직원 중의 무작위로 인원을 뽑아 선거를 한다고 치더라도 그들이 확고한 의지가 없는 이상 도시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운현은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낮게 신음했다.

"쉬운 일은 아니겠군."

시간이라도 많으면 모르겠지만 단 오일만에 그 일들을 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이 낀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쉬운 일일까? 아마 모험가 길드의 대부분과 길드장들, 그리고 제작자 연합을 끌어들여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날 위해서는 이게 나은 일이지.'

오일동안 개고생을 하느냐, 아니면 전쟁이 나느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운현은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득이기에 오일간 있을 살인적인 업무량을 각오했다.

"젠장. 쉬운 일이 없군..."

늘 일어나는 시간보다 빠르게 일어난 운현은 곧장 피스나의 공방으로 향했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경비병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간 운현은 막 씻고 나온 것으로 보이는 피스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하자 그녀에게 말했다.

"준비는 됐나요?"

"네.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머리를 말리고 그녀가 나오자 운현은 그녀와 함께 시청으로 향했다. 신제품 홍보회를 위해 시청의 회관을 빌리기 위해 시청으로 온 운현은 그녀가 등록을 하러 간 사이 일꾼들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부숴지면 1층 창고에서부터 또 옮겨야 하니까 조심하라고!"

"끙...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이 투표함과 투표 용지로 시장님이 결정되는거야! 그러니까 조심해!"

시장선거용 투표함을 들고 가는 일꾼들이 떠드는 것을 들은 운현은 그것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이거 또 생각치도 못한 기회를 얻게 됐군.'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뇨. 금방 끝나셨네요. 가실까요?"

빠르게 접수를 마친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온 운현은 바깥 풍경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피스나씨. 선거 용지는 어떤 식으로 나오고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요?"

"아. 현 시장님의 도장이 찍혀 있는 용지에 후보가 소속된 조직의 이름 옆에 체크를 하는 것으로 투표를 하는 거에요. 투표용지가 모두 모이면 시청에서 지정한 각 조직 인원들이 모여서 개표를 하죠."

"그렇군요. 전 처음이라... 하하. 내일 홍보회니까 준비해주시구요. 마차 관리 잘하세요. 괜히 여기서 더 만들고 추가하려다가 망하지 말고."

"걱정 마세요~ 운현씨는 이제 뭐 하실 건가요?"

"제작자 연합의 반대파들을 설득하러 가야죠."

자신의 무기가 전쟁에서 어떤 효과를 보일 지 궁금해하는 정신나간 제작자를 꼬드겨야 한다. 운현이 떨떠름하게 말하자 피스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하네요. 제가 부족해서..."

상아나 아르토리우스처럼 조직을 꽉 잡고 있을 정도라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아도 좋을텐데. 피스나가 우울한 얼굴로 말하자 운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지금 안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불평해봤자 어쩔 수 없는 것이죠. 그보다 말씀드렸던대로..."

운현은 피스나에게 받은 작은 책을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피스나가 발명하고 만든 물건들에 대한 제작 권리가 나열되어 있는 책이었다. 두툼한 책자를 가볍게 흔들어 본 운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표시한 것을 제외하고 그것을 공동 소유로 만들어도 괜찮다는 거죠? 그 말..."

"물론이에요! 운현씨께서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저도 이정도는 감안해야지요!"

"좋아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가장 처음은 누구에게 가시려는 건가요?"

"파밀라라는 사람에게요. 가장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더군요."

"왜 그 사람부터..."

"가장 처음은 최악을. 그래야 다른 사람에 대한 대처법을 마련할 수 있으니까요."

"끙... 약속은 하신 건가요?"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탁을 할 사람은 있죠."

운현은 제작자 연합의 간부 명단을 떠올렸다. 아마 그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부탁을 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 운현이 말하자 그녀는 쓰게 웃었다.

"파밀라씨는 난폭하고 강한데다가 자기 주장이 심해서 상대할 때는 주의해야 해요. 괜찮으시겠어요? 저라도 함께 간다면..."

"같이 갈 사람도 보통은 아닌 것 같으니까 괜찮아요. 그럼 이만!"

운현은 걱정하는 피스나에게 인사하고 곧장 힐더크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힐더크! 내가 돌아왔소!"

"어? 우와! 운현 아냐!?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왠일이야!?"

"너 보고 싶어서 왔지~"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을 반기는 힐더크에게 안긴 운현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문댔다. 그가 자신에게 애교를 피우는 듯 하자 힐더크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럼. 지금부터 할거야?"

"응? 아니. 지금은 좀 그렇고. 할 일이 있어서 말야. 내일 모레 어때?"

"왜 또 그런 어중간한 시간대를..."

운현을 보며 들뜬 얼굴로 말한 힐더크는 그의 말에 시무룩해졌다. 그녀에게 빙긋 웃은 운현은 의자에 앉은 후 물었다.

"힐더크. 당신 제작자 연합의 간부지?"

"응. 몰랐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그녀가 묻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힐더크의 나이트호크 세트를 대부분이 알고 있더라니. 제작자 연합 간부급의 물건 치고는 정말 싸게 구했구나 싶었던 운현은 차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힐더크."

"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어?"

"개인적인 부탁이라면...?"

"시장 선거에서 피스나씨를 지지해줘. 네 밑에는 널 따르는 대장장이들이 꽤 되지 않아? 그 사람들에게도..."

"하아. 뭔 얘기를 하려고 하나 했더니."

운현의 말에 힐더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후 굳은 얼굴로 답했다.

"안돼."

"왜?"

"아르토리우스를 지지하는게 이득이 되니까. 전쟁만큼 우리 제작자들의 능력을 파악하기 좋은 기회는 없어. 특히 나나 나를 따르는 대장장이들의 대부분은 무구와 방어구를 만드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무구와 방어구의 성능을 정확히 알아내고 싶어한다고. 전쟁이 난다면..."

"전쟁이 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너희들이 만든 무기로 죽겠지. 그래도 괜찮아?"

"그러라고 만든건데?"

뭐 어떠냐는 얼굴로 힐더크가 말하자 운현은 입을 꾹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봐도 어쩔 수 없어. 미안."

"전쟁이 나면 나도 끌려갈텐데?"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널 내 도제로 받아들이지. 무구를 만들기 위한 도제라고 한다면 징집되지는 않을거야. 전쟁은 길어야 3년 안에 끝날거야. 3년동안 나랑 놀자고."

예상 밖으로 빡빡하게 나오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차분히 말했다.

"전쟁이 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나야 할 이유보다 많아."

"맞아. 그렇지. 하지만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지? 이기적이라고 봐도 좋고 쓰레기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어. 우리 무구 제작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적 완성도 아니고 정의를 부르짖는 것도 아니야. 오로지 무구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니까."

"하아... 정말 이러기야?"

"어쩔 수 없어. 사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널 돕고 싶어. 내 물건은 사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굳이 전쟁이 나지 않아도 테스트는 충분히 할 수 있거든. 하지만 내 밑의 대장장이들은 달라. 그들은 인지도가 낮고 기술력이 나빠서 무구를 만들어도 써주는 이들이 없지. 팔리지 않으니 효과를 알 수 없고 결국 정체되는거야."

"으음..."

"크게 양보해서 내가 네 말대로 피스나를 찍을 수는 있어. 그건 내 개인적인 일이니까. 하지만 대장장이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그것만큼은 불가능해. 난 모두를 위해서 움직일 수 밖에 없으니까. 아까 말했다시피 개인적인 부탁이라면 상관없지만 이건 개인적인 부탁이 아니니까 말야."

힐더크는 잔뜩 미안한 얼굴로 운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아마 이게 그녀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이다.

"만약 대장장이들에게 피스나가 시장이 됨으로서 이득이 생긴다면?"

"무슨 이득? 말해두지만 어중간한 것으로는 힘들거야. 피스나가 독점하고 있는 제련 기술이 아니라면..."

"그걸 주지."

"...뭐?"

운현의 말에 힐더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 제정신이야? 그게 진짜야? 피스나의 제련기술이라고? 그걸 대장장이들에게 풀겠다는거야!?"

"응. 피스나의 허락은 받았어."

운현의 말에 힐더크는 입을 꾹 다물고 생각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운현. 내 질문에 오해하지마. 혹시 너 피스나씨랑 잤어?"

"안잤는데? 왜?"

"난 또 네가 끝내주는 밤기술로 그녀를 녹였나 싶었지. 하긴, 피스나가 어떤 여잔데... 아니 근데 넌 왜 피스나를 지지하는거야? 너 모험가 아냐?"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고만 알아줘. 아무튼 그 제련기술을 준다면 대장장이들을 포섭할 수 있다는 거네?"

"응."

운현의 말에 힐더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름없는 대장장이들이 정체되는 큰 이유중 하나가 바로 제련술의 부재야. 그들이 광석의 제련술이 약하기 때문이지. 물론 그들이 보유한 제련술은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의 제련술과 비교하면 충분히 쓸만하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그 제련술로는... 잘 쳐줘봐야 2계층? 3계층 이상을 탐험할 수 있는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 수 없지."

"호오... 그게 정말이야?"

"응. 간부급이나 거기에 근접한 대장장이들은 자신들 나름의 노하우로 일반 제련술로 만들 수 있는 금속 이상의 경도와 탄성을 가진 금속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다만 그것을 전해주는 것은 좀... 자기가 피토하면서 연구한 결과를 남에게 그냥 줄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

운현은 노하우라며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장인들을 떠올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힐더크는 차분히 말했다.

"피스나의 제련술이라면 나나 숙련 대장장이 정도는 아니지만 초, 중급 대장장이들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기술이고 지식이야. 그것을 그녀가 무상으로 푼다면 대장장이들은 지금의 무기따위에는 관심을 버리고 그 제련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연구에 집중하겠지. 그들도 그것을 원할 것이고. 만약 진짜 제련술을 준다면 그들을 피스나를 지지하게 할 수 있어."

"좋아. 그럼 계약 성립이군."

"후후후... 그리고 날 설득해야겠지?"

"엥? 너 설득된 거 아니야?"

운현은 아까 전의 말을 번복하는 힐더크를 보며 물었다. 그런 그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힐더크는 살짝 다리를 벌리고 어깨에 걸려 있는 끈을 풀었다.

"맨 입으로? 반대만 하면 이득이 생기는데... 나도 반대를 해야지. 이득을 위한 반대를 말야. 뭘 해줘야 하는지는 알겠지?"

힐더크의 입가에 그려진 음흉하고 야한 미소에 운현은 마주 웃었다.

"그런 것이라면 늘 환영이지. 근데 말했지만 지금은 좀 곤란하다니까. 다음에 진짜 허리 빠질 정도로 해줄테니까 좀 참아줘."

운현은 힐더크의 가슴을 주무르며 그녀를 달래주었다. 그가 미루는 것에 입술을 삐죽거린 힐더크는 운현의 하복부를 매만졌다.

"그런 것 치고 여기는 지금 하고 싶어 난리인 것 같은데?"

"좀 봐줘."

운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힐더크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군."

"고마워. 이왕 고마운 김에 하나 더 부탁하자. 파밀라를 소개시켜줘."

"어? 파밀라? 걔는 왜? 시장 선거때문에? 걔는 그냥 포기하는게 어때?"

"왜?"

"걔는 절대 설득할 수 없을걸? 차라리 다른 전쟁을 원하는 다른 간부를 소개시켜주지. 어때?"

"그래도 일단 한번 만나기라도 해보려고."

"문전박대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만... 뭐, 직접 경험해보면 알겠지."

힐더크는 옷을 제대로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대장간을 나가자 운현은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대장간의 문을 닫고 그녀와 함께 거리를 걸은 운현은 피스나의 공방만큼이나 너저분한 공방 앞에서 힐더크가 발을 멈추자 그곳을 가리켰다.

"여기야?"

"응."

"그럼 들어가볼까?"

운현이 안으로 들어가자 힐더크는 한숨을 내쉬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와 함께 공방 안으로 들어 선 운현은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여인이 망치를 들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보자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운현이라고..."

"무슨 일이지?"

망치질이 멈춰지고 작업을 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그녀는 기름으로 얼룩덜룩한 작업복의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 후 말했다.

"말해두지만 난 무기 외에는 안만드니까 쓸데없는 소리할거면 꺼져."

자신감과 오만이 넘쳐나는 목소리다. 운현은 그녀의 말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 시장 선거에서 피스나씨를 지지해주시겠습니까?"

"아아... 그러고보니 피스나가 시장 후보로 나섰다고 했었지... 그럼 내 대답은 이거다."

빙긋 웃은 그녀는 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꺼져."

150====================

election

"에?"

"난 그 계집애를 지지할 생각 없어. 그러니까 나가."

운현이 멍하니 바라보자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그에게 흰 연기를 뿜었다.

"콜록! 콜록!"

"아하하하! 담배 연기에 그렇게 반응하다니... 완전 애송이군. 뭐 어쨌든 내 대답은 이거야. 전쟁을 반대하는 피스나는 나와 안 맞아."

"하지만..."

"전쟁이 나쁘다고 말하려는 건가? 아아. 전쟁은 나쁘지. 하지만 우리 무기 장인들에게 전쟁은 오히려 기회다. 잘만하면 큰 돈을 얻을 수 있고, 좋은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어떻게 하면 그녀를 지지해줄건가요?"

"만약 그녀가 요한을 깨우겠다는 것을 포기하고 무기 개발에 연구를 하겠다고 약속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지지하지."

그녀의 말에 운현은 인상을 구겼다. 어떻게 쑤실 구멍이 없다. 그를 보며 킬킬 웃은 그녀는 망치를 들고 아까 전에 하던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거봐."

"힐더크. 뭐야. 넌 피스나를 지지할거야?"

파밀라는 운현의 뒤에 서 있는 힐더크를 보지도 않은 채 망치질을 하며 물었다.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힐더크는 웃으며 말했다.

"응. 피스나가 자신의 제련술을 풀기로 했거든. 내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이지."

"하. 고작 그것때문에?"

"고작이라니. 대장장이들이 자기 실력을 확 높일 수 있는게 제련술의 연구인데. 피스나의 제련술 정도면 어지간한 고급 대장장이보다 좋다고. 그것을 발판으로 대장장이들이 성장할 수 있다면 나는 찬성이야."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은데도?"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겠지만 그것만 못하지. 피스나의 제련술이라면 대장장이들의 실력을 적어도 10년은 앞당길 수 있을걸?"

힐더크의 말에 파밀라는 망치질을 멈춘 후 잠시 생각하다가 운현에게 물었다.

"네가 피스나의 대변인이냐? 그럼 묻지. 나에겐 뭘 줄 수 있지?"

"뭘 원하시나요?"

"피스나의 광검 제작기술."

그녀의 말에 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광검 제작기술은 피스나가 밝혀서는 안된다고 했던 기술 중 하나였다.

"그것 외에는요?"

"그 외에는 필요 없어."

"어쩔 수 없군요."

피스나의 허락 없이 기술을 준다고 약속할 수는 없었다. 운현이 어깨를 으쓱이자 파밀라는 다시 망치질에 집중했다.

"가자."

"응."

힐더크와 밖으로 나온 운현은 생각보다 날선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지만 힐더크는 운현이 거절당한 것 때문에 풀이 죽었을 까봐 그의 손을 잡아 달래려 하였다.

"파밀라는 골수 전쟁 찬성파야. 그녀가 만드는 모든 것은 무기와 관련된 것이거든."

"어쩔 수 없네. 그럼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봐야겠는데..."

"음. 같이 갈까? 혼자가는 것보단 내가 같이 가주는게 나을 것 같은데."

"왜?"

"응?"

"도움 받는 내 입장에서야 감사할만한 일이지. 하지만 굳이 네가 나서려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운현의 말에 힐더크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서로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던 운현이 몸을 돌려 혼자 가려 하자 힐더크는 결국 항복을 해버렸다.

"아아 어쩔 수 없구만. 맞아. 이유가 있어."

"무슨 이윤데?"

"일단 첫번째는 널 도우면 네가 나랑 할 때 더 잘해주지 않을까 라는 개인적인 이유지."

"첫번째라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다는거네?"

"응."

그의 질문에 순순히 수긍한 힐더크는 운현이 들고 있는 책을 가리켰다.

"그 책, 보아하니 피스나가 자신이 줘도 괜찮다 싶을 기술들을 적어 둔 것 같은데 말야. 맞지?"

"맞아."

"잠깐 볼 수 있을까?"

힐더크의 질문에 운현은 작은 책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빠르게 읽어 본 그녀는 책을 덮어 돌려 준 후 말했다.

"아까 네가 제련술을 준다는 말에 혹시나 싶었지. 피스나의 기술 중에는 기반 기술이 꽤 있어.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지만 실제 그 기술만으로는 이득을 보기 힘든 것들. 네가 대장장이들에게 넘기기로 한 기술인 제련술 역시도 기반 기술 중 하나지."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면 골치아프다는 거야?"

운현의 예리한 지적에 힐더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왕 이리 된거 난 대장장이들의 위상을 높여 볼 생각이거든. 지금까지 제련술이 약해서 무시받던 대장장이들을 높은 곳으로 올려보고 싶어. 그리고 이번 거래로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보고 싶기도 하고 말야."

힐더크는 차분히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운현은 팔짱을 낀 후 물었다.

"그게 다야?"

"응. 그 외에는 딱히?"

"흐으으음..."

차분히 생각한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반 기술을 통해 다른 제작자들이 큰 영향을 받아 성장한다면 모험가인 자신에게 마냥 좋은 일만도 아니었기에 운현은 힐더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손을 잡게 됐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제작자 연합의 전체적인 힘의 상승은 불가능한건데 괜찮겠어?"

운현의 질문에 힐더크는 키득거렸다.

"난 솔직히 제작자 연합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야. 대장장이와 보석세공인, 인챈터, 그 외의 다른 제작물품을 만드는 이들. 모두 다른 품목을 만들고 있는데 제작자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뭉쳐 있잖아?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이들도 많다고. 이걸로 제작자 연합 내부에서 대장장이의 위상이 높아진다면 대장장이 길드를 따로 만들던가 아니면 다른 세력에 소속되는게 낫겠지."

"다른 소속이라면?"

"모험가 길드 아니면 용병 연맹. 아직은 구상 정도에 불과하니까 너무 신경쓰지는 말라고. 정 뭐하면 날 도와주겠어? 그럼 내가 대장장이들을 이끌고 모험가 길드에 투신할테니까. 우리는 모험가들에게 무기와 방어구를 제공하고 그 성과를 확인하고. 모험가들은 손쉽게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얻을 수 있잖아. 좀 더 싸고 원할하게 몬스터 사체와 코어를 거래할 수 있는 것은 덤이지."

힐더크는 운현의 질문에 답해준 후 빙긋 웃었다.

"내가 함께한다면 난 주요 기반 기술과 좋은 기술들이 가는 것을 막아주지. 모험가인 네 입장에서도 제작자 연합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 좋지 않겠어? 피스나가 시장이 된다면 제작자 연합은 그녀를 내세우며 연구 위주로 도시의 정책을 진행하려 할텐데 그것에 편승해서 제작자들이 날뛸 수도 있다고. 그것을 막으려면 제작자들의 힘을 너무 높이는 것은 좋지 않을텐데 말야."

"흐음..."

그녀의 말대로다. 피스나가 시장이 되어 제작자 연합에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을 대비하기는 해야 한다.

괜히 그들을 키워봤자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운현은 잠시 생각을 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힐더크가 웃으며 말하자 운현은 그녀와 함께 나머지 간부들의 공방을 돌았다. 피스나의 기술을 대가로 총 네명의 제작자들의 동의를 더 얻어낸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작자들이 더 욕심이 많은 것 같네..."

기술을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고 하는 제작자들과 최대한 적게 주려는 운현과의 대담에서 승리한 것은 운현이었다. 중요하다고 생각될만한 기술보다는 그저 보조 기술 정도에 불과한 것들을 넘기기로 한 운현의 어깨를 두들기며 그녀는 히죽 웃었다.

"이정도면 굉장히 선방했어. 운현 말 잘하던데?"

"이정도야 뭐,"

"좋아. 그럼 이 대가는 밤에 얻는 걸로 하지. 괜찮지?"

"내가 부탁하고 싶은건데."

운현은 힐더크의 풍만한 둔부를 꽉 주물렀다. 그의 손길에 웃으며 그녀는 운현의 어깨를 살짝 친 후 말했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아아. 응."

그녀가 떠나자 운현은 곧장 길드로 향했다. 동료들이 마법학교로 떠나기로 한 시간에 맞추어 길드에 도착한 운현은 길드회관에 짐을 풀고 마차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가는거야?"

"아침부터 어딜 갔다온거에요?"

"일때문에. 조심히 잘 갔다와."

"헤헤헤~선물 사올게요~"

운현이 키스해주자 헤스티아는 좋아하며 짐을 들었다. 미야와 바제트에게도 키스해주고 포옹해주는 것으로 배웅을 마친 운현은 그녀들이 탄 마차가 빠르게 이동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개 고생만 남았구만."

모험가 길드의 지원을 받아 선전용 문구들을 작성하고 길드원들을 일반인으로 변장시켜 피스나의 설명회를 홍보하게 만들고, 피스나를 따르는 제작자들에게 피스나가 시장 후보로 나간 기념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물품들을 할인하게 만든 운현은 녹초가 되어 길드로 돌아왔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그러니까... 으. 그래도 전쟁이 나게 할수는 없지."

"끙... 그럼 내일 아침이니까 쉬었다가 내일 보자."

"응."

상아를 돌려보내고 헤스티아가 쓰던 방에 들어가 누워 있던 운현은 누군가가 노크를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헤헤~ 나 왔어!"

"어? 아스티나. 아. 맞다."

"뭐야!? 잊어먹고 있었던거야!?"

운현이 자신을 보며 말하자 아스티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화를 냈다. 그런 그녀를 끌어안아주며 키스한 운현은 그녀의 양 팔과 양 다리가 자신의 몸을 감싸자 빙그레 웃었다.

"그럴리가 있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흥흥. 말로만?"

자신의 품 안에서 아스티나가 애교를 피우자 운현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춰 준 후 그녀를 침대로 데리고 갔다. 꽤 넓은 침대에 누운 그녀는 침대의 냄새를 맡은 후 히죽 웃었다.

"여기서 다른 여자랑 잔거야?"

"응. 내 동료."

"이거 더 달아오르는데? 후후후후~"

아스티나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말하고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테이크 어 룩에 있을때보다 옷을 좀 더 껴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노출된 부분이 더 많았던 그녀는 순식간에 나신이 된 후 운현을 유혹했다.

"자. 빨리 해줘. 나 진짜 기다렸다고. 너랑 하려고 자위도 안했단 말야."

자신의 가슴을 주무르며 계곡을 슬쩍 비빈 아스티나가 애달픈 목소리로 말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도 못필 정도로 해주지!"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슬슬 움직여야겠군."

운현은 아스티나가 지쳐 잠든 것을 보며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인적이 드문 곳을 걸어 시청 앞에 도착한 그는 로브를 뒤집어 쓴 후 변화 마법 스크롤을 찢어 얼굴을 변화시켰다.

'시청이니 보통은 아닐터...'

탐지마법 스크롤을 찢어 알람 마법을 확인한 운현은 알람마법과 함정을 피해 시청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청을 경비하는 경비병들에게 걸리지 않게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그는 창문을 락픽으로 연 후 조심스레 안으로 침입했다.

또다시 탐색 마법 스크롤을 써서 알람 마법의 위치를 확인한 후 운현은 아까 아침에 들었던 1층의 창고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삼십분 정도 시청의 1층을 뒤진 그는 간신히 창고를 발견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물쇠가 셋... 일단 해보자.'

여기서 실패하면 괜히 스크롤만 날린 셈이 된다. 운현은 긴장하며 빠르게 자물쇠 세개를 풀어냈다.

'진짜 물건은 물건이군.'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두꺼운 자물쇠를 해제한 운현은 알람마법에 주의하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내부를 방패를 꺼내 불을 피운 것으로 시야를 확보한 운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히죽 웃었다.

'빙고.'

여분의 투표함과 투표용지가 다른 박스들과 함께 철창 안에 보관되고 있었다. 락픽으로 철창을 연 후 그것을 훔쳐낸 운현은 철창을 잠구고 창고 밖으로 나와 자물쇠를 다시 전부 채웠다.

'마지막은...'

투표용지에 시장의 도장이 찍혀 있어야 위조 투표용지를 만들 수 있다. 투표함과 투표용지를 훔쳤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사기를 칠 수 없기에 운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에는 쉽지 않겠는데...'

151====================

election

어둠 속에 숨어 적절히 하이딩을 이용해 조심스레 시청 안을 움직인 운현은 탕비실 앞에에 앉아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 움찔했다.

'이런 씨...'

"하아...하아..."

"유이나씨... 하응..."

'...여기서 이런 걸 보게 되다니.'

탕비실앞에 앉아 있던 그녀가 쾌락의 비명을 내뱉자 탕비실에서 금발의 여인이 입가를 축축히 물들인 채 나왔다. 그녀는 긴 딜도를 만지작거리다가 누워 있는 검은색 머리의 견인족 여인의 입에 넣었다.

"아스나. 어때? 응? 후후후..."

"하아... 마나님... 마나님..."

'가위치기라니.'

두 여인이 긴 딜도를 자신의 계곡에 넣고 서로를 달래는 모습을 보던 운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레 움직였다.

"음?"

한참 허리를 움직이던 견인족 여인은 운현이 있는 쪽을 보고 코를 쫑긋거렸다. 그녀가 자신이 있는 쪽을 유심히 바라보자 운현은 이를 갈았다.

'제길. 피를 보기는 싫은데.'

"아흐응!"

그녀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말하려는 순간 금발의 여인이 허리를 깊게 움직였다. 그 순간 딜도가 움직여 견인족 여인의 쾌감을 자극했고 운현은 그 틈을 노려 빠르게 계단 위로 올라갔다.

'걸리는 줄 알았네.'

천운이 따랐다. 만약 저 견인족 여인 혼자 있었더라면 반드시 들켰을 것이다.

'후우...'

숨을 몰아쉬어 긴장감을 달랜 운현은 천천히 시장의 방으로 향했다. 문 틈으로 아무런 빛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사람은 없는 듯 싶었다. 운현은 손잡이를 잡고 살짝 돌려보았지만 역시 잠겨 있었다.

'그래도 락픽으로...'

"찰칵."

락픽으로 문을 해제한 운현은 탐지 마법을 사용해 혹시 모를 알람 마법을 찾아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안에 알람 마법은 없었다. 운현은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가 윈디아가 앉아 업무를 보는 책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군.'

잠겨 있는 서랍을 열어 시장 직인을 발견한 운현은 인주를 들어 빠르게 부정 투표용 용지를 만들어나갔다. 이백여장의 투표용지를 만들어낸 그가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으려 할 때 그는 서랍 안쪽에 있는 서류를 발견하고 그것을 확인해보았다.

'시장 선거 참가자...'

운현은 그것을 보고 명단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나갔다. 명단의 이름을 모두 종이에 적어낸 운현은 그것마저도 인벤토리에 넣은 후 서랍을 잘 닫아 원래 상태로 만들었다.

'너무 오래 버티는 것도 위험한데... 이제 튀자.'

이제 할 일은 다했으니 잘 튀는 일만 남았다. 운현은 하이딩을 풀고 MP가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후우...'

모든 MP를 회복한 운현은 시장의 방에서 나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여인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위치기에 열중하고 있었고 운현이 경계하던 견인족 여성은 금발 여인이 가슴을 빠는 쾌감에 정신을 거의 놓은 상태로 허덕이고만 있었다. 그 틈에 건물을 빠져나온 운현은 빠르게 뛰어 시청에서 벗어난 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일단 최악의 경우에는 이걸 내놓을 수 있겠군."

가짜 투표용지와 가짜 투표함을 챙겨놨으니 만약 선거에서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이것을 적당한 곳에 놓은 후 발견한 척을 해서 이 선거는 무효다. 라고 우길 수도 있었다.

'뭐... 치사하기는 하지만 이기면 장땡이지.'

운현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얌전히 놓여져 있는 투표함을 보고 싸늘히 웃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세상 일이라는게 최선을 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확실히 이득이 되는 이상 파밀라와 같은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고 막판에 용병 연맹의 제안에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이 없다고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걸로 그나마 안심을 할 수... 있는건가."

피스나의 제품 설명회는 크게 성공했다. 무덤덤하게, 마치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녀가 마차를 설명하자 제작자들 뿐만 아니라 상인들, 그리고 용병들도 그녀의 마차에 열광했다. 지금까지 나온 마차들로 여행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피스나의 마차가 상용화되고 그것이 양산이 된다면 마차 여행 및, 수송에 정말 혁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진동으로 인해 물품들의 손상을 최대한 막을 수 있었고 불편한 마차 여행으로 인한 피로를 최소화 할 수 있다.

마차를 타고 갈때마다 음식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맛없는 건량으로만 때우던 것이 아닌 시간만 있다면 제대로 된 요리도 먹을 수 있다.

모험가들을 제외한 모두가 좋아할만한 마차에 대한 제품설명회가 끝나고 운현과 상아, 모험가 길드의 길드원들에 의해 조사된 피스나의 지지도는 아르토리우스와 비교해 70:30정도로 전에 비해 확 뛰었다.

나머지는 회유와 선거 운동 뿐. 운현과 모험가 길드, 그리고 피스나는 남은 기간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선거운동을 했다. 워낙 시간이 없어 막판에는 거의 선동과 날조로 선거운동을 하며 용병 연맹을 비방했던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런데도 아직 불안하단 말이지..."

선거 운동을 하지도 않은 아르토리우스인데 아직도 아르토리우스가 시장이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나 고생을 했는데 아직도 그녀를 압도할 정도가 아닌 것에 운현은 불안감을 느꼈다.

"운현씨... 이정도면 정말 최선을 다 했으니..."

"최선을 다 한 정도로는 안됩니다. 이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요."

피스나는 핏발이 선 운현의 눈을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야 레벨으로 인한 높은 체력으로 어떻게든 버틴다고 하지만 이 중에서 운현의 레벨이 가장 낮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버텨 준 것이 고마웠던 피스나였지만 지금 운현은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직 모잘라... 아직.'

"운현. 좀 자는게 어때?"

운현이 무리를 하는 것이 걱정된 필레는 그의 팔을 잡으며 조심스레 말했지만 운현은 시간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지. 투표는 언제지?"

"오늘 정오."

시간이 일주일만 더 있었더라면. 운현은 이제 두어시간 밖에 남지 않은 것에 입맛을 다셨다.

시청에서 시장 선거 참가자의 명단을 손에 넣어 그들 위주로 선거운동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정도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시청의 예상에 의하면 간소한 차이로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펠리시아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간소한 차이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은 간소한 차이로 질 수 있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아. 진짜! 나 바람 좀 쐬고 올게."

제대로 자지 못해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달래기 위해 운현이 밖으로 나가자 모두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나가볼게요."

모두를 대표해 필레가 운현의 뒤를 쫓았다. 길드의 바깥 공터의 상자 위에 앉아 뚱한 얼굴로 생각을 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간 필레는 운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괜찮아?"

"아니. 불안해 죽겠다. 지금까지 한 일이 다 개뻘짓이 될까봐."

"최선을 다했잖아."

"그걸로는 안된다니까! 실패하면 전쟁이 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널 지켜준다고 한다면?"

"응?"

"전쟁이 나도 내가 널 지켜줄게. 그럼 안심할 수 있어? 지금 너 너무 불안해보여."

필레의 다정한 말에 운현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필레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거칠어진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지금까지 네가 고생한 거. 모두가 알고 있어. 만약 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널 원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야."

"하아..."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의 말에 불안감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그가 상자의 위에서 일어나자 필레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가자.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거야. 그렇지?"

"...여기서는 그렇지."

만약을 위한 막판 뒤집기를 위한 카드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운현은 인벤토리에 있는 투표함을 힐끔 보았다. 다행히 시청에서는 도둑이 들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직 들키지 않은 것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관리의 허술함을 지적당하기 싫어서 내부적으로 덮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일이지만 운현으로서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뭐. 그렇지? 이제 슬슬 시청으로 가야하니까. 운현. 같이 갈까?"

"응."

만약 투표의 결과로 패배를 하게 된다면 이 투표함을 시청의 내부에 숨겨 놓은 후 발견하는 쇼를 해야 한다. 그것을 하려면 자신 역시도 시청으로 가야했기에 운현은 어느새 밖으로 나온 피스나, 상아, 그리고 모험가 길드의 간부와 시장 선거 참가자들과 함께 시청으로 향했다.

중간쯤에서 합류한 제작자 연합의 인원들과 함께 시청에 도착한 그들은 시청의 앞에서 들어가기 위한 신분 조사를 하고 있는 용병 연맹과 마주쳤다.

"어머~ 운현씨~ 잘 지냈나요? 요새 무척이나 바쁘던 것 같던데."

신분 증명을 마치고 다른 이들이 신분 증명을 끝내기를 기다리던 아르토리우스는 생글생글 웃으며 운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상아는 싸늘한 얼굴로 나서며 천천히 말했다.

"나는 보이지도 않나보지?"

"미안해요. 너무 작아서 그만."

"큭... 하나하나 열받게 하는구만."

살풋 웃으며 상아에게 말한 그녀는 그녀의 말은 무시한 채 운현에게 말했다.

"자. 그럼 당신이 노력한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구경해보도록 할까요?"

아르토리우스가 용병 연맹원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운현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주 여유로우시군. 누군 피곤해 돌아가시겠는데 말야..."

"저 코를 아주 납작 눌러주고 싶은데 말이지."

"동감이에요.."

운현과 상아, 필레는 자신들에 비해 상당히 멀쩡해보이는 용병 연맹의 모습에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

한참이 걸려 모험가 길드와 제작자 연합이 안으로 들어서자 시청의 문이 닫혔다. 상인 조합원들은 이미 들어와 있었는지 투표장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난 참가자가 아니니까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간부들이 앞자리에 앉고 시청에 의해 선출된 인원들은 뒷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간부도, 선출된 인원도 아닌 운현은 자리에 앉는 대신 문가 근처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지금부터 121회 던전 도시 발티르의 시장 선출 선거를 시작하겠습니다. 투표용지를 모두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단에 시장의 직인이 없다면 그 투표용지는 후보 선택에 상관없이 무효표로 처리되오니 반드시 확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윈디아의 간단한 개회사와 함께 시장 선거가 시작되었다. 모두의 집중이 단상 위로 집중된 순간 운현은 바로 하이드를 걸고 기척을 없애는 마법 스크롤을 찢은 후 가장 뒤쪽의 길드원이 받은 투표용지를 훔쳐보았다.

'제대로 찍었군...'

운현도 이것만큼은 자신할 수 없었다. 실제로 투표용지를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운현은 조용히 개표장으로 향했다. 개표장에는 처음 보는 얼굴의 여인 셋과 아는 얼굴 둘이 앉아 있었다.

'아니 저 여자들은?'

용병 연맹의 마크가 그려진 망토를 입고 있는 금발의 여인 마나와 시장 비서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견인족 여성이 지루하다는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것에 운현은 깜짝 놀랬다.

'그때 그 가위치기녀들? 설마... 이런 썅! 아르토리우스! 비겁하게!'

운현은 높아져가는 불안감에 이를 악물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릴 수도 있었다. 그는 구석에 앉은 채 투표함이 오기를 기다렸다.

"모두들 긴장하고 계시네요. 차라도 한잔들 하시겠어요?"

"그거 좋죠. 빌헬미나. 아직 투표가 끝나려면 시간이 좀 남았는데... 여러분들도 괜찮으시죠?"

"네. 뭐... 저는."

"저도요."

"저도 괜찮습니다."

세 여인들이 동의하자 시청 직원인 빌헬미나가 나가 트레이에 차를 준비해왔다. 그녀가 찻잔에 따끈한 차를 따라 나눠주자 모험가 길드와 제작자 연합, 상인 조합의 일원들은 그것을 한모금 마시고 방긋 웃었다.

"따뜻하다~"

"긴장이 풀리네요."

"차 이름이 뭔가요?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자신들이 실수를 하면 시장선거가 틀어진다는 탓일까? 꽤나 긴장하고 있던 그녀들이 차를 마시고 편안한 얼굴이 되었을 때 마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모두 여기를 봐주세요."

"따악!"

"........"

그녀의 손가락이 튕겨지며 소리가 나자 여인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하아아... 마나님~ 시키신 대로 했어요~"

"잘했어. 빌헬미나."

마나는 빌헬미나의 가슴을 주물러준 후 그녀가 끌고 온 트레이 밑의 상자를 꺼낸 후 그 안에 있는 투표용지를 모두 꺼내었다.

"후우. 이걸로 아르토리우스님이 주신 임무는 끝인가."

'역시 사기 칠 생각이었냐!?'

어쩐지 선거운동따위는 조금도 안하더니만. 그런 주제에 묘하게 자신만만하더니. 운현은 아르토리우스의 대담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처럼 발벗고 뛰는 것이 아닌, 그저 마지막에 투표용지를 바꿔버리는 그 대담한 방법이라니.

'이것도 우세하고 있는 측이니까 저렇게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겠지. 하. 진짜 약자는 서러워서 살겠나.'

운현도 충분히 바꿔치기를 쓸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선거 운동을 한 이유는 피스나의 지지도가 워낙 낮았기 때문이었다. 아르토리우스의 세력이 그토록 강력하고 압도적으로 그녀가 지지받고 있는 와중에 피스나가 선거에서 승리한다?

누가봐도 부정선거라고 의심을 할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적한다면 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리 된다면 다음 선거는 부정 없이 치뤄질 것인데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이상 운현으로서는 그것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하... 진짜 사기도 힘 있는 놈이 쳐야한다더니...'

운현이 약자의 부조리함에 억울해 하고 있는 동안 투표함의 투표용지를 빈 상자 안에 넣고 꺼낸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은 그녀는 상자를 트레이 안에 넣은 후 상자의 뚜껑을 닫고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잉~ 조금만 더 해줘요."

"귀여운 빌헬미나. 조금만 기다려주겠어? 오늘 일만 끝내면 제대로 해줄테니까 말야."

마나가 손가락을 튕기려 하자 빌헬미나는 그녀의 위에 앉으며 살며시 치마를 들어 올렸다. 그런 빌헬미나의 엉덩이와 가슴을 만지며 마나는 그녀와 키스했다. 서로 눈을 감고 느끼며 키스를 하는 것을 지켜보던 운현은 잠시의 틈이 보이자 잽싸게 스틸을 하여 투표함을 훔쳐내고 자신이 위조해 놓은 투표함을 그것과 바꿔치기 했다.

'휴... 큰일날 뻔 했네. 만약을 대비하길 잘했군.'

"딱!"

"자! 그럼 어서 개표를 해볼까요!?"

바꿔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쓰기 위해서 투표의 결과를 아슬아슬하게 피스나의 승리로 만들어 놓았던 운현은 자신이 바꿔 놓은 투표함을 열고 투표 용지를 펼쳐 결과를 확인하는 여인들의 안색을 살폈다.

"결과가 나왔군요."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요새 피스나씨의 이름이 많이 불리던데."

"후후. 저희 모험가 길드가 밀어주는데 당연히 이렇게 되겠죠. 그렇죠? 거기 용병 연맹의 분?"

"그, 그러네요."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던 마나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빌헬미나 역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한 채 결과를 지켜보았고 운현은 구석에서 씨익 웃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단상 위에 서 있던 현 시장 윈디아는 투표함을 들고 나온 이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드립니다. 피스나씨."

"와아아아아!!"

"오오오오!! 피스나! 드디어 해냈구나!"

"대단해요! 피스나씨! 축하드려요!!"

"이런 썅! 말이 돼!? 왜 아르토리우스씨가 패배한건데!?"

"말도 안돼!"

두 진영에서 상반된 반응이 터져나왔다. 운현은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틈을 타 하이딩을 풀고 벽에 등을 기댔다.

".....?"

아르토리우스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는 항의를 하는 다른 용병들과 달리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조용! 결과는 정해졌습니다! 공정성을 위해 시청과 각 조직의 인원들이 개표를 했으니..."

"웃기지마!"

"시장은 아르토리우스씨야!!"

용병 연맹에서 이제 들고 일어날 분위기를 보이자 쭉 잠자코 있었던 아르토리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명령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전투를 벌일 것처럼 용병들은 기세를 피워나갔고 모험가 길드의 사람들 역시 전투를 준비했다.

"피스나씨."

"...네."

긴장한 피스나가 자신을 바라보자 아르토리우스는 부드럽게 웃었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던전 도시를 위해 좋은 정책. 부탁드리겠습니다."

간단한 축하의 말을 건네고 아르토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순순히 결과를 받아들인 것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운현의 옆으로 온 아르토리우스는 문을 연 후 차분히 말했다.

"쓸데없는 이상한 짓이 효과를 발휘했나보네요."

"그러게요."

운현의 말에 피식 웃은 아르토리우스가 나가버리자 멍하니 있던 용병 연맹의 인원들은 이를 갈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와아아아!!"

"이겼다!"

"피스나씨 만세!"

"제작자 연합 만세!"

"모험가 길드 만세!!"

"운현! 이겼어! 우리의 승리야! 정말 네 덕분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운현씨! 고마워요! 이 모든 건 운현씨 덕분이에요! 운현씨 덕에..."

"그럼 다음 시장이신 피스나씨와 제작자 연합의 간부님들은 모두 시장실로 와주시고 나머지 분들은 귀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간을 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시장 선거를 종료합니다."

윈디아의 차분한 말을 끝으로 시장 선거가 종료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시장 선거가 끝나자 운현은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모두와 함께 길드로 돌아 온 운현은 길드 회관에 들어서자마자 등에 충격이 오는 것을 느꼈다.

"운현!"

"악!"

운현의 등짝을 강하게 후려 친 상아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오늘 맥주 한잔 어때?"

"맥주도 좋지만 난 좀 자야겠어..."

"그럼 숙소 들어가서 좀 쉬어. 이따 저녁에 파티할거니까 꼭 참석하라구."

"알았어."

힘겹게 말해 준 운현은 터덜터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후 침대에 앉았다. 막상 쉬려니 잠이 오질 않는 것에 뒤통수를 긁적거린 운현은 한숨을 토해내었다.

"그런데 도대체 아르토리우스는 무슨 생각이지? 뭔가 다른 속셈이라도 있었던건가...?"

인벤토리 안의 투표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운현은 그것을 꺼내어 안의 투표용지들을 바닥에 쏟았다. 깨끗하게 접혀 있는 투표용지를 하나 둘 펼쳐보며 결과를 확인하던 운현은 마지막 투표 용지를 펼쳐 본 후 당혹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이런 결과가?"

아르토리우스가 조작한 투표용지를 집계한 결과는 네표 차이로 피스나가 당선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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