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40)

crisis

 87====================

crisis

"네! 그래요!"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헤헤헤~"

오래간만에 운현과 같이 자게 된 헤스티아가 생글거리자 미야는 쓴웃음을 지었다. 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제트는 미야의 팔을 잡은 후 말했다.

"우린 한잔 더 하자. 어때?"

"음... 뭐 아직 자기도 이르고."

바제트가 미야를 잡아주자 운현은 별다른 방해 없이 헤스티아와 함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운현은 헤스티아를 끌어안았다. 자신의 품 안에 쏙 들어온 헤스티아는 그의 손길에 베시시 웃은 후 살짝 그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어? 왜?"

"음... 운현씨. 오늘은 하실 건가요?"

"하기 싫어?"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 힐더크씨와 하지 않으셨나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아니 뭐. 그렇게까진?"

힐더크와 해서 완전히 만족한 것도 아니었기에 운현은 떨떠름히 답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헤스티아는 기분 좋은 듯 활짝 웃었다.

"왜?"

"아뇨. 운현씨가 다른 여자들이랑 했지만 만족스러울 정도로 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그, 그래?"

헤스티아는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었지만 운현은 굳이 그것을 교정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운현은 다시 헤스티아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헤헤헤~"

이번에는 빠져나가는 일 없이 얌전히 그의 품 안에 있던 헤스티아는 살짝 발돋음 하여 운현의 입술에 키스했다. 달콤한 입맞춤. 힐더크와는 다르게 배려와 애정이 느껴지는 입맞춤을 즐기며 운현은 헤스티아의 옷을 천천히 벗겨나갔다. 로브가 스르륵 바닥에 떨어지자 운현은 그녀를 침대로 데려가 눕힌 후 차분히 갑옷을 벗었다.

"고작 몇일 안됐는데 이렇게 운현씨를 보는 것도 굉장히 오래간만인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런 것 같다."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인가? 운현은 빙긋 웃은 후 헤스티아의 옆으로 누웠다. 운현의 팔에 머리를 가져간 헤스티아는 운현의 가슴에 얼굴을 파뭍고 응석을 부리기 시작했다.

"히히~"

"조금 간지러운데?"

애교를 피우며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헤스티아는 운현의 목을 살짝 깨물고 핥짝거렸다. 마치 자신의 것이라는 표식이라도 남기려는 것처럼 쪽쪽 키스하던 헤스티아는 운현이 자신을 물끄러미 응시하자 이상하다는 듯 그를 마주보았다.

"왜요?"

"응? 아니. 예전보다 부끄러워하는게 많이 없어진 것 같아서..."

"솔직해지기로 했으니까요. 만약 운현씨랑 둘이 있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운현씨는 인기가 많으니까... 다른 여자들이 계속 운현씨에게 다가올거잖아요? 전 운현씨와 계속 함께 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라면야..."

"그러니까 이런 응석이나 제가 다가가는 것을 너무 막지는 말아주세요. 제 감정에 대한 대답은... 해주시면 좋겠지만 그걸 강요하지는 않을게요."

"이런 것도 감정의 강요 아냐?"

"물론 그렇긴 하지만 제 나름대로의 공략과 시위니까요. 제가 운현씨를 공략한다고 생각하시면 될거에요. 그게 싫다면 어디 한번 막아보시든가요!"

자신만만하게 웃은 헤스티아의 모습에 운현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막을 생각따위는 없었다. 이런 미녀가 순수하게 사랑을 갈구하며 달라붙는데 막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오는 여자 안막고 가는 여자 안막는 운현의 성격상 헤스티아의 대쉬를 막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굉장히 쓰레기 같기는 했지만 헤스티아나 미야, 바제트, 필레. 그 외에도 다른 미녀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좋아하는 모습을 빤히 보며 운현은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굉장한 뿌듯함.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이런 뿌듯함을 거절하면 그게 등신이었다.

'난 절대로 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겠군.'

다른 남자들 중에는 한 여자에게 꽂혀 그녀만 사랑을 하는 순정남도 있다고는 하지만 운현은 자신이 절대 그런 스타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신했다.

"자꾸 다른 생각할거에요?"

운현이 잡생각을 하며 히죽거리자 헤스티아는 볼을 부풀린 후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촉촉한 혀가 입 안을 누빈다. 그것을 즐기며 운현은 살짝 헤스티아의 탱글거리는 가슴을 주물렀다. 그의 손길이 자신의 가슴을 자극하자 헤스티아는 키스 도중 살짝 숨결을 토해내며 신음했다.

"쪼록... 흣...! 아이 참..."

운현의 손길이 점점 더 농염해지자 헤스티아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손안에 꽉 차는 알맞은 크기의 가슴을 주무르면서 헤스티아의 이마에 키스한 운현은 천천히 그녀의 옷을 벗겨나갔다. 하나씩 하나씩 단추가 풀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다가 올 쾌감을 기대하는 헤스티아의 시선이 점점 뜨거워지자 운현은 빙긋 웃은 후 그녀의 상의를 모두 벗겨낸 후 말했다.

"오늘은 네가 해줄래?"

"에?"

"아니 매번 내가 덮치는 것 같아서. 네가 마음대로 해봐."

"어... 진짜요?"

"응. 어? 설마 뭐 괴롭히는 그런건 아니겠지?"

"에헤헤헤~ 이미 늦었어요~ 바인드를 걸어버릴까~?"

"......"

"바인드는 좀 그러니까... 이걸로 살짝만 묶을게요~ 매번 운현씨가 해줬는데 또 그러면 곤란하니까 말이죠!"

헤스티아는 자신의 옷으로 운현의 팔을 묶어 침대의 볼록 튀어나온 부분에 걸었다.

"정 못참겠으면 혼자서 풀어봐요!"

"음... 이거 좀 무섭구만."

"아프게는 안해요! 아프게는!"

긴장한 운현을 달래듯 헤스티아는 그의 볼에 입맞춰주었다. 그렇게 운현의 몸에서 벗어난 헤스티아는 운현의 위로 올라간 후 자신의 치마를 벗었다. 위와 아래의 속옷만 남기고 모두 벗은 헤스티아는 팔목에 걸려 있는 팔찌로 자신의 머리칼을 가볍게 묶어 올렸다.

"머리가 길어서 좀 불편하네요. 자를까...?"

"싫어. 그 예쁜 머리를 왜 잘라?"

"음. 운현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자. 그럼 시작할게요~"

그의 칭찬에 살짝 볼을 붉힌 헤스티아는 기분 좋게 웃고는 그의 상의를 걷어 올렸다. 운현이 얌전히 있는 것에 만족하며 옷을 완전히 벗겨낸 헤스티아는 그의 상체를 천천히 핥기 시작했다.

"핥짝... 쪽..."

촉촉한 혀가 목을 핥는다. 목 여기저기에 키스하고 깨물며 장난을 치던 그녀는 운현의 몸이 조금 따뜻해지자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느끼고 있어요?"

"너 같은 애가 해주는데 안느끼면 고자지."

"후후후후~"

안그래도 그의 딱딱한 남성은 발딱 서서 자신의 하복부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것에 미소지은 헤스티아는 그의 바지와 팬티도 벗겨내고 자신의 속옷도 모두 벗었다.

"자아... 이건 어때요?"

운현의 남성을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넣은 후, 그녀는 촉촉해진 계곡의 사이로 쓱쓱 문지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계곡이 남성에 문질러지며 만들어지는 쾌감에 운현이 인상을 쓰자 헤스티아는 그의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읏..."

"어머. 벌써 그러시면 어떡해요?"

"야야. 너 성격 바뀐 것 같은데?"

"하아아아... 후후. 운현씨도 기분이 좋으신것 같은데요?"

운현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헤스티아는 그의 유두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었다. 그 달콤한 입김에 운현이 또다시 인상을 쓰자 헤스티아는 그의 유두에 살짝 입맞춘 후 혀로 굴리기 시작했다.

"으헛..!?"

유두가 빨리는 생소한 기분과 양물에서 느껴지는 기분에 운현이 깜짝 놀라자 헤스티아는 손으로 반대편의 유두를 꾹꾹 자극하기 시작했다. 혀와 손이 자신을 괴롭히자 운현은 그 쾌감에 몸을 떨었다.

"쿡쿡쿡... 자아. 자아. 넣고 싶어요?"

"응... 빨리."

"싫어요오~"

생긋 웃은 헤스티아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애액과 운현의 쿠퍼액으로 질척하게 되어 있는 그의 남성을 본 헤스티아는 입술을 핥은 후 천천히 운현의 얼굴에 자신의 가랑이를 가져다 대었다.

"자. 핥아주세요."

"...핥짝."

"흐읏...!? 하... 하악... 으으... 하, 핥지는 마세요. 제가 가버릴 뻔했잖아요!"

운현이 바로 음핵을 자극하자 부르르 몸을 떤 헤스티아는 헐떡거리며 그에게 외쳤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피식 웃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잘 느끼고 잘 반응하는 헤스티아다. 양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고개만 들어 그녀의 계곡 주변을 핥던 운현은 헤스티아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지자 배에서 느껴지는 탱탱한 감촉에 남성의 힘을 넣었다.

"우웃..."

"나도 해줘. 그냥 이렇게만 있으려고?"

"후후후후... 좋아요. 아까 잘도 괴롭혔겠다!?"

"괴롭혔다기보다는 그냥 한번 빨아줬을 뿐... 으헛!?"

운현이 말을 하는 사이 헤스티아는 그의 양물을 입 안에 그대로 넣었다. 방금 전까지 유두를 괴롭히던 질척한 혀가 양물을 감싸자 운현은 낮게 신음을 토해내었다. 그런 그의 신음에 기분이 좋아진 헤스티아는 머리를 천천히 흔들며 그의 남성을 자극해나갔다. 혀로 감싸고, 귀두 부분을 건드리며 자극하던 그녀의 애무에 운현은 이를 꽉 깨물며 사정감을 참았다.

"핥짝... 쭙... 어때요? 후후후... 이제 저도... 하으응!?"

"아아. 잘 하네. 그럼 보답을 해줘야지."

"후후후.. 읏... 그, 그럼 저도 보답을...!"

운현과 헤스티아는 서로 경쟁하듯 서로의 양물과 음부를 애무했다. 하지만 손을 쓸 수 없는 운현이 좀 더 불리했는지 그는 차오르는 쾌감을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허리를 들었다. 입 안에 그의 양물을 머금고 있던 헤스티아는 그의 남성이 자신의 목구멍을 찌르자 놀라면서도 간신히 그의 양물을 문 채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정액을 전부 받아들였다.

"하아아... 목이 끈적..."

"으으으... 내가 먼저 싸다니..."

"후훗! 패배를 인정하는가!"

"아아. 그래. 내가 졌다. 그럼 이제 이거 풀어도 괜찮지?"

"안돼요오~"

싱글거리며 헤스티아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였다. 그녀 역시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자신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남성을 몇번 쓰다듬어 준 후 그 밑의 알주머니도 정성스레 핥아 준 헤스티아는 몸을 움직여 운현의 남성을 잡았다.

"제가... 해드릴거거든요?"

"으음..."

헤스티아가 자신의 양물을 잡고 천천히 계곡의 주변에 가져가자 운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후끈거리는 계곡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남성이 천천히 음부의 굴곡진 틈을 파고든다. 그것에 헤스티아는 인상을 쓰며 겨우겨우 쾌감을 참아내었다.

"흐으으... 읏...으응...!"

남성이 천천히 계곡 안으로 파고드는 것에 헤스티아는 신음을 하면서도 몸을 내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그의 남성을 끝까지 받아들인 헤스티아는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대로 운현의 위로 쓰러졌다.

"허으읏... 으으..크흥..."

"으..쌰!"

"찔꺽!"

"히이잉!?"

헤스티아가 간신히 절정을 참아내고 있는 것을 눈치챈 운현은 한번 허리를 크게 움직였다. 내부에 꽉 차있던 남성이 움직이며 안의 깊숙한 곳을 자극하자 헤스티아는 눈을 크게 뜬 후 그대로 푸들 푸들 몸을 떨며 사정했다.

"흐그읏...흑... 으읏...내... 내가 해준다고..."

"아니. 한번 보내줘야 할 것 같아서. 어때?"

"정말...후웃...너무해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입술에서는 주르륵 타액이 흘러나오고 있다. 운현을 살짝 째려 본 헤스티아는 그의 입에 키스한 후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 아래로, 양 옆으로, 앞 뒤로 움직이며 운현에게 봉사하던 헤스티아는 운현이 움직이려 하자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 알았어."

결국 그 시선에 눌려버린 운현은 얌전히 헤스티아의 움직임을 받아들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헤스티아는 만족한 듯 손을 움직여 그의 팔을 풀어주었다.

"어? 왜?"

"손... 잡아줘요."

"뭐 그거야..."

헤스티아의 양 손을 잡아 깍지를 끼워준 운현은 그녀가 자신의 팔을 꽉 잡고 격렬히 허리를 움직이자 사정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허리를 움직이고 싶다. 당장이라도 헤스티아를 눕혀놓고 범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간신히 참아낸 운현은 그녀의 출렁이는 가슴을 보고 헤스티아를 끌어당겼다.

"아응!?"

"이대로도 할 수 있지?"

"으으... 그렇지만..."

"난 이게 좋아."

"알았어요..."

운현의 말에 헤스티아는 그의 목에 키스하며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아까보다는 격렬하지 않지만 그래도 운현을 느끼게 하려는 마음이 듬뿍 담긴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에 운현이 사정감을 느끼자 헤스티아는 다시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한번 더... 해드릴게요."

몸을 움직여 쪼그려 앉은 그녀가 격렬히 위 아래로 몸을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출렁거리는 가슴, 그리고 흐르는 땀방울과 조금 풀려버린 머리칼이 예쁜 얼굴에 달라붙은 것이 더할나위 없이 섹시하다. 시각적인 쾌감과 육체적인 쾌락에 결국 운현은 하복부에서 치밀어 오르는 사정감을 참지 않고 그대로 사정했다.

"으읏...!"

"하아아아앙!?"

자신의 안에 차오르는 정액을 느낀 헤스티아는 눈 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듯한 쾌감을 느끼며 바들바들 떨다가 푹 그의 위에 쓰러졌다. 둘 모두 숨을 헐떡이며 서로 격렬히 키스하며 절정의 여운을 즐겼다.

"하으으... 어땠어...요?"

"진짜 좋았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운현이 빙긋 웃자 헤스티아는 그의 볼에 키스한 후 속삭였다.

"이제... 운현씨가 해줘요."

"아아. 이 보답은 확실하게 해줄게."

88====================

crisis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자의 시간 효과로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재료도 없으니 함정카드는 못만들겠군."

늑대 발톱과 이빨이 없으니 가시 줄 함정도 못만든다. 운현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후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야 할 건 이거군.'

운현은 스킬창을 열어 본 후 이번에 새롭게 익힌 스킬인 훔쳐배우기 - 울프스 하울링을 보았다. 훔쳐배우기라니. 도대체 왜 이런 스킬을 익히게 된 것일까. 스킬은 5레벨당 하나씩 배운다고 했었고 필레에게 받은 도적 스킬 표를 보아도 이런 스킬은 없었다.

'이거 외에도 이상한 점은 많아.'

가장 먼저 의문을 품었고,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는 것. 바로 현재 적용중인 냉철한 이성 상태였다. 현자의 시간이 발동되면 시전되는 냉철한 이성 상태에는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잘굴러간다. 지력 상승의 효과라고 볼 수 있을까? 레벨이 올라가면 지력은 꾸준히 상승한다. 아마 100레벨을 달성하기 전에 지력은 100을 넘기게 될 것이다. 그리 된다면 재료 합성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강해지겠지. 하지만 과연 진짜 그렇게 될것인가?

'확실히 알아둬야겠군...'

지력이 올라가며 확실히 머리 회전이 빨라지는 것은 체감상 느끼고 있었다. 저레벨일때와 지금, 전투를 이끌어가는 지휘를 할 때 상황판단을 좀 더 확실히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궁금한건 왜 이 현자의 시간은 스킬창에도 나오지 않는거냐지. 패시브 스킬이라는 이유로? 하지만 한손검 숙련이나 체술 역시도 패시브 스킬인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냉철한 이성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머리의 한계라는 것일까? 아니면 정보가 적기 때문일까? 운현은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만약 이게... 누군가의 농간이라면? 누군가가 날 이용해서 모종의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누군가에게 휩쓸리고 싶은 생각따위는 없었다. 비록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즐거움과 쾌감을 느끼고 있다지만 타인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 운현이었다.

'빌어먹을.'

생각이 이어질 수록 기분만 나빠졌다. 운현은 주먹을 꽉 틀어진 후 헤스티아의 옆에 누웠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기분은 개 더러워지겠군. 그리고... 그냥 넘어갈 생각도 없고 말야.'

운현은 싸늘한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해제 되었습니다.]

[지력이 99 감소합니다.]

아침이 되자 운현은 잠들어 있는 헤스티아의 볼에 키스해준 후 씻고 갑옷을 입은 채 밖으로 나왔다. 던전에 들어가기 위한 모험자들로 북적거리는 길드 회관에 들어 선 운현은 빈 테이블에 앉아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메이드가 토스트와 우유를 가지고 나오자 그것을 씹으며 운현은 생각했다.

"흐음..."

홉고블린을 상대한다고는 했지만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사실 저번에도 홉고블린이 체력을 회복하는 것만 막았으면 그대로 진행해 홉고블린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름통이 부족하고 딜링이 딸렸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리고 어그로가 풀린 홉고블린의 공격을 그대로 맞아버렸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나름 선전했기 때문에 운현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한번 도전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레벨 20찍고 다시 도전해봐야겠군.'

지금 운현과 미야, 헤스티아의 레벨은 16이었다. 바제트만 21로 가장 높았지만 이것은 어느정도 돈을 모은 후 코어로 레벨업을 한다면 평균대를 맞출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운현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이번 전투에서는 레벨업을 목표로 싸워야겠군."

돈이 많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홉고블린의 사체를 멀쩡히 가져온다면, 그리고 덤으로 고블린과 코볼트까지 처리한다면 그럭저럭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생각하며 써야겠군.'

지갑에 있는 십골드를 보며 운현은 입맛을 다셨다. 방과 식당의 예약으로 쓴다면 이 돈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전투 한번 갔다오면 십에서 이십골드 이상은 벌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장비도 바꿨으니까 난 쓸일이 없고. 나머지는 애들 장비 맞춰야겠군.'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방어구인 나이트호크 세트와 버클러. 물론 단검이 처음 동굴에서 얻은 정체불명의 단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데미지가 안들어가는 것은 아닌 만큼 아직까지는 이 단검으로 버텨도 될 것 같았다.

"정규 딜링을 하려면 장검도 필요하지만. 뭐, 아직까지는 괜찮겠지."

단검을 쓰는 것은 단검을 주웠기 때문에 쓰는 것 뿐이지 저번에 코볼트의 검을 휘둘렀을 때 확실히 단검의 공격보다는 더 데미지가 들어가는 것 같았다. 운현은 곰곰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머? 운현 아니야. 여기서 뭐해?"

"란펠지씨."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운현을 발견한 란펠지는 생글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앞에 앉은 란펠지는 그녀 특유의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제 던전에는 잘 갔다왔어?"

"하하. 네. 그것때문에 엄청 혼났지만 말이에요."

"혼자 들어갔다고? 후후후... 다들 과보호네."

"그런가요?"

"응. 여자 모험가들 중에서도 혼자 던전에 들어가서 필요한 걸 구해오는 사람들은 꽤 있어. 네가 자주 쓰는 흰거미의 실타래 있지? 그건 채집을 통해 얻을 수 있는거라서 혼자서 던전에 들어가는 사람도 꽤 있다고. 물론 주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말야."

"그렇구나... 그런데 여긴 왠일이에요? 복장은 평소랑 좀 다른데요?"

"아아. 내가 전투복을 입은 것을 보는 건 처음인가?"

운현의 질문에 란펠지는 씩 웃었다. 그녀는 몸의 풍만하고 요염한 굴곡이 전부 드러나는 타이트한 슈트를 입고 있었다. 가슴과 하복부 부분에만 회백색의 금속으로 보호되고 있는 그 옷에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빙긋 웃었다.

"슬슬 우리 파티도 던전에 진입해야 하거든. 매번 휴식을 할 수는 없잖아."

"그렇군요. 그런데 란펠지씨는 직업이 뭐에요?"

"훗. 보면 몰라?"

"모르겠는데요?"

아무리 봐도 옷차림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예쁘다.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몸매가 드러나는 슈트만 보고 뭘 알겠는가. 운현이 궁금해하자 란펠지는 키득거린 후 말했다.

"도적."

"에엣!? 란펠지씨! 도적이었어요?"

"응. 도적 처음봐?"

"네. 저 다른 도적은 처음이네요."

"도적 자체가 귀한 직업이라 보기 힘든건 사실이지. 같은 도적끼리 잘 해보자구."

운현이 감탄하자 란펠지는 입술을 핥으며 빙긋 웃은 후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맞잡아 악수한 운현은 그녀의 옆구리에 걸려 있는 단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란펠지씨도 단검을 쓰세요?"

"응. 도적은 대부분 단검을 쓰지. 몇몇 도적 중에는 후방에서 지원을 위해 활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데미지도 별로 안들어가고 잘못했다간 어그로가 끌려서 정말 숙련된 사람 아니면 결국은 단검이야."

"그렇구나..."

"후후후... 다음에 도적의 전투법에 대해서 가르쳐줄게. 아직 초보 도적같은데 함정을 설치하고 스틸을 쓰는데도 많은 요령이 있다구."

"그거 꼭 들어보고 싶네요."

"좋아. 그럼 다음에 보자."

"아! 란펠지씨.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요."

"응? 뭐?"

"2계층에서 획득 가능한 재료 중에 싼거 없나요? 하나만요."

"흐음... 어지간한건 거의 다 팔았는데... 이건 어때? 붉은 맨티스의 눈."

"그것도 재료에요?"

"아아. 응. 붉은 멘티스의 눈은 보석같아서 여기저기 많이 쓰이는 재료야. 문제는 너무 많이 나와서 가격이 얼마 안한다는거지."

란펠지의 손에 들려 있는 붉은색 보석같은 돌멩이를 바라보며 운현은 고민했다. 여러면으로 커팅되어 있는 보석같지만 가격은 싸다고 하니 일단 하나 구입해두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얼마에요?"

"1골드만 줘."

"재료하나에!? 싸다면서요!"

"이정도면 싼건데?"

운현의 말에 란펠지는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 그를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봐. 운현. 붉은 멘티스의 눈이 아무리 쉽게 얻을 수 있고 쉽게 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다른 재료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지.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너도 2계층에 들어가서 붉은 멘티스를 잡아보면 알거야."

"끙..."

란펠지는 가격을 깍아 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강철 실, 그리고 샤벨 타이거의 송곳니. 이 두가지 재료는 2계층에서 쓰일 정도의 재료이니 다른 재료를 넣고 어중간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보다 차라리 비슷한 등급의 재료를 사서라도 합성을 제대로 해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운현은 끙끙대며 고민하다가 결국 1골드를 그녀에게 지불했다.

"후후후~ 고마워. 그래도 사기치지는 않았어. 길드에서 파는 것보다 싸게 주는 거니까 안심해."

"길드에서도 재료를 파나요?"

"응? 응. 물론 개인 거래 하는 것보다는 비싸지. 수수료가 2할 정도 들어갈걸?"

"그렇군요. 가급적 개인 거래를 해야겠네요."

"그 대신 개인 거래로는 얻기 힘든 재료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 잘 활용해보라고. 그럼 간다~"

파티원들이 왔는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멋진 갑옷을 입은 여인 네명과 함께 던전 입구로 향했다.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함정을 설치하는데도 요령이 필요한가...?"

뭔가 다른 요령이나 노하우가 있다면 배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운현은 다음에 란펠지를 만나면 다 제쳐두고 그것부터 배워야겠다 생각한 후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그나저나 단검을 쓴다라... 장검 써도 꽤 데미지가 들어가던데. 흠. 뭐 내 전투법이 다른 도적들이랑은 다르다고 하니...'

"운현!"

"벌써 나왔어?"

"잘 잤어요?"

"응. 다들 준비됐어?"

잡 생각은 끝. 이제부터는 던전에 들어갈 시간이다. 운현이 담담히 말하자 그의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왜?"

무언가 생각난 듯 미야는 손뼉을 치고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나랑 데이트 하기로 했었잖아..."

"아차! 그랬지. 그럼 오늘은 오후까지만 하고 돌아올까? 밤에 데이트 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우우... 같이 자는 것도 포함?"

기대감이 가득 담긴 눈으로 미야가 바라보며 묻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헤스티아는 어제 해줬고 바제트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기에 운현은 별 부담없이 답했고 그의 답에 미야는 활짝 웃었다.

"응! 그렇게 하자!"

"그럼 나도 그렇게 하자. 내일도 오후까지만 하고 저녁에 데이트 하는걸로. 어때?"

"으음... 그, 그러지 뭐."

"후후후... 내일밤을 기대하며 열심히 싸워야겠군."

89====================

crisis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봐. 나 재료 좀 받아가지고 올게."

사무소가 열리자 운현은 어제 잡은 늑대들과 다이어 울프의 재료를 받기 위해 사무소로 향했다. 필레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길드의 사무소에 앉아 있는 것은 다름아닌 칼리아스였다. 뚱한 얼굴로 앉아 있는 그녀를 본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칼리아스. 필레는요?"

"음? 아아. 운현씨인가요?. 필레는 구조 요청 들어와서 거기 갔어요. 그래서 제가 땜빵하는거죠. 으...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술을 마시지 않는건데 ... 아. 재료 찾으러 왔어요? 자."

필레를 찾는 운현을 향해 칼리아스는 한숨을 푹 내쉬고 주머니를 꺼내어 운현에게 주었다. 늑대 이빨과 늑대 발톱이 담겨져 있는 두개의 주머니와 다이어 울프의 이빨과 발톱이 담겨져 있는 작은 상자를 챙긴 운현은 그녀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돌아왔다.

"필레 혼자 간거에요?"

"그럴리가요. 길드장님이랑 펠리시아씨랑 필레랑... 던전 안에 있는 다른 길드원까지 같이 간거니까 한 열명은 되지 않을까요? 4계층의 구조 요청이라 새벽에 바로 출발했다고 하던데요?"

"허어... 위험하지 않을까요?"

운현이 걱정스레 말하자 칼리아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필레랑 펠리시아도 그렇지만 길드장님이 함께 가는 이상 5계층까지는 문제 없다구요. 그리고 다른 길드원도 5계층을 탐험할 수 있을 정도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럼 다행이네요."

"네. 오늘은 던전에 가시는 건가요? 잘하면 마주칠 수도 있겠네요. 잘 다녀오세요~"

느긋하게 웃으며 배웅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운현은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자. 그럼 가볼까?"

그대로 던전에 들어 온 운현 일행은 곧장 홉고블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마주친 고블린들을 어렵지 않게 물리치고 고블린 부락이 있는 곳 앞에 도착한 운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 그런데 여기에 홉고블린이 있으려나?"

"홉고블린이 있는 부락은 동굴이 있는 곳에 위치해. 어제 잡기는 했지만 새로운 홉고블린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한번 가보자."

"음. 누가 안잡았으면 좋겠네. 그거 찾는 것도 일인데."

"그러게 말야. 그럼 내가 고블린들 유인해올게."

"응."

바제트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입구를 통해 빠져나왔다. 하지만 몬스터들을 끌고오는 것처럼 그리 빠르지 않았다. 여유있게 걸어 온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누가 먼저 턴 모양인데? 아무것도 없어. 천막만 있더라."

"어제 우리가 잡고 고블린들이 자리를 안잡은게 아닐까?"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천막들은 멀쩡해."

어제 홉고블린과 싸울때 천막들이 다 부숴졌던 것을 떠올리면서 바제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군. 다른 곳을 찾는 수 밖에."

"다른 곳 중에 내가 아는 곳이 있으니까 거기로 가보자."

바제트가 앞장을 서며 운현 일행은 다른 곳의 고블린 부락으로 향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고블린 부락의 흔적이 발견되자 운현은 주변을 둘러본 후 바제트에게 물었다.

"여기야?"

"응. 들어가볼까?"

"음. 아냐. 내가 가볼게."

하이딩을 써서 정찰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블린의 수가 얼마나 될지도 모르고 또 부락 안에 함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운현의 말에 바제트는 입을 다물고 생각하다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할텐데... 괜찮겠어?"

"괜찮아."

"조심하세요.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쳐야 해요! 알았죠?"

"응응. 너무 걱정 말라고~"

싱긋 웃으며 운현은 일행들에게 떨어져 적당한 위치에 도착하자 하이딩을 걸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풀을 헤치고 들어간 그는 어제 보았던 지형과 비슷한 곳에 천막들이 쳐져 있고 고블린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누가 공격하지 않은 것인지 여덟 마리의 고블린이 있는 것을 본 운현은 끝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 안으로 들어간 운현은 그 끝의 넓은 공간에서 자고 있는 홉고블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흠...'

지금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자는 와중에 냅다 심장을 찔러버리면?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바깥의 홉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다. 괜히 까불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운현은 조용히 부락을 빠져나왔다.

"어땠어?"

운현이 여유있게 나오자 미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그에게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해 준 운현이 바제트에게 시선을 돌렸고 그녀는 빙긋 웃은 후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슬슬 준비할까?"

고블린 부락의 입구에 함정을 설치한 후 기름을 잔뜩 뿌렸다. 그가 준비를 마쳤을 때 쯤 바제트가 뛰어 나와 후방에 자리잡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나올거야!"

"헤스티아! 나오면 바로 파이어 볼트 날려!"

"네!"

그녀가 주문을 외우며 기다리는 동안 바제트를 쫓아 온 고블린들은 포효하며 달려들다가 그대로 함정에 걸려버렸다. 여덟마리 고블린들이 기름먹은 실에 감기자 운현은 날카롭게 외쳤다.

"발사!"

"화르르르륵!"

"케에엑!"

"카르르륵!"

불타오르는 고블린들을 향해 바제트가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화살과 불에 데미지를 입던 고블린들은 함정이 모두 불타자 이글거리는 눈으로 걸어왔지만 운현들의 공격을 받으며 결국 얼마 가지 못해 전부 쓰러졌다.

"이야. 이거 금방 끝나겠는데?"

확실히 파티의 딜링 능력이 늘어났다. 미야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추가 데미지 공격과 운현이 힘을 올려 들어가는 딜링, 그리고 헤스티아가 좀 더 빠르게 파이어 볼트를 쓰고 추가적으로 화살데미지까지 들어왔다. 손쉽게 고블린을 잡게 된 운현 일행은 의기양양하게 고블린 부락으로 향했다.

부락에 도착하자마자 공략대로 각 천막 안을 뒤져 코볼트 머리가 담겨 있는 항아리를 깨고 그 안의 내용물을 모두 태운 운현은 저번과 같은 방식으로 동굴 앞에 불을 질러 홉고블린을 꾀어내었다.

"크아아악!!"

"스틸!"

연기에 기침을 하며 홉고블린이 나오자 운현은 풀 스트립을 쓰는 대신 스틸을 걸어 홉고블린의 무기를 빼앗았다. 묵직한 해머가 잡히자 운현은 온 힘을 다시 부락의 입구쪽을 향해 던져버렸다. 힘이 상승한 덕분에 해머가 꽤나 멀리 날아갔고 홉고블린은 멍청히 서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분노했는지 운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어딜!!"

하지만 그 공격은 미야의 킥에 의해 막혀버렸다. 팔의 관절을 공격해 그것을 빗겨나게 한 미야는 운현의 앞으로 간 후 외쳤다.

"지시 부탁해!"

"일단 공격! 헤스티아! 바인딩 준비해!"

"응!"

"알았어요!"

"바제트! 인탱글 걸어!"

"오오!"

운현의 지시에 모두가 움직인다. 솟아난 덩쿨이 자신의 몸을 조여오자 홉고블린은 포효하며 그것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 수록 자라난 덩쿨은 홉고블린의 몸을 단단히 조여나갔다.

"하압!"

"커억! 커억!"

방어력 무시 데미지 탓인지 미야의 공격 한방 한방이 꽂힐 때마다 홉고블린은 꽤나 충격을 받는 듯 보였다. 그것을 보며 운현 역시 갑옷의 빈틈을 향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카아아아!!"

인탱글의 지속 시간이 풀리자 홉고블린은 분노하며 양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공격은 운현과 미야가 뒤로 조금 물러나는 것만으로 피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주문을 완성시킨 헤스티아는 홉고블린에게 바인딩을 걸었다.

"캬악!? 캬아아아아!!"

"성공했어요! 다시 공격해요!"

저항하지 못하고 바인딩에 구속된 홉고블린이 몸을 꿈틀거리며 포효했지만 소용없었다. 운현과 미야, 바제트는 다시 홉고블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바인딩의 지속효과가 끝났을 때 운현은 미야에게 외쳤다.

"가시 줄 함정 설치했어! 뛰어!"

"알았어!"

홉고블린에게 달려가 그 복부를 걷어찬 후 반동을 이용해 크게 뛰어 헤스티아의 옆으로 이동한 미야는 홉고블린이 시뻘겋게 눈을 뜨고 달려오자 히죽 웃었다.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홉고블린이 가시 줄 함정에 구속되자 운현과 미야, 바제트는 다시 집중공격을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엉!!"

꽤나 데미지를 깎은 덕분일까? 어제보다 빠르게 홉고블린은 몸을 크게 비틀며 천막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천막을 아무리 뒤져도 체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항아리는 없었다. 그것에 절망한 듯 홉고블린의 어깨가 축 늘어지자 운현은 단검을 들며 외쳤다.

"이대로 가자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추가 스탯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확실히 공략법을 알고 모르고가 중요하구나."

"이정도면 공략을 몰라도 잡을 수 있었겠는데? 우와... 장비 몇개 바꾸고 인챈트 한것만으로 이렇게 쉽게 잡다니."

별 무리 없이 홉고블린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에 만족하며 운현이 말하자 미야는 어깨를 으쓱인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광석 안구해도 괜찮아?"

"응. 동굴이나 한번 뒤져보고 올게. 잠깐 기다리고 있어."

아까 전에 보았지만 혹시 보물상자가 있나 싶어 안을 뒤져 본 운현은 보물상자가 없는 것에 아쉬워하며 그대로 나왔다. 도란도란 앉아 빵과 물을 꺼내놓는 그녀들의 틈에 앉은 운현은 MP가 모두 회복되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정도면 홉고블린을 계속 잡아도 괜찮겠는데?"

비록 어제 늑대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홉고블린을 잡은 것만으로 레벨업이 되었다. 그 말은 홉고블린을 계속 사냥하면 어느정도까지는 쉽게 레벨업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그것도 좋겠네."

"문제는 홉고블린이 있는 부락을 찾는 거지만 말야."

"레벨 20때 생체열 감지 마법을 익히면 그래도 쉽게 찾을 수 있을텐데... 아쉽네요."

"어쩔 수 없지. 이 근처 돌아다니면서 홉고블린을 찾아보자. 탐색은 누가 할래?"

"미야와 내가 하면 될 것 같은데? 드루이드의 특수 능력으로 주변의 지형을 파악할 수 있거든. 미야. 괜찮겠어?"

"응? 뭐 그정도라면야 어렵지 않지."

바제트의 동물적 감각과 드루이드인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지형을 판단해 탐색하겠다는 바제트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을 앞으로 내세워 한참 주변을 뒤지던 운현 일행은 또 하나의 고블린 부락을 발견했다.

"여기 같은데..."

"그럼 내가 들어가볼게."

"괜찮겠어? 너보다는 내가 더 빠른데 내가 가는게 낫지 않아?"

"어!? 너희!"

바제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을 때 수풀에서 다섯 여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셋은 아는 얼굴이고 둘은 모르는 얼굴이다. 운현은 아는 얼굴 중 하나를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아르 아냐?"

"어... 안녕. 혹시 여기 홉고블린 잡으러 온거야?"

"응."

"이런..."

운현의 말에 아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도 잡으러 왔는데..."

"우리가 먼저 왔으니 우리꺼야."

"끙... 좀 양보해주면 안돼? 나랑 루티랑 헤라는 상관없지만 이 두명은 퀘스트 때문에 홉고블린을 잡아야 하거든."

"아, 안녕하세요. 사제 바리아나라고 합니다. "

"안녕하십니까. 파르티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성기사 미리나라고 합니다.."

아르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두 여인이 앞으로 나왔다. 한명은 백색 긴 머리에 사제복을 입은 여인, 다른 한명은 진한 남보라색 머리에 중갑을 입고 있는 성기사였다.

"파르티 교단의 의뢰로 홉고블린을 잡으러 왔거든. 양보 좀 해주라. 우리도 다른 곳 몇군데나 뒤졌는데 지금 허탕을 쳐서..."

"끙... 어쩌지."

생판 남이 양보해달라고 하면 개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하겠지만 아르와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꽤나 신세를 졌다. 운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일행들에게 묻자 헤스티아와 미야, 바제트는 별다른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파르티 교단의 퀘스트라면 양보해드릴게요."

"음. 성직자들이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중요한 퀘스트라는 것이겠지. 양보한다."

"상관없어요. 저희는 퀘스트 때문이 아니잖아요? 정 뭐하면 코볼트 잡으러 가도 괜찮죠."

셋이 허락하자 운현은 빙긋 웃은 후 아르를 보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양보해 줄 분위기라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우리가 들어갈게.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고블린의 코어와 사체는 그냥 줄게. 그리고 홉고블린의 무기도. 어때? 여기서 좀 기다려. 사제님이랑 성기사님의 레벨이 높으니까 금방 잡을 수 있을거야."

"필요한게 홉고블린의 사체뿐이야?"

"사체와 코어. 맞나요? 사제님?"

"네. 맞아요."

그녀의 대답에 아르는 운현을 보았고 운현은 히죽 웃었다. 그정도라면 양보할 가치가 있다.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운현 일행에게 고개를 숙인 후 말했다.

"그럼 들어가볼게. 고마워."

"고맙습니다."

"파르티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아르의 파티가 안으로 들어가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약속한 것을 받으려면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가 자리에 앉자 다른 여인들도 자리를 깔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고블린이라도 좀 나와주면 좋으련만."

"그러게요. 기다리는 시간이..."

"아아아아악!!"

"....!!?"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이 비명이 터져나왔다. 운현을 비롯한 여인들은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르 일행이 들어간 곳을 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예감이 안좋은데..."

레벨이 높다는 성기사와 사제가 함께 했는데 들어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비명이 터진단 말인가. 운현 일행이 당황하는 동안 입구를 향해 네 여인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허억...헉..."

사제의 복부에서는 피가 주륵주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간신히 밖으로 나오자 성기사는 바제트를 바라보며 외쳤다.

"부탁입니다! 힐을! 저 혼자만으로는 감당이 안돼요!"

"예? 아. 예!"

사제의 상태를 본 바제트는 허겁지겁 그녀에게 힐을 걸었다. 아르 역시 주머니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사제에게 먹이고 상처를 치료했다.

"야..."

그들이 그러는 동안 운현은 부락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야!! 아르!!"

"제길! 대충 치료 끝났으면 도망쳐!!"

"제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겠습니다! 여러분은 빨리 도망치십시요!!"

성기사는 다급하게 외쳤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목소리다. 그것에 헤스티아와 미야, 바제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운현은 다시 외쳤다.

"저거 뭔데!?"

부락의 입구에서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다. 상자다. 상자가 미끄러지듯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에 운현은 당황하며 외쳤고 아르는 성기사가 사제를 들쳐업자 강하게 외쳤다.

"저게 바로...!"

"카아아아아아아아!!"

꽤나 가까워진 덕분에 상자의 모습이 보인다. 윗부분이 박살나버린 상자. 부숴진 보물상자. 운현은 아르에게 들었던 던전의 금기를 떠올렸다.

'절대 보물 상자를 부수지 마라.'

"미믹이야!!"

아르의 절망에 가득 찬 외침과 동시에 상자의 부숴진 틈에서 검은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90====================

crisis

"씨발!"

아르의 외침을 들은 운현은 곧장 미믹의 앞에 강철 실을 사용해서 함정을 설치했다. 검은 기운이 뭉쳐지는 것을 본 모두가 겁에 질린 사이 운현은 주변을 보며 일갈했다.

"성기사! 방어해!"

"아. 알겠습니다!"

그의 외침을 받은 성기사는 뭉쳐진 검은 기운이 터져나오자 황급히 앞으로 나서 방패를 들었다. 두터운 방패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기사가 뒤로 쭉 밀려나자 운현은 날카롭게 외쳤다.

"헤스티아! 바인딩!"

"네!"

덜덜 떨면서 주문을 완성한 헤스티아가 바인딩을 걸져 미믹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그 틈을 노려 운현은 주변을 보며 외쳤다.

"루티! 튀어! 범위에서 떨어지면 길드에 구조 요청 보내!"

"뭐!?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 끌어볼테니까!"

아까 전 미믹이 움직이는 속도를 생각하면 그냥 튀어봤자 후방을 공격 당할 것이 뻔했다. 그럴바에는 최대한 버틸만큼 버티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도 1계층이고 입구와 그리 멀지 않은 만큼 길드의 지원만 기다리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운현은 루티에게 외쳤고 그의 외침에 루티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거절했다.

"하지만!"

"말 안들을래!? 당장 꺼지라고!! 빨리 빠져서 길드 간부나 데려와!!"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탱커인 미야나 헤라, 미리나를 뺄 수는 없었고 그나마 방어가 가능한 아르를 뺄 수도 없었다. 거기에 헤스티아와 바제트는 바인딩과 인탱글로 적을 구속할 수 있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 가장 쓸모가 없는 것이 루티였기에 그녀에게 그렇게 외친 운현은 빠르게 머릿 속으로 계산을 한 후 다시 외쳤다.

"빨리!!!"

"흑... 아, 알았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길드 입구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삼십분. 느긋하게 걸었을 때 이정도니까... 대충 이십분 정도만 버티면 살아날 수 있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해야 한다. 운현은 힐끔 뒤를 보고 검을 들고 창백한 얼굴로 미믹을 노려보는 아르에게 말했다.

"뭐야!? 저거!?"

"으으... 몰라! 어떤 미친놈이 보물상자를 부쉈나봐!"

아르 역시 당혹스럽고 현 상황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나보다. 그녀의 외침에 운현은 빠르게 생각한 후 성기사 미리나에게 외쳤다.

"미리나! 사제는 아르에게 넘겨! 당신은 우리랑 같이 시간을 번다!"

"아, 알겠습니다!"

"아 젠장! 이게 잘하는 짓인가 모르겠네!"

미믹의 위압감에 눌리면서도 운현의 머리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그냥 튀는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의 생각은 미믹이 바인딩에서 풀려나 다시 검은 기운을 모으기 시작하자 곧 지워져버렸다.

"일단 뒤로 물러나!"

함정으로 시간을 벌자. 운현은 강철 실의 함정만 믿고 모두에게 외쳤고 미믹이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모두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나는 것을 본 미믹은 스르륵 앞으로 이동했고 그 순간 함정이 발동하여 미믹의 몸을 감쌌다.

"촤악!"

흰거미의 실타래로 함정을 설치했을 때와는 다른, 강철의 작은 사슬이 솟아올라 미믹의 몸을 구속했다. 그것에 당황한 미믹이 꿈틀대는 것을 본 운현은 아르가 사제를 받고 뒤로 빠지자 아르에게 힐링포션을 던진 후 말했다.

"빨리 깨워! 사제가 있어야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어!"

"으, 으응!"

딜링 따위는 포기한지 오래다. 버텨야 한다. 운현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 후 외쳤다.

"미리나! 당신 레벨 몇이야!?"

"백 십입니다!"

"그정도면 괜찮겠네! 당신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기술로 버텨!"

"알겠습니다!"

처음 본 사내의 명령에도 미리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서 방패를 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운현은 바제트에게 말했다.

"바제트! 쟤가 움직이면 인탱글 건다! 헤스티아도 바인딩 준비해! 어떻게든..."

"캬야아아아아아!!!"

사슬이 뚝뚝 끊어지기 시작하자 운현은 이를 갈았다. 흰거미의 실타래로 만든 함정보다 더 빨리 풀리는 것 같았다.

'미믹이 강해서 그런거겠지.'

2계층을 활동하는 모험가들도 전멸시킬 정도의 강력한 몬스터인 미믹인만큼 고작 16레벨에 지나지 않는 운현의 함정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탱글!"

사슬이 모두 풀리고 미믹이 앞으로 이동하자 바제트는 빠르게 인탱글을 시전했다. 바닥에서 피어난 덩쿨이 미믹의 몸을 감쌌고 그 순간 미믹의 몸에서 어두운 기운이 폭발하듯 주변을 향해 터져나갔다.

"꺄악!"

"아아악!"

"큭!!"

"젠장!"

모두를 향한 범위 공격이다. 폭발한 기운은 줄기가 되어 모두를 후려쳤다.

운현은 황급히 버클러를 들어 공격을 막아내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 공격에 모두 맞은 모양이었다. 모두가 그 공격에 주저앉아 고통스러워하자 운현은 방패로 막아 그나마 멀쩡한 성기사에게 외쳤다.

"인탱글 걸린 사이에 회복시킨다! 미리나! 어그로 좀 끌어! 아르! 사제는 어때!?"

"....."

바리아나를 회복시키느라 무방비상태에서 공격을 맞은 아르는 바닥에 쓰러진 채 꿈틀거리고만 있었다. 꽤나 강한 충격을 받은 그녀를 보며 이를 간 운현은 어두운 기운에 맞지 않은 바리아나에게 외쳤다.

"젠장! 정신차려! 뒈지기 싫으면 빨리 모두에게 힐 걸어!"

"으으... 파. 파르티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매스 힐!"

운현의 거친 외침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사제 바리아나는 힘겹게 손을 뻗어 모두를 회복시켰다. 팔의 고통이 줄어들자 운현은 다시 버클러를 들었다.

"헤스티아! 바인딩은!?"

"으... 자, 잠시만요!"

덩굴이 거친 소리와 함께 끊어지기 시작한다. 운현은 이를 갈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매스 힐로도 모두 치료할 수는 없었는지 대부분은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젠장...! 그냥 튈걸. 괜히 깝쳤네...'

뭐 잘났다고 나서서 지시를 한건지. 운현은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에 이를 갈면서 최대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음? 이건...'

괜찮은 스킬 없나 하고 스킬창을 열어 본 운현은 눈을 크게 떴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훔쳐배우기 - 검은 채찍 : 어둠의 힘을 이용하여 적을 공격한다. 타격시 적에게 데미지를 줌과 동시에 기절시킨다. 기절 시간은 1레벨당 1초로 계산한다.]

훔쳐배우기의 스킬이 달라졌다. 분명히 울프스 하울링이었던 스킬이 다른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스킬 설명이 달라진 것에 운현은 인탱글이 풀려나자 더 볼 것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촤아악!"

운현의 뻗은 손에서 터져나간 검은 기운이 인탱글에서 풀려난 미믹의 몸을 후려쳤다. 그 공격을 받은 미믹이 충격을 받았는지 뒤로 날아가자 운현을 비롯한 모두는 그 공격의 위력에 당황했다.

"바, 방금 뭐한거야!?"

"나도 몰라! 그딴거 물어보지 마! 지금이 찬스다! 튀자!"

운현의 레벨은 16. 적어도 16초는 벌었다고 볼 수 있는 셈이었다. 미믹이 나가 떨어진 바로 앞에 함정을 설치한 운현은 의문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보는 모두를 향해 외쳤다. 그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인 모두는 몸을 뒤로 돌리고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헉헉...!"

한참을 도망친 덕분에 미믹에게서 꽤나 떨어졌다. 미믹이 보이지 않자 운현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MP가 거의 바닥이 났어.'

가득 차 있던 MP가 이제 스틸 한두번만 하면 다 없어질 정도로 사라진 것에 운현은 이를 갈았다. 저 미믹에게 충격을 줄 정도로 강력한 스킬이지만 그만큼 MP소모가 큰 모양이다. 운현이 스킬창과 스탯창을 보는 동안 루티와 바리아나에게 힐링포션을 먹인 아르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방금 뭐했던 거야?"

"숨겨놨던 나의 흑염룡을 일깨웠다! 왜! 뭐!? 쓸데없는거 묻지 말고 정신 챙겼으면 어서 튀... 이런 씨발!"

아르의 질문에 대충 대답해 주려던 운현은 뒷편에서 스르륵 나타난 미믹을 발견하고 기겁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단 말인가. 그의 외침에 아르 역시 당황하며 검을 들었다.

"한번 더 못써!?"

"못해!"

"젠장...!"

"커어어어어어엉!!"

미믹의 분노에 찬 포효를 들으며 운현은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가 이를 갈며 생각을 할 때 미믹은 아까의 범위공격을 다시 시전했다.

"퍼버버벅!"

"큭!!"

아까보다 더 빠른 공격이다. 버클러로 막아낸 운현은 그 공격에 맞은 모두가 쓰러져버린 것에 당황했다.

"아니 탱커가 나보다 먼저 쓰러지면 어떡하냐!?"

이미 기절해버렸는지 헤라와 미리나, 미야는 그의 외침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운현은 이를 갈며 방패를 들어 올린 후 레벨업으로 획득한 포인트를 모두 체력에 투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그거 쓰지 말고 하이딩 쓰고 튈걸 그랬네..."

혼자만 몸을 빼는 것이라면 하이딩으로 튈 수 있었을텐데 괜히 까불었다. 역시 사람은 나서는게 아니다. 라고 새삼스럽게 생각한 운현은 미믹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지금 쓸 수 있는 건 스틸 뿐. 하지만 스틸로는 데미지는 못주고... 저 녀석이 뭘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다가 지금 그거 써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일반 공격해봤자 씨알도 안먹힐게 뻔하고... 함정은... 기름 함정 - 폭이라면 어떻게든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맞추는게 더 힘들겠다. 그리고 헤스티아가 쓰러졌으니 쓸수도 없고... 아 젠장! 길드에서 지원은 언제 오는거야!?'

머리를 열심히 굴려 보았지만 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그가 생각을 하는 동안 미믹은 다시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운현은 긴장하며 왼쪽 팔을 들었다.

"큭..."

왼팔이 움직일때마다 욱씬거린다. 하긴, 저 미믹의 공격을 받아냈는데 아직 부러지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다.

"촤아악!"

또다시 어둠의 줄기가 날아온다. 그것을 버클러로 막아낸 운현은 HP가 훅 빠지는 것을 보며 이를 갈았다. 버클러를 든 왼팔에 아프다 못해 이제는 감각도 없다. 움직여지지도 않는 왼팔을 축 늘어트린 채 운현은 단검을 떨군 후 오른손을 미믹에게 겨눴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발버둥은 하나 뿐이겠군. 좋다. 할 수 있는 발버둥은 다 쳐주마..."

이제는 거의 포기 상황이다.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봐야 하나 정도 밖에 없는 운현은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미믹을 노려보았다.

"커어어...!!"

운현이 단검도 떨군 채 손을 내민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믹은 어두운 기운을 풀고 운현에게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그의 바로 앞까지 이동한 미믹의 부숴진 구멍에서 어두운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운현은 그 안을 노려보며 씩 웃었다.

"도적놈은 도적놈답게 마지막을 이걸로 장식해야겠지. 어디... 넌 뭘 가지고 있는지 볼까!?"

운현은 이를 드러낸 후 싸늘히 외쳤다. 어차피 이판 사판이다. 그냥 죽느니 최대한 발버둥이라도 쳐보자. 라는 생각에 그는 남아 있는 모든 MP를 사용했다.

"스틸!!"

91====================

crisis

"........."

운현은 스틸이 발동되고 난 이후의 상황에 아무런 말도 못했다. 운현도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죽느니 발버둥이나 쳐보자고 한 짓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줄이야.

"...이게... 말이 되나?"

허탈감과 당혹감이 가득 찬 목소리로 그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사라져? 스틸 썼다고 사라진다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엄청난 위압감을 마구 뿜어대던 상자는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것을 보며 운현이 황당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하하..."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았다. 운현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하하!! 난 살았어! 살았다고...! 이런 씨발!?"

"쿠오오오오오오!!"

운현이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환호하는 순간 수풀에서 상자 하나가 더 튀어나왔다. 운현은 그것을 보며 두렵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어떤 미친 새끼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미믹이 나온다? 이정도면 실수가 아니라 계획이다. 운현은 미믹이 슬금슬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며 허탈감에 빠져 키득거렸다.

"하아... 어쩐지 내 인생이 잘 풀린다 했어."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미믹을 바라보았다. 아까의 상자와 달리 상자 윗부분이 완전히 박살나 있는 미믹은 상자 안의 검은 기운을 숨길 생각도 없이 넘실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운현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씨. 역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현자의 시간이 있으면 뭐하나. 가장 먼저 시도했어야 할 걸 안했는데. 역시 인간은 깝치면 안돼."

그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미믹은 검은 기운을 점점 강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운현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아. 와줘."

그의 말이 끝난 순간 빛의 문이 열렸다. 그 빛의 문에서 튀어나온 상아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이곳의 위치를 보고 운현에게 다급히 외쳤다.

"여긴 1계층이잖아!? 운현!? 카를로스는!?"

"......."

하지만 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앉아 있을 뿐 이었다. 주변에 카를로스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상아는 씨익 웃은 후 운현에게 달려가 그를 꽉 끌어안았다.

"아아아아!!! 잘했어! 아이고 이쁜 것! 어떻게 알고 이렇게 바로바로 소환해주냐!? 누나가 나중에 좋은 거 해줄게!!"

그를 끌어안은 채 입술과 볼, 얼굴 여기저기에 사랑스럽다는 듯 쪽쪽 키스해 준 상아는 운현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녀는 떨떠름한 얼굴로 다시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 상자.

그것을 본 그녀는 어처구니 없어하며 안고 있던 운현을 풀어낸 후 광검의 날을 뽑았다.

"아니!? 어떤 미친 새끼가 미믹을 만든거야!?"

그녀의 손에 들린 광검이 빛을 발하며 미믹에게 움직이는 순간 운현은 긴장감이 풀려 털썩 기절해버렸다.

"이걸로 끝인가요?"

"하아. 새벽에 이게 뭐하는 짓이래. 빨리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

상아는 광검의 날을 해제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마리의 맨티코어의 시체를 마석에 담는 길드원들에게 주변을 탐색해 구조 요청자를 찾으라고 명령한 후 복부에 큰 상처가 나 있는 모험가에게 다가갔다.

"너무 늦었나보네."

"흐윽...흣..."

힐링을 아무리 해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는 어쩔 수 없다. 상아는 안타까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무슨 생각으로 4계층까지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모은 모든 재산은 당신의 가족들에게 보내줄게. 그러니까..."

"사, 살려줘... 살려줘..."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험가를 보며 상아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1, 2계층이라면 모를까 3계층 이상부터는 시간싸움이다.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구조를 위해 달려왔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펠리시아."

"불가능해요. 엘릭서라도 있지 않는 이상에야..."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전설의 영약. 신이 필멸자의 죽음에 안타까워 흘린 눈물. 운명마저도 바꿀 수 있는 최고의 영약 엘릭서를 언급하는 펠리시아의 말에 상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복부의 상처에서 주르륵 선홍색 내장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상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남길 말은?"

"큭... 나... 나 죽는...?"

"그래. 미안하다."

"제길... 싫어... 죽기 싫어..."

"죽음을 맞이하기 싫었으면 안전한 곳에 있어야지. 장비나 실력을 봐도 4계층은 무리일 것 같은데..."

"아르...아르토리우스..."

"뭐?"

생각치도 못한 이름에 상아와 펠리시아, 그리고 주변에서 정리를 하던 필레는 딱딱히 굳었다. 갑자기 왜 아르토리우스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상아는 눈을 빛내며 죽어가는 모험가에게 다급히 물었다.

"뭔데!? 아르토리우스가 왜!?"

"그... 쿨럭! 그 개년이... 커억...으으... 내... 내 남편을... 협박...우우욱!"

"젠장! 펠리시아! 방법 없어!?"

"어, 없어요! 아까부터 계속 힐링을 걸고 있었다구요!"

"빌어먹을! 그러니까 사제 좀 키우자니까!!"

상아는 빠득 이를 갈며 품에서 힐링포션을 꺼내 그녀의 입 안에 흘려 넣었다. 하지만 모험가는 그것을 조금도 마시지 못한 채 토해내고 상아의 팔을 꽉 잡은 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레오를... 납치... 4계층에서... 쿨럭! 쿨럭! 구조 요청을..."

"아르토리우스가 네 남편을 납치하고 협박했단 말야!? 4계층에서 구조요청을 하라고!? 왜!?"

"커억...윽...레오를...구해...쿨럭! 으윽...!"

모험가의 얼굴에서 생기가 점점 사라진다. 그녀의 눈이 감기고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힘이 빠지자 상아는 허탈한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만요... 그럼 이게... 아르토리우스의 계략이란 말이에요!?"

"4계층의 구조를 위해서는 간부들이 셋 이상 움직여야 해. 필레! 지금 길드에 누가 있지!?"

"에리스씨랑 칼리아스씨요! 나머지는 5계층과 다른 왕국에 출장을...!"

"망할...!!"

여기서 최대한 빨리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두시간은 넘게 걸린다. 필레와 펠리시아, 그리고 상아의 얼굴이 창백해졌을 때 다른 모험가들의 시체를 찾은 길드원들이 그녀들에게 달려왔다.

"길드장님! 여기 시체가 있습니다!"

"세구 모두 찾았습니다!"

"젠장... 펠리시아! 넌 쟤들 챙겨서 빨리 복귀해! 필레! 넌 나랑 같이 간다!"

"예!"

마법사인 펠리시아는 이동 속도가 느리기에 그녀는 최대한 빨리 움직이기 위해서 필레만 데리고 4계층을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모여든 몬스터들이 그녀들의 움직임을 보고 달려들었지만 상아와 필레는 그들을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필레! 3계층의 길드원들을 찾아서 복귀시켜! 자칫 잘못했다간 모험가 길드가 습격받을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3계층으로 통하는 관문을 지나치자마자 상아와 필레는 다른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던 상아는 3계층의 거대한 식물 몬스터가 모습을 보이자 날카롭게 외쳤다.

"플레어!"

"콰아앙!"

상아의 손에서 날아간 화염의 창이 꽂히자 식물 몬스터의 몸이 삽시간에 불타 재로 변해 흐트러졌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식물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다시 2계층의 마법문을 찾던 그녀는 자신의 슈트 심장 부분에 있는 브로치의 적색의 보석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이런 공교로울데가 있나!"

카를로스 때문에 운현을 지키고 그를 죽이려고 운현에게 이 슈트와 한 세트인 소환기를 맡겨 놓았던 상아는 크게 기뻐하며 브로치를 꾹 눌렀다. 그 순간 자신의 몸이 붕 뜨며 묘한 공간 속으로 들어가자 상아는 이를 꽉 깨물었다.

'카를로스 이새끼는 나중에 잡고 일단 운현을 들고 튀어야겠군. 지금은 그 놈을 상대할 시간이 없어.'

철천지 원수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 놈이 급한게 아니다. 만약 운현을 공격하려 한다면 운현을 데리고 튄 후 길드만 지키고 길드 간부들과 함께 그놈을 잡겠다. 라고 생각한 그녀는 자신이 있는 공간이 빛으로 물들자 살짝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여긴!? 1계층이잖아!?"

눈을 뜨니 보이는 광경은 던전의 1계층이다. 혹시 카를로스가 던전까지 들어 온 것인가? 상아는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카를로스는 없었다. 그저 주저앉은 채 자신을 힘없이 바라보는 운현만 있을 뿐.

"아아아아!!! 잘했어! 아이고 이쁜 것! 어떻게 알고 이렇게 바로바로 소환해주냐!? 누나가 나중에 좋은 거 해줄게!!"

이렇게 사람 속 마음을 잘 읽다니. 지금 순간만큼 운현이 사랑스러워보이긴 또 처음이다. 카를로스도 없는데다가 던전 입구까지 빠르게 뛰면 여기서 일분도 되지 않는 거리다. 3계층부터 1계층까지 오면서 쓰일 체력이나 마력을 고스란히 보전하게 된 상아는 크게 기뻐하며 그의 입술과 얼굴 여기저기에 키스했다.

"....."

이정도로 하면 반항할 줄 알았던 운현이 얌전하다. 상아는 그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 그리고 박살난 상자.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상아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외쳤다.

"아니!? 어떤 미친 새끼가 미믹을 만든거야!?"

미믹은 꽤나 몬스터를 먹었는지 금방이라도 마인을 소환할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상자의 뚜껑이 박살나고, 밑의 나머지 부분이 부숴지면 마인이 나타난다. 상아는 이를 갈며 광검을 휘둘러 자신을 공격하는 어두운 기운을 쳐낸 후 그대로 상자를 광검으로 베었다.

"카아아!"

광검에 베인 미믹이 뒤로 물러나자 상아는 왼손을 뻗어 마법을 날렸다. 그녀의 손에서 터져나간 녹색의 구체가 그대로 미믹에게 작렬한 순간 미믹은 잠시 멈칫하더니 산산조각나 부숴졌다.

"하아. 그나마 1계층의 미믹이라 다행이군. 아무튼..."

상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쓰러져 있는 모험가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92====================

crisis

"상아!? 너 왜 여기 있어!?"

칼리아스와 길드원들이 헐레벌떡 뛰어온 것을 본 상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혼자서 이들을 처리하기 힘들기도 했고 빨리 길드로 복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운현을 비롯한 다른 모험가들을 가리켰다.

"쟤들 챙겨서 복귀해! 용병 연맹이 오진 않았지?"

"응? 걔들이 왜?"

"구조요청 자체가 함정이었어... 어쩌면 이것도...!"

"뭐!?"

상아의 말에 칼리아스는 창백해진 얼굴로 길드원들에게 외쳤다.

"빨리 사람들 챙겨! 복귀한다! 상아! 다른 애들은!?"

"필레가 3계층에 있는 길드원들 데리고 올거야! 어서 우리도 복귀하자!"

길드에 복귀한 상아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길드회관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순간 그녀는 한무리의 인간들이 걸어오는 것을 보며 이를 드러내었다.

"개년..."

무리의 선두에 선 것은 아름다운 백색의 갑옷을 입은 청순한 미녀였다. 약간 처진 눈에 생글생글 웃는 것이 천상 손에 물 한방울 안뭍히고 살아 온 귀공녀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속이 어떤 능구렁이보다 능글맞고 사갈보다 독하다는 것을 잘 아는 상아는 팔짱을 낀 채 그녀가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머? 상아씨 아니에요?"

"아르토리우스. 그 큰 엉덩이는 왜 떼고 나온거야?"

부드러운 목소리에 상아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던 상아가 천천히 광검을 잡았을 때 아르토리우스는 생긋 웃은 후 상아에게 말했다.

"음... 그냥 모험가 길드 구경이나 하려고 왔죠. 날씨 좋잖아요. 산책 겸 해서 말이에요."

"근데 왜 간부들 둘에 네 호위들까지 데리고 온거야? 이야~ 이거 누가보면 습격하러 온 건 줄 알겠는걸?"

상아가 느긋하게 말하자 아르토리우스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그저 여전히 생글거릴 뿐 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당장이라도 뭉개버리고 싶지만 지금 붙어봤자 불리한 것은 자신이었기에 상아는 느긋한 표정을 짓고 그녀를 응시했다.

"아이 참~ 같은 던전 도시 소속의 사람들끼리 그런 무서운 소리는 하지 말자구요. 그냥 산책이라니까요. 산책. 그런데 당신. 제가 듣기로는 오늘 새벽에 구조 요청 나갔다더니... 왜 여기 있어요?"

"그러게. 왜 여기 있을까? 그리고 내가 구조요청 나갔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상아가 이를 드러내며 풀풀 살기를 풍기자 아르토리우스의 옆에 있던 장창을 든 붉은 머리의 창백한 낯빛의 여인은 사나운 눈으로 상아를 향해 창을 겨눴다.

"연맹장님께서 묻는 질문에나 답해라."

"하... 건방진년이. 파론. 이 언니한테 쳐맞고 울기 싫으면 저기 찌그러져 있어라."

"당신 혼자 우리를 모두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왜 내가 혼자라고 생각하지?"

상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파론의 눈이 점차 가늘어졌다. 겨눠진 창끝에 살기가 감돈다. 그것과 아르토리우스, 그리고 아르토리우스의 옆에 있는 장검의 미녀에게 시선을 준 상아가 주먹을 쥐려는 찰나 길드회관의 문이 열렸다.

"이게 누구야!? 용병 연맹의 쓰레기들이잖아!?"

"그러게!? 뒈지고 싶어서 환장한 년들이 모였네!? 어휴! 미나도 왔잖아!? 그때 못한 승부를 오늘 내볼까!? 앙!? 오늘 푸닥거리 한번 할까!?"

기쁜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에리스와 칼리아스, 그리고 무장을 한 모험가 길드 길드원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것을 본 아르토리우스는 빙긋 웃은 후 앞서 나가려던 두 미녀들을 말렸다.

"자자. 파론. 미나. 우리는 오늘 싸우러 온게 아니잖아요? 날이 좋아서 그저 산책을 나왔을 뿐이라구요."

"...연맹장님."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야 해요. 알았죠?"

생긋 웃은 그녀의 말에 장창의 파론과 장검의 미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귀엽다는 듯 응시한 아르토리우스는 상아를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오래간만에 만난건데 차 한잔 안사줄거에요? 기껏 제가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헤에... 미안해서 어쩌지? 네 입에 만족할 만한 독은 지금 없는데. 좀 기다려줄래? 독 좀 구해올테니까."

가시돋힌 상아의 말에 키득거린 아르토리우스는 어깨를 으쓱인 후 몸을 돌렸다.

"죄송해요. 기다릴 정도의 시간은 없네요. 그럼 우린 이만 돌아가겠어요. 후후후~ 다음에 또 봐요~"

"아슬아슬 했네."

용병 연맹이 물러나자 상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용병연맹은 길드를 습격해 쑥대밭을 만들어놨을 것이다. 그녀가 안도하자 칼리아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계층에 미믹이 발생해서 나도 들어가고, 남은게 에리스 혼자 뿐이었다면 정말 그랬겠지. 그런데 상아. 어떻게 벌써 여기로 온거야?"

"아? 아아. 그거? 운현 덕분이지. 전에 말했지? 운현에게 날 소환할 수 있는 목걸이를 줬다는 거. 운현이 그걸 쓴 모양이야. 물론 이 상황을 예측한 것 같지는 않고 미믹 때문에 소환한 것 같지만..."

"헤에... 덕분에 살았네."

"그렇지. 걔들은?"

"응. 지금 치료실에서 치료받고 있어. 그런데 파르티 교단 소속의 사제랑 성기사도 있던데?"

"흠..."

칼리아스의 말에 상아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파르티 교단과는 꽤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가끔씩 수련을 위해 던전을 찾거나 공물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위해 던전을 찾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던 상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일단 운현들이랑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칼리아스. 에리스랑 함께 1계층을 뒤져서 또다른 미믹이 있나 확인 해봐.. 3계층에서 페나가 복귀하면 그녀에게 미믹의 파편을 맡겨서 미믹을 발생시킨 년은 반드시 잡아. 내 생각엔 이것도 연합 년들의 수작인 것 같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타이밍이 절묘하다. 길드 내의 간부를 모두 던전으로 보내 놓기 위한 수작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오늘 일에 상아가 조용히 말하자 칼리아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길드원들과 함께 던전으로 들어가자 상아는 치료실로 향했다.

"많이 안다쳤으면 좋겠는데..."

"아이고 죽겄다."

"어? 운현!? 살아 있었어!?"

치료실의 문이 열리며 운현이 지친 목소리를 내고 나오자 상아는 화들짝 놀란 후 그에게 달려갔다. 자신의 앞으로 온 상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운현은 손을 뻗어 상아의 볼을 잡고 꼬집었다.

"너 임마. 사람 힘없을때 무슨 짓하거야?"

"으어어!?"

"후. 그래도 살려줬으니 이정도만 해주지."

나타나자마자 키스하고 뽀뽀하고 난리를 쳤던 것을 떠올리며 운현은 말랑말랑한 상아의 볼을 놓아 주며 말한 후 피식 웃었다.

"도와줘서 고맙다."

"하하하~ 별 말씀을. 그나저나 다들 어때?"

"별 이상은 없는 모양이야. 좀 쉬면 나아질거래."

"그나마 다행이군. 다들 정신을 차린 상태야?"

"응. 왜?"

"아... 확인할게 있어서. 미믹을 처음 발견한건 누구야?"

"아르네 파티."

"다들 멀쩡하지?"

"응. 루티는 구조 요청을 위해서 따로 뺐으니까."

운현의 대답에 상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그와 함께 치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누워서 신음을 하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닌 모양이다.

"어...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네."

"상아씨..."

"길드장님..."

힘없이 웃으며 자신을 보는 여인들에게 웃어보인 상아는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는 아르에게 다가갔다. 상아가 다가오자 아르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태를 물어보시러 오신건가요? 하지만 대답해드릴건 똑같아요. 아까 칼리오스님께도 말씀드렸는데... 이 분들이 홉고블린을 잡고 그 사체와 코어를 원하신다는 퀘스트를 발주하셔서...  저희는 홉고블린을 사냥하기 위해서 돌아다니고 있었고 운현의 파티와 만났어요. 그들에게 양보받아서 홉고블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미믹을 만났죠. 그 미믹이 홉고블린과 미믹을 흡수하는 것을 보자마자 도망치려고 했는데 미믹의 공격에 바리아나님이 부상을 당했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다가 상아님의 도움으로 살아남은거죠.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그런가. 다른 사람들은 할 말 없어?"

아르의 차분한 설명에 상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하지만 다들 아르 이상으로 할 얘기는 없었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머지는 운현에게 물어야 하나...'

"저기... 운현은 괜찮나요?"

"음? 아. 당신들은 운현 파티의 사람들이지? 운현 덕분에 당신들이 살아남은거야. 운현에게 잘 해줘."

"헤에? 그게 무슨 소리야?"

상아의 질문에 바제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녀에게 빙긋 웃어 준 상아는 운현에게 자신을 소환할 수 있는 목걸이를 주었다고 답해주었고 그것으로 세 여인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왜?"

"아, 아니에요."

"끄응... 운현. 상아 길드장님도..."

"뭔 마성의 남자야...?"

세 여인들이 서로 모여 수근거리는 것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던 상아는 어깨를 으쓱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운현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근데 너 세긴 센가보다. 그 미믹을 잡은거야?"

"1계층 미믹은 안어려워. 문제는 3계층 이상부터지. 그때부터는 나도 혼자 못잡아."

"흠... 아무튼. 어떤 미친년인지 잡으면 목을 비틀어버려."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는 것 때문인지 운현은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상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운현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그녀가 자신을 데리고 길드장의 방 안으로 들어가자 운현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지. 슬슬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뭘?"

"시장선거. 나와 필레, 펠리시아가 오늘 새벽에 구조요청이 들어와서 나갔는데. 그 구조요청자에게 들어보니 4계층에서 구조요청을 보내라고 누군가 시켰다고 하더군."

"누가?"

"아르토리우스. 용병 연맹의 연맹장."

93====================

crisis

"......."

운현이 침묵하자 상아는 무거운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 남편을 인질로 잡고 그것으로 협박을 한 것 같아. 자세한건 조사를 해봐야하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복귀하는 길에 네게 소환되었고 그때 미믹을 만났지."

"타이밍이 좋군."

"내 말이. 미믹이 만들어진 것도 아마 용병 연맹의 짓이 아닌가 싶어. 일단 모험가들은 대부분 알고 있거든. 어떻게 하면 미믹이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미믹의 위험성이 어떤지."

"난 처음에 못 들었는데? 그런 주의점이라면 모험가가 됐을 때 바로 얘기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날 모험가로 받아들인건 필레인데 필레에게 그런 소리는 못들었다고. 그리고 헤스티아도 못들은 것 같고. 내가 미믹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아르에게서 들은거야."

"너 초보 모험가 교육 안들었냐?"

"그런 것도 있어?"

"...파티 모집 게시판에 초보 모험가들의 필수 교육 일정을 적어놨을텐데? 매주 한번씩 하는건데... 몰랐어?"

"어... 그런게 있었나?"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티 모집 게시판은 많이 봤지만 그런 것은 본 적이 없었던 그가 떨떠름히 말하자 상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가 보고 놓친 모양이지. 분명히 있어."

"쩝..."

상아의 말에 운현은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놓친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 당시에는 파티 모집 게시판이 아닌 파티 모집 게시판에서 알짱거리는 혼자인 사람을 찾느라 거기에만 집중을 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으로 파티원을 모집한 탓에 그런 공지사항을 못보았던 운현은 상아의 한심하다는 시선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좀 보고 살아라. 좀. 모두에게 모험가의 지침을 하나하나 설명해줄 정도로 길드에 인력이 남아 도는건 아니라고."

"알았어. 이번 일 끝나면 제대로 교육 받을게."

운현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상아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 매번 모험가들이 등록할때마다 교육 들으라고 얘기를 해도 안듣는 사람이 태반이니... 아무튼 네 말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모험가가 사고를 친거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일은 좀 골치아파져."

"세작이 생긴다는 건가?"

"응."

기본적으로 모험가는 전직을 따지지 않고 그만두는 것도 잡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스파이 짓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는 것이다.

"길드원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모험가 자체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 아마 1계층에서 미믹을 발생시킨 것도 그런 이유일거야."

"버리는 패로 썼다는거야?"

"응."

약한 전투원을 모험가로 만들어 1계층에서 미믹을 발생시킨다. 발생된 미믹이 자신을 해치울 수 있다는 정보조차 주지 않는다면 연맹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흐음... 그래서?"

"길드원이 조사를 시작했으니 조사가 끝나면 누가 미믹을 만들어냈는지 파악할 수 있을거야. 파악되고 나면 주리를 틀어서라도 왜 미믹을 만들어냈는지 알아내는 수 밖에. 만약 이게 연맹의 짓이라면..."

"짓이라면?"

"우리도 복수해야지."

"호오... 복수. 복수 좋지."

상아의 말에 운현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파티가 전멸할 뻔했던 위험이 엄한 년들의 세력 다툼때문이라는 것이 확정된다. 즉 복수의 대상이 명확해진다는 것. 그는 빙긋 웃은 후 말했다.

"복수를 할거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

"길드원들을 모두 끌고 가서 용병 연맹을 개박살 내고 싶긴 하지만 그랬다간 죽도 밥도 안되지. 일단 아르토리우스를 엿먹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싸그리 날려버리는거야. 그년은 돈과 보석에 미친 년이니까."

"그게 가능해?"

"아니. 불가능해. 걔는 재산이 여기저기 너무 많아서... 그 다음은... 당했던 그대로 갚아주는거지."

"어떻게?"

"용병 연맹 회관을 박살낸다."

"...그거 괜찮은데. 그럼 전면전 되는 거 아냐?"

"작전은 생각해봐야지. 그 외에도 이것저것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테니까. 일단 그들의 짓이라는 것이 확정된다면 그렇게 하자고."

"음. 알았어.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뭐야?"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빙긋 웃은 후 말했다.

"아니 아까 너랑 키스하고 나니까 몸이 달아 올라서. 좀 식혀줄 수 없을까? 응?"

"장난하냐?"

"에이~ 오늘 내가 너 살려줬잖아. 응? 한번 하자. 미믹 잡았더니 나도 좀 흥분된단 말야."

그녀가 자신의 품에 안겨오며 응석을 부리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고. 애들 걱정되니까 일단 나 나가볼게."

"진짜 안할라고!?"

"나중에."

운현은 상아의 머리를 잡아 거칠게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만족한 상아는 씩 웃으며 외쳤다.

"아! 그리고 날 소환할 수 있는 건 하루에 한번 뿐이야! 잘 기억해둬!"

"오냐."

상아의 외침을 듣고 길드장의 방에서 나온 운현은 치료실로 돌아갔다. 자신을 본 헤스티아와 미야, 바제트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자 운현은 그녀들에게 다가가 한번씩 안아주고 키스해 주었다.

"난 무사해."

"운현씨..."

"운현..."

"역시 내 남자..."

"크흠! 우, 운현님라고 했나요?"

운현과 그의 동료들이 달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자 바리아나와 미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운현에게 다가갔다. 살짝 벌개진 얼굴로 그녀들은 운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빚졌습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두 미녀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내가 딱히 한 일은 없는데. 상아가 다..."

"그래도 운현님께서 지휘를 하며 시간을 끌어주고, 또 상아 길드장님을 부른 것이지 않습니까. 만약 운현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그들의 인사에 운현은 뻘쭘히 웃었다. 그 미소를 본 바리아나는 생긋 웃은 후 차분히 말했다.

"이 은혜는 꼭 갚을게요."

"뭐... 굳이 그러시겠다면야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저는 좀 볼일이 있어서..."

"어디 가게요?"

"응? 아. 버클러가 찌그러져서 좀 고치려고. 개시하자마자 이렇게 될 줄이야."

헤스티아의 질문에 운현은 자신의 버클러를 들어 올려보여주었다. 심하게 우그러진 것이 오래 쓰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운현은 치료실을 나와 테이블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고민했다.

'이건 뭐지?'

그는 눈 앞에 있는 창을 보며 고민했다.

그가 보고 있는 인벤토리 창의 안에는.

'미믹'이라는 글씨로 표시된 부서진 상자가 추가되어 있었다.

"으으으으으음..."

운현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미믹이 왜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 있는가에 대한 엄청난 의문이 그의 머리 속에 꽉 차있었다. 운현은 팔짱을 끼고 신음하며 고민했다.

"으으으으으으으으..."

"운현!! 괜찮아!? 미믹을 만났다면서!"

"깜짝이야!? 너 언제 나왔어?"

던전 입구에서 나온 필레는 얼굴 가득한 걱정과 두려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운현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운현이 물었지만 필레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은 채 운현의 몸 여기저기를 만졌다.

"어디 다친데는 없지? 응?"

"아... 응. 난 괜찮아."

"다, 다행이다아...훌쩍..."

운현이 멀쩡하다는 것에 안심을 하며 필레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절로 눈물이 나온 그녀가 훌쩍거리자 운현은 주변의 시선에 움찔하며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나 괜찮다니까. 울지마."

"그치만... 그치만 미믹을..."

"상아가 해치웠어. 걱정하지마."

"으응..."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필레가 고개를 끄덕이자 운현은 쓴웃음을 짓고 그녀의 복장을 살폈다. 평소 입는 편한 옷이나 그녀가 특별한 날 입는 예쁜 옷이 아닌,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는 것은 검은색의 전신 타이즈와 비슷한 슈츠였다.

"역시..."

"응?"

"아니. 옷 입으면 말라보이는 타입이구나. 너."

"...지금 그런 얘기할 때야?"

운현은 필레의 몸매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며 감탄했다. 하얀색 타이즈 비슷한 슈츠에 감싸진 그녀의 몸매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C컵은 되어보이는 탄력적인 가슴과 잘록한 허리, 풍만한 둔부. 슈트에 감싸진 덕분에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난 것에 감탄하는 운현을 흘겨보며 눈물을 완전히 지운 필레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가 이런 일을 한 건지 몰라도... 잡히면 가만 놔두지 않겠어."

길드원들을 이끌고 복귀한 필레는 운현이 미믹을 만났다는 이야기에 다른 일도 제쳐두고 곧장 운현을 찾았다. 다행히 그가 무사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를 할 것을 다짐했었던 그녀의 눈에 분노가 일렁거리자 운현은 필레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아주 작살을 내버리렴."

"응... 아무튼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모험가 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미믹을 만나냐..."

"그러게."

"필레! 따라와! 흔적을 발견했어!"

던전 입구에서 나온 칼리아스는 운현과 함께 있는 필레를 향해 강하게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에 짜증과 분노가 잔뜩 담겨 있는 것에 필레는 고개를 끄덕인 후 운현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도 아직 상처가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치료실에서 쉬도록 해. 알았지?"

"아니. 난 괜찮..."

"알았지?"

"...알았어."

필레의 무시무시한 시선에 눌린 운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에 안심한 필레는 칼리아스를 따라 던전 입구쪽으로 향했다. 그녀가 떠나자 운현은 홀로 남은 채 다시 생각에 집중했다.

'다른 걸 스틸했을 때는 인벤토리로 안들어왔는데 왜 이것만 인벤토리로 들어왔지? 만약 이게 진짜 미믹이라면...? 흐흐... 일단 실험을 해볼까?'

운현은 자신의 인벤토리 창을 보며 이를 드러내었다. 피아 구분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미믹이라는 강력한 몬스터를 손쉽게 봉인하고 풀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걸 어떻게 쓰면 좋을까...?'

운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사람이 없는 공터로 향한 그는 주변을 둘러본 후 조심스레 인벤토리 안의 미믹을 잡아 밖으로 내보내보았다.

"카...!"

"스틸!"

"......"

밖으로 나오자마자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는 미믹에게 스틸을 날린 운현은 미믹이 다시 인벤토리창 안으로 들어오자 발을 동동 구르며 신나했다.

"이야아! 이런 엄청난 빠와를 가지게 되다니!"

물론 나오자마자 자신을 공격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그건 일단 제쳐두고 운현은 다음 실험을 위해 하이딩을 걸었다. 하이딩을 건 채 인벤토리창을 열어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얌전히 있는 미믹을 잡아 밖으로 뺀 운현은 미믹의 반응을 보며 씨익 웃었다.

'역시 반응 안하는구나!'

하이딩 상태인 자신을 눈치채지 못한 듯 한 미믹이 얌전히 검은 기운만 일렁거리고 있는 것에 운현은 키득거리며 하이딩을 풀었다. 그가 하이딩을 풀자마자 미믹의 검은 기운이 커져갔고 운현은 다시 스틸을 걸어 미믹을 인벤토리로 회수했다.

'이거... 잘만 하면 아주 재밌는 상황을 만들 수 있겠는데.'

94====================

crisis

미믹이 내부에서 날뛰기만 해도 전열을 무너트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고 계층의 미믹까지 이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혼돈, 파괴, 망각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운현은 히죽 이를 드러내며 웃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잠깐만."

운현은 인벤토리에 있는 보물상자를 보았다. 처음 홉고블린을 잡았을 때 얻었던 보물상자를 인벤토리에 넣었던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꺼내보았다. 미믹과 다르게 보물상자는 움직이지 않은 채 얌전한 모습 그대로 있었다.

"스틸!"

보물상자를 향해 스틸을 쓴 운현은 보물상자가 인벤토리로 들어간 것에 의문을 느꼈다. 왜 얘는 손으로 들어오는게 아니고 인벤토리로 들어오는 것일까. 그는 몰려드는 의문을 풀기 위해 길드회관의 뒤로 향했다. 여러가지 짐들이 놓여져 있는 회관의 뒷편에 있는 큼지막한 나무 상자를 본 운현은 그것들을 향해 스틸을 걸어보았다.

"안에 내용물이 있으면 인벤토리로 들어가고 빈 상자는 그냥 잡히는구만."

몇번의 스틸을 통해 대략적이나마 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물건 하나만을 스틸했을 때는 그냥 손으로 들어온다.

두가지 이상의 물건을 동시에 스틸을 하면 실패하게 된다.

상자처럼 안에 무언가를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넣은 채 스틸을 하게 되면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온다.

실험을 마친 운현은 상자 위에 걸터 앉은 채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러려나? 불가능하겠지?'

인벤토리 능력은 운현만이 가진 능력이었다. 이세계로 진입하며 얻은 치트능력인 만큼 다른 이들은 이 방법이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감탄하던 운현은 또다시 떠오른 의문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스틸로 살아 있는 녀석도 잡을 수 있나?"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의문이고, 만약 된다면 미믹 이상의 빅똥을 먹일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쥐 한마리를 발견하고 쥐를 향해 스틸을 걸었다.

"...이건 실패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생물을 스틸로 잡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은 채 빠르게 움직여 쥐를 잡은 후 상자에 넣은 후 다시 스틸을 걸어보았다.

"에이."

상자는 운현의 손으로 들어왔을 뿐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혹시나 싶어 인벤토리창으로 직접 넣어보았지만 역시 들어가지 않았다.

'살아 있는 생물은 안들어간다는 건가... 그럼 미믹은 왜 되지?'

쥐는 안되고 미믹은 된다? 던전의 몬스터만 가능한 것일까? 운현은 한참 고민하다가 커다란 빈 상자를 인벤토리에 넣은 후 터덜터덜 길드회관으로 향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길드의 사람들을 지나쳐 조용히 던전 안으로 들어선 운현은 던전의 입구에 있는 길드원들을 발견하고 움찔했다.

"운현씨! 괜찮아요!?"

던전 입구에서 매의 눈으로 던전에 출입하는 이들을 살피던 백금발의 길드원은 운현을 보자마자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꽤나 귀엽게 생긴 미녀가 자기를 걱정해주는 것은 좋지만 그 낯선 얼굴에 운현은 당황하며 물었다.

"아. 네. 그... 누구시더라."

"저 모르시겠어요? 어휴. 정말... 필레씨랑 식사하러 가실때 제가..."

"아! 아!"

그제서야 기억이 난 운현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에 빙긋 웃은 백금발 여인은 운현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말했다.

"실비아라고 한답니다. 앞으로는 기억해주세요!"

"아 예. 하하."

묘하게 친하게 구는 그녀에게 웃어준 운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건가요?"

"아. 1계층에 미믹을 만들어낸 사람을 찾았는데 그 사람이 지금 1계층에 있다고 하거든요. 그 사람의 방에서 부숴진 보물상자가 두개 발견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추적중이랍니다."

"그렇군요..."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운현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운현씨도 이런 사람 보면 바로 길드에 알려주세요."

실비아가 건넨 종이에는 짙은 검은색 긴 머리에 왼쪽 눈가 밑의 작은 상처가 있는 붉은 눈의 여인이 그려져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완고해보이는 인상이 매력적인 그녀의 그림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운현은 실비아의 배웅을 받으며 터덜터덜 토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토끼를 잡아서 상자에 넣고 해봐야겠군.'

미믹 사건 때문인지 주변이 꽤나 한적하다. 조용하면 차라리 잘됐다. 운현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인벤토리에서 상자를 꺼내 열어보았다.

"어. 이거 안에 내용물 있는거 가져왔나... 뭐 상관없겠지."

상자 안에 있는 튼튼한 밧줄과 빈통 두개을 꺼내어 인벤토리에 넣은 후 운현은 빈 상자를 옆에 두고 토끼를 향해 스틸을 걸었다. 그의 예상대로 토끼는 스틸에 걸리지 않았고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MP가 소모된 걸 보니 되긴 됐나보군. 그럼... 다음으론..."

폴짝거리며 튀는 토끼를 잡아 상자에 넣은 후 다시 스틸을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상자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하아... 그럼 이걸로 해봐야 하나."

운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함정을 설치한 후 함정 위로 토끼를 휙 던졌다. 하얀 줄에 의해 구속된 토끼가 발버둥치는 것을 보며 운현은 함정을 향해 스틸을 걸어보았다.

"에라이."

역시나 실패. 운현은 몬스터를 인벤토리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한숨을 내쉬고 입맛을 다셨다.

"근데 왜 얘는 되냐는 거지..."

"탕!"

"뭐, 뭐야!?"

인벤토리 안에 얌전히 잠들어 있는 미믹을 보며 중얼거린 운현은 뒷쪽에서 들린 소리에 깜짝 놀랬다. 소리가 난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간 운현은 수풀 너머에서 검은 망토로 몸을 감싼 어떤 여인이 망치를 들고 상자를 내리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 여잔...'

아까 전 실비아가 주었던 종이를 펴 본 운현은 그림의 그녀가 저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지금 상자에 열심히 망치질을 하는 것을 보면 굳이 그림을 보지 않아도 좋았다.

"콰직!"

상자를 두들기던 망치가 결국 상자를 부쉈다. 그것을 본 여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났을 때 상자의 부숴진 틈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운현은 저 여자가 미믹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저 여자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운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작전을 생각해낸 후 숨을 들이마셨다.

"성공이군... 이걸로... 모든 계획은..."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운현은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히죽 웃은 후 벌떡 일어나 미믹으로 변하는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틸!"

"왠 놈이냐!?"

"알 것 없다!"

그녀가 당황하며 자신을 바라보자 운현은 그녀를 향해 달려가 그녀를 걷어찼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맞은 그녀가 바닥을 굴렀지만 별 데미지는 입지 않았는지 그녀는 벌떡 일어나 운현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뭐냐!? 방금 어떻게 한거냐!?"

"그건 댁 알바가 아니고!"

당황하는 그녀를 향해 달려가며 단검을 휘두른 운현은 자신의 공격을 그녀가 여유있게 피하자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흥. 약해빠졌군."

"어? 귀가 기네?"

검은색 긴 머리 사이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긴 머리를 본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다가 외쳤다.

"죽어라!"

"그건 내가 할 소리!"

빠르게 달려오는 여인을 향해 운현은 바로 하이딩을 걸고 미믹을 풀어놓았다. 그것도 두마리나. 공격 목표였던 운현이 사라지고 미믹이 나타나자 그녀는 당황했는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 이건!?"

"카아아아아!"

"커어어어어어!!"

두마리의 미믹은 검은 머리의 여인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여인이 뒤로 훌쩍 뛰어 물러나 그 공격을 피해냈지만 다음에 이어진 미믹의 공격에는 맞아버렸다. 그 강력한 공격에 나가 떨어진 그녀는 운현의 발차기를 맞았을 때와는 다른 고통에 물든 얼굴로 미믹을 노려보았다.

"이 개자식! 어디 있는 거냐!? 네놈은 누구냐!?"

하이딩을 걸고 있는 운현을 발견할 수 없었던 그녀의 눈에는 당혹감과 공포가 잔뜩 걸려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두려움으로 물드는 것을 팔짱을 낀 채 구경하던 운현은 미믹들이 움직이자 싸늘히 웃었다.

'오호... 생각보다 몸이 좋군.'

망토 사이로 은근히 보이는 가죽옷을 보며 운현은 입맛을 다셨다. 긴 부츠, 하이레그형의 가죽갑옷. 미믹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때마다 출렁이는 큰 가슴. 그것을 보자 운현은 검은 욕망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긴... 생각해보니 여기 와서 해달라는 여자들이랑만 해봤지.'

물론 순애도 좋고 서로 사랑하는 듯한 잠자리도 좋다. 하지만 그래도 매일 똑같은 것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매너리즘이 생기지않겠는가? 운현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릴 때 쯤 그녀는 결국 또 한방 미믹의 공격에 맞아버렸다.

"커억... 윽...! 이... 하찮은 미물들이!!"

두번이나 미믹에게 맞았는데 멀쩡한 것에 운현은 그녀의 레벨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두마리 미믹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모양이다. 빠득 이를 갈며 단검을 휘두르며 미믹을 공격해보았지만 미믹은 그 공격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검은 기운으로 여인을 공격했고 또다시 맞아버린 여인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변을 보며 소리쳤다.

"사, 살려줘!"

운현이 아까 전 미믹에게 스틸을 써서 미믹이 사라졌던 것을 떠올린 그녀가 간절히 외쳤지만 운현은 여전히 팔짱만 낀 채 가만히 지켜 볼 뿐 이었다. 그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단검을 들지 않은 왼손을 뻗었다.

"라이트닝 볼트!"

"우르릉!"

그녀의 왼손에서 뻗어져 나간 번갯줄이 미믹의 몸에 직격했다. 그것에 맞은 미믹이 뒤로 나가 떨어지자 그녀는 씩 웃으며 다른 미믹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마법을 쓰느라 만들어진 빈틈을 다른 미믹은 놓치지 않았다. 미믹의 몸에서 터져나간 수십줄기의 검은 기운은 그녀가 마법을 완성하기 전에 그녀의 몸을 강하게 후려쳤다.

"아아악!"

제대로 충격을 받았는지 그녀는 허공을 크게 날아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는지 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지만 결국 축 쓰러져 꿈틀거리기만 할 뿐 이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두마리 미믹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이자 운현은 하이딩을 풀고 미믹들을 향해 스틸을 걸었다.

"스틸! 스틸!"

두번의 스틸로 다시 미믹을 인벤토리로 집어 넣은 운현은 고통스러워하는 여인을 보며 히죽 웃었다.

"길드에서 널 찾고 있지만... 그냥 넘겨주면 내 분노가 안풀리지."

"으... 으으... 넌 누구..."

"그건 알 것 없고."

히죽 웃은 운현은 여인을 향해 다가가며 주먹을 들었다.

그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끝으로 여인은 정신을 잃었다.

"이거 참 하늘이 돕는건가."

축 늘어진 여인의 몸을 보며 운현은 입맛을 다셨다. 이 여자를 어떻게 요리해야 잘 요리했다고 소문이 날까.

"흐흐... 이거 야동에서나 보던 짓을 실제로 하게 되려니 이거 참 동정떼는 총각처럼 도키도키하는구만!"

강인한 여전사를 강제로 범하며 고문한다. 남자라면 한번쯤 꿈꾸는 이상적인 상황이 아닌가!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밧줄로 여인을 꽁꽁 묶은 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강한 힘에 비해 몸무게는 그리 많이 나가지 않기에 어렵지 않게 그녀를 들 수 있었던 운현은 아까의 전투로 사람들이 올 것을 생각헤 터덜터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삼십분 정도 이동한 그는 처음 홉고블린을 잡았던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운현은 여인을 구석에 숨겨 놓은 채 하이딩을 걸고 안을 살폈다. 고블린 세마리만 있을 뿐 다행히 홉고블린은 존재하지 않았다.

'뭐 있어도 미믹으로 쓸어버리면 되지만... 아니, 몹은 좀 위험한가?'

몬스터를 흡수해 마인이 소환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니 미믹으로 몬스터를 잡는 일은 제외한 운현은 하이딩을 건 채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지금이라면 고블린 세마리 쯤 잡는 것은 혼자도 가능할 것 같았기에 그는 고블린들의 뒤에 함정을 설치한 후 그대로 토끼를 들고 있는 고블린의 목에 단검을 쑤셔 넣었다.

"크어억!"

단검 한방에 목이 반쯤 잘린 고블린은 그대로 절명해버렸다. 갑자기 나타난 운현에 의해 동료가 죽자 당황한 고블린들은 운현에게 무기를 겨눈 채 당황하며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그 탓에 그들은 함정에 걸려버렸고 옴짝달싹 못하게 된 고블린들을 향해 운현은 아무렇지 않게 단검을 움직였다.

"흠... 아. 그래."

여유있게 고블린 세마리를 잡은 운현은 그 시체를 바라보다가 손뼉을 친 후 고블린의 피를 빈 통에 가득 담았다. 두개의 통에 고블린의 피가 잔뜩 담기자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은 운현은 고블린들의 사체를 마석에 넣은 후 여인에게 돌아왔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여전히 축 늘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녀를 들고 홉고블린의 거처로 들어간 운현은 여인의 몸을 묶고 있는 줄을 풀어내고 벽에 있는 사슬에 여인의 양 팔을 고정시킨 후 그녀의 입을 벌리고 힐링포션을 들이부었다.

"으윽..."

힐링포션이 몸을 회복시켜주자 여인은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이 구속된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운현을 발견하고 죽일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자. 그럼 즐겁고 신나는..."

"이 개자식! 네놈의 정체는 뭐냐!?"

"그건 알 바 아니라니까. 자. 하던 대사는 마저 해야겠지?"

운현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핥은 후 긴 귀에 입술을 가져가며 속삭였다.

"즐겁고 신나는 고문시간이다."

"뭐, 뭐?"

"그것도... 아주 즐거운."

"...."

"턱."

운현은 인벤토리에서 고블린 피가 담긴 두개의 통을 꺼내 바닥에 놓은 후 이를 드러내었다. 분명 자신보다 약한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그의 웃음에 공포를 느끼고 말았다.

"성고문 시간."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그녀가 두려움에 빠진 목소리로 말하자 운현은 빙긋 웃은 후 말했다.

"왜냐고? 이유는 아주 간단해. 그건 말야..."

운현은 그녀의 갸름한 턱을 잡은 후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어떤 녀석이 나한테 미믹을 던졌어. 그것도 아주 신선한 미믹을."

"....."

"그 어떤 녀석이 누구인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95====================

crisis

"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뭐 그건 나중에라도 알게 되겠지?"

두려워하는 여인의 눈을 마주하며 운현은 그녀의 입술을 살짝 만졌다. 자신의 도톰한 입술을 운현이 만지자 그녀는 질색하며 붕붕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키득거린 운현은 강하게 그녀의 목을 꽉 잡았다.

"컥...커억..."

"함부로 까불지 마라. 건방진 계집아."

"커억...어억..."

미믹에게 크게 당한 상처를 고작 힐링 포션 한번으로 회복되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아직 그 고통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이 빠져 있는 그녀는 운현의 손아귀 힘에도 고통스러운 숨을 토해내었다. 그런 그녀를 정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응시하던 운현은 다시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

"으으! 시, 싫어!"

"호오... 이게 이렇게 하던 거였나?"

"퍽!!"

"으윽...!"

그녀가 다시 얼굴을 비틀자 운현은 주먹을 쥐고 그녀의 매끈한 복부를 냅다 후려갈겼다. 그의 주먹질 한방에 여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자 운현은 씨익 웃으며 여인의 얼굴을 잡고 천천히 올렸다. 복부를 맞은 고통 때문인지 타액을 주륵 흘리는 그녀의 입술을 다시 만진 운현은 그녀가 공포와 고통에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히죽 웃었다.

'폭력은 사람을 굴복시키지.'

물론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적어도 이 여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운현은 자신이 입술을 만짐에도 불구하고 그저 덜덜 떨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싸늘히 웃은 후 물었다.

"이름."

"...파니나."

"퍽!"

"어억!!"

"자. 다시 시작하자. 이름."

"파, 파니나라고..!"

"헤에... 아직까지 거짓을 말하려는거야? 이야~ 폭력에 굴복할 줄 알았는데 쉽지 않구만."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그녀를 바라보며 능글맞게 말했다. 운현의 말에 그녀는 질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싸늘히 말했다.

"큭. 고작 이런 솜주먹으로 내가..."

"훗."

"퍽! 퍽! 퍽! 퍽!"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운현은 매끈한 복부에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그것에 고통스러워하며 움찔하던 여인이 깊은 숨을 토해내며 헐떡거리자 운현은 준비했던 통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 진한 혈향이 물씬 풍겨나는 것에 여인은 숨을 몰아쉬다가 이를 갈았다.

"네놈...!"

"에이~ 벌써 이러면 쓰나.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운현은 생글생글 웃으며 여인의 턱을 잡은 후 턱관절을 잡은 손에 힘을 넣어 그녀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싫어하며 몸부림치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몽둥이를 집었다.

"아무래도 무기를 들고 치는게 낫겠지?"

"개, 개자식! 이게 무슨 짓이냐! 같은 모험가끼리!!"

"어우야. 아직 시작도 안했어. 내가 원하는 고문은 이런 고문이 아니라니까."

"미, 미친놈..."

고문을 하면서 저렇게 웃을 수 있다니. 저 자식은 진심이다. 운현의 눈에서 진심어린 즐거움을 본 여인이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리자 운현은 몽둥이를 가볍게 휘둘러 여인의 머리 바로 앞에서 멈췄다.

"히익!?"

"이대로 머리를 깨부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듣는 건 힘들 것 같고... 어디보자. 자. 마실래? 아니면 또 맞을래. 이번에 거절하면 이걸로 복부를 때릴꺼야. 자. 사람은 말이지. 배를 맞으면 저절로 숨이 멈춰지게 되거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숨을 몰아쉬려고 하게 된단 말야. 그때 먹이면 얼마든지 먹일 수 있으니까 괜히 힘빼지 말자. 안그래도 할 일 많은데 자꾸 나 귀찮게 할래? 여자 때리는건 내 취향이 아니라고. 여자는 말이지."

운현은 이를 드러내며 싸늘히 웃은 후 그녀의 예쁜 얼굴을 턱부터 천천히 핥아 올라갔다. 육식 동물이 자신의 얼굴을 핥는 듯한 느낌에 여인은 소름이 돋았다.

"아껴주고 사랑해줘야 할 존재들이라고."

"미, 미친 자식! 이게 무슨...!?"

"그러니까 협조 부탁해. 오케이?"

운현은 고블린통을 들어 올리며 히죽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본 여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놈은 미친놈이라는 것을 확신한 것이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떨떠름한 얼굴로 조심스레 물었다.

"남의 이름을 물어 볼 땐 자기 이름을 먼저 가르쳐 주라는 얘기는 못들었나보지?"

"응. 처음 듣는데."

"........"

"그리고 우리가 그런 예의 차릴 상황은 아니지 않나? 뭐. 정 힘을 빼고 싶다면야 말리지는 않겠어. 힐링포션도 충분히 있고 복부 좀 맞는다고 죽기야 하겠어?"

"....."

"다만 죽는 것보다 괴롭겠지만 말야."

"마, 마실게! 마시면 되잖아!"

통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냄새만으로 알 수 있엇다. 저것은 몬스터의 피다. 냄새만으로도 흥분을 상승시키는 몬스터의 피를 그대로 먹어버린다면. 그리고 저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저 큰 통에 있는 만큼의 피를 모두 마신다면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야말로 남자에 미친 여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공포에 몸을 떨며 입을 벌렸다.

"이게 그렇게 먹고 싶어?"

"......"

"부탁하는 자세가 안되어 있지 않나? 자. 솔직하고 정중하게 '부탁'을 해보라고."

운현이 이죽거리며 말하자 그녀는 죽일 듯 운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시선에도 운현은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 이었다. 사실 저런 눈초리로 노려본다면 다시 그 반항심을 가라앉힐 정도로 패는 게 낫겠지만 그래서야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자고로 여전사의 긍지는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 그리고 능욕으로 부숴야지.'

한국에서 본 수많은 여전사 쩡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폭력으로 굴복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절륜함과 테크닉으로 해결했을 뿐이다. 물론 지금까지 이 세계에 와서 안은 모든 여인네들을 쉽게 보내버렸던 운현은 자신의 테크닉과 정력에 의문을 품지 않았지만 만사불여 튼튼이라.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 그... 그 안의...큿! 주, 죽여라!"

"오오오오오오!! 진짜 하는 구나! 여기사도 아닌 주제에."

운현은 여인이 입을 열다가 굴욕감에 부르르 몸을 떨고 외치는 것을 듣고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세상에. '큿, 죽여라!' 라는 대사를 실제로 듣게 될 줄이야. 운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플 정도로 남성이 발기되는 것을 느꼈다.

"쩝. 어쩔 수 없지. 강제적인 방법은 별로 안좋아하지만 말야."

지금까지 충분히 강제적이었던 운현이 강제적인 방법을 별로 안좋아한다는 말에 여인은 기가 막히고 또 무서웠다. 이정도가 강제적인게 아니라면 그에게 있어서 뭐가 더 강제적이라는 것일까.

"찰칵."

"........"

운현은 여인의 몸을 가리고 있는 망토를 풀었다. 스르륵 바닥에 떨어진 망토를 뒤로 치운 운현은 여인의 몸을 보며 감탄했다. 선명한 검은색 반짝거리는 피부. 미야와 같을 정도의 탄력적인 근육의 몸매이지만 가슴만큼은 미야보다 훨씬 컸다. 그런 아름다운 몸을 더더욱 매혹적이게 보여주는 검은색 노출 심한 밴디지형태의 비키니 갑옷과 긴 부츠에 운현은 실실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우와 개꿀! 이야~! 이쁜데!? 혹시 처녀? 맘에 두고 있는 남자나 여자는 있나?"

"죽여라! 차라리! 이렇게 모욕을 줄 바에는...!"

"웃기지도 않네. 야. 죽고 싶으면 혀를 깨물지 그러냐? 뭐, 혀 깨문다고 죽는건 아니지만."

운현은 가방 가득 담겨 있는 힐링포션을 보여 준 후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의 조롱에 더더욱 굴욕감을 느낀 여인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으려 고개를 휙 돌렸다. 굴욕감에 고통에 의한 공포를 넘어선 것이다. 그녀가 또다시 반항적으로 변하자 운현은 그녀의 강인함에 큰 기쁨을 느꼈다.

"정말 보람찬 고문이 되겠군. 뭐. 먹기 싫으면 됐어."

"무, 무슨 짓을 하려고?"

"응? 아. 듣기로는 먹이는 것보다는 효과가 없다지만 향기를 맡거나 몸에 닿기만 해도 나름의 최음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

"하, 하지마! 하지마아아앗!"

"싫~ 어~"

운현은 킬킬 웃은 후 고블린의 피를 컵에 담아 천천히 여인의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자신의 피부를 마음대로 범하자 그녀는 이를 갈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개자식! 쓰레기!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네놈을 낳은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구나!"

"우리 부모님 보면 뭐할라고. 상견래 할려고?"

여인은 운현이 자신의 몸을 만지면 만질 수록 더더욱 심한 욕설을 했지만 이미 한국에서 이보다 더 심한 패드립을 경험하고 온 그에게 있어서 여인의 욕설은 그냥 귓등으로 넘길 정도였다. 아니, 오히려 약간 허스키한, 긍지가 가득 담겨 있는 목소리에 더더욱 흥분할 뿐 이었다.

"미친놈! 욕설을 들으면서 서다니! 진짜 개변태구나!?"

자신의 욕설에도 운현의 바지춤 앞섬이 크게 부풀어 오르자 여인은 입술을 꽉 깨문 후 더럽다는 듯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그녀의 몸에 피를 바르던 것을 멈추고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아니 내가 욕 들으면 좋아하는 마조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네가 이렇게 날뛰는데 나중에 굴복시키면 진짜 재밌을 것 같아서 좋아하는 거니까! 따, 딱히 욕 먹는게 좋아서 그러는게 아니라고!"

"미친...!"

"뭐. 이정도면 되려나?"

운현은 고블린 피를 그녀의 노출된 피부에 꼼꼼히 바른 후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이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운현을 노려보다가 그를 보는 것 조차 싫었는지 눈을 꽉 감았다.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하자고."

"큭... 네놈은 도대체 뭐냐. 미믹을 어떻게 꺼낸거지?"

자신의 몸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을 잊으려는 것인지 여인은 운현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던 것도 잊은 채 그에게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린 후 생긋 웃었다.

"너 꿈꿨냐?"

"뭐, 뭐!?"

"아니면 고블린 피에 취해가지고 헛것이라도 본 모양이지. 미믹은 네가 부쉈잖아."

"...미, 미친!? 무슨 개소리를!?"

"히야~ 이거 못된 년이네. 그런 여자에겐 고블린 피를 한번 더 발라줘야겠어."

실실 웃으며 운현은 그녀의 몸에 다시 꼼꼼히 고블린 피를 발랐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바른다기보다는 주무른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농혐한 손길로 그녀를 만지던 운현은 슬그머니 비키니형 갑옷 사이에 끈적한 고블린 피를 살짝 부었다.

"흣!?"

"오? 느꼈어?"

"그, 그럴리가! 느끼지 않았다! 느끼지 않았다고!"

"안느꼈으면 말것이지 왜 소리를 지른데. 알았어."

운현은 여인의 몸이 조금씩 비틀리고 있는 것을 보며 더 이상 고블린 피를 바르면 재미 없겠다 싶었다. 피를 왕창 먹이거나. 아니면 머리부터 그냥 통에 있는 고블린 피를 쏟아 붓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보아하니 미리나보다는 약해보이는데... 그럼 이걸로도 충분히 흥분하려나?'

레벨에 따라 몬스터가 주는 흥분효과가 적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운현은 고블린 피로 되려나 싶었지만 그녀에게는 조금씩 효과가 도는 것 같았기에 운현은 안심하며 뒤로 물러났다.

"자. 심문을 시작합시다. 즐겁고 신나게 말이죠~"

"즈, 즐겁긴! 미친새끼! 네놈이나 즐겁겠지!"

"응. 나만 즐거우면 되는거야. 이름이 뭐야?"

"병신이냐!? 아까 말했잖아!"

"아직까지 거짓말을 하려고 하다니. 어쩔 수 없군. 벌을 줘야겠어."

운현은 음흉하게 웃으며 여인의 하갑에 손을 가져갔다. 그가 자신의 하갑의 고리를 벗겨내려 하자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벗어나려했지만 운현은 그녀의 양 다리 사이에 몸을 넣은 후 골반에 걸쳐져 있는 그녀의 하갑 고리를 완전히 풀어내었다.

"짜잔! 개봉박두!"

"아아아! 보, 보지마아아앗! 네놈따위가! 네놈따위아가아아아!!!"

진짜로 분노한 모양이다. 그녀는 운현이 자신의 하갑을 벗겨내자 이를 갈며 증오가 가득 담긴 외침을 토해내었다. 그녀의 외침에 운현은 킬킬 웃은 후 그녀의 두 다리 사이의 계곡에 손을 가져갔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끔찍했는지 여인은 이를 빠득빠득 갈며 운현에게 말했다.

"반드시... 네놈을 산채로 씹어먹어 주겠다...!!"

"그래?"

운현은 씨익 웃은 후 자신의 양물을 그녀의 계곡 사이에 넣은 후 차분히 말했다.

"그럼 난 반드시 네년을 따 먹어주겠다."

"뭐...? 하, 하지마! 하지마아아앗!"

"그것도 지금 말이지."

그녀의 절규를 들으며 운현은 약간 촉촉해져 있는 계곡의 입구에 양물의 머리를 맞춘 후 단번에 남성을 밀어 넣었다.

96====================

crisis

"하읏!? 시, 싫어! 빼! 빼란 말야! 빼애애애애!!!"

"어. 되게 쉽게 들어가네. 큿... 그래도 경험은 얼마 없는 모양이네."

탄력적인 계곡의 벽이 자신의 양물을 강하게 물어오는 것에 쾌감을 느끼며 운현은 그녀가 저항을 하자 더더욱 짙은 쾌감을 느꼈다. 거의 눈물까지 흘리며 비명을 내지르는 그녀의 다리를 꽉 잡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린 운현은 여인의 볼을 핥은 후 말했다.

"헤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하지!!"

"크핫...! 으읏! 여, 역겹다! 더러울 뿐이다! 네놈! 나에게는... 나에게는 아르토리우스님 뿐이다! 개, 개자식아!"

'아르토리우스? 아르토리우스가 누구더라...'

양물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며 운현은 머리를 굴려보았다. 아르토리우스. 쾌감에 정복당할 것 같은 머리를 굴린 운현은 그 이름이 바로 용병 연맹의 연맹장의 이름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역시나 용병 연맹의 짓이었나?'

운현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억눌렀다. 고문을 할 때 진심을 보이는 것은 사치다. 라고 애니에서 보았던 오크 고문 장인이 애송이 고문사들을 가리칠 때 말했던 대사를 떠올린 그는 다시 몇번이나 깊게 허리를 찔러 넣었다.

"아윽! 읏! 아르토리우스님! 아르토리우스님!!"

"히... 그렇게 아르토리우스년을 찾는데... 왜 네건 이렇게 조여오냐? 앙?"

운현은 그녀의 긴 귀를 잘근잘근 씹고 귓바퀴에 혀를 넣어 핥아대었다. 그것에 마치 몸에 벌레가 지나가는 듯한 혐오감을 느낀 여인은 붕붕 고개를 저었지만 운현은 집요하게 그녀의 두개의 귀를 모두 핥아 자신의 침범벅으로 만들어 놓았다.

"으읏... 싸, 싼다!"

"아앗!? 안돼! 안돼에에에에에!!"

"응."

"에?"

"에이~ 내가 고자도 아니고 벌써 싸겠어? 이건 그냥 맛보기에 불과해."

히죽 웃은 운현은 그녀의 계곡에서 천천히 남성을 뽑아내었다. 고블린의 피로 약간 흥분되어 있던 몸은 그의 남성이 음부의 벽을 긁으며 빠져나오는 것에 점점 쾌락을 느꼈다. 하지만 몸의 욕구를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억누른 그녀는 벌겋게 핏발 선 무시무시한 눈으로 운현을 노려보며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개자식! 조루새끼! 고자자식!"

"조루도 아니고 고자도 아니고.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사람이야! 엄마도 휴먼이라고! 휴먼!"

"닥쳐!"

"자. 그럼 다시 즐겁고 신나는 마사지 타임을 가져볼까?"

"뭐, 뭐어!?"

"그 전에. 야. 너 이름 뭐냐?"

"......"

"말하기 싫으면 관둬. 사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배울때는 일단 이름부터 물어보라고 했거든. 뭐... 네가 순순히 협조해 준다면 더 이상 이짓을 안할 수도..."

"...일레인."

"뭐라고?"

"일레인! 일레인 가르시아! 그게 내 이름이다! 됐냐!? 이 개변태 자식아! 너같은 자식은 사람도 아니야! 이 쓰레기 몬스터 같은 새끼!!"

자신의 이름을 밝힌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이지 너의 근성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뭐, 뭐?"

"끝까지 거짓을 말하다니. 이거 참. 적이지만 훌륭하다! 굿!"

"지, 진짜야! 진짜라고! 이 미친 새끼야! 내 이름은 진짜 일레인 가르시아야!"

운현이 믿지 않자 그녀는 당혹감에 가득 찬 얼굴로 외쳤다. 진실을 말했는데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엄청난 공포에 휩쌓였다.

'이 미친 자식은... 사실 진실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 아닐까?'

오히려 자신이 거짓말만 하기를, 그러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두려움에 그녀는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결국 엄청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뚝뚝 눈물을 흘려버렸다.

"흑... 난, 난 일레인이란 말야... 왜 안믿는건데..."

"울고불고 질질 짜도 소용없다."

"이 개새끼야!!!"

'이정도면 진짠가? 사실 이건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이름따위 알게 뭔가. 이름은 그리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입에서 아르토리우스의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물론 이것도 진짜라는 가정은 못하지. 그리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흠... 그래? 그게 진짜 네 이름이란 말야?"

"그래...흑...흑... 나한테 원하는게 도대체 뭐야...?"

그녀가 흐느끼며 간절히 말하자 운현은 씩 웃었다.

"사실 딱히 원하는 건 없어."

"....?"

"네가 나에게 말하고 싶은 말이 있을거야. 안그래?"

운현은 손을 뻗어 일레인의 하복부를 만지작거리다가 더 깊숙한 곳으로 손을 밀었다. 잔뜩 주름진 항문을 운현이 톡톡 건드리자 일레인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허리를 흔들었다.

"뭐, 뭘! 거긴 왜 만지는건데!?"

"구멍이 있다면 쑤시고 보는게 남자지."

"미친... 미친 새끼야!!!!!! 넌 진짜... 미친 새끼야..."

"뭐. 밑에도 뚫어줬으니 여기도 뚫어주는게 인지상정이라 생각하는지라. 아무튼 할 얘기 없어?"

운현이 부드럽게 말하며 다시 항문을 톡톡 건드리자 그녀는 움찔한 후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운현은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그녀는 부들부들 떨다가 말했다.

"나, 나는..."

"오케이. 시간 초과."

"뭐!?"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냐? 후후후. 여기를 따는 것은 또. 무척이나 설레이는 일이군."

"이... 이...!!"

"그럼... 항문을 개봉...!"

"난 용병 연맹의 중급 용병이다! 아르토리우스님의 명령으로 모험가 길드 1계층에 미믹을 만들어 길드에 남아 있는 간부와 강한 모험가들을 던전으로 유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응. 그래서?"

운현은 자신의 손에 고블린의 피를 잔뜩 뭍혔다. 그의 손을 타고 흐르는 선홍색 피를 본 일레인은 덜덜 떨다가 천천히 말했다.

"이, 이것 밖에 없어! 난 임무를 받았을 뿐이라고!"

"그렇겠지."

만약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간부급도 아니고 그저 중급 용병의 한명이라면 용병 연맹으로써도 임무가 실패해 그녀가 발각되어 잡히더라도 쉽게 버릴 수 있는 패이기 때문이었다.

'홉고블린 정도면 레벨 90에서 100정도면 되도 쉽게 혼자 잡을 수 있을테니.'

홉고블린을 잡으면 보물상자를 얻을 수 있고, 그 보물상자를 부수면 미믹이 나온다. 그러니 굳이 강한 용병을 보낼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저 100에 근접한 용병 하나만을 보내어 미믹을 몇마리 만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임무를 수행중이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운현은 팔짱을 끼고 입맛을 다셨다.

"뭐. 그건 그거고."

"...뭐? 다, 다 말했다고!"

"응. 근데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야."

"도, 도대체 뭘... 설마!?"

"헤헤~ 이거 부끄럽구만."

"미친... 미친 새끼... 미친 새끼야... 너, 네놈... 도대체...?"

운현이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눈치 챈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에 까르륵 웃은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말해보라고 손짓했다.

"개자식... 진짜.. 진짜 죽일거야... 반드시 죽일거야...!!"

"야. 넌 생각이 있는거냐? 없는거냐? 지금같은 상황에서 나한테 그런 소리 해봤자 좋은 꼴 못볼텐데. 그냥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하고 싶은 말이나 열심히 해보라니까? 응?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말야."

운현은 일레인의 볼을 쓰다듬은 후 그녀의 아랫입술 바로 밑을을 가볍게 핥았다. 거의 키스나 다름없을 정도로 가깝게 혀가 움직이자 기겁한 그녀는 고개를 붕붕 돌려 운현을 떨어트린 후 절망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이 개새끼야! 반드시! 반드시 네놈을...!"

"싫어."

"뭐?"

"난 네가 직접 네 입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단 말이지. 뭐 아직 모자르다고 생각한다면 이 친절한 내가 도와주지. 이래뵈도 꽤나 신사거든."

운현은 싱긋 웃은 후 고블린 피로 물든 손가락을 그녀의 계곡 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 그것에 기겁한 일레인이 다리를 움직여 벗어나려 했지만 운현의 손가락은 이미 계곡의 안에서 벽을 자극하며 그곳을 고블린 피로 달아오르게 만들어버렷다.

"하악! 으읏! 하아아아앙!"

계곡 안으로 직접 들어 간 고블린의 피는 단번에 그녀의 계곡을 뜨겁게 만들었다. 양물을 넣었을 때조차 이런 반응은 없었다. 사정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오는 음부의 벽을 즐기던 운현은 손가락을 천천히 빼낸 후 달콤한 숨을 헐떡이면서도 아직까지 자신에 대한 적의를 잃지 않은 일레인에게 말했다.

"자. 이정도면 어때?"

"개자식..."

"오오오오!! 멋져부러! 그래! 이정도는 해줘야지! 그럼 한번 더 간다!"

"히익!?"

다섯번이나 참아낸 일레인은 결국 몸에서 달아오르는 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길게 혀를 빼물며 타액을 줄줄 흘렸다. 길고 아름다운 양 다리는 벌써 땀과 애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의 긴 부츠마저 벗겨낸 후 그 아름다운 다리에 듬뿍 고블린의 피를 발라 준 운현은 한통의 피를 다 쓴 것에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이거 다썼네."

"큿. 으윽... 하앗... 너, 넣어줘. 아니! 꺼져... 아니아니... 나, 날 만족시켜줘! 나로 즐기고 싶지 않아? 봐봐! 너도 지금 흥분했잖아!"

이제는 운현의 얼굴보다 딱딱히 서 있는 그의 남성만을 바라보며 일레인은 힘겹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자신의 양물을 쓱쓱 문질렀다.

"아아. 네 요염한 모습을 보니까 자위만으로도 쌀 것 같은데."

"안돼! 안돼! 그, 그러지마! 그러지 말고 내게! 아. 아냐! 이건 내가...!"

"이야~ 진짜 독하다. 너."

이정도의 근성이라니. 중급 용병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운현은 아직까지도 이성을 부여잡고 있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쉰 후 빈통을 휙 뒤로 집어 던졌다.

"고블린 피도 한통 다 썼으니까..."

"후우... 끄... 끝난건가."

일레인은 운현이 더 이상 고블린의 피로 자신을 괴롭히지 못한다는 것에 안도와 동시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녀의 눈에 희미하게 희망과 승리의 기쁨이 담기자 운현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후 표정을 싹 바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두통째를 써야지."

"뭐....?"

희망의 불씨가 단번에 꺼지고 그녀의 예쁜 얼굴에 절망이 감돌았다. 그녀의 절망에 가득 찬 얼굴을 본 운현은 배를 잡고 키득거렸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니까 빨리 말하라고! 서로 편해지게! 응?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응? 일레인. 응? 말해봐. 버틸 수 있을 것 같냐고!"

운현은 통 안에 가득 차 출렁이는 고블린의 피를 보며 준 후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아까 전에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고작 통 안의 반 정도 남은 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통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아...아아..."

간신히 잡은 희망의 불씨가 꺼진다. 그녀의 얼굴에 절망이 담기자 운현은 부드럽게 일레인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맞춘 운현은 살며시 일레인의 흉갑을 벗겨내었다. 이미 딱딱하게 솟은 유두를 부드럽게 감싸 쥔 운현은 자신이 낼 수 있는, 마치 헤스티아나 미야, 바제트에게나 할 법한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아... 일레인. 넌 잘 버텼어. 어떤 중급 용병이 이정도까지 버티겠어? 말해. 한번만 말한다면 너에게 죽을 정도의 쾌락을 안겨주지. 어때? 이제 슬슬 편해지고 싶지 않아? 내 고문에 이만큼 버틴 여자는 네가 처음이라고. 자랑해도 좋아."

'사실 고문따윈 해본적 없지만.'

본 것이라고는 애니와 야동을 통한 학습에 불과했다. 하지만 운현의 속내를 알리가 없는 일레인은 촛점 없는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숙인 후 입술을 달짝였다. 이미 그녀에게서 희망은 사라졌고 긍지는 무너졌다.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자긍심도, 운현에 대한 적개심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것을 눈치챈 운현은 일레인의 볼에 키스했고 그 키스에 움찔한 일레인은 천천히 입술을 달싹거렸다.

".....세요."

"으음? 이 귀에 속삭여주겠어? 아름다운 일레인? 나도 당장 너를 안고 싶다고. 안그러면 나 혼자 자위하고 가버릴거야. 어서 말해."

"고, 고블린의... 피를..."

"자. 말해봐. 이제 슬슬 편해질때가 되었잖아? 응? 일레인. 착하지? 착해..."

운현은 일레인의 머리칼을 상냥히 쓰다듬었다. 고문이라고 완강히 해봤자 버티고 버티다가 부러질 뿐이다. 적당히 두들기고 적당히 흥분시키고 적당히 안심시켜야 한다. 애니 속의 숙련된 오크 고문 기술자의 명언을 떠올리며 운현은 다시 한번 속삭였다.

"귀여운 일레인... 자. 내가 널 구원해줄게."

그의 말에 결국 일레인은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고 도톰한 입술을 크게 벌렸다.

"고블린의 피를...! 마시게 해주세요!"

"좋았어! 아주 잘했어!"

운현은 일레인의 볼을 꽉 잡고 그녀에게 진하게 키스했다. 그의 혀가 자신의 입 안을 범하자 일레인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타액과 혀를 받아들였다. 정신없이 그와 키스를 한 일레인은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양 다리를 들어 운현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그의 남성이 애액이 넘쳐 흐르는 계곡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으읏! 응! 으으흐읏!"

"푸하. 자. 그럼 우리 귀여운 일레인이 원하는대로... 자. 치어스!"

운현은 고블린의 피를 통의 뚜껑에 가득 담아 일레인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그것을 감로수처럼 꿀꺽꿀꺽 마신 일레인은 이제는 쾌락의 노예가 되어 그에게 외쳤다.

"마셨어! 마셨으니까 빨리 날 범해줘! 당신이 원하는대로 날 범해달란 말이야!!"

그녀의 외침에 운현은 실실 웃으며 거의 달라붙어 있는 그녀의 계곡 안에 남성을 쑥 밀어 넣었다.

"하아아아! 이거야! 이걸! 흐으읏! 으으응! 이게 남자야! 하아아앙!"

"으읏... 조이긴... 자. 이제 한마디만 더 해주겠어? 일레인. 아르토리우스보다 내가 더 좋나?"

"응! 당신이 더 좋아! 아아아! 흐읏! 으으윽!! 여, 여자보다! 하으으으! 아르토리우스님보다! 당신이 더! 당신이 더어어어어!!!"

거의 눈이 돌아가버린 채 운현이 움직이지 않아도 자기가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며 쾌락을 갈구하던 일레인은 운현이 허리를 떼려 하자 양 다리로 그를 꽉 잡은 후 고개를 내밀며 외쳤다.

"왜! 왜에에에!"

"아니 이거 풀어줄테니까 제대로 하자고."

"으읏...으..."

조금도 참을 수 없는 듯 보이는 그녀는 운현의 말에도 고개를 가로젓고 허리를 움직였다. 그 쾌감에 인상을 쓴 운현은 억지로 허리를 뺀 후 놓아주지 않으려는 질벽의 쾌감을 겨우 참으며 양물을 빼었다.

"으으으으! 아하으으으!!"

발버둥치는 일레인을 향해 웃으며 운현은 그녀의 양 팔을 구속하고 있는 사슬을 풀어주었다. 그것을 풀어주자마자 일레인은 운현을 덮치듯 안고 그를 넘어트린 후 운현의 남성을 잡아 자신의 계곡에 가져다 댄 후 있는 힘껏 내려앉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

"크읏...!"

미친듯이 자신의 양물을 조여오는 음부의 쾌락에 운현은 낮게 신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움직일때마다 출렁이는 커다란 가슴을 꽉 잡고 터트릴 듯 주무르던 운현은 아예 쪼그려 앉아 스쿼트 하듯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를 밀어내고 엎드리게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볼까?"

"아아.. 으으.. 흐읏...! 빠, 빨리..."

달콤하고 애절한 신음성을 토해내는 그녀를 보며 운현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97====================

crisis

"응하으응읏!"

알수없는 절정의 비명과 함께 일레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녀를 꽉 끌어안고 그녀의 안에 사정한 운현은 탱글한 유두를 잘근잘근 씹다가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완전히 힘이 풀려버린 그녀가 힘없이 쓰러지자 그녀의 안에서 남성을 뽑아낸 운현은 오늘의 MVP라고 할 수 있는 오크 고문 기술자를 떠올리며 외쳤다.

"고마워요! 오크 센세!!"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고마운건 고마운거고... 용병 연맹이라..."

순식간에 즐거운 기분을 지워버린 운현은 축 처져 헐떡이는 일레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 일이 용병 연맹의 수작이라면 해답책은 간단했다.

"잡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용병 연맹이 원하는 것은 용병 연맹의 연맹주인 아르토리우스가 발티르의 시장이 되는 것이다. 그녀가 길드를 습격한 이유는 시장 선거 전 길드의 힘을 크게 무너트려 그들이 시장선거에 집중하지 못하고 길드의 복구에 힘쓰게 하기 위해서다.

미믹을 1계층에 잔뜩 풀어 길드의 간부들이나 길드의 강자들이 그것을 처리하는 동안 뒷공작을 펼치려 했지만 그것이 자신에 의해서 막혀버렸으니 용병 연맹은 다른 방법을 쓸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고 생각할 것도 없군."

방법은 세가지가 있었다.

첫번째. 일레인을 증인으로 용병 연맹이 길드를 공격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용병 연맹에게 역습을 하는 것.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운현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가능성도 적을 뿐더러 얻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지."

증거따위는 없었다. 고문을 통해 일레인이 용병 연맹의 중급 용병이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용병 연맹에서 아니라고 잡아뗀다면 모험가 길드의 입장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엄한 사람 잡아놓고 괜히 덤탱이 씌우려 한다는 역습을 당할 수도 있었다.

"두번째는... 내가 가서 깽판을 치는 동안 모험가 길드에서 다 뒤집어 엎는 건데..."

미믹이라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힘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일레인 뿐이었다. 어차피 일레인을 데리고 있어봤자 용병 연맹에게 압박을 가할 수 없는 이상 이 여자만 처리한다면 자신이 미믹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을 수 있었다.

'라지만 그렇게 하긴 좀 그렇군.'

미믹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지금 운현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1계층의 미믹 정도에 불과했다. 용병 연맹의 간부나 강자 쯤 된다면 최소 상아나 모험가 길드의 간부, 강자와 동급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운현이 1계층의 미믹을 있는대로 끌어모아 깽판을 치려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꼭 그렇지만도 않겠군.'

운현은 자신의 판단을 수정했다. 게릴라전이라는 것이 꼭 강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적절히 상황을 판단하여 미믹을 풀어 용병 연맹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면 1계층의 미믹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직접적인 타격을 먹이기는 어렵겠어."

운현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은 후 입을 다물고 생각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세번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건 좀 그렇겠지?"

다 때려치우고 던전 도시에서 탈출해 유유자적 살아가는 것. 가장 쉽지만 가장 짜증나고 의미 없는 방법이었다. 상아의 말에 따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선거가 진행된다면 다음 대의 시장은 용병 연맹의 연맹장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인 듯 싶었다. 그렇다면 전쟁이 날 것이고 그 전쟁은 대륙에 퍼지게 될 것이다.

"원래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는 하지만... 내가 레벨이라도 높다면 모를까."

전쟁 도중에 던전을 탐험하여 레벨을 올리고 그 전쟁을 이용하여 전쟁영웅이 된다. 라는 선택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위험성이 높고 가장 현실성이 낮았다. 일단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거의 100% 확률로 징집된다고 하니...'

운현은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다음은 이건데...'

운현은 현재 자신의 골치를 썪히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인 다른 문제에 신경을 돌렸다. 그건 바로 그의 스킬창에 당당히 자리잡은 '훔쳐배우기'였다.

"울프스 하울링, 그리고 어두운 채찍. 이 둘의 관계성은 없는데."

그냥 포효하여 상대방을 마비시키는 울프스 하울링. 그리고 검은 기운을 날려 상대방을 후려쳐 데미지를 줌과 동시에 기절시키는 어두운 채찍. 이 둘의 관계성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나 소모량부터 시작해서 발동 시간, 위력, 효과. 그 모든 것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지."

공통점은 있었다. 운현은 자신의 찌그러진 방패, 그리고 부숴졌던 암가드를 떠올렸다.

'둘 다 내가 맞은 스킬이라는 거지.'

다이어 울프의 울프스 하울링이라는 스킬에 당했고, 어두운 채찍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한 미믹의 공격을 막았다. 어쨌든 둘 다 자신이 몸으로 겪은 스킬이라는 것이다.

'그럼 훔치기가 아니고 그냥 배우는 것 아닌가? 어... 잠깐만.'

운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씨익 웃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정말 재밌어지겠군.'

만약. 만약 자신의 이 '훔쳐 배우기' 라는 스킬이 상대방의 스킬을 맞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상대방의 스킬을 '훔쳐' 온다고 한다면 과연 상대는 그 스킬을 쓸 수 있을까? 운현은 궁금증이 마구 솟아 올랐다.

'그렇다면 실험이지.'

괜찮은 상대가 옆에 있었다. 운현은 쓰러져 있는 일레인을 깨운 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정신 차려."

"으윽...하아...하아... 더... 더 해줘..."

"더 해줄테니까 나한테 라이트닝 볼트 한방만 쏴봐. 좀 약하게."

흥분되어 있는 상태로 일레인은 덜덜 몸을 떨며 간절히 운현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무심히 그녀에게 요구했다. 결국 일레인은 힘겹게 주문을 외워 운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라이트닝... 볼트."

"파지직!"

"크윽...!!"

온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운현은 이를 악물었다. 강력한 고통에 정신이 나가버릴 뻔 했지만 간신히 그것을 억누른 운현은 힐링포션을 꺼내 들이마시며 라이트닝 볼트로 빠져버린 체력을 채우고 스킬창을 보았다.

'역시.'

운현은 자신의 생각대로 스킬창의 스킬이 변경된 것을 보고 이를 드러내었다. 훔쳐배우기의 스킬은 라이트닝 볼트로 변경되어 있었다.

"어이. 한번 더 해봐. 이번엔 좀 더 약하게."

"왜... 왜애!?"

그녀의 간절한 외침을 받으면서도 운현은 무심할 뿐 이었다. 결국 일레인은 눈물을 주륵 흘리며 다시 라이트닝 볼트를 쓰려 했지만 그녀의 손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당황한 일레인이 다시 몇번이나 주문을 외웠지만 라이트닝 볼트는 여전히 발사되지 않았고 일레인은 떨리는 눈으로 운현을 보며 말했다.

"지, 지금은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야! 그, 그러니까 한번만! 한번만 더 해주면!!"

"좋아."

다급히 말하는 그녀를 무시하며 고개를 끄덕인 운현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 떨어진 것에 만족했다. 훔쳐배우기는 다른 사람의 스킬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대 맞음으로써 그 스킬을 강탈해오는 것이었다.

'이거 대단하군... 패시브 스킬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액티브 스킬은 훔쳐올 수 있다는 건가?'

조건이 자신이 한대 맞아야 하는 것이라면 힘 강화나 지능 강화, 그 외에 필레의 통찰같은 스킬은 무리더라도 다른 이들의 스킬을 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한대 쳐맞고 상대의 스킬을 봉인할 수 있다는 거군."

운현은 히죽 웃었다. 미믹부터 상대방의 스킬을 봉쇄하는 것까지. 나름대로 리스크를 가지고 있지만 상당히 좋은 것들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후 차분히 일레인을 내려다보았다.

흥분된 탓인지 자꾸만 자신의 몸을 만지려 하는 그녀의 양 팔을 잡아 벽의 사슬에 다시 묶어 놓은 운현은 그녀의 들뜬 눈을 마주 응시했다.

'얘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상아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겠군.'

상아는 분석 스킬을 통해 상대방의 스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이 훔쳐배우기가 현자의 시간처럼 스킬창에도 나오지 않는 스킬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떡하니 나오는 이상 언젠가는 상아에게 걸릴 것이었다.

'그럼 결국 상아에게는 어느정도 오픈을 해야 한다는 거군.'

최대한 숨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운현은 이 능력을 이계에서 넘어오며 생긴 능력이라는 걸로 대충 포장해서 넘기자고 생각한 후 일레인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 너에 대한 처분을 생각해야겠군."

운현이 자신을 구속하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은 채 그녀는 긴 다리로 운현을 끌어안고 허리를 움직였다. 마치 발정난 강아지마냥 그저 성욕에만 물들어버린 일레인을 바라보던 운현은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다가 그녀의 목을 턱 잡았다.

"어떻게 할까... 이대로 버리고 갈까? 아니면 죽일까... 미믹 어쩌고 얘기를 꺼낸다고 해도 우기면 장땡이지만 괜히 주목받을 이유는 없으니까..."

"시, 싫어... 싫어... 해줘..."

"죽여? 말어? 죽여? 말어?"

자신에게 간절히 애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운현은 피식 웃었다.

"일단은 써먹을 수 있는데까지는 써먹어봐야하니. 그건 좀 그렇군. 그래. 이게 좋겠다."

운현은 비릿하게 웃으며 고블린 피가 가득 담겨 있는 통을 들어 올린 후 그녀에게 말했고 그의 말에 일레인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지력이 99 하락합니다.]

"흐흐흥~"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드로 복귀한 운현은 입구의 길드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개중에는 실비아도 있었는데 그녀는 귀찮은 일이 끝났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실비아씨."

"음? 아. 운현씨. 어디 다녀오세요?"

"늑대 발톱이랑 이빨이 필요해서요. 찾던 사람은 발견하셨어요?"

"네. 고블린 부락 근처에 누가 잡았는지 포박된 채 쓰러져 있던 것을 발견했다고 하네요. 뭐에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흥분되어 있어서 기절시키고 심문실로 끌고 갔어요. 이제 끝난거죠."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얼마나 걸릴지 감도 안잡혔는데 정말이지... 운현씨는 이제 복귀하는 건가요?"

"네. 필요한 만큼 모았으니까요."

"후후후. 늘 고생하시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뵈요~"

실비아가 길드원들을 따라 던전에서 나가자 운현도 길드원들이 모두 던전에서 빠지고 나서야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치료실로 들어간 운현은 치료를 받은 동료들이 모두 나갔다는 말에 빙긋 웃었다.

"운현? 방패 고치러 갔다온다더니 왜...?"

"마침 잘됐다. 미야. 오늘 데이트는 힘들 것 같은데."

"엣!? 왜!?"

"좀 할일이 있어서 말이지... 그 대신."

눈물을 글썽거리는 미야를 향해 웃어보이며 운현은 그녀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의 손길에 못이기는 척 끌려 온 미야는 운현이 자신을 방으로 밀어 넣자 볼을 붉히며 말했다.

"지, 지금 하려고?"

"응."

"...싫은건 아닌데 왜 갑자기?"

"너 보니까 하고 싶어져서."

운현의 말에 미야는 새빨갛게 볼을 물들이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허락에 운현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자, 잠깐! 나 옷 좀 벗고!"

"옷은 나중에 벗어도 되잖아. 너 갑옷 입은 상태도 무척 섹시하니까 괜찮아."

미야를 끌어 침대에 눕힌 운현은 그녀의 하갑만 슬쩍 벗겨내었다. 탄탄한 하복부를 가리는 검은색 타이즈를 본 운현은 그녀의 하복부 부위를 잡고 힘껏 찢었다.

"찌직...!"

"읏...! 진짜..."

"응. 입은채로 하자. 나중에는 던전 안에서도 해야 할텐데... 아예 여기에 단추가 달린 걸 사는건 어떨까?"

"모, 몰라! 바보!"

운현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자 미야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베게에 파뭍었다. 하지만 그녀의 탄력적인 둔부는 살며시 솟아 있었고 그녀의 하얀 꼬리는 기대된다는 듯 살랑 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좀 젖은 것 같으니까 일단 한번 하고 애무해줄게."

"으읏... 마, 마음대로 해..."

그의 손가락이 자신의 비부를 쓰윽 쓸어내고 꼬리를 잡아 문지르자 그것만으로도 꽤나 쾌감을 느낀 미야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히죽 웃어 준 운현은 얼른 바지를 벗고 딱딱해질대로 딱딱해진 남성을 미야의 뜨거운 계곡 안으로 찔러 넣었다.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늦기 전에 빨리 처리하고 와야겠군.'

잠시 방에 들렀다가 나온 운현은 그대로 상아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앞을 지키고 있는 에리스에게 가볍게 인사해준 운현은 상아가 혼자서 와인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퉁명스레 말했다.

"다른 길드원들은 바쁘게 움직이던데 넌 혼자 술만 먹고 있냐?"

"냅둬. 지금 머리 터질 것 같으니까. 기껏 잡은 여자가 완전히 돌았는지 계속 남자를 원하고 있어. 심문을 하고 싶어도 대답할 수 없는 처지야. 입가에 고블린의 피가 잔뜩 뭍어 있는 걸 보니 고블린 피를 마신 것 같은데... 누가 이런 짓을 한건지."

"그거 나야."

"...응?"

"내가 했다고."

상아는 순간 잘못들었나 싶어 자신의 귀를 만져보고 운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운현은 어깨를 으쓱였고 상아는 입을 쩍 벌린 채 그를 바라보다가 혼란스러웠는지 붕붕 고개를 저었다.

"자, 잠깐. 일단 묻자. 그 여자가 저렇게 된게 네가 한거라고? 어떻게?"

"어떻게는 중요한게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아?"

싱글벙글 웃으며 운현이 자신의 앞에 앉자 상아는 이게 자신이 아는 운현인가 싶었다. 그녀가 미심쩍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말했다.

"뭐 궁금한 것 같은데 알려줄게. 늑대 발톱 좀 구하려고 사냥하고 있는데 그 여자가 망치로 상자를 두드리며 부수고 있더라고. 그러다가 미믹이 생겨났어. 듣자하니 미믹은 일단 몬스터를 먼저 공격하고 나서 주변에 몬스터가 없으면 사람을 공격한다면서? 내가 주변에 늑대를 다 쓸어버려서 그런지 늑대를 공격하지 못하고 그 여자를 공격하더라고."

"...그래서? 그럼 지금 미믹이 1계층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얘기야?"

"아니. 그 여자가 잡았는데. 이야~ 잘 싸우더라고!"

"하아... 운현. 너 솔직히 말해. 거짓말이지."

"응."

씩 웃은 운현을 보며 상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얘까지 왜 이러는 걸까. 그녀가 화를 내려는 순간 운현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은 말이지. 나도 몰랐던건데 나한테 신기한 능력이 있더라고."

"신기한 능력? 그게 뭔데?"

"저쪽 가서 서 있어봐."

운현의 말에 상아는 고개를 갸웃거린 후 방의 끝으로 향했다. 그녀가 그곳에 서 있자 운현은 왼손을 뻗으며 외쳤다.

"검은 채찍!"

그의 외침이 끝나기기 무섭게 운현의 왼손에서 어둠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나왔고 그것을 본 상아는 기겁하며 외쳤다.

"미믹의 스킬이잖아!!"

98====================

crisis

"채앵!"

빠르게 광검을 뽑아 어둠의 기운을 쳐낸 상아는 경악한 눈으로 운현을 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운현은 빙긋 웃은 후 양 팔을 벌렸다.

"미믹의 스킬을 익힌거야!?"

"워워. 흥분하지 마. 분석 스킬 있잖아. 내 스킬을 한번 봐줘. 어때?"

"훔쳐배우기... 검은 채찍? 이게 뭐야?"

"내 능력인것 같은데.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고 이 효과를 봐야지. 이 스킬은 내가 한대 맞으면 그 스킬을 훔쳐오는 스킬인 것 같아. 몇번 실험을 해봤는데 그렇게 되더라고."

대수롭지 않게 운현이 말했지만 상아는 그 내용이 전혀 대수롭지 않아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어깨를 으쓱인 운현은 놀란 얼굴의 상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 훔쳐배우기 스킬을 쓰면 상대방은 그 스킬을 못써."

"...뭐라고?"

그의 말에 상아는 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상대방의 스킬을 훔친다? 길드 내의, 아니 전 모험가를 뒤져도 이런 스킬을 가진 도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말대로 운현만이 가진 고유한 스킬이라는 것이었다.

"이거 누가 알아?"

"지금은 너."

"지금은... 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도 있다는 건가?"

"아니라고는 못하지."

"절대 말하지마."

"알아."

운현과 상아는 이 훔쳐배우기 스킬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서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다른 사람의 스킬을 쓴다는 것이라면야 우와 대단하다. 라고 끝나겠지만 상대방의 스킬을 훔친다는 것은 자칫 잘못했다간 척살의 대상이 될 소지가 높았다.

"그리고..."

"이용할 수도 있겠지. 고유 스킬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 말야."

운현의 말에 상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 랭크의 모험가나 용병, 혹은 제작자 같은 경우 자신들만의 노하우가 담긴, 혹은 비밀리에 얻은 고유의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상아의 분석처럼 말이다. 그런 스킬을 훔쳐버리고 엄한데 써서 죄를 저지른 후 입을 다물어버리면 자연스레 그 범인이 스킬의 주인이 되어버린다.

잘만한다면 다른 사람 엿먹이는데 최고의 효율을 가질 수 있는 스킬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에 상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이어나가자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냐. 강한 스킬은 마력 소모가 장난이 아닌 것 같더라고. 다이어 울프의 스킬, 그 여자. 일레인의 스킬, 미믹의 스킬. 이렇게 셋을 훔쳐봤는데 다이어 울프의 스킬은 마력 소모가 적었고 일레인의 스킬은 마력 소모가 그리 크지 않았고 미믹의 스킬은 마력을 거의 다 썼지. 고레벨인 사람의 스킬을 훔치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려면 내 레벨도 꽤나 올려야 할 것 같아."

스킬 한번 쓰고 퍼져버리면 그것을 활용할 방법이 진짜 다른 사람 엿먹이는 정도로 밖에 쓸 수 없는 것이다. 운현이 그점을 지적하자 상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거기에 네가 버틸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는 약점도 있겠지. 한대 맞고 죽어버리면 의미가 없잖아. 안그래?"

당장 상아가 가진 공격기술 중 가장 강력한 스킬을 운현에게 쓴다고 했을 때 과연 운현이 그 스킬을 훔칠 수 있을까? 운현과 상아는 그 답에 부정했다.

"응. 그럴 것 같아. 막아도 배울 수는 있지만 막는다고 해서 데미지를 안받는건 아니니까. 이거 배울때 진짜 팔 부러지는 줄 알았다고."

운현은 미믹에게 검은 채찍으로 공격받을 때를 떠올렸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상아는 말없이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생각이 정리될때까지 얌전히 앉아 있던 운현은 상아가 입을 열자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일단 정리는 한번 해보자. 현 상황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하자고."

"응. 현재를 파악하는 건 중요한 일이지."

상아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입장에서 정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정보를, 그리고 현 사태에 대한 많은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은 상아였다. 그녀의 정리를 한번 듣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그녀의 제안에 승낙했다.

"자. 그럼 일단 각 세력의 균형분포부터 보자. 어제까지의 시장 선거 당선 예측율은 이정도야. 용병 연맹이 5. 모험가 길드가 4, 제작자 연합이 1. 상인 조합은 아예 이번 선거에서 자기 후보를 내보내지 않겠다고 했어. 원래는 나 아니면 제작자 연합의 연합장 피스나가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타르나 왕국에서 내전이 터졌고 그 영향으로 용병 연맹의 힘이 강해졌지. 그래서 지금 세력 구도가 바뀌어서 용병 연맹이 우세해졌어."

"웃기는 일이네. 다른 나라에 전쟁이 났으면 용병답게 그거나 하러 갈 것이지 왜 여기 앉아서 힘을 키워?"

"타르나 왕국은 꽤나 큰 왕국이거든. 그곳의 내전은 자칫 잘못했다간 대륙의 전화로 이어질 수도 있어. 그 내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정세는 불안해지고, 그 불안한 정세에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원하게 되니까. 용병 연맹에서 우리를 공격하고, 또 이번의 무력 시위도 같은 의미겠지. 모험가 연합은 우리의 공격에 당할 수 밖에 없는 약해빠진 이들이다. 안전하고 싶은가? 약한 모험가 길드가 아닌 강한 용병 연맹을 따르라. 이런 식으로 말야."

"내전으로 인해 약해진 왕국을 다른 나라가 공격하거나, 혹은 내전으로 인해 분열된 왕국의 힘을 모으기 위해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건가?"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의외라는 얼굴로 운현을 보았다.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

"아니 뭐. 그냥 떠올랐을 뿐이야."

"어구~ 이쁜것~ 안가르쳐줘도 잘 아네~"

운현의 대답에 상아는 싱긋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거친 그녀의 손길을 고개를 숙여 피한 운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군. 그럼 질문. 투표를 하는데 각 길드의 간부들이랑 길드 소속의 사람들이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저런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응. 상인 조합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지난 선거들을 보면 모험가 길드에서도 상인 조합에 투표를 한 사람이 있어. 그리고 용병 연맹에서도 우리에게 투표를 한 사람도 있고. 기본적으로 무기명 투표가 원칙이지만 성향같은 것을 보았을 때 어느정도는 파악이 가능하지. 또 뒷공작을 통해 표를 얻을 수도 있고 말야."

"시장이 된다면 각 세력에 큰 이득이 생기지 않아?"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 이득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어. 결국 법안을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의회이니까 말야. 시장은 그것을 실행하는 것일 뿐 자신이 법안을 강제할 수는 없어. 물론 그 처리 방법이나 수행자에 대한 임명, 그리고 정책을 주도하거나 던전 도시의 성장 방향을 결정할 권한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꽤 이득이긴 하지만 말야."

"왕은 아니라는 거군."

"음. 시장은 그저 의회의 선출에 의해서 뽑힌 대표자일 뿐이야. 하지만 던전 도시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지. 내가 이번 선거에 집중하는 이유도 그거야. 아르토리우스가 시장이 된다면 그녀는 던전 도시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주도할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각 왕국에서는 던전 도시를 의식하겠지."

"안그래도 강한 힘을 가졌는데 세력을 넓혀가니까?"

"응. 발티르에서 나오는 코어와 그 코어를 이용한 제작품들, 그리고 그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상인들. 거기에 막강한 힘을 자랑하며 수많은 전쟁을 수행하여 전쟁광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던전 도시의 용병 연맹.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진 발티르에 집중을 하지 않는 나라는 없어. 그리고 각 길드의 길드장들의 성향 역시도 주요 분석대상이지. 각 나라에서는 이미 나나 아르토리우스, 피스나. 레이아의 성향의 분석은 끝났지."

"어떤데?"

"일단 내 의견은 제쳐두고 용병 연맹의 아르토리우스부터 얘기해주지. 아르토리우스는 용병 연맹의 연맹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휘관이기도 해. 용병 연맹에 있는 열명의 간부들을 효율적으로 움직여 전쟁을 확장시키거나, 혹은 축소시켜가며 자신들의 몸값을 불리지. 그녀는 필요하다면 일부러 전투에서 패배하여 물러나기도 하고, 또 적은 병력으로 기습을 하거나 인질을 잡는 등. 전략과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책사야. 이득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고, 이득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지. 지금은 연맹장으로서의 체면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과거 그녀가 용병 연맹의 간부였을 때는 그야말로 대단했지."

"좋은 의미로? 나쁜 의미로?"

"둘 다. 그녀는 용병 연맹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지 했어. 적의 발을 핥는 것은 기본이고 일부러 패배하여 포로가 된 후 고문을 받아 거짓 정보를 불어 적군이 패배하게 만들고. 또 그 와중에 엄청난 고문을 당했어도 그 고통을 이겨내고 바로 전장에 투입 될 정도였으니까. 아군이라면 든든하지만 적군이라면 끔찍할 정도로 싫은 녀석이지."

"대단한 사람이네."

"개인의 호오는 제쳐두고 능력만 따지자면 나로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자야. 그래서 각 국 역시 그녀에 대한 경계가 보통이 아니지. 만약 아르토리우스가 시장이 된다면 각국은 던전 도시에 대한 경계를 최대치로 올릴걸? 그리고 각종 물품에 대한 세금을 막대하게 물릴 것이고."

"그렇게 되는 건 오히려 아르토리우스가 원하는 일 아닐까?"

"그럴거야."

상아의 말에 운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아르토리우스가 시장이 된다면 그녀는 전쟁을 위해 던전 도시를 확장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경계심에 각국에서 제약을 걸게 된다면 아르토리우스는 그것을 빌미로 전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놓고 있을 수는 없을테니까 말야. 손을 놓고 있어버리면 아르토리우스는 얼씨구나 하고 그냥 던전도시의 크기를 키워나가겠지."

"흐음... 그렇군."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충의 설명은 끝났다고 생각한 상아는 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자 담담히 입을 열었다.

"두번째. 제작자 연합의 피스나. 얘는 상당히 온건파이기는 하지. 전투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문제는 애가 좀 연구에 미쳐 있다는거야. 제작자 기질이 너무 강해서 희안한 물품들을 많이 만들어."

"희안한 물품? 어떤거?"

"예를 들자면 전동 자동 자위기구라든가 그런거."

"...그거 잘팔리겠는데?"

여자가 많은 세계이니만큼 잘 팔릴 것이라 생각한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상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긴 하지. 다만 10분 쓰는데 오크급 코어가 세개가 들어가서 문제지만 말야. 그정도면 차라리 남창과 하는게 싸게 먹혀."

"그, 그렇군."

"각국에서는 피스나에 대한 경계를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아. 다만 각 길드에서는 그녀의 창의력을 좋게 보고만 있는 건 아냐. 그녀가 만들려는 물품 중에서는 엄청난 투자비용이 들어갔는데 실패한 물건들이 꽤 많이 있거든. 만약 그녀가 시장이 된다면 그런 발명을 위해 투자를 할 것이고 그리 되면 각 길드의 자금과 노력이 소모될테니 각 길드에서는 그녀가 되는 것을 거절하겠지."

"평시라면 괜찮지 않아? 그런 실패가 쌓여서 성공을 만들어내는 거잖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건 좀 안정기때의 이야기야. 아까도 말했지만 아르토리우스는 용병 연맹의 연맹장이 되기 전부터 각국의 주시를 받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연맹장이 됐으니 각국에서는 발티르에 주시를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아르토리우스가 없다면 피스나가 시장이 되는게 오히려 낫지. 나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연구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니까 말야."

"흐음... 그런가."

"타르나 왕국에서 내전이 안터지고 국제 정세가 안정화 된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시기에는  연구 주도의 정책을 펼치는 피스나가 시장이 되기에는 힘들지. 그녀 역시도 이건 인정하고 있을 거야. 또 제작자 연합의 간부들도 그렇고. 그래서 제작자 연합의 간부들은 나 아니면 아르토리우스에게 투표를 하겠지. 그리고 그 세력 중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무기를 실험하기 위해서 아르토리우스에게 투표를 하는 이들도 꽤 있을거야. 아마 여섯 일곱쯤?"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 운현은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의 시선에 상아는 빙그레 웃었다.

"그럼 나머지는 상인 조합과 나에 대한 평가인가?"

"그래."

99====================

crisis

"상인 조합의 조합장은 윈디아. 윈드는 알지? 윈드의 사촌동생이야. 발렌타인 후작가의 방계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상재로 발렌타인 후작가의 가세를 크게 강화시켜 발렌타인의 성을 받아 양녀가 되었지. 그녀의 특징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는 거야. 그래서 각국 역시 그녀를, 어쩌면 아르토리우스 이상으로 주목하고 있어. 그녀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정말 별 짓을 다하거든. 일설에는 최근 몇년간 일어났던 내전과 전쟁이 윈디아 때문에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녀가 이득을 보기 위해 매점과 매석을 하여 시장 경제를 완전히 무너트렸고 그것에 분노한 민중들이 귀족과 왕족에게 칼을 들었고, 양쪽에 무기와 식량을 팔아 전쟁을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있어."

"우와..."

"하지만 꽤나 용의주도하기 때문에 증거따윈 없어. 그 전쟁에서 움직였던 상회는 모두 전쟁통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거든. 뭐... 그건 믿거나 말거나지."

"그래서? 그녀가 지금의 시장이라는 거야?"

"응. 그래도 아군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는 그녀의 성격 때문에 발티르는 상당히 이득을 보았아. 코어의 가격을 올리고, 그 코어로 만들어낸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자신의 상회를 이용해 각국에 판매하는 루트를 쓰고... 그 외에 이것저것. 우리도 그녀 덕분에 꽤나 이득을 봤으니 나쁜 일은 없었지. 다만..."

"다만?"

"상인 조합은 그녀가 시장으로 있는 동안 많은 부를 축적했어. 그리고 그 부를 이용해서 식량과 철광석, 그 외에 주요 물품들을 꾸준히 끌어모았지. 난 또 매점매석으로 돈 벌 궁리를 찾나 했는데... 내 생각에 그녀는 아르토리우스를 내세워 큰 전쟁을 성립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

"아니 도대체 이 도시는 뭔데 이렇게 전쟁광들이 많아!? 이정도면 대의 아냐? 그냥 전쟁하는게 낫겠다."

상아의 설명에 운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툭 내뱉었다. 그의 말에 상아는 무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도시의 힘은 지금 너무 강해졌어. 각 나라들의 견제를 주의해야 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어쩌면 이 넘쳐나는 힘을 조절할 필요는 있겠지."

"음."

"하지만."

상아는 무거울 정도로 진지한 눈으로 운현을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에 운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전쟁을 해야 할 이유가 수천가지라고 한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만가지가 넘어.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큼은 안돼."

단호한 그녀의 말에 운현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상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운현은 볼을 긁적거리며 떨떠름히 말했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

"뭐!? 왜!?"

"아니... 뭐랄까. 난 솔직히 네가 너만 생각하고 사는 줄 알았거든. 기특하다."

"기, 기특?"

운현의 말에 상아는 살짝 볼을 붉히고 부끄러워했다. 그녀가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마주하던 운현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네가 전쟁을 그토록 반대한다면 어쩔 수 없지. 쉬운 길은 버리고 어려운 길로 가야 한다라... 그럼 방침을 정해볼까?"

"방침?"

"응. 지금 우세하고 있는 것은 용병 연맹이잖아? 그 용병 연맹을 일단 엿먹이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어떻게 하려고? 말해두지만 습격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야. 아르토리우스는 바보가 아니라고. 어쩌면 우리가 습격해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그 어떤 튼튼한 벽에도 미세한 실금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을 마친 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상아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방침을 정하자더니 왜 나가려고 하는 것인가.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방침은 나도 좀 생각해볼게. 넌 용병 연맹의 움직임을 주시해. 그리고 이번에 잡아 온 일레인으로 뭔가 할 생각은 하지 말고. 네 말대로 아르토리우스가 그렇게 용의주도하다면 그녀가 잡혔을 때, 그리고 그녀가 자백했을 때의 대책도 세워놨을 테니까."

"어. 응. 근데 너."

"왜?"

"오늘따라 되게 똑똑해보인다?"

상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몸을 돌렸다. 그가 별다른 말 없이 나가려 하자 상아는 김이 빠졌는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

"응? 왜?"

"너에 대한 평가는?"

"내 평가? 뭐?"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들었지만 네 평가는 못들었잖아. 솔직담백하게 말해줘."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빙긋 웃은 후 폴짝 뛰어 그의 앞으로 온 후 생글생글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으음~! 일단 미모는... 어?"

"나 간다. 수고해라."

"야!!"

 말 없이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간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상아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잘못 본건가...?"

상아는 운현의 얼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상상도 못했던 무표정하고 무심한 얼굴에 자신이 알던 얼굴이 떠올랐다.

"스승님의 표정인데... 저건."

방으로 돌아 온 운현은 침대에 홀로 앉아 생각했다.

'세력간의 균형이 그렇다면 가장 먼저 공략을 해야 할 상대는 제작자 연합이군. 그리고 다음이 용병 연맹. 마지막이 상인 조합.'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운현은 쓴 입맛을 다셨다. 결코 쉽지 않을 일이고 자칫 잘못했다간 오히려 자신이 그들에게 말릴 가능성도 높았다.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를 좀 해놓는게 좋겠군.'

일단 최악의 경우는 대비한다. 그리고 나서 행동한다. 운현은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어쩌려고?"

운현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 한정된 기반과 조건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일을 선택해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쉽게 될 것인가?

"두가지."

방법은 두가지가 있었다. 첫번째. 아르토리우스를 죽이는 것. 아주 깔끔하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정도로 머리를 굴리는 인간이, 그리고 용병 연맹의 연맹장이나 되는 인간이 쉽게 죽어줄리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운현이 4계층이나 5계층의 미믹을 가져와서 풀어 놓는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풀어놓으면 또 그 다음은 어쩔 것인가.

그 미믹이 던전도시를 개박살내는 것을 손가락 빨면서 구경할 것인가? 운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방법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자.

"두번째 방법이 속편하겠군.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두번째 방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아, 혹은 제작자 연합의 연합장인 피스나가 시장이 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뭐... 방법은 천천히 생각해보는게 낫겠군. 지금 상황에서 작전을 세워봤자 의미는 없을테니."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지력이 99 하락합니다.]

상아와 효율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서 미야와 하고 난 후 현자의 시간 상태가 되어 그녀와 만났었던 것에 운현은 나름 만족했다. 만약 이 상태가 아니었다면 상아와 쓰잘데기 없는 잡담을 하느라 시간만 날렸을 것이다.

운현은 옆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미야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을 느낀 미야는 헤죽 웃으며 더 만져달라는 듯 꼬리를 움직여 그의 손을 톡톡 건드렸다. 그렇게 미야의 꼬리와 장난을 치던 운현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 당신은 펠리시아씨?"

"운현씨. 상아님이 찾으세요."

"절요? 왜요?"

"아까 잡은 포로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자꾸만 남자를 찾는데..."

"데?"

"그 여자가 말하는 남자의 인상착의가 운현님과 아주 동일하네요."

펠리시아가 생긋 웃으며 말하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쉰 후 어깨를 으쓱였다.

"가시죠."

'슬슬 다음 패를 준비해야겠군.'

그가 순순히 따라오자 펠리시아는 만족한 듯 그를 데리고 길드의 지하로 향했다. 길드 사무소 안으로는 꽤나 들어왔지만 지하에는 들어와본 적이 없던 운현이 스스럼없이 따라 들어오자 펠리시아는 짖궂게 웃으며 운현에게 물었다.

"그 여자. 저렇게 만든게 운현씬가요?"

"아닌데요?"

"에이~ 거짓말. 어떻게했길래 저정도로 만들었어요? 완전히 섹스에 미친 것 같은데..."

"그러게요. 원래 그런 여자인가보죠."

"...뭐. 비밀로 하시고 싶다면..."

"아아아아! 흐응아앙!"

"큭... 뭔... 난 더 이상 못해..."

철창 안에서 남창을 밑에 깔고 연신 허리를 흔들던 그녀는 한번의 절정에 도달했는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축 늘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밑에 깔려 있던 건장한 중년인은 이를 갈며 그녀를 밀어낸 후 철창 밖으로 나와 소리쳤다.

"젠장! 이정도 미친년이라는 얘기를 했어야지! 나라고 해도 일곱번은 무리라고!"

"그, 그러지 말고."

"됐어! 빌어먹을! 퉷!"

자신을 말리는 길드원을 밀치며 옷을 챙겨입고 그가 나가는 것을 본 운현은 일레인의 상태를 보며 감탄했다. 입에서는 타액을 주륵주륵 흘리며 자신의 계곡을 손가락으로 쑤셔 쾌락을 탐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 광기에 섞여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라는건 내 평가 뿐인가?'

주변의 길드원들이 모두 질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본 운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때 그의 앞으로 작은 인영이 나타났다.

"야 임마!"

상아는 씩씩거리며 운현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끌려나가는 것인가. 운현이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를 데리고 빈 방으로 들어간 상아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운현을 노려보았다.

"아 왜. 또. 넌 나만 보면 자꾸 단 둘이 있을라고 하더라? 나한테 마음있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도대체 쟤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응? 무슨 짓이라니?"

"완전히 미쳐버렸잖아? 지금 남창을 몇명이나 넣었는지 알아? 그래도 만족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헤에... 그정도야?"

"그래! 말해! 무슨 짓 한거야!?"

"아니 무슨 짓이고 자시고. 고블린 피를 먹였는데?"

"...뭐?"

"이정도 고문은 하지 않아?"

"아니 하긴 하는데... 저정도로 먹이지는 않았다고! 도대체 얼마나 먹였는데!?"

어처구니 없어하는 그녀의 질문에 운현은 곰곰히 생각한 후 답했다.

"이만한 통으로 한통?"

그녀를 묶어두고 밖에 나가서 고블린을 더 잡아 피를 뽑고 그녀에게 한통 더 먹인 운현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상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이래서 아마추어들은... 그정도로 피를 먹였으니 저 레벨이면 당연히 맛이 가지!"

"몇 레벨인데?"

"스킬을 보니 85~90 사이. 하아... 진짜 좀 자제해라. 응?"

"헤에. 그정도야?"

"그래! 이 등신아!"

운현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상아는 그의 가슴을 툭 치며 빽 소리쳤다. 그래도 세게 때리지는 않는게 상아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운현은 그녀의 화난 얼굴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야야~ 내가 알았냐. 미안해~ 그리고 어차피 쟤를 이용하는 방법은 힘들거라고 했잖아. 너도 납득해놓고 왜 이래?"

"그걸 떠나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생기니까 그렇지!"

포로를 저렇게 다루는 것이 남들에게 알려진다면 상당히 골치아프다. 상아가 머리를 감싸쥐며 말하자 운현은 손을 뻗으 그녀의 작은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뽀뽀해줄까?"

"되게 환영이긴 하지만 그걸로 내 화가 풀릴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뭐. 그럼 어쩌라고."

똥배짱으로 운현이 나오자 상아는 인상을 구기며 주먹을 쥐었다.

"몇대 맞을래?"

"끙. 그래. 원하는게 뭔데?"

"음... 하룻밤 같이 자는 건데..."

"아. 그건 좀 그렇다 야. 그래도 우리 사이가 그런 식으로 잘 사이는 아니잖냐.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거래 조건으로 섹스는 좀."

"...씽. 그럼 나랑도 데이트 해!"

"그정도라면 오케이."

운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상아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 몰랐던 상아는 고개를 갸웃거린 후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야."

"왜."

"너 솔직히 말해봐."

"뭘 또 솔직히 말해."

"이 상황 예측한 거 아니겠지?"

"무슨 상황?"

상아의 질문에 운현은 인상을 구겼다. 그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상아는 볼을 긁적거린 후 더듬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내가 데이트를 요구할 것 같아서..."

"훗. 이제야 눈치챘나?"

"바보!"

운현의 복부에 주먹을 날린 상아는 후다닥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녀가 나가자 운현은 한숨을 내쉰 후 싸늘히 웃었다.

'걸린 줄 알았네.'

고블린의 피 한잔만으로도 이성을 잃고 달려 들 정도로 쾌락에 미쳐버린다. 그렇다면 한통을 다 먹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고블린 피를 한통 전부 먹인 운현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레인이 완전히 이성을 잃고 쾌락만 탐하게 된 것에 만족했다.

'이정도면 일레인이 깨운 미믹의 수를 파악하기는 커녕 이름을 알기도 힘들거다.'

미믹을 깨운 것은 일레인. 하지만 그녀가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녀가 깨운 미믹의 수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운현은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있는 미믹을 고스란히,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가지고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기에 일부러 일레인에게 고블린의 피를 한통이나 먹였다. 그 결과가 저것이다.

좋게 끝났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으면 자신 뿐만 아니라 헤스티아, 미야, 바제트까지 죽을 뻔 했었다. 화가 안났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녀에 대한 분노도 이걸로 확실히 푼 운현은 이를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이게 날 건드린 대가다. 그리고 다음은..."

운현은 일레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떠올리며 싸늘히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