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8/40)

Qu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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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가 지나고 운현은 여느때와 같이 1층의 회관에서 파티원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번엔 힐러나 딜러를 하나 구해보자.'

아직 세부적인 작전을 생각해 놓은 것이 없었으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어쨌든 안정적인 전투를 가능하게 해주는 힐러가 우선일 것이다.

"흐으음..."

파티 모집 게시판 앞에 선 운현이 팔짱을 끼고 신음하자 그에게 몇몇의 여인들이 다가왔다. 이제는 운현이 파티가 있다는 것이 알려진데다가 클랜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서 자신들의 파티나 클랜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몇일만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지만 운현은 당장 레벨업이 급한데다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던전에 있는 부락을 공략하는 것이라 거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으음. 그건 곤란하지. 미안."

"왜? 레벨이 문제라면 코어를 줄 수도 있는데..."

짙은 황갈색 더벅머리의 여전사가 아쉬운 듯 말하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일 뿐 이었다. 레벨을 올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지금은 헤스티아와 미야가 있고 그들과 함께 레벨업을 해야 하는 처지인만큼 혼자서만 레벨을 왕창 올려봐야 의미가 없었다.

"아무래도 전투는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하는게 좋은지라. 나중에 내 레벨이 올라가면 그때 도와주도록 할게."

"끙... 어쩔 수 없지."

더럽게 비싸게 구네. 라고 하는 대신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녀의 손과 맞잡아 악수를 한 운현은 테이블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며 입맛을 다셨다.

"마땅한 사람이 없네."

힐링포션 값을 좀 아껴보려고 힐러를 구하고 있었지만 마땅한 레벨의 힐러는 없었다.

'귀족 직업이라지만 말짱 황이군.'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적 클래스가 희귀한 클래스라고 하더라도 없는 사람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힐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레벨의 드루이드나 사제들이 게시판에 꽤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일정 기간만 파티를 하자 라는 조건을 달아 놓았고 그것이 운현을 상당히 거슬리게 만들었다.

'조건이야 달 수 있지만 한참 연계 맞춰놨는데 빠지면 짜증나지.'

운현이 막공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기껏 레이드 길드를 만들어 한참 레이드를 다녔는데 길드 내 친목질이 시작되어 겨우겨우 쓸만하게 된 길드가 공중분해 되어버린 것이다.

트롤 하나 사람 만들어 놨더니 다른 레이드 파티에서 손님 받는 걸 보고 기가 막혀서 아예 막공을 운영하게 된 운현은 아쉽지만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다.

"으음..."

"운현. 벌써 내려왔어?"

"오늘은 조금 빠르네요. 운현씨. 오늘도 힘내서..."

"아. 오늘은 좀 들를 곳이 있어서 바로 안갈거야."

"네!? 왜요?"

운현의 말에 헤스티아와 미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어제 들었던 것처럼 퀘스트를 해보려고. 마침 괜찮은 퀘스트가 있으니 가보는게 어때?"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퀘스트 발주서를 흔들며 운현이 말하자 헤스티아와 미야는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마음에 안들어보인다?"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요."

"어제 있었던 일을 헤스티아에게 이야기해줬거든. 퀘스트를 한 모험가가 용병 연맹에게 잡혀와서 큰 일이 있었다고."

영 내키지 않아보이는 그녀들의 모습에 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말대로 이 퀘스트도 문제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놀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운현은 잠시 생각하다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물어보고 가자."

"에?"

"어제 그 여자가 그랬잖아. 길드에서 확인을 했으면 알았을 거라고. 그럼 물어보면 되지. 안그래?"

"아. 그러네요."

"그게 좋겠네."

운현의 제안에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 길드 사무소로 향했다. 북적거리던 사람들의 용무가 끝나고 자신들의 차례가 되자 운현은 창구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필레씨~"

"앗!? 운현씨!? 아. 아하하. 어서 오세요~"

운현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필레였지만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깨끗한 정장을 차려 입은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왜 정장을 입고 있으세요?"

"아... 길드장님 지시라서요. 다른 길드원들도 정장을 입고 있어요."

"왜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지시를..."

하얀 셔츠와 매력적인 골반과 둔부를 드러내는 H라인 스커트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일을 하는데는 무척 불편해보인다. 필레나 다른 길드원들은 늘상 바지와 편한 셔츠만 입고 일을 했는데 오늘만큼은 모두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이 뭔가 일이라도 있는 듯 보였다.

"무슨 일 때문에 정장을 입으라고 한건가요?"

"어. 그게 오늘 시장님이 오신다고 해서..."

"헤에. 시장이면 이 던전 도시의 제일 높은 사람인가요?"

운현이 묻자 필레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장님은 그저 대표일 뿐이에요. 지위로 따진다면 각 거대 조직의 수장들과 동급이라고 볼 수 있죠."

"거대 조직이라면..."

"모험가 길드, 상인 조합, 용병 연맹, 제작자 연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던전 도시를 지키는 네개의 거대한 조직."

"네. 잘 알고 계시네요. 헤스티아씨."

상냥하게 웃으며 필레는 헤스티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오~ 대단한데?"

"에헤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손에 들린 종이를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퀘스트 발주서에요. 혹시 어제 같은 일이 생길지 모르니 확인해주시겠어요?"

"어제..."

운현의 말에 필레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미야와 헤스티아는 말없이 운현을 바라보았다.

'옆통수 터지겄네.'

보지 않아도 둘의 시선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필레에게 집중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녀의 손은 빠르게 움직이며 여기저기 다른 자료들과 대조를 하고 있었다.

"이 퀘스트는 문제가 없네요. 순수하게 대장간의 주인이 내건 퀘스트에요."

"그럼 다행이군요."

"필레씨."

"네? 헤스티아씨."

"오늘은 화장을 하셨네요."

"에!? 아, 네. 화, 화장 정도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 그리고 정장을 입을 때는 그게 매너라..."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어... 그게...."

매와 같은 시선으로 다른 길드원들의 얼굴을 살핀 헤스티아가 묻자 필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제는 없었던 목걸이를 차고 있네."

"그게! 그냥 눈에 띄길래 그냥 찬건데..."

"꽤 예쁜 목걸이네. 그런데 그걸 보이려고 단추를 하나 더 푼건가?"

미야의 말대로 필레는 약간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단추를 푼 상태였다. 그 탓에 필레의 새하얀 목과 가슴 바로 윗부분까지 드러나 있었고 은색의 목걸이는 그녀의 부푼 가슴골 사이에 걸쳐 있어 은근한 노출을 부각시켰다.

"그, 그게 말이죠..."

미야의 질문도 필레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필레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축 늘어트리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말했다.

"잘 어울려요. 필레씨."

"정말요!?"

한순간 분위기가 반전된다. 필레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오르고 헤스티아와 미야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네. 자주 그렇게 하시고 다니세요. 훨씬 보기 좋네요."

"헤... 헤헤... 크흠! 흠. 뭐, 생각해보구요~"

헤죽 웃던 필레는 헤스티아와 미야, 그리고 길드원들의 시선에 낮게 헛기침을 하며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입가 한쪽이 씰룩거리는 것만은 막지 못했다.

"그럼 가볼게요. 고마워요. 필레씨."

"별말씀을요~ 잘 다녀오세요~"

운현이 몸을 돌리고 떠나가자 필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길드원들은 훈훈하게 웃으며 코밑을 쓱 흝었다.

"드디어 필레씨에게도 봄이...!"

"훗, 이래야 우리 필레씨 답지."

운현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방긋 방긋 웃던 필레는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떨떠름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모두가 자신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 것을 본 그녀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빽 소리쳤다.

"뭐, 뭘봐요! 어서 일해요!"

"뭐라구요? 직장에서 남자 꼬시는 여자라 잘 안들리는데?"

장난스러운 어조로 길드원 중 하나가 말하자 필레의 얼굴은 더더욱 붉어졌다.

"......"

"....."

"분위기 왜 이래?"

날씨는 맑았다.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거리를 걸으며 헤스티아와 미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운현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운현씨. 필레씨랑 무슨 일 있었어요?"

"딱히... 없었는데."

그의 대답에 헤스티아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분명 무슨 일이 있긴 했던 것 같은데. 그녀가 말할까 말까 망설이자 운현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너무 구속하지 말라고."

"구, 구속하는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뿐이라구요!"

아직 운현을 확 잡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를 놓칠까봐 두려웠던 헤스티아는 운현이 다른 여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남자가 아니다.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뿐이지 아직 그는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었다.

"하아아... 죄송해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멋대로 움직이네요."

운현의 부드러운 손길이 계속되자 헤스티아는 한숨을 내쉬며 사과했다. 그것에 씩 웃은 운현은 헤스티아의 볼에 입맞춰 준 후 속삭였다.

"너무 그러지마. 내가 말하긴 그렇지만 난 바람같은 남자라 잡으려고 하면 더 놓치기 쉬우니까."

"진짜 그래서 짜증나네요..."

농담처럼 말하는 그였지만 헤스티아는 그의 말이 진담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푸념에 피식 웃은 운현은 헤스티아에게서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가 많이 풀린 듯 하자 이번에는 미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또 왜?"

"어? 나는?"

"뭐?"

"나는 머리 안쓰다듬어줘?"

"뭐 원한다면야."

운현은 손을 들어 미야의 복실복실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어 준 운현이 손을 떼자 미야는 입술을 핥으며 그에게 다가간 후 요염한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어제 그건 뭐였어?"

"뭐가?"

"당신 왼손에 있던거 말야. 그거 나 다시 맛보게 해주면 안될까?"

"어... 그게 말이다."

운현은 무척이나 떨떠름한 얼굴로 힐끔 헤스티아를 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린 헤스티아가 생긋 웃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이고 미야에게 말했다.

"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 시간이 좀 필요한데 괜찮겠어?"

"진짜!? 신난다!"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미야의 모습을 보며 운현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자기 정액을 먹고도 저렇게 좋아하다니.

멋도 모르는 어린애를 타락시키는 기분에 등줄기가 짜릿해진 운현은 휙 몸을 돌린 후 대장간을 향해 걸었다.

"저기, 운현."

"응?"

"그... 왜 그렇게 걸어?"

운현이 허리를 조금 빼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자 미야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것에 아무런 대답도 못해 준 그는 쪼르르 달려 온 헤스티아가 자신의 바지 앞섬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바라보자 쓴 입맛을 다셨다.

'이게 던전이면 괜찮은데 사람 많은데서 이러니 쪽팔리는구만...'

자신의 자세를 보고 거리를 걷던 여인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것에 운현은 황급히 속으로 애국가를 열창해 부풀어 오른 남성을 죽였다.

"후우..."

"정말... 어제 밤에도 그렇게 해놓고 또 그래요? 평소와 다르게 나갔다 와서 또 해놓구선..."

조금 토라진 헤스티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어제 던전에서 오자마자, 그리고 밤에 갑자기 자신을 안아놓고도 이렇게 서버리다니. 운현의 정력에 감탄하면서도 자기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싶어진 헤스티아가 시무룩해지자 운현은 그녀의 이마에 키스한 후 말했다.

"남자는 언제 어디서든 힘을 주어야 하는 법."

"...어서 가요."

"응."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헤스티아에게 웃어준 후 운현은 퀘스트를 신청한 대장간을 찾았다. 지도에 의하면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대장간 이름이 뭐였죠?"

"할더크의 대장간."

"저거 아니에요?"

운현이 이름을 말하자 헤스티아는 손을 들어 한 건물을 가리켰다. 그곳으로 향한 운현은 간판의 글자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찾았네. 여기 맞아."

농기구와 무기, 철과 그 외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을 좌판에 깔아 놓은 대장간 안으로 들어간 운현은 후끈거리는 열기에 눈쌀을 찌푸렸다.

"후우. 대장간이라 그런가."

"손님? 남자 손님은 처음인데."

운현이 안으로 들어오자 큰 덩치에 근육질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와우!"

"뭐, 뭐야! 갑자기 사람을 보자마자."

하얀 수건으로 감싼 머리 밑에 내려 온 붉은색 짧은 머리칼, 짙은 눈썹과 단단한 의지가 돋보이는 붉은 눈. 꽤나 정갈한 외모이지만 입꼬리는 씨익 올라가 있어 그녀의 장난기 넘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헤스티아의 머리보다 더 큰 거대한 가슴이었다.

그정도로 크면서도 전혀 처지지 않고 탱탱히 자리를 잡고 있는 그 멋진 광경에 운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기에 저 과격함이라니.

상의를 입지 않고 청색 멜빵바지만 입고 있어 간신히 유두를 가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야... 이건 정말... 정말이지... 어우야..."

"오, 옷 좀 입고 있어요!"

"대장간 일 하려면 더워서. 그런데 남자라니... 호오. 이거 정말... 귀엽게 생긴 남잔데?"

운현도 작은 키가 아닌데 그녀는 운현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2미터는 넘어보이는 여인이 싱글거리며 다가오자 운현은 퀘스트 발주서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퀘스트때문에 왔습니다만."

시선을 그녀의 가슴에 유지하며 운현이 말하자 그녀는 꺄르륵 웃고는 팔짱을 껴 그 큰 가슴을 더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뭐야. 남창 아니었어? 기분 잡치게... 그치만 귀여우니까 봐줬다. 일단 들어와."

운현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그녀는 그의 말에 혀를 찬 후 그대로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이야~"

"뭘 그리 감탄해요!?"

헤스티아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본 후 그의 옆구리를 콱 꼬집었지만 운현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금 보았던 박력있던 가슴을 떠올렸다.

"단언컨데 내가 이 곳에 온 이후로 본 가슴 중에 최고다..."

"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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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

"어서와. 가게 이름에서 알겠지만 난 할더크라고 한다."

"반갑습니다. 운현입니다."

할더크와 악수를 하면서도 운현은 할더크의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세상에... 저렇게 크면서 저 모양이라니... 흑흑. 정말 살아있어서...'

"끄억!"

"그만 좀 보지 그래?"

헤스티아의 손으로 꼬집어봐야 아프지도 않았기에 무시할 수 있었던 운현이었지만 헤스티아가 아닌 미야의 꼬집기는 버틸 수 없었다.

"잘했어요! 미야."

"후후. 별 말씀을."

"끙. 가슴은 정의라고! 정의를 추구하는게 뭐가 나빠!"

"풉! 너 정말 웃기는 녀석이구나? 그렇게 가슴이 좋아? 한번 만져볼래?"

"정말요!? 아싸!"

운현의 의 말에 피식 웃은 할더크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것에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신나하자 할더크는 묘한 웃음을 지은 후 톡 자신의 어깨에 걸려 있는 멜빵바지의 단추를 풀었다.

"와우! 굿! 최고에....퍽!"

"좀 얌전히 있어라. 응? 그리고 저렇게 큰 가슴이 뭐가 좋은거야? 전투에 방해만 되고 무거워서 어깨만 무겁고. 허리에도 안좋다고."

힐더크의 가슴을 죽일 듯 노려보며 그녀가 말했지만 운현은 고통에 신음하느라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끄어억..."

꼬집는 수준이 아니라 옆구리에 주먹이 꽂힌다. 운현이 옆으로 틀어지며 고통스러워하자 헤스티아는 깔깔 웃고 있는 할더크에게 외쳤다.

"할더크씨! 그만 좀 하세요!"

"하하하하! 남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 재밌어서 그만. 알았어. 이제 그만하지."

할더크는 근처에 있는 자신의 셔츠를 대충 걸쳐 입었다. 자연스레 가려지게 되었지만 셔츠 위로 보이는 그 엄청난 존재감에 운현은 주륵 흐르는 침을 닦은 후 물었다.

"흠흠. 잠시 이성을 잃었네요. 그보다 의뢰하시고 싶은 일이 뭔가요?"

"아. 고블린의 장비를 조사하고 싶어서 말이지. 고블린의 버클레 열다섯개와 고블린 숏소드 열자루를 가져다주겠어? 보수로는... 어디보자. 거기 묘족 아가씨. 격투가인 것 같은데 장비가 좋아보이지 않는데 말야. 이걸 주지. 어때?"

할더크는 미야의 노출 심한 장비를 보고 가죽 갑옷 세트를 꺼내었다. 상갑, 하갑, 견갑, 부츠, 암가드까지 세트로 되어 있는 상자를 들어 올리며 그녀가 말하자 운현은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됐구요."

"왜!?"

할더크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미야는 운현의 말에 크게 놀랬다.

"서, 설마 그 말을 실현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난 죽어도 그런 장비는 못입어!"

미야가 당황하며 말하자 운현은 뭔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떠올랐다. 용병 연합의 헬하운드 정예들이 입던 갑옷. 그 노출 심한 비키니 갑옷을 입은 미야를 상상한 운현은 입맛을 다신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무지하게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할더크씨. 강철 실을 구매하고 싶은데요."

"응? 그건 왜?"

"저는 도적이라서 말이죠. 함정 설치를 위해서 필요합니다."

"흐음... 도적이라고? 네가?"

"네."

운현을 위 아래로 흝어 본 할더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네가 모험가라는 것도 믿기지가 않는데 도적이라... 이거 상아씨가 알면 난리가 나겠군.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강철 실? 미안하지만 그건 좀 어렵겠는데."

"왜죠?"

어차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란펠지도 대장간과 친분을 다진 후에나 얻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아. 강철로 실을 만드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지금 재고도 없을 뿐더러 재료가 있어도 너처럼 풋내기로 보이는 모험가에게 맡기기에는 아쉽지."

"푸, 풋내기..."

"강철로 실을 뽑아내는 기술은 대장장이들이 수천, 수만일을 고민하여 이뤄낸 기술이야. 그걸 그냥 사고 싶습니다. 라고 해서 팔 수 있을 것 같아? 최소한 어느정도 실력이 있는지는 보여줘야지. 아무것도 없는 풋내기에게 넘겼다간 우리의 노력이 운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들었다. 운현은 할더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여자 좋아하세요?"

"아니. 남자가 최고지. 짜릿해. 늘 새로워."

"그런데 왜..."

"뭐야. 너 내가 남자라고 해서 그냥 하하호호 좋아할 줄 알았단 말야? 물론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얘기가 다르지. 하지만 난 이 대장간의 주인이고 대장장이들을 이끄는 입장이라고. 그들의 모범을 보여야하는 내가 남자가 요청한다고 그냥 해 줄 이유는 없지."

할더크는 조금 기분이 상했는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아. 죄송합니다. 기분을 상하게 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 좋은 것을 알았다. 모험가 길드에서는 남자 모험가라고 하면 다들 호감을 갖지만 바깥에서는 무조건적인 호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할더크와의 만남은 큰 가치가 있었다.

"호? 그래도 남자치고는 예의가 바르네. 대부분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짜증내면서 나가버리던데. 이런 착한 아이는 좋아하는 편이지."

힐더크는 운현의 사과에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곧 그녀의 구겨진 눈썹이 펴지고 힐더크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바로 사과를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겠군. 그럼 레벨만 올리고 와."

"몇이나요?"

"15. 15레벨까지 올리고 온다면 내가 퀘스트를 하나 주지. 그걸 성공한다면 강철 실을 팔아주겠어."

힐더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굳건한 기세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고블린의 버클러와 숏소드를 각각 다섯개씩 구해오는 퀘스트는 상관없는건가요?"

"응. 그건 괜찮아. 구해오면 저기 아가씨의 장비를 주지. 저레벨때 사용하기 좋은 아이템이니까 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그래.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힐더크의 배웅을 받으며 대장간에서 나온 운현일행은 바로 던전 입구의 시장으로 향했다.

"한바퀴 돌고 가자. 흰 거미의 실타래나 함정 설치용 재료가 있으면 있는대로 구입해줘."

운현은 헤스티아와 미야에게 각각 3골드씩을 주었다. 그녀들이 각각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운현도 방향을 하나 잡고 시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제와 다르게 흰 거미의 실타래를 파는 이들은 꽤 있었다. 스무개 정도 구매를 해 가방에 넣은 운현이 던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미야와 헤스티아가 돌아왔다.

"난 열개 샀어."

"저는 열 세개요."

"좋아. 이정도면 괜찮네."

사십개가 넘는 실타래가 있으니 걱정이 없다. 운현은 싱글벙글 웃으며 던전 안으로 들어간 후 미야와 헤스티아에게 말했다.

"자. 그럼 늑대를 잡으러 가자."

"응? 늑대?"

"늑대는 왜요?"

"늑대 발톱이랑 늑대 이빨 구해야 해."

고블린과 전투를 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가시줄 함정을 만들 때 늑대 발톱과 이빨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 운현은 늑대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바로 전투를 시작했다.

어제 고블린을 잡으며 합을 맞춘 덕분인지 함정을 쓰지 않고, 꽤나 여유있게 근처의 늑대를 모조리 잡아버린 후 미야가 늑대 사체를 해체하여 발톱과 이빨을 구하는 동안 운현과 헤스티아는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운현씨."

"응? 왜?"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던 운현은 헤스티아의 부름에 그녀에게 시선을 보냈다.

"운현씨. 저번에도 물어봤지만 솔직히 말씀해주셨으면 해요."

"뭔데 그렇게 진지해?"

"큰 가슴... 좋아하시나요?"

"너무 좋아! 라고 하면 화를 내겠지? 내 대답은 똑같아. 큰 가슴 작은 가슴 가리지 않아."

"호불호가 있을 거 아니에요."

"없어. 그딴거."

아까 힐더크 때문에 자신감이 많이 줄은 모양이다. 물론 헤스티아 역시 체구에 비하면 꽤나 큰 가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현의 손에 꽉 차는 정도에 불과했기에 힐더크와 비교한다면 당연히 작다고 할 수 있었다.

"자자. 이리 와봐."

"....."

말없이 헤스티아가 다가오자 운현은 그녀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 앉혔다. 자연스레 그의 품에 안기게된 헤스티아는 못이기는 척 그의 가슴에 등을 가져다 대었다.

"그렇게 작은게 불만이라면... 여기에도 같은 얘기가 있는지는 모르겠네."

"무슨 얘기요?"

"남자가 가슴을 주물러주면 커진다는..."

"뭐!? 그게 정말이야!?"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달려 온 미야가 상기된 얼굴로 묻자 운현은 질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가슴 커지는거 싫지 않아?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

"그건 전투할때 얘기고! 당연히 작은 것보다 큰게 좋지! 그걸 말이라고 해!? 넌 누가 너보고 큰 꼬추 작은 꼬추 선택하라고 하면 뭐 선택할거야!"

"그야 당연히 큰거지."

생각할 가치도 없다. 운현은 단번에 대답했다.

"거봐."

으스대며 미야가 말하자 운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인지 어처구니가 없어진 그는 당당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미야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 왜."

"아니. 그냥 하던 일이나 마저 하세요."

"나중에 나도 주물러주는거다!? 꼭!"

"알았어. 그러니까 좀 가라. 응?"

미야가 다시 늑대 발톱과 이빨을 회수하러 가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쟤는 왜 저럴까..."

"그, 그런데 운현씨. 그게 정말이에요?"

"음. 뭐 거의 미신에 가까운 얘기라고는 하지만... 일설에는 그래도 어느정도까지는 커진다고 하더라고."

인터넷에서 읽었던 정보이니 그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가슴이 커지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게 유전자 라는 얘기가 가장 처음에 있었고 그 이후에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면 열심히 마사지를 하세요. 라는 말이 있었던 것을 떠올린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차분히 말했다.

"그 뭐시냐. 잘 기억은 안나는데 여성의 호르몬? 뭐 쾌감을 얻을 때마다 호르몬이 작용해서 젖을 분비하기 위한 가슴이 커진다는 그런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럼 어서 해주세요."

"근데 그거 목욕 후에 해야 된데."

열심히 머리를 굴려 그때의 기억을 대략적으로 떠올린 운현이 말하자 헤스티아는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럼 오늘 꼭 부탁드려요!"

"그럼 오늘도 같이 목욕하는거야?"

"그, 어. 어쩔 수 없죠."

어제 기억을 떠올리며 헤스티아는 얼굴을 붉혔다. 그것에 운현이 능글맞은 웃음을 짓자 헤스티아는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그의 딱딱한 남성에 짖궂게 웃으며 살짝 엉덩이를 움직여 그의 양물을 자극했다.

"후후후. 정말 야하다니까요. 자. 미야가 다 모은 것 같아요. 어서 가자구요~"

"으. 그냥 가려고?"

"힘들어요?"

"응."

"휴... 조금만 참아줘요. 저, 저도 하고 싶다구요..."

운현의 귓가에 속삭인 헤스티아는 그의 볼에 쪽 키스하고 생긋 웃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쩌겠는가. 운현은 다시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남성을 가라앉힌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빨 사십개랑 발톱 칠십개. 이정도면 어때?"

"훌륭하다."

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 칭찬해 준 운현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발톱과 이빨을 가방에 넣은 후 고블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고블린이 출몰하는 구역에 도착한 운현은 재료들을 이용해 절반을 가시 줄 함정카드로 바꾼 후 전투를 시작했다.

가시 줄 함정과 일반 함정이 연계된 전투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틈나는대로 스틸을 사용하여 고블린의 장비를 훔쳐내 힐더크의 의뢰를 준비하던 운현은 수풀이 들썩거리자 움찔하며 미야에게 외쳤다.

"미야! 적이 난입할지도 몰라!"

"이얍!"

상대하던 고블린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린 미야는 훌쩍 뛰어올라 운현의 곁으로 왔다.

"저기에는 함정이 있으니까 함정에 걸리면 바로 공격이다. 헤스티아. 너도 준비해둬. 가장 왼쪽의 고블린부터 잡는다."

두마리든 세마리든, 일단 일점사로 한놈을 최대한 빨리 잡아야 전투가 편해진다. 일반 함정, 단체 공격, 바인딩, 단체 공격, 가시 줄 함정, 단체 공격, 바인딩, 운현이 막타. 나머지 단체 공격의 방식으로 전투를 이끌어 온 운현이 다시 한번 시작지점을 정하자 헤스티아와 미야는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아~ 여긴 어디..."

"촤아아악!"

수풀에서 나온 것은 고블린이 아닌 검은 머리의 수인 검사, 금발 머리의 전사, 그리고 녹발의 궁사였다. 그들이 수풀에서 나오자 설치되어 있는 함정이 발동되어 그들의 몸을 묶었다.

"꺄아악!"

"이게 뭐야!? 함정!?"

"고블린인가!... 가 아니네. 뭐야. 운현. 당신이었어요?"

함정이 자신들의 몸을 포박하자 당황한 여인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에 운현은 달려들려는 미야를 막았다.

"어라? 아르?"

48====================

Quest

어제 만났던 파티. 아르와 루티, 헤라가 하얀 실로 묶여 있는 것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긴 왜 온거야?"

"무슨 소리야! 여기가 고블린 출몰 지역이잖아! 어서 이거 풀어줘!"

꽁꽁 묶인 헤라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운현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게 말이지. 아직 함정해제 스킬이 없어서."

"앙?"

"좀 기다려줘. 금방 해제될거야."

'구속 플레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또 이래 놓고 보니...'

함정에 걸려 포박되어버린 세 여인을 보며 운현은 입맛을 다셨다. 갑옷을 입은 헤라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르나 루티의 몸은 이상할 정도로 야하게 가슴과 그 외의 다른 부위를 절묘하게 부각시키며 포박되어 있었다.

"......"

"...눈빛이 뭔가 이상한데요?"

운현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움찔한 아르는 귀를 쫑긋 세우며 그를 보고 말했다. 그것에 시선을 회피한 운현은 시간이 지나 함정이 풀리자 주저앉아 있는 아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자. 일어나라고."

"아. 고마워요."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정말 좋은 구경을 했다. 나중에 헤스티아나 미야에게도 함정을 써봐야겠다. 라고 생각한 운현은 주섬주섬 일어난 아르 일행들을 보며 물었다.

"고블린 처치하러 온거야?"

"네."

"그럼 고블린 처치나 하지 왜 남의 함정을..."

"함정이 있는 줄 알았나요!"

"딱 보면 안보여?"

"안보여요! 함정 탐지 스킬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봐요!?"

아르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함정을 설치한 곳은 흰색으로 바닥이 생긴다. 그것을 눈치못챈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운현은 휙 고개를 돌려 미야와 헤스티아를 보았다.

"지금까지 함정 설치한거 안보였어?"

"응."

"네."

"...잠깐만. 근데 미야. 넌 함정 범위를 어떻게 알고 피한거야?"

"그냥 당신 있는데까지 뛰어 온건데?"

운현이 자기 발밑에 함정을 설치할리 없으니 아예 그의 근처까지 와 함정의 범위에서 벗어났다는 미야의 말에 운현은 입을 다물었다.

'이건 또 예상 밖이네...'

자신이 설치한 함정만 이렇게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함정도 보이는 것인가. 아직까지 자신 외의 도적 클래스를 만나본 적이 없는 운현으로서는 그저 깝깝할 뿐 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지금 이걸 고민해봤자 의미는 없었다. 운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사요나라 짜이찌엔 바이바이"

"어. 잠깐만."

운현이 대충 말해주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아르는 그의 어깨를 턱 잡았다.

"왜?"

"이왕 이렇게 만난거 같이 사냥할래요?"

"어... 미안하지만 내 꼬추가 좀 바빠서..."

헤스티아가 흥분하면 그녀를 안아주는게 우선이다. 미야야 어떻게 버티고, 수인족인 아르가 버틴다고 하더라도 헤라나 루티까지 안아주기에는 운현으로서도 시간상 그리 좋지 않았다. 거기에 헤스티아와 미야와 함께만 해도 충분히 고블린을 잡을 수 있는데 굳이 이들까지 낄 필요가 있겠는가.

"끙. 흥분 해소시켜달라는 거 아니에요. 우리 여섯이 함께 전투를 한다면 더 빨리 고블린을 잡을 수 있잖아요. 안그래요?"

"그렇긴 하지만."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이긴 했다. 하지만 굳이? 운현이 망설이는 듯 보이자 아르는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말했다.

"이렇게 하죠. 전투를 통해 얻는 사체와 코어의 1/3만 저희가 받을게요. 그 대신 저희들에게는 고블린 갑옷과 투구를 주세요."

"허. 그걸 원하는 걸 보니 퀘스트 중인가보네?"

운현도 고블린의 버클러와 숏소드를 구하는 퀘스트를 진행중이었다. 그의 말에 아르는 고개를 끄덕인 후 헤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홉고블린을 잡고 싶은데 홉 고블린의 공격을 막기에 헤라의 장비가 너무 안좋아서요. 그 퀘스트를 수행하면 좋은 방패와 흉갑을 얻을 수 있어요."

"흐음."

아쉬운 쪽은 아르의 파티다. 운현은 잠시 생각한 후 헤스티아와 미야에게 의견을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고블린을 잡는 정도는 지금처럼 셋이 해도 상관없겠지만 점점 몬스터들이 강해지면 우리 셋으로는 힘들거야. 다른 파티원들을 모집한다는 걸 감안하고 연습한다 생각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전투에서 얻는 경험치는 나중에라도 얻을 수 있잖아요? 지금 저희에게 급한 것은 운현씨가 빨리 함정 재료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야와 헤스티아가 동의하자 운현은 마음을 굳혔다.

"좋아. 같이 파티를 하자. 아. 혹시 늑대 이빨이나 발톱 가진 거 있어?"

이왕 파티를 하는거 재료도 좀 얻을 생각에 운현이 물었고 아르는 그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것에 꼬리를 붕붕 흔들며 기뻐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왜요?"

"함정의 재료로 쓰이는거라서. 있으면 좀 팔아."

"음. 어제 늑대를 잔뜩 잡기는 했지만 아직 처리를 못해서 없는데..."

"늑대를 잡았어? 그럼 사체에서 채집하면 되잖아."

"우리 중에는 채집할 수 있는 사람 없어요. 그리고 다 마석에 넣어놔서 사체를 꺼낼 수도 없구요."

아르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마석 안에 사체를 넣어뒀다라는 것은 그것을 빼려면 또 모험가 길드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음... 어쩌지."

"어. 저 마석에서 사체를 꺼낼 수 있는데요?"

운현이 고민하자 헤스티아는 밝은 얼굴로 손을 들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마석의 컨트롤은 마법사의 기본인데요?"

"근데 왜 안말해줬어?"

"운현씨가 마석에서 몬스터 사체를 빼야 한다는 말을 안하셔서..."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한 헤스티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운현은 아차 싶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꼭 안았다.

"이야~ 우리 헤스티아는 능력도 좋지~ 이런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네~"

"에. 에헤헤헤헤~"

운현이 화를 내는 것으로만 알았던 헤스티아는 그가 그저 놀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하며 그의 품에서 베시시 웃었다. 그것을 미야를 비롯한 다른 여인들이 부럽다는 듯 쳐다보자 운현은 헤스티아를 놓아준 후 말했다.

"그럼 마석 다 줘봐. 개당 1실버씩 해서 내가 다 살게."

"오. 뭐 그렇게 하세요."

헤스티아가 마석에서 늑대의 사체를 꺼내고 미야가 발톱과 이빨을 정리하여 그것을 운현에게 가져오자 운현은 그 대금을 아르에게 넘겼다. 간단하게 거래가 끝나자 운현은 팔을 붕붕 돌린 후 히죽 웃었다.

"그럼 전투 시작이네. 음... 일단은 그냥 해볼까? 루티씨는..."

"아. 말 편하게 해도 돼."

"나도."

아르에게는 말을 편하게 하면서 자신들에게는 존대하려는 운현에게 루티와 헤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편하게 할게. 자. 루티는 헤스티아랑 같은 위치에 있고 헤라는 미야랑 같이. 그리고 아르는 나랑 같이 움직이자."

"알겠어요. 그럼 전투 지휘와 지시는 어떻게 할거에요? 운현씨가?"

"응. 내가 할게. 고블린을 데리고 올테니까 다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줘."

남의 지시를 받느니 자신이 지시를 내리는 것이 좋다. 운현이 설치한 함정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그것을 볼 수 있는 운현이 지휘를 하는게 더 좋았기에 아르와 루티, 헤라는 별 불만 없이 그의 의견을 따랐다.

"어디보자..."

수풀을 넘어 조금 걸어간 운현은 마침 일곱마리의 고블린들이 사슴을 뜯어먹는 것을 발견했다. 저들을 한번에 끌고 오려면? 운현은 히죽 웃은 후 사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틸!"

"캬아아!"

"캬륵!"

"키아아악!"

한참 먹던 사슴의 시체가 사라지자 고블린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괴성을 내질렀다. 무척이나 화가 난 듯한 그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살기 등등한 기세로 달려오자 운현은 빠르게 뛰어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곱이 온다!"

"후우. 긴장되는걸?"

"그래도 탱커가 둘이니 잘 되겠지."

적들을 선두에서 막아야 하는 탱커진인 미야와 헤라는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첫 도발은 헤라가 해! 헤라가 놓친 고블린은 미야가 잡는다! 전투 준비!"

수풀이 흔들리자 빠르게 그들에게 지시를 내린 운현은 단검을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잠시 후, 수풀에서 고블린들이 튀어나오자 운현은 날카롭게 외쳤다.

"시작! 긴장 풀지 말라고!!"

"후아아... 일곱마리나 되는 고블린을 이렇게 빨리 잡다니..."

후방지원이 강해지고 가시 줄 함정의 지속 데미지, 탱커가 둘에 아르의 지원, 그리고 이어지는 함정의 구속과 스틸의 방어력 및 공격력 약화 덕분에 일곱마리의 고블린을 잡는 속도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에 놀란 아르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후 팔짱을 끼고 전투를 복기하는 운현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운현씨. 운현씨의 파티는 항상 이런 식으로 전투를 하나요?"

"응? 아. 응."

"굉장하네요..."

일단 함정을 설치하는 도적이 직접 전투에 참가해 상황을 유기적으로 판단하여 함정을 설치하고, 위기시에 스틸로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전투의 위험이 상당히 줄었다. 그리고 그의 가시 줄 함정. 한번에 세, 넷씩 고블린을 묶어버려 그들의 체력을 깍아내린 덕분인지 공격을 하는 것이 무척 수월했다.

"이거 운현씨랑 같이 다니면 굉장히 든든하겠는데요? 혹시 클랜 만드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음. 아직은. 그보다 조금 얘기할게 있는데 말이지. 이번에는 방법을 좀 다르게 해보자."

아르와 운현이 다음 전투에 대한 토론을 하는 동안 미야와 헤라, 루티와 헤스티아는 고블린의 장비를 해체해 한곳에 모아 놓은 후 고블린의 사체를 정리해나갔다.

"좋아. 그럼 이 방식대로 가자."

처음은 각자의 스킬과 위력, 그 쿨타임을 파악하기 위한 전투였으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운현이 담담히 말하자 아르는 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아."

"왜?"

"이정도로 고블린을 잡았으니... 흥분억제제를 먹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전체적으로 좀 약화될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럼 어서 먹어. 헤스티아."

"네에?"

운현이 자신을 부르자 헤스티아는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주머니에서 흥분 억제제를 꺼내놓고 물었다.

"어때? 하고싶어? 아니면 이거 먹을래?"

"으... 그게요."

로브 자락을 꽉 잡고 헤스티아는 힐끔힐끔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운현과 둘만 있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미야 뿐만 아니라 다른 파티의 사람들도 있었다. 괜히 자신의 흥분을 달랜다고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해진 그녀였지만 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그녀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머뭇거렸다.

"음. 그럼 하자."

"괘, 괜찮겠어요?"

"뭐 어때. 그냥 휴식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뭐."

운현은 헤스티아의 볼에 키스해준 후 터덜터덜 아르에게 다가갔다. 운현에 헤스티아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하고 오는 것을 보니 대충 눈치를 챘는지 아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시게요?"

"응. 해야될 것 같은데. 미안. 시간 괜찮겠어? 정 뭐하면 너희들끼리라도 전투를..."

"아뇨. 저희끼리 전투를 하는 것보다 운현씨와 헤스티아씨가 하고 오는 것을 기다리는게 더 빠를 것 같네요. 그럼 즐거운 한때를 보내시길..."

"이거 고맙구만. 그 보답으로 코어는 반씩 나누는 걸로 하자."

"오! 괜찮겠어요?"

운현 덕분에 빠른 전투를 하게 되어 꽤 이득을 보게 된 아르는 운현의 말에 기뻐했다.

"응. 시간은 금이니 그건 지켜줘야지. 자자. 그럼 다녀올게."

운현이 씩 웃으며 몸을 돌려 걸어가자 미야는 턱 그의 팔을 잡았다.

"엥? 왜? 너도 해줘?"

"아니 그게말이지."

미야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의 귀에 속삭였다.

"가슴 마사지는 언제 해줄거야?"

아까 전투를 하며 헤라의 출렁거리는 가슴을 본것 때문인지 미야가 조심스레 말했다. 운현은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말했다.

"음... 오늘은 무리겠군. 헤스티아와 선약이 있으니 말야. 내일 해줄까?"

오늘은 헤스티아를 만지고! 내일은 미야를 만지고! 그야말로 꿈같은 일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필레와 데이트다.

원래 세계에서는 인연도 없던 미녀들과 이렇게 꿈같은 나날을 벌이게 되다니. 운현은 미야의 미모를 보며 히죽히죽 거렸다.

"헤헤~ 고마워!"

운현의 대답에 미야는 활짝 웃은 후 그의 볼을 핥았다. 처음으로 하는 미야와의 스킨쉽에 당황한 그가 주춤 뒤로 물러나자 미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 아니 갑자기 이러니까 좀 당황스럽네."

"후후.

장난기 가득한 미소와 함게 요염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 미야가 손을 놔주자 운현은 괜스레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다른 여인들이야 그냥 하룻밤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지만 미야는 함께 해야 할 파티원이다. 그녀가 과연 어떻게 변할까? 라는 상상을 하며 운현은 헤스티아의 손을 잡았다.

"운현씨..."

"응?"

"그, 미야씨랑도 하실 건가요?"

"응. 할건데."

"으으... 각오는 했지만 그래도 맘이 아프네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잔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에도 말릴 수 없었다. 헤스티아가 잔뜩 풀이 죽은 채 중얼거리듯 말하자 운현은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런 정도는 이해해줘야지. 네가 싫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뇨? 그럼 안하시는 건가요?"

"응. 안하고 파티 깰건데."

"......."

"헤스티아. 미안하지만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운현이 말을 꺼내려 하자 헤스티아는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해요. 이런 감정의 강요는 운현씨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뿐인데..."

"알고 있다면 지켜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널 소홀히 할 생각은 없어. 너 역시 내 소중한 동료니까."

"동료... 인가요."

"응. 아직은."

운현의 말에 헤스티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오히려 힘이 담긴 듯 보였다.

"아직은 이라는 것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겠죠? 그럼 전 포기하지 않을래요."

"후후후. 잘 해봐."

헤스티아 정도의 미녀가 자신을 계속해서 좋아해주겠다는 말에 기분이 나쁠리가 있겠는가. 운현은 뿌듯해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수풀 안쪽으로 들어갔다.

49====================

Quest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할려니 또 흥분되는구만."

"그, 더! 더 가요!"

"더 갔다가 고블린이라도 나오면 도망치기 힘들어."

운현의 짖궂은 말에 헤스티아의 볼이 붉어졌다. 자신의 손을 이끌고 가려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아 준 운현은 헤스티아의 머리칼에 얼굴을 가져갔다.

"흐으음~ 냄새 좋고~"

"으... 땀흘렸는데..."

"흐으음~ 땀냄새 좋고~"

"...정말..."

운현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헤스티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든지 이렇게 사람의 기분을 풀어 줄 수 있는 운현이 참 신기하고, 또 사랑스러웠다. 살며시 몸을 돌린 헤스티아는 운현의 품에 안긴 후 속삭였다.

"정말 그렇게 좋아요? 땀 냄새가?"

"좋냐 싫냐 물어보면 당연히 좋지. 성적 흥분도를 자극하는 향기거든."

"아이~ 간지러워요!"

운현의 손이 겨드랑이로 들어가 간지럽히기 시작하자 헤스티아는 꺄르륵 웃으며 그의 품에서 앙탈을 부렸다. 그렇게 장난치며 끌어안고 있던 운현은 헤스티아의 둔부가 살짝살짝 자신의 남성을 문지르자 히죽 웃었다.

"일부러 그런거야?"

"뭐, 뭐가요?"

"모른 척 할 생각이라면 됐어. 그런 걸로 알지."

"우..."

이미 몸이 달아오른 헤스티아였다. 이정도로 만족할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운현은 슬슬 때가 되었다 싶어 헤스티아의 로브를 벗겨내었다.

"흐음..."

"왜, 왜요?"

운현이 자신의 옷을 빤히 바라보자 헤스티아는 움찔하며 양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요! 자, 작아서 그런거에요!?"

"응? 아냐. 그런건 아니고. 뭐랄까..."

"......"

"언제 홀딱 벗겨놓고 로브만 입혀보지?"

"아아아아! 정말! 자꾸 그런 변태같은 얘기할 거에요!?"

일전에도 운현이 자신의 옷을 일부러 더럽혔던 적이 있었던 것을 떠올린 헤스티아는 화를 내며 그의 가슴을 토닥거렸다. 그런 그녀를 끌어안아주며 이마에 키스한 운현은 헤스티아의 탄력적인 둔부를 치마 위로 주무르며 말했다.

"그래. 다 양보해서 전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속옷만이라도 벗고 다녀주면 안될까?"

"당연한 소리를 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만해도 수치심이 가득해진다. 헤스티아가 격렬히 싫어하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바, 방에서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요. 운현씨가 원한다면 상황극이라도..."

"아니 난 밖에서 네가 노팬티에 노브라로 다니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라서. 뭐, 열심히 꼬시면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 해도 안돼요! 자꾸 이상한 소리 할거에요!? 진짜! 진짜아아!"

제대로 열이 받은 모양이다. 헤스티아가 험악한 얼굴을 하고 소리치려 하자 운현은 그녀를 끌어안고 잽싸게 키스했다.

처음으로 헤스티아가 입술을 꾹 다물고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운현의 혀가 자신의 입술을 연신 자극하자 헤스티아의 입술은 못이기는 척 천천히 벌려졌고 그녀의 설육은 입술이 열리자마자 튀어나와 운현의 혀를 반겼다.

"으음...쭈룹...춥...쭙..."

달콤하고 찐득한 키스가 천천히 끊어진다. 운현의 혀를 물고 핥으며 타액을 교환하던 헤스티아는 그의 입술이 떨어지자 살며시 고개를 돌린 후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매번 이런 식으로..."

"싫은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요. 그래도..."

"그래도 뭐?"

"...됐어요. 좀 더 진지해 줄 수 없는거에요?"

"진지라..."

운현은 헤스티아의 투덜거림에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한 후 눈을 감았다 떴다.

"좋아. 진지해졌다."

"그게 그렇게 쉽게 돼요!?"

"헤스티아."

낮은 저음의 차분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헤스티아는 화를 내던 것도 잊고 움찔 어깨를 떨었다.

"날 봐줘. 헤스티아."

"으으..."

묘한 마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운현의 목소리는 헤스티아의 몸을 강제했다. 천천히 돌려진 고개가 운현의 얼굴을 응시한다.

"아..."

늘상 짓고 있는 장난기 어린 표정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에는 오로지 자신만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것에 헤스티아가 부르르 몸을 떨자 운현은 그녀를 꽉 끌어안은 후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만은 너만을 생각하겠어."

"운현씨..."

달콤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다. 그의 말이 자신의 귀를 타고 흘러와 온 몸에 퍼졌고 헤스티아는 운현의 품에서 그의 향기를 맡으며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운현씨... 운현씨..."

"헤스티아... 으음..."

헤스티아가 키스를 하자 운현은 그녀를 받아주며 천천히 탄력적인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길이 옷의 단추를 풀고 치마를 내리는 것에도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않은 채 키스에만 열중하던 헤스티아는 운현의 딱딱한 남성이 자신의 배를 톡톡 치자 베시시 웃었다.

"늘 운현씨가 해주셨으니까 오늘은 제가 먼저 해드릴게요."

"응. 고마워."

"별말씀을요."

운현을 밀어 나무에 기대게 한 후 헤스티아는 쪼그려 앉았다. 양 다리를 벌려 이미 젖을대로 젖은 팬티의 갈라진 사이를 한번 꾹 눌러 몰려오는 흥분을 가라앉힌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운현의 허리띠를 천천히 풀었다.

"후후후... 굉장한 냄새. 운현씨도 힘들었죠?"

"응. 아무래도... 어서 해줘."

"재촉하지 말아요. 흐읏... 쪽."

시작의 의미로 운현의 양물에 키스한 헤스티아는 고운 손으로 그의 남성을 가볍게 잡고 위 아래로 흝었다. 애정이 듬뿍 넘치는 손길에 운현이 움찔하자 그것을 본 헤스티아는 귀엽다는 듯 웃으며 빨간 혀를 내밀어 그의 양물을 천천히 핥았다.

"핥짝, 츱. 쭈룹... 하음."

그의 양물에서 느껴지는 고동과 열기에 흥분하여 기둥쪽을 천천히 흝던 헤스티아는 결국 못참겠다는 듯 군침을 삼킨 후 운현의 남성을 입에 물었다.

"으읍..."

입 안 가득 느껴지는 짭짤한 땀의 맛에도 헤스티아는 오히려 흥분이 더욱 배가되는 것을 느꼈다.

헤스티아가 쪼그려 앉은 바닥에는 그녀의 계곡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검은 원을 새기고 있었다.

그런 것도 알지 못한 채 헤스티아는 살짝 눈을 치켜뜨고 운현을 바라보며 그의 남성을 애무하는데에만 집중했다. 한 손은 양물을 흝고, 다른 한 손은 두개의 알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자극시키며 입 안에 넣은 양물을 혀로 콕콕 건드리던 그녀는 살며시 입 안에 그것을 전부 넣으려 하였다.

"오오옷..."

입술과 남성이 찰싹 달라붙은 상태에서 그녀의 입 안에서는 혀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진공상태가 되어버린 입 안에서 자신의 남성이 자극받자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토해내었다.

"푸하... 핥짝. 어때요? 좋으신가요?"

"흐으으... 응. 최, 최고야. 한번 더 해줘."

"후후후후~ 알았어요~"

운현의 다급한 말에 헤스티아는 자신의 타액으로 미끌거리는 그의 남성을 빠르게 흝으며 다시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이 천천히가 아닌, 빠르게 고개를 흔드는 것이었다.

"읏... 으으..."

하복부에서 차오르는 쾌감에 운현은 정신을 놓을 뻔 했다. 간신히 헤스티아의 머리를 잡아 그녀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운현은 의문을 품고 자신을 바라보는 헤스티아에게 감탄하며 말했다.

"혹시 연습이라도 했어?"

"읏... 으어어아이..."

"빼고 얘기해봐."

"그, 그런거 아니에요. 그냥..."

"그냥?"

"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좀..."

얼굴을 붉히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하자 운현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 웃음에 더더욱 얼굴을 붉힌 헤스티아는 뾰로통한 얼굴로 다시 그의 남성을 입에 넣고 펠라치오를 시작했다.

"쭈릅...춥...쭙..."

다시 이어지는 격렬한 펠라치오에 운현은 눈을 꼭 감고 그 쾌감을 즐겼다. 하복부에서 점점 쾌감이 차오른다. 운현은 사정감이 절정에 달하자 헤스티아의 머리를 꽉 잡고 그대로 사정했다.

"우웁! 쿨럭! 쭙... 너무 많아..."

다 받아 먹으려 했지만 뜨거운 정액이 목구멍을 자극한 탓에 결국 기침을 하느라 남성을 놓쳐버린 헤스티아는 운현의 남성에서 쏘아진 정액이 얼굴에 잔뜩 뭍자 아깝다는 듯 혀를 내밀어 흘러내린 정액을 핥아 먹었다.

"꿀꺽..."

"이런. 미안."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해봤자 설득력 없거든요? 하음... 쪽."

얇은 턱을 타고 내려가는 하얀 정액을 손가락으로 닦아 입에 넣은 헤스티아는 투덜거리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러니까..."

"응?"

"이번에는 확실히... 여기에 넣어주세요."

로브 위에 쪼그려 앉은 헤스티아는 천천히 흠뻑 젖은 팬티를 벗어 옆에 놓고 자신의 로브 위에 앉아 양 다리를 벌린 후 투명한 애액이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도톰한 계곡을 살짝 벌렸다.

그 에로한 광경에 운현이 침을 꿀꺽 삼키자 헤스티아는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핥고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 안하실 거에요?"

"그럴리가!"

"꺄악~!"

새된 비명소리를 내지르는 헤스티아를 끌어안으며 운현은 자신의 남성을 그대로 그녀의 계곡 안에 밀어 넣었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많이 익숙해지 헤스티아의 계곡은 운현의 남성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아아아..."

"으읏...으응...하으으으~"

수천개의 주름이 자신의 남성을 꽉 물어오는 것에 운현은 쾌감보다는 편안함을 느꼈다.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 동정이었던 자신이 이제는 여성의 음부 안에서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될 줄이야. 달아오른 얼굴로 뜨거운 숨을 내뿜는 헤스티아의 입술에 키스한 운현은 살며시 허리를 움직였다.

"하읏...윽..."

상냥한 듯 보이지만 잡으면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 그녀의 계곡은 운현의 남성이 밀려나고 들어올때마다 꿈틀거리며 그를 잡았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쾌감은 운현의 허리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였다.

"흣. 하윽.으응!"

달뜬 신음과 함께 헤스티아의 몸이 움찔거린다. 그럴때마다 그녀에게 키스해주며 위 아래로 흔들리는 가슴을 잡고 비틀던 운현은 헤스티아의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몰려오자 사정감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싸버렸다.

"흐아앙!"

"으읏...!"

몇번 하지도 않았는데 싸버리게 될 줄이야. 설마 조루인가? 라고 절망할 뻔 했지만 그의 남성은 여전히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으응... 더 해줘요오..."

헤스티아는 몽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운현의 얼굴을 핥았다. 따뜻하고 촉촉한 혀가 얼굴을 간지럽히는 즐거움을 느끼며 운현은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액과 정액이 윤활류가 된 탓인지 남성의 움직임이 더더욱 편해졌다. 빠르고 느리게, 이번에는 천천히 나름의 테크닉을 써가며 헤스티아를 범하던 운현은 그녀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걸리자 볼에 키스해준 후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흣... 그. 그냥요. 좋아. 좋아서어어읏...! 요옷..."

"후후. 바보."

"흐으으...운현씨는.... 안좋아요?"

"네 몸이?"

"읏... 네에..."

"좋지."

"그럼... 더 즐겨주세요. 더... 더 저에게..."

헤스티아가 말을 꺼내려는 것을 키스로 막은 운현은 허리를 거칠게 움직였다. 이제는 테크닉이고 뭐고 없다. 자신의 욕망만 채우기 위한 격력하고 과격한 피스톤에 헤스티아는 그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운현씨! 운현씨이이잇!!! 흐아아아앙!"

몸을 끌어안는 힘이 강해진다. 양물을 물고 있는 계곡의 조임이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강해지자 운현은 하마터면 쌀뻔했지만 간신히 그것을 참아내었다. 허리에 감긴 다리는 그의 남성을 더욱 더 밀어 넣기 위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자연스레 그녀의 안 깊숙한 곳에 남성을 밀어 넣은 채 운현은 헤스티아의 절정이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하아...하아..."

"아직 멀었지?"

"네에..."

쾌감으로 멍해져 있는 헤스티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빙긋 웃어 준 운현은 천천히 남성을 뽑아낸 후 헤스티아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어리둥절해 하자 운현은 헤스티아의 몸을 숙이게 한 후 탄력적인 둔부를 꽉 잡고 그대로 그녀의 안에 양물을 밀어 넣었다.

"하윽!"

후배위 자세가 되어 다시 시작된 운현의 공격에 헤스티아는 허리를 점점 숙여버렸다. 결국 그녀의 둔부를 잡은 채 운현은 피스톤질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헤스티아는 나무를 꽉 잡은 채 연신 신음성만 토해내었다.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자의 시간 효과로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자신의 품 안에서 헐떡이는 헤스티아를 바라보며 운현은 생각했다.

'저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을까?'

기존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것도 미야와 헤스티아와만 파티를 했을 때보다 상당히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탱커가 둘이 된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적의 움직임을 더 잘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되고 원딜러가 둘이라는 것은 안정적인 상태에서 폭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파티원을 모아야겠군.'

수지타산을 계산해 본 운현은 고블린 그리고 그 위의 몬스터로 얻을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해봤을 때 아직은 네명까지는 파티를 만들어도 큰 손해가 없다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문제는 파티원을 어떻게 얻느냐는건데...'

헤스티아야 운 좋게 바로 영입을 할 수 있었지만 미야를 영입하는 것도 꽤 시간이 걸려버렸다. 이제 좀 더 레벨이 오르고 시간이 지난다면 헤스티아나 미야처럼 단독으로 움직이는 파티원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차라리 쟤들을 끌어들일까...'

아르와 헤라, 루티 정도라면 파티로 받아들여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셋이서 꽤 해 와서 그런지 나름 파티간의 연계도 되고 그 외에 다른 부분에서도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그들을 고정 파티원으로 끌어들인다면 안정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손해는 좀 나겠지만...'

고블린을 아무리 사냥한다 하더라도 그에 드는 흥분억제제, 그리고 함정과 화살, 그 외에 드는 제반 비용을 따진다면 여섯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를 운용하는 것은 상당한 손해라고 볼 수 있었다. 특히 힐러가 없으니 힐링포션 비용을 생각하면 더더욱 손해라고 생각되었다.

'고블린쪽은 그냥 넘어가고 다음 사냥터에서 영입을 생각해봐야겠군.'

그때까지 새로운 파티원, 힐러면 좋겠지만 적어도 딜러를 영입하지 못한다면 저들을 통째로 영입하자 생각한 운현은 헤스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나도 슬슬 모험가 다워졌군.'

초반에 모험가는 무슨, 안정적으로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자고 했던 자신이 고작 몇일만에 이렇게 변해버렸다. 현자의 시간에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던전의 공략 뿐이라는 것에 헛웃음을 지으며 운현은 수건을 꺼내 헤스티아의 몸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자신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헤스티아가 꿈틀거렸지만 그것에도 운현은 색욕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하아..."

헤스티아의 몸을 다 닦아 준 운현은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자 운현은 그녀의 볼을 콕 찌른 후 담담히 말했다.

"이제 슬슬 가자. 다들 기다리겠어."

"으음... 네. 알겠어요.."

조금 칭얼대는 듯 보였지만 이제는 단 둘이 아니다. 파티의 일정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헤스티아는 기분 좋은 피곤함을 느끼며 몸을 일으켜 새로운 옷을 소환해 입고 운현을 보았다.

"운현씨?"

"응?"

"표정이 왜..."

"아. 아무것도 아니야. 슬슬 가볼까?"

자신의 얼굴을 보며 헤스티아가 걱정스레 묻자 운현은 대충 답해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지력이 99 감소합니다.]

"이제 좀 괜찮네요. 저번의 그 표정이라 놀랬어요."

"그냥 생각할게 좀 있어서 그런 것 뿐이야."

씨익 웃은 운현은 헤스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일행이 기다리는 곳을 향해 그녀의 손을 잡고 걸었다.

50====================

Quest

"표정 보니 잘 풀린 것 같은데?"

미야의 농담에 헤스티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잡고 있는 운현의 손을 놓지 않았고 그것에 사람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뭘 그리들 보고 있어?"

그들이 인상을 찌푸리든 말든 운현은 관계없다는 태도로 당당히 말했다. 그의 말에 여인들은 쓴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현과 같은 파티이고 언젠간 운현과 할 수 있는 미야에 비해 자신들은 그저 흥분억제제로 흥분을 억눌러야 한다는 사실에 이러려고 모험가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진 루티와 헤라는 얼굴을 붉힌 채 무기를 꽉 잡았다.

"전의가 돋보이는구만."

속도 모르고 둘을 보며 말하는 운현의 모습에 아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말에 저 둘은 더더욱 열받았는지 분노로 힘을 더더욱 이끌어내었다.

"자. 그럼 이번에도 끌고올게."

운현이 수풀 속으로 사라지자 헤스티아와 함께 후방에 자리잡은 루티는 잠시 주저한 후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말야... 그게."

"네? 왜, 왜요?"

아까보다 얼굴이 반들반들해지고 더더욱 예뻐진 듯한 헤스티아를 보며 루티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에게 고개를 갸웃거린 헤스티아는 루티가 망설이자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이, 인연... 으으... 인연... 인데. 어려워하지 말고 말씀해주세요."

생각해보니 루티와 만난 것은 자신이 운현과 할때였었다. 애써 잊고 있었는데 다시 그것이 떠오른 헤스티아가 부끄러워하자 루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뭐시냐. 그게말야. 저기... 그... 어때?"

"네?"

"아니... 으. 친분도 없는데 이런거 물어봐도 되나 싶은데... 그. 운현이랑 할때말야."

"......"

루티의 말에 헤스티아의 표정이 변했다. 상상한 것만으로도 황홀해진 그녀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표정관리에 들어갔으나 그 얼굴은 이미 루티에게 보이고 말았다. 더더욱 궁금해진 루티가 침을 꼴깍 삼키며 이야기를 기다리자 헤스티아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서 얘기해줘. 응? 궁금하잖아. 좋아? 남창들이랑 비교해봐선 어때? 정력은? 어디까지 해줘? 남창코스로 따지면 어때? 넣고 끝? 아니면 풀코스? 응응?"

"어, 그. 저. 저는 그... 운현씨가 처음이라...나, 남창은 잘 몰라요."

"오!? 진짜? 첫 남자가 남창이 아니란 말야!? 우와! 나 이런 케이스는 처음 보는데!?"

"루, 루티씨! 목소리 좀...!"

루티가 깜짝 놀라며 외치자 여인들의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선두에 있던 탱커진인 헤라와 미야 뿐만 아니라 날을 곤두세우며 긴장하고 있던 아르까지 흥미진진한 얼굴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자 헤스티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아아! 정말! 어떡할거에요!"

"에이~ 이왕 이리 된거 말해봐~ 궁금하잖아. 운현이 올때까지만이라도 괜찮으니까~"

헤스티아는 루티의 재촉에도 입을 꾹 다문 채 눈물을 글썽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헤라와 아르, 그리고 루티는 미야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그들의 시선에 당황하던 미야는 볼을 긁적거린 후 떨떠름히 말했다.

"에, 그러니까... 나도 운현과 해야 하잖아? 그 전에 운현이 어떻게 하는지 정도는 알아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 그럼 나중에..."

어차피 운현과 몸을 섞을 예정이 되어 있는 미야라면 괜찮을 것이다. 헤스티아가 주저하며 말하자 미야는 씨익 웃었고 그것에 루티는 크게 당황했다. 괜히 죽쒀서 남 준 꼴이 되기 전에 그녀는 후다닥 헤스티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정 대답하기 힘들면 우리가 질문하는 걸로 할까? 어때? 그정도면 괜찮겠지?"

루티와 헤라의 시선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는 결국 그 시선에 이기지 못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에 쾌재를 터트린 티나였지만 아르는 왠지 꺼림칙했다.

'이거 괜한거 건드린거 아닐까 몰라...'

아르도 그렇고 루티도 그렇고 헤라도 그렇고. 아직 남자 경험은 남창에서 몇번 해본 것이 다였다. 그나마도 혼자 자위를 하며 달아오르게 한 후 남자가 들어와 넣고 몇번 흔들며 끝인 최저가의 코스로 말이다.

"어이, 루티. 그만두는게..."

"처음 시작할땐 어떻게 해?"

"예? 처, 처음 시작할때라뇨...?"

"그러니까. 너도 자위를 하고 운현을 기다리는거야?"

"그게 무슨...? 아뇨. 처음에는 운현씨가 항상 먼저 다가와서 부드럽게 안아주고 이마에다가 키스한다음에 얼굴 여기저기에 키스하고... 그리고 입술에 진한 키스를..."

헤스티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천천히 운현과 할때의 일을 말하기 시작하자 루티는 똥씹은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막았다.

"아. 괜히 들었다. 됐어. 들어봤자 자괴감만 든다..."

"에!? 그, 괜찮겠어요?"

"시작이 그정돈데... 남창한테 받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쏟아야 하는거야?"

투덜거리는 그녀들을 보며 아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자기만 상처받은 루티를 보며 아르는 차분히 말했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리는게 좀 있으면 운현이 올거야. 집중하자고!"

"하아아아... 얼른 나도 돈 많이 벌어서 고급 남창을..."

아르의 말에 투덜거리며 루티는 활을 든 손에 힘을 넣었다.

"정신차려! 죽고 싶은거야!? 헤스티아! 루티! 창든 놈 공격해! 아르! 미야를 지원!"

벌써 여섯번째 고블린 무리와 전투를 하는 탓에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운현은 그들을 다그치며 지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미야에게 몰려 있는 세마리 고블린 중 창을 든 고블린에게 화살과 파이어볼트가 꽂히는 것을 본 운현은 탱커진의 뒤쪽에 가시 줄 함정을 설치한 후 외쳤다.

"됐어! 빠져!"

"캬아아아!"

상처입은 고블린들이 분노하며 달려들다가 가시 줄 함정에 걸렸다. 그들이 구속되자 운현은 손을 뻗어 스틸을 걸었고 그 스틸이 성공해 고블린의 갑옷이 벗겨져 운현의 손 안에 들어왔다.

"갑옷 없는 놈 쳐!"

갑옷이 벗겨져 방어력이 하락된 고블린에게 총 공격이 쏟아진다. 가시 줄 함정의 지속 데미지를 받으며 모두의 공격을 받은 고블린이 쓰러지자 운현은 남은 시간을 계산한 후 창든 고블린을 가리키며 외쳤다.

"미야! 스매쉬! 헤라! 배쉬!"

"흐으읍!"

"하압!"

미야가 힘을 모아 고블린의 머리에 주먹을 날리고. 헤라가 방패를 버리고 양 손으로 도끼를 잡은 후 고블린의 복부에 도끼를 휘둘렀다. 둘의 공격에 정통으로 맞은 고블린이 뒤로 나가 떨어지자 아르에게 외쳤다.

"아르! 크로스 블레이드!"

"흐으으읍!"

아르의 검이 상단에서 내리꽂히고 그대로 이어져 가로로 고블린을 베었다. 그 틈을 노린 운현은 정신을 못차리는 고블린의 목에 송곳을 꽂아 넣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추가 스탯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이걸로 레벨은 14가 되었다. 운현은 자신의 스탯창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여럿이서 싸우니까 전투가 빨라서 좋군.'

거의 하루 종일 전투를 했지만 셋이서 할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전투를 할 수 있었다. 운현은 지쳐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들을 둘러본 후 스킬창을 보며 고민했다.

'보너스 스탯은 일단 아껴둔다고 치고... 스킬을 뭘 올려야하나.'

현재 보유중인 스킬 포인트는 총 3. 올릴 수 있는 것은 하이딩, 한손검 숙련, 체술, 그리고 재료 합성이었다.

'지금 제일 좋은 것은 지속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가시 줄 함정이지만 재료 합성을 올린다고 더 좋은 함정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도 투자 가치는 있으니까 이걸 올려야 하나. 아니면 하이딩? 그치만 요새 하이딩은 잘 쓰지도 않고... 으. 어쩌지?'

한손검 숙련과 체술은 일단 논외로 넘겼다. 미야가 합류하고 난 이후 전투가 꽤나 수월했기에 굳이 더 올려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자신에게 다가 온 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운현은 빙긋 웃었다. 손에 닿는 미야의 귀가 건드릴때마다 쫑긋거리는 것이 재밌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각을 마무리 지은 운현은 자리에서 일어난 후 아르에게 물었다.

"너넨 얼마나 남았어?"

"어... 우린 끝났어요. 운현씨네는요?"

"우리도 끝."

이번 전투의 목적은 퀘스트 달성을 위한 재료 수집이었다. 운현의 파티는 숏소드와 버클러, 아르의 파티는 갑옷과 투구. 모두 필요한 만큼 수급은 끝났기에 더 이상 전투는 의미가 없었다.

"다들 한계인 것 같으니 이만 끝내고 복귀하자."

얼굴에 홍조가 피어 있는 헤라와 루티를 보며 운현은 떨떠름히 말했다. 자꾸만 자신을 보는 시선이 무서울 정도다. 운현이 담담히 말하자 아르 역시 저 둘의 상태로 보아 전투를 계속 유지하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흥분억제제를 먹어 흥분도를 가라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스테이터스가 저하되니 계속된 전투는 무리였다.

"근데 넌 괜찮아?"

"저야 뭐... 수인족이니까요."

아르의 얼굴에도 홍조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저 둘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었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입맛을 다셨다.

"그 대신 발정기땐 죽어나겠죠..."

"그게 무슨 소리야?"

"수인족은 발정기때 그동안 모여 있던 욕망이 표출되요. 이번 달은 전투가 많아서 걱정되네요. 촉수괴물을 엄청 써야 할 것 같은데..."

"헤에. 너도 그거 써?"

"수인족들은 대부분 그걸로 발정을 해소한답니다. 음... 운현씨가 좀 도와주시면 안그래도 될텐데."

은근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며 아르가 말하자 운현은 빙긋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거에 아쉬워한 아르는 헤라와 루티를 데리고 장비를 챙긴 후 말했다.

"그럼 갈까요?"

"아아. 가자."

던전의 입구까지 돌아간 후 아르 일행은 바로 환전을 하러 가고 운현 일행은 시장을 돌았다. 오늘 구한 흰거미의 실타래를 다 썼기 때문이었다. 강철 실을 구할 수 있다면 모를까 아직 힐데크의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한 상태인지라 일단은 이것으로 버텨야 하기에 시장을 쭉 돌아 실타래를 구입한 운현은 길드 사무소로 바로 향했다.

"음?"

평소와 다르게 길드 사무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모험가는 그에게 다가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드 사무소에 볼일이 있나보지? 지금은 좀 힘들거야. 시장이 와서 시찰을 하고 길드 사무소의 직원들과 식사를 하러 나갔으니까. 어디보자... 시간이 좀 남는 것 같은데. 어때?"

유혹하는 그녀에게 미안한 얼굴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은 운현은 자신의 팔을 꼭 잡고 헐떡이는 헤스티아를 가리켰다. 그녀를 보자 그 모험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 앉았다.

"미야. 버틸 수 있겠어?"

"응? 아. 이정도야 뭐."

그녀 역시 달아오르긴 마찬가지였나보지만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는 모양이다. 운현은 미야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차분히 말했다.

"정 힘들겠다 싶으면 말해."

"후후후. 알았어. 그리고 내일 할거잖아. 아직은 괜찮아. 헤스티아먼저 해줘."

"정말 괜찮겠어?"

"괜찮... 읏..."

운현은 손을 올려 미야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홍조가 더욱 도드라지자 운현은 피식 웃었다.

"너무 버티지 마. 아니면 이따가 내가 갈까?"

"와주면야 고맙지만... 괜찮겠어?"

"응. 뭐, 나야 괜찮지."

운현은 빙긋 웃었고 그 모습에 미야는 입술을 핥았다.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미야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숙소로 향했다. 마석의 교환도 하지 못하고 시간도 늦었기에 운현은 짐을 챙겨들고 헤스티아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운현씨..."

"야야. 아직 옷도 안벗었잖아."

"그치만...!"

헤스티아는 눈물을 머금으며 너무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키스를 재촉하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이고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맞춰주었다.

"지금은 이걸로 참자. 아. 그러고보니 오늘 같이 목욕...읍!"

짧은 입맞춤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헤스티아는 운현의 멱살을 잡아 당기며 진하게 키스했다. 헤스티아가 완전히 흥분해버리자 운현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일단 목욕탕에 들어가자."

"으응... 알았어요."

진하게 키스를 하고 나서야 좀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헤스티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갑옷을 벗고 옷을 벗어 바닥에 던진 후 운현이 안으로 들어가자 헤스티아 역시도 옷을 벗고 욕탕에 들어왔다.

"그럼... 맛사지부터 해줄게."

싱글벙글 웃으며 운현이 자신의 몸을 끌어안자 헤스티아는 그의 품에 안긴 후 생각했다.

'남창과는... 달라.'

운현이 비록 자신을 사랑한다 말해주지 않고, 그가 그걸 거부하며 부정했지만 오늘 들었던 루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확실히 운현은 자신을 아끼고, 또 제대로 해주고 있었다. 남창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안아주는 그의 품에 안긴 채 헤스티아는 작게, 그가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저에게는... 당신이 최고에요..."

51====================

Quest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비활성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지력이 99 감소합니다.]

"후... 이정도면 됐나."

보유하고 있는 재료 중 반을 써서 강화된 가시 줄 함정카드를 만들어낸 운현은 현자의 시간이 종료되자 한숨을 내쉰 후 헤스티아의 옆에 누웠다. 자신이 눕자 꼬물꼬물 안겨 온 헤스티아가 새근거리는 숨결을 내뿜자 운현은 피식 웃었다.

"참 대단하네."

자신이라면 절대 이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싫으면 꺼져.' 라는 마인드로 사람을 대하는 운현에게 있어서 이런 맹목적인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보답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꾸준히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헤스티아를 바라보던 운현은 손을 움직여 그녀의 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으으음..."

낮게 신음하면서 다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비빈 헤스티아는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의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운현은 헤스티아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에이. 모르겠다."

운현은 헤스티아가 깨지 않게 몸을 뺀 후 옷을 입은 후 마석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하자. 터덜터덜 걸어 길드 회관 1층으로 이동한 운현은 메이드에게 감자튀김과 맥주를 시킨 후 혼자 맥주를 홀짝거렸다.

"으아! 배고파!"

"식사는 무슨!"

그가 두잔째의 맥주를 시켜서 마시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정장 차림의 여인들이 우루루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 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운현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필레가 들어오자 살짝 손을 들어 흔들었다.

"아! 운현씨!"

필레의 얼굴에 잔뜩 감돌던 지친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힘들어보이는 길드원들 사이에서 유독 필레만 빛나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을 눈치챈 것은 운현 뿐만 아니라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그들은 흐뭇하게 웃으며 필레에게 말했다.

"나머지는 저희가 할게요."

"자자. 어서 가라구요. 오늘 고생 많았잖아요."

"어? 어? 으, 으응. 고마워요."

길드원들의 훈훈한 미소에 살짝 얼굴을 붉힌 필레는 머뭇거리다가 운현의 앞으로 다가갔다. 휙휙 주변을 둘러보며 헤스티아와 미야가 없는 것에 안심을 한 그녀는 의자를 빼 운현의 앞에 앉은 후 방긋 웃었다.

"오늘도 던전에 다녀오셨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필레씨야말로 고생 많았어요. 듣자하니 식사를 하러가셨다고 하던데..."

"식사는 길드장님이랑 시장님만 했죠... 저희는 업무보고와 길드장님의 보호 때문에 아직 못먹었어요."

"그래요? 저도 아직 저녁은 못먹었는데 같이 드실래요?"

"그, 그럴까요?"

운현의 제안에 필레는 크게 기뻐했다.

"사무소 열렸다!"

길드원들이 모두 나가 사무소가 닫혀 있었던 터라 던전에서 복귀한 모험가들은 정산을 하러 우루루 사무소로 몰려갔다. 그들이 가는 것을 지켜 본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필레에게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필레씨. 저도 정산을 해야 하는데..."

"아, 아아. 그, 그러셔야겠죠..."

운현의 말에 필레의 밝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것에 운현은 붕붕 고개를 저었다.

"정산 끝나고 나가서 드실래요? 늘 신세를 지는 것이"

"어? 아. 예! 그럼 저도 옷 갈아입고 올게요!"

"네. 줄이 긴 것 같으니까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허둥지둥 일어나 길드사무소로 필레가 들어가자 운현은 남은 맥주를 다 마시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뒤에 섰다. 줄이 빠지길 기다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운현은 마석이 담긴 주머니를 꺼내 창구를 담당하고 있는 여인에게 주었다.

"헤에~ 저기. 저기. 필레씨랑 무슨 사이에요?"

연한 하늘빛 긴 머리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그려져 있는 여인이 묻자 운현은 빙긋 웃었다.

"무슨 사일까요?"

"꺅~ 목소리 좋다~"

'살다살다 이런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군.'

호들갑을 떨며 옆의 동료의 팔을 찰싹찰싹 때린 그녀는 싱글거리며 그가 내민 마석을 받았다.

"저기. 저기. 필레씨랑 저녁 식사 하시기로 하셨죠? 필레씨는 말이죠. 루베리아라는 가게를 좋아해요. 약도 적어드릴게요."

자신의 앞에 있던 여인이 마석을 정산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백금색 단발머리칼의 여인이 후다닥 약도를 그려 운현에게 넘겨주었다. 약도상 보면 길드 건물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가격도 괜찮고 분위기도 좋은 곳이거든요~ 필레씨가 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던 곳인데..."

"그런 곳이라면 오늘보다는 다음에 가는게..."

어차피 필레와는 데이트가 약속되어 있었다. 필레가 가고 싶어하는 가게라면 그때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운현이 말하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후 버럭 소리쳤다.

"필레씨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라면 얼마든지 얘기해 줄 수 있으니까 오늘은 거기 가요!"

"아, 알았어요."

운현이 떨떠름히 답하자 그녀는 수첩을 꺼내 후다닥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필레가 좋아하는 음식점, 그녀가 좋아하는 풍경, 분위기 좋은 데이트 장소 등등. 많은 것을 적은 그녀는 척 운현에게 수첩을 찢어 내밀었다.

"....."

"받아요."

"어... 음.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 필레씨 좀 부탁해요. 매일 매일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이에요..."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녀가 한탄을 시작하자 운현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

"저기... 정산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싱글벙글 웃으며 정산을 하는 여자는 다른 서류들을 보기 시작했다. 필레였다면 벌써 끝나고 남을 시간이었는데도 여인들은 정산금을 주는 대신 운현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계속해서 필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운현씨?"

"아. 필레씨."

"정산 다 됐습니다! 42골드 나왔네요!"

맑은 목소리가 들리자 하늘색 머리의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 돈이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그것에 운현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뭘 보냐는 듯 마주 볼 뿐 이었다. 결국 운현이 한숨을 내쉰 후 돈주머니를 받아 몸을 돌렸을 때 그는 눈 앞의 여인을 보며 감탄했다.

"우와아아..."

머리와 얼굴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복장이 무척이나 바뀌어져 있었다. 정장을 입어 조금은 날카로워보이던 그녀는 연한 베이지색의 니트로 포근함을 강조하였고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를 입어 색기보다는 청순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거기에 하얀 숄을 어깨에 걸친 필레의 복장은 그녀의 생글거리는 미소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미녀는 뭘 해도 이쁘다더니.'

필레의 미모 정도면 걸레짝을 입어도 어울리겠지만 이렇게 꾸미니 정말 아름다웠다. 운현이 자신을 보며 감탄하자 필레가 머뭇거리며 자신의 옷을 본 후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어? 어... 이, 이상한가요?"

"아뇨. 무척 잘어울리시네요."

"정말요? 기뻐요~"

운현의 말에 필레는 다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미소에 주변이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그는 옆의 시선에 휙 고개를 돌렸다.

"......"

사무소에서 일을 보던 길드원들이 모두 나와 흐뭇한 아빠미소를 짓고 있었다.

"거봐. 내가 잘 어울릴 거라고 했잖아."

"으음. 내 패배를 인정한다."

길드원 들 중 몇몇이 모여 필레의 복장을 점검한 후 말하는 것을 들은 운현은 휙 아까 전 자신을 잡고 있던 여인을 보았다.

"이야~ 운현씨. 좋으시겠네요~ 저런 미녀랑 저녁식사라니~ 부러워라~"

"그럼 대신 가실래요?"

"아차! 아까 길드장님이 시키신 일이 있었지~!"

운현의 말에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식사는 좋지만 이런 분위기는 마음에 안드는군. 뭐, 그렇지만...'

길드에서 자신과 필레 사이에 생기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어차피 모험가로 살아가는 이상 길드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았다. 큰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면 저들의 기대대로 움직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운현은 필레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에 필레는 움찔 몸을 떨었다.

"운현씨?"

"가실까요? 레이디?"

운현은 필레의 옆으로 걸어간 후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에스코트를 하려는 그의 행동에 길드 사무소에서 흥미진진한 눈으로 구경하던 길드원들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꺄아아아악~!!"

"레이디래~!!"

"필레씨가 레이디~!! 꺄아아아악~"

길드원들의 소란에 회관의 모험가들은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필레와 운현의 모습을 본 모험가들은 상황을 예상하고 휘파람을 부르며 필레를 놀려대었다. 그것에 필레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레이디?"

"아, 으, 그, 에헹!? 으으으..."

운현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필레는 패닉상태가 되어 어쩔 줄 몰라하다가 그가 팔을 내밀자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떨리는 손으로 그의 팔에 살짝 손을 올리자 길드원들과 모험가들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야~! 필레 계탔네~!!"

"휘익~! 부럽다!"

"운현! 나도 해줘!"

모험가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필레인만큼 그녀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모험가들은 더더욱 난리를 피웠다. 그들을 말려야 할 길드원들 마저도 휘파람을 부르거나 놀리며 환호성을 지르기 바빴기에 길드회관은 더더욱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실까요?"

계속되는 이 분위기 속에 그녕 있다간 필레가 쓰러져버릴 것 같기에 운현은 성큼성큼 걸어 길드를 나갔다. 그의 에스코트에 이끌려 아무런 말도 못하며 따라 온 필레는 거리에 나오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정말... 자꾸 이렇게 오해하게 하실거에요?"

"무슨 오해요?"

"으. 그게요..."

"아름다운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는거야말로 남자의 명예죠."

싱글싱글 웃으며 그가 말하자 필레는 다시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녀를 데리고 아까 길드원이 말한 루베리아라는 가게로 향하던 운현은 멀리서 걸어오는 인물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저 사람은."

익숙한 모습이 눈에 보인다. 짙은 흑색 단발머리에 깔끔한 정장을 입은 미녀. 이곳 발티르의 북문 경비대장 윈드였다. 발걸음을 멈춘 운현에 놀란 필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운현이 바라보는 쪽을 발견하고 크게 놀랬다.

"윈드가 남자랑!?"

"그...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필사적으로 무언가 얘기를 하던 그녀가 허리까지 깊게 숙였지만 남자는 붕붕 고개를 젓고 그대로 가버렸다. 결국 홀로 남게 되어버린 윈드의 모습에 필레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후다닥 달려갔다.

"윈드! 무슨 일이야!?"

"헉! 필레!? 으음... 느, 늘상 있는 일이다."

"너... 선 봤니?"

"으으으으... 또 실패야. 또 차였어... 이번만큼은 자신있었는데... 분위기도 좋았는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을 머금은 윈드는 필레를 끌어안고 힘겹게 말했다. 뒤에서 차분히 다가가 그녀의 말을 들은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윈드씨같은 미인도 차이는구..."

"뭣이라!?"

"우왁!"

섬뜩한 기세에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온 윈드에게서 술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당신은... 운현!? 운현. 솔직하게 말해다오."

"뭐, 뭘요?"

"내가 예쁜가?"

"어. 음. 예쁘냐 예쁘지 않냐라고 물어본다면 예쁘다고..."

"결혼하자!"

"......."

뭐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운현은 자신의 멱살을 잡은 채 프로포즈를 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좀 진정을 하시는게..."

"이대로 결혼을 못하다가... 혼기를 놓치고... 흑... 내가 상상하고 바랬던 미래는 이런게 아니야..."

"윈드, 좀 진정을 해. 너 지금 너무 감정적이 됐어."

필레마저도 윈드를 달래기 시작했다. 운현의 멱살을 잡고 부들부들 떨던 그녀의 손에 힘이 빠지자 운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윈드씨 정도면 무척이나 좋으신 분이에요. 저도 윈드씨에게 소개시켜줄만한 남자를..."

"소개따윈 필요 없어! 지금 당장 해!"

"...윈드씨 취하셨어요?"

"네! 오늘은 용기를 내려고 취했어요! 근데... 근데! 흐어어어엉!!"

운현이 떨떠름히 묻자 윈드는 그를 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운현이 어쩔 줄 몰라하자 필레는 윈드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저기, 윈드. 좀 진정을..."

"아가씨!!"

운현과 윈드, 그리고 필레를 향해 메이드 두명이 달려왔다. 길드 회관에 있는 메이드와 비슷한 복장이지만 좀 더 고급스러워보이는 메이드복을 입은 메이드들은 엉엉 우는 윈드를 운현에게서 떼어낸 후 운현과 필레에게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가씨가..."

"어떻게 사죄를 드려야 할지..."

둘이 몸둘바를 몰라하는 동안 윈드는 메이드를 잡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이 아스트랄한 광경에 할 말을 잃은 운현을 본 필레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아... 윈드가 많이 취한 것 같으니까 어서 데려가서 재우세요."

"네... 필레씨. 감사합니다."

풀죽은 두 메이드가 윈드를 데리고 가자 운현은 그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뭐에요?"

"끙... 오늘은 어째 날이... 별 일 아니에요. 늘상 있는 일이니까."

씁쓸한 입맛을 다신 필레는 운현의 팔을 잡으며 애써 웃었다.

"어서 가요."

52====================

Quest

간신히 윈드를 달래 돌려보내고 식당에 들어 온 운현과 필레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밥 한끼 먹으려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필레는 곧 자신이 정말 와보고 싶었던 가게에 자신이 점점 반해가고 있는 운현과, 그것도 그에게 레이디 취급을 받으며 에스코트 된 것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어, 운현씨는 어떤 것으로 하시겠어요?"

정장을 차려입은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메뉴를 건네자 필레는 선선히 웃으며 물었다. 같이 메뉴를 읽어 본 운현이었지만 이런 고급집 식당은 처음 와보는 그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한가지 뿐 이었다.

"필레씨도 아시다시피 저는 시골출신이라 이런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은 잘 모르네요. 추천해주시겠어요?"

"아차차. 그렇군요. 후후. 운현씨의 행동 때문에 자꾸 오해하잖아요. 말씀하시는 것이나 하는 행동이나 그런걸 보면."

"뭐. 그건 개인차라고 해둘게요."

피식 웃은 운현이 말하자 필레는 마주 웃은 후 웨이트리스에게 말했다.

"그럼 여기 C 세트로 주세요. 그리고 와인은... 운현씬 어떤 와인이 좋으신가요?"

"전 아무거나 잘 먹죠."

"그럼 레빌리아 101년산으로."

"알겠습니다. 스테이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미디엄 괜찮죠? 미디엄으로 주세요."

여유있게 주문을 마친 필레는 웨이트리스가 지나가자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녀 함께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물론 여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테이블도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대부분은 남녀였다. 그들의 분위기는 마치 연인처럼 좋아보이기에 필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예? 아, 아뇨. 그... 윈드가 걱정되서..."

운현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묻자 필레는 허둥거리며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운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윈드씨는 왜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걸까요?"

"아. 그게 윈드네 집안이 손이 귀한 집안이라서요. 집에서도 계속 압박이 들어오고... 아. 윈드의 가문에 대해서 아세요?"

"아뇨."

그다지 윈드와 친분이 없는 운현이 알리가 있겠는가. 그가 솔직히 모른다고 말하자 필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윈드는 오렌 왕국의 사대 후작가 중 발렌타인 후작가의 차기 가주에요. 그래서 더 그런게 심할지도 몰라요."

"으음... 그렇군요."

"어렸을 때부터 후계자 교육을 받으면서도 결혼에 대한 꿈을 키워왔나봐요. 집안에서도 계속 윈드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줬었구요.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윈드를 좋아하는 남자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저렇게..."

"어? 윈드씨 정도면 무척 예쁜 것 아닌가요? 집안도 좋고. 성격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운현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남자가 적은 세계라고 하더라도 그정도 집안에 그정도 외모라면 적어도 한명쯤은 그녀를 좋다고 할 만한 남자가 있을텐데도 아직까지 모태솔로라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게 말이에요."

"하하하..."

메마른 웃음이 나온다.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물었다.

"필레씨는 윈드씨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에요? 던전 도시에서 만나게 된 사이인가요?"

"아. 아뇨. 던전 도시에 오기 전부터 알던 사이에요. 저도 오렌 왕국 출신이거든요. 오렌 왕국의 바스티누 기사단 동기에요."

"오? 필레씨. 기사였어요?"

"네. 어? 모르셨나요?"

"그야 당연히..."

"아하하... 그러고보니 운현씨와 저는 서로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네요."

씁쓸히 웃으며 필레는 나지막히 말했다. 운현이나 필레나,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본 적은 없었다. 운현은 그저 시골 출신이라는 것만 말했고 필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깊은 비밀을 나눌 리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은 필레는 운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운현씨. 전 운현씨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어요."

"왜요?"

"예?"

"아니... 저에 대해서 알아서 뭐하시려고..."

"아, 그. 그게요! 사실은... 아! 저희 길드장님께서 도적 클래스의 사람들에 대해 잘 알아두라고 하셨거든요!"

"왜요?"

"음. 그게 말이죠..."

말을 꺼내놓고 필레는 아차 싶었다. 괜한 말을 해버렸다. 용병 연맹의 연맹장이 시장이 된다면 전쟁이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길드 소속의 모험가에게, 특히 운현에게 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고 고민했다.

"으으으으으음..."

"역시 맞았어! 내 감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헉!"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필레는 기겁하며 휙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은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사, 상아님. 여긴 왜...?"

"왜는. 저녁 먹으러 왔지."

"어라? 남자 만나고 있었던거야?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그러니까 내가 다른 가게 가자고 했잖아!"

상아의 뒤에는 검은 로브로 몸을 감싼 여인이 서 있었다. 얼굴에는 짜증과 피곤이 잔뜩 몰려 있지만 그것이 그녀의 미모를 가릴 수는 없었다. 필레와 동급의, 아니 그 이상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미녀는 필레를 보고 인사한 후 그녀의 앞에 있는 운현을 보며 사과하고 상아를 타박했다.

"그, 그런 사이 아니에요!"

"누가 뭐래? 아무튼 이 남자가 소문의 그 남자인가? 호오? 이거 또 내 취향의 미남이구만."

필레의 말에 상아는 퉁명스레 대꾸하곤 운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상아는 피식 웃으며 한손을 내밀었다.

"상아라고 한다.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이지. 이 도시의 권력자 중 하나니까 잘 보이는게 좋을거야. 혹시 연하 좋아하나? 아니면 연상? 자랑은 아니지만 난 두 속성 다 가지고 있어. 그 외의 취향이 있다면 말해봐. 어지간한거는 다 맞춰 줄 수 있다고... 우후후후후..."

"어. 반갑습니다. 운현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외모가 어려보인다고 하지만 던전 도시 발티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이라면 자신이 함부로 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운현은 빙긋 웃으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가 별로 놀라지도 않고 무덤덤한 모습을 보이자 상아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후후..."

운현과 악수를 하면서 상아는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에 필레를 비롯한 모두가 의아해하자 상아는 빠르게 다른 손을 움직여 운현의 손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이고~ 손도 곱지~ 이게 몇년만에 일반인 남자랑 맞닿는거야? 어때? 오늘 밤..."

"이 색골노인네가!?"

상아가 그 미모와 체형에 어울리지 않게 능글맞은 어조로 말하자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미녀는 어이없어하며 운현을 잡고 있는 상아의 손을 떼어내었다.

"왜! 왜! 나도 남창 말고 일반인 좀 만져보자! 닳는 것도 아니고!"

"이 노인네가 진짜 미쳤나!? 당신이 만지면 닳는다고! 으아! 펠리시아는 도대체 어딜 간거야!? 갈거면 이 노인네 좀 데리고 갈것이지!"

그녀의 거친 행동에 상아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 그녀의 힘을 이기지는 못했다. 결국 떨어져버린 상아는 씩씩거리며 둘을 노려보았다.

"칼리아스. 너 지금 반항하는거냐?"

검은 머리에 로브를 입은 칼리아스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거 600년 넘게 살았으면 좀 자중하쇼. 댁에 비하면 핏덩이나 다름없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꼴이야?"

칼리아스의 싸늘한 반응에 상아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린 그녀는 씨익 웃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외쳤다.

"하! 이 팔팔한 외모를 봐! 난 아직 십대야! 십대라고! 이제 삼십대가 된 너의 그 축 처진 피부와 달리 탱탱한 십대라고! 하하하하하!"

"...육백십대겠지. 종족 특성으로 버티는 주제에... 그리고 삼십대라고 하지 말랬지!! 진짜 죽어볼래!?"

"이게!? 싸울까!? 응!? 싸울까!?"

"...저기 손님?"

"아."

그제서야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상아는 웨이트리스가 난처한 얼굴로 다가오자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아아. 미안하다. 우리는 여기 합석하기로 하지."

"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말야. 칼리아스. 넌 저쪽 필레 옆에 앉아."

느긋하게 말한 상아는 서슴없이 운현의 옆에 앉았다.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의 태도에 할 말이 없어진 칼리아스는 필레에게 사과했다.

"못난 길드장을 말리지 못해. 미안하다아아아앗!"

"아뇨... 윈드를 만났을때부터... 에휴... 왠지 이럴 것 같더라구요."

필레는 한숨을 푹 내쉬며 포기한 듯 말했다. 하지만 어찌보면 나쁜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회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후후후후~ 이야~ 이거 어린 남자랑 같은 테이블에 앉는것도 얼마만인지~"

"저저번주에 남창들이랑 대차게 논 주제에 무슨..."

"끝까지는 안갔다고. 걔들도 부담스러워해서 말야. 봐봐. 모험가 길드장이라는 거랑 내가 살아온 세월만 얘기해도 걔들은 질려하더라고."

"알면 좀 자중해라! 무슨 엘프가 이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운현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상아에게 칼리아스는 골치가 아팠는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상아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운현의 팔을 잡아당겼다.

"저기 말야. 뭐 시켰어?"

"어. 그게. 필레. 뭐 시켰어요?"

"코스요리에요. 이제 나올때가 됐는데..."

"그래? 우리도 그거 줘."

기다리고 있는 웨이트리스에게 상아는 느긋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웨이트리스는 당황하더니 떨떠름히 답했다.

"그 코스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 일행이시라면."

"괜찮아."

"알겠습니다."

웨이트리스의 만류에도 상아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녀의 말에 칼리아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왜? 필레랑 운현씨... 라고 했죠?"

"아. 예."

"번잡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칼리아스라고 합니다. 모험가 길드의 부길드장이지요. 저 개망나니 길드장이 운현씨께 민폐를 끼치게 되어서 정말이지... 큭..."

이런 일때문에 골치를 아팠던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는지 칼리아스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상아는 어이없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누굴 민폐 취급하는거야!?"

"민폐거든!? 저 망할 노인네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운현이라고 합니다."

칼리아스에게 마주 인사하며 운현은 빙긋 웃었다. 그의 웃음에 칼리아스는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시선을 보냈다.

"예? 왜요?"

"불쌍하게도... 흑..."

"뭐, 뭡니까! 그 리액션은."

"운현씨... 저 망할 길드장의 취향이라..."

"....."

등골이 오싹하다. 자신의 옆에 붙어 있는 상아에게 시선을 돌리니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푹!"

"필레. 위험하잖아."

"적당히 하지 않으면 화낼거에요."

상아는 자신의 눈 앞에 꽂힌 나이프를 보며 인상을 구기고 필레를 보았다. 필레는 용병 연맹이 길드에 쳐들어왔을 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상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상아가 입술을 끌어올리려 하자 칼리아스는 테이블을 쿵 치며 싸늘히 말했다.

"적당히 안하면... 당신 방을 펠리시아의 방으로 옮겨버릴거야. 그리고 두 손 다 테이블 위로 올려."

"...끙.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운현의 허벅지를 만지려던 손이 움찔하며 멈췄다. 그녀의 양 손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자 칼리아스는 한숨을 푹 내쉰 후 운현에게 말했다.

"운현씨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싫다면 대놓고 말해주십시요. 저 노인네는 돌려말한다는 걸 모르는 엘프라..."

"난 직접적인게 좋아."

칼리아스가 노려보고 있음에도 상아는 그저 싱글거릴 뿐 이었다. 그녀가 다시 아미를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자 운현은 쓰게 웃고 필레에게 말했다.

"필레씨. 괜찮으세요?"

"예? 아. 예. 뭐... 그보다 운현씨는요?"

"이 정도야 뭐..."

운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별반 기분나빠하지 않자 필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아의 저런 태도에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다행히 운현이 저렇게 아무렇지 않아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한 필레는 상아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이야~ 그런데 둘이 뭐하는거야? 데이트?"

"데, 데이트 아니거든요? 그냥 밥먹으러 왔을 뿐이에요."

"그게 데이트지 뭐야."

"...그렇게까지 데이트라고 하고 싶다면 여기서 방해하는 이유는 뭔가요?"

필레가 싸늘히 말하자 상아는 실실 웃은 후 당당히 답했다.

"그야 나도 남자가 없는데 네가 남자가 생기는게 배가 아파서."

"하아아아..."

"길드장님의 성격이 대단하시네요."

"그지?"

히죽 웃은 상아는 운현의 말에 오히려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의 태도에 칼리아스, 운현, 필레가 서로 어이없어하는 동안 운현과 필레가 시킨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양송이 스프와 샐러드입니다."

"오오~ 이거 맛있게구만~"

"음. 드실래요?"

자신의 스프를 보며 상아가 눈을 반짝거리자 운현은 자신의 스푼을 내밀었다.

"앙~"

"....."

"뭐하는거야? 아앙~"

"자. 이거나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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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에게 입을 벌린 그녀를 보며 인상을 왕창 구긴 칼리아스는 주머니에서 꺼낸 딱딱한 빵을 그녀의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읍!"

"진짜 민폐라니까! 으아아아! 돌아버리겠다!"

"하. 하하하..."

"퉤! 뭐하는 짓이야!?"

"노인네야 말로 뭐하는 짓인데!?"

이제는 칼리아스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운현은 한숨을 내쉰 후 필레에게 물었다.

"평소에도 이러세요?"

"어, 음..."

운현의 질문에 필레는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주저하며 말했다.

"오늘은 좀 괜찮으신 편인데..."

"......"

운현은 모험가가 된 것이 잘 한 짓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53====================

Quest

복잡스러운 저녁식사가 끝났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끝난 자리에 멀쩡한 것은 상아 뿐 이었다.

끝까지 마이페이스인 그녀에게 셋이 모두 말려버린 것이다.

"지, 지친다..."

"죄송해요오..."

필레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운현에게 사과했고 칼리아스는 상아의 머리에 연신 꿀밤을 먹이고 있었다.

"망할 노인네. 펠리시아한테 다 말해줄거다."

"항! 내가 무서울 줄 알고?"

"끙... 그럼 어서 돌아갈까요?"

피곤해서 이젠 그냥 돌아가 쉬고 싶어진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필레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둘이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에 상아는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칼리아스를 말린 후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식사는 맛있게 먹었으니 차나 한잔 할까? 아니면 술도 괜찮고."

"아뇨. 그냥 쉬고 싶은데..."

"지금처럼 농담이 아니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래."

아까까지 식당에서 짓고 있던 장난기 넘치는 얼굴이 아닌 진중하기 그지 없는 표정을 지으며 상아는 운현에게 느긋하게 말했다. 무언가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가 입을 다물자 상아는 싱글거리며 필레를 가리켰다.

"필레에게 시켰지만 필레는 차마 못하는 모양이더군. 마침 잘 됐지."

"무슨 이야긴데요?"

"그건 들어보면 알아. 어때? 당신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텐데. 정 뭐하면 들어보고 결정해도 좋아."

상아의 말에 운현은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이야기를 듣는 것만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그가 동의하자 필레는 당황하며 운현의 팔을 잡았다.

"운현씨!"

"네?"

"아. 그, 오늘은 저와 같이 있으면 안될까요?"

"어... 그게 무슨 의미에요?"

필레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자 운현은 떨떠름히 답했다. 필레의 시선은 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이 불리할 만한 일을 권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한 운현이 상아를 보려는 찰나 상아는 칼리아스에게 조용히 말했다.

"칼리아스. 필레와 같이 차라도 마시고 와."

"명령이야?"

"응."

지금까지 매도하기 바빴던 상아의 차분한 명령에 칼리아스는 두번 묻지 않고 필레의 팔을 잡았다. 그 손길에 필레의 얼굴이 점점 무표정해지자 상아는 담담히 그녀에게 말했다.

"절대 운현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내 스승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미안하지만 필레. 나로서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야."

"하지만 운현씨는!"

"저기 필레씨."

"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보고 거절해도 된다고 상아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일단 들어볼게요. 괜히 저 때문에 필레씨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운현씨..."

운현의 부드러운 배려에 필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런 둘의 모습에 상아는 똥씹은 얼굴로 이죽거렸다.

"이것들이 어른 앞에서 연애질을..."

"여, 연애질 아니거든요!?"

"됐고. 칼리아스. 한 두어시간 정도만 있다가 돌아와. 그정도면 얘기는 끝날테니까."

"알았어."

칼리아스가 필레를 데리고 가버리자 운현은 덩그러니 상아와 둘이 남게 되었다. 그녀에게서 아까 전 같은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맹세하셨죠?"

"원래 맹세는 어기라고 있는거지."

"이...!!"

"농담이야. 너무 겁먹지 말라고. 자꾸 그러면..."

"...그러면?"

"더 먹고 싶어지잖아."

침을 삼키며 상아가 씨익 웃자 운현은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오한을 느끼며 그가 부르르 떨자 상아는 깔깔 웃더니 그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차를 타 줄 사람은 없으니 술이나 마시자. 내 방에 좋은 술이 있으니까 한잔씩 하자고."

"이거 패턴이 영..."

상아의 손에 이끌린 운현은 그녀와 함께 길드 건물로 돌아왔다. 길드 사무소를 지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그는 화려한 방문 앞에 앉아 있는 풀 플레이트 메일의 여인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녀하세요."

"아, 반갑다. 근데... 누구?"

"상아님이..."

"...남창?"

운현을 보며 여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시선에 그는 발끈하며 붕붕 고개를 저었고 그녀는 그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운현에게 다가갔다.

"반갑다. 에리스라고 한다. 길드의 체력을 책임지는 인간성기사지."

"저는 운현이라고 합니다. 아직 저레벨의 도적입니다."

"도적? 호오... 남자 도적이라. 몸도 괜찮아보이고... 길드장님. 이 녀석. 길드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겁니까? 저는 찬성입니다. 도적이 없어서 안그래도 곤란했는데..."

"그런 거 아니니까 헛물켜지마.... 뭐, 잘만 꼬시면 될 것 같기도 하지만서도."

감격한 얼굴로 에리스는 상아에게 기대감 가득 담긴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상아는 그녀의 기대감을 대번에 뭉개버린 후 운현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런 문 치고는 살풍경한 방이네요."

길드장이 쓸만한 방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텅 비어 있는 것에 운현은 놀랬다. 책상 하나, 책장 하나, 침대 하나. 쇼파와 테이블 밖에 없는것에 운현이 놀라자 상아는 씩 웃으며 책장에 있는 와인을 들고 운현에게 걸어갔다.

"어차피 이 방에서 하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말야. 대부분은 다른 곳에 있거든."

"다른 곳이라면..."

"던전."

"길드에서도 던전에 가나요?"

"응. 던전을 공략하여 완벽하게 이해해 모험가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야 말로 길드의 주된 업무지. 쓸데없는 업무들 때문에 그게 힘들어서 그렇지만 길드의 다른 간부들은 이미 던전을 탐험하고 있어."

"몇계층까지 갔나요?"

"나는 6계층. 그리고 다른 애들은 5계층. 필레나 칼리아스, 펠리시아, 그리고 밖에 있는 에리스나 다른 간부들은 대부분 5계층의 계층주에 막혀 있는 상태야."

"허. 그럼 상아님은 혼자서 6계층까지 갔던 건가요?"

"응? 설마. 아무리 나라고 해도 혼자서는 무리지."

감탄한 운현이 신기한 듯 묻자 상아는 허리춤에서 광검을 꺼내었다.

"우웅!"

"뭔가 멋있네요."

"그지? 반해도 좋아."

씩 웃으며 광검으로 와인의 주둥이를 잘라낸 그녀는 머그컵에 와인을 따라 운현에게 건네주었다. 와인잔도 아니고 이런 머그컵에 와인을 먹는 경험은 또 처음인지라 운현이 어색해하자 상아는 키득거리며 쇼파에 앉았다.

"모험가라면 양식따위에 구애받아서는 안되는 법이지."

"그건 뭔가요?"

"이거? 마인을 잡고 얻은거야. 써볼래?"

"쓸 수 있나요?"

"응. 마나만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지."

와인 병의 주둥이를 잘라내는데 아무런 멈춤이 없을 정도라면 저 광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운현이 자신의 광검을 탐내하자 상아는 광검의 날을 해제한 후 운현에게 휙 던졌다.

"근데 이거 어떻게 하는거에요?"

"마나를 주입해봐."

"...그건 어떻게 해요?"

"호오... 불가능한건가."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상아는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빛의 검을 뽑지 못하는 이상 이것은 가지고 있어봐야 의미가 없다. 운현은 아쉬움없이 상아의 손 위에 광검을 올려놓았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무슨 제안을 하시려는 건가요?"

"일단 첫번째. 길드에 들어 올 생각은 없나?"

"길드원이 되라는 건가요?"

"그래."

상아는 무덤덤히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운현은 잠시도 고민하지 않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피식 웃은 상아는 와인을 단번에 들이마신 후 병에 남은 와인을 머그컵에 가득 따른 후 다시 한번에 모두 마셨다.

"술 세네요."

와인을 한모금 마셔봤지만 생각보다 독했다. 운현이 더 이상 입에 가져가지 않은 와인을 물처럼 마셔버린 상아는 조금도 취하지 않은 것처럼 다른 와인을 가져와 아까처럼 주둥이를 잘라내고 머그컵에 따랐다.

"이정도는 마셔줘야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거든."

"술을 마시면 오히려 취해서 맨정신을 유지 못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정신나간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이정도는 해줘야 해."

씩 웃은 상아는 다시 단번에 와인을 들이마셨다. 그녀가 혼자 와인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을 지켜보던 운현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하실 말씀은 길드에 들어오라. 이것 뿐인가요?"

"그럴리가. 첫번째라고 했잖아. 두번째.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겠어?"

"도와달라... 밑도 끝도 없네요. 정확한 내용이 어떻게 되나요?"

"흠...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상아는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그래. 던전 도시에 있는 네개의 세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네. 모험가 길드, 용병 연맹, 상인 조합, 제작자 연합."

"그래. 그리고 도시의 행정기관인 시청은?"

"대략적으로는..."

"그정도면 됐어. 시청을 이끄는 수장인 시장은 그 네개의 조직의 수장이 선거를 통해 그 자리에 올라."

"그렇군요. 그래서요?"

"그 시장선거를 도와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제가 도움이 될까요?"

운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운현에게 있어서 선거에 대한 인식은 그냥 반장선거나 전교 회장선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내신에 신경을 쓰는 나약한 녀석이 할만한 것에 지나지 않다. 라는 생각으로 아예 관심을 끄고 살았었다.

"아아. 물론 선거전을 도와달라는 게 아니야. 뒷공작을 도와달라는 거지."

"뒷공작이라면...?"

"별거 아니야. 잠입해서 문서를 훔쳐오거나 타인의 문서를 훔치거나 등등."

"...범죄 아니에요?"

"당연히 범죄지. 하지만 시장 선거에 대한 것이라면 용납할 수 있어. 걸려도 충분히 내가 빼줄 수 있고."

"으음. 그래도... 그런 문서를 빼오려면 상당히 숙련된 도적이나 가능할 것 같은데."

"아아. 그렇지는 않아. 도적의 자물쇠 따기와 스틸은 레벨 고하를 막론하고 다 통하니까. 정 궁금하면 나에게 스틸을 써봐."

모험가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만큼 그녀의 레벨은 대단할 것이다. 만약 상아에게 스틸이 통한다면 그녀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운현은 반신반의하며 상아에게 손을 뻗고 스틸을 사용했다.

"스틸!"

"어때?"

운현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장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까지 상아의 어깨에 걸려 있던 금과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장식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것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군요."

"거짓인 줄 알았단 말야?"

"그야 레벨 차이가 대단하니..."

상아는 운현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왠지 기분이 나빠진 운현이 말없이 바라보자 상아는 손을 휘저었다.

"아. 비웃는게 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것 뿐이지. 아무튼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조금 난처한 상황에 빠졌거든."

"무슨 상황인데요?"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현재 모험가 길드가 처한 상황과 용병 연맹이 꾸미는 수작, 용병 연맹의 연맹장이 시장이 되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까지 모두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운현이 입을 다물자 상아는 남은 와인을 입에 털어놓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전쟁이 일어난다라... 승산은 있는건가요?"

"응. 던전에서 수행한 모험가들, 코어로 만든 무구, 막대한 재산. 그리고 용병 연맹의 힘. 이정도만 있다면 왕국 하나 둘 뭉개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야."

"그럼 그냥 전쟁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던전 도시의 일원으로서 너도 전쟁에 참가해야 하는데? 군대 가고 싶어?"

"어우, 그건 좀."

운현이 떨떠름히 고개를 가로젓자 상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럼 협력해."

"왜 저죠?"

"응?"

"다른 도적도 있을텐데 왜 저냐구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제 레벨은 아직 15도 되지 않아요. 다른 도적들 중에는 저보다 레벨이 높은 사람도 있을테고, 그 사람들은 저보다 더욱 효율적으로 움직여 일을 수행할 수 있을텐데요."

운현의 질문은 타당했다. 그의 말대로 그가 가진 도적 스킬은 고작 세가지 뿐. 대가만 충분하다면 다른 도적들은 더 많은 스킬을 가지고 모험가 길드를 위해 움직여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운현이 묻자 상아는 차분히 그의 말을 부정했다.

"딱히 그렇지만도 않아."

"왜죠?"

"사실 아까 널 이 방에 들이기 전까지는 그 생각도 해봤지만 말야."

빙그레 웃은 그녀는 운현을 똑바로 응시한 채 말했다.

"이 일은 너만이 완벽하게 해줄 수 있거든."

"그러니까 왜요."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입가에 그려진 웃음을 더더욱 짙게 그린 후 천천히 말했다.

"네가 적임자니까."

"...그러니까..."

"하이딩이라는 스킬을 이용해 투명화를 할 수 있는 너 외에 누가 더 이런 일에 적임자겠어?"

상아의 말에 운현은 심장이 멈출 뻔 했다.

어떻게 안 거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지?

운현의 얼굴이 딱딱히 굳자 상아는 입가의 미소를 천천히 지운 후 광검을 잡고 그에게 겨누며 싸늘히 말했다.

"안그래? 이계인 운현?"

54====================

Quest

"....."

상아를 마주하며 운현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내 말이 틀렸나?"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숨기려는 건가?"

"숨기고 자시고 그런 스킬도, 이계인도 아닙니다만."

"그럼 너의 고향은 어디지?"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일단 나는 모르겠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작전으로 밀고나가기 위해 운현은 애써 표정관리를 한 후 말했다.

하지만 상아는 그의 그런 반응 쯤은 이미 예상한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이계인인게 밝혀진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고, 특수한 기술을 가졌다고 해서 누가 너 잡아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숨겨?"

"숨기고 자시고 아니라니까요."

"하아. 이렇게 나오긴가."

운현의 계속되는 발뺌에 상아는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어려보이는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에 불과함에도 그는 온 몸에 오한이 도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계속 밝히지 않을 생각이라면 죽어주는게 우리에게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어."

"......"

"우우우웅!"

광검에서 빛의 날이 솟아났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운현이 침을 꿀꺽 삼키자 상아는 입가에는 미소를, 눈에는 무심을 담은 채 광검을 들어 올렸다.

"네 안의 흑염룡이 깨어나는 것을 기다릴 이유는 없으니까."

"...네?"

잘 나가다가 이게 무슨 중2병 돋는 얘긴가. 운현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의 스승 역시 이계인이였지. 그 분은 항상 자신의 왼팔에 흑염룡이 잠들어 있고, 이 흑염룡은 이계의 존재에게 깃들어 있다고 했어."

"...일단 저는 이계의 존재가 아닐 뿐더러 흑염룡이라는 것도 없는데요?"

"그래? 그럼 내가 실수했다고 하지. 죽..."

"아이 썅!"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 이미 상대가 자신들 죽이려고 마음 먹은 이상 쓸데없는 존대나 가식으로 자신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운현은 인상을 왕창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내가 이계인이인걸 인정하면 안죽일거야!?"

"물론. 협력만 해준다면 말이지."

"제길..."

어지간하면 숨기려고 했건만. 운현은 한숨을 내쉬며 백기를 들었다.

"맞아. 난 이계인이다."

"한국이란 곳?"

"어? 어떻게 알았어?"

상아의 질문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계인이라는 것도 알고 한국까지 알고 있다. 그가 이상하다는 듯 묻자 상아는 광검을 해제한 후 쓴웃음을 지었다.

"내 스승님도 그곳의 사람이거든."

"...뭐?"

"너와는 좀 길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 앉아."

방금 전까지의 심각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상아는 태평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 와인을 한병 더 가져와 자리에 앉아 와인을 홀짝거렸다.

그녀를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운현 역시 자리에 앉았다. 여차하면 스틸로 저 광검을 빼앗고 하이딩 걸고 튀자. 라고 생각한 그가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자 상아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뭐 부터 말해줄까?"

"어떻게 내가 이계인인걸 알았지?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에 대해서는?"

"그 얘기를 하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군. 내가 가진 스킬 중에 분석이라는 스킬이 있어. 상대방의 약점을 단번에 파악하는 스킬이지."

"......"

"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게 아니야."

"응?"

상아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그런 식으로 소문을 냈단 말인가? 운현이 궁금해하자 상아는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진정한 강자는 자신의 힘을 삼할 숨긴다고 하더군. 지금 내 직업에 있는 사람 중에 나만큼의 레벨에 오른 사람은 없어. 그러니 내 스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지."

"일부러 거짓을 말한건가?"

"응. 나는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이고 당연하겠지만 나를 질시하는 적은 넘쳐나. 용병 연맹은 물론이거니와 각 왕국에서도 나를 쳐내고 새로운 인물을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으로 추대하려고 하고 있거든. 그런 년들이 태반인데 내 모든 것을 드러낼 이유는 없잖아?"

히죽 웃으며 말한 상아는 운현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내가 가진 스킬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은 네가 처음이다. 영광이라고 생각해."

"발설하면...?"

"뭐 내 분노를 사게 되겠지?"

'절대 말하면 안되겠군.'

처음의 인상은 그저 연기에 불과했던 것인가. 운현은 상아의 저런 모습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교활하고, 멍청한 모습으로 자신을 숨기고, 웃는 얼굴로 남을 죽일 수 있는 소리비도의 모습.

상아를 마주하며 운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잘못하면 삼도천 여행 가는거 아니야?'

뜻하지 않게 위험한 길을 걷게 생겼다. 이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위기 상황에 운현이 긴장하자 상아는 꺄르르 웃으며 그를 가리켰다.

"널 죽일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후. 좋아.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하지."

"딱히 맹세하지 않아도 되는데. 만약 이게 밝혀지면 넌 내 분노를 살것이고 내 분노가 풀릴때까지..."

"풀릴때까지...?"

"내 성욕처리 담당이 되야 할테니까."

'이거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아를 보면 확실히 그녀는 엄청난 미녀이기는 했다. 비록 소녀의 몸이기는 하지만 필레나 헤스티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비록 속알맹이가 문제이긴 했지만 겉모습만 따지면 그 어떤 여인보다 매력적인 미녀의 성욕처리 담당이 되야 한다는 말에 운현은 속이 복잡해졌다.

"어때? 나로서는 나쁠 일이 없는데."

"그냥 안들으면 안되나?"

"안들어도 상관은 없는데. 궁금하지 않아?"

"그다지..."

"아는게 힘이다. 라는 말도 있잖아."

"모르는게 약이다. 라는 말도 있지."

"헤에... 그렇게 받아칠 줄은 몰랐는데?"

히죽 웃은 상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내 스킬인 분석은 약점을 알아내는 스킬이 아니야. 그저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스킬을 전부 알아내는 것이지."

"야!"

듣기 싫다고 했는데 상아는 냅다 자신의 분석 스킬에 대해서 말해버렸다. 그것에 운현이 어처구니 없어하며 소리치자 상아는 키득거린 후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이 분석이라는 스킬은 직업 스킬이 아니야. 나도 우연히 얻게 된 스킬이지. 즉, 내 직업을 아무리 조사해봤자 알아낼 수 없는 것이라는 거다."

"하아...너 진짜."

정말 성격 나쁘다. 분석이라는 스킬이 직업 스킬이고, 약점을 알아낼 수 있는 스킬이라고 대놓고 소문을 낸 주제에 사실은 직업 스킬도 아니고 약점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도 없는 것이라고?

운현은 싱글거리며 즐거워하는 그녀를 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남이 싫어하는 일은 더 해주는게 내 스타일이지."

"너 성격 진짜 끝내준다..."

운현이 어이없어하는 것을 보며 오히려 즐거워 한 상아는 머그잔으로 그를 가리켰다.

"아무튼, 내가 파악한 결과 네가 가지고 있는 스킬은 일반 도적의 스킬과는 좀 다르더군."

"하지만 당신 역시도 가지고 있는 스킬이 당신의 직업과 다른 분석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서? 아니 그 전에. 당신 직업은 도대체 뭐야?"

"내 직업? 아. 설명하지 않았군. 마검사다. 마법과 검술을 쓸 수 있는 직업이지."

"성기사처럼 공격과 탱킹, 힐링을 할 수 있는 직업 같은 건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일단 마검사라는 직업은 전 세계를 뒤져도 나 밖에 없을테니까 말야."

"왜?"

"마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법과 검술을 동시에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거든. 내 스승님 빼고. 나도 스승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검술밖에 쓸 수 없었어. 그러다가 스승님께 마법을 배워 마검사가 된거지."

"직업을 가진 상태에서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어?"

"응. 물론 현재 가진 직업에서 연동되는 직업만 가능하지만 말야. 예를 들자면 성기사나 사제 같은 경우 신을 부정하고 악마와 계약한다면 타락성기사나 타락 사제가 되지. 그렇게 되면 그들은 신의 축복같은 기술이 아닌 악마의 기술을 쓸수 있게 된다고 하네."

"헤에... 신기하네."

"아무튼, 네 말대로 그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었어. 그렇기에 시험해본거야."

"뭔 시험?"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상아는 히죽 웃은 후 자신의 광검을 들어올렸다.

"그게 뭐?"

"모든 직업의 스킬은 적든 많든 마나를 이용하지. 스틸이라는 스킬을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나를 이용하면 작게나마 광검을 발동시킬 수 있는데 그것이 안되는 것."

"그래서 그렇게 쉽게 광검을 넘긴건가."

무인에게 자신의 무기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었다. 그런데도 광검을 너무 쉽게 넘기는 것에 의심을 품었어야 했는데. 운현은 자신의 멍청함에 한숨이 나왔다.

"응. 네가 그것을 다루지 못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지."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말했지? 내 스승님도 이계인이라고 내 스승님께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분이셨지만 마나를 다루는 일에는 영 서툴렀어. 그 이유도 자신의 왼팔에 봉인된 흑염룡때문이고 아마 이계인은 이 흑염룡때문에 스킬을 쓸 수는 있지만 마나를 다루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거든."

"........"

결론만 말하면 왠 정신나간 중2병때문에 걸렸다는 것이다. 운현이 떨떠름한 얼굴을 하자 상아는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스승님은 자신의, 이계인의 흑염룡이 깨어나면 세계가 멸망한다고 하셨어. 너도 주의하도록 해."

"아. 예...."

일단 저 흑염룡 어쩌고는 귓등으로 넘기자. 운현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상아를 보며 한숨을 내쉰 후 물었다.

"그럼 개인적으로 궁금한 거. 듣기로는 네 분석 스킬로 약점을 파악해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해 승리했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된거야?"

"아. 그거? 그건 맞아."

"아니라면서."

"아, 분석 스킬로 약점을 파악한게 아니야. 분석 스킬로 상대방의 스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거지. 상대방과 싸워 상대의 힘을 알고, 그가 가진 스킬을 알고 있다면 약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그게 말이 쉬워야지..."

"어? 어, 어려운건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무튼 알았어. 흠... 당신 스승님이라는 사람은 뭐하는 작자지?"

"글쎄..."

"제자가 되가지고 그것도 몰라?"

운현의 비웃음에 상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그 모습에 운현은 괜한 말을 했나 싶었다.

"아아. 그래. 사실 난 그분에 대해서 잘 몰라. 스승님은 자신의 이름도, 자신의 직업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말야."

"허... 그런데 용케 한국에서 왔다는 것과 이계인이라는 것은 가르쳐줬네?"

"그때는 처음 만났을 때였으니까. 스승님과 처음 만나기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오백오십년 정도 전이겠지. 내가 고작 육십대의 애송이에 엘프 검사에 불과했을 때의 일이야. 그때는 지금과 시대가 달랐지. 엘프라는 종족은, 네가 보고 있는 나를 보면 알수 있겠지만 무척이나 미형의 종족이지. 그리고 이렇게 귀엽기도 하고 말야. 그것 때문에 각 왕국의 귀족들은 엘프를 구하고 싶어했어."

"데려다가 어디다 쓰려고? 성노예로 쓰려고?"

운현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엘프들을 잡아 성노예로 쓰는 것은 이미 전통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건 남자가 많은 세계의 이야기이지 이런 세계에서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성노예로 쓴다고 하면 지원자가 넘쳐나겠지. 그런건 아니고 의상을 입히기 위한 모델이나 화장을 위한 도구로 쓰려고. 아무래도 엘프들이 옷빨이나 화장은 잘 먹히거든."

"...아 그러냐."

여자들끼리 백합이라도 하는 건가!? 라고 기대했던 운현은 시무룩한 얼굴로 떨떠름히 답했다.

"그래서 왕국의 귀족이 보낸 용병단과 싸우고 있을 때 스승님과 만났지. 스승님은 용병단의 여인들을 보며 파렴치하다. 여럿이서 어린 꼬마를 공격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라라고 성을 낸 후에 강력한 마법과 검술로 그들을 제압한 후 나에게도 화를 냈어."

"뭐라고?"

"옷 좀 제대로 입고 다니라고."

"...아니 도대체 뭘 입고 다녔길래..."

운현이 경악하며 묻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인 후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음? 그냥 뭐 팬티만 입고 다녔는데. 로브 하나랑. 그때 좋은 칼을 구하느라 돈이 없어서 말이지."

"아 그러냐..."

"아무튼 스승님과 만나고 나서 스승님께 혼나고 스승님이 준 슈트를 받았어. 그것을 받고 나서 스승님을 따르기 시작했지."

"호오... 지금 네가 입고 있는 그걸 말하는거냐?"

"응."

상아의 몸을 단단히 가리고 있는 찰싹 달라붙는 슈트를 보며 운현은 감탄했다. 몸의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저 슈트를 입는 거나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거나 도대체 뭔 차이가 있나 싶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냥 취향차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 그는 신기하다는 듯 그 슈트를 가리키며 물었다.

"오백년도 넘은 일인데 잘도 멀쩡히 상태를 유지하고 있네."

"당연하지. 이건 스승님이 직접 만드신 슈트라고."

"도대체 너네 스승이라는 사람은 뭐냐?"

강력한 마법, 검술, 그리고 저런 아이템의 제작까지. 못하는게 없는 걸 보니 보통 놈은 아닌 듯 싶었다.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 난 스승님의 이름도, 직업도 모른다니까. 가끔씩 술을 마실때마다 자신은 실패했다. 이계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야."

"음...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직업도 모른다. 그럼 그 사람을 부를땐 어떻게 불렀어?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부를때 말야."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스승님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말할때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

"그게 뭔데?"

"현자."

55====================

Quest

"현자... 라고?"

"그래. 현자. 스승님은 자신을 현자라고 지칭했어. 현명한 자. 세계의 진리에 닿아 있는 자."

"........"

그녀의 말에 운현은 자신의 패시브 스킬인 현자의 시간을 떠올렸다. 그것이 저 현자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몇백년 전의 이계인, 그것도 같은 나라의 인물. 그것이 무슨 관계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나오는 것은 없었다.

"현자라...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나?"

"글쎄?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 스승님에게는 한계가 없었거든. 마법, 검술, 인챈트, 무기 제작, 심지어 요리나 생활 스킬, 그 외의 유틸기 등등.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어."

그야말로 이세계 먼치킨이다. 이계로 들어오며 현자의 시간이라는 스킬과, 하이딩, 한손검 숙련 밖에 받지 못한 운현이 떨떠름한 얼굴을 하자 상아는 쇼파의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대었다.

"하아. 대단하구만."

"응. 대단한 사람이었지. 그 어떤 미녀들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

"잠깐. 뭐라고?"

"응? 아. 스승님과 함께 있을 때 스승님은 많은 여인들에게 사랑을 고백받았지만 그분은 단 한사람과도 맺어지지 않았어."

"...왜?"

"몰라? 스승님이 말하길 남자가 25세부터 동정을 유지하면 현자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했으니 말야."

".........."

운현은 그 현자에 대한 동정심과 함께 엄청난 존경심이 생겼다.

이토록 동정떼기 쉬운 세계에서, 그것도 한국의 연예인들보다 몇배는 예쁘고 몸매가 좋은 여자들이 하자고 달려드는데도 그것을 거절하고 동정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먼치킨 능력 인정.'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 할 수 없었다. 운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상아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사실 나도 스승님께 꽤나 마음이 있었지. 스승님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난 후 스승님과 헤어지기 전날 밤. 내 처녀를 그분께 바치려고 했었어."

"그 현자는 다 거절했다면서. 그런데도 도전을 한거야? 넌 알았잖아."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스승님이 동정을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 하지만 그건 스승님 사정이지 내 사정은 아니잖아."

"우아아..."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기껏 가르쳐놨더니 동정까지 빼앗아가려 했다니. 보통 여자는 아닌 것 같았지만 이정도로 정신나간 여자일 줄이야. 운현이 떨떠름히 자신을 바라보자 상아는 히죽 웃었다.

"왜. 동경할 것 같아?"

"하겠냐?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개털렸지."

"그, 그러냐."

"뭐 그때는 지금처럼 강하지도 않았고... 하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지금 덤벼도 자신이 없어."

모험가 내에서 거의 최강자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아마저도 자신없다고 말할 정도의 힘이라니. 운현은 곰곰히 생각했다.

'강력한 힘 얻고 고자되기 vs 동정탈출'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냥 동정탈출을 선택하겠다. 운현은 붕붕 고개를 저은 후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아니. 그 스승이 별 말 한거 없어? 그 양반은 어디 있는데?"

"없어. 죽었어."

"헐?"

그런 강한 힘을 가지고도 죽었단 말인가?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세계란 말인가. 운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상아는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말했다.

"수명이 다해서 죽었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진리에 닿아 있다고 하더라고 수명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더라고. 결국 100년도 채 못살고 늙어 죽었지 뭐야."

"하아."

"뭐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는 대충 이게 다야. 나중에 침대에서 상세하게 얘기해 줄 수 있으니까 궁금하면 얼마든지 찾아와."

대수롭지 않게 말한 상아는 운현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자. 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이계인 운현. 우릴 도와 줄 생각은 없어?"

본론. 모험가 길드를 도와 시장선거에서 승리하라. 그것을 상아가 언급하자 운현은 생각했다.

'돕는게 나을까?'

모험가 길드의 일을 돕는다면 모험가 길드 내에서 자신의 위치는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그리 된다면 모험가 길드 내에서 움직이는데 제약이 없어질 것이고 대형 클랜의 압박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용병 연맹이지.'

모험가 길드와 싸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용병 연맹과 척을 지는 행위다. 문제가 생긴다면 모험가 길드가 커버를 친다고 했지만 모든 곳에서 자신을 가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거 굉장히 고민되는 일이군...'

"물론 싫다면 거절해도 좋아. 다만 그 때는 각오를 해야 할거야."

"무슨 각오?"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는 각오."

"모험가를 관두면 되는 일 아닌가?"

"하. 바보냐? 던전 도시에 남아 있다면 승리의 가능성이 높은 군대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면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군대에 끌려갈 수 있다고."

"난 남자라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전쟁이 나면 남자가 가장 위험하다."

"왜?"

"전투로 지친 병사들의 욕구를 달래줘야 하니까. 전쟁으로 인해 많은 남자들이 정기가 빨려 죽는다고. 만약 던전 도시에 남아 있다면 모험가 길드의 보호를 받아 어느정도는 안정되겠지만 모험가 길드를 탈퇴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가 잡히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너를 보호해주지 않을 거야. 아니, 내가 가장 먼저 널 겁탈해주지."

상아의 말에 운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뱀 앞에 놓인 쥐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입맛을 다시는 상아를 바라보며 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선택의 여지따위는 없잖아. 뭐가 들어보고 거절해도 된다는 거야?"

"거절하면 나한테 찍히는 거니까 말야. 죽을지 말지 정도는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개소리도 좀 정도껏 해라. 응? 좋아. 한다고 쳤을때 나에게 나오는 이득은 뭐지?"

운현이 당당히 묻자 상아는 팔짱을 끼고 생각을 하다가 차분히 말했다.

"내 몸을 주지."

"........"

"뭐냐? 그 시선은?"

가소롭다는 듯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운현의 눈에 상아는 은근한 분노를 담아 그를 노려보았다.

"애들한텐 관심없다."

"나이는 내가 너보다 많아."

"근데 애의 몸이잖아. 됐고... 좋은 무기와 장비를 챙겨줘."

"마나도 못다루면서 그건 뭐하러?"

상아의 질문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나를 못다루면 못써?"

"응. 괜찮은 장비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것이 기본 조건이야.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너에게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그리고 내가 시장이 된다면 장비를 제공하겠어. 어때?"

그정도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추었다.

"뭐야?"

"그 전에 좀 묻자."

"얼마든지. 답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성심성의껏 답해주지."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 하이딩이 다야?"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한손검 숙련이라는 스킬과 체술, 그리고 재료 합성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군."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네 그 분석이라는 스킬은 어디서 얻은거야?"

"그건 답해줄 수 없어."

운현의 질문에 상아는 거절했다. 그녀의 답변을 받은 운현은 잠시 생각을 한 후 말했다.

"좀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하는데... "

"시간이야 줄 수 있지만 그리 길게는 안돼. 우리도 이제 움직여야 하니까 말야."

"하루면 충분해."

운현의 대답에 상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정도라면 시간을 내어줄 수 있다 계산한 상아가 허락하자 운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정오까지 답변을 주도록 하지."

"좋아.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말라고."

자리에서 일어난 상아는 운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와 악수를 한 운현은 씩 웃었고 그 웃음을 본 상아 역시 마주 웃었다.

방에서 나온 운현은 에리스의 인사를 받으며 천천히 걸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걷는 그의 머리 속은 지금 수천가지 생각으로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결국 이걸 정리하려면...'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 상황을 판별하여 방침을 결정하는 것은 역시 현자의 시간이 답이다. 운현은 일단 어찌 할 지에 대해서는 현자의 시간을 통해 답을 구하고자 생각하며 밖으로 나갔다.

"운현씨!"

길드장의 방에서 나와 길드 사무소를 통해 회관으로 돌아 온 운현은 회관의 테이블에 앉아 안절부절 못하며 자신을 기다리던 필레가 벌떡 일어나 자신에게 다가오자 빙긋 웃었다.

"아. 필레씨."

"운현씨! 괜찮아요!? 이상한 일 안당했죠!? 네!? 혹시 당한건가요!? 말씀해주세요! 제가 혼구녕을...!"

"하하하... 아무것도 없었어요."

차라리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이 나았겠지만 운현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묻는 필레의 얼굴을 보니 그 이야기를 차마 할 수 없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조심하셔야 해요!"

운현의 말에 필레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다보니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죄송해요."

"예? 운현씨가 왜 죄송해요! 제가 더 죄송하죠..."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필레씨도 피곤하실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저도 피곤해서 자야겠어요."

"그, 그렇군요... 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 길드장과 둘이 있게 된 것이다. 운현이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한다면 정말 피곤하기 그지 없을 것이라 생각한 필레는 운현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 필레씨."

"네?"

몸을 돌리고 2층으로 올라가려던 운현을 발걸음을 멈추고 필레를 보았다. 자신의 부름에 고개를 갸웃거린 필레는 운현의 입술이 열리길 기다렸다.

"고마워요. 오늘 일."

"예? 아... 들으셨군요."

필레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조용히 말했다. 운현을 지키고자 했지만 실패해버렸다. 그녀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운현은 필레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에엣!?"

"고마워요. 절 그렇게까지나 생각해주셔서..."

"아니. 그, 그런 의미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보답은... 다음 데이트때 꼭 제대로 할게요."

"후아아아아앗!?"

운현의 말에 필레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그녀가 어쩔 줄 몰라하자 운현은 필레의 손을 놓아준 후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진짜 들어갈게요."

"네! 네에! 푹쉬세요옷!"

필레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연신 꾸벅꾸벅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했다. 그녀에게 피식 웃어 준 운현은 헤스티아의 방으로 가려다가 아까 했던 미야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미야와 오늘 하기로 했었지.'

언제 간다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으니 지금 가도 괜찮을 것이다. 꽤 늦은 시간이지만 운현은 서슴없이 미야의 방문 앞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미야. 자?"

"응? 아니. 안자. 들어와~"

미야의 밝은 목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온다. 운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와~"

하체에 찰싹 달라붙는 회색 트레이닝복과 가슴만 가리는 검은색 탱크탑을 입은 채 운동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그녀의 몸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미야를 가만히 바라보던 운현은 빙긋 웃은 후 물었다.

"뭐 했어?"

"아. 간단한 트레이닝이야.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에는 이게 최고지."

"헤에... 어떤 식으로 하는지 보여줄 수 있어?"

"응? 어렵지 않지."

운현의 말에 미야는 바닥에 앉은 후 긴 다리를 쫙 찢었다. 좋은 유연성이다. 일자로 완벽하게 다리를 찢은 후 그녀가 상체를 바닥에 대고 가만히 있자 운현은 그녀에게 다가간 후 물었다.

"이 상태로 있는거야?"

"응.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은 격투가에게 중요한 거니까 말이지."

"헤에. 만져봐도 괜찮아?"

둔부 사이로 솟아 있는 하얀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을 보며 운현은 히죽 웃었다.

56====================

Quest

"어? 응. 뭐 마음대... 으흣!? 거, 거긴!"

"왜?"

"아, 아니... 드, 등이나 만질 줄 알았는데."

운현의 손이 트레이닝 복에 감싸진 탄력적인 둔부를 쓰다듬자 미야는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헤에... 그럴 줄 알았단 말야?

운현의 손길이 탄력적인 둔부를 쓰다듬자 그녀는 몸을 비틀려 하였지만 다리를 벌린 상태라 그런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으응... 조, 조금 살살..."

"이렇게?"

탱탱한 엉덩이의 한쪽을 운현이 꽉 쥐자 미야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헐떡거렸다.

"어디보자. 앙."

"히익!?"

길고 하얀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며 얼굴에 닿자 운현은 그것을 잡고 입에 물었다. 꼬리가 운현의 입 안으로 들어가자 미야는 비명을 내질렀다.

"여기도 좋은가보지?"

부드러운 털이 타액으로 젖어드는 것을 보며 운현은 씩 웃었다. 그것에 미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돌려버렸다.

"으으으..."

"대답을 안한다 이거지. 그럼..."

"히익! 이잇! 흐이이이잉!"

운현은 양 손으로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꼬리를 물고 핥았다. 그의 격렬한 손길과 계속해서 꼬리를 자극하는 것에 미야는 몸을 일으키려 하였지만 그녀의 허리에 운현은 털썩 걸터앉아버렸다.

"우, 운현!? 어, 으... 얼마든지 만지게 해줄테니..."

"응? 알았어. 고마워."

"이 자세 좀... 으하아아앙!!"

다리가 점점 좁혀온다. 운현에게 깔린 채 엉덩이만 살랑거리던 미야의 다리 사이가 점점 짙게 물든다. 그것을 보며 운현은 씩 웃은 후 말했다.

"꼬리랑 엉덩이를 만져지는 것만으로 느끼는거야?"

"흐윽... 그런건..."

"그런건? 냠냠."

"흐앙! 느낀다! 느낀다고! 그, 그러니까!"

"그럼 더 느끼게 해줘야지."

평소 진중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주제에 엉덩이와 꼬리를 자극받자 쉽게 느껴버리는 미야의 모습에 운현은 점점 흥분되었다.

그는 실실 웃으며 꼬리를 핥짝거리며 양 손으로 둔부를 주무르고, 벌려진 다리 사이에 짙게 물들어가는 계곡 부분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으, 으아아압!"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미야는 기합성을 내뿜으며 몸을 일으켰다. 운현이 허리 위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이 움직인다.

"오. 대단한데."

"이, 이정도 쯤이야하아아아앙!?"

그녀가 힘을 주어 일어나는 것에 감탄하며 운현은 히죽 웃은 후 트레이닝복 사이에 손을 넣었다. 따뜻하고 탄력적인 둔부가 손에 잡히자 운현은 그 부드러운 맨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흐앙! 으으응!?"

"더 버텨보지 그래?"

"너무...너무해... 왜 이렇게 괴롭히는거야...? 흑..."

운현이 자꾸 꼬리를 애무하며 엉덩이를 주무르고 괴롭히자 미야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너무 심했나 싶어 볼을 긁적거리고 애무하는 것을 멈췄다.

"아. 미안. 내가 너무 분위기를 탔나?"

"히잉..."

평소와 다른 그녀의 약한 모습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전 상아에게 당한 것 때문에 기분이 좀 난폭하게 되었나보다. 운현은 훌쩍거리는 미야의 허리 위에서 일어난 후 그녀에가 다가갔다.

"조금은... 훌쩍. 훌쩍... 기대했는데...흑..."

"미안해. 장난이 지나쳤네."

미야의 눈에서 조금씩 배어나온 눈물을 손으로 닦아 준 운현은 그녀의 얼굴을 잡아 올렸다. 그의 손길을 피하려 고개를 돌린 그녀였지만 곧 이어진 그의 손길에 힘없이 운현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렇게 보니까 새삼스레 예쁘네."

"흑... 또 놀리려고..."

"아냐. 진담인데?"

"...그럼 나도 키스해줘."

"뭐 그정도야."

미야가 도톰한 입술을 삐쭉거리며 말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부드럽게 자신의 입술을 덮는 운현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야는 그의 혀가 자신의 입안으로 파고들자 자신도 모르게 설육을 움직여 그를 받아들였다.

"으음...줍...추룻... 핥짝..."

"혀가 좀 까칠거리네."

"시, 싫어?"

"응? 아니. 나쁘지 않은데?"

"다행이아다아..."

운현의 말에 미야는 눈물을 머금은 채 베시시 웃었다. 평소 어른스럽고 강인한 모습만 보이던 그녀가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 갭이 장난이 아니다.

"이렇게 있지 말고 침대로 가자."

"으응..."

운현이 손을 잡고 일으켜주자 미야는 얼굴을 살짝 붉힌 후 몸을 일으켰다 .일어난 그녀가 살짝 몸을 떨고 다리 사이를 오무리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너, 너무 젖어서 끈적거려."

"그럼 벗겨줄게."

"응!? 아냐! 내가 벗..."

"내가 벗겨주고 싶어서 그래."

"으응..."

운현의 말에 미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쪼그리고 앉은 운현은 눈 앞에 보이는 미야의 하체를 보며 감탄했다.

"이야. 정말 근육이..."

"근육이 뭐!"

"보기 좋다고."

"그. 그, 그래!? 그렇지!? 근육은 정의라고!"

헤스티아처럼 말랑말랑하고 탄력적인 다리도 좋지만 이렇게 근육의 말벅지도 나쁘지 않다. 탱탱한 근육으로 감싸여진 허벅지를 바라보던 운현은 트레이닝복으로 감싸진 허벅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흐응!? 버, 벗긴다더니..."

"아니. 이대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하아앙!! 왜, 왜에...?"

운현의 손길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갔다. 딱 달라붙는 옷이라 그런지 미야의 도톰한 계곡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운데에 운현은 시선을 집중하고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비벼보았다.

아까의 애무로 젖어 있는 검은 부분이 더더욱 검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운현은 히죽 웃었다.

"트레이닝 복 또 있어?"

"으응..."

"이거 시장에서 팔지?"

"응..."

"그럼 찢는다."

"엑!?"

"찌직!"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운현은 미야의 트레이닝복 계곡 부분을 단번에 찢어버렸다. 실밥이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계곡 부분에 구멍이 나자 미야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꼬리로 운현의 얼굴을 톡톡 쳤다.

"뭐, 뭐하는거야!?"

"아니. 이것도 보기 좋을 것 같아서. 가랑이만 끈적거린거 아냐?"

"바보야!? 넌!?"

"하하하! 아니라고는 못하겠군."

"진짜 바보야..."

후끈한 열기를 내뿜으며 은색 실방울이 똑똑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것을 보며 운현은 생긋 웃은 후 얼굴을 가져갔다.

"뭐, 뭐하려고...?"

기대감이 담긴 시선과 목소리에 운현은 살며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응. 맛보려고."

"헉!? 그, 그건!"

"싫어?"

"그런건 아닌데..."

운현은 자꾸만 얼굴을 건드리는 하얀 꼬리를 손으로 잡았다. 그것에 미야가 부르르 몸을 떨었고 계곡에서 떨어지는 은색 실방울이 더더욱 많아졌다.

"꼬리로도 느끼는거지?"

"으응..."

"그럼 이리 와봐."

"응? 응..."

운현이 입으로 해줄 줄 알고 기대하고 있던 미야는 실망한 얼굴로 그의 손을 따라 침대로 올라갔다. 그녀를 엎드리게 해 탄력적인 둔부를 드러나게 한 운현은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가져갔다.

"이. 이런 자세는... 부끄러운데."

"아. 근데 이게 편해."

"...진짜 넌 알 수 없는 사람이야."

"별 말씀을."

자신을 내려다보며 미야가 투덜거렸지만 운현은 전혀 상관없는 듯 웃으며 미야의 허리를 잡아 내렸다. 부들부들 떨며 조금 힘을 주어 그의 손길에 저항했지만 결국 굴복해버린 미야는 운현의 얼굴에 앉아버렸다.

"쪼옥..."

"흐이이이익!?"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운현의 입술이 음부의 도톰한 살에 입맞춘다. 그것만으로 엄청나게 느꼈는지 미야는 파르르 몸을 떤 후 힘을 풀어버렸다.

"푸슛! 푸슈슛!"

"와... 엄청 쌌네."

얼굴이 축축해 질 정도의 애액이 분출되자 운현은 그것을 혀로 핥아보았다. 짭짜름한 애액의 맛을 느끼며 운현은 푸들푸들 흔들리는 그녀의 몸을 끌어 당겼다.

"제대로 핥은 것도 아니고 고작 거기에 키스한 것만으로 이리 되면 쓰나."

"하아...하아...."

"자. 그럼 본격적으로 해볼까? 더 하면 네가 정신줄을 놓을 것 같은데 말야."

자신의 말에도 아무런 말을 못하는 미야를 보고 쓴웃음을 지은 운현은 바지를 벗고 딱딱해진 남성을 잡았다. 운현이 자신의 다리를 쫙 벌리고 어깨 위로 넘기자 미야는 서서히 정신을 차린 후 입술을 꽉 깨물었다.

"헤헤. 이렇게 보니까 꽤나 야하네."

트레이닝복의 가랑이만 찢어져 크게 벌어져 있는 것을 보며 운현이 말하자 미야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 전에. 핥짝."

"흐아아앙!"

운현은 미야의 다리를 잡고 더 밀어 올린 후 벌려진 계곡을 혀로 핥았다. 그것에 쾌감의 비명을 내지른 그녀를 보며 히죽 웃은 운현은 아예 얼굴을 파뭍고 계곡을 쪽쪽 빨았다.

"흥앗! 으읏! 으으으으으!"

"자꾸 꼬리로 방해할거야?"

"아, 아냐하앙!! 꼬, 꼬리가 자기 멋대로..."

"그럼 말 안듣는 꼬리는 이렇게 해주지. 냠."

"히이잉!"

트레이닝복을 잡아 쭉 올린 운현은 뜯어진 구멍 사이로 꼬리를 빼고 그것을 끝에서부터 입에 문 후 천천히 얼굴을 올렸다. 꼬리 전체를 입으로 자극한 운현은 축축해진 꼬리가 축 처지자 히죽 웃었다.

"하아...하아..."

마치 분수처럼 애액을 싸대는 계곡을 보고 운현은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나 잘 느껴주니 만져 준 보람이 있다.

"자. 그럼 이제 진짜 간다."

"흐긋...응...흐으으으읏!"

"오우... 그래도 잘 들어가네."

탄력적인 음부가 남성을 꽉 물어온다. 그간 발정기때 촉수괴물로 흥분을 처리한 덕분인지 삽입에 저항감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양물을 물고 놓지 않으려는 것 때문에 거슬릴 뿐이지."

"흐읏... 다 들어갔다."

"하악...하악... 이, 이게 진짜 남자..."

멍하니 중얼거린 미야는 운현의 얼굴을 보며 헤죽 웃었다. 그것을 보며 운현은 천천히 그녀의 얼굴에 얼굴을 가져갔다.

"네 애액으로 더럽혀졌으니 책임져."

"으으응..."

운현의 말에 미야는 긴 혀를 내밀어 그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매끄러운 헤스티아의 혀와 다르게 미야의 혀는 조금 까칠거렸다. 그것이 오히려 쾌감을 증폭해오기에 운현은 그것을 즐기며 살며시 손을 움직였다.

"으읏!"

그의 손이 자신의 탱크탑에 감싸진 가슴에 닿자 그녀는 부끄러운 듯 몸을 흔들었다.

"왜?"

"나, 난 작아서..."

"작은 가슴이든 큰 가슴이든 난 가리지 않아."

"욕심쟁이..."

"뭐 부정은 안하겠어."

"흐으읏..."

미야의 탱크탑을 밀어 올린 운현은 헤스티아보다 작은 가슴을 손으로 끌어모아 주물렀다. 확실히 작다. 작아서 만지는 맛은 나지 않지만 만질때마다 미야의 몸이 꿈틀거리면서 느끼는 것이 보이자 그것에 운현은 재미를 붙였다.

"응?"

미야의 꼬리가 자신의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그것에 운현은 가슴을 만지던 것을 멈춘 후 미야의 양 다리를 잡았다.

"그럼 본격적으로..."

"찔꺽!"

"흥앗!?"

그의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의 뽑아진 양물이 다시 계곡벽을 가르며 쭉 들어가자 미야는 허우적거리다가 그를 꽉 끌어안았다.

"너, 너무..."

"너무?"

"좋아아아..."

녹는 듯한 얼굴로 쾌감을 속삭인 미야의 모습에 운현은 그녀의 입술에 키스해주었다. 다시 이어지는 진한 키스. 키스를 나누며 운현은 부드럽게 피스톤 운동을 시작했다.

"쭈룹... 흡! 쪽... 핥짝.. 후웃!"

키스를 하며 신음성이 텨져나온다. 그것을 감내하며 허리를 움직이던 운현은 미야의 계곡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양물을 꽉 죄자 더욱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히야아앙! 으아앗!"

갑작스레 거칠어진 그의 피스톤질에 놀라며 미야는 비명을 내질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앙탈을 부리는 그녀의 머리를 꽉 잡고 입맞춘 운현은 미야가 입술을 떼고 자신을 꽉 끌어안자 그녀의 복슬거리는 귀를 핥고 속삭였다.

"아직 멀었어."

"흐아아앙! 아앙! 아으으으으으으!!"

"흣...윽...!"

그녀의 머리를 잡느라 다리를 놓은 탓에 미야의 근육으로 덮힌 긴 다리가 운현의 허리를 꽉 끌어 잡았다. 더 깊숙한 곳에 남성을 넣어달라는 그 신호에 운현은 짧고 깊게 그녀의 깊은 곳을 공략해나갔다.

"하아아아앙!"

"웃! 나도...!"

또다시 그녀의 안이 크게 조여오자 운현은 사정감을 참지 않았다. 뜨겁게 차오른 정액을 그대로 배출한 운현은 계곡이 탐욕스럽게 그것을 탐하는 것에 만족하며 미야의 위에 축 늘어졌다.

"하아...하아..."

"으으으... 이게 남자... 진짜 남자..."

"후후. 남자는 처음이랬지?"

미야의 머리 밑에 팔을 넣어 준 운현은 천천히 남성을 뽑았다.

"쯔륵..."

애액과 정액이 섞인 백탁액이 남성과 이끌려 주륵 흘러나오는 것을 무시한 운현은 미야의 옷을 전부 벗겼다. 자신 역시도 옷을 모두 벗은 후 운현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맨살과 맨살이 닿는 감각이 좋았는지 미야는 베시시 웃으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어땠어?"

"너무 좋았어... 그... 키스도 좋았고."

"키스가 왜?"

"다른 모험자들에게 들었는데... 남창들은 키스를 잘 안해준다고 해서..."

"호오. 그래?"

빙긋 웃은 운현은 미야의 입술에 입맞췄다. 기다렸다는 듯 그를 반기며 키스한 미야는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정말 족장님의 말이 맞았어."

"뭐가?"

"던전 도시에서... 귀인을 만났으니까."

방긋 웃은 그녀는 운현의 손길이 자신의 꼬리를 만지작거리자 얼굴을 붉혔다.

"꼬리만으로도 느끼는거야?"

"으응... 좀 민감한 곳이라."

"여기 말고 여기는?"

"으읏..."

운현의 다른 손이 계곡 부분을 만지작거린다. 꼬리와 음부가 자극되는 쾌감에 어쩔 줄 몰라하던 미야는 운현에게 키스한 후 말했다.

"처음에는 그곳만이있지만... 이제는 키스가 더 좋아."

"호오... 그래?"

운현의 미소에 미야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저기... 무슨 생각을..."

"그럼 내가 만져주는 모든 곳을 느끼게 만들어주지."

"히이이이익!?"

57====================

Quest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발동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력이 100 올랐습니다.]

'흠...'

미야의 까무잡잡한 몸 여기저기에 하얀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운현은 옷을 입었다. 몇차례나 되는 절정에 도달해 헐떡이던 미야가 잠들어버린 것을 보고 운현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길드 회관으로 내려온 운현은 맥주를 앞에 두고 아까 전, 상아와 만나며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일단 첫번째. 왜 현자의 시간은 모르지?'

분석 스킬로 상대방의 스킬을 전부 알 수 있다고 하는 상아마저도 현자의 시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운현은 이상함을 느끼며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현자의 시간은 스킬창의 목록에 없었다.

'상아의 스승인 현자와 이 현자의 시간이 가진 상관성은?'

하지만 이것 역시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가진 정보가 적으니 이렇다 할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운현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은 후 중얼거렸다.

"남은 것은 길드의 일이군."

이것만큼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길드의 일을 한다는 것은 길드에게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아와 협상을 하여 자신에 대한 정보를 발설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고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위험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상아를 경계해야겠군.'

이런 일이 벌어질까봐 자신의 능력을 지금까지 감추고 있었던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결정을 내린다고는 하지만 결국 상아의 협박에 밀린 셈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그 대가가 무척이나 달콤하다지만 그것은 운현의 의지가 아닌, 상아의 의지대로 이끌려가는 것. 운현은 그것에 심한 짜증과 분노를 느꼈다.

자신이 강하다면 상아가 아무리 자신의 정체를 가지고 압박을 한다 하더라도 콧방귀 한방으로 그녀의 의도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이상에야 결국 힘있는자에게 이끌려 갈 수 밖에 없다.

"던전 열심히 다녀야겠네."

비슷한 레벨대에서 잘났다고 까불어봤자 결국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었다. 운현은 자신의 스탯창을 바라보며 강해지기로 결심했다.

'그 누구도 나를 강제할 수 없게 만들겠다.'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 상태가 비활성화 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지력이 99 하락합니다.]

"일단 아침에는 퀘스트 완료부터 하러 갈까."

상아에게는 내일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으니 아직 시간은 꽤나 남아 있는 셈이다.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남은 맥주를 단번에 들이마셨다.

"어머. 당신이 운현인가요?"

"...누구... 세요?"

콧가에 느껴지는 장미향에 운현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몸 전체에 색기가 넘쳐 흐르는 아름다운 미녀가 몸에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은 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운현은 그녀의 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 펠리시아라고 합니다. 모험가 길드의 책사이지요.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미녀라면 언제나 환영인걸요."

"후후. 그런가요?"

운현의 말에 웃으며 그의 앞에 앉은 펠리시아는 커다란 가슴을 테이블 위에 척 걸친 후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저희 상아가 운현씨에게 폐를 끼쳤다고 들었어요."

"아. 뭐 괜찮습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기도 하고..."

"어머. 그래도 운현씨는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은데요?"

"......."

자신의 속내를 제대로 찝은 그녀의 말에 운현은 펠리시아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부르르 몸을 떤 그녀는 자신의 도톰한 아랫입술에 손가락을 얹은 후 요염한 어조로 말했다.

"그 사과를 제가 대신 하고 싶은데... 어떤가요?"

"괜찮습니다."

"그래요? 아쉽네요. 후후후... 언제든지 그 사과를 받고 싶다면 절 찾아와주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펠리시아는 운현에게 다가가 그의 귓가에 속삭이고 그대로 길드 사무소로 들어갔다. 한줌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잘록한 허리 밑의 풍만한 둔부를 씰룩이며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 절로 색욕이 들끓는다. 운현은 입맛을 다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 더 해야지."

헤스티아와 미야의 방 중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하던 운현은 아까 전 자신에게 깔려 헐떡이던 미야를 떠올린 후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그녀의 옆으로 간 운현은 그녀의 옆에 누운 후 손을 들어 꼬리를 잡았다.

"으으음..."

민감한 꼬리가 잡히자 신음하는 그녀를 귀엽게 바라 본 운현은 꼬리를 쭉쭉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복슬거리는 털이 기분이 좋다. 그것과 동시에 그녀의 귀를 잘근잘근 깨물며 놀던 운현은 몰려오는 수마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응하아앗!? 우, 운현!?"

"아. 깼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손에 쥐어져 있는 꼬리를 만지작거리던 운현은 그것을 입에 넣고 꾹 깨물었다. 그것에 진한 쾌감을 느낀 미야가 비명을 내지르며 일어나자 운현은 그녀의 입술에 키스한 후 물었다.

"깨, 깨긴 깼는데 왜 운현이 여깄어?"

"응? 그냥 너랑 하고 피곤해서 다시 들어와서 잤는데?"

대수롭지 않은 듯한 그의 말에 미야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는지 당황하다가 그의 손에 잡혀 있는 자신의 꼬리를 휙 빼앗았다.

"왜?"

"으으... 아침부터 그러면 못참는다고..."

"꼬리만 만지면 발정하는거야?"

"그럴리가!"

"그럼 좀 더 만지게 해줘. 느낌이 좋다고."

엉덩이쪽에 손을 가져간 운현은 아침발기로 딱딱해진 남성을 그녀의 배에 비비며 손을 움직여 꼬리를 잡았다. 그의 손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미야는 결국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렇게 십여분을 꼬리를 가지고 놀던 운현은 미야의 숨결이 달콤해지자 히죽 웃으며 속삭였다.

"어때? 할까?"

"으... 하, 하고 싶으면 하든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해주는 수 밖에."

운현은 씩 웃은 후 미야를 엎드리게 한 후 그녀의 계곡에 남성을 가져다 댄 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자. 그럼 난 먼저 내려갈테니까 천천히 씻고 내려와."

미야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꼬리만 흔들어 그의 말에 반응했다. 후배위로 열심히 한 덕분에 허리가 나가버려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녀를 내버려두고 방에서 나온 운현은 오늘도 여지 없이 파티 모집 게시판 앞으로 향했다.

"마땅한 파티원은 역시 없군."

오늘도 어제와 같이 혼자서 파티를 모집하는 힐러나 궁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운현은 시무룩한 얼굴로 테이블에 혼자 앉아 홍차와 토스트로 아침을 때웠다.

"운현씨."

"응? 아. 벌써 일어났어? 오늘은 빠르네?"

운현은 헤스티아가 다가와 앉자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제는..."

"아. 어제. 어제는 미야와 잤어."

대놓고 돌직구. 그것에 헤스티아는 움찔했지만 운현은 그녀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미야와 파티를 맺은 이상 그녀와 할 것임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겪을 거 그냥 빨리 겪는게 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고개를 숙이고 한참동안 생각하던 헤스티아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말했다.

"좋았나요?"

"응."

"저보다요?"

도전적인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운현은 피식 웃고 손을 뻗었다.

자신의 이마를 콕 찍은 그의 손길에 헤스티아가 눈을 감자 운현은 차분히 말했다.

"누가 좋고 나쁘고가 어딨어. 너희들은 내 소중한 동료일 뿐이야. 관계를 갖는 것도 동료로서 하는 것일 뿐이지."

"그, 그랬죠."

자신과 하든, 미야와 하든 운현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헤스티아는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으음... 미야씨는."

"미야가 뭐?"

"키도 크고 몸매도 탄력적이고..."

"너도 가슴 크고 매력있어."

"가, 감사해요. 아무튼. 미야씨에 대해 별 특별한 감정이 없다는 건가요?"

"그렇지."

"...근데 미야씨는 그런 것 같지 않네요."

헤스티아가 뒷편을 가리키자 운현은 고개를 돌려 그녀가 가리킨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우물쭈물하며 계단의 난간에 몸을 숨긴 채 빼꼼히 운현을 훔쳐보는 미야가 있었다.

운현이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에 깜짝 놀란 미야가 후다닥 머리를 숨겼지만 그녀의 톡 튀어나온 꼬리는 이미 난간 위에서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하. 뭐하는 짓이여."

"부끄러워하는 것이겠죠."

"저거 가지고 네가 뭐라고 할 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겠지?"

"으음. 네. 뭐..."

자신 역시도 운현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헤스티아는 미야의 반응에 차마 투덜거릴 수 없었다.

"미야. 거기서 뭐해?"

"아! 응! 그게 말이지! 이야~ 오늘 날씨 좋네~"

"응? 뭐 그렇지."

창은 꽤 떨어져 있어 바깥의 날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별 의미 없는 내용이기에 운현은 대충 답해주었다. 왼팔과 왼발이 먼저 나가는 괴상망측한 걸음걸이로 다가온 미야는 운현에게서 조금 떨어져 앉은 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늦었지? 미안."

"야. 넌 아침에도 해놓고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냐?"

"힉!?"

"아, 아침에도 했어요?"

"뭘. 너랑도 꽤 했잖아."

"으으으..."

단번에 두미녀들을 침묵시킨 운현은 토스트와 홍차를 다 먹고 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게요?"

그가 아침식사를 끝낼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헤스티아는 조심스레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 식사들 하고 있어. 오늘은 힐더크의 대장간에 가서 미야의 장비를 받고 난 후에 던전에 들어갈거야."

"네. 알겠어요."

"응..."

미야와 헤스티아에게 말해 준 후 운현은 길드사무소 쪽으로 향했다. 오늘도 여지없이 사무소를 지키고 있던 필레는 운현이 다가오자 상냥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운현씨~"

"안녕하세요. 필레씨. 좋은 아침이네요."

"네. 후후.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아. 상아 길드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예? 왜, 왜요?"

"어제의 이야기를 결론지어야 하거든요."

"운현씨. 설마..."

"네. 해보려구요."

"위험해요. 굉장히. 용병 연맹은 잔혹한 사람들이에요. 만약..."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듣는 귀가 많네요."

상아가 일부러 자신을 데려다가 둘이 이야기를 한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운현의 말에 필레는 고개를 끄덕인 후 사무소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와 함께 길드장의 방 앞으로 간 운현은 어제처럼 에리스가 자리를 잡고 있자 그녀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음? 당신인가? 상아님은 안에 계신다."

"알겠습니다."

"운현씨. 운현씨."

"네."

필레가 조심스레 부르자 운현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에리스가 듣지 않게 운현의 귀에 손을 가져간 후 작게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소리치세요. 제가 들어갈테니까."

"하하하. 고마워요."

"뭘요~"

생긋 웃는 필레에게 가볍게 인사한 운현은 에리스가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갔다. 쇼파에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상아에게 다가간 운현은 그녀를 흔들어 깨워보았지만 술냄새가 풀풀 나는 그녀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커다란 항아리를 들고 안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항아리에 찬물을 가득 채운 후 터벅터벅 걸어 온 그는 항아리 안의 찬물을 상아의 머리에 그대로 뿌려버렸다.

"촤악!"

"어푸푸푸푸! 뭐야!? 습격인가!?"

"아침이니까 이제 그만 일어나지 그래?"

"...너였냐?"

찬물에 정신을 차린 상아는 숙취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인상을 구기며 비틀비틀 몸을 움직였다. 축축한 소파를 보고 운현의 손에 들려 있는 항아리에 시선을 던진 그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물이야?"

"응."

"줘봐."

"화장실 물인데?"

"변깃물 푼건 아닐거 아냐. 모험가는 무슨 상황에서도 잘 먹을 수 있어야 하는 법."

상아가 손을 내밀자 운현은 항아리를 넘겼다. 항아리에 조금 남아 있는 물을 그대로 벌컥벌컥 마신 그녀는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 놓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으... 어제 너무 마셨어."

"얼마나 마셨길래?"

"저기 있는거 다."

"...이거 완전 술고래구만."

저 작은 몸에 열병이 넘는 와인이 들어갔단 말인가. 운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침부터 온 이유는?"

"어제 일을 생각해봤는데 협력하기로 했어."

"오... 잘 생각했어."

"그 대신 몇가지 조건이 있어."

"뭔데?"

"시간을 좀 줘. 움직일땐 움직이더라도 나도 할 일이 있으니까 말야."

운현은 일단 레벨 15를 찍어 함정 해제 스킬 정도는 익혀두고 싶었다. 용병이라면 전쟁 뿐만 아니라 몬스터 퇴치도 할텐데 그들 중에 함정을 설치하여 몬스터를 잡는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괜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그가 말하자 상아는 무뚝뚝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외에는 그다지? 필요한게 있으면 따로 이야기할게."

"으음... 시간은 일주일 주지. 그때가지 일은 끝내놔. 다음주부터는 시장선거 기간에 들어가게 된다고."

"알았어. 주의하도록 하지."

운현이 말을 마치자 상아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 후 젖지 않은 쇼파로 몸을 옮겼다.

"할 말 다했으면 이제 가봐."

"침대에서 안자고 쇼파에서 자는거야?"

"하. 내가 침대에서 자는거는 죽을때랑 남자랑 하고 나서일 뿐이야. 정 날 침대에서 재우고 싶다면 한번..."

"잘자라."

상아의 말을 무시하며 운현은 그대로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운현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필레는 운현이 별 이상 없이 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은 다 보셨어요?"

"아. 예. 뭐하러 기다리셨어요?"

"그래도 기다려야죠. 저 길드장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58====================

Quest

필레의 말에 에리스는 무뚝뚝히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에 대한 신뢰가 완전 바닥이다.

'하긴...'

평소 하는 꼴이 그 모양이니 바닥일 수 밖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는 에리스를 안타깝게 응시하며 말했다.

"저기, 그 뭐랄까. 힘내세요."

"...고맙군."

"어서 나가요."

엄한 곳에 계속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던 필레는 운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를 데리고 길드 사무소 밖으로 나오고나서야 안심이 됐는지 필레는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오늘도 던전에 가시나요?"

"아. 네. 퀘스트만 끝내고 바로 들어갈 생각입니다.혹시 힐러나 궁사 중에 괜찮은 사람 없나요?"

"으음... 어쩌죠? 아직 없는데... 제가 별로 도움이 못되는 것 같아서 아쉽네요."

미안한 얼굴로 필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 손사레를 친 운현은 필레의 배웅을 받으며 테이블로 돌아왔다.

아까 전 까지만 해도 운현을 보고 부끄러워하던 미야는 조금 진정이 됐는지 그가 다가와도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 그럼 가볼까?"

"...이 손은 뭐야?"

"그냥."

살랑살랑 흔들리는 미야의 꼬리를 잡으며 운현이 말하자 미야는 얼굴을 붉히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것에 운현은 히죽 웃었고 헤스티아는 운현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미야씨 그만 괴롭혀요."

"알았어."

미야의 꼬리를 놔준 후 운현은 챙겨 온 장비 주머니를 들었다. 힘이 약한 헤스티아만 제외하고 운현과 미야가 둘로 나눠 무기를 들고 힐더크의 대장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

"내 무기를 쓰려면 좀 더 훈련을 하고 와! 덜 여문 풋사과 같으니!"

초보자 티가 확 나는 여인들이 도망쳐 나오는 것을 보며 운현과 미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거 여기서 장비 사려다가 우리도 쫓겨나는 거 아니야?"

"그, 글쎄."

"어디 약해빠진 것들이... 음? 오. 너희들인가? 손에 든건 물건들? 어서 들어와."

손바닥을 털며 기분나쁘다는 듯 투덜거린 그녀는 운현과 미야가 떨떠름한 얼굴로 서 있자 그들에게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터덜터덜 안으로 따라들어오자 힐더크는 주머니를 가리켰고 운현과 미야는 주머니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흠... 이정도면 좋아. 자. 약속한 물건이야."

힐더크가 상자를 건네주자 미야는 생긋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안의 내용물을 본 그녀의 귀가 쫑긋 서자 힐더크는 안쪽의 작은 방문을 가리켰다.

"저기서 갈아입고 오도록 해."

"응!"

꼬리를 흔들며 그녀가 작은 방으로 들어가자 운현은 힐더크에게 물었다.

"그럼 다음 퀘스트는요?"

"응? 아아. 그래. 넌 강철 실을 원했지? 레벨은 15를 달성했나?"

"이제 14에요. 오늘 15를 달성할 수 있을거에요. 그러니 일단 말씀해주세요."

"그래? 생각보다 빠른데. 좋아. 그럼 홉고블린의 투구와 손뼈를 가져와."

"...어. 손뼈라면..."

"모험가 길드에 홉고블린의 사체를 가져다주면 손뼈를 얻을 수 있지 않아? 그걸 가져다 줘. 사오든 말든 상관은 없으니까 말야."

"헤~ 사와도 괜찮은 거에요?"

운현이 궁금한 듯 묻자 힐더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돈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돈을 모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참고로 말하자면 홉고블린의 손뼈는 개당 30골드야."

"헉..."

고블린의 손뼈가 한개에 2골드에 매입되는 것을 생각하면 가격차이가 보통이 아니다. 운현이 기겁하자 힐더크는 깔깔 웃은 후 운현에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너도 장비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어때? 장비를 좀 구매하는건?"

"어. 그렇지만 아깐..."

아까 전 사람들이 쫓겨나는 것을 보며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그녀는 기분나쁜 얼굴로 인상을 구겼다.

"돈도 없고 실력도 없는 주제에 용병 연맹의 연맹원이라고 까불길래 몇대 후려갈겨줬지."

"아... 뭐 그런거라면 잘 하셨네요."

"후후. 도적이었지? 도적에게는 가죽갑옷이 제일 좋지."

"대장간인데 가죽 갑옷을 취급하나요?"

운현의 질문에 힐더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죽 갑옷이라도 연결하는 곳이라거나 주요부위는 금속이 들어가야 하거든. 자 따라와."

미야가 장비를 갈아입는 동안 자신이 쓸만한 장비를 보자라는 생각에 운현은 헤스티아와 함께 힐더크의 뒤를 따랐다.

옆 방에 걸려져 있는 가죽 물품을 보며 운현이 감탄하자 힐더크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어때?"

"굉장히 많네요."

"그렇지. 자. 이건 어때? 내 자신작이야. 나이트 호크 세트지."

힐더크는 벽에 걸려 있는 가죽 흉갑을 하나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은은한 광택과 검은 가죽이 깔끔하게 단련되어 있는 묵직한 가죽갑옷을 들어 본 운현은 심장쪽에 붙어 있는 철판을 통통 쳐보았다.

"이런것 때문에 그러신거에요?"

"응. 그리고 여기랑 여기."

몇몇 부위에 밖혀 있는 철판과 철 장식에 운현은 입맛을 다셨다. 꽤나 마음에 드는 갑옷이지만 가격이 보통이 아닐 듯 싶었다.

"얼만데요?"

"흉갑만 이십골드. 부츠, 장갑, 견갑, 하갑에 암가드까지 하면 총 백골드."

"비싸!"

"뭐!? 이정도면 무지하게 싼거야! "

"으..."

비싸다고 투덜거렸지만 이정도면 던전 입구의 시장에서 파는 다른 가죽 갑옷에 비해 확실히 싼 편이었다. 그가 고민하자 힐더크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한가지 퀘스트를 하면 부위 하나를 주지. 어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인가요?"

"음? 글쎄. 운만 좋으면 금방 끝나지 않을까? 고블린들의 부락에는 고블린들이 채취한 금속이 있다고 해. 그 금속을 가져다 준다면 한 부위는 그냥 주지."

"다섯개 구해오면 다섯 부위 주나요?"

운현이 눈을 반짝거리며 묻자 힐더크는 피식 웃었다.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를. 어차피 연구용으로 쓸거니까 한개 이상은 필요 없어."

"으..."

운현은 남은 돈을 살펴보았다. 이래저래 합쳐보니 사십골드정도 있었지만 이걸로 두 부위를 샀다간 파산이다. 운현이 고민하자 힐더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블린 광석을 구해오면 다른 퀘스트를 주지."

"오... 그런것이라면."

퀘스트로 이십골드짜리 갑옷을 얻을 수 있다면 이득이다. 운현이 웃으며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갑옷은 그렇다고 치고. 무기는 필요 없어?"

"단검 종류로 괜찮은게 있나요? 장검도 괜찮은데."

"당연히 있지. 이건 어때? 이건 크리스라는 단검으로..."

"가격은요?"

"이백골드."

"하하. 있는거 그냥 써야겠네요."

척 봐도 좋아보이는 단검을 보여주며 그녀가 말하자 운현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힐더크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남자면서 왜 이렇게 돈이 없어?"

"그거 남녀차별적인 발언 아닌가요?"

"응?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남자 모험가들은 여기저기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지원나가서 돈 많이 벌던데..."

"그건 모험다니면서 섹스하는거 말하는거죠? 제 취향 아닙니다."

"헤에... 약해?"

"약, 약하기는 누가!? 지금 당장 당신을 만족시켜드릴 수 있거든요!?"

"운현씨..."

힐더크가 실실 웃으며 자신의 남성을 가리키자 운현은 발끈했다. 그런 그를 향해 한숨을 내쉰 헤스티아는 운현의 옆구리를 콕 찌른 후 말했다.

"자꾸 그러실꺼에요?"

"저 여자가 날 개무시하잖아!"

"끙... 운현씨는 약하지 않아요. 저나 미야씨를 얼마나 만족시켜주시는데요."

"호오... 그렇단 말이지?"

힐더크의 눈빛이 빛났다. 그녀의 눈에 색욕이 감도는 것을 본 운현이 떨떠름히 웃자 힐더크는 히죽 웃은 후 운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어디 나도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 그럼 나이트 호크 갑옷 세트 중 부위 하나는 주지."

"으음... 이것도 퀘스트라고 할 수 있나요?"

"뭐. 그렇게 생각해도 되고."

"그런 거라면야..."

"...두분이서 뭘 그리 얘기하시는 건가요?"

헤스티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운현은 빙긋 웃은 후 말했다.

"응? 아. 퀘스트 얘기."

"그래요?"

"어때!? 어때!?"

갑옷을 갈아입고 나온 미야는 운현과 헤스티아를 보며 말했다.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갑옷 갑옷은 미야의 날씬한 몸에 잘 어울렸다.

진청색의 하의 위에 있는 가죽 하갑은 탄탄한 허벅지 위를 잘 가리고 있었고 가슴을 돋보이게 만들어 놓은 가죽 흉갑은 미야의 매끈한 복부와 가슴을 제대로 막고 있었다. 어깨의 작은 견갑은 몇가지 이음새로 결합되어 팔을 움직이는데 큰 불편을 주지 않게 만들어져 있었다.

"음. 노출은..."

"노출이 왜 필요해!!"

"아니 뭐..."

괜찮은 갑옷이긴 했지만 운현은 떨떠름하기 그지 없었다. 저 멋진 미야의 복부는 커녕 드러난 곳이라고는 팔뚝 밖에 없지 않은가. 운현이 시무룩해 했지만 미야는 새로운 갑옷이 마음에 드는지 헤죽 웃으며 힐더크에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

"별 말씀을. 퀘스트 보상이니까 정당한 대가를 치뤘다고 생각해."

"후후후~ 어서 시험해보고 싶다."

"끙. 어서 가자... 그럼."

운현도 나이트호크 세트 갑옷과 강철 줄을 얻으려면 홉고블린을 잡아야 했다. 그가 씁쓸히 말하자 힐더크는 부드럽게 웃으며 운현들에게 말했다.

"홉고블린은 조심하라고. 가격에서도 알겠지만 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졌으니까."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 봐요."

힐더크의 대장간에서 돌아 온 운현은 바로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몸을 푼 운현은 갑옷을 새로 받아 의기양양해 하는 미야에게 말했다.

"자. 그럼 갑옷을 시험해볼까?"

"응!"

멀리 고블린 세마리가 보인다. 세명이서 고블린 셋을 상대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닌 만큼 운현은 여유롭게 외쳤다.

"가라!"

"이야호!"

빠르게 달려 든 미야의 주먹이 고블린을 공격한다. 새로운 갑옷을 입은 것만으로도 상당히 힘이 솟은 것인지 미야의 주먹에 맞은 고블린이 그대로 나가 떨어졌을 때 뒷편의 헤스티아는 파이어볼트로 두마리 고블린을 공격했다.

"미야! 빠져!"

미야의 뒤에 가시 줄 함정을 만들어 낸 운현은 그녀가 뛰어 자신의 옆으로 온 것을 보고 히죽 웃었다.

"꽤 하는데?"

"이정도 쯤이야! 그나저나 이 갑옷 굉장한데!? 몸에서 힘이 솟아!"

"뭔가 특별한 효과라도 걸린건가?"

"글쎄!?"

신난 얼굴로 미야가 외쳤을 때 정신을 차린 세마리 고블린이 미야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가시 줄 함정이 걸려 있었고 함정에 걸린 고블린들에게 데미지가 들어갈 때 운현은 단검을 잡으며 외쳤다.

"일제 공격! 시간 끌지말고 빨리 잡자고~!!"

"하아아압!"

"얍!"

"고블린 세마리는 이제 여유구만."

"음. 좀 더 강한 몬스터를 잡으러 가볼까? 어제 혼자 밥먹고 있는데 고블린 구역 근처에 코볼트가 서식한다고 하던데."

"코볼트? 그게 뭔데?"

"개 형태의 몬스터래. 고블린보다 좀 더 강하고 직업군도 다양해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도 괜찮다고 하던데?"

"호오... 그럼 가봐야지. 위치는 알아?"

"응. 맥주 한잔 사주고 들었어."

"훌륭하다."

미야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준 운현은 그녀가 기분좋은 얼굴로 꼬리를 흔들자 헤스티아에게 물었다.

"헤스티아. 너는 어때?"

"음... 뭐 상관없겠죠. 고블린 정도로는 크게 흥분되지 않으니까요."

"좋아. 그럼 가자."

미야의 안내를 받으며 운현 일행은 자리를 바꿔 이동해나갔다. 수풀을 넘고 언덕을 건너 짙은 풀이 가득한 초원지대로 온 운현 일행은 근처에 몇몇 모험가들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가 맞나 모르겠네."

"내가 물어보고 올게."

검과 방패를 찬 여인. 도끼를 든 여인. 사제복을 입은 여인. 셋이 나란히 걸어오는 것을 본 운현은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에이 재수가 없을라니까."

"뭐 저런 재수탱이를..."

"그러니까 엘프년은 받으면 안된다고 했잖아!? 리카! 네가 책임져!"

"으휴. 오늘은 내가 좋은곳에서 쏠게."

"안녕하세요."

"안녕? 넌 지금 우릴 보고 안녕... 합니다. 어머. 남자분이시네~"

운현이 말을 걸자 리카라 불린 도끼의 여인은 화를 내려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사근사근거리는 말투로 바꿨다.

우디르급의 태세 전환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떨떠름히 물었다.

"어. 저기 이곳에서 코볼트가 나오나요?"

"아하~ 코볼트를 잡으러 오셨구나~ 네. 코볼트 나와요. 코볼트 잡으실건가요? 직업이... 아니 직업은 상관없고. 같이 하실래요?"

운현에게 다가간 그녀는 그의 가슴 갑옷을 쓰다듬으며 윙크했다. 그것에 움찔한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전 파티가 있어서."

"쳇."

"......"

"코볼트 나오는거 맞아요. 왜요? 여기서 사냥하시게요? 근데 세명이선 힘들텐데. 여긴 기본 네마리 이상씩 나와서..."

"전 도적이라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도적? 오오오! 그럼 우리 파티에!"

운현의 클래스에 놀란 리카는 운현의 손을 꼭 잡고 간절히 말했다.

"아, 전 파티가 있다니까요. 손 좀 놓고 말씀을..."

"쳇."

"......"

"코볼트 나오는 거 맞고... 도적이시라면 뭐. 불가능하지는 않겠네요. 아. 그리고 한가지 말씀드리는데 여기 근처에 혼자 돌아다니는 엘프 있으면 괜히 말걸지 마세요. 기분만 나빠지니까."

"호오? 엘프요?"

운현이 흥미를 가지고 묻자 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주 고상하고 재수없는 엘프 활쟁이년 하나가 돌아다니고 있을거에요. 아니, 뭐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지."

생각만해도 기분이 나빴는지 그녀는 침을 뱉은 후 말했다.

"다른 파티에서 떨어져 나와서 데려왔더니만... 왜 떨어졌는지 알겠더만요. 암튼 고생하세요. 담에 시간있으면 한번 해주시면 감사하고..."

"아. 예. 감사합니다."

운현은 그녀에게 살며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들이 떠나가자 운현은 헤스티아와 미야에게 돌아와 말했다.

"여기 맞다네. 근데 이 근처에 파티가 해제된 엘프 궁사가 있나봐."

"...엘프요?"

"엘프라면..."

"뭐야? 너네 왜 그런 표정이야?"

엘프라는 말에 미야와 헤스티아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미야는 떨떠름한, 헤스티아는 싫다는 표정이다.

그들의 모습에 운현이 궁금한 듯 묻자 미야는 잠시 생각하더니 차분히 말했다.

"엘프라면 난 반댈세."

"저도요."

"왜?"

운현의 질문에 미야는 한숨을 푹 내쉰 후 조용히 말했다.

"재수없어."

59====================

Quest

"....응?"

운현은 잘못들었나 싶었다. 재수없다니. 그게 무슨 개소린가 싶어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헤스티아는 당황하며 미야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아니 감상평이 그건데 뭘..."

"끙... 운현씨. 엘프라는 종족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요?"

"음. 뭐 대충? 오래 살고..."

운현은 자신이 만난 엘프. 상아를 떠올려보았다. 지독할 정도로 마이페이스에 남자를 밝히는 그 정신나간 여자. 그녀를 떠올리며 운현이 말하자 헤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엘프들은 장수하는 종족이에요. 기본 천년, 길게 산다면 천 오백년이라는 삶이 보장되어 있죠."

"응. 그런데?"

"하지만 엘프의 정신은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족들과 비교해서 크게 차이나지 않아요. 20세에 육체의 성장이 거의 대부분을 이루게 되고 죽기 직전까지 지독할 정도로 느리게 성장하다가 말기에 다른 종족과 비슷한 속도로 늙어 죽게 되죠."

"뭐!? 그게 진짜야!?"

"예? 아. 예."

"...허어..."

운현은 상아의 몸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하다니. 특정 계층에게는 인기이겠지만 대다수의 남자들에게 과연 인기가 있을까?

"아무튼 그래서?"

"아. 예. 그... 운현씨. 자신은 멈춰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점점 늙어 죽어가는 것을 본다면... 운현씨는 어떻겠어요?"

"제정신이 아니겠지?"

"네. 엘프들의 대부분은 그래요.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한가지 방법을 써요."

"그게 뭔데?"

"의도적으로 미쳐버리는 거죠."

".....?"

헤스티아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운현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 하자 헤스티아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말했다.

"이를테면... 음, 지독할 정도로 마이페이스가 되거나, 한가지 일에만 집중하며 다른 이와 만나는 고 엵이는 것을 거절하거나, 아니면 타인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거나. 그런 거에요."

"허어..."

그렇다면 상아의 행동은 그녀 고유의 행동이 아니라 엘프의 종특이었단 말인가? 그녀의 제정신이 아닌 듯한 행동을 떠올리며 운현이 침을 꿀꺽 삼키자 헤스티아는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엘프는 남자에 집착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신이 아는 고상하고, 또 야한 이야기에 면역이 없어 꺄악꺄악 거리는 엘프는 어디가고 이런 정신나간 엘프가 등장한단 말인가.

"엘프의 수명은 긴 대신 자손을 보기 어렵죠. 평생 살아가며 자신의 후손을 보지 못하는 엘프들도 부지기수에요. 그들은 그렇기에 임신을 시켜 줄 수 있는 남자에 집착을 해요."

"음. 그건 한남자에게만?"

"결혼을 하게 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든 남자가 있으면 그에게만 집착을 하겠죠? 엘프의 그 의도적인 광증에는 지독할 정도의 소유욕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말이에요."

헤스티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운현은 마음을 정했다.

"엘프 궁수는 포기하자."

"그러니까 그러자고..."

"그럼 코볼트 사냥은 포기하는 거에요?"

"으음... 그러긴 좀 아쉽군. 엘프 궁수가 나오면 그냥 무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어떨까? 어때?"

"글쎄요. 엘프가 과연..."

"그냥 운현이 상대를 안해주면 될거야. 엘프는 나름 자존심도 센 편이라 자기 싫다는 사람에게는 집착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거든."

"그래? 그럼 다행이네."

미야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전투를 하기 전에 코볼트의 힘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알아보려면 일단 전투를 해봐야 하는 것이다.

"코볼트... 최소 네마리씩 돌아다닌다는데 괜찮으려나?"

"뭐 어떻게든 되겠지."

미야가 걱정스레 말하자 운현은 특유의 태평한 말로 다들 안심시킨 후 주먹을 꽉 쥐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운현은 지금 미친듯이 머리를 굴리는 상태였다.

'코볼트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일단 숨어서 어느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게 우선이겠군.'

다행히 여기저기서 전투를 하는지 무기와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운현은 헤스티아와 미야를 그나마 안전해보이는 곳에서 기다리게 한 후 주변에 함정을 깔아두고 다른 파티가 전투를 하는 곳으로 향했다.

"하이딩."

얼추 근처에 도착하자 운현은 나무 뒤에 숨어서 하이딩을 걸고 전투를 구경했다. 이미 전투는 중반에 달하고 있었는지 코볼트 네마리와 네명의 모험가가 박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하나는 잡았나보군.'

개 형태의 머리를 가진 코볼트 네마리는 고블린들과는 다르게 제대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풀 레더 아머로 몸을 감싼 세마리의 코볼트. 하프 체인 메일로 몸을 감싼 장창의 코볼트. 장창의 코볼트가 대장인 듯 그 코볼트가 으르렁거리며 짖을 때마다 모험가들과 싸우던 코볼트들의 움직임이 빠르게 변화되었다.

'호오... 주력은 저 검격과 물어뜯긴가.'

검격이 막히면 머리를 쭉 내밀어 상대를 물려고 한다.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 있는 코볼트의 물기는 한번 물리면 아프다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간신히 피하거나 막아내며 버티던 탱커가 뒤로 물러나자 붉은색갑옷과 핑크색 갑옷을 입은 두명의 창수가 달려들어 코볼트의 복부에 창을 질러 넣었다.

"크르르르르!"

가죽갑옷을 뚫고 살 깊숙히 밖힌 창을 꽉 잡은 코볼트는 죽어가면서도 창수의 어깨를 공격했다. 팔이 반쯤 잘려나간 창수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나자 다른 창수는 허리춤의 도끼로 상대하던 코볼트의 머리를 쪼갠 후 죽어가는 코볼트도 끝장내었다.

"크아아앙!"

"윽!"

창을 든 코볼트가 창을 빙빙 돌리며 달려들자 탱커 역을 하던 전사 여인은 방패를 들어 창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리더 코볼트는 뒷발차기로 방패를 걷어 차 여인을 밀어낸 후 창을 크게 휘둘렀다.

"촤악!"

창날에 맞은 복부를 스친 붉은 머리 창수가 쓰러지려 할 때 뒷편에서 맑은 음성이 터졌다.

"매스 힐!"

"고마워! 아냐!"

"빨리 잡아요! 마나도 이제 별로 없다구요!"

"퉷! 알았다고!"

"제대로 끝내주지!"

탱커로 보이는 방패수와 창수 둘에게 힐을 준 흰머리의 사제가 헐떡이며 외치자 체력이 회복된 방패수와 창수들은 웃으며 외쳤다.

'호오...?'

팔이 거의 잘리고 복부에서 피가 철철 나던 이들이 힐 한방에 거의 회복이 되었다? 운현은 힐러의 능력에 감탄했다. 저정도 상처라면 힐링포션을 거의 네병 정도 쏟아부어야 회복될 상처였다.

'빨리 힐러를 모집해야겠군.'

"하아아압!"

"커어어엉!"

"마지막 마법사 코볼트를...!"

"캬아앙!"

"이런 썅!"

후방에 있던 로브의 코볼트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 순간 지팡이의 앞에 농구공만한 크기의 녹색의 구가 생성되자 창수들은 당황하며 들고 있던 창을 냅다 집어 던졌다.

"캬양!?"

두개의 창 중 하나에 복부가 꿰뚫린 코볼트는 피를 흘리며 마법을 완성시켰다. 지팡이에서 날아간 녹색의 공은 단번에 여인들의 몸을 감쌌다.

"콰앙!!"

"크악!"

"컥!!"

"으아아아아!"

"꺄아아악!"

녹색의 공이 빠르게 날아와 여인들의 주변에서 폭발하자 그 충격파에 여인들은 여기저기로 날아갔다. 나무에 부딪히거나 높이 떠 바닥을 구르거나. 탱커만이 간신히 버틴 듯 보이지만 그녀 역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인듯 신음성을 내며 털썩 한쪽 무릎을 꿇어버렸다.

"끄윽..."

주머니에서 힐링포션을 꺼내 간신히 마신 그녀는 비틀거리며 다른 동료들에게도 힐링포션을 먹였다.

'힐러가 있다고 해서 힐링포션이 아예 안드는 것은 아니군.'

그들의 전투를 모두 지켜본 운현은 하이딩 상태로 조금 이동한 후 하이딩을 풀고 다른 파티들의 전투도 지켜보았다.

"흐음..."

대략적으로 비슷한 상황이었다. 코볼트들은 마법사를 지키며 싸우고 모험가들은 마법이 완성되기 전 코볼트들을 쓰러트려 마법사를 죽였다. 결국 시간싸움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한텐 유리하지.'

코볼트를 빠르게 쓰러트리고 마법사와 대치한 모험가가 별로 어렵지 않게 코볼트 마법사를 잡는 것을 보며 운현은 빙긋 웃었다.

'함정으로 잡아두고 마법사를 조지면 되겠군.'

코볼트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근접공격을 하는 코볼트를 상대해야하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운현의 파티에게는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운현은 편안한 마음으로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 왔어."

"오셨어요?"

"어땠어?"

"우리라면 쉽게 잡을 수 있을거야. 자자. 다들 모여봐."

미야와 헤스티아를 데려와 놓고 운현은 나뭇가지를 들었다. 빠르게 바닥에 포메이션을 그려가며 운현은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일단 미야 네가 코볼트의 공격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코볼트는 보니까 얼추 네마리에서 다섯마리 단위로 움직이더라고. 그 구성은 창수 하나, 검사 둘, 마법사 하나. 가끔씩 검사가 하나 더 끼는 경우가 있어. 대체적으로 리더는 창수야."

"헤에... 그래?"

"마법사라니..."

"여기서 중요한건 마법사야. 창수의 지휘 아래 검사들이 근접 공격을 하며 마법사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더라고. 그 상태에서 오분정도 지나면 마법사의 마법이 완성되어버려. 헤스티아. 녹색의 공같은게 날아와서 폭발하는데 그게 무슨 마법인지 알아?"

"어. 그건 아마 에어볼일거에요. 공기를 압축해서 폭발시키는 바람 속성의 마법."

"응. 걔가 그걸 쓰더라고. 넌 그런거 못써?"

"15레벨이 되면 파이어 볼을 배울 수 있는데 그거라면..."

"그럼 좋군. 자. 그럼 작전을 설명할게. 일단 미야가 탱킹을 시작해. 그리고 내가 함정으로 저들을 잡아 놓을게."

"그리고요?"

"마법이 완성되기까지는 5분. 마법사는 마법을 제외하고는 근접공격능력이 그리 강하지 않더라고. 그러니까 최대한 빠르게 코볼트를 잡자. 그리고 코볼트 마법사의 마법이 완성되기 1분쯤 전에 함정으로 근접 공격하는 코볼트들을 묶고 마법사를 잡는거지."

"흐음... 이론상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각각의 신호는 내가 보낼게."

운현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시간을 확인한 후 말했다.

"좋아. 그럼 한번 해볼까!?"

"기운 넘쳐서 보기 좋네! 그럼 가자!"

운현 일행은 전의를 다지고 주변에 주의하며 탐색을 시작했다. 그들이 얼마 돌아다니지 않았을 때 그들은 네마리의 코볼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 그럼 해볼까? 긴장 풀고."

"후아...."

"쯧쯧."

긴장 풀라고 말했더니 헤스티아는 더 긴장한 모양이다. 운현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고 진하게 키스해주었다.

"...으음..."

"자. 어때? 긴장 풀렸지?"

"네헤에..."

몽롱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헤스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운현은 부럽다는 눈으로 헤스티아를 응시하는 미야에게 다가갔다.

"에? 나도?"

"그런 눈으로 보면 당연히 해줘야지."

미야의 늘씬한 허리를 꽉 끌어잡은 운현은 그녀의 꼬리를 쓰다듬으며 미야에게도 키스했다. 타액과 타액이 교환하는 진한 키스를 해준 운현은 미야의 이마에 입맞춘 후 말했다.

"이번 전투는 네 탱킹 능력에 따라 달려 있어. 잘 해줘. 그렇다고 너무 날뛰지는 말고. 우리는 힐러가 없으니까 크게 다치면 끝장이야."

"응. 알았어. 나만 믿어."

베시시 웃은 미야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짜 간다!"

60====================

Quest

네마리의 코볼트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며 운현은 차분히 신호를 했다. 그의 신호에 맞춰 미야는 주먹을 꽉 쥔 후 말없이 달려나갔다.

"퍼억!"

"캐앵!?"

"하압!"

기습의 묘미는 뒷치기. 운현과 미야는 후방에 있는 코볼트 마법사를 공격했다. 둘의 공격에 맞은 코볼트 마법사가 바닥을 구르며 다른 코볼트들 뒤로 도망가는 사이 자리를 잡은 헤스티아는 바인딩을 써 창수 코볼트를 묶었다.

"지금!"

"개새끼들아!"

"커엉!"

"으르르르!"

미야의 스매쉬와 운현은 공격에 맞은 마법사 고블린이 고통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동안 운현과 미야는 당황한 코볼트들을 공격했다. 창수 코볼트는 바인딩에 묶여 있고 나머지는 검을 든 코볼트 뿐.

미야의 도발이 터지자 코볼트들은 미야에게 검을 겨눴고 그 틈을 노려 운현은 함정을 설치한 후 미야의 옆으로 이동했다.

"스틸!"

그의 스틸이 작렬하자 코볼트의 갑옷이 사라졌다. 자신의 손에 들어 온 갑옷을 뒤로 휙 던진 운현은 뒤에서 날아 온 두개의 파이어 볼트가 코볼트의 머리에 밖히자 미야에게 외쳤다.

"왼쪽!"

파이어 볼트에 맞은 코볼트 둘이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미야가 갑옷이 벗겨진 코볼트를 공격했다. 운현은 스틸의 쿨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통스러워하는 코볼트에게 다가가 갑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에 냅다 송곳을 쑤셔 밖았다.

"커어엉!"

송곳에 찔린 고통 때문에 몸을 비틀던 코볼트가 휘두른 검에 하마터면 맞을 뻔한 운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확실히 고블린이랑은...'

고블린보다 더욱 강한 힘과 속도다. 만약 아까 전 다른 파티들의 전투를 보지 않았더라면 반응하지 못해 저 공격에 맞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운현은 코볼트의 다리를 단검으로 베었다.

"큭...!"

생각보다 가죽이 두텁다. 송곳처럼 찌르기 전용의 무기가 아니라면 가죽을 뚫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저 가죽 근처에 생채기만 낸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커엉! 커어엉!"

얼굴의 불길이 꺼져가며 코볼트가 이를 드러내자 운현은 빠르게 뛰어 뒤로 빠졌다. 바인딩에 걸린 창수 코볼트도 바인딩이 풀렸는지 으르렁거리며 운현과 미야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미야!"

"알았어!"

스매쉬로 코볼트의 복부를 후려갈긴 그녀는 운현이 있는 곳으로 훌쩍 뛰었다.

"생각보다 잘 버티는데?"

"이 갑옷 진짜 좋은 것 같아!"

히죽 웃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 미야는 자신의 흉갑을 툭 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좀 더 미야에게 맡겨도 될 것이다. 운현은 달려오던 코볼트들이 함정에 걸리자 강하게 외쳤다.

"갑옷 없는 놈부터 잡는다!"

힐끔 뒤를 보니 코볼트 마법사가 마법을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운현은 이를 드러내며 갑옷이 없는 코볼트에게 달려갔고 미야와 헤스티아 역시 공격을 준비했다.

"깨개개갱!"

가시 줄 함정에 걸린 코볼트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동안 운현과 미야, 헤스티아는 빠르게 코볼트를 잡기 시작했다.

개잡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들의 일점사를 맞은 코볼트가 쓰러지자 창을 든 코볼트의 눈이 붉게 빛났다.

"크르르렁!"

"오. 열받았나보네. 헤스티아!"

가시 줄 함정의 구속 시간이 끝나 풀려난 창수 코볼트가 달려오려 하자 운현은 헤스티아를 불렀다. 그의 외침에 헤스티아는 다시 바인딩을 걸었고 그 틈에 운현은 다른 코볼트에게 스틸을 걸었다.

"스틸!"

"깨갱!?"

"오호..."

자신의 왼손에 들린 장검. 고블린 숏소드보다는 훨씬 좋은 장검을 왼손으로 가볍게 움직여 본 운현은 단검을 허리춤의 걸쇠에 꽂아 넣은 후 오른 손으로 장검을 잡았다.

"장검도 쓸 줄 알아?"

"어떻게든 되겠지! 합!"

한손검 숙련 스킬만 믿고 운현은 장검을 움직여 코볼트를 베었다. 확실히 무게 덕분인지 단검에 비해 공격 속도가 느렸지만 코볼트의 몸은 타격과 함께 검날의 공격을 받아 쉽게 흔들려나갔다.

"헤에! 날 맞추지는 말라고!"

운현이 생각 외로 장검을 제대로 다루자 미야는 씩 웃은 후 코볼트의 뒤로 돌아갔다. 앞 뒤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것에 코볼트가 당황한다.

"크아아아!"

"앗! 운현씨! 풀렸어요!"

"쳇! 미야! 이 녀석은 내가 맡을게!"

"응!"

바인딩에 저항을 성공한 창수 코볼트가 예상보다 빠르게 달려오자 운현은 미야에게 외친 후 장검을 뒤로 휙 던졌다.

"크르르르!"

한참 두드려 맞은 덕분에 완전 열받았는지 코볼트는 털을 곤두세우며 운현에게 이를 드러내었다. 하지만 무기도 없는 주제에 뭘 어쩌겠는가. 입을 쩍 벌리고 공격해들어왔지만 운현은 손쉽게 그 공격을 피한 후 단검을 들어 코볼트의 목에 단검을 쑤셔 넣었다.

"캐앵! 캥!"

"아직 멀었어!"

두번정도 공격을 한 운현은 코볼트의 뒷발차기를 암가드로 막아낸 후 다시 달려들었다. 운현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코볼트는 무기를 잡기 위해 달렸다.

"커엉!"

"파이어볼트!"

하지만 뒷의 헤스티아가 쏘아낸 두개의 파이어볼트는 코볼트의 움직임을 막아버렸다. 불꽃에 휩싸여 고통스러워하는 코볼트의 갑옷 뒤를 잡은 운현은 그대로 잡아 당겨 넘어트린 후 송곳을 들어 코볼트의 눈에 쑤셔 넣었다.

"캬야아아아앙!!"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코볼트의 몸이 축 늘어진다. 가볍게 코볼트 한마리를 잡은 운현은 미야의 근처에 함정을 설치한 후 외쳤다.

"크게 뛰어!"

"응!"

창수 코볼트의 공격을 막아내며 근근히 공격을 맞춰 창수 코볼트의 체력을 깍아내던 미야는 운현의 외침에 크게 뛰어 뒤로 물러났다. 미야를 잡기 위해 달려온 창수 코볼트가 함정에 걸리자 운현은 미야에게 외쳤다.

"마법사 잡는다!"

"오오!"

운현이 코볼트를 끝장낸 것을 보고 미야는 씩 웃었다.

운현과 미야가 달려오는 것에 당황한 마법사 코볼트는 준비하던 마법과 그들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 틈에 코볼트 마법사의 앞에 도착한 운현은 스틸을 걸었고 그 스틸에 코볼트 마법사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빼앗겨 버렸다.

"하하하! 이거 너무 쉽잖아!"

고블린보다 싸우는게 더 쉽다. 마법사가 뒤로 빠져버린 덕분에 실제로 상대해야 하는 수가 하나 줄어버린 덕분이다.

미야는 즐거운 듯 외치며 코볼트 마법사의 머리에 스매쉬를 날린 후 운현에게 외쳤다.

"운현! 지속시간 얼마나 남았어!?"

"이십초!"

"좋아!"

이십초라면 이 코볼트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야는 씩 웃으며 마법사 코볼트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후 파운딩 자세가 된 후 미친듯이 코볼트를 공격했다.

"캐애애앵!"

얼마 버티지 못한 코볼트 마법사가 축 늘어지자 운현은 헤스티아와 미야에게 외쳤다.

"쟤 하나 남았다! 끝내자고!"

"응!"

"알았어요!"

대 코볼트 전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고블린을 잡을 때보다 오히려 더욱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운현 일행은 만족하며 한쪽에 모여 다음 전투에 대한 상의 겸, 휴식을 취했다.

"생각보다 되게 쉽네."

"운현씨 덕분이죠."

"응. 운현의 함정이 공이 컸어."

코볼트가 고블린보다 강한 몬스터인 것은 사실이었다. 일단 제한시간도 있고 코볼트들의 움직임은 고블린들에 비해 상당히 연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연계도 함정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일단 함정에 걸리면 진영이고 작전이고 다 물건너가버리기 때문이었다.

함정 해제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그것이 없는 이상 함정에 당하면 그냥 전열이 무너져버린다.

"듣기로는 코볼트들이 마법사를 지키려고 발버둥을 치기 때문에 우리처럼 전투 도중에 마법사를 공격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했어."

"제한시간이 없어지고 각개격파가 가능하니까요."

"흠. 그럼 다섯마리 있는 코볼트도 잡을 수 있겠군. 하지만 그래도 조심은 하자고. 괜히 까불다가 다칠 수 있으니까. 아까 이빨 보니까 되게 날카롭던데."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하는 미야와 헤스티아를 향해 웃어보이면서도 운현은 그들에게 주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말에 그녀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미야를 보고 물었다.

"미야. 쟤들한테도 채집할 수 있어?"

"응? 글쎄?"

"그래도 개같이 생겼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한번 시도 해볼래?"

"음. 응. 알았어."

운현의 말에 코볼트 사체에 다가간 미야는 몇번 스킬을 쓴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능해!"

"오오! 뭐 나와?"

"코볼트 이빨."

"오오오! 이리 좋은 재료를!"

늑대 이빨보다 더 날카로워보이는 이빨을 운현에게 내민 미야는 운현이 기뻐하자 방긋 웃었다.

"헤헤헤~"

"역시 훌륭하다. 자. 다른 녀석들것도 채집해와."

"응!"

미야가 다른 사체들에게서 재료를 채집하는 동안 헤스티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운현에게 물었다.

"운현씨."

"응?"

"코볼트 마법사에게 스틸이 가능하셨죠?"

"응."

"그, 개인적인 부탁인데..."

"뭔데?"

"코볼트 마법사의 모든 물품을 스틸할 수 있을까요?"

"응? 왜?"

운현의 질문에 헤스티아는 볼을 긁적거린 후 조심스레 말했다.

"선배에게 들었는데 던전의 몬스터 마법사 중에는 마력석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가 있다고 했어요. 그 마력석으로 매직 아이템을 만들수 있다고 하는데..."

"아. 그래?"

"네. 특히 바람의 마력석은 저같은 화염마법사에게 좋은 재료가 된답니다. 바람의 마력석으로 만든 매직 아이템은 화염 마법의 공격력을 높여주거든요."

"음. 그런 것이라면 꼭 구해야지."

헤스티아의 레벨이 올라갈 수록 파이어 볼트의 데미지가 꽤나 쏠쏠했다. 어지간히 두들기지 않고서는 불도 잘 꺼지지 않았기에 운현은 그녀의 부탁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사체에서는 못구해?"

"그런가봐요. 죽은 몬스터에게서는 마력석이 발견된 적이 없데요."

"그렇다면야. 알았어. 갔다올테니까 조금 쉬고 있어."

"네!"

다시 코볼트를 찾아 이동한 운현은 다섯마리의 코볼트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검사 셋, 창수 하나, 그리고 마법사 하나. 아까와는 다르게 검사가 하나 더 늘어났다는 것에 운현은 잠시 전략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문제는 없겠군.'

그는 하이딩을 걸고 코볼트 무리에게 다가갔다. 그가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코볼트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스틸.'

왼손을 움직여 창수에게 스틸을 건 운현은 코볼트의 창을 빼앗은 후 히죽 웃었다.

"커어엉!"

자신의 창이 사라진 것에 당황하던 코볼트가 크게 포효하고 운현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것으로 자신이 들켰다는 것을 깨달은 운현은 키득거리며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하핫! 더럽게 빠르네!"

개들이라 그런지 달리기가 고블린보다 빠르다. 운현이 도망치는 것 때문인지 마법사도 마법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 마찬가지로 뛰어오는 것을 확인한 운현은 미야와 헤스티아가 있는 곳까지 와 외쳤다.

"온다!"

"응!"

잽싸게 함정을 설치한 후 운현 일행은 코볼트들을 기다렸다.

"커허어엉!"

코볼트들이 수풀을 뛰쳐나와 운현과 미야를 향해 달려올때 그들은 운현이 설치한 함정에 걸려버렸고 그 순간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하하! 박살을 내버리자고!"

61====================

Quest

[레벨이 올랐습니다.]

[추가 스탯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함정 해제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안나왔네."

홀딱 벗겨진 코볼트의 목에 단검을 쑤셔 넣으며 운현은 떨떠름히 말했다. 헤스티아가 원하는 마력석 대신 헤진 로브와 싸구려 지팡이만 얻은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헤스티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력석은 굉장히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에요. 저도 한번에 얻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으음. 그래도 얻을 수 있을때 얻는게 좋을텐데."

"그러게요..."

"근데 마력석을 얻으면 어떻게 해? 던전 도시에서 가공할 수 있는거야?"

운현의 질문에 헤스티아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마력석의 가공은 마법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저, 운현씨."

"응?"

"마력석을 얻으면... 저와 마법학교에 같이 가주실 수 있으세요?"

헤스티아는 기대감을 담은 얼굴로 물었다. 그녀의 시선에 운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뭐, 특별히 문제는 없지. 어차피 네가 없이 레벨업하기도 그렇고 말야. 미야. 네 생각은 어때?"

"응? 아. 나도. 같이 갈게. 우리는 팀이잖아."

"아... 그렇죠."

미야의 말에 헤스티아는 조금 씁쓸한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운현이 같이가준다는 것이 기뻤는지 금방 웃는 얼굴이 되었다.

"나는 레벨업 했는데 너희들은 어때?"

"난 아까 코볼트 잡았을 때 올랐어. 새로운 스킬로는 스톤 스킨을 얻었지. 방어력이 증가하는 기술이야."

"오... 그거 좋군."

탱킹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방어력이 좋아지면 나쁠 것은 없다. 운현이 감탄하자 미야는 꼬리를 흔들며 기뻐했다.

"전 아직요."

"흐음..."

코볼트를 잡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한두번 더 잡으면 자신과 비슷한 레벨대였던 만큼 헤스티아 역시 금방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헤스티아. 파이어 볼의 위력과 마나 소모는 어떻게 돼?"

"어. 파이어볼은 광역 마법이에요. 데미지도 파이어 볼트에 비해 꽤 강하구요. 그 대신 마나 소모가 심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도 길어요."

"얼마나 걸리는데?"

"음... 파이어 볼트 세방 분량?"

"그정도라면... 그 외에 다른 특징은?"

"그건요..."

헤스티아는 자신이 아는 대로 파이어 볼에 대해 운현에게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파이어 볼과 파이어 볼트, 바인딩 연계를 생각한 운현은 괜찮은 전술을 떠올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정도면 나쁘지 않군."

"에!? 정말요? 하지만 파이어 볼같은 광역 마법은 속도가 느려서 피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데... 그래서 다른 파티에선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우린 다른 파티와는 다르잖아."

애초에 전투의 매커니즘 자체가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굳이 다른 파티가 선호, 비선호하는 마법을 따질 이유가 없었다.

"함정을 이용하여 적들을 묶어놓으면 괜찮아. 너는 그냥 내가 지정하는 위치에다가 제대로 쏠 것만 생각해. 몬스터들을 몰아 놓는 것은 탱커와 유틸러가 할 일이지."

운현의 말에 코볼트들에게서 재료를 채집한 미야는 터덜터덜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헤스티아의 마법에는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마. 우리는 싸우고. 판단은 운현이 하는 거라고."

"넌 생각 좀 해라..."

"헤헤헤~"

아예 판단 자체를 운현에게 넘겨버린 미야는 그의 타박에도 히죽 웃을 뿐 이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미야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네. 알겠어요. 열심히 할게요!"

두 주먹을 쥐고 힘을 내며 그녀가 말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몹을 잡으러 가볼까? 다들 회복 했지?"

"응."

"전 조금만 쉬면 괜찮아요."

"그럼 이번에 코볼트 잡고 레벨업하면 홉고블린 잡으러 갈까?"

"으음... 저희끼리요?"

아무래도 홉고블린은 걱정이 된다. 그것은 미야 역시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그녀들이 거부감을 느끼자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안잡고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강철 실은 가급적 빨리 얻고 싶거든. 새로운 재료도 얻었겠다. 새로운 함정도 만들고 싶고."

"운현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노력해봐야지."

"후후. 자. 그럼 다녀올게."

아까와 마찬가지로 코볼트 무리를 찾은 운현은 스틸로 그들의 어그로를 끈 후 뒤로 빠졌다. 아까와 다르게 이번 스틸은 꽝이라 그저 개뼈다귀 하나만 건졌을 뿐이다. 그것을 뒤로 던진 후 운현은 기다리고 있던 미야에게 말했다.

"스틸 실패야! 공격이 좀 더 거세어질거야! 주의해!"

"응!"

운현의 스틸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은 채 미야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수풀의 앞에 함정을 설치한 것에 기다리던 미야는 올때가 됐는데 코볼트들이 오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꺄악!"

"이런 썅!"

코볼트들이 머리를 쓸 줄이야. 운현은 자신의 유인을 따라오다가 뒤로 돌아 헤스티아쪽으로 코볼트들이 오는 것을 보며 당황했다.

"헤스티아! 피해!"

헤스티아가 혼자 있는 것을 본 코볼트들은 잔인하게 웃으며 헤스티아에게 달려갔다. 그것에 운현이 창백하게 얼굴을 물들인 순간.

"인탱글."

언덕 위에서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땅바닥에 있던 풀들이 자라 코볼트들의 움직임을 막자 운현과 미야는 잽싸게 헤스티아의 앞으로 가 진형을 다시 꾸렸다.

"흐아아..."

"시발...시발..."

운현은 심하게 당황한 상태였다. 지금가지 자신의 모든 작전과 전술은 잘 들어맞았고 그것에 어찌보면 자만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갑자기 자란 저 수풀이 아니었다면? 헤스티아는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운현은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을 느꼈다.

"운현!"

"으. 으응!?"

"정신차려! 지금은 네가 지휘를 해야해!"

"아, 알았어! 미야!"

"응?"

"기름 뿌려!"

"응!"

수풀을 향해 기름통을 던진 운현은 헤스티아가 정신을 차리고 지팡이를 들자 날카롭게 외쳤다.

"파이어 볼트! 태워버려!"

"화르르륵!"

"커엉! 컹!"

기름을 머금은 수풀이 타오르자 운현은 뒤로 물러나 작전을 새로 꾸렸다.

'그래. 우리도 기습을 하는데 저놈들이라고 기습을 못한다는 생각을 한 내가 등신이지. 그에 따른 작전을 생각해뒀어야 했어.'

운현은 이를 악물고 불타오르고 있는 수풀 뒷편. 헤스티아 근처에 함정을 설치했다.

"헤스티아! 이리 와!"

"네엣!"

헤스티아가 뛰어 운현이 있는 쪽으로 오자 운현은 미야에게 외쳤다.

"미야! 준비해! 바로 함정에 걸리면 시작한다!"

"응!"

미야 역시도 기습을 당해 헤스티아가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것에 크게 놀라고 분노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빠득 이를 갈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린 후 불길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커어엉!"

수풀에서 빠져나온 코볼트 검사 둘이 달려오자 미야는 도발을 써서 그들의 시선을 가져왔다.

"촤아아악!"

미야가 있는 쪽으로 달려 온 코볼트 검사들이 함정에 걸린 순간 운현은 당황했다.

'창병은?'

"커어엉!"

"씨발! 시간차냐!"

운현은 이를 갈며 외쳤다. 이 자식들.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코볼트 검사들을 먼저 내보내 헤스티아를 공격하게 하고 창수는 기다리다가 운현과 헤스티아가 뒤로 빠지자 그들을 공격하려고 한다.

으르렁거리며 창수가 다가오자 운현은 이를 갈며 단검을 꽉 쥐었다.

'잡을 수 있으려나...'

"피잉!"

"컹!"

운현이 단검을 겨누며 긴장하고 있는 동안 언덕 위에서 화살 한대가 날아와 창수 코볼트의 어깨에 꽂혔다. 파르르 떨리는 화살에 코볼트가 고통스러워하자 운현은 놀라며 언덕 위를 보았다.

"지금 날 볼때가 아냐!"

언덕 위에서 뛰어내린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인영은 커다란 활을 다시 당겨 코볼트 창수에게 연달아 쏘았다. 두대의 화살 공격에 코볼트 창수는 이를 갈며 창을 휘둘러 그것을 막아내었다.

"흡!"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운현은 다시 스틸을 걸었다. 이번에는 창이 아닌 갑옷이다. 갑옷을 훔쳐낸 운현은 손에 들린 갑옷을 뒤로 던진 후 외쳤다.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은 감사!"

난입한 궁사의 도움에 인사를 건네고 운현은 빠르게 뛰어 궁사에게 집중하는 코볼트 창병의 목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 그가 몸을 뒤흔드는 동안 헤스티아는 바인딩으로 창수의 움직임을 막았다.

"이봐! 점사한다!"

"점사? 그게 뭔데?"

"닥치고 공격!"

"오오!"

운현의 외침에 궁사는 빠르게 화살을 쏘아내었다. 그리고 운현 역시도 코볼트의 뒤에서 그를 공격해나갔다. 연이어지는 파이어볼트. 셋의 집중 공격을 맞게 된 코볼트가 쓰러지자 운현은 미야에게 외쳤다.

"미야! 둘을 잡고 있어! 헤스티아! 그리고 거기 궁사! 저 녀석 도와!"

"넌?"

"난 마법사 잡으러 간다!"

"알았네!"

궁사에게도 지시를 내린 후 운현은 수풀쪽으로 뛰어들어갔다. 갑자기 나타난 운현에게 놀란 코볼트 마법사는 운현에게 지팡이를 겨눴지만 운현은 잽싸게 스틸을 걸어 그 지팡이를 빼앗았다.

'코볼트 마법사가 가진 장비는 지팡이, 로브, 그리고 목걸이지.'

헤스티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끝장을 내는 것이 아닌 계속 공격하며 스틸로 아이템을 빼앗은 운현은 마지막으로 스틸을 걸었을 때 자신의 손에 녹색의 보석이 잡힌 것을 느꼈다.

'이건가?'

[스킬 : 풀 스트립을 획득했습니다.]

[풀 스트립 : 한 종류의 몬스터에게서 획득할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스틸로 훔친다. 근접 공격시 사용가능하며 사용시 일정 확률로 몬스터의 모든 장비를 무장해제시킨다.]

"다 먹었군! 잘가라!"

눈 앞에 뜬 메시지창을 확인한 운현은 코볼트 마법사에게서 모든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것을 깨닫고 씨익 웃은 후 코볼트 마법사의 숨통을 끊었다.

'이제 나머지는...'

지금 한참 싸우고 있는 코볼트 검사 뿐. 운현은 잽싸게 전투에 복귀했다. 하지만 궁사의 도움 때문인지 운현이 끼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캐애앵!"

마지막 코볼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은 미야는 한숨을 푹 내쉰 후 털썩 주저앉았다.

"으, 지, 지쳤다..."

"휴우... 주, 죽는 줄 알았어요..."

아까의 기억을 떠올린 헤스티아는 이제서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운현은 코볼트의 사체들에게서 화살을 회수하기 시작한 후드의 궁사에게 다가갔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의 수풀도 당신이 만들어낸 것입니까?"

"음? 아. 응. 너희들이 전투를 하는 것은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지. 셋 치고는 잘 싸우지만 아무래도 기습이나 그런 것에는 약할 것 같아서...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

목소리는 젊고 아름답기 짝이 없었지만 말투가 묘하게 거슬린다. 운현은 후드 밑으로 보이는 갸름하고 매끈한 턱과 도톰한 입술을 본 후 침을 꿀꺽 삼켰다.

"응? 내 미모를 보고 긴장한건가? 하하.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예쁜거야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 아하하하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보다 미모고 자시고 어떻게 생겼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음? 그런가? 아하하하! 이거 내가 또 실수를 했구만. 음. 그리고 너. 전투를 보니 네가 지휘를 하는 것 같은데 이 파티의 리더지? 잠깐 얘기 좀 하자."

'설마!?'

엮이지 않길 바랬는데!? 운현은 굉장한 떨떠름함에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말투는 달랐지만 분위기가 익숙했다. 남을 신경쓰지 않는 지독할 정도의 자유로움. 운현은 부디 자신의 예상이 틀리기를 기됐다.

"나는 바제트, 바젯이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군. 아니면 사랑스러운 바젯님도 괜찮고. 그건 그렇고 내가 파티의 지휘관인 너를 도와준 것 같은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뭔가 해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 예를 들면 파티에 끼워준다거나... 그런거."

후드를 벗은 그녀의 금색 보브컷 옆으로는 상아와 같은 긴 귀가 뾰족하게 솟아 까딱거리고 있었다.

'오 마이 갓...'

62====================

Quest

"뭐, 뭘 해줘요?"

"하하하!! 그렇게 얼어 있지 마. 그저..."

"그저?"

운현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옅은 백금발이 찰랑이는 것이 만지면 무척이나 부드러울 것 같다.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금색의 눈동자는 살짝 감겨 있지만 번뜩이는 것이 마치 먹이를 앞에 둔 호랑이와 같아보였다. 백옥같은 피부.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는 얼굴. 그것을 보면서도 운현은 아름답다. 라기보다는 무섭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정액같은걸 내 안에 끼얹어 주면 되는거야."

"될 것 같냐!!"

"꺄악!? 이게 무슨 짓인가!"

바젯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미야는 씩씩 화를 냈다. 그녀의 성질에 주춤 몸을 숙인 바젯은 미모를 일그러트리며 소리쳤다.

"내가 입찰한 남자한테 손 뻗지 마라."

"음? 이미 임자가 있는 남자인가? 뭐 그래도 상관없어. 모험가가 그런거 신경쓰면 곤란하지~"

"아니 상관이..."

"저기...."

미야가 으르렁거리고, 바젯이 그것을 무시하며 운현이 당황한다. 그 셋의 모습에 헤스티아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다가갔다.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헤스티아라고 합니다."

"음? 아. 다친데는 없어? 아까 정말 위험했던 것 같은데."

"네. 그런데요. 굳이 필요 없는 일을 하셨네요."

"으음!?"

헤스티아의 말에 미야와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녀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한 후 입을 열었다.

"제 주변에는 운현씨가 함정도 설치해놨고 굳이 바제트씨가 도와주지 않으셔도 위기는 없었을거에요. 물론 덕분에 편하게 전투를 하기는 했지만요."

"그, 그런가...? 그치만..."

헤스티아의 말에 바제트는 시무룩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헤스티아는 운현에게 살짝 윙크했다.

'쟤한테 저런 면이 있었나...'

운현이 엘프와 엮이지 않게 하려는 수작에 미야는 일단 헤스티아의 방법대로 가자고 운현에게 말없이 손짓했다.

'하긴...'

막 만난 사이에 보답으로 정액을 달라니. 진짜 엮이면 상아에 버금가는 골칫거리가 생길 것 같았다.

운현이 잠자코 있자 바제트는 시무룩한 얼굴을 들어 올린 후 조용히 말했다.

"그럼 내가 또 실수를 해버린건가..."

"네?"

"으음... 매번 파티에 들어갈때마다 나는 파티에 쫓겨나고 말았거든. 그래서 위기에 처한 너희들을 구해주면 받아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파티에 받아주길 바라면 그런 소리는 하면 안돼죠."

"어째서? 좋은 남자를 보면 자궁이 울리는 것은 모든 여자들이 동일한 것 아닌가?"

"아니거든!?"

저것이 엘프의 상식이란 말인가? 청순하고 태평하기 그지 없는 얼굴로 자궁 어쩌고를 떠들어대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그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미야는 빽 소리친 후 바제트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파티원을 늘릴 생각이..."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허접해보이는데."

"뭣!?"

"아니... 일단 딜링 능력이 모자르고, 거기에 힐러조차 없잖아. 저기 파티 리더. 그래. 운현이라고 했던가? 운현이 도적이라 함정과 유틸기로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지만 만약 좀 더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려면 그걸로는 부족할거야."

"으음..."

바제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것은 운현 역시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딜링 능력이 떨어지긴 하지.'

타 파티에 비해 빠르고 편하게 전투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함정 덕분이지 파티 전체의 능력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만약 함정이 통하지 않거나 함정을 해제할 수 있는 몬스터가 나온다면? 그렇다면 파티는 위기에 처해질 것이다.

'그것만은 사양이다.'

처음 헤스티아나 미야를 끌어들일 때 그녀들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패라고만 생각했었던 운현은 아까 전 미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온 몸이 피가 딱딱히 굳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아.'

운현은 부르르 몸을 떤 후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응시하던 바제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보기보다 제법 잘 싸우더군. 도적이며 남자인 주제에 지휘까지 하다니. 하지만 그렇다 하여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이런 상황을 겪었으니 이해할 것 같은데?"

"그렇군요. 바제트씨의 의견은 잘 들었어요."

"음! 그러니 내가..."

"어서 던전에서 나가서 파티원을 구하도록 해요. 힐러와 딜러 한명씩 모집하면 되겠죠?"

"...아니 나를..."

"그렇군! 그래! 운현! 우리 파티원을 어서 모으도록 하자!"

바제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헤스티아는 그녀를 지나쳐 운현의 팔을 꽉 끌어안았다. 그것에 당황한 바제트가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미야는 운현의 다른 팔을 꽉 끌어안았다.

털까지 곤두서 자신을 경계하는 미야와 자신 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 헤스티아의 모습에 당황하던 바제트는 운현을 물기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으음... 잠깐만. 잠깐만."

"왜요?"

"...운현."

"파티를 구하는거면 길드로 돌아가는 건 어때요?"

"음? 그건..."

"임시로 파티를 맺죠."

"운현씨!"

"운현!"

"임시!??"

셋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것에 운현은 무덤덤한 말투로 바제트에게 말했다.

"바제트라고 했죠? 헤스티아의 말대로 별 의미 없는 도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그러니 제안하겠습니다. 길드로 돌아갈때까지 파티를 함께 하는 건 어떤가요?"

"으음..."

"운현. 왜 그런 제안을?"

"기브 앤 테이크. 받았으면 돌려줘야 하는 법이지."

운현의 말투에 담긴 진심에 미야는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헤스티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운현씨의 결정이면 따르겠어요. 그렇지만 바제트씨."

"음?"

"운현씨를 넘보지 말아요."

"하하하하하!! 알았다. 라고 할 줄 알았나? 좋은 남자를 보면 자궁이..."

"자궁 어쩌고는 됐구요!"

헤스티아는 바제트에게 빽 소리쳤다. 그녀의 반응에 바제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 그럼 돌아갈까?"

바로 홉고블린을 잡으러 가고 싶었지만 바제트를 길드로 돌려보내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괜히 더 엮였다간 골치아파질 일이 늘어날 것이기에 운현은 최대한 전투를 피하며 길드 입구에 도착했다.

"자. 파티는 다시 구해보세요."

"으음... 너희들의 파티는?"

"저희는 뭐."

"알아서 할테니까 신경끄고."

날선 반응을 보이는 미야와 헤스티아에 바제트는 우울한 시선을 운현에게 보냈다. 미녀의 그런 시선에도 운현은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 이었다. 물론 바제트의 능력이 탐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파티원간의 연계는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미야와 헤스티아가 반대를 하는데 자신이 오케이를 한다 하더라도 파티에 긍정적인 영향이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너희까지 그리 하는 것인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그녀는 힐끔힐끔 운현을 보다가 결국 던전 입구로 던전을 나가버렸다. 그녀가 떠나가자 헤스티아는 안타까운 입맛을 다셨다.

"으음... 앞으로 조심해야겠네요."

"왜?"

"엘프들은 집착이 심하니까. 저걸로 포기했다고 생각하기 어려워."

"으음..."

미야와 헤스티아는 아직 경계심을 풀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들의 모습에 운현은 피식 웃었다.

"너무 걱정 말라고. 설마 큰 일이야 나겠어?"

운현의 말에 미야와 헤스티아는 불안한 얼굴로 애써 미소지었다.

"피잉!"

"....."

"이야아~! 위험하지 않았어!? 내가 도움을 준 것 같군. 어때? 역시 원거리 딜링이 가능한 궁사가 있으면 좋지 않겠어? 파티... 하지 않겠나?"

운현은 고블린의 미간에 밖혀 있는 화살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느긋하고 태평한 목소리다. 그 목소리에 운현이 짜증을 내기도 전에 미야는 먼저 나와 수풀 속에 숨어 있다가 화살을 날린 바제트에게 으르렁거렸다.

"캬악! 당신 지금 뭐하는거야!?"

"저 고블린이 운현을 공격하려 하길래..."

"당신이 안껴도 잡을 수 있거든!?"

"그, 그랬나? 난 또 위험한가 싶었지. 혹시 모르니 궁사를 껴서 같이 하는건 어때?"

"바제트씨. 저희를 미행한건가요?"

헤스티아와 미야가 성질을 내기 전에 운현은 한발 앞서 나와 그녀에게 물었다.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 기뻤는지 바제트는 활짝 웃었다.

"미행이라니. 그냥 가는 길이 같았을 뿐이야. 이야~ 우연이 겹치면 인연이라는데 어때? 나도 함께..."

"이번에 제대로 말씀드릴게요."

"음!"

"거절합니다."

"히잉!?"

운현의 차분한 거절에 바제트는 또다시 시무룩해져 터덜터덜 파티에서 멀어졌다. 그녀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운현이 쓴 입맛을 다시자 미야와 헤스티아는 서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진짜 긴장하지 않으면 안되겠는데..."

"잘못했다간..."

"응. 우리 조심하자."

"네. 미야씨도요."

확실하게 거절을 했으니 다시 오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운현은 둘의 모습에 오한을 느꼈다.

"하아. 이제 홉고블린을 잡으러 가볼까."

"우리 셋이 가능할까요?"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홉고블린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봐야하고 말야. 그냥 도전한다 생각하고 위험하면 튀자. 어때?"

"그런 거라면..."

미야와 헤스티아가 동의하자 운현은 그들과 함께 고블린 부락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길드에서 구입한 지도에 표시된 위험구역 근처로 간 운현 일행은 부락 근처에 있는 고블린 두 무리를 무리 없이 잡은 후 고블린 부락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가 많으면 잡기 힘들지. 일단 내가 정찰을 갔다올게."

"조심하세요!"

"위험하면 바로 튀어야 해! 알았지?"

"알았어. 걱정마."

미야와 헤스티아의 입술에 키스해준 운현은 꽤 거리를 벌리고 나서 하이딩을 걸었다. 부락의 입구가 아닌 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 틈을 통해 부락 안으로 들어선 운현은 부락 내부에 있는 천막을 보며 생각했다.

'이정도면 화공으로 싹 태워버릴 수 있겠는데...'

타기 좋은 나무나 천으로 만들어진 부락에는 의외로 고블린의 수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곱마리 정도 있는 것에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부락의 끝에 있는 동굴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커허어어어어엉!"

끔찍한 비명이다. 하지만 사람의 비명이 아닌, 코볼트의 비명소리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에서 뭘 하는 건가? 그는 남은 마나를 살핀 후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동굴 안에 설치된 붉은 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함정인가...'

붉은 원 근처에 도착한 운현은 담담히 함정 해제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스킬이 발동하자 붉은 원은 사라졌고 그것에 운현은 만족하며 앞으로 걸어가보았다.

'역시...'

성공적으로 함정이 해제된 것에 만족한 그는 동굴 안으로 더욱 들어갔다.

'헉...'

던전이 아닌 바깥에서 홉고블린을 보았던 운현은 안의 홉고블린을 보며 기겁했다. 일단 자신이 보았던 홉고블린보다 세배는 덩치가 컸고 가진 무장도 훨씬 좋았다.

'코볼트를...'

벽에 밧줄로 묶여 있는 코볼트를 산채로 뜯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운현은 할 말을 잃었다. 아까의 비명은 코볼트의 비명이었던 것이다.

"으적... 으적..."

피를 뚝뚝 흘리며 코볼트를 뜯어먹는 홉고블린을 지켜보던 운현은 조용히 동굴을 빠져나왔다.

'고블린과 홉고블린이 같이 싸우면 답 없겠는데...'

혼자서 쪼그려 앉아 고민하던 그는 고블린들을 처치하지 않으면 홉고블린을 상대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젠장. 어떻게 하지...'

고블린 일곱마리를 잡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저들이 움직일때 홉고블린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 운현은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다시 돌아왔다.

"어땠어요?"

"일단 무리."

"엣!?"

"고블린 일곱마리. 그리고 홉고블린이 있었는데 코볼트를 잡아 뜯어먹고 있더라고. 그걸 보면 코볼트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 같아. 적어도 파티원 하나를 더 모집하든가. 아니면 다른 파티와 연합을 하든가 해야 할 것 같아."

"에에... 그럼."

"오! 그 이야기는 잘 들었다!"

"..........."

운현은 뒷편의 나무에서 밝은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인상을 팍 구겼다.

63====================

Quest

"끙..."

운현이 인상을 구기자 미야는 이를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바제트는 그녀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운현에게 다가가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가? 궁사에 힐링 스킬과 유틸기도 가지고 있는 이 바제트가!"

"...아니 필요 없는데요."

"에엣!?"

저 의기양양한 얼굴을 보니 화가 난다. 운현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고 그것에 그녀는 심각하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왜!? 홉고블린을 잡으려는 것 아닌가!? 홉고블린을 잡기 위한 적정 파티원 수는 최소 네명인데!?"

"아니. 뭐 친한 파티가 있으니 도와달라고 하면 되니까..."

아르네 파티도 있고 정 뭐하면 다른 파티와 연합하면 그만이다. 다만 그 전리품을 나눠야 한다는게 아쉬울 뿐이지. 운현이 무덤덤히 말하자 그녀는 엄청나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푹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내가 싫은건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그녀가 말하자 운현은 조금 가슴이 찔렸다. 저렇게 껴달라고 달라붙는데 마냥 밀어내려니 좀 심했나 싶은 것이다.

"당신이 자꾸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하니까 그렇죠!"

"하지만...! 나는 그저 직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너희들도 운현에게 안기는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 다니는 것 아닌가!?"

"그런 거 아니거든요."

"맞아. 아니라고."

"그럼 왜 같이 다니는건데?"

바제트의 질문에 헤스티아는 운현을 올려다본 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전 운현을 좋아하기 때문에 함께하는 거에요."

"난 운현이 나의 은인이기 때문에 같이 다니는 것이고."

"호오. 그럼 그대들은 운현에게 안긴 적이 없다는 건가?"

"그, 그런 건 아니지만서도."

"그것보다는 난 운현이 은인이라..."

헤스티아와 미야가 바제트의 말에 허둥거리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쉰 후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제트."

"음."

"잠깐 얘기 좀 할까요?"

"몸의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야. 비록 처녀이지만 아는 것이 많으니 남자를 충분히..."

"엥? 처녀에요?"

"응? 어. 응. 이 엘프의 아름다운 몸을 처음으로 가질 수 있는 영광이 생기는 것이지. 나를 파티원으로 맞이한다면 말야."

"호오..."

운현이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자 바제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살랑살랑 몸을 으쓱거리며 운현에게 다가왔고 그것에 헤스티아와 미야는 얼른 그의 앞으로 이동해 바제트의 접근을 막았다.

"잠깐만."

"운현!?"

"운현씨..."

"너네가 뭔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니다."

운현이 자신들을 만류하자 헤스티아와 미야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운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바제트에게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그리고 레벨은?"

"올해로 백 여든 둘이 되었지. 레벨은 낮아. 지금 21이 되었을 뿐이야."

"저희보다 한 여섯배는 넘게 사셨군요."

"어차피 종족끼리의 나이차이는 큰 문제가 없지 않나? 그리고 나는 엘프. 원한다면 반려로 삼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춰 줄 자신이 있어."

"그건 대단한 일이군요. 뭐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왜 접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지?"

운현의 질문에 바제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묻자 운현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백 여든 둘이라면... 그 기간 동안 당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을 골랐을 터. 어째서 접니까?"

"그거야 운명을 느꼈기 때문이니까."

"...허."

어처구니 없는 말에 기가 찬다. 그가 어이없어하자 바제트는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나이 쯤 된다면 세상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지. 알수 없는 인연은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은 곧 연인을 만든다.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아닌 것 같은데요..."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바제트는 빙긋 웃으며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어딘지 모를 그리운 감각이 몸을 지배한다. 운현의 표정이 묘해지자 바제트는 상냥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인연을 깨닫는 것은 상당한 연륜이 있어야 하는 것이야. 너라면 얼마든지 알게 될 거야."

"으음..."

"그 손치워요!"

"운현에게 접근하지마!"

으르렁거리는 둘의 기세에 바제트는 빙긋 미소지은 후 손을 떼었다. 그녀는 다른 여인들과 운현을 번갈아 바라 본 후 말했다.

"뭐, 지금 네가 인연을 깨달아달라는 말은 아냐. 그저 지금 당장 자네의 파티에 내가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이리 말하는 것이지. 정 뭐하면 이번 홉고블린을 상대하며 시험해보는 건 어때?"

"...임시파티라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요?"

"음. 넌는 반드시 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니 말이야."

"하..."

자신만만한 바제트의 말에 헤스티아는 기가막혔다. 자신이 죽어라고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운현은 조금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았었다. 저 여자는 도대체 무슨 깡으로 저리 말하는 것일까. 헤스티아는 이제 궁금하기까지 해졌다.

"운명이니 인연이니... 그건 당신의 생각이라고 말해두겠습니다만. 단순한 임시 파티라면 나쁘지 않겠군요."

"음! 난 반드시 큰 도움이 될 걸?"

"하아.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때?"

운현이 몸을 돌려 자신들을 바라보자 헤스티아와 미야는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바제트의 말대로 인연이니 어쩌니 그런 것은 무시하고서라도 확실히 인원이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거기에 궁사이며 회복술까지 가능한 드루이드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그녀들은 한참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운현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아요!"

"맞아! 맞아!"

"하하하! 나의 매력에 이 남자가 빠질까 걱정하는 건가?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나는 첩들도 이해하니까."

"뭐, 뭣!?"

"첩이요!?"

하나하나 신경 거슬리게 하는 바제트의 모습에 미야와 헤스티아는 발끈했다. 그들의 모습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괜찮으려나...'

어쨌든 바제트를 파티로 받아들였으니 전술은 다시 짜야 한다. 유틸 겸 힐링 겸 딜링이 가능한 만큼 전방향에서 쓸 수 있겠지만 운현의 파티에 지금 필요한 것은 힐링과 딜링이었다.

활을 다룰 수 있는 만큼 원거리 딜링이 가능하고 여차하면 후방에서 힐링이나 해라. 라는 마인드로 운현은 바제트를 후방에 배치했다.

"음. 너와 떨어지는 건 좀..."

"입 좀 다물어 줄래요?"

"후후후... 부끄러워하긴."

진짜 마이페이스다. 남의 말은 귓등으로 넘겨버리는 그녀의 행동에 운현은 골치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끙... 자. 그럼 포메이션은 이런 식으로 갈게요. 다들 알았지?"

"응."

"알겠어요."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할까?"

"음? 뭔가 불만이라도?"

"아니... 일반 고블린이라면 이 상태로도 상관없겠지만 홉고블린은 아나 모르겠지만 상당히 강한 몬스터야. 우리는 지금 딜러진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인데 그걸 어떻게 메꿀 셈인데?"

"음. 풀 스트립으로 홉고블린의 방어력을 최대한 깎아놓고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럼 뭔가 제시할 말이라도 있나요?"

"있지. 전투가 시작되면 헤스티아 양의 바인딩으로 홉고블린을 묶은 후 가진 모든 기술을 퍼붓고..."

"퍼붓고?"

"도망치자."

"에?"

"쫓아오지 않을까요?"

"쫓아온다 해도 나쁠 것은 없지. 만약 쫓아온다면 운현의 함정이 있잖아. 최대한 도망다니며 체력을 보존한 후 다시 총 공격. 이런 식으로 반복한다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거야."

"으음..."

치고빠지기를 하자는 바제트의 제안에 운현은 고민했다. 물론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가정을 할 수 있을 때 이야기인데다가 홉고블린이 계속 쫓아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만약 게임처럼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면 다시 돌아가 체력을 채우기라도 한다면...'

과도한 폴링은 적의 어그로가 풀려버리는 일을 만들어버린다. 운현이 그것을 걱정하며 묻자 바제트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얼굴로 운현을 보았다.

"그럴리가 있나. 몬스터의 집요함을 얕보지 마. 한번 잡고자 한다면 끝까지 쫓아오는 녀석들이니 말이야."

"그렇다면 이 방법으로 가자... 라고 하고 싶지만 헤스티아. 가능하겠어?"

"노력해보겠지만..."

운현과 미야, 그리고 바제트의 달리기라면 홉고블린을 떼어 놓을 수 있겠지만 마법사인지라 체력과 몸놀림이 약한 헤스티아가 과연 따라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의 의문에 헤스티아는 불안감으로 답해주었다.

"아차. 헤스티아 양이 마법사였지. 그럼 이 방법은 쓰기 어렵겠군... 결국 정면 승부라는 건가."

"답이 없다면 그거라도 해야지. 정 뭐하면 바제트 빼고 다른 파티랑 연합을..."

"음. 난 우리가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어."

헤스티아 때문에 가장 안전한 작전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바제트가 유감을 표시하자 운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바제트는 얼른 의견을 바꾸고 생글생글 웃었다.

"하아...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우리는 어떻게든 해왔잖아."

"네! 저 열심히 할게요."

자기 때문에 안정적인 방법을 쓰지 못한다는 것에 우울해하며 헤스티아가 사과하자 운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에게 방긋 웃은 헤스티아에게 바제트는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상당히 친해보이는구만."

"가장 먼저 운현씨와 동료가 되었으니까요."

"흠... 그런가."

뭔가 또 쓸데없는 소리로 사람 성질을 긁을 줄 알았던 운현은 바제트가 무언가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물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 생각을 멈춘 후 담담히 말했다.

"후후. 순서따위는 상관이 없지."

"...에이. 아무튼 가자. 제일 먼저 할 일은 고블린을 잡는 거야. 고블린이야 지금까지 꾸준히 잡아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지는 말자고. 전투가 끝난 다음에, 아니면 전투 도중에 홉고블린이 난입할 수 있으니까 말야. 최대한 빠르게 고블린을 잡아야 해. 알았지?"

"응!"

"예!"

"알았어."

세 여인들의 대답에 운현은 씩 웃었다.

전의를 다지며 고블린 부락으로 향한 그들 중 선두에 선 운현은 주변을 살핀 후 함정을 설치하고 단검을 잡았다.

"내가 끌고 올게."

홉고블린에게 전투를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부락의 입구에 파티를 대기 시켜 놓은 운현은 다른 여인들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바제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활을 들었다.

"끌어오는 것이라면 내가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그냥 여기서 함정을 설치하고 기다리고 있어."

"괜찮겠어요?"

"훗. 얕보지 말라고."

운현이 걱정스레 묻자 바제트는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운현의 볼을 차분히 쓰다듬고 그대로 부락 안으로 들어갔다.

"......."

"운현? 왜그래?"

"아냐."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손길이 어딘가 그립다. 자꾸만 바제트의 뒷모습에 시선이 가는 것에 헤스티아는 떨떠름한 얼굴로 운현을 보았다.

"왜 그래요?"

"아니. 아무것도 아냐."

뒤통수를 긁적거린 운현은 이상한 기분을 지운 후 긴장했다. 이제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이런 기분은 전투를 망치는 길이기에 운현은 단검을 꽉 쥐었다.

그들이 기다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숲길을 빠르게 뛰어 바제트가 달려왔고 그녀의 뒤에는 어깨나 머리, 복부와 다리에 화살을 한대씩 맞은 고블린들이 화난 얼굴로 그녀를 뒤쫓아왔다.

"온다!"

"제대로 끌고 왔네! 그럼 시작한다!"

"오오!!"

고블린 일곱마리를 잡는 일은 정말 어렵지 않았다. 바제트가 없을때도 그럭저럭 잡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화살 지원과 힐링 덕분에 큰 상처 없이 고블린을 잡을 수 있었던 운현 일행은 바제트의 성격은 둘째치고 그녀의 실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우와. 화살 잘 쏘시네요."

"크흠. 뭐, 시, 실력은 그럭저럭이군."

바제트의 마이페이스 적인 성격에 기분나빠하던 둘이었지만 실력을 보여주니 아무래도 호감이 생긴 모양이다. 그녀들이 자신을 칭찬하자 바제트는 당황하더니 헤죽 웃었다.

"그, 그런가? 후후후. 내가 이정도는 하지."

"칭찬을 못하겠네. 자. 그럼 준비는 됐지?"

바제트가 볼을 긁적거리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운현은 떨떠름히 말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뒤를 따라 부락 안으로 들어간 여인들은 커다란 동굴 앞에 선 채 서로를 보았다.

"여기에 홉고블린이 있는거에요?"

"응. 아까 정찰을 갔을 때 보니까 여기 있더라고."

"안으로 들어가서 싸우는 것은 미친 짓이야."

미야는 동굴의 입구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운현 역시 동의했다. 동굴의 안은 그리 넓지 않았고 몸빵이 약한 헤스티아나 바제트가 함께한다면 좁은 곳은 유리한 지형이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꺼내지?"

"음... 이 방법은 어때?"

운현은 근처에서 풀을 잔뜩 잘라 온 후 입구에 쌓아 놓은 후 기름을 뿌렸다. 미야와 바제트에게 시켜 넓은 판자를 가져오게 한 운현은 헤스티아에게 파이어 볼트를 부탁했다.

"화륵!"

파이어볼트에 맞은 풀에 불이 붙고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운현은 바제트가 가져 온 판자로 부채질을 시작했다. 연기를 안에 넣어 홉고블린이 나오게 하자는 방법이다. 아까 안을 보았을 때 그곳은 분명히 막혀 있는 곳이었기에 연기가 가득 차면 홉고블린이 나올 것이다.

"쿨럭! 쿨럭!"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에서 커다란 인영이 뛰쳐나왔고 그것을 보며 운현은 날카롭게 외쳤다.

"풀 스트립!"

"캬아아아아아!!"

커다란 몽둥이와 가죽갑옷. 투구, 신발. 장갑. 그 모든 것이 해체된 홉고블린은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자신의 앞에 있는 운현 일행을 보며 포효했다.

"다들 긴장해! 미야! 어떻게든 버텨!!"

"알았어!"

홉고블린이 보이는 포효에 주눅든 미야는 운현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고 홉고블린에게 달려갔다.

"크아아!!"

"퍼억!"

무기가 없어 주먹을 내질렀을 뿐인데도 그 힘이 보통이 아니다. 미야가 몇걸음 밀려날 정도의 힘에 운현은 이를 악물었다.

'생각보다 강한데...'

홉고블린의 전투를 한번이라도 봤다면 대책을 세웠을 텐데. 운현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외쳤다.

"헤스티아! 바인딩!"

"네!!"

"카아아아아!!"

"맙소사! 저항했어요!"

헤스티아의 바인딩에 포효하는 것으로 저항해낸 홉고블린은 미야를 어깨로 밀쳐버린 후 운현에게 달려갔다. 바위같은 주먹이 쥐어지고 그 주먹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운현은 이를 악물었다. 막는다? 막아도 죽거나 크게 다친다. 운현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그 주먹은 운현의 몸 바로 앞으로 와 있었다.

"아아아악!! 운현씨!!!"

"운혀어어언!"

"큭! 운현!! 위험해!!!"

그의 몸을 향해 홉고블린이 주먹을 날리는 것을 보며 세 여인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내질렀다.

64====================

Quest

"커억!!"

왼쪽 팔로 가드했지만 그 충격을 넘길 수는 없었다. 그대로 맞아 나뒹굴어버린 운현이 바닥에서 꿈틀거리자 미야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도발을 쓰고 홉고블린의 허리에 스매쉬를 먹였다.

"커어엉!"

갑작스러운 충격에 홉고블린의 몸이 비틀린다. 그것을 맞은 홉고블린의 어그로가 자신에게 오자 미야는 다급히 외쳤다.

"바제트! 운현을!"

"어, 으, 으응!! 알았어! 히, 힐링!"

창백한 얼굴로 당황하던 그녀는 운현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녹색의 기운이 쏟아져 운현의 몸을 감쌌다.

"아아아! 운현씨!!"

"큭..."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운현은 자신의 HP게이지가 붉게 점멸하는 것을 보며 이를 갈았다. 풀 스트립 때문인지 MP가 반 이상 사라져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이모양이냐!'

쉬운게 하나도 없다. 운현은 이를 갈며 몸을 일으키고 주머니에 있는 힐링포션은 들이마셨다.

"헤스티아! 바인딩!"

"바인딩!"

미야를 공격하던 홉고블린의 몸이 딱딱히 굳는다. 운현은 욱씬거리는 팔을 무시하며 외쳤다.

"공격해!"

"운현! 괜찮아!?"

"나 신경쓰지 말고!"

왼팔이 아파 죽겠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을 꾹 억누르며 강하게 외친 운현은 파티원들의 공격에 맞으면서도 여전히 그 힘을 보이고 있는 홉고블린의 모습에 이를 갈았다.

'시발 저게 무슨 홉고블린이야!?'

어지간한 게임이나 소설에서 보면 고블린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에 불과하게 묘사되는 주제에 장난이 아니게 강하다. 고블린따위보다 몇십배는 강한 홉고블린을 보며 운현은 날카롭게 외쳤다.

"바제트! 바인딩이 풀리면 저 녀석 구속해!"

"맡겨줘!"

"미야! 스매쉬 준비해! 바인딩 풀리면 바로 친다! 그리고 기름병 준비!"

"응!"

운현은 다시 힐링포션을 들이마셨다. 필레에게 듣기로 힐링포션을 연속으로 마시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했는데 그녀의 말대로 두번째 힐링포션을 마셨을 때 HP회복은 처음보다 상당히 적었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왼팔의 고통이 많이 가라앉자 운현은 상황을 주시했다.

'젠장. 피가 얼마나 빠졌는지 알 수가 없네.'

풀 스트립으로 무장해제를 했기에 망정이지 무장해제를 안했으면 회복이고 뭐고 한대 맞고 삼도천 건널뻔했다. 운현은 방금 전 죽을뻔했다는 것에 긴장하며 외쳤다.

"바인딩 풀린다!"

"인탱글!"

바인딩에서 풀려난 홉고블린이 포효할때 바제트는 적절한 상황에 맞추어 인탱글을 시전했다. 홉고블린의 다리 밑에서 솟아난 덩쿨들이 홉고블린의 몸을 감싸자 운현은 단검으로 홉고블린의 허리를 몇번 찌른 후 뒤로 물러나며 기름통의 뚜껑을 이빨로 뜯어낸 후 던졌다.

"텅!"

두번의 투척. 미야까지 합쳐서 총 네개의 기름통이 홉고블린의 몸에 맞고 터지며 안의 기름을 쏟아내었다. 축축한 기름에 덮어진 홉고블린이 그것에 기분나빠하는 동안 헤스티아는 준비한 파이어볼트를 쏘아내었다.

"화르르르륵!"

"크아아악!"

화염이 홉고블린의 몸을 감싼다. 후끈한 열기가 자신의 몸에 달라붙자 홉고블린은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휘저었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접근이 힘들다. 운현과 미야가 뒤로 물러난 동안 바제트는 연속으로 화살을 쏘아 홉고블린에게 명중시켰다.

"다음은!?"

"함정 건다!"

현자의 시간때 만들어낸 가시 줄 함정을 홉고블린의 앞에 설치한 운현은 몸을 털어 불을 끈 홉고블린이 악귀같은 얼굴로 포효하며 주먹을 휘두르자 몸을 숙여 그것을 피해낸 후 기름통 두개를 함정에 던졌다..

"으쌰!"

어느새 홉고블린의 뒤로 빠져 있던 미야가 크게 뛰어 홉고블린의 등에 드롭킥을 먹였다. 그 공격을 맞은 홉고블린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밀려나갔지만 아직 함정까지 가기에는 조금 거리가 남았다.

"하아아압!"

하지만 그런 것은 예상했는지 미야는 주먹을 꽉 쥐고 홉고블린의 오른쪽 다리 관절 부분을 냅다 후려쳤다.

"우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홉고블린의 몸이 쓰러진다. 정확히 함정 위로 홉고블린의 몸이 쓰러지자 함정은 자신을 덥친 홉고블린의 몸을 감쌌다.

"촤아아악!"

"카아아아아아아악!!"

평범한 가시 줄 함정과 다르게 가시 줄의 수와 줄에 붙어 있는 가시가 크고 날카로웠다. 그것이 홉고블린의 몸을 감싸자 바제트는 당황하며 운현에게 물었다.

"저건 뭔가!?"

"설명은 나중에! 헤스티아! 파이어 볼... 이 아니라! 매스 파이어 볼트 준비해! 미야! 기름통 준비해! 이십초간 공격하고 기름 붓는다!"

"응!"

운현의 신호를 받은 미야는 주먹을 꽉 쥐고 힘을 모았다. 그녀와 함께 가시 줄 함정에 상처받으며 꿈틀거리던 홉고블린에게 달려간 운현은 가시 줄 함정이 만들어낸 상처에 단검을 쑤셔 넣었다.

"촤악! 촤악!"

"카악! 카아아아악!!"

"하마터면 죽을 뻔 했잖아!"

홉고블린에게 맞아 죽을 뻔 했던 고통과 공포, 그리고 분노 때문에 운현은 상당히 열받아 있는 상태였다. 그가 이를 갈며 단검을 휘두르고, 또 운현이 공격받았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나 있던 미야 역시 주먹을 쥐고 홉고블린의 머리를 부숴버릴 듯 미친듯이 때렸다.

"피잉! 피잉!"

바제트의 화살을 끝으로 시간이 끝났다. 가시 줄 함정이 하나 둘 끊어지기 시작하자 운현은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기름통!"

"알았어!"

양 손에 쥔 기름통을 홉고블린에게 던진 둘이 물러나자 운현은 헤스티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헤스티아의 지팡이에서 두 줄기의 불꽃 화살이 날아가 홉고블린의 몸을 감쌌다.

"콰앙!"

기름을 어찌나 먹여놨는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화염의 열풍이 훅 몰려오는 것에 운현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해, 해치웠나?"

너무 강렬한 열풍과 불꽃 때문에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뒤로 물러난 미야는 침을 꿀꺽 삼킨 후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어우야. 그 말은..."

"크아아아아아!"

"화아아아악!"

살이 떨릴 정도의 포효가 터져나오며 불꽃이 사라져간다. 그 모습에 운현은 한숨을 푹 내쉰 후 미야를 바라보았다.

"왜?"

"아니다. 긴장하라고... 저 녀석 완전 열받은 것 같으니까."

온 몸에 그을음이 뭍어있는 홉고블린이 으르렁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인다. 그래도 꽤나 데미지를 준 것인지 상태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가자! 라고 하고 싶지만..."

기름통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운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은 기름통을 살펴보았다. 남은 것은 일곱통뿐. 운현이 자신을 보자 미야는 입맛을 다셨다.

"난 네통."

"그렇다면 아까처럼은 못한다는 거군. 적당히 조심하면서 딜링하는 수 밖에."

운현과 미야가 방금 전에 하던 방식대로는 이제 할 수 없다. 라는 것에 아쉬워하며 바제트는 활에 시위를 먹였다. 팽팽히 당겨진 화살이 쏘아지는 것을 시작으로 홉고블린이 포효하고 달려오자 미야는 주먹을 꽉 쥔 후 홉고블린의 공격에 자신의 주먹을 날렸다.

"쿠웅!"

내질러진 홉고블린의 펀치를 펀치로 막아낸 미야는 이를 드러내며 외쳤다.

"이 녀석! 아까보다 힘이 빠졌어!"

"그럼 할만하겠군! 바인딩! 인탱글! 함정 순으로 돌아가며 잡는다!"

"알겠어요!"

"응!"

홉고블린의 힘이 빠졌다면 승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운현은 빠르게 지시를 한 후 단검을 잡고 달려들었다. 미야를 상대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던 홉고블린은 운현이 접근해오자 포효하며 그에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미야의 주먹이 가슴을 후려치자 이를 드러내며 다시 미야에게 눈을 돌렸다.

"촤악!"

단검의 날이 피가 흐르고 있는 홉고블린의 상처를 더더욱 벌린다. 그 틈으로 다시 피가 샘솟듯 터져나왔을 때 홉고블린은 크게 몸을 휘저어 미야와 운현을 떨어트렸다.

"바인딩!"

"카아아아!"

"또 저항...!"

"인탱글!"

자신의 바인딩에 홉고블린이 저항하자 헤스티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웃어보이며 바제트는 인탱글을 걸었다. 피어오른 덩쿨이 몸을 감싸자 홉고블린은 당황하더니 으르렁거리고 덩쿨을 양 손으로 잡고 힘껏 뜯어버렸다.

"헤에..."

홉고블린이 저정도까지 할 줄이야. 운현과 미야, 그리고 헤스티아와 바제트는 당황했다. 하지만 아직 함정이 남아 있었다.

"촤아아악!"

"크아아아악!"

또다시 강화 가시 줄 함정에 걸려버린 홉고블린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운현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운현이 움찔하자 운현의 앞을 가리며 미야는 씩 웃었다.

"네 상대는 나다!"

어그로가 운현에게 끌리는 것을 막기 위해 도발을 걸어 홉고블린의 어그로를 끌어 온 미야는 힐끔 뒤를 보며 말했다.

"넌 내가 지키겠어!"

"눈물나게 고맙네! 홉고블린을 잡고 나서 만족시켜주지!"

"어, 어머."

"거기 애정표현은 작작하게나! 저 녀석! 함정에서도 일어나려고 한다!"

"크...크아아아아아!!"

또다시 포효한 홉고블린이 몸을 일으켰다. 온 몸에 피칠갑을 한 홉고블린은 미야와 운현이 자신의 앞을 막자 주춤 뒤로 물러났다.

"겁먹었나?"

"크아아아!!"

팔을 크게 휘둘러 그들을 물러나게 한 홉고블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근처의 천막으로 돌진했다. 그것을 보며 운현과 미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바제트는 창백해진 얼굴로 외쳤다.

"막아! 저 녀석! 회복을 하려고 한다!"

"회복!? 하지만 어떻게!?"

"그건..."

"...크아! 크아아!"

천막을 부숴버리고 그곳을 뒤진 홉고블린은 씨익 웃으며 작은 항아리를 꺼내었다. 그것을 깨버린 홉고블린은 항아리 안의 내용물을 손으로 잡았다.

"코볼트 머리!?"

잘 절여진 개 머리를 입 안에 넣은 홉고블린은 다시 포효하며 다른 천막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운현과 미야가 움직이고 바제트와 헤스티아가 공격을 했지만 홉고블린은 그것에는 신경도 쓰지않은 채 모든 천막에서 코볼트의 머리를 챙겨 먹었다.

"맙소사..."

홉고블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몸에서 흐르던 피는 이제 모두 멈춰버렸다. 아까까지 휘청거리던 몸이 이제 제대로 서 있는 것에 운현과 미야가 당황하자 홉고블린은 빠르게 뛰어 동굴로 들어갔다.

"걍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튀는게 어떨까? 다음은..."

"캬아아아아!"

동굴로 들어갔던 홉고블린이 다시 나왔다. 빈 손으로 들어갔던 홉고블린의 손에 커다란 몽둥이가 들려 있자 운현은 한숨을 내쉰 후 중얼거렸다.

"젠장. 산넘어 산이군."

기껏 피를 열심히 깍아놨더니만 다시 채우고 이제는 무기까지 들었다? 운현이 궁시렁거리자 바제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격려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네. 코볼트의 머리를 먹어 체력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그리 많은 체력을 회복하지는 못했을 터. 그러니..."

"카아! 카아아!!"

"큭!"

크게 휘둘리는 몽둥이의 공격을 막아낸 미야가 뒤로 밀려나는 모습에 운현은 바제트를 힐끔 보았다. 그녀 역시 그것을 보았는지 무척이나 떨떠름한 얼굴이다.

"어쨌다고?"

"끙... 지금이라도 헤스티아 양을 업고 튀는게..."

"아아아! 뭣들 하는거야아!"

혼자서 홉고블린을 막고 있던 미야가 외치자 운현은 한숨을 내쉰 후 함정을 설치하고 신호했다. 그의 신호에 미야가 후퇴하고 홉고블린이 함정에 걸려 시간을 벌게 되자 운현은 빠르게 말했다.

"기름병은 얼마 없어. 그러니까 최대한 조심해서 피를 빼자고. 스틸 걸어서 저거 뺏어볼게. 그리고 바제트는 미야에게 계속 힐을 주고. 몽둥이를 빼앗으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일단 몽둥이 때문에 공격이 더 심하게 들어오니 몽둥이를 뺏는 것이 급선무다. 운현의 말에 미야와 바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스티아도 바인딩을 할 수 있을 때 계속 걸어."

"알았어요!"

"그럼 간다!"

함정이 뜯어지며 홉고블린이 다시 몸을 일으키자 미야는 이를 악물고 홉고블린에게 돌진했다. 그녀의 어깨치기를 맞은 홉고블린이 비틀거렸을 때 운현은 그녀의 옆으로 가 스틸을 걸었다.

"스틸! 젠장!"

손에 들린 것은 작은 돌멩이 하나. 맨몸인데 왜 돌멩이를 훔치게 된건가. 라고 생각할 여유따위는 없었다. 미야가 휘둘러진 몽둥이를 막아내며 뒤로 밀려나자 운현은 다시 함정을 설치한 후 생각했다.

'젠장... 이제 함정도 얼마 안남았는데...'

코볼트나 고블린을 잡느라 함정을 많이 써서 그런지 남은 함정은 강화된 가시 줄 함정 넷과 일반 함정 셋 뿐이었다.

'아니.'

하나 더 있었다.

운현은 주머니에 따로 빼 놓은 함정카드를 손에 들고 그것을 보았다.

'기름 함정 - 폭.'

65====================

Quest

무려 현자의 시간때 만들어낸 함정이다. 하지만 과연 이게 강화된 가시 줄 함정처럼 강한 힘을 보일까? 운현은 짧게 고민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고민할 때가 아니지.'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다. 싸워야 할때다. 바제트의 힐링을 받으며 홉고블린과 맞서고 있는 미야를 본 운현은 바인딩에 맞은 홉고블린이 움직임을 멈추자 그 앞에 강화된 가시 줄 함정을 설치했다.

"미야!! 조금만 더 버텨!"

운현은 미야에게 외친 후 기름 함정 - 폭을 설치했다. 미야의 바로 뒤에 설치한 운현은 미야에게 신호를 보내고 설치된 함정을 보았다.

'왜 이렇게 작아!?'

일반 함정 범위의 반 밖에 되지 않는 함정에 운현은 당황했다. 넓은 범위라면 어느정도 빗나가도 범위 안에 넣을 수 있지만 저정도 범위라면 제대로 범위 안에 넣어야 했다.

"젠장! 미야! 네 바로 뒤에 함정있으니까 조심해!"

"알았어!"

운현과 꽤나 합을 맞춰봤기에 그녀는 뒤로 빠지며 홉고블린이 보이지 않는 함정에 빠지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홉고블린의 큰 걸음 탓인지 함정의 발동 범위 안에 홉고블린은 들어오지 않았고 운현은 이를 갈 수 밖에 없었다.

"젠장!"

"뭘하려는 건데!?"

"새로운 함정인데 범위가 작아!"

"큭... 어느정도인데 그래!?"

"기름으로 표시할게! 홉고블린 좀 잡고 있어!"

함정으로 홉고블린을 유도하려면 미야가 함정의 범위를 알고 있어야 한다. 미야의 눈에는 함정이 보이지 않으니 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하기에 운현은 빠르게 달려가 홉고블린의 뒤에 있는 기름 함정의 범위를 기름으로 표시했다.

"이정도!"

"왜 이렇게 좁아! 도대체 무슨 함정인데 그래!?"

홉고블린의 공격을 피해낸 미야는 운현이 표시한 함정의 범위를 보며 기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두걸음만 밀어!"

"하아아압!"

운현의 외침에 미야는 홉고블린을 어깨로 밀친 후 힘을 모아 후려쳤다. 그것을 막아낸 홉고블린은 한걸음 뒤로 물러났고 그것을 보며 운현은 다시 한번 외쳤다.

"한방만 더!"

"으랴아아압!"

크게 기합성을 터트리며 미야는 주먹에 힘을 넣었다. 스매쉬를 위해 힘을 모으는 그 틈을 노려 홉고블린이 몽둥이를 들었을 때 운현은 얼마 없는 MP를 쥐어짜냈다.

"스틸! 또 돌멩이냐!"

운현은 손에 들려진 돌멩이를 홉고블린에게 힘껏 집어 던졌다. 돌멩이에 맞은 홉고블린은 그것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미야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인탱글!"

"촤아악!"

들려진 몽둥이가 허공에서 멈춰졌다. 바제트가 소환한 덩쿨이 홉고블린의 몸을 감싸자 운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제트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굿! 잘했어!"

"하하하! 어때!? 이정도면 반할만 하지 않아!?"

"아니 그건 아니고."

"힝..."

운현의 칭찬에 바제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지만 그녀는 이어진 운현의 답변에 시무룩히 어깨를 늘어트렸다.

"미야! 다리! 다리를 공격해!"

"핫!"

"크어어엉!"

쥐어진 주먹이 홉고블린의 다리를 공격한다. 인탱글에 묶여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맞은 것인지 홉고블린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얼굴로 비명을 내질렀다.

"으쌰!"

홉고블린의 하체에 힘이 풀리는 것을 본 운현은 스탯창을 열어 그동안 쟁여 놓은 스탯 포인트를 모두 힘에 투자한 후 덩쿨을 잡고 당겼다. 힘이 상승한 덕분인지 덩쿨에 묶인 홉고블린이 넘어진다.

정확하게 기름 함정 위에 등을 대고 넘어져버린 홉고블린을 본 운현은 기름함정이 발동하자 웃으며 외쳤다.

"모여!"

"쑤우우욱!"

발동된 기름함정에서 검은 기름이 터져나오며 함정에 닿아 있는 홉고블린의 상체를 감쌌다. 분수처럼 벌컥벌컥 피어오르던 검은 기름이 홉고블린의 몸을 감싸는 것으로 함정의 발동이 끝나자 미야는 운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게 다야?"

"그, 글쎄? 음. 저게 단가...?"

"저거 하려고 그 고생을!?"

"에이 씨! 헤스티아! 쏴!"

그래도 기름이니 폭발은 하겠지. 운현은 어차피 기름통도 얼마 안남았기에 데미지나 좀 더 주자는 생각에 미야의 말을 무시하며 헤스티아에게 외쳤다.

"화르륵!"

그의 외침에 헤스티아는 한숨을 내쉬고 파이어볼트를 날렸다. 가시 줄 함정처럼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 것에 조금 실망한 얼굴로 파이어볼트를 날린 그녀는 파이어볼트가 기름함정에 닿고 거센 불길을 만들어내자 운현을 보았다.

"그래서 다음은..."

검은 기름에 붙은 불길이 삽시간에 홉고블린의 몸을 감쌌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홉고블린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본 헤스티아는 다음 작전에 대해 운현에게 물으려 입을 열었다.

"바인딩을...?"

"콰아아아아아아앙!!!"

"......."

"......."

"......."

"......."

엄청난 폭음과 함께 홉고블린의 등 뒤에서 생겨난 폭발은 홉고블린의 상처를 완벽하게 부숴버렸다.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홉고블린이 죽어버린 것을 본 운현들은 할 말을 잃은 채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홉고블린의 시체를 보았다.

"저게 뭐야... 운현. 당신 지금 무슨 짓을..."

미야의 말에도 운현은 아무런 말을 못했다. 그도 이정도의 위력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엄청난 파괴력이라니...'

강화된 가시 줄 함정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저 홉고블린의 단단한 몸을 그야말로 '개박살' 내버린 파괴력에 그들이 아무런 말도 못하는 동안 퍼뜩 정신을 차린 바제트는 운현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 그래도 잡긴 잡은 것 같은데."

"그, 그렇지?"

"...운현."

"응?"

미야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운현은 그녀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녀는 타들어가는 홉고블린의 시체를 보며 조용히, 하지만 조금은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나랑 있을때 저거는 좀 삼가줄래?"

"으응..."

잘못했다간 탱킹을 하는 미야까지 휘말릴 수 있는 함정이다.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야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탱킹을 하는게 이렇게 겁나는 일일 줄이야..."

어지간한 몬스터들의 공격은 그냥 막아낼 수 있는 미야라고 하더라도 저정도의 위력을 막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녀가 떨떠름히 말하자 운현은 강력한 힘을 보인 기름 함정 - 폭의 활용법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에 함정들은 다 써보고 수를 생각하자.'

"어쨌든 잡았네! 그럼 된거 아니야?"

"그렇죠."

바제트는 호들갑을 떨며 운현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운현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고 전투가 끝났다는 것에 긴장감이 풀린 바제트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휴. 무서워서 혼났네."

"그래도 꽤 잘 싸우던데요?"

"뭐야. 전투중에는 계속 편하게 말하더니 왜 갑자기 존대야?"

"어... 그게."

바제트의 지적에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전투 중에 워낙 경향이 없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반말로 지시를 했던 것을 떠올린 그는 바제트가 히죽 히죽 웃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아아. 그래. 정정하지. 잘 싸우던데?"

"흐흥~ 반했어?"

"그럴리가 있나. 그정도로 반했으면 난 미야나 헤스티아에게 푹 빠져 있겠지. 쟤들이랑 잘 싸운게 몇번짼데."

"쳇. 아무튼 좀 쉬자. 사실 이제 마나도 얼마 없어... 아까 전 인탱글을 건게 용할 정도니 말야."

"고생 많았어요. 바제트씨."

"음? 아아. 헤스티아 양도 잘 싸우더군. 그 작은 체구로 말야. 그리고 미야 양도. 생각보다 잘 버티던걸?"

바제트는 순순히 웃으며 헤스티아의 칭찬을 받아들인 후 둘에게도 칭찬했다. 처음 만났을 때 으르렁 거리던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괜찮은 분위기를 보이는 그들을 보며 운현은 천천히 말했다.

"잡기는 잡았지만 저렇게 손상되서 사체값이나 받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러게요... 그보다 저 상처를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면 할 말을 찾는게 우선이겠는데요?"

운현의 말에 헤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의 걱정거리를 추가했지만 운현은 그것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었다.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럼 챙길 건 챙기자."

홉고블린의 장비를 가방에 밀어 넣고 사체를 마석에 넣은 운현은 박살난 부락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보니 힐더크가 고블린 부락에 있는 광석을 구해달라고 했었지.'

"미야. 헤스티아. 바제트. 미안한데 좀 쉬고 나서 주변을 탐색해주겠어? 고블린의 광석이 있나 확인 좀 부탁할게."

"아아. 그거?"

"알겠어요."

"그게 뭔데?"

"운현이 받은 퀘스트. 고블린들이 채취한 광석을 구해다 달라는 요청이 있었거든. 그걸 수행하면 운현의 새로운 갑옷을 얻을 수 있어."

그때는 자리에 없었던 바제트가 궁금해하며 묻자 미야는 차분히 설명해 준 후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박살난 천막 근처를 돌며 그녀들이 광석을 찾기 시작하자 운현도 광석을 찾아 움직였다.

"난 동굴에 들어가볼게.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가는게 낫겠지."

아까 전 탐색을 할때 동굴에 설치되어 있던 함정을 떠올리며 운현이 말하자 여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혼자 동굴 안으로 들어간 운현은 아까 전 해제했던 함정이 다시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왜 다시 설치된거지?'

아까 전 자신이 해제했던 함정이 다시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같은 자리에. 운현은 그것을 해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저 평범한 동굴일 뿐인데 왜지?'

누군가가 들어와서 함정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 근처에 있던 고블린은 없었다. 그렇다면 홉고블린이 함정을 설치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돌아버리겠군..."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하다못해 정보라도 제대로 주어졌다면 던전을 진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텐데 그런 것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다보니 운현으로서는 답답할 뿐 이었다.

'차라리 잘됐군.'

던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길드의 의뢰를 처리하며 던전에 대해서 파악을 해보자. 그리 생각한 운현은 차분히 던전을 이동해 아까 전 홉고블린이 코볼트를 뜯어먹던 곳까지 도착했다. 사람 열명 정도가 앉으면 꽉 찰만한 공간의 끝에는 작은 상자가 있었다.

'설마!?'

아르의 파티가 가지고 있던 보물상자와 비슷한 형태의 보물상자다. 운현은 그것을 보며 히죽거리며 다가가갔다.

"이야~ 고생한 보람이 있네!"

홉고블린이라는 엄청난 적을 해치운 보람을 여기서 찾는구나! 운현은 크게 기뻐하다가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이걸 지금 까는 것보다는 나중에 까는게 낫겠군."

이왕 열거면 모두가 함께 있을때 까는게 낫지 않을까? 운현은 자신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 후 보물상자를 들었다.

"겁나 무겁네!!"

힘을 찍었는데도 상자는 무겁기 짝이 없었다. 하마터면 들다가 허리가 나갈뻔한 운현은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설마 들어갈까?"

인벤토리창을 열고 상자를 만져 본 운현은 보물상자가 사라지며 인벤토리에 작은 상자가 생긴 것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 이것까지 되다니. 모험가 때려치고 유통상 해도 돈 꽤나 벌겠는데..."

진짜로 이 위험한 모험가 짓은 때려치고 유통업에 종사를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운현은 터덜터덜 동굴 밖으로 나갔다. 동굴 밖에 도착하자 여인들은 모두 모여 빵을 먹고 있었다.

"나만 빼고 먹다니!"

"앗! 네가 너무 늦게 와서 그런 거잖아!"

"뭐하느라 이렇게 늦었어요?"

"어서 와. 네것도 준비해놨으니까 어서 먹어."

"아. 안에 함정이 있길래. 근데 광석은 찾았어?"

"이게 맞는지 모르겠군."

바제트는 운현에게 작은 광석 하나를 내밀었다. 은은한 묵광이 나는 주먹만한 광석을 받은 운현은 이리저리 살펴 본 후 입맛을 다셨다.

"나야 모르지. 그래도 이것 밖에 없었다면 이게 맞지 않을까?"

"아니라면 다시 잡아야 하는데?"

"기름 함정도 있으니 그걸로 어떻게든 버텨봐야지."

함정의 위치로 끌어들이는게 힘들지만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평등하게 한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기름 함정이 있으니 더 이상 홉고블린이 두렵지 않았다. 운현이 당당하게 말하자 미야는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진짜 무섭다니까..."

"오빠만 믿어. 오빠가 잘 할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운현은 빙긋 웃었다.

66====================

Quest

"아이고 힘들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던전에서 나온 운현은 다들 피곤해보이자 마석이 담긴 주머니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정산은 내가 할게. 다들 쉬어. 난 퀘스트 완료 보고도 해야하니까."

"혼자 괜찮겠어요?"

"응. 이정도야 뭐."

걱정하는 헤스티아의 볼을 꼬집어 준 운현은 피식 웃은 후 몸을 돌렸다. 그가 걸어가려 하자 바제트는 얼른 그의 뒤를 따르며 다급히 물었다.

"같이 갈까? 난 별로 안지쳤는데."

"됐으니까 좀 쉬어. 이따가 저녁에 잠깐 얘기 좀 하자."

"으음..."

그의 말에 바제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홉고블린을 잡는 동안 임시파티를 결성한 것이었고 그것을 계속 유지할지 말지는 파티 리더인 운현의 결정에 달렸다.

태평하고 마이페이스적인 모습을 보이는 그녀라 할지라도 긴장되는 것은 마찬가지인가보다.

그녀가 머뭇거리고 고개를 숙이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응?"

"앞으로 잘 부탁해."

"에?"

"괜찮지?"

운현은 미야와 헤스티아에게 시선을 돌리고 물었다. 그의 말에 미야는 떨떠름하게, 헤스티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뭐, 그정도 실력이라면... 그리고 쓰잘데기 없는 소리만 좀 자제하면..."

"전 괜찮아요. 만약 오늘 바제트씨가 없었더라면 운현씨가 죽었을지도 몰랐는데... 손 발도 잘 맞았으니까 전 동의할게요."

"들었지? 앞으로 쓸데없는 소리는 진짜 좀 자제해줘.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건 우리에게 중요한게 아니야. 중요한 것은 지금이지."

바제트와 함께 전투를 치뤄보니 그녀의 능력이 생각 이상으로 쓸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정도라면 다른 파티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될 정도다. 그녀의 마이페이스적인 성격만 좀 자제할 수 있다면 이만큼 좋은 파티원은 또 찾기 힘들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운현이 말하자 그를 물기젖은 눈으로 바라보던 바제트는 쓱쓱 눈물을 닦고 환하게 웃었다.

"응!"

내밀어진 운현의 손을 꽉 잡고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운현은 미야에게 10골드를 건네주었다.

"어쨌든 같은 새롭게 파티 동료가 들어왔는데 오늘은 여자들끼리 회포라도 풀어. 그 대신 남창같은덴 가지 말고. 그런데 가면 나 너네랑 안할거야."

"안가요! 그런데는!"

"음음. 나도 운현 외의 남자와 하고 싶지는 않아."

"에? 나도?"

운현의 말에 바제트는 능글맞은 얼굴로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운현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바제트는 그런 것에는 신경쓰지 않은 채 운현에게 다가와 그의 볼을 콕콕 찔렀다.

"에구. 질투하는거야? 벌써부터 독점하려고?"

"당연한 소리를. 난 내 파티원이 다른 남자랑 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파티를 깨고 말 사람이라고."

자기는 다른 여자랑 하는 주제에 독점욕을 마구 발휘하는 운현의 모습에도 헤스티아나 미야는 별반 기분나빠하지 않았다.

"어, 어어? 그럼 그게..."

"거기다가 당신은 처녀라면서. 나한테 인연을 느꼈다며? 그럼 어쩌겠어. 당신을 파티로 끌어들였으니 그 인연이라는게 성립되었을지도 모르지."

"그 말은... 나랑도 하겠다는... 얘기라고 생각해두 되나?"

"당연히."

"우웃. 헤. 헤헤헤..."

운현이 자신을 독점하고 싶다는 말에 바제트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헤죽 웃었다.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건지, 좋아하는지 모를 얼굴로 뻘쭘히 서 있자 운현은 미야에게 얼른 데리고 가라고 손짓했다.

"자자. 가자.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저번에 그 밀피유라는 가게가 괜찮아보이던데. 거기로 갈까요?"

"응!"

세 미녀들이 사이좋게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번 전투를 치루고 나니 같은 파티원이라는 입장에 서로를 신뢰하게 된 모양이다.

'문제는 나지.'

그만한 전투를 치루고 나서도 운현은 아직 저들을 믿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계인이고, 이 세계의 사람들과 다른 특수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밝히지 않은 것이었다.

"하... 이놈의 인간불신."

"그게 무슨 소리에요?"

"깜짝이야! 필레씨."

"인간 불신이라니... 운현씨. 사람들을 잘 못믿으시나봐요?"

운현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필레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운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에. 그게 말이죠."

"사람을 믿는다는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운현씨. 다른 사람이 당신을 믿어주는 만큼 당신도 다른 사람을 믿는게 어떨까요?"

부드러운 어조에도 운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헤스티아나 미야가 자신을 배신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머릿속으론 충분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운현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 꼴을 당했는데 내가 어떻게 믿어.'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전에는 운현도 사람을 믿었었다. 다만 그 믿음의 대가가 뒤통수로 날아왔을 뿐이지. 목숨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친구가 자기 이득때문에 자신을 배신했고, 그것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쓰린 운현이었다.

'으으. 생각하지 말자.'

생각만해도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운현은 붕붕 고개를 저은 후 필레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 그려진 무심한 표정을 본 필레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운현씨..."

자신의 말 한마디로 운현이 마음을 바꿀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필레는 쓴웃음을 지으며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운현의 손을 가리켰다.

"그건 오늘 전투의 결과인가요?"

"아. 네."

"후후. 정산해드릴게요. 주세요."

운현과 함께 사무소 앞으로 간 필레는 그가 준 마석들을 보다가 깜짝 놀랬다. 홉고블린의 사체가 들어가 있는 마석을 본 그녀는 무척이나 당황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 상처는... 뭐에요?"

"아. 그게 전투를 하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말씀해주시기 곤란한... 건가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흐음..."

운현을 가는 눈을 뜨고 바라보던 필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냥 넘어가주자 운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홉고블린의 손뼈는 저에게 주시겠어요? 퀘스트 보고용으로 써야하는데."

"아. 그래요? 마침 챙겨둔 것이 있으니까 그걸로 드릴게요. 괜찮죠?"

"물론이죠."

돈 주고 사와도 된다고 했으니만큼 직접 잡지 않은 것이라도 괜찮을 것이다. 운현은 필레가 건네 준 커다란 손뼈를 가방에 담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여기 정산금이요. 아쉽지만 홉고블린의 사체는 가격을 제대로 쳐드릴 수가 없네요."

"어쩔 수 없죠."

이미 예상한바였다. 별다른 불만 없이 운현은 그녀가 준 돈주머니를 받은 후 고개를 숙였다.

"늘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아. 운현씨."

운현이 가려고 하자 필레는 다급히 그를 잡고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저기. 연극... 좋아하세요?"

"연극요?"

연극이라고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예회때 잠깐 해본 것이 다이고 본 것도 그게 다인 운현으로서는 좋냐 싫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난감했다. 그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자 필레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런게 아니라. 제가 본적이 없어서."

"아하~ 그렇구나. 그럼 저기. 내일 연극 보러 같이 가실래요? 마침 좋은 표를 구했는데..."

"그러고보니 내일은 필레씨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었죠? 좋아요. 그 대신 식사는 제가 대접할게요."

운현이 빙긋 웃으며 답하자 필레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의 웃음을 멍하니 지켜보던 필레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자 근처에서 구경하던 길드원들은 또다시 아빠의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진짜 갈게요."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정산을 마친 운현이 자리를 뜨자 필레는 그가 나갈때까지 손을 붕붕 흔들었다.

"누구누구는 좋겠네~"

"내일 데이트도 하고~"

"난 내일 근문데~"

"배아프니까 따라가서 훼방 놓을까~?"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일들이나 해요!"

길드원들의 놀림에 필레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빽 소리쳤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길드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 어서와. 오늘은 혼자네?"

"네. 뭐."

여느때와 같이 거의 헐벗은 상태로 작업을 하고 있는 힐더크였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운현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여기 말씀하신거요. 이 광석이 맞나 모르겠네요."

"어디보자... 오. 이거 맞아."

운현이 준 주머니를 뒤져 본 힐더크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홉고블린의 투구와 커다란 손뼈. 그리고 광석을 받은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보지는 않았어. 자. 그럼 약속대로 강철 실을 팔아줄게. 이게 강철 실이야."

흰거미의 실타래와 같이 실타래에 감겨 있는 은색의 실을 보며 운현은 그것을 한줄 잡아 당겨보았다. 확실히 흰거미의 실타래보다 더 질기고 튼튼했다. 이것으로 함정을 만들면 꽤 좋은 함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걸로 기름 함정을 만들면 장난 아니겠군.'

흰거미의 실타래로 만든 기름 함정이 그정도의 위력이었으니 이걸로 만들면 얼마나 강할까. 운현이 그것을 생각하는 동안 갑옷을 가져 온 그녀는 운현에게 갑옷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광석을 찾아 온 것에 대한 답례."

"오우. 감사합니다."

척 봐도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갑옷보다 훨씬 좋아보이는 나이트호크 흉갑을 받은 운현은 그것을 가볍게 들어 본 후 빙긋 웃었다.

"지금 착용해볼래?"

"그래도 괜찮나요?"

"응. 물론이지."

그녀의 말에 운현은 초보자용 가죽 갑옷을 벗고 나이트호크 흉갑을 입어보았다. 초보자용 가죽 갑옷보다 조금 무겁기는 하지만 몸에 찰싹 달라붙은 탓인지 움직이는 것은 전보다 더 편한 것 같았다.

"여기에 단검을 고정시킬 수 있어. 만약 투척술을 쓴다면 투척무기를 여기에 걸어두면 될거야."

"오오."

가슴팍에 나 있는 네개의 고리를 열어주며 그녀는 갑옷의 이모저모를 설명했다. 가까히 다가온 탓인지 달콤한 땀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운현이 그것에 헤벌쭉 웃자 힐더크는 한참 설명하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볼을 꼬집었다.

"누나가 이렇게 잘 설명해주는데 딴 생각할거야?"

"아니 그게 눈 앞에 이런게 있으면 그 뭐시냐."

"후후후후. 귀여운 반응이네?"

"꿀꺽."

"어때? 그때는 못했지만 지금은...?"

대놓고 유혹하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히죽 웃었다.

"갑옷은 주시는거에요?"

"네가 날 만족시킨다면야."

두툼한 입술을 핥으며 그녀는 살며시 자신의 어깨에 걸려 있는 끈을 어깨 옆으로 밀었다.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두개의 가슴.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그 흉악한 가슴에 운현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꺄악!? 후후후후. 정말이지 건강한 꼬마네. 그럼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어?"

"네!? 왜요!?"

당장이라도 저 가슴에 얼굴을 파뭍고 싶었던 운현이 안달난 표정으로 묻자 힐더크는 깔깔 웃은 후 운현의 볼에 키스해주었다.

"가게 문은 닫아야지. 괜히 사람 들어와서 방해받기 싫거든.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건..."

"그럼 좀 기다리고 있어. 후후후..."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나가자 운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세계에 와서 저 정도의 폭유를 가진 미녀와 하게 되다니. 그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보며 말했다.

"너 진짜 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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