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40)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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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던전에 들어오자 운현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감탄하는 미야와 긴장한 듯한 헤스티아를 데리고 고블린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전, 합을 맞추기 위해 이제는 만만하기 그지 없는 딜미터기 사슴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고블린을 바로 잡는게 아니라?"

"바로 가긴 좀 그렇지. 연계를 하려면 연습을 해야 하니까."

운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풀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미야는 빙긋 웃으며 가죽 장갑으로 감싸진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고작 사슴이라니. 너무 날 얕보는 것 같군."

"고작 사슴한테 죽을뻔한게 나다. 너나 사슴 얕보지 마라."

"바깥에서 사슴따위..."

"헤스티아! 시작해!"

미야의 잘난척을 더 이상 듣지 않고 운현은 빠르게 외쳤다. 그의 말에 헤스티아는 주문을 외워 파이어 볼트로 멀리 있는 사슴 한마리를 공격했다.

파이어 볼트에 맞은 사슴이 불길에 감싸져 고통스러워하다가 자신들에게 달려오자 미야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사슴의 머리를 향해 정권을 날렸다.

"퍽!"

"꺄악! 뭐, 뭐야!"

자신의 주먹에 맞고도 쓰러지지 않은 사슴이 그저 뒤로 밀려난 후 몸을 들어 앞발로 공격하자 황급히 양 팔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았다.

"흠... 사슴의 돌진에도 잘 버틴다 이건가."

"윽! 사슴따위가!"

운현이 무덤덤히 고개를 끄덕이자 한참 사슴의 앞발 공격을 막아내던 미야는 사슴의 양 앞발을 콱 잡은 후 비어있는 복부에 발차기를 날렸다.

"끼히잉!"

이번 것은 타격이 있었는지 사슴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사슴을 향해 미야는 싸늘히 웃으며 달려가 주먹을 날렸다.

"꺼허엉!"

공중에 뛰어올라 내려찍는 주먹이 사슴의 머리에 꽂힌다. 그 강력한 한방에 사슴의 몸이 축 늘어지자 운현은 팔짱을 낀 후 말했다.

"어때?"

"사슴따위야..."

"바깥의 사슴과 비교해서 말야."

"으음..."

운현의 질문에 미야는 잠시 생각하다가 떨떠름히 말했다.

"한 세배? 네배 정도 강한 것 같은데..."

"좋아. 그럼 사슴은 됐고 다음은 늑대다."

"으음..."

만만하게 생각했지만 사슴이 이정도 강함이라면 늑대라고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늑대가 있는 평원으로 온 운현은 미야를 힐끔 보았다. 아까 사슴을 잡을 때 보았던 자신만만한 방심은 온데간데 없다. 주먹을 몇번 휘둘러보며 앞으로 있을 전투를 시뮬레이션 한 그녀는 준비가 됐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스티아!"

"에잇!"

"퍼어엉!"

헤스티아의 지팡이에서 쏘아져나간 파이어볼트가 늑대 한마리의 몸에 꽂혔다. 불길에 감싸진 늑대가 바닥을 굴러 불을 끄고 달려오자 미야는 늑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캬앙!"

사슴과 다르게 늑대는 달려오던 방향을 틀어 미야의 공격을 피해낸 후 점프해 미야를 공격했다. 자신을 덮치려는 늑대의 공격을 머리를 숙여 피해낸 후 다리를 들어 허공에서 돌려차 늑대를 걷어차버린 미야는 자신의 공격을 맞은 늑대가 바닥을 나뒹굴다 다시 자신에게 달려오자 씩 웃었다.

"흥!"

"퍽! 퍽!"

달려든 늑대의 공격을 양 팔의 암가드로 막아낸 그녀는 짧게 잽을 두번 날려 늑대를 공격했다. 그 공격을 모조리 맞은 늑대가 화가 난 듯 으르렁 거리자 미야는 단호히 외쳤다.

"지금이야!"

"좋아."

이정도면 상당히 괜찮다. 자신과 다르게 공격 몇방 맞아도 아파하지도 않는 것을 보니 방어력도 상당한 듯 했다. 운현은 단검을 역수로 잡은 후 빠르게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에게 전의를 품고 달려오는 운현의 모습에 늑대는 시선을 돌렸지만 미야의 잽이 콧등에 꽂히자 늑대는 화가 난 듯 털을 곤두세우며 으르렁거렸다.

"어딜 보시나!"

"촤악!"

"크르릉!"

"헤스티아! 바인딩!"

운현의 외침에 준비한 바인딩이 날아와 늑대의 몸을 감싼다. 그것에 미야가 놀라자 운현은 씩 웃으며 외쳤다.

"공격한다!"

"오, 오오!!"

"커허어어엉....!"

탱커가 있는데다가 딜이 추가로 들어가서인지 바인딩 효과가 끝나기 전에 늑대는 죽어버렸다. 축 늘어진 늑대를 보며 헤스티아는 기뻐하며 운현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함정도 안쓰고 잡았네요!"

"흐음..."

"운현? 왜 그러지?"

나름 만족한 헤스티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보았고 운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번에는 두마리 이상을 끌어와보자."

한마리 늑대를 잡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건 미야가 없을때도 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둘이서 잡던게 셋이 잡으면 빨리 잡히고 편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운현은 조금의 기뻐함도 없이 담담히 말했고 그것에 헤스티아는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했다.

"......."

"응? 왜?"

묘한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던 미야는 그가 자신을 보며 묻자 빙긋 웃었다.

"후훗. 난 재밌는 은인을 만난 것 같군. 좋아. 그럼 기합 넣고 해볼까!?"

"좋아. 그럼 가볼까?"

평원을 이동하며 늑대 두마리가 사슴 한마리를 뜯어먹는 것을 본 운현은 헤스티아에게 신호했다.

"어... 그런데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저 사슴시체에 날려. 사슴 스테이크 맛 좀 보여주자고."

"엑. 하지만... 끙... 알았어요."

한번에 둘이나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한 그녀였지만 앞에서 든든히 서 있는 미야와 운현을 믿고 파이어 볼트를 날렸다.

"화르륵!"

"크르르!"

"크릉!"

한참 잘 먹고 있던 사슴시체에 불이 붙자 깜짝 놀란 늑대들은 곧 머리를 돌려 헤스티아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들의 적의에 놀란 헤스티아가 지팡이를 겨누자 그녀의 앞을 미야와 운현이 가렸다.

"함정을 깔고..."

만약을 대비해 헤스티아의 앞에 함정을 깔아 둔 운현은 늑대들이 달려오자 미야에게 외쳤다.

"가라!"

"오옷!"

운현의 신호에 미야가 빠르게 달려갔다. 늑대들이 좌 우로 번갈아 뛰며 공격해들어오는 것을 본 미야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씩 웃고는 양 손을 펼쳤다.

"이중 파동권!"

"펑! 펑!"

"...저게 뭐야."

미야의 양 손에서 쏘아진 은은한 청색의 구가 늑대들의 몸에 맞자 늑대들의 돌진이 멈췄다. 한대 맞아버린 늑대들이 공격의 방향을 미야에게로 돌리자 운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격투가의 스킬은 아는게 없군. 좀 알아야 작전을 짤 수 있겠어.'

그냥 펀치와 킥 정도만 있을 줄 알았는데 원거리 공격기가 있을 줄이야.

생각보다 작전이 다양해 질 수 있을 것 같아 운현은 히죽 웃었다.

"하아압!"

두마리 늑대들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으며 늑대들을 공격하던 미야가 주춤주춤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기합성을 내며 계속 공격을 하여 늑대들의 어그로를 끌자 운현은 미야의 뒤에 함정을 설치한 후 외쳤다.

"미야! 빠져!"

"응!"

"화아아아악!"

운현의 신호에 미야는 뒤로 훌쩍 뛰어 물러났다. 공격을 하던 상대가 물러나자 늑대들은 미야를 쫓아 달렸고 그 순간 함정이 발동되어 늑대들을 묶었다.

"공격한다! 왼쪽의 늑대를 일점사! 헤스티아! 바인딩 준비해!"

함정이 늑대들을 잡고 있는 동안 최대한 딜을 넣어야 한다. 운현은 왼쪽의 늑대를 가리켰다. 그의 신호에 미야는 주먹에 힘을 넣고 늑대를 후려쳤고 운현 역시 그 늑대를 공격했다.

"커어엉! 커엉!"

운현 혼자서 공격해도 꽤나 딜이 들어갔는데 미야까지 합세하니 늑대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금세 피투성이가 되어 늑대가 쓰러졌을 때 함정의 지속시간이 풀렸다.

"크르르르르!"

아군이 당한 탓일까? 늑대는 더더욱 흉폭하게 으르렁거리며 미야와 운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헤스티아의 바인딩이 날아와 늑대를 묶었고 미야와 운현은 바인딩에 묶인 늑대에게 온 힘을 다해 공격해나갔다.

"하아압! 스매쉬!"

함정에 비해 바인딩이 묶는 지속시간은 짧았다. 아까 늑대를 잡을때보다 더욱 많은 딜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미야는 아까 전에 쓰지 않은 스킬까지 써가며 늑대를 공격했고 그들은 바인딩의 지속시간이 끝나기 전에 늑대를 잡을 수 있었다.

"헉...헉..."

"오오..."

처음으로 멀쩡한 늑대 사체를 구하게 되었다. 운현은 기뻐하며 헤스티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올렸다.

"바인딩 타이밍 오졌어!"

"네!? 아. 고마워요!"

운현의 칭찬에 잠시 당황한 헤스티아였지만 그녀는 방긋 웃으며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야. 잘 하던데? 그런데 그 스킬들은 뭐야?"

"후우... 힘들다. 응? 어떤거?"

"파동권이랑 스매쉬. 그거 외에도 스킬이 또 있어?"

"음... 도발이라는 스킬이 있어."

"가진 스킬은 그게 다?"

"응."

"하나씩 설명해줘."

"음... 그 전에 기라는 것을 먼저 얘기해야겠네. 기는 격투가들만이 가진 힘이야. 격투가의 스킬은 대부분 이 기를 사용해. "

"마나도 있고?"

"응. 마나도 있어. 그래서 마법이 걸린 장비를 쓸 수 있는거지. 그치만 격투가는 마나가 그렇게 많지 않아. 마법도구의 마법을 한두번 쓰면 다 써버릴 정도로 적어."

"그렇구만. 그럼 스킬에 대해서 설명해줘."

"스매쉬는 격투가 직업을 얻으면 바로 쓸 수 있는 기술이야. 온 힘을 다해서 공격하는 기술이지. 한번 쓰면 힘이 빠져서 30초동안 그걸 못써. 그리고 도발은 5레벨때 배우는 스킬이고 기파를 날리며 포효해서 적들의 주의를 끌어. 이것도 한번 쓰면 목 아파서 30초 정도 기다려야해. 세번째는 아까 본 파동권인데... 이건 10레벨때 배우는 스킬이고 몸 안의 기를 끌어모아 적에게 날리는 거지. 최대 세발까지 나눠서 쓸 수 있어. 기의 소모가 상당해서 이거 한번 쓰면 5분은 못써."

"흠. 파동권의 위력은?"

"스매쉬의 절반 정도? 그렇게 강하지 않아."

파동권은 그저 견제용 스킬이라는 건가. 운현은 미야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후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파동권으로 폴링하는 건 무리겠군.'

자신이나 헤스티아의 마나처럼 미야의 스킬 역시 기를 쓴다면 기를 함부로 날리는 파동권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어그로가 튄 적이 있다면 그들의 어그로를 돌리기 위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운현이 스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생각을 하는 동안 미야는 헤스티아에게 다가가 감탄하며 물었다.

"전투는 매번 이런 식이야?"

"예? 뭐가요?"

"운현이 지시를 내리고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거."

"음. 거의... 아니 지금까지 전투는 계속 그래왔는데요?"

헤스티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자 미야는 눈을 반짝이며 운현을 응시했다. 그것에 불안감을 느낀 헤스티아는 살짝 떨리는 어조로 물었다.

"저, 미야씨?"

"응? 왜?"

"미야씨는 왜 모험가가 되려는 거에요?"

"음. 뭐, 일차적인 이유는 강해지기 위해서지. 던전의 몬스터는 바깥의 몬스터보다 강하잖아. 거기에 코어가 나와 그것으로 레벨을 올릴 수도 있다고 하고. 그래서 모험가가 되려는거야."

"일차적인... 그럼 다른거는요?"

"그건..."

힐끔 운현을 본 미야는 빙긋 웃었다. 그녀의 웃음에 헤스티아는 더더욱 불안감을 느꼈다.

"이미 해결된 것 같은데..."

입술을 핥으며 요염한 얼굴이 된 그녀를 본 헤스티아는 계속 이 주제로 얘기하는 것이 하등 좋을 일이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붕붕 고개를 저은 후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미야씨. 굉장히 강하던데요? 격투가들은 다들 이정도로 잘 싸우나요? 미야씨가 끼고 나서 전투가 굉장히 빨리 끝난 것 같아요."

"음. 그렇지는 않아. 물론 내가 수인족이라서 다른 종족들보다 조금 더 힘과 민첩성이 높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이렇게 전투가 쉬웠던 거는..."

미야는 운현에게 시선을 보냈다. 무언가 원하는 듯한 강렬한 시선에 헤스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운현의 지시 덕분이겠지."

"헤, 헤에에..."

"바깥에서도 전투를 할 때 지휘를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해. 하지만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이렇게 정확하고 깔끔하게 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미야의 시선이 점점 끈적해진다. 헤스티아는 울상이 되어 운현을 째릿 노려보았다.

"좋아. 한번 더 해보자....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생각을 마친 운현은 헤스티아와 미야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질문에 헤스티아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바라보고 미야는 그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답할 뿐 이었다.

"쓸데없는 짓들 하지 말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그럼 이번엔 세마리다. 얘들도 잡을 수 있다면 고블린에 도전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어쨌든 안전이 최고다. 괜히 까불다가 요단강 구경 가느니 여기서 안전하게 파티원간의 연계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 생각한 운현은 미묘한 분위기를 단번에 깨버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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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아아. 응.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처음은 내가 우선이야. 내가 세마리를 끌고오면 미야는 도발을 써서 그 세마리의 어그로를 끌어줘. 그리고 나서 헤스티아는 파이어 볼트를 준비하고."

"그리고?"

"나머지는 상황을 보면서 유동적으로 변경해야지. 자. 이거 받아."

운현은 가방에서 기름통 다섯개를 꺼내었다. 그것을 받은 미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뭐야?"

"신호하면 내가 던지는 곳에 던져."

"알았어."

작전의 시작은 맞췄다. 이제는 시험해보는 일만 남았다. 운현은 터덜터덜 주변을 돌다가 늑대가 세마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얍!"

송곳을 들어 세마리 늑대 중 한마리 늑대에게 던진 운현은 늑대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송곳을 들어 한번 더 던졌다. 그것으로 어그로를 조금 끌은 운현은 늑대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자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크르르... 크아앙!"

늑대들이 달려오기 시작한다. 운현은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미야에게 외쳤다.

"미야! 지금!"

"와라! 개새끼들아!!! 너희들의 적은 나다!!!!"

미야가 포효하며 달려오자 그 포효에 늑대들은 깜짝 놀라며 미야에게 시선을 보냈다. 세마리의 어그로가 끌리자 운현은 뒤쪽에 함정을 설치한 후 기름통 두개를 던져 함정에 기름을 잔뜩 먹였다.

"좋아... 그럼."

세마리 늑대와 싸우며 어그로를 확실히 잡고 있는 미야를 본 운현은 미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전투에 합류했다.

자신에게 어그로가 끌리지 않게 최대한 조심하며 늑대를 공격하던 운현은 늑대의 발톱이 미야의 팔을 스치고 지나가자 미야의 뒤에 함정을 설치하고 외쳤다.

"미야! 도발 한번 하고 빠져!"

"건방진 개새끼들!! 하아아압!"

자신을 물려고 뛰어든 늑대의 턱에 주먹을 날린 미야는 다시 한번 크게 포효해 어그로를 모으고 뒤로 훌쩍 뛰었다. 함정을 넘어 뒤로 빠진 미야를 향해 늑대들은 달려나갔고 그들은 곧 운현이 설치한 함정에 걸려버렸다.

"솨아악!"

"스매쉬 쳐! 가장 왼쪽!"

"이야아아압!"

"캬아아아앙!"

주먹에 힘을 잔뜩 모은 미야는 실로 묶여 있는 늑대의 옆구리에 주먹을 날렸다. 그것에 맞은 늑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내자 운현은 가장 우측의 늑대를 공격했다.

"촤악! 촤악!"

"커엉! 커엉!"

"미야! 기름통을 바닥에 던져!"

운현의 외침을 받은 미야는 준비된 기름통을 바닥에 던졌다. 기름통이 깨지며 안의 기름이 함정의 바닥을 흠뻑 적시자 운현 역시 기름통을 던져 바닥을 적시고 헤스티아에게 외쳤다.

"쏴!"

"파이어 볼트!!"

"화르르르륵!"

헤스티아는 준비하고 있던 파이어볼트를 늑대들이 아닌 기름을 잔뜩 먹은 함정을 향해 발사했다. 화염이 꽂힌 함정이 불타오르며 늑대들을 감싸자 운현은 날카롭게 외쳤다.

"미야! 도발!"

"고작 이정도냐!!"

기름을 직접 맞지 않아 함정이 타오르는 불길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듯 보이는 늑대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미야를 공격했다. 그 공격을 막으며 시간을 벌던 그녀는 운현이 합세하자 다급히 물었다.

"다음은?"

"스매쉬! 한놈 떨구고 시작한다!"

"하압!"

운현이 한마리 늑대를 계속 공격해 어그로를 뺏어오자 한결 여유를 가진 그녀는 달려드는 늑대를 발로 차고 힘을 모아 아까 전 스매쉬를 맞은 늑대를 공격했다. 두번째 스매쉬를 맞은데다가 불길에 피해를 입은 늑대가 큰 신음성을 토하며 뒤로 나가 떨어지자 운현은 자신에게 붙어 있는 늑대를 걷어차 밀어내고 헤스티아에게 외쳤다.

"바인딩!"

"얍!"

가장 피해를 덜 입은 늑대의 몸이 딱딱히 굳었다. 그 틈을 노린 운현은 미야의 스매쉬를 두방 맞은 늑대에게 달려갔다.

"쟤 좀 막고 있어!"

"응!"

운현과 상대하던 늑대에게 뛰어오른 미야는 그 늑대를 걷어찬 후 히죽 웃었다. 아직은 운현에게 어그로가 남아 있는 늑대였지만 미야는 빠르게 늑대를 공격해 그 어그로를 뺏어왔다.

"어딜봐! 네 상대는 나라고!"

'잘 풀리는군. 그럼 다음은.'

바인딩이 풀리기 전에 저 늑대를 잡아야 한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하는 늑대에게 다가간 늑대의 목에 단검을 몇번이나 쑤셔밖아 끝을 낸 후 외쳤다.

"미야! 도발!"

"덤벼! 덤비라고!"

바인딩이 풀린 늑대는 헤스티아에게 돌격하려다 미야의 도발에 맞고 미야에게로 이빨을 들이밀었다.

"빠져!"

두마리 늑대를 상대하던 미야가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기름을 잔뜩 먹여 놓은 함정까지 이동해 늑대들을 함정에 걸리게 한 미야는 운현을 보았다.

"헤스티아!"

"파이어 볼트!"

기름을 머금은 함정이 튀어오르며 늑대들을 묶자 운현은 헤스티아에게 외쳤다.

그와 전투를 하며 대충 상황을 예측한 그녀는 준비하고 있던 파이어볼트를 날렸고 그녀의 지팡이에서 날아간 불꽃의 화살은 단번에 함정을 불태워버렸다.

"화르르르륵!"

"커어엉!"

"커엉!"

함정에 걸린 후 기름을 뿌렸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센 화염에 놀란 미야가 뒤로 주춤 물러나자 어느새 그 불길 옆으로 온 운현은 미야에게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미야! 기름통!"

"으, 으응!"

불길에 놀란 미야는 허둥지둥 기름통을 들어 불길 속으로 던졌다. 그것으로 불길이 더욱 거세어지자 운현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기름통을 만지작거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끝났군."

불길이 천천히 가라앉으며 다 타버린 늑대들의 시체가 모습을 보였다.

노릇노릇 잘 익은 늑대를 보며 운현은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미야에게 물었다.

"미야. 기는 얼마나 남았어?"

"이제 도발 세번 쓸 정도야..."

"그래?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하겠군."

고블린은 늑대보다 훨씬 강하다. 그렇다면 이 이후에도 전투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헤스티아를 보았다.

"저는 파이어볼트 다섯번 정도요."

"흐음... 안정적이긴 하지만 소비가 크네. 뭐,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겠지."

딜을 더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지금이야 기본 작전의 구성에 불과하니 딜이 덜 들어간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후, 후아아... 이렇게 전투해 본건 처음이야."

진이 빠졌는지 미야는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땀 범벅이 된 그녀에게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어 건네 준 운현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다른 파티는 어떻게 하는데?"

"음... 탱커가 달려가서 도발로 확실히 어그로를 끌고, 딜러진이 공격하고, 어그로가 풀리면 탱커가 다시 도발로 어그로를 끌고... 그런 방식을 쓰지. 이런 식으로는 안해."

"그걸로 가능해?"

"이렇게 빨리 전투를 끝내지는 못해. 그리고 전투가 끝난 후에 부상도 꽤 심하고. 힐러들이 고생하는 방법이지."

자신들의 레벨에 적정 몬스터는 고블린이니 늑대를 상대해서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전투를 끝낼 수 있을 줄은 몰랐던 미야는 감탄하며 운현에게 물었다.

"혹시 전직이 뭐야?"

"어.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평범한 사람 치고 지휘가 굉장히 능숙한데..."

미야가 감탄하며 묻자 헤스티아도 그 의견에 동의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저번에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었죠? 그렇지만 운현의 지시는 무척 깔끔하고 정확해요. 정말 뭐에요?"

"흠. 내가 뭐였단게 중요한가? 지금이 중요한거지."

"그, 그렇긴 하지만..."

'사실 공대장이었지...'

온라인 게임의 공대장 경험이 있으니 지휘에 익숙한 것일 뿐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다.

'걔들 상대하느니 얘들 데리고 하는게 더 편하다.'

공대, 그것도 막공을 운영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운현은 이를 갈았다. 세상은 넓고 트롤은 많다라는 말이 절실히 공감이 되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운현은 붕붕 고개를 저었다.

"그럼 좀 쉬자. 헤스티아. 괜찮아?"

"예? 아. 네. 아직은요..."

"미야는?"

"후후. 나도 괜찮다."

운현이 흥분 상태를 물어보는 것임을 눈치챈 헤스티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고 미야는 느긋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 좀 쉬었다가 회복 하고 가자. 미야. 상처를 치료해야지. 이리 와."

"응? 이정도 상처는 상처도 아냐. 그냥 침바르면 나으니까 걱정하지마."

"말도 안되는 소리. 그 예쁜 몸에 흉지면 아깝잖아."

매끈매끈하고 탄력적인 갈색의 피부를 가리키며 운현이 말하자 미야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왜?"

"후후. 아니야. 이런 이야기는 또 처음듣는군. 예쁜 몸이라.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싱글벙글 웃으며 미야는 하얀 꼬리를 살랑거리고 운현의 옆에 앉았다. 그것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헤스티아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작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럼 치료해줘."

양 팔을 쓱 내밀자 운현은 가방에서 힐링포션을 꺼내었다. 붉은색의 작은 병의 뚜껑을 연 그는 자신의 손에 힐링포션을 부었다.

"주르륵..."

미끌거리는 힐링포션을 손에 잔뜩 뭍힌 운현은 헤스티아의 상처에도 발라준 후 꼼꼼히 그녀의 상처부위를 문질렀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상처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간다.

"으음... 기분 좋네."

운현의 손길을 즐기듯 미야는 눈을 감고 작게 숨결을 내뿜었다. 목소리에 담겨 있는 요염함에 운현은 피식 웃었다.

"좋냐? 응? 좋아?"

"후후후... 굉장히 기분 좋군. 전투 후에는 항상 직접 바르거나 힐링으로 끝냈었는데 말야. 아, 여기도 해줄 수 있을까?"

"어렵지 않지."

목에 살짝 긁혀 있는 상처를 손으로 매만져 준 운현은 목의 상처도 사라지자 남은 힐링포션을 미야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은 미야는 아쉽다는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그것을 단번에 들이마셨다.

"그럼 상처치료는 됐고. 헤스티아는 어디 다친데 없어?"

"네... 아쉽게도."

"아쉽긴 뭐가 아쉬워."

헤스티아가 토해내듯 중얼거리자 운현은 피식 웃으며 말해준 후 수건으로 손을 닦고 가방에서 빵을 꺼내 셋으로 나눠 각자에게 주었다.

"그런데 헤스티아."

"냠냠... 꿀꺽. 예? 왜요?"

운현이 준 빵을 오물거리며 먹던 그녀는 그의 부름에 고개를 입에 남은 빵을 삼키고 얼른 대답했다.

"궁금한게 있는데 말야..."

"뭐요? 뭐든 대답해드릴게요."

"마법에 대해서 좀 알고 싶어."

"에에..."

운현의 질문에 조금 실망한 듯 보였지만 그녀는 곧 표정을 바꾸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것 부터 말해드릴까요?"

"음... 일단 속성에 대해서 가르쳐줘. 저번에 에릴이 그랬잖아. 화염 마법이 어쩌고 저쩌고."

"아아... 그거요."

그때의 일을 떠올리니 속이 쓰린 모양이다.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나뭇가지를 주워 바닥에 무언가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됐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자 운현과 미야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닥을 보았다.

흙바닥에는 커다란 별이 있었고 각 끝에는 불, 물, 바람, 흙, 그리고 빛이 적혀 있었다.

"마법의 기본은 이 판타그램을 기준으로 해요. 모든 마법사들은 빛의 속성을 중심으로 다른 속성을 익히게 되죠."

"헤에... 그럼 이 그림으로 보면 흙이 물을 가두고, 물이 불을 끄고, 불이 바람을 태우고, 바람이 흙을 깎는건가?"

"네. 미야씨. 각 원소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엮여 있어요. 어떤 속성이 우월하다. 라는 말은 못하는거죠."

"흐음... 그렇군. 그런데 화염마법이 왜 특별한거지? 저번에 말할때 화염 마법사가 특별하다고 했었잖아."

운현이 궁금해하며 묻자 헤스티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불이 빛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에요. 물이나 바람, 흙에서는 빛이 태어나지 못하지만 불만은 빛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화염 마법사는 다른 속성의 마법사들에 그 적성에 맞는 수가 적어요."

헤스티아의 답을 들은 미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빛 마법은 뭐야?"

"빛 마법은... 아까 보셨던 것 있잖아요. 바인드. 바인드 외에도 여러가지 마법이 있어요. 예를 들자면 강력한 빛으로 상대의 시야를 가려버리는 블라인드라거나..."

"공격마법은 없어?"

"네. 빛 계열의 마법에는 공격마법이 없어요. 그 대신 소환마법이나 플라이처럼 하늘을 나는, 그런 보조형의 마법이 대부분이죠."

"호오... 그거 참 신기하군. 그럼 회복마법은?"

"마법사가 쓸 수 있는 회복마법은 없어요. 회복을 위해서는 성직자의 신성력이 필요하죠."

34====================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신성력이라... 마법사는 신성력을 못가져? 내가 알기로 모험가들 중에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내가 설명해줄게.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 신성력이 있는 건 아니야. 회복술을 쓸 수 있는 사제나 드루이드가 되려면 그 신앙을 인정받고 자신의 신앙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뤄야해.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신성력을 쓸 수 없어."

"호오. 드루이드? 그럼 힐러는 어떤 직종이 있지?"

"대표적으로는 사제와 드루이드죠. 그리고 예외적으로 성기사와 주술사가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어? 성기사는 탱커 아니야?"

"성기사는 탱커가 될 수도 있고 딜러가 될 수도 있고 힐러가 될 수도 있어요."

"헤에... 그럼 성기사가 제일 좋은 직종인가?"

운현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가 하던 게임에서는 성기사가 성바퀴라 불리며 극강의 생존력을 보였었다. 그것을 생각하며 그가 말하자 헤스티아는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그렇지만도 않아요. 힐링, 탱킹, 딜링. 이 세가지가 가능하지만 스킬을 배우는 레벨은 다른 직종과 같으니까요. 어떻게보면 가장 어중간한 직업이라고 볼 수 있겠죠."

"흐음... 그래도 여러가지 기술이 있으면 전술을 짜기 좋은데. 아무튼 그건 그렇다고 치자고. 슬슬 움직일까?"

남은 빵을 한번에 입에 넣고 물을 들이마신 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헤스티아와 미야도 일어났다.

"자 그럼 늑대들부터 챙길까?"

운현이 마석을 꺼내자 미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재료채취 안해?"

"재료채취? 그게 뭐야?"

운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야는 피식 웃었다.

"기껏 늑대를 잡았는데 발톱이랑 이빨은 빼는게 낫지 않아? 듣자하니 던전내 몬스터들의 사체는 좋은 재료라면서. 괜찮으면 기념으로 우리가 몇개씩만 가지자고."

미야의 말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겠지만 난 재료 채취할 줄 모르는데. 헤스티아도 그렇고."

"그거 내가 할 줄 알아. 단검 좀 빌려줄래?"

"오, 오오."

미야에게 단검을 넘겨 준 운현은 미야가 늑대의 사체에게 가 발톱과 이빨을 빼내는 것을 보았다. 단검으로 손쉽게 그것들을 빼낸 미야는 물로 깨끗하게 씻은 후 운현에게 내밀었다.

"역시 던전 밖의 늑대발톱보다 훨씬 좋네. 운현도 그렇고 헤스티아도 그렇고 이런걸 할 줄 모른다면 가능한건 내가 하도록 할게."

"오! 그거야 좋지."

"고마워요!"

재료 채취를 할 수 없어서 사체를 그대로 모험가 길드에 넘겨 수수료를 날려먹었던 운현과 헤스티아는 미야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아껴야 할 때다. 이렇게 돈을 아끼게 된 운현은 미야가 건넨 늑대발톱을 만지작거렸다.

[신규 스킬 : 재료합성을 익혔습니다.]

"어. 잠깐만..."

늑대 발톱을 만지작거리자 운현은 눈 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보고 주춤거렸다.

"응? 왜요?"

"아니."

이걸 밝혀도 괜찮은 것일까? 하이딩과 한손검 숙련, 체술처럼 자신에게만 있는 스킬이 아닐까? 운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건 역시 숨기는게 낫겠군.'

아직 미야는 물론이거니와 헤스티아를 완전히 믿지 않는 운현은 자신의 능력을 숨긴 후 차분히 스킬창을 열어보았다. 운현이 스킬창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스티아나 미야는 그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 이었다.

'역시 보이지 않는군. 그럼 편하게 해볼까...'

[스킬 : 재료합성 Lv 1 / 10 - 도적스킬 함정 설치 보유, 지력 30 이상시 획득 가능.

세종류 이상의 재료를 합성하여 새로운 재료를 만든다. 만들어진 재료는 소재에 따라 등급이 결정된다.

특수효과 : 지력 100 이상시 보너스 효과를 가진 재료 획득 ]

마음 푹 놓고 스킬창의 설명을 읽은 운현은 입을 다문 채 생각했다.

'재료합성이라... 그나저나 지력 100 이상시 보너스 효과라니. 현자의 시간이 발동되면 한번 해봐야 하나.'

흰거미의 실타레 만으로도 상당히 좋은 함정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운현은 자기가 직접 함정의 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며 손에 쥔 늑대의 발톱을 꽉 쥐었다.

'그래도 일단 한번 해보자.'

운현은 가방에서 흰거미의 거미줄을 꺼내고 늑대 발톱과 늑대 이빨을 손에 들었다.

'재료 합성.'

"......"

아무런 임팩트도 없었다. 그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재료들이 사라지고 한장의 카드가 나왔을 뿐.

실패했나 싶어 운현은 인상을 찌푸리고 카드를 들어보았다.

"가시 줄?"

카드에는 수십 줄의 실과 실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시들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가시 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멍하니 들고 있던 운현은 재료채집이 끝난 미야가 다가오자 황급히 주머니에 넣었다.

"뭐해?"

"아무것도 아냐. 이제 슬슬 가볼까?"

평원에서 이동해 전에 고블린과 전투를 했던 곳까지 온 운현은 목책을 쌓아 거점을 만든 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고블린을 상대해보자고. 내가 끌어올테니까..."

하이딩을 이용해서 주변을 돌아 상대할만한 고블린을 찾으려고 한 운현이

"그런데 운현."

"응? 왜?"

"너는 도적 아니야?"

"맞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전투에 참여해?"

"응? 그게 무슨소리야?"

미야가 궁금해하며 묻자 운현은 오히려 궁금하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의 질문에 당황한 미야는 헤스티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음... 그러니까. 내가 저번에 참여했던 파티에는 도적 클래스의 묘족이 있었어. 그 묘족이 하는 일은 함정의 설치정도였지 너처럼 이렇게 전투에 직접 참여하거나 지휘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뭐가 맞는거야?"

"그, 글쎄? 나도 도적이랑 같이 파티를 해본 적이 없으니..."

파티로 전투를 하는건 헤스티아가 다다. 운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헤스티아를 보았다.

"저도 도적과 전투를 하는 건 운현씨가 처음이라... 많이 이상한가요?"

"응. 이상해. 도적의 주 업무는 함정의 설치와 함정의 제거, 그리고 보물상자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여는 것이 전부야. 가끔씩 스틸까지 이용해서 적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적들의 무기, 장비를 빼앗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너처럼 이렇게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도적은 없다고. 그것도 남자가."

"...어. 음."

미야의 질문에 운현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전투에 참여한 이유는 간단했다.

단검으로 충분히 딜링이 되는데다가 함정으로 적을 공격하고 무력화시키려면 전투의 흐름을 읽어야 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마라는 미야의 말에 운현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럼 내가 원래 해야 할 일은... 이 아니라. 도적은 일반적으로 파티에서 전투중에 그냥 논단 말이야?"

"논다... 뭐 그 말이 맞겠네."

"그정도만 해도 괜찮아?"

운현이 궁금해하자 미야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기 운현. 운현이 직접 쓰니 더 잘 알것 아냐. 함정 설치가 얼마나 사기적인 스킬인지 말야. 재료만 있다면 어디든지 설치가 가능하다고. 어떤 직업군이라도 도적처럼 빠르고 정확하고, 쉽게 적들을 묶어둘 수 없어."

"그렇기야 하겠다만..."

"탱커의 입장에서, 그리고 딜러의 입장에서, 거기에 힐러의 입장에서 봐도 적들을 구속할 수 있는 함정은 모두에게 필요한거라고. 그리고 함정을 발견해서 그걸 무력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전멸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거야."

미야의 말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니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럼 도적이 없는 파티는 어떻게 던전 탐험을 해? 함정의 발견과 해제는 도적만 할 수 있는 것 아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발견 자체는 격투가의 스킬 중에 탐지라는 스킬을 이용하면 주변의 위험을 파악할 수 있어. 다른 딜러중에도 비슷한 스킬을 가진 직업군이 있고. 적이 없는데 위험이 감지된다면 그게 바로 함정이지."

"호오... 그럼 해제는?"

"해제는 뭐. 물건을 던지거나 마법을 쏘거나 하는걸로 강제 발동시켜서 해제시켜. 하지만 그걸로 완벽하게 해제를 할 수는 없으니까 어느정도 위험은 안고가는 셈이지. 하지만 도적은 달라. 도적은 완벽하게 함정을 감지할 수 있고 완벽하게 함정을 해제할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어떤 파티든, 클랜이든 도적을 보유하려고 안달을 내는거야."

미야의 설명을 들으며 운현은 감탄했다.

'세상에. 이정도러 귀족클래스였다니. 흑흑 살아 있어서 욧가타.'

언제나 집에서 잉여취급만 받던 자신이 어쩌다가 이런 귀족이 된 것인가. 운현은 속으로 기쁨의 환호를 외치면서도 애써 표정관리를 해 무심한 얼굴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놀면 전투가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잖아."

'갑질은 적당히. 아무리 울트라 갑이 되었다 하더라도 태도를 금방 바꾸면 곤란하지.'

"그건 그래. 운현. 너는 다른 도적들과 다르게 몸을 사리지 않고 있어. 당신. 정말 이상해."

"충분히 몸 사리는건데? 그리고, 그게 나빠?"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운현은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뒤에 빠져서 손가락만 빨고 놀고 먹어도 그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전투가 길어지고 그만큼 전투의 시간이 길어져 레벨업이 느려진다.

자신의 몸을 지키고 나아가 편하게 먹고 살려면 레벨업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운현은 자신이 세운 방침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다.

마치 자신을 탓하는 듯한 미야의 말에 운현은 퉁명스레 말했고 그 말에 미야는 당황한 듯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 그런 말이 아니라고! 물론 좋아!"

"그럼 됐네. 나중에 파티가 좀 강해지고 딜러나 탱커가 추가된다면 네 말대로 뒤에서 놀고먹겠지만 지금은 당장 사람이 없으니 움직여야 할 거 아냐.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내 손이라도 빌려줄까?"

운현의 말에 미야는 장난스레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런 그녀를 한심하게 바라 본 운현은 미야가 발끈하려 하자 손을 들어 말했다.

"됐고. 네 의견은 긍정적으로 검토해서 나중에 열심히 놀고 먹어줄테니 지금은 그냥 내 뜻대로 움직이자고."

"으... 나쁘다는게 아니라니까! 오, 오히려 좋다고나 할까."

"방해는 아닌가?"

직업군으로 따지면 도적은 딜러가 아니다. 그렇기에 전위에 나서 전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딜로스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다른 파티가 어떻게 싸우는지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운현으로서는 그것이 걱정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기우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미야는 붕붕 고개를 저은 후 하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네 딜링 능력은 대단해. 너와 같은 동레벨의 딜러와 비교해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그리고 네가 만든 함정을 이용하니까 전투가 무척 쉬웠어. 만약 힐러가 없는 다른 파티였다면 아까 같은 전투를 하면 탱커나 딜러 중 하나가 크게 다쳤을지도 몰라."

"그런가."

미야의 칭찬에 볼을 긁적거린 운현은 휙 몸을 돌렸다.

"어머? 운현씨. 부끄러워하는거에요?"

"부끄럽긴 누가."

"에헤헤~ 귀엽네요~"

운현이 얼굴을 가리자 헤스티아는 싱글싱글 웃으며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훈훈해진 분위기에 운현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외쳤다.

"됐고! 고블린 데리고 올테니까 준비들이나 하고 있어!"

"응! 조심해야해!"

"몸 조심하세요~!"

헤스티아와 미야에게서 떨어진 운현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과연 이것으로도 함정이 만들어질까? 조용히 돌아다니던 그는 근처에 있는 토끼를 발견하고 히죽 웃었다.

"역시 테스트가 짱이지... 함정설치."

카드를 손에 들고 함정설치를 발동시킨 운현은 기존 함정 설치때와 비슷한 효과가 발휘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거 없나..."

괜히 재료만 날린건가? 운현은 사라진 카드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에잉."

단검을 꺼내 토끼를 공격한 후 빈틈을 노려 토끼를 함정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촤아아악!"

"끼이이이익!"

"뭐, 뭐야."

흰거미의 실타레만으로 만든 함정때와 비슷하게 함정에서는 흰 줄이 쏟아져나와 토끼를 감쌌다. 하지만 그 실은 기존의 함정에서 나온 실과는 달랐다.

"끼익! 끼이익!"

토끼를 포박한 함정에는 아까 카드에 있던 그림처럼 뾰족한 가시들이 가득 달려 있었다. 그 가시에 몸이 찔린 토끼가 피투성이가 된 것에 운현이 침을 꿀꺽 삼켰을 때 함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토끼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가시 실이 점점 강하게 토끼를 압박했다. 그것이 고통스러웠는지 토끼는 고통의 비명을 계속해서 내질렀다. 점점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토끼를 보며 운현은 당황했다.

'이거 뭐야. 무서워.'

이런 함정이 있단 말인가? 운현은 함정의 지속시간이 끝나 실이 풀리자 축 늘어진 토끼를 보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지속 데미지 함정인가? 이거 짱인데...'

토끼 한마리를 죽일 정도라면 데미지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운현은 싸늘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괜찮군. 새로운 조합을 짜볼 수 있겠어."

운현은 기름통과 늑대 이빨, 흰거미의 실타레로 다시 한번 재료 합성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운현의 손에 있는 재료들은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재료 합성에 실패했습니다.]

'레벨이 낮아서 그런가? 그럼 지력이 낮아서? 레벨업하면 한번 찍어보고...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면 해봐야겠군.'

도적의 스킬과 다르게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는 것으로 강화시킬 수 있으니 레벨업을 한다면 투자를 해볼만 했다.

"일단 있는 재료는 다 만들자."

그냥 함정보다 확실히 좋은 함정인 만큼 재료가 허락하는 만큼 가시 줄 함정을 만들어낸 운현은 일곱장의 가시 줄 함정 카드를 만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탐색을 해볼까..."

"키르륵..."

운현이 몸을 일으켜 움직이려 할 때 그는 숏소드와 버클러, 가죽갑옷으로 무장한 고블린 셋을 발견했다. 아직 자신을 눈치채지 못한 그들이 토끼 한마리를 나눠 먹는 것을 보며 운현은 하이딩을 걸고 손을 내밀었다.

'스틸!'

"캬륵!? 캬아아아!"

토끼를 먹으려던 고블린 중 하나가 자신의 손에서 토끼고기가 사라지자 황당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캬륵! 캬륵! 캬아아라!"

"헉!"

이번에는 한번에 걸렸다. 운현은 하이딩이 풀리자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하이딩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봐야겠군.'

생각은 나중이다. 운현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풀을 빠져나온 그는 거점 근처에 쪼그려 앉아 헤스티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미야에게 외쳤다.

"미야! 온다!"

35====================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오! 알았어!"

운현이 달려오며 외치자 미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달려갔다. 자리를 바꿔 수풀에서 튀어나온 고블린 셋을 본 그녀는 도발을 시전하여 그들이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함정 설치!"

미야의 뒤로 가시 줄 함정을 설치한 후 운현은 고블린에게 밀리고 있는 미야에게 신호했다. 그의 외침에 따라 고블린에게 발차기를 먹인 그녀는 훌쩍 뛰어 운현의 옆으로 왔다.

"캬아아아!"

"촤아아악!"

"캬륵!? 캬아아아아아!!"

"캭! 캭캭캭!"

"캬우아악!"

"...운현. 저거 뭐야?"

"신규 스킬이지."

아까와는 다른 함정의 모습에 미야는 떨떠름히 물었다. 그 질문에 웃으며 답해 준 운현은 단검을 뽑아 잡은 후 말했다.

"미야. 쟤들 함정 풀리면 도발하고 한놈을 공격해. 헤스티아. 미야가 공격하는 놈 외의 녀석에게 바인딩을 걸어. 나머지는 일단 내가 맡는다."

"응!"

"네!"

미야와 헤스티아에게 다음 일을 말해준 운현은 가시줄 함정이 풀리고 피투성이가 된 고블린들이 이글거리는 분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마주하며 히죽 웃었다.

"어딜보냐!!"

빠르게 운현을 가린 미야가 포효하자 고블린들은 움찔하며 미야에게 숏소드를 겨눴다. 그들이 다시 달려오자 미야는 크게 웃으며 그들을 상대했고 운현은 미야의 뒤로 달려가며 외쳤다.

"지금!"

"바인딩!"

헤스티아에게 바인딩이 걸린 고블린 하나가 딱딱히 굳었다. 그것에 고블린들이 당황하자 미야는 주먹에 힘을 넣었다.

"으라차!"

"스틸!"

미야가 스매쉬를 먹이려 하자 운현은 그 대상이 된 고블린에게 스틸을 시도했다.

"뻐어어억!"

고블린의 투구가 사라지며 운현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본 미야는 씩 웃으며 고블린의 머리에 스매쉬를 날렸고 그것에 제대로 맞은 고블린은 한방에 쭉 허공을 날아 나가 떨어졌다.

"캬르륵!"

"파이어 볼트!"

운현이 스틸을 거느라 생긴 빈틈을 노리고 그를 노린 고블린이 숏소드를 들고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미 주문을 다 외운 헤스티아는 파이어 볼트를 쏘아 그를 막았고 공중에 떠 있는 고블린에게 운현은 다시 한번 스틸을 걸었다.

"꽝인가!"

손에 쥐어진 돌멩이를 바닥에 버린 후 운현은 단검을 휘둘렀다. 그 공격을 공중에서 버클러로 막은 고블린은 뒤로 물러나며 숏소드를 들고 경계했다.

"운현!"

"도발 한번 더!"

"너희들의 상대는 나다!"

"캬아아! 캬륵!"

"캭캭!"

스매쉬에 제대로 맞은 고블린이 꿈틀거리는 동안 남은 두마리 고블린은 한데 뭉쳐 미야에게 달려들었다. 두마리 고블린이 움직이는 동안 운현은 쓰러진 고블린에게 다가가 그 목에 단검을 쑤셔밖았다.

"캬악! 캬아악!"

"큭...!"

운현이 고블린을 끝장내는 동안 미야는 두마리 고블린을 상대하며 이를 갈았다. 역시나 바깥의 고블린과는 힘부터가 달랐다.

뛰어오른 고블린이 휘두른 버클러를 암가드로 막아내며 뒤로 주춤 밀려난 미야가 빈틈을 보이자 뒤에 있던 고블린이 낮게 달려와 미야의 복부를 향해 숏소드를 휘둘렀다.

"스틸!"

"캬륵!?"

"서, 성공했나."

운현은 자신의 왼손에 들려 있는 숏소드를 보며 씩 웃었다. 그에게 무기를 빼앗겨버린 고블린이 그냥 허공만 쳐버린 것에 당황하는 동안 자세를 갖춘 미야는 씩 웃었다.

"고마워! 운현!! 아아!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반할 것 같잖아!"

"에엣!? 미야씨!?"

"반하는건 나중! 저놈들을 끝장낸다! 미야! 파동권이다!"

"하아아압!"

기를 끌어모은 미야가 파동권을 날려 두마리 고블린을 뒤로 날려보내자 운현은 그 틈을 노려 미야의 앞에 가시 줄 함정을 설치했다.

"미야! 뒤로 빠져!"

"알았어!"

운현이 함정을 설치한 것을 본 미야는 씩 웃으며 뒤로 훌쩍 빠졌다.

'이 함정은 설치 속도가 조금 느리군.'

몇번 써보니 가시 줄 함정과 그냥 함정의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일반 함정과 다르게 가시 줄 함정은 설치되는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지속시간도 약간 짧았고.

'적절히 상황에 따라 바꿔쓰면 되겠는데.'

단순하게 잡아두는 것보다 지속 데미지를 줘야 할 때가 있고, 또 반대의 상황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운현은 두종류의 함정의 사용법이 점점 익숙해지는 것을 느끼며 외쳤다.

"미야! 스매쉬 준비해! "

"촤아아악!"

"캬아아악!"

"캭!"

가시줄 함정이 고블린들의 몸을 얽메고 그 몸을 갉아먹기 시작하자 운현은 고블린에게 스틸을 걸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고블린의 가죽갑옷. 복부가 비어버린 고블린을 향해 웃으며 미야는 남은 기력을 모아 고블린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퍼어어억!"

"커억!"

"파이어 볼트!"

복부를 맞은 고블린이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헤스티아는 파이어볼트의 주문을 외워 남은 고블린에게 맞췄다.

가시 줄 함정과 헤스티아의 파이어 볼트 연계를 동시에 맞은 고블린이 고통스러워하자 운현은 기름통을 든 후 싸늘히 웃었다.

"잘가라."

"화르르르륵!"

얼굴에 붙어 있는 불이 더더욱 거세어진다. 불이 붙은 고블린이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비틀자 그의 몸을 엮고 있던 함정은 더욱 거칠게 조여져왔다.

함정에 의해 드러난 상처에서 피가 배어나오는 것을 보던 운현은 단검을 들고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푹!"

"휴우..."

생각보다 쉽게 전투가 끝났다. 미야는 죽어버린 고블린들을 보다가 휙 몸을 돌려 운현에게 다가갔다.

"뭐야?"

"방금 그 함정. 도대체 그게 뭐야?"

"어. 그게 말이지."

재료 합성 스킬은 도적의 스킬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자신의 한손검 숙련이나 하이딩처럼, 이세계에 들어오며 받게 된 특수스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운현은 그저 머뭇거리다가 입을 다물 뿐 이었다.

"이봐! 같은 파티원끼리 이러기야!?"

"어. 그게 아니라. 좀 다른 함정을 깔아서 그래."

미야의 다그침에 운현은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뒤통수를 긁적거리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게 뭔데?"

"그게 말이지... 어. 음. 새로운 스킬을 익혔는데..."

"지금 레벨에 새로운 스킬이라고 해봤자 저렇게 강할리 없잖아? 뭐야. 빨리 말해줘."

"그래요. 운현씨. 저도 궁금해요. 가르쳐주세요. 전 운현씨가 어떤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운현씨를 믿을 수 있어요."

어느새 다가 온 헤스티아는 간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그게. 그런게 있어."

"운현씨..."

"운현."

"그렇게 보지 말라고. 나도 잘 모르니까. 그냥 믿어주면 안돼? 이게 너희들에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

아예 배짜라는 얼굴로 운현은 당당히 말했다. 솔직히 꿀릴 것은 없었다.

'이정도면 뭐...'

그저 가시 줄 함정만으로도 이정도의 효율을 보였다. 그렇다면 레벨이 오르고, 다른 재료를 얻는다면 더욱 강한 함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미야의 말에 따르면 자신 정도면 특 S급 도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굳이 헤스티아나 미야가 아니라도 던전에서 생활할 수 있었기에 그는 담담히 말해버렸다.

그런 그의 태도에 미야는 욱했지만 헤스티아는 달랐다.

꼬우면 떠나라. 라는 마인드로 운현이 말하자 헤스티아는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그렇게 보지 말라고. 언젠간 말해줄테니까. 나도 정리를 해야지."

"...정말이죠?"

"응. 약속할게."

헤스티아의 시선에 눌린 운현은 볼을 긁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만족했는지 헤스티아는 빙긋 웃으며 운현을 끌어안았다.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운현씨를 믿을거에요. 그러니 정리가 된다면 꼭 말해주세요."

"알았어."

둘의 훈훈한 분위기에 미야는 뚱한 얼굴이 되었다. 그 훈훈한 분위기에 합류하지 못한 것 때문일까? 그녀는 헤스티아가 떨어지자 운현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한테도 말해줄거야?"

"어... 봐서."

"봐서는 뭐야!? 봐서는!?"

"야! 그럼 어떡하냐! 헤스티아는 나랑 몇번이나 자기도 했고. 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믿고 따르겠다고 맹세까지 했다고! 그런 애한테 말해야지 누구한테 말해!"

헤스티아야 지금까지 보인 행동을 보면 자신이 언젠가 믿을 수 있는 상대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미야는 달랐다. 비록 각서를 쓰기는 했지만 미야와 만난것은 오늘 뿐이고 헤스티아와 다르게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운현이 당당히 말하자 미야는 순간 당황하더니 얼굴을 붉히고 빽 소리쳤다.

"그, 그렇긴 하지만. 끙... 알았어! 그럼 나랑도 해! 그리고 운현. 난 당신에게 큰 은혜를 받았어. 그런 당신을 내가 배신할 것 같아? 난 절대로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그녀의 말에 운현은 입을 다물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라고?"

"그래!"

"흠... 뭐 나쁜 제안은 아닌데..."

"우, 운현씨이!?"

"아니 어차피 파티가 되서 같이 다니다보면 하긴 해야 할거 아냐."

"그, 그... 그렇긴 하지만서두..."

운현이 미야와 한다는 말에 놀란 헤스티아는 축 늘어지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미야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껴줘."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네요오... 에휴."

"자자. 그럼 얘기는 끝이지!? 일단 시체부터 챙기자."

더 이상 이들이 캐묻지 못하게 이야기를 끝낸 운현은 고블린의 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에 여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블린의 사체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운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주머니에 있는 가시 줄 함정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안그래도 주목받는데 더 귀찮아 질 수도 있겠군.'

남자 모험가. 거기에 도적이라는 귀족 클래스. 그것만으로도 길드 회관에 혼자 있을때면 여기저기서 영입 제안이 들어왔다. 오늘 아침의 일만 떠올려도 그렇지 않은가. 많은 모험가들이 운현과 친분을 다지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이정도 위력의 함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아직 운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고레벨의 모험가나 클랜들이 접촉을 할 수도 있었다.

'걔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힘을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할 줄 안다. 지금까지 만난 모험가들이야 그저 접근하여 제안만 했다고 하지만 고레벨의, 길드의 권한과 싸워서 이길만한 힘을 가진 자들이 나타난다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괜히 까불다가 피보고 싶지 않았던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다른 함정은 위력 보고 좀 레벨이 오르면 몰래몰래 써야겠구만."

36====================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추가 스탯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 자물쇠 따기를 습득했습니다.]

"그럼 기본 전술은 이걸로 하자."

가시 줄 함정과 일반 함정의 연계로 고블린 무리를 세번 정도 더 잡은 후 운현은 레벨업 메시지창을 본 후 지쳐 있는 헤스티아와 미야에게 말했다.

"와... 역시 귀족클래스와 함께 하니까 편하네. 큰 상처도 없고."

가시 줄 함정이 주는 지속데미지와 일반 함정으로 인한 구속 효과 덕분에 상당히 편하게 고블린을 잡은 미야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할 소리다. 지금까지 탱커 없이 둘이서 하느라 엄청 힘들었다고."

미야가 격투가인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운현이 전투에 직접 참여하며 함정을 설치하고 딜링을 하는 터라 고블린이 함정에 자주 걸려들었다. 그렇기에 탱킹의 시간보다는 딜링의 시간이 길었기에 딜링과 탱킹을 같이 할 수 있는 미야의 존재가 무척 돋보였다.

"저 레벨업 했어요!"

"오오! 축하해. 새로운 마법은 뭐야?"

"음. 더블 파이어 볼트요. 파이어 볼트를 연속으로 두발 쓸 수 있어요."

"그거 좋은데!"

운현은 헤스티아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두발 연속의 파이어볼트라니. 이걸로 딜량이 더 늘어나 전투가 편해지게 생겼다.

그가 만족하자 헤스티아가 생긋 웃었고 운현은 시간을 확인한 후 말했다.

"얼추 시간도 다 된 것 같고... 이제 나갈까?"

"응? 벌써?"

"아니. 헤스티아는 이제 한계인 것 같아서. 괜찮겠어?"

미야에 비해 헤스티아의 얼굴은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번 고블린 무리를 잡기 전 흥분억제제를 먹은 탓에 어찌어찌 버티고 있지만 꽤나 흥분되어 있는 상태처럼 보였다.

"이거... 이럼 곤란하겠네."

그녀의 상태를 보고 미야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넌 꽤나 멀쩡해보인다?"

"아. 수인족은 발정기를 제외하고는 잘 흥분하지 않아서 말이지."

"그런가."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느끼는건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아."

"뭐래는겨."

운현에게 다가와 그의 볼을 톡 건드린 미야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폴짝 뛰었다. 그런 그녀를 뚱한 눈으로 바라보던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자고. 이제 가시 줄 함정도 하나밖에 안남았어."

"그래? 그거 굉장히 좋던데. 늑대 발톱을 구해야겠네."

탱킹을 하는 입장에서 적들의 체력이 지속적으로 다는 함정이 있으니 확실히 편했다. 적이 빠르게 쓰러지면 쓰러질 수록 탱커의 부담이 줄어드니 말이다.

"응. 그 외에도 다른 함정을 시도해보고 싶네."

운현과 미야가 함정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자 헤스티아는 운현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꼬옥 잡았다. 물기에 잔뜩 젖은 그녀의 눈을 마주한 운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이따가 저녁에 하자. 얘 좀 녹여주고 해야겠네."

"그러지... 그런데 운현.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가면서 하자고."

고블린의 사체를 마석에 담으며 그가 말하자 미야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도와 마석에 고블린의 시체를 담았다.

"넌 왜 이렇게 멀쩡해?"

"그러게 말이다..."

운현 역시도 그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답이 안나왔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리고...'

한가지 더 이상한 점은 아까 전 아스티나와의 관계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다.

아스티나와 섹스를 한번밖에 안했는데 현자의 시간이 발동되었다는 점이었다.

'헤스티아와는 몇번을 해야 현자의 시간이 발동되었는데... 이건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군...'

루비와 했을때, 헤스티아와 했을 때, 아스티나와 했을 때. 이 셋 모두 현자의 시간 발동이 달랐다.

'머리 터지겠네...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현자의 시간때는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지금 굳이 골치를 썩힐 필요는 없었다. 헤스티아의 상태를 보면 복귀하자마자 그녀와 하게 될 것이고 그녀와 하고나면 현자의 시간이 발동될테니 그때 생각해도 되는 것이다.

"다 챙겼다. 가자."

고블린의 사체를 다 챙기고 나서 운현들은 자리를 떴다. 미야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에게 안겨오는 헤스티아를 달래주며 입구를 향해 걷던 운현은 근처에서 들리는 칼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엉? 이게 뭔 소리야?"

"전투 소리 같은데..."

"그래? 헤스티아. 좀 참을 수 있어?"

"네? 아... 네."

안짱다리를 하고 자신의 하복부에 손을 가져가다 말다를 반복하던 헤스티아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운현은 떨떠름히 말했다.

"참기 힘들면 말하고."

"차,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왜요?"

"다른 파티는 어떻게 전투를 하나 궁금해서. 구경가자."

"흠. 하긴, 너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른 파티가 어떤 식으로 전투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던데.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미야와 헤스티아가 동의하자 운현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수풀을 가로질러 언덕 위로 올라간 운현은 언덕 밑에서 고블린 세마리와 싸우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호오."

금색 머리에 체인 메일을 입고 도끼와 방패를 든 여전사가 고블린 두마리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녀가 막고 있는 고블린에게 녹색 단발의 장궁을 든 궁사는 계속 활을 쏘아 고블린을 공격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흑색 단발머리에 뾰족한 귀와 엉덩이에 잔뜩 화가나 솟아 있는 검정꼬리를 가진 가죽갑옷을 입은 여인은 자신의 장검으로 궁사에게 접근하려 하는 고블린을 막고 있었다.

밀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는 그 파티를 보며 운현은 느긋하게 말했다.

"세명이네."

"저기도 완전한 파티는 아니네. 일반적으로 파티는 탱커 하나, 힐러 하나, 나머지는 딜러로 구성되어 있어. 운이 좋은 파티같은 경우는 딜러 중 하나가 도적같은 유틸기를 쓸 수 있는 직종이 자리를 잡고 있지."

"흐음... 그렇군."

도적이 귀족이기는 하지만 힐러 역시도 귀족인가. 운현이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이자 미야는 여전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야 회피와 암가드만으로 공격을 막아내고 있지만 저 전사의 방식이야말로 탱커의 정석이지. 방패와 갑옷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틈을 노려 공격을 해 어그로를 유지해. 그리고 궁사나 마법사 같은 원거리 딜러가 저렇게 공격을 해서 탱커에게 집중되어 있는 적을 처치하는거야."

"그럼 저건?"

검사와 싸우고 있는 고블린을 보며 운현이 묻자 헤스티아는 차분히 답했다.

"원거리 딜러같은 경우는 체력과 방어력이 약해요. 고블린의 공격에 한번이라도 맞으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저렇게 보호를 하는거에요."

"탱커의 도발이 오래되면 탱커에게 집중하지 않는 적이 나오기 마련이지.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바보는 아니니까 말야. 높은 레벨의 몬스터는 어그로를 끄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고 하더군. 아. 어그로가 풀리려는 것 같은데."

미야의 말대로 궁사의 공격에 두드려 맞던 고블린 하나가 성이 났는지 버클러를 휘둘러 여전사를 밀어내고 그 틈을 노려 궁사에게 달려갔다. 그것을 보며 낭패한 얼굴이 된 궁사가 빠르게 활을 쏘았지만 고블린은 그것을 버클러로 막거나 팔로 막아내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이얍!"

고블린의 돌진을 막은 것은 흑발의 검사였다. 한번에 두마리 고블린과 상대하게 된 그녀는 연속된 공격을 막아내며 외쳤다.

"헤라! 어서!"

"어딜 보는거냐! 너희들의 상대는 나다!"

"캬아아! 캬야!"

"카르륵!"

"허. 이거 어쩌지? 저 파티 위험한데."

"왜?"

"탱커는 방어력도 좋지만 딜링 능력도 중요해. 아무리 도발로 어그로를 끈다고 하더라도 그 어그로를 유지하려면 꾸준히 공격을 해야 한단 말이지. 아무리 봐도 저 전사는 초짜 탱커 같은데. 어그로 끄는게 너무 어설퍼."

탱이 어그로를 끌지 못한다면 탱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운현은 막공 공대장을 운영할때를 떠올리며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어쩔까?"

"돕자고?"

"음. 뭐 판단은 너희들에게 맡기겠어."

운현의 파티가 합세한다면 가시 줄 함정이 없더라도 저 세마리 고블린을 잡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괜히 힘빼고 싶지 않았던 운현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 파티를 보는 미야와 헤스티아에게 물었다.

"어?"

운현의 질문에 헤스티아는 고민했다. 자신이야 도와주고 싶지만 운현의 말투에서 굳이 끼고 싶지 않다는 기색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안타까운 눈으로 파티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얼굴을 확 붉혔다.

"어? 왜? 흥분됐어? 지금 해야돼?"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저기. 저."

흥분을 떠나서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태도다. 헤스티아가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헤스티아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이제서야 기억이 났다. 저 금발과 녹발. 운현은 왜 헤스티아가 부끄러워하는지 기억이 났다.

'내 빅-픽쳐의 도구들.'

헤스티아에게 날다람쥐를 시키려고 했던 일에 지대한 도움을 줬던 여인들이다. 운현은 피식 웃으며 미야와 헤스티아에게 말했다.

"사실 도와주고 싶지는 않지만 헤스티아가 그렇게 도와주고 싶다고 한다면야."

"으아... 우, 운현씨."

저들을 도와주면 저들과 얼굴을 마주치게 될 것이고 그리 된다면...? 헤스티아는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베베 꼬았다.

'흐흐흐. 이거 재밌군.'

남들을 돕는 일에 대한 정의감 어쩌고가 아닌, 헤스티아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진 운현은 음흉히 웃었다. 그와 헤스티아를 번갈아 바라 본 미야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뭔가 굉장히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는 것 같군... 그럼 결정했으면 껴?"

주먹을 꽉 쥔 그녀가 묻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큿!"

"채애앵!"

견인족 아르는 모험가가 되고 처음으로 빠진 위기에 이를 갈았다. 고블린 두마리라니. 던전 바깥에서는 혼자서도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는 고블린이 던전 안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적이었다.

"캬아아!"

버클러로 치며 들어온 고블린이 머리로 복부를 공격하자 그녀는 무릎을 올려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 탓에 다리가 쩌릿해 자세가 틀어졌고 그 틈을 노린 다른 고블린이 공중으로 뛰어 그녀에게 숏소드를 휘둘렀다.

'끝인가...'

주마등이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오며 지금까지의 삶이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싫어...'

그 주마등에 남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녀는 빠득 이를 갈며 고블린을 노려보았다.

'죽어서도 원망해주마...!'

숏소드가 이제 머리에 밖힐 것이다. 그녀는 한명의 검사로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눈을 감지 않았다.

"스틸!"

"헛!"

눈 앞의 숏소드가 사라진다. 한줄기 희망이 그녀의 몸을 강타했다. 아르는 그 틈을 노려 고개를 돌렸고 빈 손이 된 고블린의 주먹은 그녀의 머리를 지나 허공을 갈랐다.

"파이어 볼트!"

뒤쪽에서 들린 낭랑한 목소리에 아르는 검을 휘둘러 들러붙은 고블린을 쳐내고 휙 고개를 돌렸다.

뒷편에는 가죽 갑옷을 입은 흑발의 남자가 한손에는 단검.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방금 전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고블린 숏소드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지팡이를 든 적금발의 아름다운 마법사가 서 있었다.

"당신들은!?"

"그건 나중에! 앞의 고블린을 처리한다! 미야! 전사와 함께 저거 잡아! 거기 마법사랑 궁수! 검 있는 고블린 일점사해!"

"아, 네!"

"알겠어요!"

갑자기 나타난 세명 중 흑발의 남자가 빠르게 지휘를 하자 그들이 누군지 생각할 겨를따위는 없었다.

"헤스티아! 바인드!"

"우우웅!"

바인드에 맞은 고블린의 몸이 멈추자 흑발 사내는 검이 없는 고블린의 앞에 함정을 깔아 고블린을 구속한 후 바인딩에 걸린 고블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적!? 도적이 왜!?"

"잔소리는 나중에 하라니까!"

그의 날카로운 외침에 아르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꽉 잡았다.

그의 말대로다. 잔소리는 이 고블린들을 처치한 후에 해도 된다. 그녀는 싸늘히 웃으며 자신을 위기에 빠트렸던 고블린에게 검을 휘둘렀다.

"전세 역전이다!"

"하아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견인족 사스티누 부족 소속의 레벨 11 검사. 아르라고 합니다."

빠르게 전투를 완료한 운현은 하나둘씩 전멸의 긴장감이 풀려 주저앉은 여인들 중 흑발 견인족 검사가 힘겹게 감사 인사를 하자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려 답했다.

"별 말씀을. 모르는 얼굴도 아니고 말이지."

"우, 운현씨!"

운현이 히죽 웃으며 녹발의 궁사를 가리키며 말하자 헤스티아는 당황하며 그에게 달려가 옷자락을 꾹 잡아 당기며 울상을 지었다.

"에? 루티. 아는 사람이야?"

"...아!"

루티라 불린 녹발의 궁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당신은 그!"

"...으으..."

"복받은 여자!"

"복받은 여자...?"

"그때 헤라랑 같이 늑대 잡고 있을때 왠 복받은 여자가 남자랑 하고 있었다고 했었잖아!"

"아아! 그! 그게 이 사람들이야!?"

루티가 호들갑을 떨며 말하자 아르는 붕붕 고개를 끄덕인 후 부럽다는 듯 헤스티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움찔한 헤스티아는 더더욱 운현의 뒤에 숨어버렸고 아르는 싱글벙글 웃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 후 운현에게 말했다.

"당신이 그 소문의 운현인가보군요? 남자 도적."

"무슨 소문이 났는데?"

"음... 고자라고..."

37====================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의 말에 운현은 버럭 화를 냈다. 그의 그런 모습에 아르는 베시시 웃은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높은 레벨의 모험가들이 코어를 몰아줘서 레벨업을 시켜준다고 해도 거절한다고 해서 고자 운현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진짜?"

운현이 떨떠름히 묻자 그녀는 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다 헛소문이라니까! 내가 봤다고!"

고블린에게 맞은 어깨가 아팠는지 금발의 여전사가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녀는 운현과 헤스티아를 가리키며 입맛을 다셨다.

"내가 봤다고. 저 남자의 절륜함을!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에게도 성은을..."

"헤라! 지금 그럴때가 아니잖아!"

헤라가 운현에게 다가가며 간절히 말하자 아르는 골치아프다는 듯 이마를 감싸쥔 후 빽 소리쳤다.

"끙. 성은이고 뭐고. 일단은 빨리 복귀를... 아. 운현씨라고 했죠. 운현씨. 괜찮으시다면 보물상자의 자물쇠를 열어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 사례는 할게요."

"보물상자?"

"네. 저희가 고작 고블린 세마리에게 밀린 이유는 저 보물상자 때문이거든요. 근처에 작은 고블린 부락이 있어서 그곳을 쓸어버리고 보물상자를 획득하느라 흥분억제제를 세번이나 먹었더니 약해져서 밀리고 있었던 거에요."

아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뒤쪽에 있는 A4 박스만한 크기의 상자를 보며 말했다.

'저게 보물상잔가.'

도적이 귀족 클래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또다른 조건인 보물상자를 처음 본 운현은 신기해하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헤스티아 역시 소문으로만 들었지 던전에서 보물상자를 본 적이 없었던지라 그녀도 흥미진진한 얼굴이었다.

"보물상자치고는 허름한데..."

"고블린처럼 약한 몬스터의 보물상자라 그래요. 조금 강한 몬스터들, 1계층이 아닌 심층의 보물상자는 상자 표면이 금이나 희귀금속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더라구요.

"호오..."

그저 철로 장식되어 있는 보물상자의 겉표면을 만지며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보물상자를 열어주실 수 있나요? 사례는 보물상자에서 나오는 것의 2할을 드릴게요."

"그거야 나쁘지 않은 제안인데."

아르의 제안을 듣고 운현은 팔짱을 낀 후 잠시 생각했다.

'2할이라... 얼마가 들어있을지 모르지만 스킬 한번 써주고 그정도 가격이면 나쁘지 않군.'

"왜 직접 열지 않고? 상자 윗부분은 나무 아니야?"

운현은 보물상자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의 말에 아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그럴 수가 없어요. 보물상자를 부수면 안의 내용물이 파괴되는 경우가 있고, 최악의 경우 보물상자가 미믹으로 변신할 수도 있어요. 그건 모험가에게 있어서 최대의 금기이고 했다가 걸리면 바로 모험가 자격이 박탈당하니까 꿈도꾸지 마세요."

"자물쇠 따기 스킬로 열면?"

"지금까지 그렇게 열어서 미믹이 생겨난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하네요."

"미야. 근데 미믹이 뭐야?"

보물상자로 둔갑해있다가 모험가가 상자를 열면 그대로 공격하는 미믹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의 미믹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운현은 그나마 던전이나 전투에 대해 잘 아는 미야에게 물었고 미야는 움찔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던전은 나도 처음이라니까... 바깥의 미믹은 본 적이 있지만서도..."

"던전의 미믹은 바깥의 미믹과는 많이 달라요."

창백한 얼굴로 루티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생각만해도 꽤나 공포스러운 모양이다.

"어떤 멍청한 파티가 미믹을 깨운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 그 미믹을 처리하기 위해서 2계층을 탐험하는 모험가 다섯명이 달라붙었는데..."

"달라붙었는데?"

"패배했어요. 그 중 두명은 심각한 상처를 입어 더 이상 던전의 탐험을 하지 못하고 은퇴를 해버렸죠."

"........."

뭔 미믹이 그렇게 쎄단 말인가. 운현이 떨떠름한 눈으로 루티를 보자 그녀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듯 이빨까지 딱딱거리며 공포에 질려 덜덜 떨었다.

"진짜 무서운 건 그게 아니에요. 처리하지 못한 미믹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를 죽이고 자신의 안에 그들의 시체를 넣었고... 몬스터들의 코어를 흡수한 미믹은... 마인을 불러냈어요."

"마인? 그게 뭔데?"

운현과 헤스티아, 미야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르는 한숨을 푹 내쉰 후 차분히 말했다.

"계층을 넘어갈때 계층주를 만나야 하는 것은 아시죠?"

"그, 그런게 있었나."

던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따위는 듣지 않았다. 운현이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히죽 웃자 아르는 별 희안한 놈 다 보겠다는 듯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 시선에 헤스티아는 운현을 감싸듯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 그건 알아요. 1계층에서 2계층으로 넘어갈때 계층 수호자라 불리는 강력한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그 코어로 진입문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어요. 4, 5인의 파티 다섯 정도가 힘을 합쳐야 잡을 수 있다고 하던데..."

헤스티아가 설명하자 아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보스몹 같은건가....'

"지금까지 발견된 1계층의 계층주는 총 넷이에요. 첫번째 계층주는 트롤. 높은 생명력과 자연치유력으로 좀처럼 죽지 않는 끈질긴 몬스터죠.

두번째는 미노타우르스. 소머리의 괴물로 커다란 배틀액스를 휘두르는 강력한 힘의 소유자에요.

세번째는 레이스. 유령 몬스터로 마법공격 외에는 통하지 않는 골치아픈 적이에요."

말을 마친 아르는 차마 입에 담기도 꺼림찍하다는 듯 입술을 달짝거리며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마지막이 바로 그 마인이에요."

"걔는 어떤데?"

"예?"

"아니, 다른 계층주들은 설명이 있는데 마인은 설명이 없잖아."

"으음... 마인은 다른 몬스터들과 다르게 인간형의 몬스터에요. 검은 그림자로 몸을 감싸고 있지만 실체가 있답니다."

"몸집이 작으면 더 약한 거 아니야?"

"마인을 꺽어보겠다고 도전했던 파티들이 오분도 안되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간신히 도망쳤는데요?"

"........"

아르의 말에 운현은 할말을 잃었다. 무슨 끝판왕도 아니고 뭐냐. 그가 긴장하자 아르는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미믹이 소환한 마인을 상대하기 위해서 길드의 간부진이 총 동원됐죠.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던전은 출입금지 상태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허어...그래서 잡긴 잡았데?"

"네. 마인을 잡고나서 얻은 것은 십골드 뿐이라고 하더군요. 잃은 것에 비해 얻은 것이 너무 적어요."

그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라니. 운현이 침을 꿀꺽 삼키자 아르는 빙긋 웃으며 보물상자를 가리켰다.

"그래서 그런 모험은 하면 안되는거에요. 알았죠?"

"한가지만 더 물어보자. 계층주를 쓰러트리지 못하면 다음 계층으로 진입하지 못하잖아. 그런데 그 마인이 등장하면 어떡해? 길드에 신고하면 되는거야?"

"그럴 필요는 없어요. 계층주는 한달에 한번씩 바뀌고 마인이 등장할 확률은 열번에 한번이 될까 말까한 정도니까요. 만약 마인이 계층주로 나왔다면 다음달에 다시 도전하는게 좋아요."

아르의 말에 운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보스들도 강력해보이지만 마인이라는 것의 이름만 들어도 끔찍해진 그는 인벤토리에서 베릴의 락핏세트를 꺼내었다.

"실패한다고 해서 미믹이 발생되거나 그러진 않겠지?"

"실패는 상관없어요. 길드에 맡겨도 몇번씩 실패하던데요?"

"그래...? 그럼 해볼게."

운현은 락핏을 자물쇠 구멍에 넣었다.

"딸깍!"

몇번 락핏을 움직여 본 것만으로도 자물쇠가 열려버렸다. 처음 하는 자물쇠따기가 이렇게 쉽게 된 것에 놀라며 운현은 베릴의 락핏세트를 보았다.

'이거 진짜 물건이네...'

다른 자물쇠도 시험해보고 싶을 정도다. 운현은 새삼 아스티나에게 고마워지는 것을 느끼고 아르를 불렀다.

"이거 딴거 같은데."

"오오!? 진짜요!? 역시 도적!"

"내용물이 뭐야? 얼른 봐봐!"

루티와 헤라, 아르, 헤스티아, 미야까지 우루루 달려오자 운현은 상자의 뚜껑을 잡고 천천히 열었다.

"오오오!"

"금화다!"

"이득봤네!"

싱글벙글 웃으며 루티와 헤라, 아르가 좋아하자 운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골드에 왜 저리들 좋아하는 것일까. 그의 의문에 아르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고블린의 보물상자에서 나오는 아이템은 그리 좋지 않거든요. 골드가 나오면 대박인거에요! 어디보자... 이십골드! 신난다!"

"오늘은 풀코스로 즐길 수 있겠네!"

"헤헤헤~"

세 여인들이 폴짝폴짝뛰며 기뻐하자 운현은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자! 여기요!"

싱글벙글 웃으며 아르는 운현에게 4골드를 주었다. 금화 네개를 그의 손에 올려 준 아르는 보물상자를 들어 휙 수풀에 집어 던진 후 짐을 챙겼다.

"우리는 나갈건데 같이 가실래요?"

"아. 응."

어차피 복귀하는 길이었다. 운현은 아르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들과 함께 던전에서 나왔다.

던전에서 나와 던전 입구의 시장에 도착한 아르는 달려가려는 헤라와 루티의 뒷목을 잡았다.

"정비해야 하니까 기다려. 그럼 저희는 이만..."

씩 웃은 그녀는 얼른 나가고 싶어하는 그녀들을 질질 끌며 시장통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던 운현은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고개를 돌려 미야를 보았다.

"넌 왜 그래?"

"아. 그... 역시 던전이 돈을 벌기에는 좋다 싶어서. 한번에 이십골드라니..."

"우리도 열심히해서 더 벌자. 일단 돈 없으니까 사냥한걸 돈으로 바꾸고 재료를 구하자고."

함정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했다. 운현은 미야와 헤스티아를 데리고 길드 사무소로 올라갔다.

"어머! 운현씨!"

서류를 정리하던 필레는 운현이 오자 빙긋 웃으며 그를 반겼다. 그녀에게 다가간 운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늘 필레씨만 계시네요. 다른 사람은 없나요?"

"이번 달은 제가 사무직을 하는 기간이라 그래요. 물론 다른 사람들도 있죠~"

생글생글 웃으며 운현을 반긴 그녀는 운현이 마석이 담긴 주머니를 꺼내 올려 놓자 그 무게에 감탄하며 마석을 점검했다.

"와! 많이 잡으셨네요! 어디보자... 계산하면 23골드네요."

마석을 점검한 그녀는 가격을 밝히고 운현에게 돈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운현은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 필레씨. 혹시 던전의 마인에 대해서 아시는거 있으세요?"

운현의 질문에 필레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순간적으로 그녀에게 살기를 느낀 운현이 주춤 뒤로 물러나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물었다.

"그건 어디서 들으셨어요?"

"어... 아르라는 사람에게."

"아르씨인가요... 잘됐네요. 운현씨 파티의 성장 속도를 보면 얼마 가지 않아 2계층에 진입하려고 할테니까요. 운현씨. 잘 들으세요. 절대로 마인과 싸워서는 안됩니다."

"예? 하지만..."

"다른 모험가분들도 소중하지만 운현씨는 모험가 길드에서 꽤나 중요한 존재에요. 남자 모험가. 그리고 도적이라는 클래스. 5계층 이상부터는 남자 모험가가 없어서 5계층에 진입한 모험가들의 던전 탐험 속도가 무척이나 느려요. 저희 길드에서는 운현씨를 상당히 주목하고 있답니다."

"그, 그런가요?"

쓸데없이 어깨가 무겁다. 운현이 떨떠름히 말하자 필레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운현씨가 4계층에 진입할 정도의 실력자가 된다면 길드에서는 운현씨에게 많은 지원을 할 용의가 있어요. 아직까지 던전의 심층을 완전히 돌파한 사람은 없다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절대 위험한 길을 걸으시면 안된답니다. 알았죠?"

"아, 아야야야!"

운현의 손을 꽉 잡은 필레는 무척이나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잡힌 손이 아플 정도다. 그는 붕붕 고개를 끄덕이며 필레를 안심시켰다.

"알았어요! 그러니까 손 좀!"

"어, 어마. 죄송해요오... 운현씨가 마인같은거에 관심을 가지시니까 그렇죠."

"끙... 조언 감사합니다. 마인이 등장하면 패스하고 다른 계층주를 노려볼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레벨이 100이 되시면 다음 계층으로 넘어가실 수 있어요. 그때 원하신다면 함께 하실 파티를 모집해드릴게요."

"어. 그런데 계층주를 잡아야만 다음 계층에 들어갈 수 있는건가요?"

"네."

"다른 파티가 계층주를 잡으면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시도를 해 본 사람들이 있지만 계층주와의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법문을 통과할 수 없더라구요. 그것도 던전의 마법인 것 같아요. 아직 자세한건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럼 한가지 더. 이미 계층주를 잡은 사람이 다음 계층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또 계층주를 잡아야 해요?"

"잡아도 좋지만 잡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요. 한번 2계층에 들어갔던 사람은 계층주의 코어가 없어도 마법문을 통과할 수 있으니까요. 거대 클랜의 경우 자신들의 클랜원을 위해 한계층 밑의 계층주에 도전하는 파티원을 위해 심층에 다니는 사람이 함께 다니는 경우도 종종 있답니다."

"으음... 그렇군요."

"더 궁금한 건 없으세요?"

"아. 이정도면 됐어요.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탱커도 구했고 궁금한 것도 해소했으니 딱히 더 볼 일이 없다. 운현은 필레에게 인사를 해 준 후 다시 던전입구로 향했다.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던전입구의 시장으로 향한 운현은 흰 거미의 실타레를 파는 좌판에 도착하자 좌판의 주인에게 물었다.

"실타레는 더 없나요?"

좌판에 있는 것은 실타레 열개 뿐. 운현이 궁금해하며 묻자 좌판을 지키던 흑발의 여인은 볼을 긁적거린 후 말했다.

"글쎄. 지금은 이게 단데... 함정용으로 찾나보지?"

"예."

"그럼 다른 것을 써보는 건 어때? 시장을 뒤져보면 함정용으로 쓰일만한 재료들이 꽤 있을거야."

"그런가요... 그럼 일단 이것만이라도 주세요."

있는 실타레를 모두 구입하고 자리를 뜬 운현은 시장을 돌며 늑대의 송곳니와 발톱, 그리고 오크의 엄니 열개와 기름통을 구입한 후 시장에서 나왔다. 시장을 돌아봐도 쓸만한 재료는 없었다.

"이런... 어쩌지?"

"어머. 운현 아니야? 벌써 나온거야?"

밝고 요염한 목소리가 들린다. 운현은 고민하던 얼굴 그대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나온 쪽을 보았다.

"아. 란펠지씨."

38====================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후후후... 씨는 괜찮으니까 이름만 불러도 돼. 그래. 테이크 어 룩에서는 괜찮은 물건을 구했고?"

아침에 테이크 어 룩을 소개시켜 준 란펠지가 팔짱을 끼며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자 운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당히 괜찮은 물건을 구했어요."

"후후후. 그거 다행이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야?"

"아... 사실은."

란펠지에게 함정용으로 쓸만한 재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자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후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내 클랜에 들어오면 그런 재료 정도는 얼마든지 구해줄 수 있는데..."

란펠지는 도톰한 입술을 핥으며 운현의 전신을 핥듯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움찔한 헤스티아와 미야는 한걸음 나와 운현의 몸을 가렸고 그런 그들이 재밌었는지 란펠지는 꺄르륵 웃었다.

"뭐, 뭐가 웃겨요!"

"당신은 상당히 위험한 냄새가 나는데..."

경계를 하는 그녀들을 향해 다시 한차례 웃은 란펠지는 작은 어깨를 으쓱이고 운현에게 향해진 시선을 거뒀다.

"뭐, 그건 생각해볼게요."

"운현씨!?"

"운현!"

"오? 정말?"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죠. 지금은 일단 저희들끼리만 해보려구요."

"흐음... 심층에 들어가려면 지금 파티로는 안될텐데... 아, 당신들을 무시하는 건 아냐. 운현. 당신 아직 고블린을 잡는 정도지? 30레벨 이상이 되면 오크나 코볼트를 잡으러 다녀야 할텐데 그때부터는 셋이 다니긴 힘들거야. 적어도 딜러나 힐러가 필요할텐데... 괜찮은 사람을 구하려면 인력풀이 있는 대형 클랜에 들어오는게 좋다고."

"뭐 그것도 어떻게든 구하겠죠. 지금도 클랜 없이 이렇게 훌륭한 파티원들을 만났는데요."

클랜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마냥 좋냐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조직에 속한다면 그 조직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는 모험가 라는 직업에 큰 미련이 없는 운현은 그냥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의 수단으로 던전 탐험을 생각할 뿐이지 다른 모험가들 처럼 자신의 레벨을 올리거나 던전을 탐험하여 미지를 개척하겠다. 라는 마음이 없었다.

그렇기에 괜히 자신의 자유를 억압할만한 조직에 속하고 싶지 않았던 운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었다.

그의 속내를 알리가 없는 헤스티아와 미야는 운현의 말에 감동한 듯 눈을 반짝거렸다. 그 셋을 말없이 바라보던 란펠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당신 생각이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정 힘들다 싶으면 연락해."

아직까진 운현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 보이는 란펠지였다. 남자 도적 모험가는 놓치기 아까운 인재였으니 말이다. 그녀가 차분히 말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혹시 함정용 재료 중에서 파실만한 물건이 있나요?"

"함정용 재료... 있기는 있지."

"오!? 정말요?"

"응. 그렇지만 좀 비싼데?"

"얼마나 비싸길래요?"

"한개에 오실버."

"...뭔데 그렇게 비싸요?"

고작해야 1실버인 흰거미의 실타레에 비해 무려 다섯배나 비싸게 부르자 그녀는 빙긋 웃었다.

"이거야."

란펠지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흰거미의 실타레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색깔이 검은색인 실타레였다. 그것을 보며 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란펠지는 그것을 운현에게 보여준 후 말했다.

"검은 거미의 실타레야. 나도 오늘 시장을 전부 돌아서 간신히 구매한거라고. 흰거미와 다르게 검은 거미는 찾기도 어렵고 실도 잘 안뿜어서 희소해. 그 대신 흰거미의 거미줄보다 세배는 더 탄탄하고 질기지. 2계층 이상에서부터는 흰 거미의 거미줄로 만든 함정은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할거야."

"그런가요. 그럼 다른 재료는 없을까요?"

"흐음... 뭐, 운현. 당신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운현을 빤히 바라보던 란펠지는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손가락을 튕긴 후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은 가르쳐주기 그렇고..."

"그럼요?"

정보를 얻는데 공짜로 얻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운현이야 아쉬운 입장이니 어지간한 조건이면 수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는 무덤덤히 물었고 란펠지는 살짝 허리를 숙여 운현을 위로 올려다보며 그의 입술을 톡 건드렸다.

"요 귀여운 입술로 키스 한번만 해주면... 읍!"

란펠지 정도의 미녀와 키스 한번에 정보를 얻는거라면 남는 장사다. 운현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낭창거리는 란펠지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그녀와 키스했다. 운현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란펠지의 얼굴은 놀람으로 가득 차버렸다.

"푸, 푸하! 무, 무슨 남자가 이렇게!"

"란펠지씨랑 키스를 하는건 오히려 저에게 영광이죠. 그래서 정보는요?"

"저, 정말. 누나를 놀리면 혼나!"

운현이 진짜로 자신에게 키스할 줄은 몰랐는지 아직도 멍한 얼굴이던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힌 후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대장간이나 방직소에 의뢰를 해보는 건 어때?"

이해를 하지 못한 듯 운현이 멍하니 자신을 보자 그녀는 피식 웃은 후 그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을 톡톡 건드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도시 내의 대장간에 주문을 하면 강철 실을 얻을 수 있어. 물론 그냥 얻을 수는 없지. 대장간의 주인과 친분을 쌓으면 의뢰가 가능하니까 대장간이나 제작자 연합에서 발주하는 퀘스트를 성공시켜봐. 그럼 함정 설치용으로 괜찮은 재료를 구할 수 있을거야."

"오오! 그런 방법이! 고마워요! 란펠지!"

"별 말씀을. 나중에 시간있으면 한번 하자고."

운현의 양물을 쓱 만진 란펠지는 요염히 웃으며 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유혹에 움찔한 헤스티아는 운현의 손을 꼭 잡았다.

"후후후후~ 그럼 즐거운 쇼핑 되라고~"

헤스티아가 자신에게 경계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귀여웠는지 히죽 웃은 그녀는 운현과 헤스티아, 미야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살랑살랑 걸어갔다.

먼로 워크를 구사하며 둔부를 씰룩거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운현이 침을 꿀꺽 삼키자 헤스티아는 운현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좋나요?"

"응. 개굿."

"....."

"하하하. 삐지지 말라고."

"하아..."

운현이 싱글벙글 웃자 미야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손수건을 꺼내고 그에게 다가갔다.

"왜?"

"입술이나 좀 닦고 얘기하지 그래?"

왠지 모르게 날카로워보이는 미야다. 머리 위의 귀와 꼬리가 쫑끗 서 있는 것이 어딘지 화나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자신의 입술을 닦아주는 것을 얌전히 기다렸다.

"진짜! 운현씨는! 진짜! 키, 키스가 하고 싶다면 저, 저도 있는데..."

그가 다른 여인에게 시선을 보내는 것에 토라진 듯 헤스티아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의 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쓰다듬어 준 운현은 미야와 헤스티아에게 물었다.

"자... 그럼 여기서 대충 정산을 해볼까? 돈 관리는 각자? 아니면 내가 다 할까? 나눌거면 똑같이 가르고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장비가 있으면 사는 걸로 하자. 어때?."

전투를 하면서 쓰기 위한 물품 구입을 한 후 남은 돈은 N분의 1을 하자고 제시한 운현은 둘이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말하자 당황했다.

"전 운현씨에게 맡길게요."

"나도. 당신이 돈 떼먹고 날를 사람으로는 안보여."

"헤스티아야 그렇다고 치고 넌 뭘 믿고? 어제 사기당한 사람이?"

운현의 질문에 미야는 씨익 웃었다.

"글쎄? 그냥 느낌?"

'호구가 여기 있었구나.'

운현은 미야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판 남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이 호구 같은 여자는 자신이 챙겨주는게 맞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의 파티원이니 말이다.

'꼴랑 저거 챙기고 나르느니 차라리 쟤를 활용해서 전투를 좀 편하게 하는게 낫겠군.'

어쨌든 비슷한 레벨대의 탱커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운현은 자신을 믿는다 말한 미야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쓱쓱 쓰다듬었다.

"뭐하는거야?"

"아니. 너는 내가 어떻게든 챙겨주마."

"...괜히 기분나쁜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미야는 운현의 손을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복슬복슬거리는 머리칼이 부드럽다. 손 끝에 닿는 두개의 고양이귀가 쫑긋서고 까딱까딱 자신의 손길에 맞춰 움직이는 것을 본 운현은 싱글거리며 말했다.

"그럼 자금은 내가 관리하는걸로 하지. 음... 미야. 넌 어떡할래?"

"뭘?"

"아. 헤스티아는 안아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원한다면 너도?"

"후후후.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난 괜찮아. 그보다 헤스티아가 더 심해보이니까 그녀 먼저 해줘."

전투를 치룬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수인족의 특성때문인지 미야는 그다지 흥분된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가 헤스티아에게 양보하자 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헤스티아의 손을 잡았다.

"그럼 갈까?"

"아. 난 먼저 저녁 먹고 있을게."

"그럼 자."

금화 하나를 꺼내 미야에게 건네 준 운현은 헤스티아를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운현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한 그녀는 살며시 시선을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운현씨는..."

"응?"

"가슴이 큰게 좋나요?"

"가슴은 정의이니 크든 말든 상관없는데?"

"...그런데 란펠지씨를..."

"아. 란펠지씨. 아니 딱히 난 란펠지씨가 좋다 아니다를 떠나서 미녀는 다 좋아하는데?"

"미, 미녀... 그럼..."

"물론 너도 좋아하지. 신뢰의 차원을 떠나서 개인의 호오를 따진다면야."

"그, 그럼 란펠지씨나 다른 여자들이랑 비교해서..."

"굳이 비교를 해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네가 제일 좋아."

키스 한두번 한 사이와 몸까지 섞고 자신을 좋아한다 말해 준 상대 중에 누가 좋냐고 물어본다면 운현은 그다지 재지 않고 헤스티아가 좋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그,그래요? 그거 고맙네요."

운현의 담담한 말에 헤스티아는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베베 꼬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운현은 쓰게 웃었다.

이 세계는 한국과 달랐다. 남자가 여자를 보며 그 매력을 칭찬하는 일보다 여자가 남자를 보며 그 매력을 칭찬하는 일이 더 익숙한 세계다. 자신이 이런 식으로 행동할 수록 자신과 이 세계의 괴리감은 커져갈 것이다.

'문화가 다르니... 나도 슬슬 적응을 해야 할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적응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편해지면 편해진 생활에 적응을 하여 그것에 몸을 맞춘다.

생각이라도 을의 입장에 있지 않는다면 자신이 언제 갑질을 하며 패악질을 부릴지 모르는 것이다. 늘상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운현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헤스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지금의 내 상황에서 누굴 더 좋아하니 마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헤스티아. 지금까지로 따진다면 너 이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상대는 없어. 그것만 알아줘. 아,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말라고. 아직 넌 내 선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헤헤헤~ 그래도 좋네요. 제가 제일 앞서간다는 거잖아요."

운현의 말에 헤스티아는 활짝 웃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

39====================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크흠... 음. 운현씨. 먼저 씻으실래요?"

이미 몇번이나 함께 했는데도 헤스티아는 여전히 하기 전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녀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말했다.

'귀여워라~'

머뭇머뭇거리면서 빨리 하고 싶어 죽겠는게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저러는 것을 보니 신뢰하고 아니고를 떠나 확실히 눈에 즐거웠다.

"음..."

"운현씨?"

"아. 우리 같이 씻을까?"

"네에에에에에!?"

"왜, 왜 그렇게 놀래?"

한번정도는 여자와 같이 씻겨주는 이벤트를 해보고 싶었던 운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이건 싫은건가?'

하지만 헤스티아를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운현에게 다가와 달콤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진짜요?"

"응. 싫어?"

"아뇨! 좋아요!"

"그럼 욕실에 물 받아 놓을게. 얼른 들어와."

헤스티아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붕붕 고개를 끄덕이자 운현은 피식 웃은 후 옷을 벗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모험가 전용의 길드 회관 숙소는 방은 넓지 않지만 목욕을 좋아하는 여자들의 특성 때문인지 욕실에는 꽤 넓은 욕조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건 참 현실적이란 말야."

수도꼭지와 샤워기까지 있는 욕실을 보며 운현은 감탄했다. 코어를 이용한 마법 도구라고는 하지만 이게 전 객실에 있다는 것은 모험가 길드가 모험가들의 편의를 위해 상당히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모험가가 가져다 주는 코어로 버는 돈도 쏠쏠할테니."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욕조에 물을 채운 운현은 몸을 대충 씻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약간 뜨거운 정도인 물이 몸의 피로를 풀어준다. 노골노골해지는 것을 느끼며 욕조의 끝에 기대고 앉은 운현이 몰려오는 수마와 싸우고 있을 때 욕조의 문이 열렸다.

"저어... 운현씨. 들어갈게요."

"응. 어서 들어와."

욕실의 문이 열린다. 뿌연 수증기 사이로 헤스티아가 걸어들어오자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헤 벌렸다.

"와... 이렇게 보니까 또 예쁘네. 올림머리 한거야?"

"헤헤헤..."

운현의 칭찬에 헤스티아는 살며시 웃었다. 긴 머리를 칭칭 감아올려 비녀로 고정시킨 그녀는 길고 하얀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탱글거리는 가슴과 하복부의 소중한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수건을 풀까 말까 고민하던 그녀는 침을 꼴깍 삼킨 후 살며시 수건을 풀었다.

"헤에..."

언제 봐도 헤스티아의 몸은 아름다웠다. 연한 갈색의 피부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녀의 몸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운현은 헤스티아가 손을 올려 자신의 가슴과 음부를 부끄러운 듯 천천히 가리자 히죽 웃은 후 말했다.

"내가 씻겨줄까?"

"예!? 그, 그치만."

"싫어?"

"그런건 아닌데요... 운현씨 힘들지 않겠어요?"

"너 씻겨주는게 뭐 힘들겠어?"

"그, 그럼 부탁드릴게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기대감 가득한 달달한 목소리로 헤스티아는 운현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욕실의 의자에 앉자 운현은 의자를 끌어 앉았다.

"흥흥흥~"

"뭐가 그렇게 좋아요?"

"아니. 이런건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거거든."

"어휴... 정말. 운현씨는 볼때마다 여자같아요. 매번 이런 야한 생각만 하고."

"우리 동네에서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고."

"와... 정말 여자들에게는 꿈같은 곳이겠네요."

운현의 말에 헤스티아는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하긴, 이 세계에서는 알지 못할 것이다. 운현은 타월에 비누를 잔뜩 뭍힌 후 비벼 거품을 만들고 손에 쥐었다.

"자. 그럼 등부터 씻겨줄게."

"후훗. 네."

부드러운 타월이 긴 목덜미에 닿자 헤스티아는 움찔하며 몸을 딱딱히 굳혔다. 긴장을 한 탓일까? 그녀의 몸이 굳어지자 운현은 헤스티아의 작은 어깨에 살짝 키스했다.

"아..."

달콤한 한숨이 터져나온다. 헤스티아는 운현의 입술이 닿자 살며시 몸을 비틀었다. 그제서야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헤스티아의 몸에 힘이 빠졌다. 운현은 목덜미를 깨끗히 닦아준 후 손을 움직였다.

"아하하하~ 간지러워요."

"가만히 좀 있어봐."

누군가가 씻겨주는 것이 어색했는지 헤스티아는 꺄르륵 웃으며 몸을 비틀었다. 그런 그녀의 몸을 끌어안은 후 귓볼을 살짝 깨물고 속삭여 준 운현은 다시 그녀의 몸을 놓아 준 후 작은 등에 전부 비누거품을 뭍혔다.

"자. 이쪽 손 올려봐."

"에에... 꺄하하하하하! 거, 거긴 간지러워요오!!"

운현의 손에 들린 타월이 겨드랑이를 닦고 매끄러운 팔뚝을 스치고 올라가자 그녀는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비틀려 하였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그녀의 움직임에 운현은 다시 헤스티아를 뒤에서 끌어안은 후 입술에 키스했다. 고개를 뒤로 돌려 그와 키스한 헤스티아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헤헤... 자꾸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요?"

"내가 키스해주는 것 때문에 그런거라면 좀 가만히 있어. 이따가 얼마든지 해줄테니까."

"음... 그럼 참아볼게요."

베시시 웃은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운현은 다시 그녀의 몸을 씻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잘 참아보려는 듯 움찔움찔하면서도 몸을 비틀지 않은 헤스티아는 운현이 뜨거운 물을 몸에 부어주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후아... 기분 좋네요..."

"아직 안끝났는데."

"에?"

"앞에도 닦아야 하잖아."

"아. 그렇죠..."

"그럼 이상태에서..."

"꺄악..."

운현은 의자를 쭉 당겨 헤스티아에게 밀착했다. 그의 딱딱한 남성이 자신의 등에 닿는 것에 짧게 비명을 내지른 그녀는 운현의 손이 겨드랑이 밑에서 올라오자 놀라며 물었다.

"어, 어떻게 하려구요?"

"이렇게 하려고."

"흐읏!?"

그의 손이 몸을 쓰다듬는다. 타월이 아닌 비누거품이 잔뜩 뭍어 있는 손이 가슴을 거칠게 몰아쥐었다. 아플만도 했건만 미끄러운 비누거품 탓인지 헤스티아는 고통보다는 진한 쾌감을 느꼈다.

"으으... 이건 씻기는게..."

"냠. 왜? 난 그냥 씻겨주는건데."

"그, 그런데 여긴 왜 커져 있는데요."

손을 뒤로 빼 운현의 남성을 잡은 헤스티아는 그것을 살며시 문지르며 말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헤스티아의 양 유두를 꽉 꼬집었다.

"흐이잉!"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쾌감을 느꼈는지 헤스티아의 등줄기가 크게 휘었다. 그녀의 몸에 힘이 빠지며 자신의 몸에 푹 기대자 운현은 히죽 웃은 후 느긋하게 그녀의 앞을 만져나갔다.

"으으... 으으응... 정말 야해."

"그래서 싫어?"

"아뇨... 좋아요오..."

운현의 가슴에 편히 등을 기댄 헤스티아는 녹는듯한 얼굴로 그에게 입맞췄다. 타액과 타액이 교환하는 진한 입맞춤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운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손에 꽉 들어오는 가슴을 주무르고 꼬집는것은 물론이거니와 양 쪽 유두를 손가락으로 비비거나 쭉쭉 끌어당기고 다음 손을 내려 귀여운 갈비뼈를 흝은 후 앙증맞은 배꼽을 건드린다. 그녀의 상체 앞쪽을 마음대로 유린한 운현은 헤스티아가 달뜬 숨을 내쉬며 간절히 자신을 바라보자 이마에 입맞춘 후 말했다.

"이번엔 밑에를 씻겨볼까."

"흐에에... 이제... 그만 괴롭혀요오..."

"안돼."

타월을 바닥에 깔고 그곳에 걸터앉은 운현은 헤스티아의 몸에 뜨거운 물을 뿌린 후 욕조 안에 비누를 넣고 거품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욕조 안이 비누거품으로 가득 차자 헤스티아는 물기와 함께 쾌락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으쌰."

"으... 이 자세는."

헤스티아를 안아들고 욕조 안에 들어간 운현은 그녀를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한 후 그녀의 양 다리를 쫙 벌린 후 자신의 다리로 좁히지 못하게 막았다.

자연스레 다리를 벌린 채 고정되어버린 헤스티아가 어쩔 줄 몰라하자 운현은 그녀의 매끈한 양 다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흐응...읏..."

"자자. 매번 걸어다니느라 힘들잖아. 내가 풀어줄게."

"이건 풀어주는게 아니라... 흐잉...!"

허벅지를 매만지는 것만으로도 꽤나 쾌감이 돋는다. 비눗물과 닿은 손이 허벅지를 문지를때마다 시원해지는 감각과 함께 하복부가 간지러워진 헤스티아는 그 묘한 감각을 비우기 위해 운현의 입술을 찾았다.

자신에게 입맞추며 그것에 집중하려 하는 헤스티아를 귀엽게 바라보며 다리를 애무하던 운현은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여기만 남았네. 여긴 비눗물이 들어가면 곤란하니까."

샤워기의 물을 틀어 그녀의 몸을 씻겨준 후 운현은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수건을 바닥에 깔고난 후 그는 샤워기로 욕실에 붙어 있는 큰 거울에 물을 뿌린 후 다시 아까의 자세를 취한 후 말했다.

"이렇게 보니까 거울로 다 보이네."

"아아아앗..."

운현의 품에 안긴 채 녹초가 되어 다리를 벌리고 음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자신이 거울에 비춰진 것을 보며 헤스티아는 눈을 꼬옥 감았다. 바들바들 떨면서 다리를 오무리려 하는 그녀의 행동에 운현은 그녀의 다리를 자신의 다리로 막은 후 속삭였다.

"얼마나 예쁜데. 봐봐."

"시, 싫어... 부끄러워..."

"에이~ 오늘 일을 생각해보라고. 루티와 헤라도..."

"아아아아아아아!"

운현의 말에 헤스티아는 더더욱 부끄러워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거울에 비춰진 헤스티아의 음부에서 주르륵 하얀 애액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인다. 운현은 헤스티아의 귓볼을 잘근잘근 씹은 후 속삭였다.

"정말. 나보고 야하다고 하지만 진짜 야한건 너 아니야?"

"아냐... 아냐아아..."

"뻥치고 있네. 그럼 이건 뭔데."

"히이이익!"

운현의 손이 계곡을 쓰다듬었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계곡은 운현의 손이 자극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애액을 성대하게 분출했다.

"흐아아아아아아앙!!"

"봐봐. 한번 만진 것만으로 이렇게 싸버리면서."

히죽 웃은 운현은 헤스티아의 계곡에 손가락을 밀어 넣은 후 그녀의 계곡을 연신 자극해나갔다.

집요하고 끈질긴 운현의 애무는 헤스티아의 정신을 또다시 앗아가버렸고 그녀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버둥거리며 또다시 애액을 뿜어내었다.

"히야야야야앙!"

"신음소리 좋고~"

욕실 가득 울리는 그녀의 귀여운 신음성을 들으며 운현은 그녀의 애액으로 흠뻑 젖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이봐. 헤스티아. 너 때문에 손이 더러워졌잖아. 책임져."

"흑...흐흣...으으...핥짝... 핥짝."

운현이 손을 자신의 입 근처로 가져오자 헤스티아는 힘없이 입을 벌린 후 그의 손을 정신없이 핥았다. 그녀의 혀를 손으로 느끼며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주무르던 운현은 헤스티아가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듯 하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날 씻겨... 달라고는 못하겠군."

정신만 차렸지 온 몸에 힘이 빠져 있는 헤스티아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날 씻겨달라는 건 좀 있다가 해야겠군. 이제 몸을 좀 담굴까?"

욕조에 가득 차 있는 비눗물을 버린 후 따뜻한 물로 다시 채운 운현은 그녀를 안아들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괴롭히는 것이 아닌, 그저 끌어안고 있기만 하며 헤스티아가 회복되길 기다린 운현은 헤스티아의 몸이 꿈틀거리자 빙긋 웃었다.

"좀 괜찮아?"

"으으으... 운현씨. 정말 너무해요."

"내가 뭘?"

"매번 이렇게 괴롭히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몸을 돌린 헤스티아는 운현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쪽 입맞춘 후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하하하하! 네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말이지."

"...그럼 그냥 순수하게 안아달라구요."

"그건 또 곤란하지. 자... 그럼 여기서 한번 할까?"

"예?"

"이번에는 안괴롭히고 할게. 어때?"

운현이 이마에 입맞춘 후 입술에 살짝 키스한 후 에 빙긋 웃으며 말하자 헤스티아는 얼굴을 붉힌 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다시 몸을 돌리고."

"으읏... 그냥 안긴 상태에서 하면 안되요?"

"백허그라는 거야."

불만인 듯한 헤스티아를 돌린 후 몸을 일으킨 운현은 헤스티아의 등을 눌러 몸을 숙이게 만들었다. 탱글탱글한 둔부가 자신에게 내밀어지게 한 운현은 그녀의 질퍽한 계곡에 자신의 남성을 쓰윽 밀어 넣었다.

"흐으으읏..."

배 안에 가득 찬 운현의 남성에 헤스티아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기분이 좋았는지 그녀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며 헤실 웃었다.

"자. 그럼 목욕을 즐기자고."

"네에에에..."

헤스티아의 안에 남성을 넣은 후 운현은 그녀를 끌어안고 목욕을 즐겼다. 운현의 남성이 그대로 차 있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것 나름대로의 작은 쾌감은 있었는지 헤스티아는 잠깐잠깐 움찔하며 쾌락을 즐겼다.

"이것도 되게 좋네요오..."

진짜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매번 할때마다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쾌락을 느꼈던 헤스티아는 오히려 이런 것이 더 좋았는지 살짝 고개를 틀어 운현을 보고 말했다.

"그... 키스는 하기 힘들지만요."

"이상태로도 즐길 수 있는 건 여러가지가 있지."

"꺄악! 정말~! 분위기 좋았는데."

운현이 살짝 허리를 흔들자 쾌감이 차오른 헤스티아는 볼을 부풀리며 물을 손으로 몇번 쳤다. 튕겨져 나간 물방울이 운현의 얼굴에 맞자 헤스티아는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에헤헤~ 복수에요."

"그럼 나도."

"흐어어엉!"

허리를 한번 쳐올리는 것만으로 한번에 무너져버린 헤스티아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운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키득거리며 운현은 헤스티아를 꼭 끌어안았다.

못이기는 척 그의 품에 안긴 헤스티아는 운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후 말했다.

"정말 행복하네요... 이런 건 절대 못할 줄 알았는데..."

"뭘?"

"좋아하는 남자랑 이렇게 욕실에서 알콩달콩하게 있는거요..."

"뭐. 하고 싶은거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해. 할 수 있는건 해줄테니까."

"그럼..."

망설이던 헤스티아는 한참동안이나 입술만 달짝거리다가 겨우 말했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절 사랑한다고 해주실 수 있어요?"

"......."

헤스티아의 물기젖은, 두려움과 기대감이 섞인 질문에 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적이 욕실을 감싼다. 아까 전까지의 훈훈한 분위기가 점점 식어가는 것을 느낀 헤스티아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건 농담~ 후후후. 전 그냥 이런 상태도 괜찮아요. 운현씨가 언젠간 저에게 넘어오겠죠!"

"그래.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지."

방금 전의 말이 헤스티아의 진심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운현은 헤스티아의 마음을 받을 수 없었다.

그것은 운현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냐 싫어하냐 라고 물어본다면 운현은 확실히 헤스티아를 좋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헤스티아를 완전히 믿고 그녀에게 자신의 전부를 보일정도는 아니었기에 운현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걸로도... 좋아요..."

약간 힘이 빠진 듯한 헤스티아의 중얼거림을 들은 운현은 그녀를 끌어안은 후 속삭였다.

"다른건?"

"그럼... 훌쩍."

참아내려 했던 울음이 터지려 하자 헤스티아는 간신히 울음을 꾹 억누른 후 힘없이 말했다.

"제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해주세요..."

"그정도는 쉽지."

운현은 헤스티아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허리를 움직였다.

40====================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자의 시간 효과로 냉철한 이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그럼 해볼까."

정사에 지쳐 잠들어버린 헤스티아를 내버려 둔 채 씻고 나온 운현은 주머니에서 꺼낸 재료를 손에 쥐었다. 흰거미의 실타레와 늑대이빨, 늑대발톱을 손에 든 그는 재료합성을 시도해보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재료가 사라지고 한장의 가시 줄 카드만 남았다. 다만 아까와 다른 것은 카드의 밑에 한줄의 글씨가 추가되었다는 것이었다.

'출혈 지속? 현자의 시간으로 지력이 높아진 덕분에 생긴건가. 괜찮군.'

기존의 가시 줄 함정은 가시로 상처를 늘렸지만 함정에서 빠져나오면 몬스터들은 특유의 재생능력으로 출혈을 멈췄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가시 줄 함정을 만든다면 어떨까? 좀 더 지속데미지가 강해지지 않을까?

운현은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을 하며 실타레를 하나만 남긴 채 모두 가시 줄 함정으로 변환시켰다.

'그럼 이번에는...'

다른 재료들을 이용한 함정은 새로운 줄을 얻으면 테스트해보기로 하고 운현은 자신이 애용하는 기름통, 실타레, 그리고 늑대 이빨을 이용해 합성을 해보았다.

"이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카드를 유심히 바라 본 운현은 카드에 쓰여진 글씨를 차분히 읽어보았다.

"기름 함정...?"

기름으로 만들어지는 함정이라는 건가? 실제 써보지 못하니 효과를 알 수 없었다. 그림에는 그저 검은색 기름의 웅덩이만 그려져 있을 뿐 이었다.

"폭? 폭발한다는건가?"

기름이 타오를때 폭발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존의 함정을 이용해 기름통을 던질때도 어느정도의 폭발이 일어난 적은 있었기에 운현은 쓴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다.

"꽝이 아니길 빌 수 밖에...."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운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타레가 좀 더 있다면 함정 카드를 더 만들겠지만 실타레가 없으니 재료 합성이 불가능했다. 혹시나 싶어 실타레를 제외한 재료들로 합성을 해보았지만 역시나 재료 합성은 번번히 실패만 할 뿐 이었다.

"으음... 이정도 지력으로도 안된다는 건가? 아니면 재료 합성에도 레시피가 있는건가..."

잠시 생각하던 운현은 스킬창을 열어 재료 합성의 스킬 레벨을 올려보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스킬 레벨이 변화해도 스킬의 변화는 없었다.

"괜히 날린건가. 쩝. 그래도 어딘가에는 쓰겠지."

모든 스킬 중에 쓸모가 없는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우선순위가 있을 뿐이지. 운현은 냉정해진 머리로 후회라는 감정을 단번에 밀어버린 후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럼 지금 당장 할 일은 뭐지?'

현자의 시간이 유지되어 있는 동안 최대한 뽕을 뽑아야 하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운현은 어쩔까 고민하다가 터덜터덜 걸어 방 밖으로 나갔다.

'괜찮은 퀘스트라도 찾아보자.'

일층으로 내려 온 운현은 평소에는 접근도 하지 않았던 퀘스트 게시판 쪽으로 향했다. 수많은 쪽찌들에는 재료를 구해오거나 무언가를 찾아달라거나, 그 외에 잡다한 임무들과 보상들이 적혀 있었다. 그것들을 빠르게 읽어가며 대장간과 관련된 퀘스트를 찾은 운현은 등급이 낮은 대장간의 퀘스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떼었다.

"어라? 운현씨. 퀘스트 해보시려구요?"

뒤쪽에서 들려 온 맑은 목소리에 운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방긋방긋 웃고 있는 필레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운현은 무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 혹시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매일 웃으시던 분이..."

"아. 죄송합니다. 좀 생각할 일이 있어서..."

현자의 시간에는 모든 감정이 무가 되고 오로지 이성만 남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필레 정도의 미녀가 말을 걸든 헤스티아가 벗고 춤을 추든 그것에 대한 성욕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평소와 다를바 없는 목소리지만 이상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를 조심스레 바라보던 필레는 쓴웃음을 지으며 운현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대장간의 퀘스트라면...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거에요?"

"아. 함정의 재료가 필요해서요."

"그렇다면 제가 소개장을 써드릴게요."

"괜찮나요?"

모험가 길드의 길드원인 필레의 소개장이라면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운현이 묻자 필레는 빙긋 웃은 후 말했다.

"음... 운현씨에게는 빚도 있으니까요."

살짝 몸을 돌려 테이블에서 두접시째의 스테이크를 먹는 미야를 가리킨 필레는 운현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 사기꾼은 아무래도 용병길드 소속인 것 같아요."

"용병길드? 그게 뭐죠?"

"아. 운현씨는 모르시겠구나. 나중에 시간 되면 오시겠어요? 던전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조직에 대해서 가르쳐드릴게요."

'모험가 길드만 있는게 아니었나... 확실히 알아두는게 좋겠군.'

던전 도시에 적을 둘 생각이라면 이 도시에서 힘을 쓰는 이가 누군지는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운현은 필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편히 쉬세요~ 곤란한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와주시구요~"

"네. 매번 감사드립니다. 필레씨에겐 항상 도움만 받네요. 제가 뭔가 해드릴게 없나요?"

모험가 길드에 들어왔을 때부터 필레는 자신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과 조언을 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었던 운현이 차분히 묻자 필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 그럼... 저기 개인적인 부탁인데... 들어주실수 있으세요?"

냉철한 이성 상태가 아니었다면 반해버릴 정도로 예쁜 얼굴이 된 필레는 베시시 웃었다. 그에게 살며시 다가간 필레는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운현을 올려다보며 작게 말했다.

"괘, 괜찮다면... 저기... 데이트 한번만이라도 괜찮으니까... 해주실래요?"

"그거야 어렵지 않죠."

"정말요!? 와! 신난다! 그럼 언제요!? 언제 갈까요!?"

굉장히 기쁜 모양이다. 필레는 폴짝폴짝 뛰며 환호성을 내지르고 운현의 손을 꼭 잡았다.

"글쎄요. 조만간 가지요. 매일 던전을 갈 수는 없으니까요. 삼일 후 어떠세요?"

"언제든 좋아요! 헤헤헤~ 기대하고 있어도 되죠?"

"물론이죠."

단순하게 데이트 한번 정도라면 자신에게도 큰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대가로 필레와 친분을 유지하여 길드에서 다른 것들을 얻어낼 수 있다면 오히려 이득이다. 운현은 냉정히 계산을 마친 후 말했다.

"에헤헤헤헤~ 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기대감에 얼굴을 붉게 상기시킨 필레는 생글생글 웃었다. 정말 무척이나 좋은 모양이다. 그녀는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아까의 말을 떠올리고 후다닥 사무실로 들어가 작은 뱃지 하나를 가지고 왔다. 필레의 옷에 붙어 있는 길드 뱃지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색이 달랐다. 구리빛의 뱃지를 가져 온 그녀는 그것을 운현의 가슴팍에 달아 준 후 말했다.

"이게 있으면 모험가 길드에서 우대한다는 표시에요. 이걸 착용하고 제작자 연합에 가신다면 틀림없이 우대받을 수 있어요."

"이거 고맙네요."

"별 말씀을요~ 제가 더 고맙죠! 헤헤헤~ 데이트 기대하고 있을게요!"

말을 마친 필레는 나는 듯한 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 그녀가 있던 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운현은 피식 웃었다.

[패시브 스킬 : 현자의 시간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냉철한 이성 상태가 해제 되었습니다.]

[지력이 99 감소합니다.]

"참 좋은 여자라니까~"

얼굴도 이쁘고 성격도 좋고, 거기에 길드원이라면 능력도 좋을 것이다.

필레의 상냥함을 생각하며 혼자 히죽히죽 웃은 운현은 두접시째의 스테이크를 끝장내고 세접시째의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미야에게 다가갔다.

"맛있게 먹고 있어?"

"오! 운현! 저녁 안먹었으면 같이 하자. 여기 음식 되게 맛있네!"

"응. 스테이크 맛있더라. 여기 스테이크 1인분 더 주세요."

미야의 앞에 앉은 운현은 바쁘게 움직이는 메이드게에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기대된다는 얼굴로 기다리던 미야는 운현의 헤스티아가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헤스티아는?"

"지금 잔뜩 하고 자고 있어."

항상 자신과 하고나면 지쳐 곯아떨어지는 그녀였다. 슬슬 익숙해질때도 됐건만 늘상 잘 느껴주는 것이 또 귀엽다. 운현이 헤스티아를 생각하며 싱글거리자 미야는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핥은 후 물었다.

"으흐으음~ 운현은 생각보다 정력이 쎈가봐?"

"응? 왜?"

"아니. 남자들 같은 경우는 한번 하고 나면 잘 안하려고 하잖아. 그런데 지금 운현의 표정을 보면 또 색욕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훗. 쉽게 죽지 않는 남자. 그게 바로 이 운현님이지."

"잘났어. 정말... 그럼 내 발정기때도 해결해줄거야?"

"그러고보니 묘족에게는 발정기가 있다고 했지. 너도 그 촉수괴물로 해결해?"

"촉수괴물...? 아아. 응. 대부분 수인족들은 그걸로 해결할걸? 애인이나 남편이 있는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뭐... 그런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말야."

소다수를 한모금 마신 후 그녀는 무덤덤히 말했다.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운현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넌 발정기가 되면 어떻게 돼?"

"음... 뭐 어떻게 되고 자시고도 없어. 그냥 계속 섹스만 원하는거야. 하루 종일 그렇게 발정되어 있거든."

"그거 풀어주다가 나 죽는거 아냐?"

"하하하. 너무 걱정마. 그래도 남자와 하면 발정이 쉽게 풀린다고 하니까 말야. 촉수괴물로 흥분을 풀려고 하면 힘들지만 남자와 관계를 한 여자는 발정이 금방 끝난다고 하네."

"넌? 남자랑 해본 적있어?"

한국이었다면 귀싸대기를 맞고 은팔지를 찰 만한 질문을 서슴없이 한 운현은 미야가 쓴웃음을 짓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럼 내가 미야의 처녀를 갖는건가? 야호! 이거 버진헌터가 되겠구만!'

"남자랑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난 복받은거지. 에헤헤헤~"

하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미야는 순수하게 기쁜 듯 미소지었다.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운현은 그녀의 미모를 보며 히죽 웃었다.

"엇? 지금 흥분했어? 나 보고?"

"나야 항상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지. 어때? 지금 할래?"

"하하하~ 그것도 좋지만 지금은 배고파. 좀 더 먹고 싶다고."

"그렇게 먹는데 살이 안찌는걸 보니 대단하다."

복스럽게 잘 먹는 건 좋은데 저 멋진 옆구리에 살이 붙을까 걱정이 된 운현이 묻자 미야는 씩 웃었다.

"기를 운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격투가들은 전투를 하는 것만으로도 격렬한 운동이 되기 때문에 살찔 일이 없어."

"그거 우리 동네 여자들이 들으면 부러워 죽을만한 일이군... 아. 나왔다."

스테이크가 나오자 운현은 그것을 잘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과 미야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모험가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험가들은 진지한 얼굴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 얘기를 저렇게 하는지..."

"아까 들어봤는데 대부분 던전에서 있었던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고."

"굳이 그걸 쉬는 시간에 할 필요가 있으려나..."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전투를 하기 위해서지."

"그런가? 그래도 적절한 휴식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같은 경우가 드문 것 같은데? 여기서 얘기를 듣다보니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최소 삼일에서 길게는 한달 정도를 던전 내에서 머무나봐. 이렇게 한가롭게 쉬며 머리를 식히고 던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게 꽤나 중요한 일인 것 같더라고."

"호오... 한달이나 버틸 수 있단 말인가?"

"남자 모험가가 함께하는 경우는 그런가보더라고."

운현의 질문에 미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몇몇 테이블에는 일고여덟명의 여성 모험가 사이에 한 남자가 끼어 있었다.

'저게 남자 모험간가...'

그래도 전투를 하는 모험가인 만큼 좀 건장할 줄 알았지만 그의 눈에 비치는 남성 모험가의 경우는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아보였다.

"쟤들은 왜 저래?"

"글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거 아닐까?"

"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보이는 남자 모험가를 보며 운현은 탄식을 내질렀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전투 중에 흥분도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높은 흥분도는 던전의 탐험을 방해한다. 그러니 당연히 남자 모험가가 있다면 그것을 풀려고 할 것이고 장기간 던전 안에 있다면 자연스레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애도를..."

"너무 그러지마. 운현. 너도 저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야."

키득거리며 미야가 놀리듯 말하자 운현은 어깨를 으쓱이고 빙긋 웃었다.

'과연 그럴까?'

이 세계에 들어온 이후로 단 한번도 정력이 후달려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일일 일딸을 지향하며 정액배출에 열심이었던 자신이라고 치더라도 이정도의 정력은 이상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 왜 그런 얼굴이야? 뭔가 있어?"

"그건 나중에 네 몸으로 시험해봐."

"헤헤헤~ 이거 기대되는데?"

운현의 자신만만한 얼굴에 미야는 눈을 반짝였다. 어쨌든 상대가 될 남자가 강하다는데 싫어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쾅!"

미야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며 스테이크를 다 먹은 운현은 미야가 입가심으로 쿠키를 시키자 자신 역시도 홍차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자 그것을 먹던 운현은 문쪽에서 큰 소리가 나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란 것은 운현 뿐만이 아닌 듯 보였다. 다른 모험가들도 놀란 얼굴로 그곳을 보았고 그곳에는 거친 인상을 한 비키니형 갑옷을 입은 여인이 커다란 도끼를 든 채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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