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장 혈비도 무랑 (4)
“이곳 사람들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소? 근래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데?”
혹시나 이곳 사람이 자신에 의해 해를 당하지 않았을까하여 물어보자 임무헌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걱정 마십시요. 이미 정의련의 무인들이 안전한 곳으로 모셨습니다.”
“음...”
정의련은 구궁이 자신을 따르고 있는 정사마의 무리들을 통합하여 만든 새로운 무림의 연합으로 비도문과 대치하고 있는 세력이였다.
개인적으로는 쌍도문의 문주의 직을 가지고 있지만, 구궁은 정의련의 부련주의 직도 함께 하고 있는데, 련주가 그의 부하였던 소림이 노진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구궁이 실질적인 정의련의 주인이라 할 수 있었다.
“안내하시요.”
정파의 명문가의 자손인 임무헌이 이런 거짓을 말할리 없다 생각한 장천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하니, 임무헌은 미소를 지으며 봉명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봉명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주위에는 여러가지 기관진식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이러한 진법 탓에 마을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떠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봉명산의 진법은 그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형태로 보아 상당한 수준의 진이 깔려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들어섬에는 진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나갈 때에는 길이 복잡하게 엉켜 있어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듯 했다.
물론 기관진식 정도야 장천 자신의 무공으로 하나하나 파괴하며 지날 수 있었기에 이런 것에 두려움은 느끼지 않았다.
반시진 정도를 오르자 드디어 멀리서 하나의 장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유웅의 말과는 달리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곳이였다.
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한 눈에 보이는 담의 넓이는 족히 백장 가까이 되는 거대한 장원이였는지라 이러한 장원은 비도문의 눈을 속이며 지었다는 것에 조금 감탄하는 그였다.
담장 역시 족히 오장은 될 듯한 것이 하나의 거대한 성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고 있을 정도였는데, 장원의 정문은 이장 정도의 높이의 거대한 철문이였다.
정문의 위쪽의 현판에는 낙천산장(落天山莊)이라 쓰여져 있으니 하늘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바로 자신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기에 헛웃음이 나오는 그였다.
“비도문의 장문주께서 당도하셨다. 문을 열어라!”
문앞에 선 임무헌이 크게 내력을 돋구어 소리치자, 천천히 거대한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그 두께가 상당하고 재질로 미루어 보아 현철을 섞은 듯하니 그 자신이 알고 있는 패도적인 무공을 사용한다 해도 깨뜨리는 것은 어려울 듯 보였다.
웬만한 검으로는 내력을 넣는다 해도 이 정도의 두께의 현철이 섞인 철문을 깨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장원 내부로 들어선 장천은 고개를 돌려서는 뒤쪽을 처다 보았는데, 장원의 담장의 내부 쪽으로 수십개의 창이 뚫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담장 안쪽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였는데, 안력을 돋구어 살펴보니 창문 쪽에서 관에서나 사용함직한 철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장원을 빠져나갈 시에는 수십개의 철포가 일제히 자신을 향해 불을 뿜을 것은 분명한 일이였으니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자신을 불러 들였음을 알 수 있었고, 괴이한 것은 장원 바깥쪽이 아닌 안쪽으로 오장 넓이의 해자가 파여져 있다는 것이다.
봉명산을 비롯하여 장원마저 들어가는 것은 쉬울지 모르나, 나가기는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하나의 철옹성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였다.
오랜시간 자신을 이곳으로 끌어 들이기 위하여 작업을 했다는 생각에 장천으로선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였다.
이 외에도 장원 곳곳에는 수많은 기관지식과 함께 여기저기 장복해 있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지니, 장천이라 하여도 이곳에서 쉽게 빠져나가지는 못할 듯 했다.
장원 신축된 전각들이 수십채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숫자를 보며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자들의 숫자를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족히 일천명은 넘을 듯하군...’
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 하나만을 없애기 위해 장원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의외로 구궁이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 흥미가 돌기도 하는 장천이였다.
다시 두 식경 정도를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연무장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그곳에는 이십여명 정도의 무사들이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무사가 불혹의 나이를 넘지 않을 정도로 젊은 무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들이 입고 있는 복장이 각양각색인지라 하나의 문파에 속한 자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장천의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이 아닌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무기에 있었으니 그들이 허리에 차거나 들고 있는 병기들 중 눈에 띄는 물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장천이 가지고 있었던 신병인 화룡신도와 냉혈검이였으니 멸천문의 본단에서 잃었던 무기를 그들이 지니고 있자 마음이 찹찹해지는 그였다.
화룡신도와 냉혈검 그것은 단순히 무기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쌍도문이라는 과거의 잔재와 연결되어 있는 애착이 가는 물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도문의 장문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장천이 당도하자 이들은 담소를 나누는 것을 멈추고는 무림의 선배를 대하듯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올리니, 모두가 명문의 자손으로 강남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비도문의 문주를 인정하고 있는 듯 했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 비도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혈비도 무랑이 강호에서 활약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였으니, 이들 후지기수들은 과거의 잔재와는 상관없이 그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강호의 모든 명문정파들이 봉문한 5년간의 시각은 이들에게 비도문이라는 존재를 자신들과 적으로 있는 하나의 거대문파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였다.
장천이 자신들의 인사를 받자 임무헌은 연무장에 있는 이들을 소개해주기 시작하니, 역시나 한사람 한사람이 강호에서 한 지역의 패주의 입지를 가진 이들이였다.
특히 장천의 시선을 끈 사람은 바로 냉혈검을 들고 있는 삼십대 가량이 검객이였는데, 놀랍게도 그는 과거 쌍도문에서 본 적이 있었던 젊은 무인으로 기관진식의 명가라 불리는 제갈세가 소가주인 제갈명이였기 때문이다.
제갈명은 귀진자 제갈호의 형이자 현제의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운의 아들로 진법과 함께 강호에는 검에 일각연이 있다 알려져 진검쌍절(陣劍雙絶)이란 명호를 지니고 있었다.
냉혈검은 다른 십대신병과는 달리 어느정도 상승의 음공을 익히지 않는다면 그것을 지니고 있는 자를 광인으로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는데, 제갈명의 두 눈에는 음한의 기운이 서려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음공의 한갈래를 익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갈명이라면 자신의 사형인 임성과 어느 정도 연이 닿아 있는지라 임성의 소식을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현재 쌍도문의 많은 식구들은 쌍도문 내에 구류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곽무진을 비롯하여 장천과 같은 기수의 인물들은 거의 그 종적이 묘연한지라 제갈세가에 남아있었을 그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칫 자신이 내뱉은 말이 그에게 크나큰 해가 될 수도 있는지라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화룡신도를 들고 있는 자를 보았다.
도가의 무인인 듯한 그 자는 도복에 공동파의 표식이 그려져 있었기에 그가 공동의 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처다 보는 눈빛에서 살기마저 어리고 있는 것이 마치 원수를 보는 듯한 모습이였다.
그의 손은 자신이 도착함과 동시에 이미 검의 손잡이에 가 있었으니 시기만 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을 향해 덤비려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자들의 손에는 유성신창과 냉혈검, 화룡신도 뿐만 아니라 귀혼부는 홍련교의 소유인 천마패와 혈마가 들고 있을 흑마겸, 곽무진이 가지고 있던 파사신검, 구궁의 애병인 진천벽력궁들이 보이고 있었으니 장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탈혼섬광구비도를 합한다면 십대신병의 거의 대부분이 한 곳에 모여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신병이 이곳에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자들 모두가 신병상의 존재하는 무공을 익히고 있다면 이 싸움은 결코 쉽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십대신병의 수좌인 탈혼섬광구비도 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십대신병 2위 자량신화목검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종적이 묘연한 신목검객 소나가 지니고 있는 자량신화목검은 목검 자체에 3갑자의 내력이 서려 있는지라 단지 내력을 운용만 할 수 있는 자라 할지라도 단숨에 3갑자의 내력을 지닌 고수로 변모시킬 수 있는 무기였다.
하지만 자량신화목검의 두려운 점은 그 검이 장천이 들고 있는 탈혼섬광구비도의 철저한 상극이라는데 있었다.
자량신화목검상의 무공에는 근본적으로 살상의 능력이 다른 무기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만, 무림에 존재하는 무공 중 가장 수비에 뛰어났다.
자량신화목검을 든 자가 검진을 이룰 때 수비의 위치를 맡는다면 장천이 아무리 천하제일고수고 공격으로는 최고의 위력을 지니고 있는 탈혼섬광구비도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자량신화목검상의 방어를 뚫기란 어려운 일이였다.
이런 이유로 다른 신병에 비한다면 단순히 내력이 3갑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위력이 떨어지는 자량신화목검이 신병의 서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십대신병 외에도 다른 병기 또한 모두 칠흑같은 검은빛을 띄고 있는 것이 순수한 현철로 주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병기를 상대함에 자신의 병기의 유리함을 크게 따질 수 없는 형편이였다.
장천을 안내한 임무헌을 포함하여 장천의 앞에 서 있는 자들의 숫자는 모두 이십팔명으로 한명 한명이 뛰어난 무공을 소유하고 있는 젊은 후지기수들이였다.
모두를 소개한 임무헌은 장천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들은 정의련에서 이십팔숙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십팔숙은 비도문 역시 감지하지 못하게 비밀리에 연성이 된 젊은 후지기수들이였으니 이들은 강호에 전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철저하게 장천을 상대하기 위한 무리들이였다.
뒤에서 수많은 암계를 통해 일을 처리하는 구궁의 존재와는 달리 자신들을 정의련 이십팔숙이라 칭하고 있는 젊은 후지기수들은 정대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였다.
“재밌군.”
구궁이 만들어 놓은 자들을 보며 장천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금을 통틀어 가장 혼란하다고 있는 현세의 무림, 수없이 많은 권모술수가 펼쳐지는 무림에서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들을 보며 그저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혼란의 전대에도 이러한 자들이 없지만은 않았지만, 지금의 장천에게 이러한 자들은 뭔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이단의 인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 역시 이자들과 같이 될 수 있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에 잠시 후 장천은 분노마저 일고 있었으니 자신을 처다 보고 있는 임무헌을 보며 살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본좌와 장난을 하자는겐가?”
“헉..”
아직 강호에 대한 경험이 미천했던 임무헌으로선 직접 장천의 살기를 느끼자 자신도 모르게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으니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도는 사문에서 보았던 존장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꺽여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은 임무헌은 간신히 정신의 한가닥을 놓치지 않고 힘을 내어 뒤로 물러서니, 이미 다른 동료들 역시 그러한 압박감을 느끼고는 병기에 손을 가져간 상태였다.
“흥!”
그들의 모습에 장천은 콧방귀를 뀌며 손을 들어서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본좌를 쓰러뜨리려 했다면 이런 방식이 아니라, 암습을 택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그것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겠지.”
“무...무슨 말씀이십니까!”
명문가의 자손으로서 암습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임무헌은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했으나, 그것은 장천에게 더욱 조소를 흘리게 할 뿐이였다.
“덤벼라! 너희들이 원하는대로 선배로서 삼수 정도는 양보해 줄 용의가 있다.”
“큭!”
장천의 말에 임무헌은 천천히 뒤로 고개를 돌리니, 다른 이들은 이미 장천을 상대로 준비해 놓았던 검진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기에 임무헌은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찾아 들어가서는 그를 보며 말했다.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없다면 실례를 하겠습니다.”
“기다렸던 바다.”
그의 말에 장천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젓자 장력이 일렁이며 연무장은 장천을 중심으로 강렬한 돌풍이 형성되었다.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상황에 임무헌을 비롯한 후지기수들은 크게 당황하였으니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는 검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십팔명의 무인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진법과 힘이 더해져 장천이 흔들어 기류를 잠재우며 장천의 패도적인 기운에 맞서기 시작했다.
허공을 격하고 이루고 있는 공력의 대결, 하지만 장천은 이십팔명의 적을 상대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 이들로선 경의감마저 들고 있었다.
하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 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임무헌을 지시에 따라 이들은 빠른 속도로 진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강렬한 기도는 변화해가며 잠시 후 이들은 현란한 움직임으로 장천의 주위를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
재미없당..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