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장 정무맹의 노도 (3)
정명으로선 사실 혈비도 무랑보다 장천을 더 두렵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약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고수들과 나란히 할 수 있는 무공을 지니고 있는 그는 많은 질시를 받을 것은 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파가 다른 사파나 마교에 비해서 극히 좋지 않은 점을 꼽는다면 바로 이런 질시에 의한 암투가 쉬지 않고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파에서는 노골적으로 그런 자들을 질시하며 암투를 벌인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사파의 고수들은 나름대로의 처세술이 존재했고, 마교는 하나의 종교집단이였기 때문에 이러한 암투는 적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파의 경우에는 어느정도의 경험이 있지 않으면 이러한 처세술을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칫 거대문파가 아닌 중소문파에서 이러한 인재가 나타나면 명문의 무리들에 의해서 숙청당하기가 일쑤였다.
지금 장천의 입장이 바로 이러한 것이였으니 현재는 멸천문의 득세로 그러한 것이 많이 사라졌다하지만 모든 일이 마무리 됬을 때는 지금 보인 일이 빌미가 되어 무림 공적이 될 수도 있었다.
‘과거에 그를 향해 무림 대살령이 내려진 적도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일은 반드시 생긴다고 보아야겠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중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는 정명이였다.
물론 신검진인과 천무성자라는 정파의 커다란 별인 두 사람이 있어 아직까지는 그리 문제가 없었지만, 두 사람이 죽는다면 막을 수 없는 사태가 될 것을 분명한 일이였다.
참외동에서의 싸움이 끝난 이후 청의단과 그곳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모두 정무맹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이들의 정보에 따라 드디어 최대의 거사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싸움에서 정무맹은 십중팔구는 승리를 하게 되니 한 때 무림을 전부 집어 삼킬 듯했던 멸천문의 기세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강남 일대를 거의 점령하다 시피하고 강북의 일부마저 세력권으로 했던 멸천문은 강북의 세력은 완전히 빼앗기고 강남마저 귀주와 호남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정무맹과 치열한 접전이 행해지고 있었다.
귀주의 멸천문의 본문에서는 급한 전갈이 쉼 없이 오가고 있었으니 벌써 멸천문에 등을 돌린 문파가 수십은 넘은 듯 했다.
태상문주인 혈비도 무랑의 거처에서는 각 대주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으니 상좌에 있는 혈비도 무랑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각 대주들은 이만 물러 가도록 하시요.”
“하오나!”
아직 대책에 대해서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대주들은 그의 말에 물러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혈비도 무랑이 살기를 띄우자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전각을 빠져나왔다.
대주들이 모두 사라지자 그늘진 부분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그에게 걸음을 옮겼으니 바로 하노인이였다.
“오셨습니까?”
“이제 거의 대계가 끝이 나는 듯 하구만.”
“그렇습니다.”
하노인의 말에 혈비도 무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더니 그에게 말했다.
“음귀곡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든 무공을 마무리 짓고 이제 자네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네. 음귀곡에서 훈련받은 아이들 일만명은 모두 비도문의 진정한 제자라고 할 수 있지.”
비도문의 제자들, 혈비도 무랑과 하노인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무사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귀곡에서 수련하고 있는 아이들은 멸천문에서 끌어 들인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멸천문에 있는 뭇고수들은 혈비도 무랑이 섭외하여 지금까지 비도문에서 얻은 무공 중 일부와 영약들을 제공하여 단시간에 무공을 극상승 시킨 자들이였지만, 음귀곡의 무사들은 달랐다.
오랜 시간 축적된 비도문 무공 중 뛰어난 것만을 선택하여 익혔고, 각종 영약을 복용하여 내공 역시 뛰어나니 이들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강호는 경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은 분명했다.
멸천문과는 전혀 다른 고수들에 의해서 말이다.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정무맹이 이곳까지 밀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천이는?”
“그 때 쯤이면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음...”
과연 혈비도 무랑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였다.
한편 정무맹은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귀주에 있는 멸천문의 본문을 제외한다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호남의 지부에서도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제 정무맹의 노도와 같은 기세를 막을 자는 없다 보여지고 있었다.
“와아아!!”
호남성의 지부를 점령한 정무맹의 무인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니 대지가 크게 뒤흔들리는 것과 같았다.
이들 중에는 장천과 곽무진을 비롯하여 의형제들도 모두 모여 있었으니 그들 이 싸움에서 승리한 기쁨에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귀주에 있는 멸천문의 본문 뿐이다.”
“응.”
동방명언의 말에 장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있었지만, 마음만큼 그렇게 기쁜 마음을 표시 할 수가 없었으니 바로 구궁과 함께 사라진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요운 때문이였다.
장천이 구궁에 의해 함정에 빠진 후 사라진지 거의 일년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이들의 소식은 없었다.
한참을 함성을 지르던 곽무진 역시 장천의 이러한 걱정을 아는지 이내 한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사숙모님과 제수씨 걱정이구나.”
“예.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살아 있다는 소식이라도 있으면 조금 마음이 놓일텐데 말입니다.”
확실히 생사조차 알 수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 보다 마음에 근심이 더욱 크다 할 수 있었으니 장천의 이러한 모습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곽무진이였다.
쌍도문의 문주인 장춘삼 역시 이러한 일로 얼굴에서 근심이 가시지를 않는 것을 보며 하루 빨리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그였다.
“장단주.”
“아! 감단주님.”
이들에 대한 생각을 잠겨 있을 때 그의 곁으로 중년의 남자가 너털웃음을 흘리며 걸어오니 장천은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그는 곤륜파의 곤륜제일검이라는 불리는 감인이라는 사람으로 현재 정무맹 청룡단의 단주였다. 검술에 뛰어난 그는 자신의 명성이나 직위보다는 무공과 인의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였기에 장천이 정무맹에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였다.
“뭐하는겐가. 좀 있으면 다음 싸움을 위한 회의가 있을텐데 말이야.”
“잠시 승리에 취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하자 감민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젊은 혈기이니 당연한 것이지. 자 가세나.”
“예.”
감단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장천은 걸음을 옮기니 이곳 지부의 건물에 임시로 정한 맹주의 처소에는 이미 다른 단주들이 거의 대부분 모여 있었다.
총 십오명의 단주들은 모두 엄숙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으니 맹주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올린 장천은 자리에 앉았다.
“모두 모인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도록 합시다.”
정무맹의 부맹주인 신검진인은 단주들의 모습을 흝어보고는 말하니 한 사람이 일어나 맹주에게 포권을 하니 그는 이번 싸움에서 선봉을 맡았던 백호단의 단주이자 화산파의 문주인 악인명이였다.
“이번 싸움을 끝으로 이제 남은 것은 귀주의 멸천의 악도들의 본거지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기세를 이어가 단 숨에 본거지를 쓸어 버리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악인명의 말에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청성파의 문주를 비롯하여 대여섯명의 사람들은 화산파 문주의 의견을 수궁하지 않는 듯 했다.
“물론 기세를 이어가는 것도 좋지만, 상대는 혈비도 무랑입니다. 악도들의 본거지를 이곳과 같이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개방의 보고에 따르면 멸천문을 따르던 무리들 중 상당수는 이미 등을 돌렸고, 남은 것은 처음에 비해 오분의 일도 남지 않은 숫자뿐입니다. 시간을 흩어져 있는 이들이 귀주로 모일 것이니 하루 빨리 손을 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청성파 문주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이 소리친 악인명은 남아 있는 잔당들이 한 곳으로 모이기 전에 이들을 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계속 두 무리들의 의견이 대립하자 장내는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니 그 때 신검진인이 헛기침을 하며 좌중에 있는 사람들을 조용하게 했다.
“자 모두들 진정하십시요. 화산파 문주님과 청성파 문주님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좌중에서 아무런 말이 없자 신검진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좌에 앉아 있는 천무성자를 보며 말했다.
“맹주님은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신검진인의 물음에 천무성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좌중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본인 역시 화산파 문주이신 악대협과 같은 뜻이요. 물론 상대가 상대인 만큼 신중한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싸움에서 그 기세를 살리는 것은 어떠한 것 보다 중요하니 개방의 보고에도 있는 만큼 적의 기세가 크게 꺽여져 있는 지금 시점에 단숨에 몰아붙이는 것이 좋을 듯 하오이다.”
맹주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니 천무성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말했다.
“자! 지금의 여세를 몰아 귀주로 진격하도록 합시다. 각 단의 이동은 단주들에게 일임하겠소. 집결지는 귀주의 멸천문! 그곳에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예.”
천무성자의 말에 모두 자리에 일어나서는 포권을 하며 대답하니 각기 자신이 맡고 있는 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장단주는 잠시 나와 이야기 좀 하세.”
“예.”
청의단의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던 장천은 신검진인이 자신을 보자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걸음을 옮겼다.
모든 단주들이 나간 지금 이곳에는 맹주인 천무성자와 부맹주인 신검진인만이 남았으니 장천이 자리에 앉자 신검진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에 정무맹 내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더구나.”
“좋지 않은 소문이요?”
그의 말에 장천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물어보니 신검진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듣자하니 너의 손속이 잔인한 것이 사파의 무리들과 다를 바 없다하더구나.”
“음...”
“그런 소문이 와전되었는지 개중에는 네가 정무맹을 배신 할 것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더구나.”
“그런 말도 안됩니다!”
신검진인의 말에 장천은 크게 놀라 소리치니 천무성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네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이러한 소문들은 그냥 한 쪽 귀로 흘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네.”
“휴..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장천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니 신검진인은 그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일단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도록 하게, 최대한 은인자중하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알겠습니다.”
“청의단 역시 소림의 정명에게 맡기고 이번 싸움에서는 물러나도록 하게.”
“예?”
신검진인의 말에 장천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으니 이번 싸움에서 빠지라고 하는 것은 그들과의 마지막 일전을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장천으로선 자신의 문파와 의형제들이 참여하고 있는 싸움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 할 수 없는지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휴...이건 모두 자네를 위한 일이네.”
“문파의 사형제들과 의형제들이 싸우고 있는데 저 혼자 빠질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버려두고 어찌 혼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 장천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신검진인은 길게 한 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