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260화 (261/355)

제 48 장 사로잡힌 장천 (3)

한편 적에게 사로잡힌 장천은 초췌한 모습이 되어 있었으니 비파골 쪽으로 쇠꼬챙이가 꿰뚫려 있고, 쇠사슬로 온 몸을 포박당한 그는 더 이상 움직일 힘 조차 없었다.

사로잡힌 후 거의 서말 이상의 산공독을 퍼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먹은 그였으니 내력을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다.

“천아! 천아!”

뒤 쪽의 마차에선 데비드가 그를 부르고 있었으나 장천은 제대로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휴...아무런 대답이 없다...”

장천이 좀 처럼 움직일 생각을 못하자 데비드로선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으니 옆에 포박되어 있던 동방명언 역시 안타까운 표정이 가득했다.

“우리만 아니였다면....”

“명언....”

동방명언으로선 장천이 혼자서도 충분이 빠져나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 자신들 때문에 저런 꼴이 된 것에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 데비드를 보며 말했다.

“데비드 밧줄을 풀 수 있겠냐?”

데비드가 산공독에 당했다고는 하나 힘을 타고난 사람인지라 물었던 것인데,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려워. 지금은 돌맹이 하나를 잡을 힘도 없다고...”

“마지막 희망은 곽대형 뿐인가..”

곽무진과 소림의 정필이 백화대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동방명언으로선 그에게 마지막 희망을 기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만을 가지고 있을 그가 아니였으니 손으로는 자신을 손을 포박하고 있는 밧줄을 마차의 나무조각으로 자르고 있었다.

물론 쉽게 잘려질 밧줄은 아니였지만, 그의 시도는 멈추지 않았으니 거의 세시진마에 약간의 흠집을 낼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이틀 정도후면 밧줄을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한 그였으니 밧줄을 푼 후의 계획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청의단의 무인들이 끌려간 곳은 멸천문이 호남에 만들어 놓은 임시지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였는데,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싸움에서 적들을 가두어 놓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으로 만양산(萬洋山) 중턱에 세워져 있었다.

지부에 있는 동굴로 들어가면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졌는데, 호리병 모양으로 띄고 있었기 때문에 벽호공이나 경공이 뛰어난 인물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할 수 있었다.

죄인들이 갇혀 있는 곳은 상당히 넓어 그 끝과 끝의 거리가 수백장은 넘을 듯 하니, 자연이 만든 이러한 장소를 찾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였다.

이곳에서 출입하기 위해선 입구 쪽에 만들어져 있는 승강장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 있었으니 청의단의 무사들은 멸천문의 무사들에 의해서 이곳 참회동(慙悔洞)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장천만은 참회동 내에서도 악질의 죄인만을 가두는 유사옥(流砂獄)에 갇혀 있었으니 하루에 한번 떨어뜨려 주는 밀떡 하나에 목숨을 연명할 수 밖에 없는 가혹한 곳이였다.

동방명언과 데비드들은 참회동내에서는 포박이 풀려 있었지만, 산공독에 의해 내력이 소실되어 있었기에 무공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였다.

“명언 어떻게 됬어?”

“대충.”

데비드의 말에 동방명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 소매를 살짝 보여주니 그곳에는 짧은 단검이 하나 들려 있었다.

이곳으로 끌려오기 직전에 밧줄을 풀게 된 동방명언은 청의단의 포로들을 참회동으로 끌고 가는 멸천문의 무사들에게서 단검 하나를 훔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검 하나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답하기만 한 데비드였는데, 일단은 명언의 말에 따라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소림의 정운은 물론 화산의 악의명과 이백까지 한 수 재간이 있었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니 그 중에서는 이 전의 싸움에 잡혔던 다른 정무맹의 고수들도 있었다.

참회동은 그 지형이 지형인 만큼 멸천문의 무사들이 참회동 내를 감시하지 않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그래 우리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가?”

화산의 악의명은 미간을 찌프리며 물었는데, 평소에 보이던 깔끔한 모습과는 달리 조금은 초췌한 모습이 되어 있었으니 산공독으로 내공을 잃은데다가 한동안 몸을 씻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악의명에게는 치욕과도 같은 일이였으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였다.

“이곳을 빠져나갈 방도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흥! 산공독으로 내공마저 흩어진 상태에서 무엇을 어찌하겠단말인가? 이 동굴을 빠져나간다하더라도 삼류의 무사조차 상대하기 버거울 것은 분명한 것이 아닌가.”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데비드는 노기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악대협은 혼자 이곳에 평생 동안 처박혀 있으시요! 우리들은 죽더라도 이곳을 빠져나가고 말테니까 말이요!”

“뭣이!”

“흥! 내공마저 상실했으니 한번 붙어볼만 하겠군!”

화를 내는 악의명의 말에 데비드는 콧방귀를 뀌며 한번 붙어보자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악의명으로선 잠시 흠찟할 수 없었다.

서역 출신의 데비드는 중원인인 그에 비해 족히 일척 가까이 키가 근데다가 몸 역시 우락부락하여 외공을 익힌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 붙는다면 누가 패배할 것인지는 눈에 보이는 일이였다.

그런 이유로 악의명은 미간을 찌프렸지만, 차마 데비드에게 대들지 못하고 있었으니 회심의 미소를 지은 데비드는 자리에 앉아서는 동방명언에게 계속 말을 하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가 산공독에 의해 내공을 잃고 이런 곳에 갇혔다고는 하지만, 희망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생각을 해본다면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동방명언의 말에 청의단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데, 잠시 후 한쪽 구석에 있던 누더기의 중년남자가 그를 보며 말했다.

“동방소협이라 했소이까?”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으십니까?”

“본인은 정무맹의 소속되어 있는 무쌍방(無雙幇)의 기영이라 하오.”

“기대협이셨군요. 예. 말씀하십시요.”

“내가 이곳 참의동에 갇힌 것은 족히 일년은 넘는데, 그 동안 멸천의 문도들에게 한 가지 흐르는 소문을 얼핏 들은 적이 있소이다.”

“소문이요?”

기영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 모였는데, 잠시 헛기침을 한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확실하다 할 수는 없소이다만, 멸천문이 자신들의 포로를 가두기 위하여 이곳을 만들 때 한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는 가족들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이 참회동을 만들었다고 했소이다. 하지만 비밀을 지키기 위해 멸천문의 악도들은 그를 이곳에 가두었다고 들었소.”

“음...”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말에 사람들은 술렁거리고 있었으니 이곳을 만든 사람이 있다면 탈출방도 또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분의 이름과 어느 곳에 갇혀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본인 역시 그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자가 유사옥에 갇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사옥이라면?”

“그가 만든 특수한 감옥으로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유사가 뒤덮혀 있어 발을 잘못 디디게 된다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유사에 묻히게 된다는 감옥이요. 이곳에 갇힌 자들 중에서 쉽게 다룰 수 없는 고수들만을 가두어 놓는 곳이라 들었는데, 이곳에서 그 자의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그곳에 갇혀 있지 않을까 생각하오이다.”

일년 가까이 이곳에서 갇혀 있었다는 기영의 말이라면 어느정도 믿음이 간다고 할 수 있었지만, 내공을 모두 상실한 상태에서 어떻게 유사옥이라는 곳을 갈 수 있을까 암담할 수 밖에 없었으나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지라 동방명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기대협께서 저희들을 그곳의 입구로 안내해주십시요.”

“알겠소이다.”

유사옥, 멸천문에 대항한 자들 중 가장 껄끄러운 인물들만을 가둔 감옥으로 일년 전 이곳에 만들어졌을 때 멸천문의 태상문주인 혈비도 무랑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감옥이였다.

단순히 유사의 함정 뿐 아니라 총 12개의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이곳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쉽게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유사옥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는 온 몸을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는 것은 물론이요. 비파골이 꿰뚫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장천이였다.

“합!”

비파골 쪽에 쇠꼬챙이가 꿰뚫려 있는지라 팔에 입을 사용할 수 없는 장천은 두 다리에 내력을 돋구어 쇠사슬을 끊으려 했지만, 좀처럼 그것은 풀리지 않으니 한 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산공독으로 내공이 흩어져 있었다고 하나 천무성골에다 여러가지 정순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장천에게 내공을 다시 단전으로 몰아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내공이 모리기는 했으나 몸을 포박하고 있는 쇠사슬을 풀 수가 없었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젠장할! 쇠사슬 정도는 끊을 수 있는데!”

장천의 내공이라면 쇠사슬 정도야 노끈같이 느껴질 정도였음에도 좀처럼 그를 포박한 쇠사슬을 풀리지 않으니 이것이 보통 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에서는 은은하게 흐르는 검은 빛과 함께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밀려오고 있었으니 장천은 이내 이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현철인가....”

현철은 무림인들에게는 금은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있는 금속으로 이것으로 무기를 만든다면 신병은 되지 못할지라도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었다.

검은빛을 자아내는 현철은 쇠 자체가 냉기를 띄고 있는데다가, 상당한 경도와 함께 내력 마저 쇠에 비해 아무런 저항 없이 전도되는 금속이였다.

이런 현철을 수갑 같은 것에 쓰게 되면 내공이 높은 자라 할지라도 쉽게 끊지 못하니 장천으로선 한 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장천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에게는 또 다른 무기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장천은 만약의 경우를 위하여 자신의 뒷덜미 속에 하나의 비도를 감추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혈비도 무랑에게 받은 탈혼섬광구비도의 한 자루였다.

중원은 암계가 난무하는 곳인만큼 장천 역시 그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장천의 문파인 쌍도문은 암기술이 전무한 쌍도문이였고, 그와 같은 고수가 다른 무기를 숨겨 놓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멸천문의 문도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비도가 있다고 할지라도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손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미치겠군!”

사지는 꽁꽁묶여 있어 움직일 수 없는데다가 뒷통수 쪽에 있는지라 입으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그였으니 한 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렵긴 하지만...한번 해보자..’

장천은 한참을 고심하다 이내 결심을 하고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격공섭물의 수법이였다.

장천의 내력이라면 격공섭물이야 어렵지 않게 시전할 수 있었으나 혈철의 기운이 장천의 내공은 십분의 일 이하로 줄여놓고 있는 형편이였기에 격공섭물의 수법도 그리 용의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니, 정신을 집중하여 기를 움직이는 장천이였으니 잠시 후 뒷통수에 있던 비도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

장천은 더욱 더 집중하여 비도를 움직이려 하니 비도는 서서히 그의 뒷통수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쨍그렁!]

하지만 약간의 방심으로 뒤통수에서 나온 비도는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고 마니 장천으로선 안타까움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아! 젠장할!”

비도는 장천의 발 밑으로 떨어져 있었으니 미간을 찌프린 장천은 발가락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그의 신발은 천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신발을 완전히 벗은 장천은 발가락을 사용하여 비도를 잡기 위해 애를 쓰니 한참을 힘을 다하여 비도를 향해 뻗은 발가락은 간신히 비도의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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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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