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장 광무자의 마지막 가르침 (4)
하지만 광무자는 장천의 손에 죽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지금 죽지 않고, 쌍도문에 돌아가 그 동안 친분이 깊었던 사람들을 보고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장천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마지막을 하지 못하게 한다.
‘무인으로서 이 아이는 너무나 유약하다...강인함을 알게 하지 않는다면 이 아이의 생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광무자는 장천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장천은 조금씩 마음을 안정시켜 나가니 광무자는 그를 보며 말했다.
[네가 지금 힘든 것은 알겠으나, 강호에 살아가는 무인으로서 이것 보다 더 힘든 일도 겪을 것이다. 그 때 마다 이렇게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어찌 무인의 몸가짐이라 할 수 있겠느냐.]
“흑흑...”
훌쩍이며 눈물을 감춘 장천은 잠시 후 마음을 가다듬으며 광무자를 보며 말했다.
“대사형...대사형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고맙다...천아..]
장천이 마음을 결정하자 광무자는 고맙다는 말을 하니 그 부탁이 힘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적강시가 된 광무자의 앞에 선 장천은 눈물을 흘리며 두 손에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니 그의 손에는 화의 무공으로 인하여 강렬한 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내력이 올라감에 따라 공기 중에 불꽃이 일렁이니 붉은색의 불꽃은 잠시 후 푸른색의 고온의 불길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광무자를 고통없이 한 번에 보내기 위함이였다.
“화의 무공! 홍염만화!”
내력이 극성에 이르자 장천은 홍염만화의 초식을 사용하여 두 손에 모인 화의 무공을 광무자를 향해 시전하니 무적강시가 된 광무자의 몸은 불길이 치솟는가 싶더니 잠시 후 불길에 의해 타오르기 시작했다.
[천아....다시 세상에 환생하게 된다면...또 다시 너와 함께 하구 싶구나..]
“예. 대사형..흑흑..저도요..”
눈물을 흘리며 장천은 광무자의 마지막 말에 대답을 하니 그의 몸은 점점 불길이 강해지며 잠시 후 검게 물드는가 싶더니 더 이상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다.
“대사형!!!”
광무자의 몸이 부서져 내리자 장천은 포효를 하듯이 소리치며 마음속의 울분을 분출하니 그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지 않을 듯이 되풀이 되어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광무자의 몸은 이제 하얀 재가 되어 있었으니 장천은 다리에 힘이 빠진 듯 쓰러져 무릎을 꿇고 말았다.
“흑흑흑..대사형...대사형...”
하얀재가 되어버린 대사형의 몸을 두 손으로 받아 쥐며 있을 수 없는 체온이나마 느껴보고자 얼굴에 가져가는 장천이였으니, 그의 남아 있는 재는 장천의 눈물과 섞이며 검게 변해 동굴의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멸천문이 중원의 패권을 거머쥔 시점 호북 무당을 중심으로 정무맹과 세외에 거점을 두고 있는 홍련의 잔당들이 만들어진 백화교가 유일하게 멸천문에 대항하고 있는 유일한 세력이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홍련교, 대사련, 무림맹이라는 중원의 삼대세력을 손에 넣은 멸천문에 비해서는 미약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정파의 자존심인 구파일방이 모여 있는 정무맹은 계속 밀려오는 멸천문의 공세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다행이 신검진인을 중심으로 모인 무림의 내노라하는 고수들이 모여 있는지라 쉽게 거점인 무당을 뺏기지 않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시각은 점점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무당의 진무관에는 구파일방의 수장들이 모두 모여 있었으니 그들은 현 사태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었지만, 어느 한 사람 이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는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무맹은 무림에서 고립된 위치라 할 수 있었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세력이라면 홍련교의 잔당들이 만든 백화교 뿐이였는데, 정파인으로 한 때 마교라 부르며 하찮게 여기던 세력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휴...한 숨 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화산의 문주 악인명은 입을 열지 못하는 사람을 보며 한 숨을 쉬었으니 이들 중 가장 말석에 위치한 인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당을 떠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말에 모든 이의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었으니 그는 바로 쌍도문의 문주인 장춘삼이였다. 멸천문에서 살아남은 자에 의해서 그의 무공이 드러나자 다른 이들의 눈도 달라질 수 밖에 없었으니 구파일방의 문주급 인물들 만이 모이는 이 회의에 참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그것이 좋다 생각하오.”
장춘삼의 말에 동참을 한 사람은 바로 정무맹의 맹주인 천무성자였으니 모두들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나, 간신히 무당을 지켜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정무맹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까. 이 와중에서 무당을 버리고 멸천문에게서 도망친다면 지금까지 중립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모두 멸천문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화산파 문주의 말에 몇몇 문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장춘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당을 지키고 있는다해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다면, 거점은 오히려 넓은 생각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멸천문은 대사련과 무림맹, 홍련교를 포섭함으로서 거대해졌다하지만, 실제로 주축을 이루고 있는 문파는 중소문파들 구파일방 하나하나의 힘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니, 각기의 문파끼리 흩어져 차근차근히 그 토대를 무너뜨린다면 이 싸움의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음....”
장춘삼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닌지라 사람들은 모두 침음성을 흘렸는데, 그 때 진무관으로 한 문도가 급한 표정으로 뛰어들어왔다.
“맹주님!”
“무슨 일인가?”
급한 표정으로 들어온 문도를 보며 혹시 멸천문이 처들어 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물어보니 그는 숨을 몰아쉬고는 말했다.
“무당으로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멸천문의 문도인가?”
“아니..그것이 아직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단 한 사람 뿐인데 무당산을 둘러싸고 있는 멸천문의 무리들이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음...”
그의 말에 이상하게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무당을 둘러싸고 있는 멸천문의 숫자는 기만을 넘어서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인데다가 고수들의 숫자도 상당했는데, 그런 무리들이 혼란스럽게 변하게 만들 자가 누구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떤 자인지는 확인은 했는가?”
“그것이 개방의 육족비행 윤문대협께서 알아보았는데, 아직 약관도 되지 않는 젊은이라 합니다.”
“약관도 되지 않았다고?”
“예. 특이한 점이 있다면 허리에 검과 도를 차고 있고, 관을 하나 끌고 오고 있다 합니다.”
그의 말에 끝나는 순간 장춘삼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니 크게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요. 장문주?”
“맹주님! 그 아이입니다.”
“그 아이라면...혹시 귀문의 소주를 말하는 겐가?”
“그렇습니다!”
“이런!”
장춘삼의 말에 천무성자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의 얼굴도 크게 당혹스러운 얼굴이였다. 천무성자 역시 장천은 다음 대에 무림을 이끌 인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가 기만이 넘는 멸천문의 포위망을 뚫고 오고 있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무성자는 급히 장춘삼과 함께 진무관을 나섰고, 신검진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이들의 뒤를 따르려 했다.
“신검진인님. 쌍도문의 소주가 누구인데, 천무성자께서 저리도 놀란 표정을 지으시는 것입니까?”
화산문주의 말에 신검진인은 장천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장천이라는 아이로, 현재 쌍도문의 소주입니다.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아이인지라 천무성자와 함께 저 역시 주목하고 있는 아이이지요.”
“신검진인께서도 말씀이십니까?”
“그럼.”
뭇 문주들은 천무성자와 신검진인이라는 당대 무림의 최고수들이 모두 주목하는 아이라는 말에 놀라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천하를 양분하고 있는 정파의 두개의 산맥 중 하나인 무당, 이 무당파가 존재하고 있는 무당산에는 수많은 군웅들이 모여 있으니 이들 모두는 바로 멸천문에 뜻을 따르고 있는 문파들이였다.
워낙 그 숫자가 많은지라 두려워했던 구파일방 마저도 하찮게 생각하고 있는 그들이였는데, 지금 이 시점에선 과거의 구파일방을 두려워하던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드러나 있었다.
거의 기천이 넓게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병장기를 들며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어느 한 사람 함부로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얼굴이 가득한 이들은 자신들이 공격하려는 자가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이는 아직 약관을 넘지 않을 듯한 모습의 남자였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왼손으로 관이 실려 있는 수레를 끌고 있다는 것이였다.
“고..공격하지 않는겐가..”
“아!...고..공격해야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역을 침범한 자를 죽이기 위해 모여 들었지만, 어느 한 사람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들을 이렇게 공포로 몰고 있는 이유는 바로 뒷 쪽에 있었다.
그가 지나갔다 생각되는 곳의 뒷 편으로는 사람의 시신이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거나 동사하여 죽은 이들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었으니 그 수는 족히 수백은 넘을 듯한 숫자였다.
“뭐하는 것이냐! 저 자를 공격하지 않고!”
멸천문에서 온 단주는 사람들이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자 노기를 터뜨리며 소리치니 그제서야 한 두명이 움직이더니 잠시 후 수십의 무사들이 병장기를 들고는 큰 소리와 함께 그를 공격해 들어갔다.
“죽어라!”
“합!!”
고성과 기합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그의 주위로는 수십명의 무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는데, 그들이 일장 거리에 올 때 까지 그저 수레만을 끌며 걸음을 옮기던 그는 상대가 일장의간격 안으로 들어서자 끌고 있던 수레는 내려놓고는 두 손을 양쪽으로 뻗었다.
“끄아악!!”
“사람살려!”
그 순간 엄청난 일이 벌어졌으니 그의 오른쪽에서는 사람을 일순간 재로 만들어 버릴 듯한 강렬한 열기가 사방으로 밀려들어가며 사람들을 태웠고, 오른쪽은 흐르고 있는 피마저 얼려 버릴 듯한 냉기로 인하여 제대로 입도 다물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몸이 얼어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강렬한 열기에 몸이 타들어가자 사방에선 비명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니 순식간에 삼사십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자 군웅들은 또 다시 전과 같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을 공격해 들어오지 않자, 그는 천천히 수레를 잡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무공에 뭇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가 지나가는 길을 비켜 설 뿐이였다.
“멍청한 녀석들!”
수천이 넘는 무인들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하고 물러서는 것을 보며 멸천문의 간부급 인물이 이들을 욕하며 모습을 드러내니 그가 나서자 사람들은 눈빛도 달라지고 있었다.
한자루의 거치도를 들고 있는 육척의 거구의 무사는 바로 멸천문의 천인대주의 직위에 있는 자로 사람들에게 혈견(血犬)이라 불리는 이경 이라는 자였다.
과거에는 사람의 목을 베는 망나니일을 했던 이경은 멸천문에서 무공을 배움으로서 고수가 된 인물로 혈견이라 불릴 정도로 잔인한 도법을 소유한 사람이였다.
온 몸에 피가 젖지 않을 날이 없을 정도로 살인을 즐기는 사람인지라 그에게 접근하는 이가 드물었는데, 막상 이 자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나서자 군웅들의 사기는 크게 치솟아 오른 것이다.
그의 주위에는 그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거치도를 들고 있는 무인이 삼십여명 정도 시립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혈견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혈견단의 무사들이였다.
멸천문의 천인대주 정도에게는 하나의 단이 따라 붙고 있었으니 혈견단의 무사들은 오로지 혈견 이경만을 따르는 무사들이였다.
멸천문의 무공을 익힌 만큼 혈견단의 무공도 상당한 수준이였으니 혈견단이 나서는 것을 보며 관을 끌고 있는 자도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259] 혈비도 무랑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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