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장 광무자의 마지막 가르침 (3)
광무자는 장천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그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구궁이 멸천문의 사람일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어..어떻게..구궁 사형이...”
[아무래도 궁이는 멸천문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 했다. 그가 다른 이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니 혈비도 무랑의 아들인 것 같더구나.]
“예? 구사형이 혈비도 무랑의 아들이라고요?”
[그렇다.]
광무자는 정신만은 살아 있었기에 무적강시로 돌아다니면서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잘 알고 있었으니 구궁이 진형에게 이야기 해 준 것을 말해 주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일이였기에 장천은 허무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광무자도 장천에게 이야기 해주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도문의 관한 이야기였다. 구궁에게 들어본 바에 의하면 혈비도 무랑은 장천을 비도문의 계승자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가 마음이 약한 장천에게 어떠한 파장을 줄지 그로서도 쉽게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도문에 관한 것은 저 아이의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겠구나.’
광무자가 비도문과 장천에 관해서 고심하고 있을 때 장천은 광무자 대사형을 무적강시로 만들고 자신을 이런 동굴에 가두어 놓은 구궁에 대한 분노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나 잠시 후 크게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한 광무자 대사형의 복수도, 쌍도문의 혈사를 일으킨 멸천문과의 싸움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였다.
“휴...”
[무엇이 그리 너의 어깨를 늘어뜨리게 하느냐?]
그런 장천을 보며 광무자는 인자한 목소리로 말을 하니, 더욱 한 숨이 나오는 장천은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일을 알았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손에 닿지 않는 일일 수 밖에 없기에 한 숨을 쉬고 있습니다.”
장천의 그러한 마음도 이해 할 수 있는 광무자였으니 연장자이자 그의 마음속의 사부인 그답게 그에게 조용히 충고를 해주었다.
[천아! 무인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 암담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익히면 무엇합니까?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죽어야 하는데요.”
[그것이 아니다. 강호에 뭇 무인들은 생을 위해 무를 연마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중원에 무가 뿌리 내린 근원이라 할 수 있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무는 단순히 생을 위한 수단이 아닌 체와 심을 단련하는 도의 한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 내가 무를 연마하는 사람이라면 생의 시간의 마지막까지 도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휴..저도 알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 장천으로선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었기에 도저히 그의 말대로 되지가 않았으나 광무자는 다시 그에게 충고를 해주며 사제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필선고기심지(必先苦其心志)라 하였다. 큰 뜻을 이루는 자는 고행을 겪기 마련이니, 지금의 이순간도 도를 이루기 위함이라 생각하거라.]
“그러나 빠져나갈 방법이...”
[자연도라 했느냐? 태사숙조에게 배운 무공이?]
“아..예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자연도를 계속 연성하도록해라.]
“예?”
광무자의 말에 장천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으니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보니 넌 지금까지 자연의 겉만 보는 것 같구나.]
“예? 겉만 보다니요?”
[자연이라 함은 단순히 겉으로만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이 세계를 이루는 미약한 존재가 자신보다 수십배, 아니 수백배 큰 존재보다 더 생기있게 움직이며, 동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내부에서는 인간이 볼 수 없는 움직임이 존재하는 것이란다.]
“아!”
[넌 지금까지 네 주위에 흐르는 기의 움직임만을 자연도의 섭리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몸으로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자연이 있으니 그것을 먼저 깨닫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광무자의 말에 장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니, 그가 말하는 것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그가 자연도로 알 수 있었던 것은 눈에 보이거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 뿐이지 광무자가 말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무자의 말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진정한 자연도가 무엇인자 깨달 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앉은 장천은 먼저 지금까지 느꼈던 기의 흐름을 잡기 시작했다.
광무자의 의식과 이야기하면서 얻게 된 능력으로 이러한 기의 흐름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으나 그 보다 더 심오한 세계는 아직까지 먼 산과 같을 뿐이였다.
보이기는 하나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그러한 존재가 있음은 알겠으나 자연도로 느끼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기문숙 태사숙조가 자신에게 가르쳐준 자연도라면 그것 역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장천은 더욱 더 정신을 집중시켜 몰아의 경지로 들어서니, 잠시 후 주위에 흐르는 기와 다른 움직임이 느껴짐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인가...대사형께서 가르쳐주시고자 했던 것이...’
단지 몸을 약간 움직였을 뿐임에도 형성되는 기의 움직임, 그리고 주위에 형성되었던 기와 그것이 부닥치며 쉬지 않고 움직이고, 그러한 공기의 흐름이 동굴의 벽에 부닥치자 바위벽에는 또 다른 기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은 장천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천천히 동굴 벽을 두드려 보았다.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느끼는 벽의 울림은 일정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듯 했다.
울음이 일정하게 퍼진다는 것은 겉면의 바위와 같은 재질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걸음을 옮겨 다른 곳을 두드려 보았으나 그곳 역시 똑같은 울임이 이루어져 있었으니 역시나 탈출할 방법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장천이였다.
[등하불명이라 하였다.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 네가 찾는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차분히 생각해보도록 하거라.]
“예.”
그러한 장천에게 광무자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니 다시 생각에 잠긴 장천은 그대로 몸을 날려서는 머리 위의 바위벽을 두들겨 보았다.
역시나 일정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했던 장천은 한 숨을 쉬려고 했는데, 그 때 한 곳의 울음이 얕게 끝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느껴지는 낮은 울림에 정신을 차린 장천은 다시 한번 천장을 두들겼다.
“설마!”
울음은 아니나 다를까 짧게 끝나고 말았으니 장천은 눈을 번쩍 뜨고는 울림이 짧게 끝난 곳을 처다보았다.
보기에는 다른 곳과 다른 바위 벽이였지만, 그곳만은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바위의 두깨가 얇았던 것이다.
만약 광무자가 말했던 자연도의 섭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찾을 수 없는 곳이였으니 마음을 결정한 장천은 숨을 한번 크게 몰아쉬고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승룡파천각!”
[쿵!!]
다리에 내력을 집중한 장천은 그대로 바위를 올려치니 동굴 안에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바위벽에는 약간 부서진 것을 제외한다면 전혀 변함이 없었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일까?’
아직 자연도의 섭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해서 착각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일단 한번 시작했으니 열 번은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또 한번 승룡파천각을 사용하여 바위찬장을 올려쳤다.
[쿵!! 쿵!! 쿵!!]
그렇게 수번을 계속 바위벽을 발로 찼으나 전혀 변함이 없었으니 장천으로선 낙심 할 수밖에 없었다.
“틀린 것일까...”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생각한 장천이였으나 낙심하여 자리에 주저 앉으려 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다시 한번 승룡파천각을 시전했다.
이렇게 동굴에서 죽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바위벽은 장천의 각법에 의해 굉음이 울려퍼졌는데, 그 순간 장천은 느껴지던 울림과 다른 울음이 잡힘을 알 수 있었다.
“됬다!”
울음이 바뀌었다는 것은 바위의 형태가 변했다는 것이니 자신의 각법이 효능을 발휘했다는 생각에 또 다시 각법을 시전했고, 일각이 적중하여 굉음이 울리는 순간 바위는 이제 보통 사람도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쩌어억.]
“끼압!!”
바위가 갈라지는 소리에 힘이 솟구치는 장천은 다시 한번 일각을 내지르니 굉음과 함께 바위의 균열은 더욱 가속화되더니 잠시 후 돌무더기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와!”
돌무더기가 떨구어지자 그곳에 묻히지 않기 위해 급히 몸을 날린 장천이였다.
[쿠구궁!!]
쉴새 없이 떨어져내리는 돌무더기와 흙더미로 인해 동굴은 순식간에 먼지로 가득찼는데, 다음 순간 장천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끄아아아!! 하하하하!”
동굴을 자욱하게 만드는 흙먼지 속에 붉은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바로 석양의 햇빛이였던 것이다.
석양의 햇빛이 보인다는 것은 바로 통로가 뚫렸다는 것이니 장천으로선 드디어 동굴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니 환희의 탄성을 내질렀던 것이다.
“성공이다! 성공!”
크게 기뻐한 장천은 눈물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광무자 대사형!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장하구나..]
장천의 성공에 광무자는 장하다 말했지만, 그의 그런 목소리에는 어딘가 슬픈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등백부님과 대사형님을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아니..넌 등사백님의 시신만을 모셔가도록 하거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광무자의 말에 장천은 이해 할 수 없다는 말로 되물으니 한 참을 그렇게 침묵을 하던 광무자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너의 화의 무공으로 나의 몸을 태워다오.]
“말도 안됍니다!”
그의 말에 장천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치니 그의 머릿 속으로 광무자의 한 숨이 밀려왔다.
[휴...천아...이미 나의 몸은 죽어 있단다...정신만이 살아남은 이러한 모습은 구천을 떠도는 혼령과 다를 바 없단다.]
“하지만...”
[넌 이 대사형을 귀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살게 할 것이냐?]
“대..대사형은 죽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대사형을 죽었다고는 전혀 믿으려하지 않는 장천이였으니 광무자는 그에게 노기를 보이며 소리쳤다.
[천아! 이 대사형의 말을 거역할 생각이냐!]
“아...하지만...”
[사람이라 하는 것은 태어나는 때가 있다면 반드시 죽는 때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섭리이지..하나 지금의 난 세상의 섭리를 어기고 있는 몸이니,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꼴이 되어 있단다...네가 정녕 나를 생각한다면 나를 편안히 떠날 수 있게 해다오..]
광무자의 말에 장천은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심정을 느꼈으니 그의 눈에서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보낸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여린 장천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였기 때문이다.
“흑흑..나..나보고 어떻하라고요..흑흑..이렇게 대..대사형을 보내야..하는데...나 보고 어떻게 하라고요...흑흑흑...대사형....으아아앙!!”
흐느끼며 말하던 장천은 다음 순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펑펑 울음을 터뜨리니 그것을 느끼고 있는 광무자로서는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곽무진이라는 제자가 있었지만, 솔직히 그와 함께 사제이기는 하지만 장천을 자신의 제자와 같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 쌍도문에서 무공만을 연성하며 살아가겠다는 그의 결심은 장천이 쌍도문에 들어오면서 바뀌었고, 다시 무림에 나간 것도 장천을 위해서였다.
그만큼 그가 장천을 향해 쏟았던 정신은 정제자인 곽무진 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았으니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명령에 눈물을 쏟고 있는 장천이 어찌 안쓰럽지 않겠는가?
[258] 혈비도 무랑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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