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장 멸천문의 개파대전 (1)
시월 초하루 무림의 각 명문대파로는 지금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문파에게서 서신이 도착했다.
문파의 개파대전을 위해 명문대파에 초대장을 보낸 것이었으니 처음에는 삼류문파의 형식적인 서신이라 생각한 사
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안에 적혀져 있는 멸천문의 문주와 그 외의 장로들의 이름을 보고는 크게 경악 할 수밖
에 없었다.
이러한 것은 소림사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 신검진인과 만박광인과 부른 무진은 그에게 서신을 건네주며 말했다.
"멸천문이 개파대전을 하며 무림의 각파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신검진인께선 여기에 써 있는 이름을 보시겠소."
"음..."
소림 방장의 말에 신검진인은 천천히 서신을 받아서는 그 내용을 읽으니 다음 순간 크게 침음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무림의 큰 혼란이 야기될 것 같소이다."
놀랍게도 서신에 써 있는 멸천문 태상방주의 이름은 무림에 경천시키고 남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으니 정사마가 인
정한 천하 제일의 고수인 혈비도 무랑이였기 때문이다.
"말도 안돼...어째서 이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
만박광인으로선 서신의 내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으니 지금까지 어둠 속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었던 자가 멸
천문의 태상문주가 되어 무림에 나섰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번 회합 역시 멸천의 눈을 피하지 못한 것 같소이다."
무진의 말에 좌중에 있던 다른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으니 비밀리에 각 명문 대파에 잠입한 첩자들을 색출하여
반격한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는데, 멸천문이 이렇게 개파하게 된다면 생각보다 일이 어렵게 변하기 때문이다.
"태상문주가 혈비도 무랑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무림의 명문대파 역시 그것을 무시하지 못할 것인데, 함정이 아
닐까 생각됩니다."
신검진인을 따라 소림사로 온 무당의 장로 한 사람이 심각한 표정을 하며 자신의 의견일 피력하자 다른 이들 역시
가능성이 있는 일인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혈비도 무랑의 이름을 적혀 있는 이상 수많은 무림인들을 모이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니 난감할 뿐이군."
"하지만 그 만큼 멸천을 칠 수 있는 군웅들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까?"
만박광인의 말에 한 무인이 오히려 이것이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말을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무림 각 명문대파에 수십 년 전부터 첩자들을 보내왔던 용의주도한 그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표면으로 혈비도 무
랑의 이름을 끌어올리고 무림인들을 멸천으로 모으고 있다면 그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니 쉽게 생각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
만박광인의 말대로 그들이 어떠한 계획도 없이 이런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계획을 세울 리는 없었다.
반드시 이곳으로 모여든 무인들을 처리 할 수 있는 계책이 있는 것은 분명했으니 만박광인으로선 암담할 뿐이었
다.
소림과 무당의 고수들이 비밀리에 움직일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멸천문을 기습할 수 있겠지만, 아직 무무대사 외
에는 알아낸 첩자는 없었으니 멸천문이 모르는 사이에 군웅을 움직일 수 없었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니, 본 사에서는 나한단의 십팔나한과 함께 무승들을 그 쪽으
로 보낼 생각입니다."
소림 방장의 말대로 이렇게 탁상공론만을 하고 있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을 잘 아는 신검진인과 만박광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어떠한 함정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뭇 군웅들을 멸천의 살수에서 구하기 위해선 나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편 소림사에서 멸천의 개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무렵, 은원방에서도 똑같은 서신이 날아 왔으니 대사
련과의 동맹으로 마교를 치기 위해 준비하던 장천 일행 역시 이 서신을 볼 수 있었다.
은원방의 실질적인 방주라고 할 수 있는 장춘삼의 곁에 모인 장천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 그들 역
시 혈비도 무랑의 멸천의 이름으로 무림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 범상치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우리도 일단 멸천문의 개파대전으로 가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일단 우리에게도 서신이 왔으니 그리 해야 될 듯 하나, 그 숫자는 최소한으로 하고 무공 역시 뛰어난 자들로 한
정해야 할 듯 하구나."
장춘삼의 말에 옆에 있던 동방명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혈비도 무랑이 표면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계책이 마련되었음은 분명한 일이니
상황에 대처 할 수 있는 자가 가야 될 것입니다."
동방명언의 말이 끝나자 장춘삼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멸천문의 개파대전에는 내가 직접 나설까 한다. 천아 나를 따라 가겠느냐?"
"예. 저 역시 혈비도 무랑에게 어느 정도 볼일이 있으니까요."
장천으로선 만박광인의 말도 있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일 중 혈비도 무랑과 자신과 관계되었던 일이 상당히 많았
기 때문에 과연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쌍도문에서 멸천문의 개파대전으로 향하는 사람은 모두 여섯 명으로 결정되었으니 장춘삼과 장천, 요
운, 곽무진, 데비드, 동방명언이였다.
멸천문의 개파대전이 가져다 준 무림의 파장은 엄청났다.
지금까지 어둠 속에서만 그 이름을 간혹 드러내었던 혈비도 무랑의 태상문주로 그 이름을 드러내자 무림의 각 명
문대파는 물론이요. 삼대세력 역시 큰 혼란이 시작되었으니 지금까지 싸우던 대사련과 홍련교 역시 모든 문도들을
철수시키고는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문파들이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계책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으니
함부로 많은 수의 문도들을 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각 문파에서는 고수들만을 선출하여 멸천문의 개파대전으로 향하게 되니 혼련교에서는 혈비도 무랑과
원한이 깊은 천마 문천익과 만근퇴 우경, 그리고 불괴대제들이 직접 자신들의 부하를 이끌고 멸천문의 개파대전에
참석하게 되었고, 대사련에서는 련주 유일랑과 부련주 양진들이, 무림맹에서 역시 맹주와 정예인 정무대가 직접 향
하게 된 것이다.
삼대세력에서 이렇듯 수뇌부가 직접 움직인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혈비도 무랑의 존재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함정인 것을 알면서도 왜 삼대세력의 수장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아
무리 혈비도 무랑이 강하다고 하나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수장들이 직접 그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있
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림의 어떠한 자들도 이러한 의문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니 삼대세력간의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도 이러한 사태
를 야기시킨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이들 삼대세력의 수뇌부
에 멸천의 첩자들이 상당수 잠입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멸천의 첩자들이 상당수 삼대세력에 잠입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수뇌부들로서는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
을 믿고 따르게 되니 수장들이 직접 이 싸움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혈비도 무랑을 제거할 수 있다면 천하제일의 고수로 이름을 떨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휘하로 지금까지 중
립을 유지하고 있던 세력들이 한꺼번에 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은 무림의 삼대세력의 수장으로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미끼였다.
한편 장춘삼들이 멸천문의 개파대전으로 떠난 지 삼일째가 되던 날, 쌍도문으로는 한 장의 서신이 도착했으니 서
신을 받아든 임아란과 장천은 부인인 유능예는 크게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다행이구나 아가야..."
서신이 온 곳은 바로 하오문의 총단이 있는 항주였으니 편지에 써있는 이름은 장춘삼의 사형인 양우생이였던 것이
다.
장춘삼에게 보낸 이 편지에는 그 동안 사방으로 찾아 다녔던 장천의 외아들 소천이가 항주에 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던 것이다.
소천이가 무사하다는 말에 유능예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으니 그 동안 가졌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사라진 아이에 대한 걱정을 잘 알고 있었던 임아란은 말없이 며느리를 가
슴에 안아주니 한참을 그렇게 있던 그녀는 능예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가야. 어떻게 하겠느냐?"
"제가 직접 항주로 가서 소천이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의 손에도 소천이를 맡기고 싶지 않은 능예는 직접 항주로 향하겠다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인 임
아란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 시애미와 함께 가도록 하자꾸나."
"어머니..."
임아란으로선 유능예 혼자 보내기에는 항주로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한지라 자신이 같이 동행하는 편이 나을 것
이라 생각한 것이다.
멸천문이 개파를 한 곳은 하남에 위치한 청아현이라는 곳이었다.
그리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은 이곳으로 오년 전부터 상당수의 무림인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니 그들은 많은 노역부들
을 고용하여 이곳에 거대한 건물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건물의 가운데에는 태허전이라는 거대한 전각이 위치하고 있었으니 그 안으로는 십 수 명의 무인들을 양옆으로
시립하고 있는 가운데, 상좌에는 한 남자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자리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무인들은 하나 같이 그 기도가 범상치 않았으나 놀랍게도 이들 중 무림에서 그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자는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바로 무림을 시끄럽게 만든 멸천문의 전주들과 당주들이였으니 이 정도의 기도를 지닌 자가 무림에 이름을
날리지 않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이들 중 가장 무공이 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문파의 주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이들을 양성해 낸 인물은 바로 상좌에 앉아 있는 멸천문의 주인이었으니 그의 이름은 무림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다고 알려져 있는 천하제일고수 혈비도 무랑이였다.
"개파대전의 일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수고했다."
개파대전의 일을 보고했던 무사가 물어나자 다른 무사가 앞으로 나와서는 혈비도 무랑에게 계속 보고를 올렸다.
"멸천의 자손들 역시 각파의 수뇌들을 충동질하여 개파대전으로 모이게 하고 있으니 지금의 예측대로라면 팔할 이
상의 각파 수장들을 멸천대계로 끌어들일 수 있다 사료되옵니다."
그들이 혈비도 무랑에게 올리는 보고 하나하나는 결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 다른 이들이 이것을 보
았다면 경악으로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보고는 거의 반시진 이상을 계속 되니 전주와 당주들의 보고가 모두 끝나자 혈비도 무랑은 천천히 고개를 들
어서는 좌중에 있던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각 전주와 당주들은 맡은 바 일을 착오 없이 수행하도록 하라."
"예."
이들이 모두 물러나자 그는 피곤한 듯이 상좌에 등을 기대고는 길게 숨을 내쉬니 그의 옆으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는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드디어 시작되는가..."
"예."
혈비도 무랑의 옆에 서 있는 자는 바로 그가 유일하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 하노인이었으니 그는 멸천대계
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성공한 후 다시 이번에 대계를 위해 멸천문으로 돌아 온 것이다.
"콜록.."
그 때 혈비도 무랑은 갑자기 무엇인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가 싶더니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그의
손에서는 시뻘건 핏덩어리가 흥건이 고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각혈의 정도로 보아 그 증상이 심상치 않았으니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에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내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구나.."
"예.. 비도문의 무공은 적자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 저 같은 방계의 자손에게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세상을 경천동지 할 만큼 강력한 무공, 하지만 비도문의 무공은 그 극에 이르기 위해선 몇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엄청난 내력을 움직이기 위한 그 만큼의 신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모든 내력을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천무성골이 아니고서는 허공에서 변화하는 비도문의 내력을 쉽게 조종 할
수 없었으니 혈비도 무랑 역시 상당한 무골의 소유자이기는 했지만, 내력의 조종을 마음대로 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본문의 무공은 이미 녀석에게 완전히 전해졌으니 말입니다."
"....안타깝군..안타까워..."
그의 말에 하노인은 혀를 차며 중얼거리니 그로서는 자신의 앞에 있는 혈비도 무랑, 아니 장춘일의 행동이 안타깝
기만 할 뿐이었다.
비도문을 이루고 있는 삼대 방계 중 하나인 장씨의 장손으로 태어나, 제대로 된 삶을 누려보지 못한 채 살아온 그
는 오로지 하나의 이상만을 위해 죽지도 못한 삶을 이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장춘일을 보며 하노인은 품에서 하나의 환단을 꺼내어서는 그에게 던져 주었다.
"소림 대환단이로군요."
"무무..아니 문가의 셋째가 마지막으로 전해 준 물건이네..."
문가는 비도문의 세 개의 방가 성씨 중 하나로 과거에는 무림 각 문파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도문에 전달하는 것을
맡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소림이라는 거대한 문파에도 손쉽게 잠입할 수 있었으니 각 명문대파에 잠입한 수많은 멸천문의 첩자
들을 만들어 낸 것이 문가의 자손들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