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장 하오문의 전설 공공문 (5)
"아무래도 이제 끝난 것 같군요. 청랑 선배.."
"으드득..."
정명으로선 그와 대결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욕심으로 중요한 것을 잊을 인물은 아니었
다.
지금 자신의 일이 무미미와 소천을 지키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압!"
먼저 공격을 한 것은 오승이였다.
철선을 들어 목을 베어가니 청랑노괴는 급히 지법을 사용하여 그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그 순간 심장으로 뜨거
운 기운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큭..."
오승의 공격을 막으려했던 찰나 정명의 손에 들려 있던 봉 끝의 칼날이 그대로 청랑노괴의 심장을 꿰뚫었던 것이
다.
"보..본노가..이런 곳에서..죽다니..."
강호에서 악명이 자자했던 청랑노괴는 황하의 배 위에서 이대로 죽음을 당하고 말았으니 쓰러진 청랑노괴의 시신
을 내려보던 정명은 봉을 바로 잡고는 천천히 입구에 기대어 서며 말했다.
청랑노괴가 쓰러지자 무미미를 노리던 무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마니 그들을 지키고 있던 정명과 오승의 무공을
보며 자신들이 상대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살기를 거두지 않고 있었으니 바로 오승과 싸우다 쓰러진 동영의 무사 마쯔다였다.
오승의 변화가 심한 무공에 무릎을 크게 다친 데다가 오른쪽 팔꿈치 아래는 철선에 의해 잘려나간 상태에서 많은
피를 흘린 상태였지만, 왼손으로 검을 든 채 기회만 있다면 달려들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오승으로선 그의 투기
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동영의 오랑캐라 우습게 보았다만, 엄청난 투지로군..'
한참을 그렇게 마쯔다는 쳐다보던 오승은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어서는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직 죽기에는 이른 것 같군. 복수를 하고 싶다면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으드득.."
오승의 말에 그의 미간을 더욱 찌푸려졌지만, 이대로 물러설 생각은 없는지 그가 건네준 금창약을 받아서는 상처
의 부위에 뿌렸다.
강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는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으니 그의 입에서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악종이군..악종!'
어쨌든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이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한 오승은 다른 이들을 처리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으니 반시진 정도가 지나자 이곳에서 배 안에서 무미미들을 노리던 이들을 모두 처리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형. 그 여인은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이리 열성적이요?"
"글쎄다. 왠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말이다."
"이상한 냄새요?"
"그래 어쩌면 저 여인이 우리가 찾는 자들과 많은 연관이 있을 듯 하구나."
"그렇다면 ..."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거라."
오승이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자 정명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입을 막으니 그들이 알고 있는 무리들은 엄청난 정
보력을 가지고 언제 어디에 적이 있을지 모르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무서운 무리들을 정명들을 쫓고 있었으니 과연 그들은 누구일 것인가?
치열했던 밤은 사라지고 멀리에서 태양이 떠오르자 무미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나섰다. 어제 누군가의 습
격으로 혼절을 했었던 탓에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누가 나를 구해준 것이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때 누군가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침하셨소이까?"
"....당신이..."
무미미의 앞에 나타난 남자는 바로 포구에서 도움을 받았던 정명이란 자였으니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을 구한 사람
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며칠간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니 아이에게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해도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미미로선 이 자를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해칠 자로 보이지는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천은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을 맡게 되었는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하니 무미미의 표정은 어느 정도 펴질
수 있었다.
"가장 문제는 여협의 신체 조건인 것 같소이다."
"음..."
소천을 안고 있던 무미미는 정명의 말에 침음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으니 그의 말대로 자신의 다른 사람과는 많
이 틀린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피부에 일반 여자라고는 생각지는 못한 거구의 키, 그리고 근육 등은 상대가 알아보기 너무 좋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무리 변장을 하고 도망을 친다하더라도 그들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다 갓난아이까지 데리고 있으니 이곳까지 도망 온 것도 용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정명이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미미의 말에 정명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를 우리에게 맡겨주지 않겠소이까?"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아이만을 어떻게 처리한다면 무미미가 남자로 변장하여 다니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었는데, 그 말이 떨어지
자마자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의 목숨보다 광무자가 맡긴 아이를 더 걱정하고 있었던 그녀이니 만큼 함부로 아이를 타인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정명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지라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강물에 만들어 놓은 표식
을 본 분타의 무사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무미미 일행은 그렇게 삼일 동안 황하의 뱃길을 따라 나갔고, 그 동안 몇 번의 습격이 더 있었지만, 어렵사리 그들
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 무미미를 노리고 있는 의문의 세력이 언제 다시
모습을 드러낼 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뱃길이 닿고 있는 곳의 작은 문파들과 돈을 노리고 있는 자들만이 찾아 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대형..도대체 그 자들이 왜 무소저를 노리고 있는 것일까요?"
"음...나 역시 그것이 궁금하네..아무래도 무소저가 그들의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정명은 그녀에게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사파 십대 거두의 한 사람이 흑철돈녀 무삼랑의 증손녀이며 의문의 집단에게 추격을 받고 있다는 것, 그리
고 그녀가 데리고 있는 아이는 쌍도문의 광무자가 데리고 있는 아이라는 것이었다.
정황을 들어본다면 그들 대부분은 복면을 하고 있었고,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은 창과 궁을 사용하고 있는 초고수
뿐이었으니 그런 단편적인 정보로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왜 무미미는 계속 쫓기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무미미가 그녀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볼 수 있었기에 정명으로선 과연 그
사실이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자세한 것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무미미는 그 사실이 뭔지도 모를 뿐더러 자신들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무자라면...."
"실질적으로는 쌍도문의 서열 3위의 고수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이지 강북 십웅 중 삼웅인 등평과 구웅인 장춘삼에
다음으로 뛰어난 무공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는데, 들리는 소문에는 두 사람과 비교해도 크게 뒤쳐지지 않은 실력을
지녔다고 하지."
"그렇다고 본다면 창을 사용하는 인물이 장춘삼을 쓰러뜨렸다고 한다면 몇 명 되지 않지 않습니까?"
"음...가장 유력한 자는 무림 십대 신병의 하나인 유성신창의 진명이겠지."
장병기에 속하는 창은 금군에서 사용하는 병기인지라 관에서는 이런 장병기를 개인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
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 무림의 문파들 중에 창을 사용하는 곳은 극히 드무니 무관에서는 이러한 창법을 습득하는 것
은 힘들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정통적으로 내려온 창법을 수련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명의 군에 몸을 담고 있는 무가
뿐이었다.
이러한 무가들은 자손들 대부분이 조정에 연줄이 있는 데다가 그 벼슬을 자손들이 이어 받는지라 어느 정도 가문
의 무공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성신창 진명, 그는 과거의 왕조인 송의 무가 중 하나인 진가장의 자손으로 그의 조상 중에는 대장군의 직위에
오른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송이 무너지면서 무가는 사라지고 말았으나 다행히 그 창법은 사라지지 않고 자손에게 이어진 것이다.
유성신창 진명의 부친인 진철은 원나라 시절 명의 항거한 무림의 명숙 중 하나였고, 이런 이유로 그의 충혼을 인
정한 많은 무림인들이 신창이라는 무명을 그의 자손이 이어 받는 명예를 가지게 된 것이다.
진가장은 원의 군사들에 의해 무너졌지만, 신창의 이름은 아직도 무림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였으니
정사마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은 신창의 가문에게는 한 발자국 물러서는 것이 암묵적인 예의였다.
이러한 이유로 정명이나 오승 역시 광무자를 죽인 의문의 세력의 고수가 신창의 가문의 한사람이 진명이 했다는
것에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진명 역시 젊은 시절 원에 항거하여 싸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명이 그런 일을 했을 리가....없지 않소. 대형."
"신창 진명이 아니라 그 자손이라면...."
"음....그렇군요."
신창 진명과 같은 의협이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세력과 손을 잡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혹시 창법
과 유성신창을 이어 받은 그의 자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오승!"
"예. 대형."
"본문의 정보라면 무림에서 모습을 감춘 신창 진대협의 행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 행적을 짚어보면 무
슨 단서가 나올 것 같으니 넌 분타의 사람이 오면 그 일을 최우선 적으로 실행하라 명하도록 해라."
"알았수."
정명으로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적의 정체를 알아 낼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으로 조사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저녁 무렵 무미미 일행이 타고 있는 배로 십여 척의 작은 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니 오승은 그 중 한사람의 모
습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구타주! 어서 오시요!"
"오! 소문주 오랜만에 뵙는군요!"
오승이 소리치자 모여드는 배의 선두에 선 환갑을 넘어 선 노인이 크게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는 그 자리에
서 발을 박차서는 몸을 날려 순식간에 배의 갑판으로 내려섰다.
"귀행도(鬼行盜)의 경공술은 여전하구려!"
"허허허...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군요."
귀행도 한 때 강남에서 이름난 대도의 명호였으니 워낙 경공이 뛰어나 삼십여 년간 단 한번도 잡힌 적이 없는 자
였다.
쉰이 넘은 후 강호에서 모습을 감춘 자였는데, 그가 이곳에 다시 나타났다는 알면 강호의 부호들은 잠을 설쳐 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구타주라 불린 귀행도는 오승은 안고는 기쁨에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귀행도"
"오! 정대협도 계셨구려!"
정명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자 구타주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을 잡았다.
"철없는 소문주가 나간다는 말에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이렇게 정대협께서 무사히 돌아오시게 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아! 그들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명의 물음에 구타주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 동안 본문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세 명의 분타주가 녀석들의 앞잡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상당한 수의
문도들이 죽음을 당한데다가 남아 있는 첩자들을 색출하느라 녀석들의 일을 조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
"다행이 문내의 일은 안정이 되었지만, 본래의 정보망을 이루기 위해선 상당한 시일이 걸릴 듯 합니다."
설마 자신들의 문파에서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정명이였다.
오승이 소문주로 있는 문파는 바로 무림에서 개방보다 그 숫자가 많다고 알려져 있는 하오문이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적수의 신호를 보낸 것입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하도록 하지요."
정명은 이러한 곳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생각하고는 말하니 구타주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의 뒤
를 따라 선실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