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장 곽무진의 무림 출두 (6)
동방명언의 말대로 동굴 안에는 상당한 기관장치가 있었다.
독이 묻은 철사를 피한다고 해도 바로 밑에는 독침이 있었고,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칼날이 날아오는 함정이 있을
정도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한다해도 피하기 어려운 그런 함정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다행히 동방명언이 기관진식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지 그러한 함정들을 잘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함정을 해치고 나
아가다 보니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간 자들이 함정에 당해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로군."
"독문 역시 기관진식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도 이렇게 당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조금 힘들 것 같습니
다."
기관진식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는지라 동방명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미 기관진식에 대해서 상당한 준비를 해왔는지 무엇인가 있을 것 같을 때면 무엇인가를 꺼내어서는 기관진식을
하나씩 파해하며 가니 곽무진으로선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일이 다 파해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 쪽 세력이 상대보다 강하다면 모를까, 적에게 들키면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면 퇴로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
이 나쁘지는 않겠지요."
"음..."
역시나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곽무진이였다.
하지만 틀리지는 않는지라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할 수밖에 없으니 동료 한 명은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기관진식을 하나, 하나씩 파해하며 길을 가고 있었기에 속도는 자연히 느릴 수밖에 없었는지라 따분함이
밀려오고 있었는데, 그때 벽에 박혀 있는 누군가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이건?"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기관에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보
았던 시체와는 전혀 다른 복장을 하고 있는데다가, 얼굴은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고도리가 말했던
독문과 다른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 곽무진은 피로 물들어져 있는 복면을 벗겼는데, 사십대 정도의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어디선 본 얼굴 같은데...."
곽무진은 그 얼굴이 그리 낯설지 않는지라 한참을 생각에 잠겼고, 잠시 후 무엇인가가 생각났는지 손바닥을 치며
소리쳤다.
"사천 당가의 당요?"
그의 얼굴이 사천 당가에서 본 적이 있는 당요라는 자라는 것을 안 곽무진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사천당가의 인물이 이런 곳에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인데, 한참을 생각하던 곽무진은 손가락으
로 그의 얼굴을 눌러 보았다.
혹시나 인피면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복면 아래 인피면구를 쓸 필요는 없었는지 피부의 질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왜 사천당가의 인물이 이곳에 있는 거지?'
다른 세가라면 모를까 사천당가는 혈족 이외의 자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어떠한 첩자도 당가의
내가로는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데, 당요는 내가 쪽의 인물이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만 비켜주시겠습니까?"
무슨 생각인지 동방명언은 곽무진을 비켜서게 한 후 품에서 병을 하나 꺼내어서는 그의 얼굴이 부었다.
그 순간 벽에 붙어 있는 것처럼 죽어 있던 당요의 얼굴은 퀘퀘한 냄새를 내며 부식하기 시작했는데, 잠시 후 어느
정도 부식이 사라지자 두 손에 은침과 단검을 든 동방명언은 그의 피부를 해치며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곽무진을 보며 말했다.
"이자는 특수한 면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응? 특수한 면구?"
"예. 아마도 인피면구를 특수한 방법으로 처리한 것 같은데, 부식액을 통해 겉의 표피를 제거한 후 살펴보니 성분
을 알 수 없는 약이 발라져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면구는 쓰거나 벗는 것이 어려우니 계속 쓰고 있었는 듯 하
군요."
"...답답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무공을 익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을 테고, 면구도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어 그리 불
편하게 느끼지는 않았을 듯 합니다."
겉으로는 전혀 인피면구인지를 알아 볼 수 없었기에 곽무진으로선 전에 만났던 진주 언가의 소가주도 이런 식으로
바뀌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식으로 인피면구를 착용한 자가 구파일방을 비롯한 정파나 사파에도 상당한 수가 있을 것이
란 생각이 들었다.
'쌍도문에도 있으려나?'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젖고 말았는데, 형제같이 지내고 있는 사람들을 의심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내키지 않았
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 녀석 정말 표국에 속해 있는 무사가 맞는 거야?'
중원에서 이름 있는 표국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같은 대문파의 제자와 비교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곽무진의 눈으로 보이는 그는 느껴지는 기운도 기운이려니와 기관지식에 대한 지식은 물론 여러 가지 면에
서 보통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표국에 속해 있는 무사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였다.
'정파는 아니다. 이런 정도의 인물을 알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그렇다면 사파나 마교의 인물일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는 곽무진은 동굴 저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멀리서 들을 수 있었다.
[곽대협. 녀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방명언의 말에 곽무진은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여러 개의 횃불 밑으로
열 명 정도의 독문 무사가 쓰러져 있고, 두 무리의 무사들이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곽무진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쌍도편 구랍이였다.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자들은 곱슬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검수와 여섯 명의 복면인이었는데, 곱슬머리를 길
게 늘어뜨리고 있는 자는 일점쾌검 문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복면을 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지 알 수 없었
다.
"역시 네 녀석이 배신자였군."
구랍은 일점쾌검 문수를 보며 이를 갈고 있었으니 고도리와 있었을 때 동굴 안으로 들어왔던 다섯 명은 그의 뒤에
서 검은 구슬을 손에 들고는 여차하면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후후.."
"만철은 희생양이 였는가?"
"물론 독문 소문주의 스승이라고는 하지만 구랍 네 녀석이 나를 보는 눈을 그리 좋지 못했으니까."
"음..."
상황은 이렇게 된 것이다.
칠절편 만철, 그는 독문에서 끌어들인 무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를 끌어들인 인물은 구랍이 아닌 독문의 소문주, 문파 내에서 소문주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구랍은
만철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만철 역시 소문주의 이름을 내세워 언제나 돌출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만철은 동굴로 들어서자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 수상한 짓을 하고 있던 것을 구랍들이 발견
하게 된 것이다.
만철은 구랍들의 다그침에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띄고 있었으니 일점쾌검 문수는 그가 자신들을 배신하고 적을 끌
어들이고 있다고 말하고는 죽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점쾌검 문수는 만철을 죽임으로서 구랍에게 믿음을 샀던 것인데, 철사방의 보물이 묻어 있던 장소
에 도착하자 멸천문의 사람들과 문수의 행동이 바뀌면서 독문의 무사들을 공격한 것이다.
구랍은 크게 놀라 반격을 하려 했지만, 그 동안 문수가 뿌린 산공독에 중독 되었는지 힘을 사용 할 수 없어, 죽음
을 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그 때 독문에서 보낸 다섯 명의 무사가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독문 문주의 다섯 명의 제자로 독문 내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일점쾌검 문수도 녀석들의
암기와 독에 함부로 접근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선 것이다.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못하군...'
일점쾌검 문수와 그와 함께 온 멸천문의 무사들이 강하다고는 하나, 상대는 독문에서 문주에 뒤를 이어 가장 고강
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는 쌍두편의 구랍인데다가 문주가 총애하는 다섯 명의 제자까지 힘을 합치고 있었기에 이런
좁은 공간에서 독의 고수들과 싸우는 것은 아무래도 승산이 없는 일이었다.
미리 해독단을 먹어 두어 지금까지의 독의 공격은 어느 정도 막아 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몸 안으로
독기가 침범해 들어올 것을 예상한 문수는 옆에 있던 복면 무사를 보며 눈짓을 보냈고, 문수의 눈짓을 받은 그는
등에 지고 있던 검은 봇다리를 풀어서는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헉!!"
"화탄??"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애들 머리 정도 크기의 화탄이었으니 다른 손에 들려 있는 불씨가 옮겨 붙는다면 이런 동굴
에서는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은 눈에 선한 일이었다.
'설마 이곳에서..'
구랍으로선 그들이 화탄을 꺼내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들이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려 하기 위해 화탄을 터뜨린다면 자신이야 죽어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차대에 독
문의 뒤를 이을 후지기수 다섯 명의 목숨은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 중 문주의 수제자인 철령(鐵逞)은 소문주 구독망 양견이 문주의 직에 오르지 못한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자였고,
나머지 인물들도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현 소문주인 구독망 양견은 수하들의 목숨을 파리처럼 생각하고 있는 잔인한 인물이었기에 자신과 철령이 없다면
독문의 앞날은 어둡기만 했으니 어떻게든 화탄이 터지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설마 이것도 계획된 일이였는가...'
자신이 이곳에서 죽는다면 구독망 양견은 아집과 독선은 더욱 심해 질 것이 뻔한 일이었고 그런 자를 조종하는 것
은 멸천문으로선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멸천문을 영광을 위해!!"
복면의 무사는 문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화탄에 불을 붙였고, 도화선으로 불이 당겨지는 것을 보며 구랍
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철령 당장 이곳을 피해라!!"
"구당주님!!"
하지만 철령은 구당주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으니 독문에서 가장 존경하는 그를 두고 혼자 도망갈 수는 없기 때문
이었다.
[슈슉!!]
그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생겼으니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무엇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는 복면 무사가 들고
있던 화탄의 도화선을 잘라 버린 것이다.
불이 붙었던 도화선의 중간 부분에 잘려 나가자 화탄은 터지지 않았으니 문수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
파공음이 시작된 곳을 향해 문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치니 그곳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후후후 오랜만이군요. 구랍 대협."
"철사방 방주 유익(劉翼)?"
설마 이런 곳에서 죽었다고 알려져 있던 철사방의 방주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구랍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잘 나를 속였더군. 구랍."
"음..."
그의 말에 구랍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독문은 철사방을 사천의 패주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을 하며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막상 정파 연합이
이곳으로 들어 왔을 때는 살그머니 빠져나갔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철사방의 혼자 정파연합을 상대하느라 멸문에까지 이르렀고, 독문은 그런 철사방이 사라지자 재빨리
철사방이 유지하고 있던 지역을 가로채어 중원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은 것이다.
그런 계획을 선두에서 지휘했던 사람이 바로 구랍이였기에 철사방의 방주가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리는 없었
던 것이다.
"더러운 욕심을 가진 네 녀석들이라면 분명 철사방이 숨겨 놓았던 돈 마저 가로채려 할 것이 뻔했기에 너희 녀석
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이지.."
"음..역시 철사방의 잔당을 이용하여 이곳을 끌어들인 것은 네 녀석이었군."
"하하하하!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런 중요한 곳을 일개 문도가 알 정도로 비밀을 유지했을 내가 아니지 않은가?"
"큭..."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던 구랍으로선 피할 수 없었던 함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를 도와준 거지?"
"당연하지 않은가? 네 녀석들에게 원한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에 있는 황금과 바꾼다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
니까."
"...."
확실히 이 동굴 안에는 철사방이 숨겨 놓은 자금이 있었던 것이니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동방명언의 눈에서는 빛
이 일고 있었다.
[저자로군요. 우리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자가 말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철사방의 방주인 유익이 과연 자신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는 알 수 없던 두 사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