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장 혈풍 (7)
하지만 오경으로선 또 다른 문제점에 고심하고 있었다.
도대체 혈비도 무랑이란 자가 자신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검진인의 무형검의 검기를 피했다면 모습을 감추는 것도 문제가 아닐텐데도 그는 당당히 자신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장천은 오경이 자신을 차대 혈비도 무랑이라고 말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혈비도 무랑에게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막상 당사자가 앞에 있으니 그것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차마 입을 열
지 못하고 있었다.
'아! 고민이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고통스러워 하는 장천이였으니 유능예는 그런 장천의 마음을 아니지 그의 손을 살며시
감싸 주었고, 그제서야 장천은 어느정도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고마워 능예.'
자신을 걱정해주는 능예의 마음에 장천은 고마울 수 밖에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당신 역시 오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었을텐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마음을 안정시킨 장천은 혈비도 무랑을 보며 굳은 얼굴로 자신의 진실로 차대의 혈비도 무랑인가 하는 것을 물어
보았다.
그 물음에 혈비도 무랑의 시선은 그에게 향했기에 장천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
렸다.
"만박광인의 이름도 시간이 흐르니 쇠퇴되어 지는 모양이군요."
"뭣이!"
혈비도 무랑의 말에 오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지만, 혈비도 무랑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그의 눈을 봐
라보며 말했다.
"무엇하러 제가 이 아이에게 혈비도 무랑의 이름을 물려주려 하겠습니까?"
"아니란 말인가! 자네는 지금까지 이 아이의 뒤를 쫓지 않았던가 쌍도문에서부터 마교 그리고 이곳 무당산까지 말
일세!!"
오경은 자신의 추리가 틀렸다는 것을 믿지 않는지 노한 음성으로 소리치고 있었지만, 혈비도 무랑은 전혀 상관할
것도 없다는 듯이 신검진인이 가져온 차를 한모금 마시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만박광인께선 비도문에 대해서 아십니까?"
"비도문이라면 자네의 문파가 아닌가!"
"후후..."
오경의 말에 혈비도 무랑은 나지막히 웃음소리를 내뱉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도문은 전국시대 말에 시작된 문파로 당대의 혼란을 야기시키던 진왕을 암살하려 했던 협객 형가와 대의를 위
해 자신을 목을 내놓은 번어기를 추앙하여 만든 문파입니다. 당시 형가는 마지막으로 진왕에게 도를 던져 대의를
이루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요."
전국시대의 협객 형가에 대해서는 그 역시 잘 알고 있는지라 비도문이 그런 형가와 번어기의 뒤를 잇고자 만들어진
문파라는 것에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도문 수법 중 여덟 개의 비도를 연환하여 던지는 수법은 당시 형가가 당한 여덟 곳의 상처를 기리는 것이며,
최후의 비도술은 마지막 형가가 진왕에게 날린 비수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수법입니다."
"음..."
"협객 형가의 뒤를 이은만큼 비도문은 천하의 어지러움을 막고자 하는 의로운 협객으로서의 사명을 지키려 하였습
니다."
"흥! 말도 안되는 소리!"
오경으로선 형가의 뒤를 이은 문파라는 말에 콧방귀를 끼며 부정하고 있었으니 그 동안의 혈비도 무랑에 의해 저질
러진 살행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 그 이유였기 때문이다.
"만박광인께서 오무황을 아십니까?"
"오무황?!"
오무황이라는 말에 오경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혈비도 무랑의 얼굴을 처다보았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무
림계의 감추어진 비사였기 때문이다.
"비도문은 천하 어지러움을 막고자 했던 문파로 전국시대 이후로 단 한번도 본문에서 나온 자객은 암살에 실패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무황이라는 존재가 무림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음..."
장천과 유능예는 오무황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지라 혈비도 무랑과 오경의 대화에 귀를 기
울였다.
"당시 무림은 정사마가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었던 때, 그런 무림에 오무황이라는 거대한 존재는 엄청난 일
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바로 무림통일이지요."
"음..."
"하지만 무림은 흘러가는 강과 같으니 그 물줄기를 막는다면 흐르지 않은 물을 썩어갈 수 밖에 없었지요. 천하의
백성이 썩어가는 무림으로 인해 그 피해가 막심하니 정사마는 오무황의 존재를 타파하고자 힘을 원하고 있었습니
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모습을 보인 것이 바로 저희 비도문이였지요."
"음..."
"당시 비도문은 마교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기에 당시의 마교 교주는 무림을 위해 오무황을 타도하고자 본
문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혈비도 무랑의 입에서 나오는 감추어진 무림의 비사, 장천과 유능예는 신검진인이 마련 해 준 음식을 먹으며 긴장
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당시의 비도문 문주께서는 무림의 안녕을 위해 정사마 수장들의 요청을 받아 들여 오무황을 암살하려 했지만, 애
석하게도 그것을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요."
"음...."
"하지만 문주를 잃는 것으로 비도문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오무황은 본문이 정사마의 수장에게 의뢰
받아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없애려 했지만, 가증스러운 자들은 그 모든 것을 저희 비도문에게 뒤
집어 씌웠고, 오무황은 그들의 거짓에 속아 저희 문파에 대한 무림의 척살령을 내렸습니다."
"말도 안돼는 소리!!"
혈비도 무랑의 말에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오경은 말도 안되는 소리로 일축하고 있었지만, 신검진인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오제, 그의 말은 모든 것이 사실이네."
"형님!"
신검진인의 말에 오경은 그의 얼굴을 보며 소리쳤는데, 신검진인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을 뿐이였다.
그런 와중에도 혈비도 무랑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무림 척살령으로 인하여 흥성했던 비도문은 멸문에 까지 이를 뻔 했지만, 다행히 본문은 비도문의 문주를 위한
장소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당시 문주이셨던 혈비도 무랑님의 장남이신 장운님께서는 목숨을 부지하실 수 있었습니
다."
비도문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혈비도 무랑은 분통함을 참지 못하는 듯 주먹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
었다.
"모든 연공을 마치고 나오신 장운님은 본문이 믿었던 정사마의 수장에게 배반당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분노하셨고,
그 후 살아남은 비도문의 문도들을 모아 무림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가증스러운 녀석! 그런 거짓으로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을 정당화 시킬 셈이냐!!"
오경은 그의 말이 거짓이라 단정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신을 비롯하여 무림의 정사마의 모든 인물들이 자신들이 살기 위해 한 문파를 멸문으로 몰고 갔
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만박광인 당신이 과연 나를 막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군요. 하하하"
혈비도 무랑은 오경 정도가 자신을 막을 수 있느냐는 듯한 조롱이 섞인 말을 하며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지니 그는
분노에 몸을 떨고 있으면서도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재밌는 일이로군. 자네는 그가 비도문에 비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것을 잘 알아들었는가?"
신검진인은 혈비도 무랑이 사라지자 재밌다는 표정을 짓고는 장천을 보며 말했는데, 그로선 왜 자신이게 신검진인
이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하던 장천은 설마 하는 생각에 신검진인의 얼굴을 처다보았다.
"설마?"
"아무래도 오제의 추측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 같구나."
혈비도 무랑 그는 비도문의 후예일지도 모르는 장천에게 문파에 얽힌 비사를 이야기 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경의 말에 부정했는데, 왜 비사를 자신에게 이야기 해 주었는지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제가 차대 혈비도 무랑이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았습니까?"
장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검진인에게 자신의 의문점을 물어 보았는데, 긴 수염을 쓰다듬던 신검진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의문에 대해서 답해 주었다.
"자네가 비도문의 후예인 것은 인정하나 아무래도 혈비도 무랑의 이름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은가 보구나."
"아!"
그제서야 혈비도 무랑이 자신에게 비도문의 비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 준 것을 이해 할 수 있는 장천이였다.
하지만 그가 비도문의 후예라는 것은 이제 전혀 부정할 수 없는 일이 되었으니 과연 자신이 혈비도 무랑이란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무림대살령이 내려져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파의 일원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장천에게 혈비도
무랑은 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만약 자신이 비도문의 후예라면 혈비도 무랑은 자신의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 되
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일단 양의심공을 신검진인에게 받은 장천이였기에 쌍도문의 피신처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시간이라면 자신의 양부가 피신처로 돌아와 쌍도문의 일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장천을 끌고 왔던 오경도 그가 문파로 돌아가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만박광인 선배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군.'
그로선 왜 오경이 자신을 신검진인과 만나게 했으며 신검진인은 비도문의 후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양의심공을 건네주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한편 장천이 무당에 있을 무렵, 쌍도문의 사람들은 피신처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계획하고 있었다.
철사방을 치기 위해 나갔던 장춘삼이 돌아오면서 멸문의 직전까지 갔던 쌍도문은 활기를 찾았던 것이다.
"여보..."
피신처에 만들어진 등평의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장춘삼의 모습을 보며 남궁소화는 뭐라 위로하고 싶었지
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화...반드시..반드시 사형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소."
"여보.."
장춘삼의 말에 소화는 조용히 그의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