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장 혈풍 (5)
쌍도문의 혈사가 있기 전 구양생은 문파에서 운영하고 있는 주루를 살펴보기 위해 난주에 있었다.
"어르신 여기 장부를 가져왔습니다."
"수고했다."
쌍도문이 운영하고 있는 선화루(仙化樓)는 난주에서도 유명한 주루로 매년 상당한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년에 한
번씩 구양생이 직접 와 장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선화루의 루주 양화미(梁華眉)가 그를 위해 다소곳한 모습으로 차를 따르고 있었는데, 그녀는 쌍도문의
삼장로인 양우생의 수양딸이였다.
난주제일화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색을 소유하고 있는 여인이였다.
이곳 선화루의 명성은 양화미의 미색이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니 감숙성의 수많은 명문가와 부호들은 그녀
를 첩이나 처로 맞아들이기 위해 연일 구혼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의 구혼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사모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양우생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 용정차이옵니다."
"고맙구나. 그런데 아미야. 이 백부를 언제까지 어르신이라 부를 참이냐. 네가 삼제의 수양딸이라고 하나 나에겐
친조카와 같으니 이제 어르신이란 말은 그만두도록 하여라"
구양생은 그녀가 자신을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백부라 부르라 했지만, 그녀로선 받아 줄 수
없는 말이였다.
웬지 백부라 부른다면 사모하는 사람과 멀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자 그로선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으니 탁자에 놓인 용정차를 한모금
마신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백부는 네 고집을 꺽을 수가 없구나. 그나저나 네 나이도 이제 혼기가 찼으니 혼사를 알아볼 때가 되지 않았
느냐? 네 유림에 봐두었던 선비가 있는데 너만 좋다면 중매를 서고 싶구나."
"아...."
중매를 서겠다는 그의 말에 양화미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어찌 소녀의 마음을 그리 모르신단 말입니까..'
그녀로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그가 야속할 뿐이였다.
하지만 구양생으로선 그를 이성의 상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으니 그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둘, 학문을
위해 독신을 고집하는 그는 여자에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양화미는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였으니 자식과도 같은 나이인 그녀를 어찌 구양생이 여인으로 볼 수 있겠
는가?
거기에다 자신의 동생인 삼제의 수양딸이기도 했으니 그녀가 바라는 것은 너무나 멀 뿐이였다.
"크크크..."
구양생이 조카의 혼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주루의 창 밖으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니 내공이 없는
구양생은 몰랐지만, 무공을 익히고 있는 양화미는 자신들을 보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비녀를 뽑아서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날리며 소리쳤다.
"누구냐!!"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비녀는 창문 밖의 침입자를 향해 날아갔지만, 그는 상당한 무공을 지녔는지 자신의
미간으로 날아오는 비녀를 검지와 중지를 가볍게 낚아 채고는 방 안으로 몸을 날려 들어왔다.
"칫!"
상대가 자신의 암기공격을 쉽게 막아내자 양화미는 체대를 벗어서는 그를 향해 휘둘렀다.
양화미의 최대는 금잠사(金蠶絲)로 만든 지라 보통 검으로는 찟을 수도 없을뿐더러 체대의 끝에는 금강석 장식이
있어 내공을 주입하여 사용하며 상대를 양단시킬 수도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크크크!!"
그 방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휘어져 들어오는 체대의 공격이였지만, 복면의 상대는 그것마자 몸을 날려 간단히 피
하니 방안의 벽은 양화미의 체대 공격으로 여기저기 큰 흠집으로 사방에서 금이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체대를 휘둘렀다간 방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체대를 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누군데 야밤에 나를 찾아왔는가?"
양화미가 체대를 갈무리하자 구양생은 침착한 목소리로 그를 향해 물었다.
구양생의 말을 들은 복면인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큭큭 거리는 웃음소리를 내고는 침상에 앉아서 그의 앞으로 서
신을 던져 주었다.
"응?"
난데없이 찾아든 복면인이 자신에게 서신을 건네주자 구양생으로선 이상하게 생각될 수 밖에 없었지만, 천천히 봉
투를 뜯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헉!!"
서신을 읽는 순간 구양생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으니 그 안의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였
기 때문이다.
떨리는 손을 가누지 못하는 그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자네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이 서신이 사실인가?"
"크크크 뭐 때문에 네 녀석에게 거짓서신을 건네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네 녀석과 조카라는 년은 일초에 끝낼 수
있거늘..크크크"
"큭...."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구양생은 큰 충격을 받으니 갑자기 밀려오는 가슴의 통증에 가슴을 움켜쥐고
는 쓰러지고 말았다.
"어르신!!"
구양생이 쓰러지자 크게 놀란 양화미는 그를 부축하니 복면인은 더 이상 볼게 없다는 듯이 자리에 일어나서는 말했
다.
"크크크 파리 한 마리 잡을 힘이 없는 네 녀석이 과연 복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푸하하하하"
마지막 한마디를 날리고는 웃음소리와 함께 복면인은 경공술을 사용하며 창문 밖으로 몸을 날리니 그가 사라지자
구양생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청아야!! 청아야!!!"
급히 쓰러진 구양생을 들어서는 침상에 누인 양화미는 급한 목소리로 시녀를 소리쳐 불르기 시작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열다섯 정도의 소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루주님?"
"당장 의원을 불러와라! 어르신께서 쓰러지셨다!"
"아! 예!"
급한 루주의 말에 그녀는 대답을 하고는 의원을 찾아 밖으로 뛰처나갔다.
침상에 누워 있는 구양생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며 그의 손을 잡은 양화미는 도대체 서신의 내용이 무엇일까하
는 생각에 떨어진 서신을 들어서는 읽어 보았는데, 그 순간 그녀 역시 가슴이 철렁내려 앉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싸..쌍도문이..."
서신의 내용은 바로 쌍도문의 큰 화를 당하고 문주인 등평이 의문의 집단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였으니 평소 사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 양화미는 구양생이 쓰러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어떻게 이런일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지라 양화미로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이
서신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양부에게 서신을 보내 사실여부를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었다.
"선화야! 선화야!"
"예. 루주!"
"아버님께 서신을 전해야 할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양화미의 시녀 중 한명인 선화라는 여인은 양우생이 그녀에게 보낸 준 세명의 시녀 중 한명으로 무공은 그리 강하
지 않지만 경신술이 조예가 있었다.
복면인에게 받은 서신을 다시 밀봉하여 건네주니 선화는 그것을 받고는 방을 나왔다.
하지만 이 서신이 양우생에게 전해지기 전 쌍도문의 혈사는 강호에 널리 퍼지게 되니 서신의 내용이 진짜였다는 것
을 알게 된 구양생은 그 병이 더욱 깊어만 갔고, 자신의 양부가 있는 북경에 도착했을 때는 치유조차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돌아오자 양화미가 급히 달려와서는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
"어르신.."
"아미야....하오문에 있는 네 아버지에게선 연락이 없느냐?"
"아직까지는...."
"큭...장사제와 다른 이들이 어찌 되었는지..."
자신의 병이 더욱 깊어짐에도 사제들을 걱정하는 구양생을 보며 그녀로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
었다.
남경, 성내에 최고의 부호라 이름이 나 있는 금태산의 저택에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림고수들이 들락거리고 있
었으니 그들의 사이에는 고수라고는 볼 수 없는 거지노인 한사람이 끼여 있었다.
금가장의 저택을 지키고 있는 무사들은 거지노인이 들어옴에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고 있었으니 이미 그 노인이
금태산의 식객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안으로 들어서자 저택에 있던 고수들은 하나 같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니 그가 상당히 높은 신
분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있었다.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무사들을 지나쳐 그가 들어선 곳은 금태산이 머물고 있는 전각이였다.
전각 안에는 남경의 상권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부호 금태산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거지 노인
이 들어오자 그 역시도 일어나서는 그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태상장로님."
"그 신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니 이제 하노(夏老)라고 부르게나."
"당치도 않습니다."
하노라고 부르라는 그의 말에 금태산은 말도 안된다는 듯이 고개를 내젖고는 그의 앞에 공손이 차를 올리고는 말했
다.
"북경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구양생이 동창의 힘을 빌리는 것을 허락 받았다고 합니다."
"음...."
금태산의 말을 들은 하노는 잠시 침음성을 내고는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네."
"태상장로님..."
"알고 있네... 이 일이 성공하면 본문을 멸문시킨 무림에 복수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천년이 넘게 이어온 본문의
사명과는 너무나 반대되는 일인지라 본문의 선대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 같아 죄송스러워 그런 것이네."
"....."
하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금태산의 표정 역시 그리 좋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무
슨 생각이 났는지 하노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소문주께서는 어찌 되시는 것입니까? 저로서는 부문주님의 의중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네, 이렇게 가다간 소문주님이 본문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은 뻔한 일인데, 왜
그리 하시는지...휴...아무튼 우리로선 부문주님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네."
"그렇습니다."
"신궁 쪽의 일은 어찌 되었나?"
"사파십대거두 중 일곱을 해치웠지만, 나머지 세사람은 대사련 쪽에서도 그 종적을 알 수 없는지라 일단 본문으로
철수했다합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하노는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어서는 그에게 건네주며 말해다.
"이건 앞으로 자네가 해야 할 일이니, 한달 안에 처리해주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난 이만 부문주께 돌아갈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전서구로 연락하게나."
"예. 태상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