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장 쌍도문의 멸문 (1)
장천이 혈비도 무랑의 의해 도망치자, 교세는 완전히 천마의 손으로 넘어가고
불괴대제와 만근퇴 우경은 태상장로의 신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태상장로의 직위를 얻은 후에도 불괴대제만은 성격이 날로 포악해지고
있었으니 바로 혈비도 무랑의 비도술에 당한 상처 때문이였다.
"크아악!!"
"대제시여!!"
"으드득...혈비도 무랑!! 혈비도 무랑!!"
오른쪽 어깨에 비도술로 입은 상처의 고통과 분노로 인해 광인이 되어가고 있
는 듯 했다.
"할아버지.."
불괴대제의 손자인 마운성은 조부가 모습을 보며 한 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이제 그만 돌아가셔서 쉬심이..."
"되었다. 조부께서 고통스러워하심을 보며 어찌 편히 쉴 수 있겠느냐?"
"...."
마운성은 부하의 말을 자른 후 조부인 불괴대제에게 다가가서는 그의 몸을 감
싸 안았고, 손자가 자신을 안자 그의 발작도 어느정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혈비도...혈비도..."
마운성으로선 도대체 혈비도란 자가 누구이기에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던 조부에
게 분노와 공포를 안겨다주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명. 혈비도 무랑이란 자는 누구인가?"
마운성의 말에 그의 부관인 여명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혈비도 무랑은 과거 무림을 휘어잡은 자의 이름입니다. 무림인들은 스스로 말
하기는 거부하지만 그가 천하제일의 고수임은 알고 있습니다. 무림의 공적으로
낙인되어 있는 그에게 죽은 자는 지금까지 수백명에 이른다고 하며 그의 손에
죽은 무사들은 모두 강호에 명성을 떨쳤던 자라고 합니다."
"으음.."
마운성은 평생을 불괴곡에서 살아왔던 지라 혈비도 무랑에 대해선 자세히는 모
르지만 조부인 불괴대제를 한 수에 쓰러뜨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그의 무
공에 대해선 탄복하고 있었다.
"사부가 혈비도 무랑의 제자였을 줄은 정말 몰랐어..."
이미 화룡대주가 혈비도 무랑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총단 전체에 퍼진 것은 오
래 인지라 그 역시 잠시 사라져간 사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천마쪽의 반응은 어떻던가?"
"아무래도 화룡대주님의 사문인 쌍도문이란 곳에 손을 쓸 생각인가 봅니다."
"쌍도문을?"
"예. 그를 찾기 보다는 스스로 찾아 오는 것은 선택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화
룡대주도 사문이 멸문의 위기에 닥친다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음.."
장천의 스승인 혈비도 무랑이 조부를 이렇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마운성에게
장천은 새로운 길을 찾아준 스승, 그의 사문이 무너지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전대교주의 손자인 유소양이 우리 쪽에 잡혀 있다고 했지?"
"예."
"그를 탈출시켜 쌍도문 측에 천마의 계획을 알리도록 해라.'
"하지만..."
"화룡대주는 우리 모두의 은인이다. 설마 생명의 은인의 사문을 그대로 버려둘
생각이냐?"
"...알겠습니다."
마운성이나 그의 부관 모두 장천이 불러온 견즉사의에 의해 목숨을 구한 사람
이였기에 장천에 대해서 악의가 없는 사람들이였다.
"천마의 아들이라는 소교주 문성에게선 연락이 왔는가?"
"아직..."
"문성 역시 화룡대주에 은혜를 입었으니 우리와 뜻이 같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그 쪽의 의향을 알아 보도록 해라."
"예."
마운성으로선 천마나 우경, 불괴대제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
었다.
'이렇게 되면 천마가 조부나 우경을 배신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가장 위험
한 것은 조부께서 병상에 누워 있는 우리쪽 세력이겠지...'
마운성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불괴대제가 병상에 누워 있는 만큼 천마가
가장 먼저 손을 쓸 사람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 불안할 수밖
에 없었다.
한편 혈비도 무랑의 도움으로 총단을 벗어난 장천의 일행들은 인적이 없는 숲
의 동굴에 숨어 있었다.
장천이 우경에게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기에 움직이는 것은 조금 어려운 형편
이였다.
"혈마. 아이를 치료할 수 있겠소."
"다행히 아이의 내공이 높아 우경의 공격에 약간이나마 호신강기가 발현되었소,
금침대법을 통해 내상을 치유한다면 한달 정도의 시간이면 완치될 것이라 생각
하오이다."
"다행이요."
귀대인 율명은 혈마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귀대인께선 어찌 하실 생각이요."
"일단 암영신군의 몸이 완쾌되기를 기다렸다가 호남으로 가볼 생각이요."
"호남이라.."
혈마는 그의 말에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혈교와 손을 잡지 않겠소?"
"혈교?"
율명은 혈교가 멸문했다고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에 조금 되물어 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혈교는 멸문했지만, 혈교의 세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요."
"음.."
과거 혈교의 성세를 생각한다면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는지라 율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소이다."
이렇게 해서 혈마는 귀대인 율명과 손을 잡게 되었는데, 이들이 숲의 동굴에서
장천을 치유하고 있을 때 무림은 더욱 시끄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천마는 외부에 혈비도 무랑이 홍련교의 총단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퍼뜨리면서
그와 함께 쌍도문이 혈비도 무랑과 손을 잡고 무림을 기만한다는 소문을 퍼뜨
렸기 때문이다.
물론 쌍도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소문에 거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
만, 문제는 구파의 하나인 청성파였다.
쌍도문의 점점 커가면서 구파의 자리를 넘보자 청성파는 구파에서 밀려나고 쌍
도문이 새로운 구파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청성파의 장문인이 독에 중독되어 세력은 더욱 약해진지라 청성파로선 쌍
도문에게 구파의 자리를 빼앗길까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때에 쌍
도문과 혈비도 무랑이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들려오게 된 것이다.
"혈비도 무랑과 쌍도문이 손을 잡았다라..."
현 청성파의 문주인 청검진인 형천의 수제자이자 현 청성파의 제일 검수인 궁
명은 사제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스승이 독에 중독 된 후 청성파와 연결되어 있던 외부 인사들과의 접촉이 잦아
든 지금, 다시 청성의 성세를 되찾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니고 있던 그 였기에
혈비도 무랑과 쌍도문에 관한 소문은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기회에 쌍도문을 쓸어 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정파도 사파도 아닌 색을
가진 녀석들이 구파일방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궁명의 사제인 성천은 열을 내며 사형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쌍도문은 공동파는 물론 무당과 개방 심지어는 관에까지 연줄이 있는
문파입니다.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저희들 쪽에 오히려 그 화가 밀려 올 것입니
다."
성천의 말에 다른 사제가 반박하고 나서니 그 역시 그것을 아는지라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정파가 안된다면 다른 수도 있지 않겠느냐?"
"다른 수라뇨?"
"대사련을 이용하도록 하자꾸나."
"아!"
"사파의 연맹이라는 대사련은 쌍도문 때문에 감숙과 사천 쪽의 사파에게 지지
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그들을 이용하여 쌍도문을 친다면 아무런 문제
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들을..."
"작은 불씨 하나로도 능히 태산을 태워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궁명의 말에 성천은 무엇인가 깨닫는 것이 있었던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사형."
"알아들었으면 되었다. 중원에서 쌍도문을 몰아내도록 하자꾸나."
"예."
중원의 남쪽에 위치한 광서성에는 사파의 연합체라 유명한 대사련의 총단이 위
치해 있었다.
광서의 황성이라고도 불리는 대사련의 총단 중앙에는 련주가 거처하고 있는 전
각이 위치해 있었는데, 그곳에선 현 대사련의 련주인 유일랑과 부련주 양진이
오붓하게 용정차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듣자하니 혈비도 무랑과 쌍도문이 손을 잡았다고 하더이다."
"혈비도 무랑과 쌍도문? 헛소문이로군."
양진의 말에 유일랑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으니 최근 들어 크게 이름을 떨치고
있는 쌍도문이 무림의 공적으로 알려져 있는 무랑과 손잡을 이유는 없었기 때
문이다.
"하지만 명분은 서지 않겠습니까?"
"명분이라...대사련으로 이름으로 쌍도문을 쳤다가는 관과 마찰이 있을 것은 뻔
할터인데, 무엇하러 그리 위험한 일을 자처하겠느냐?"
"음..."
련주의 말이 틀리지 않은지라 양진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다
고 해도 쌍도문이란 존재를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였다.
그들만 아니였으면 감숙과 사천 쪽의 사파들을 대사련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사마로 이루어진 토벌대를 조직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토벌대?"
"예. 소문으로는 혈비도 무랑이 마교의 총단에 침입하여 일을 저질렀다 하니 그
들을 끌어 들여 혈비도 무랑의 토벌을 빌미로 쌍도문을 치는 것입니다."
"아서라 잘못하다간 능구렁이 같은 천마에게 덜미를 잡힐 수 있을 것이다."
유일랑은 천마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였기에 그가 얼마나 간계에 능한 자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떻습니까?"
"이런 방법이라면?"
"혈비도 무랑으로 위장하여 타문파들을 휘저어 놓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혈비
도 무랑과 쌍도문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터이니 잘만 부추킨다면 손을 쓰지도
않고 쌍도문을 멸문시키는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양진의 말에 조용히 차를 음미하던 유일랑은 찻잔을 내려놓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도술에 능한 자들을 소집하도록 하여라."
"련주!"
"멋지지 않냐? 정사마의 연합이 모여 복면을 쓰고 감숙성의 이름난 문파를 하
루아침에 멸문시킨다. 아! 마치 한편의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아니더냐."
"....련주..그런 이야기에 마지막은 멸문을 당한 자손이 복수를 하는 것 아닙니
까."
"후후후...받은 것이 있으면 그만큼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까짓거 대
사련을 해체시키면 그만 아니냐."
"련주!!"
"하하하 농담이다. 아무튼 흥미로운 이야기 꺼리임에는 틀림없구나. 정사의 문
파들을 돌아다니며 재주껏 휘저어 보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좀처럼 성격을 알 수 없는 대사련의 련주 유일랑은 드디어 쌍도문에게 승부수
를 내던진 것이다.
한편 무림맹에 있던 곽무진과 요운 역시 이런 소문을 들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맹의 외객관인 주작관은 무림맹으로 파견된 타 문파의 무사들이 머물고 있
는 곳으로 그곳의 서쪽에는 쌍도문의 무사들이 머물고 있었다.
응접실에선 두 사람의 남자가 술을 벗삼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으니 바로 쌍도
문의 요운과 곽무진이였다.
곽무진은 소홍주를 한잔 들이킨 후 요운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숙 소문 들으셨습니까?"
"물론이네 곽사질...혈비도 무랑과 쌍도문이 손을 잡았다는 소문 말인가?"
"그렇습니다. 물론 무림맹 내에서도 헛소문이란 것은 알고 있는 듯 하지만, 그
대로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감이네, 청성파나 대사련은 쌍도문을 눈에 가싯처럼 보고 있으니 이 소문을
그대로 놓아두지는 않겠지."
요운 역시 어느정도 느끼고 있는지라 심각한 어조로 말을 했다.
"문도를 시켜 서신을 보내기는 했지만, 걱정이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음..."
현재 쌍도문은 철사방을 치기 위해 상당수의 무인들이 외부로 나가 있기 때문
에 문내에 남아 있는 인물들은 삼대제자이거나 무공을 모르는 식솔들이나 이대
제자뿐이였다.
물론 문주인 등평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정예가 빠져나온 지금 쌍도문은 비
어있는 집이나 마찬가지인지라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으니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요운은 사질을 보며 말했다.
"철사방을 토벌하기 위해 나가 있는 장사숙에게는 서한을 보냈는가?"
"물론입니다."
"철사방 쪽으로 나가 있는 정예들만 되돌아가도 안심이 될텐데....음.."
요운은 서신을 보냈다는 말에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는 했지만, 마음이 놓
이지 않았는데, 그때 방문이 덜컥 열리면서 한 무사가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뛰
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난데없이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가 쌍도문의 삼대제자인지라 요운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는데,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혀..혈비도 무랑이 나타났습니다!"
"혈비도 무랑?"
"예."
삼대제자가 가져온 혈비도 무랑의 소식은 요운이나 곽무진은 크게 놀랄 수 밖
에 없었다.
"대사련의 유령문, 백골파, 혈도방이 습격을 당하고, 청성파의 제자가 만들었다
는 문형객잔마자 습격을 답했다고?"
"예."
"이런 젠장!!"
소식을 전해 들은 요운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으니 대사련의 세
문파는 쌍도문과 앙숙관계에 있는 사파의 문파였고, 청성파는 구파의 자리 때문
에 쌍도문과 크게 사이가 안좋은 형편이였기 때문이다.
"사숙!!"
"당했다! 아무래도 혈비도 무랑과의 소문을 이용하여 쌍도문을 철저히 고립시킬
모양이로구나!"
"그런!!"
"무림맹에 있는 쌍도문의 문도들에게 모두 알려라 지금 당장 본문으로 이동한
다!!"
"예!"
소문이란 와전되기 마련인지라 그리 믿을 것은 못되지만, 그런 소문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은 다반사였다.
요운은 갑작스럽게 닥친 이번 사태가 쌍도문을 노리는 술수라는 것을 깨닫고는
대책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지만, 아쉽게도 세상은 그들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있었다.
"무림맹의 정검단이다!! 쌍도문의 제자들은 당장 무기를 버려라!!"
"사숙!"
"젠장할!!"
갑자기 주작관으로 밀어닥친 무림맹의 정검단은 쌍도문의 제자들을 무림맹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리니 요운은 크게 노기가 치솟아 오를 수밖에 없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