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장 혈비도 무랑 (1)
"율명 어르신께선 암영자들과 연락을 해주십시요."
"알겠네. 그런데 자네 정말 교주에 좌에 앉을 생각이 없는가?"
구시독인과의 일전에서 승리를 거둔 장천은 천마의 전각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귀대인 율명을 만났다.
장천이 그에게 부탁한 것은 암영자들과의 연락을 통해 교주의 정통성을 앞세워
문성을 지지해달라는 부탁이였는데, 율명은 마음속으로 장천을 교주로 밀고 싶
어했기에 그의 의중을 떠 봤는데 역시나 고개를 내젖는 그였다.
"어르신께선 저를 위하시는 것은 알지만, 전 홍련교에선 배신자의 입장, 이런
제가 어찌 교주의 좌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저의 아우인 문성은 화의
무공을 익혔을 뿐 아니라 자질또한 뛰어나니 교주의 자리에 오름에 문제가 없
습니다."
"휴..알겠네. 하지만 문성이란 아이를 암영자들이 지지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문
제는 바로 천마이네."
"알고 있습니다."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가?"
율명은 장천에게 천마에 대한 대책을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묵묵부답이였는지라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알겠네, 자네가 원하는대로 해주겠네."
그로선 추노와의 일도 있었던 만큼 장천을 밀어주기로 결정은 했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잠재되어 있었다.
한편 총단에서는 구시독인의 일파가 단 하루만에 천마의 세력에게 무너지자 큰
혼란이 일고 있었다.
천마의 부하들은 구시독인의 일파였던 홍련교의 고급간부의 저택에 처들어가서
는 그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교주 측의 무사단인 귀영당이 남아 있긴 했지만, 실재 귀영당의 힘은 천마
나 구시독인에 비해서 미흡했고, 귀영당 자체 내에도 천마의 부하들이 섞여 있
었기에 때문에 교주로선 천마의 행동을 막을 힘이 없었다.
귀영당은 구시독인과 천마의 대립을 중간에서 조절할 정도의 힘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천마가 이미 총단을 완전 봉쇄한 탓에 구시독인의 휘하 간부들은 외부로 나가
있는 자신들의 부하에게 연락조차 하지 못하고 천마측 무사들의 검에 쓰러지니
총단은 단 이틀만에 천마의 세력권으로 완전히 포섭되고 말았다.
하지만 천마라고 해도 마음을 놓을 것은 아니였으니 아직 교주 측 세력이 약하
기는 하나 아직 건재했고, 가장 문제인 불괴곡 출신들의 무사가 있다는 것이였
다.
구시독인을 혼자서 쓰러뜨린 화룡대주는 불괴곡은 물론 천마측 무사들의 일부
에게도 상당힌 신망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구궁!!]
총단의 내의 교주의 집무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지면서 삼십여명의
무사들이 쏟아져 들어오니 집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던 다섯명의 간부들과 교
주로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홍련교의 배신자 유문영은 들어라! 그대는 본교 최고의 교주의 신분임에도 망
각하고 외부의 악적과 내통을 했으나 그것을 감추는데만 급급하니 그 죄를 묻
지 않을 수 없어 태상교주 천마 문천익은 과감히 칼을 들어 본교의 배신자인
유문영에게 열화의 계를 내리고자 하니 그대는 더 이상 반항하지 말고 무릎을
꿇어라!"
"열화의 계!!"
"감히 교주님의 앞에서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열화의 계란 말에 교주의 부하들은 크게 노성을 지르며 소리쳤지만, 정작 당사
자 유문영은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였다.
이미 대세가 천마의 측으로 기울었느니만큼 그들과 싸우는 것은 희생자만을 낼
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마 문척인이 건네준 족자를 읽은 사람은 다름아닌 화룡대주 장천이였으니 자
신의 딸을 자살로 몰아간 유문영을 용서할 수 없는 그가 이 일을 직접 맞게 된
것이다.
"그만들 하게나.."
"교주!"
"허허허 이미 대세가 기울었거늘 어찌 하겠는가.."
"흑흑흑..."
유문영은 이미 모든 것을 달관한 듯 자신을 보호하려는 부하들에게 그들과 싸
우는 것을 막고는 너털웃음을 흘렸고, 그 모습에 부하들은 무릎을 꿇고는 오열
을 터뜨렸다.
"뭐하느냐! 저 자를 끌어내지 않고!"
"예."
장천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하들은 교주에게 달려가서는 그를 포박하니 이로서
홍련교의 총단의 천마를 제외한 나머지 두 세력은 무너지고 말았다.
열화의 계, 이것은 불을 신봉하는 홍련교에서 교의 배신자를 처형하는 수법 중
의 하나로 뜨거운 가마 속에서 자신의 죄를 불로서 태우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마의 열기 속에서 살 수 있는 자가 없으니 일종의 화형과 같
은 형벌이라 할 수 있었다.
교주의 신분으로 있는 자가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은 오랜 역사 동안 처음 있는
일인지라 반발은 있었지만, 감히 천마의 힘을 거스르는 자가 없었고, 가장 큰
이유로는 이 일을 진행하는 이가 바로 화룡대주라는 점이였다.
구시독인과 단신으로 싸워 승리를 거둔 화룡대주였기에 어떠한 이도 그에게 대
적하지 못했던 것이다.
총단의 지하감옥, 장천들이 제일 처음 이곳에서 사람을 구해 자신들의 힘으로
만든 탓에 이곳에는 단 한명의 죄수 만 있었으니 바로 교주의 좌에서 밀려난
유문영이였다.
열화의 계를 받은 죄수인지라 수옥이 아닌 일반 감옥에 갇혀 있는 가부좌를 튼
채 침상에 앉아 있었다.
[삐그덕..]
어둠만이 있는 그의 감옥 문이 열리면서 붉은 불빛이 아른거리기 시작했으니
그 불빛 밑에는 근래에 들어 홍련교의 초고수 중 한사람을 두각을 나타내고 있
는 화룡대주의 모습이 보였다.
유문영은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 표정 없이 조용히 말했다.
"무슨 일이요."
"후후후..교주의 마지막 모습이나 구경할 겸 왔소이다."
장천은 미소를 지으며 감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햇불 하나만을 남겨 놓은 채 다
른 이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자네는 누구인가. 말하는 것으로 봐선 나를 아는 것 같던데..."
유문영은 그의 말을 들어보며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기에
물어보았는데, 장천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인피면구를 벗고는 말했다.
"오랜 만입니다. 장인.."
"장인?!"
장인이라는 말에 크게 놀란 유문영은 눈을 뜰 수 밖에 없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화룡대주라 알려져 있던 사람이 자신의 딸의 사위인 장천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가 어떻게?"
"역시 교주께서는 모르고 계셨군요. 제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말입니다."
"음...."
확실히 그의 힘이 구시독인과 천마에 의해 줄어든 상태였기에 외부의 일에 관
해서는 듣는 바가 적었다.
이런 이유로 천마나 구시독인 측에선 장천이 쌍도문에서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
을 입수했지만, 가장 높은 신분인 교주인 유문영은 자신의 사위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놀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유문영은 다시 눈을 감고는
말했다.
"아내와 자식의 복수인가..?"
"후후...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신도 그리고 홍련교란 단체도 말입니다."
"어찌할 생각인가 본교를 상대하기에는 자네의 힘은 미약할 것인데.."
"후후후 이곳에서 아무 재밌는 사람을 만났지요."
"재밌는 사람?"
"예. 바로 혈교의 소교주를 말입니다."
장천의 말에 유문영은 놀라고 말았다.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가 홍련교를 무너뜨릴 수단으로 무엇을 준비했는지 눈치
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혈교를 부활시킬 생각인가.."
"물론입니다. 뭐 교주에 좌에 오를 사람이 저의 의형제인지라 완전히 멸문 시킬
생각은 없지만, 아내와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자들은 반드시 숙청할 생각
입니다.'
"천마 역시 자네의 명당에 포함되어 있겠군."
"물론입니다."
유문영은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구시독인을 쓰러뜨렸다면 그의 무공은 현재 교내 서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고
수라는 뜻이였다.
거기에 불괴대제란 자와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만근퇴 우경이라면 천마를 몰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과연 천마가 그의 계산대로
움직여 주는 가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천마라면 그는 반드시 불괴대제나 만근퇴 우경을 움직여서
어느 한쪽을 쓰러뜨릴게 뻔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자네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는가?"
"물론입니다. 복수를 위해 이곳에 왔으니까요.."
"하지만 아내와 자식이 살아 있다면...?"
"!!"
유문영의 말에 장천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내와 자식이 살아 있다니..."
"내 딸은 죽지 않았네.."
"그런...분명 은영영은...."
자신을 불괴곡으로 떨어뜨리기 전 분명 은영영은 유능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
다고 했기에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문영의 입에서 그런 말
이 나오자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분명 자네가 죽은 후 딸아이가 자결을 시도한 것은 사실이나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네, 나 역시 그 아이를 둘러싼 세력이 자결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알았기에 더 이상 아이를 총단에 둘 수 없었기에 그 일을 빌미로 자결했단 발
표하고 외부로 아이를 내보내었네."
"아!"
"지금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자네의 문파인 쌍도문을 찾아갔다
생각했는데, 아쉽게 되었군."
유문영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고, 장천으로선 자신도 모르게 뒤로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유문영은 이런 일을 거짓을 말할 사람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한다면 분명 유능예와 자신의 아들은 어디선가 자신을 찾고 있을 것
이 분명할텐데, 그 자신은 이런 곳에서 아내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있
다는 생각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장천이였다.
하지만 이런 장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문영은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
지 않고 또 다시 침묵에 잠기니 그로선 멍한 얼굴이 되어 지하감옥의 한편에서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대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신을 부르는 부하들의 소리가 들렸기에 장천은 인피
면구를 다시 쓰고는 힘없는 몸으로 지하감옥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젠장!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거지...'
그러선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후회가 밀려올 왔다.
그 자신이 유문영을 열화의 계에 빠지게 했으니 만큼 그 후회는 더욱 클 수밖
에 없었지만, 지금 그의 사정으로 그를 빠져나가게 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의 직접적으로 일을 하고는 있지만, 현재 그의 세력이라고 하면 지하감옥을
빠져나가게 도와준 인물들과 귀대인 율명등 몇몇 인물밖에 없었기에 수백명을
사람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장인을 죽일 수는 없었다.
원수였다 생각했을 때는 몰랐지만, 그것이 오해였음이 밝혀졌는데, 어떻게 장인
을 죽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겠는가?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장천은 그를 구출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내일 아침
에 형이 집행되느니 만큼 시간이 없었기에 좀처럼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능예...난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만약 장천이 혈교를 이용하여 홍련교를 무너뜨린다는 말만 하지 않았지만, 유문
영은 장천의 고뇌에 빠뜨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 있다면 언젠가는 두 사람이 만나리라는 생각을 한 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혈교를 이용하여 홍련교를 무너뜨린다고 말함으로써 유문영은 자
신의 딸이 살아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그 일로 인하여 장천이 교를 무너뜨
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였다.
다른 문파와는 달리 홍련교는 불을 신봉하는 종교 집단이였기에 자신이 죽더라
도 교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유문영은 그에게 더 이상 수를 쓰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