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장 홍련교의 내전 (5)
썩어가는 추노의 시체를 장천이 들고 나오자 율명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서로간의 생사를 확인하고 자네를 기다렸건만....어르신만..."
"죄송합니다."
장천은 율명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 옆에 방에 있는 사람도 풀어주도록 하게."
"옆에 방이요?"
"오랜 시간 이곳에 있다보니 옆에 방에 있는 사람과도 친해지게 되었네."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장천은 추노가 있던 옆의 수옥의 문도 열었는데, 그곳의 침상 위엔
한 남자가 가부좌를 틀고는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천이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자 그는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어르신은 돌아가셨는가?"
"그렇습니다."
"역시...."
그는 장천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부좌를 풀고 수옥을 걸어 나왔
다.
"아!"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다 헤어져 있는지라 오랜 시간 이곳에 갇혀 있었다는 것
을 알 수 있었지만, 예상외로 멀쩡한 모습인지라 조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수옥을 나선 그는 치료를 받고 있는 율명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자네가 율명인가?"
"그렇소."
"추노가 이겼으니 내기의 댓가를 치르도록 하겠네."
장천으로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와 추노 어르신간에 무슨 내기가 있
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장천은 율명을 보며 그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분은 과거 마교와 자웅을 겨루었던 최강의 단체 중 하나였던 혈교의 소교
주이시네."
"혈교!!"
장천의 그의 말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괴곡을 벗어날 때 강시의 이야기로 잠깐 듣기는 했지만, 진짜 혈교의 인물을
그것도 소교주의 신분을 가진 사람을 직접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
다.
"30년 전 마교가 혈교를 멸문 시킬 때 유일하게 남은 분으로 당시에 12살의 어
린 나이였지.."
"그렇다면..."
"30년간을 수옥에 갇혀 사신 것이네."
"아!"
단 1년 정도를 갇혀 있었음에도 귀대인 율명 같은 사람이 폐인이 다 되가고 있
었는데, 열두살의 어린 나이에 갇혀 30년간을 수옥에 갇혀 있었음에도 아무렇지
도 않게 몸을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장천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추노 어르신은 네가 살아 있음을 의심하지 않으셨고, 반드시 수옥에 갇힌 우리
들을 구하러 오시리라 돌아가실 때까지 믿으셨다. 그런 이유로 옆방에 혈교의
소교주가 있음을 알고 네가 우리를 구한다면 힘이 되어 달라는 내기를 하신 것
이지."
"그런..."
추노가 배신자인 자신을 죽을 때까지 믿었다는 말에 장천은 고마움과 함께 죄
송스러움에 오열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그 모습을 본 혈마가 천천히 다가서더
니 말했다.
"꼬마야. 네가 진정 어르신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면 당당히 마교의 교주의 좌
를 차지하도록 해라. 그것만이 어르신의 뜻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니 말이다."
"....."
하지만 장천은 문성을 교주의 좌에 앉히기로 약속한지라 혈마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의지가 약한 녀석이군."
혈마는 장천이 대답을 하지 않자 그의 의지가 약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내
젖고는 돌아서려고 했기에 그는 급히 말을 이었다.
"물론 추노어르신의 뜻을 저버리진 않을 것입니다. 다만 교주의 좌는 제가 아닌
화의 무공을 이은 다른 사람이 오를 것입니다."
"다른 사람?"
장천의 말에 율명은 크게 놀라서는 되물었는데, 고개를 끄덕인 그는 율명에게
문성에 대해서 말을 해주었다.
"그런 일이...하지만 문성이란 아이는 천마의 아들이다. 교주의 좌에 문성이란
아이를 앉힌다해도 나중에 너에게 큰 해가 닥칠 것이다."
"어느정도 예상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율명으로선 그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장천의 눈에 서려 있는 의지의 눈빛을 보며 뜻을 꺽을 수가 없다는 것
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꼬마야 이제부턴 어찌할 생각이냐?"
"불괴대제와 만근퇴 우경이 천마와 교섭을 벌이기 위해 문성과 함께 가있으니
조만감 소식이 올 것입니다."
"만근퇴 우경이라...."
율명 역시 만근퇴 우경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조금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
다.
"이곳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숫자는 어느정도나 되느냐?"
"대략 40여명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포섭하도록 해라. 마교의 세력다툼에서 밀려난 자들이기는 하지만, 외
부와 어느정도 선은 닿아 있을테니 말이다."
율명의 말에 장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혈마와 귀대인 율명을 지하감옥에서 구출하는데 성공한 장천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지하감옥의 전각에서 불괴대제와 우경의 소식을 기다렸고, 두시진 후 암혈
당의 무사의 옷을 입은 불괴곡의 전령이 지하감옥의 전각으로 도착했다.
"어찌 되었느냐?"
장천은 그가 도착하자 다급하게 물었는데, 전령은 고개를 숙이며 두 사람에게서
온 소식을 전했다.
"천마의 포섭에 성공했다 합니다."
"되었다. 그렇다면 천마의 전각으로 가도록 하자."
"예."
지하감옥에서 나온 인물들과 함께 장천은 천마의 전각이 있는 곳으로 향했으니
총단은 크게 난리가 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란이야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는 일이였기에 방해되는 무리들
을 모두 처리하고 앞으로 나서는 일행들이였다.
천마의 전각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수의 무사들이 전각의 주위를 감싸듯 지키
고 있었으니 바로 천마의 부하들이였다.
"멈춰서시요!"
"불괴곡의 화룡대주다!"
장천의 무리들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당연히 천마의 전각을 지키는 무사들이
앞을 막았는데, 그는 불괴곡의 화룡대주라는 말을 했고, 이미 천마에게 명령을
전달받은 그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무리들을 전각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눈에 익은 남자가 장천들을 보며 포권을 하고는 인사를 하니
그로선 조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불괴곡의 화룡대주께 인사드립니다."
"큭..."
그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홍련교에서 만나기 꺼려지는 인물 중의 한사람인 은
가장의 은석영이였던 것이다.
은가장이 천마의 세력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자신을 맞으려
오는 사람이 은석영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다행히 본 얼굴을 가리기 위해 전각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인피면구를 쓴지라
은석영이 장천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로선 조금 떨떠름할 수밖에 없었다.
장천은 불괴대제와 우경에게 자신이 귀옥각의 각주였다는 사실을 밝히지 말라
고 했기 때문에 현재 이곳에서 자신의 정체를 아는 인물은 귀대인 율명과 혈마
뿐이였다.
다른 이들은 장천이 총단과 얽혀 있는 사건을 모르고 있었으니 불괴대제와 우
경에게 단순히 불괴곡에 갇혀 있는 무사 중의 한사람이라고만 밝히라고 했기에
다른 이들은 그가 장천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교의 첩자였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장
천으로선 당연한 일이였다.
은석영의 안내를 받아 들어서니 천마 문천익과 함께 불괴대제, 우경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고, 그 옆에선 시녀에게 시중을 받고 있는 문성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되로 문성은 천마의 자식으로 인정을 받았는지 값비싼 옷을 입고있는지라
과거에 비교해서 많이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형아!"
인피면구를 썼다고는 하지만, 문성은 장천을 알아보고는 반가운 듯 달려왔다.
달려온 문성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장천은 앞으로 가서는 천마의 앞에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불괴곡의 화룡대주가 천마께 인사드립니다."
"오! 반갑소 아! 지하감옥 일은 잘 처리되었소이까?"
"그곳의 포로들은 포섭할 수 있었으니 저희로선 큰 힘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
지요."
"다행이요. 자 자리에 앉아 차라도 한잔 드시도록 하시요."
"감사합니다."
천마의 말에 감사의 인사를 보낸 장천은 근처의 자리에 앉았다.
옆을 쳐다보니 우경은 웬지 시꾼둥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를 불괴곡에 떨
어뜨린 원흉이 천마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과연 불괴대제께서 믿을 만한 사람이군요. 총단의 지하감옥을 이렇게 단시간안
에 점령하여 사람들을 포섭했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화룡대주는 제 손자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무공이나 지략에서는 과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지요."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가 있었던지 천마는 장천에 대해서 크게 칭찬을 하고 있
었다.
"이제 화룡대주께서 오셨으니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원로회는 이미 손을 써 놓았으니 이번 일은 단순히 교내의 권력쟁투라 생각 할
것입니다."
"과연 천마이십니다. 그럼 가장 먼저 구시독인이란 자의 세력을 치는 것이 좋을
듯 하군요. 전에 있던 정파의 첩자의 일로 교주의 세력은 급격이 줄었으니 말입
니다."
장천이 불괴대제에게 제시한 것은 이런 것이였다.
교주와 천마, 구시독인의 사이는 서로 앙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이런 관계에서 불괴곡의 무사들이 천마의 세력을 힘을 불어 넣어준다면 세 세
력간의 힘의 균형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잇점을 살려 한 쪽 세력을 빠른 시간 안에 무너뜨리고, 뒤이어 나머지 세
력을 무너뜨린다면 단시간에 총단의 세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총단의 반대세력들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
이었으니 이런 이유로 거사는 길어야 삼일을 넘겨서는 안되었다.
일이 잘못되어 구시독인이나 교주의 세력이 외부로 총단 내의 일이 전달될 경
우 싸움은 총단이 아닌 홍련교 전체로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서는 천마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하니 장천
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천마단주 은조상 천마님께 아룁니다."
"말하라."
"천마단 200명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후원에서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고했다. 화룡대주 저 사람이 제가 총애하는 천마단의 단주 은조상입니다."
"화룡대주라 하오."
장천은 은조상을 보며 찹잡한 기운을 들 수 밖에 없었지만, 아무런 표정 없이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일어나서 말했다.
"천마단의 무사들이 준비가 되었다 하니 이제 일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합니
다."
은조상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장천은 천마와 불괴대제들을 보며 말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잘 성사되기를 빌겠소."
"그럼.."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나선 장천은 불괴곡의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준비되었는가?"
"물론입니다. 대주."
교내로 들어 온 200명의 불괴곡의 무사들은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장
천이 들어서자 병장기를 손질하는 것을 멈추고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강시는?"
이번 구시독인의 세력을 습격할 때 가장 선두에 설 것이 바로 혈강시였기에 불
괴대제와 우경이 만든 두구의 혈강시에 대해서 물었는데, 화룡대의 부대주는 난
처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것이 대주와 함께 오신 분이 혈강시를 보고는 대법이 잘못 되었다 하시면서
혈강시를 들고 사라지셨습니다."
"음...."
자신과 같이 온 사람 중에 혈강시를 알아볼 사람이라면 수옥에 갇혀 있던 혈교
의 소교주 혈마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단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 밖
에 없었다.
"알겠다. 그렇다면 그 분이 오실 때 까지 잠시 기다리도록 하자."
"예."
장천의 말에 무사들은 혈강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삼다경
정도가 지나자 혈포를 입은 중년인이 두구의 혈강시를 들고는 그들의 앞에 내
려섰는데, 혈강시가 입은 옷이 시뻘겋게 피로 젖어 있는지라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은 다 끝내셨습니까?"
"녀석들의 힘을 두세배 정도 끌어 올렸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혈마는 장천을 보며 차갑게 말을 한 후 두 구의 혈강시를 그의 앞에 내려놓고
는 나무 뒤에 걸터앉아서는 사색에 잠겼고, 장천은 부대주를 보며 명령을 전달
했다.
"가자!"
"예."
드디어 본격적은 결전의 시작이였으니 은조상이 지휘하는 천마단 200명과 장천
이 지휘하는 화룡대 200의 무사들은 구시독인의 전각을 향해 나아갔다.
오랜 시간 세 세력의 다툼으로 인하여 총단으로 들어서는 경계가 허술해 진 것
이 오늘의 이 사태를 낳게 한 원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