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135화 (136/355)

제 26 장 광무자 냉혈검을 손에 넣다. (4)

하지만 유운이란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인지라 그녀로서는 망설

여 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생각을 아는지 광무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인을 믿기에는 어려울테니 아이에게 한가지 선물을 드리지요."

광무자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품에서 옥병을 하나 꺼내어 환

단을 하나 꺼내니 청아한 향기가 흐르는 것이 보통의 환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사형 그것은 청심단이 아닙니까?"

무림인에게 내력을 증진하게 해주는 약이라는 것은 황금보다 더 귀하다고 할

수 있으니 이준은 대사형이 꺼낸 환단이 청심단이라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라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네."

이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광무자는 그것을 유능예에게 건네 주면서 말했다.

"아이가 일곱살이 넘었을 때 이것을 복용하고 운기조식을 도와주도록 하십시요.

미흡하지만 약간의 내력을 얻을 수 있어 무공을 연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

다."

"아!"

이러한 영약을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고 있는 유능예는 크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협께서 이렇게까지 저희 아들을 이렇게 까지 생각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

겠습니다. 후에 아이가 어느 정도 글을 알게 될 때 대협께 보내도록 하겠습니

다."

외부에 이름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아이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청심

단을 받은 능예는 광무자에게 아이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아! 다행이구나.'

유능예 그녀는 아버지인 현 교주의 도움으로 임신한 몸으로 교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남편인 장천이 정파의 첩자라는 것이 밝혀져 죽음을 당하자 유능예는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는 생각에 자살할 결심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자결을 하면 뱃속의 아이를 죽이는 것과 같은 일이였기에 남편

을 두번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차마 목숨을 끊지 못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자신에 대한 처리에 교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지

나지 않아서였다.

천마와 구시독인이 장천의 일로 교주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저택내에서 죽은 듯이 살고 있었던 유능예였지만, 이러한 아버지의 고통

을 모르지는 않았고, 또 천마와 구시독인 중 한사람이 교의 권력을 잡는 날에는

후에 태어날 아이가 순탄치 못한 삶을 살 것이란 생각에 탈출을 결심한 것이다.

그녀의 부친인 현교주 역시 어느정도 그러한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장천이 배신자로서 죽자, 교주 휘하의 독립세력이였던 귀영당은 크게 위축이 되

었기에 교내에서 그는 허수아비와 같은 신세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장천이 밉기는 했지만, 딸과 뱃속의 아이마저 미워할 수는 없었던

그녀가 자결을 했다고 말함으로서 두 사람을 총단의 밖으로 탈출시키게 되었다.

다행이 이 일을 암영자 두 사람이 도와줌으로서 유능예는 아이와 함께 무사히

총단을 빠져 나오게 되었으나 평생 총단에서 살아온 그녀에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암담할 수밖에 없었다.

홍련교의 총단을 빠져나온 유능예는 다행히 부친인 교주가 많은 돈을 주었던지

라 그리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는 있었지만, 만삭이 된 배로 강호를 여행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였다.

처음 그녀가 간 곳은 감숙성에 있는 남편의 출신 문파인 쌍도문이였다.

아이의 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였기 때문인데, 막상 쌍도문의 앞에 들어서

니 남편을 죽이고 다가온 자신에게 정파인 그들이 태어날 아이를 박대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지라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유능예는 쌍도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망설이다가 감숙성의 작은 마을에 머물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들인 소천을 낳게 된 것이다.

작은 마을에서 소천을 키우며 살던 그녀는 우연히 쌍도문의 소주가 살아 돌아

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크게 기뻐하여 아이와 함께 문으로 찾아가게 되

었는데, 그곳에서 소주가 신부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을 하여 다시 강

호를 떠돌아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을 잊은 장천을 원망하여 한 때는 소천을 죽이고 자신도 죽을 생각을 했던

그녀였지만, 차마 손을 쓸 수가 없었던 어미인 능예는 과거 자신에게 학문을

가르쳐주었던 스승에게 몸을 의탁해볼까 호북까지 가게 되었으니 스승이 관직

을 얻게 되어 떠났다는 말에 그가 있는 곳을 찾아 강호를 여행하다가 이렇게

광무자와 이준을 보게 된 것이다.

한편 이준은 그녀의 모습에 크게 반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나이 올해로 서른 둘, 장가가기에는 늦은 나이인데다가 알아 봐둔 처자도

없었으니 외롭기 그지없는 그였다.

하지만 장가를 가려 해도 눈이 높았던지 아니면 근처의 여자가 없었던지 마음

에 드는 여인이 없었는데, 유능예를 만나고 보니 마음이 크게 기울기 시작한 것

이다.

물론 그녀가 남편을 잃은 과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늦은 나이였는

지라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그였다.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 그리고 섬세한 손길과

아이를 생각하는 따사로운 모성애 모든 것이 그의 이상형과 너무 부합하는지라

이준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신은 어쩌면 나에게 이 여인을 보내기 위해 지금까지 어떠한 여인도 나에게 보

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가슴이 떨리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 떨리는 가슴 너머에 하나의 분노가 서려 있었으니 바로 죽었다고 생각한 그

녀의 남편이였다.

'이...분노는...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이 먼저 이 여인을 만났다면 그녀의 얼굴에 스며 있는 슬픔을 존재하게 하

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그였다.

'나와 여인이 되어 달라고 말했으면...하지만...아직 난...'

그녀에게 이준은 너무나 작은 존재였다.

문과 무, 둘 중 하나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부족한 것인데, 자신은 어정쩡

하게 두가지 모두에 힘을 쓰는 바람에 문도 무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있

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가능할까...'

가능할까가 아닌 가능해야 했다.

적어도 문주와 같은 강북십웅정도의 명성을 얻지 못하는 한 그녀와 자신과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명성을...명성을...명성을....'

그 때 광무자의 허리에 차여져 있는 검이 눈에 들어오는 이준이였다.

'냉혈검...그래! 냉혈검만 있으면 난 이 여인을 차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삼십이 넘는 시간을 오로지 서고와 연무장만을 돌아다니던 그의 눈에는 불길을

타오르고 있었다.

'응?'

한편 유능예와 이야기하고 있던 광무자는 자신의 뒤에 있던 이준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자 고개를 돌려서는 그를 봐라보게 되었다.

멍한 눈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그였기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이준이 평상심을 잃었군.'

광무자 유운, 그가 이준을 데리고 다닌 것은 그의 때묻지 않은 심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는 나이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의문을 파고드는 그의 자세는 강호에

서 더러움에 익숙해버린 자들과는 다른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서서히 흰백지 위로 먹물이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였

기에 무슨 연유로 갑작스럽게 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설마..?'

광무자는 자신도 모르게 앞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처다보았다.

이미 육십이 넘는 나이인데다가 오랜 시간 무에만 전념을 했기에 여인에 관한

정욕같은 것은 마음 속 깊숙히 가라 앉힌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의 눈으로도 앞에 있는 능예라는 여인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아이를 감싸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선 중생을 보다듬는 관음보살과도 같은 기

운이 흘러나왔지만, 그와 함께 백전의 맹장을 홀릴 듯한 요염한 색기도 흘러나

오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그야 그 색기는 감퇴되고 모성애를 느끼는 기운은

강해졌기에 별로 문제가 없었지만, 아직 젊은 이준이라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

다.

'실수구나...'

유능예, 지금의 그녀는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할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한순간 광무자는 이 여인을 죽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여인을 죽이고 아이를 자신이 무림에 내노라하는 고수로 키운다면 어느정도

죄값은 상쇄될 것이고, 이준의 이러한 모습도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 검의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여인의 한마디로 인해 그것

을 깨어지고 말았다.

"대협 어디 편찮으십니까? 안색이..."

"아! 아무 것도 아니요."

자신을 걱정하는 그녀의 말에 광무자는 손에 힘이 한순간 빠져나가는 것을 느

꼈다.

'무슨 짓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

정파의 무인의 한사람으로 여인을 해하려했다는 생각에 아직 자신의 수양이 부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아. 이제 길을 가도록 하자꾸나."

"아! 예 대사형."

이준은 광무자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든 듯 고개를 숙여 대답을 하고는 앞장섰고,

광무자는 그의 뒤를 따라 사천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사천으로 가는 도중 광무자는 이 여인을 이준과 맺혀주기 위해 몇가지 시도를

해보았지만, 아쉽게도 능예는 사별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려하는지라 한숨

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준 역시 가슴을 졸이는 것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으니 안타

까움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사제가 냉혈검을 노리고 있는 듯 한데, 이를 어쩐단 말인가...'

냉혈검을 얻은 후 이준이 그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시선은 아니였다.

과거의 시선은 어린아이가 과자를 얻지 못한 아쉬움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시선

은 황금을 처다보는 탐욕어린 시선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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