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129화 (130/355)

제 25 장 견즉사의 호청명 (3)

장천의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우경은 마음을 정하고는 장천을 보

며 말했다.

"자네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네"

"옳으신 판단입니다."

"좋아할 것 없네, 이건 맹내에서 기반을 닦기전 까지의 잠정적인 동맹에 불과하

니 말일세."

"헤헤 여부가 있겠습니까?"

비굴한 표정으로 손을 빌며 말하는 장천을 보며 우경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호어르신은 이분들에게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처방전을 써주세요."

"무슨 말이냐? 난 분명히 한 무리만을 치료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무슨 소리에요. 방금 전의 이야기를 못 들었나요? 저희는 동맹이라고요. 동맹

그러니까 갖은 편이란 말이에요."

"떼끼!! 내가 그런 것을 몰라서 그러느냐? 하지만 내가 허락했을 때는 분명 다

른 무리였으니 처방전을 내어 줄 순 없다."

호청명이 처방전을 내어 줄 생각을 하지 않자 장천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

개를 내젖고는 우경을 보며 전음을 전했다.

[우경 어르신의 식솔들이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하기 위해 마차를 이용하여 산밑의 마을에 머물고 있다

네.]

[잘됐군요. 그럼 그들을 데리고 동서쪽으로 80리 정도 떨어진 진면이라는 마을

로 가십시오. 그곳으로 가면 불괴대제를 비롯하여 사람들이 있을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우경은 장천의 뜻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겠네. 그런데 우리들이 찾아가면 불괴대제가 믿지 않을 것인데.]

[제 뒤쪽으로 내려가시면 불괴대제의 수하들이 있을 겁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그들에게 전음을 날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전음으로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장천은 견즉사의 호청명을

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럼 한군데라도 일단 치료해야 되겠네요."

견즉사의 호청명은 장천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지라 일단 약조한 것은 지키기 위

해 집안에서 몇가지 물건을 들고 나왔는데, 그것을 본 장처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했다.

"어라 약 같은 것은 가지고 가지 않나요?"

"그런 병은 침과 함께 흔히 볼 수 있는 약초로도 치료할 수 있으니 걱정 말아

라."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럼 내려가죠."

"알겠다."

호청명과 정천은 산을 내려와 한 마을의 객점에 들리게 되었다.

사천의 오지에 있는 마을인지라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장천은 그곳에

서 예상외의 인물을 보게 되었다.

바로 과거 쌍도문의 일행들과 사천당가에 들렸다가 만났던 남만의 독문의 무사

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저 자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장천은 분노가 치솟아 오르지 않을 수 없었으니 바로

곽무진을 사경으로 몰고갔던 인물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불괴곡의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에 그와

싸움을 벌일 수 없는 장천은 이를 갈면서도 모르는체 할 수 밖에 없었다.

장천의 이를 갈고 있는 인물은 바로 독문의 무사인 쌍두편 구랍이였다.

구랍의 앞에는 두명의 무인이 있었는데, 건장한 덩치에 태양혈이 크게 두드러져

보이는 인물이였다.

'사천 당가의 일도 있었는데, 독문의 인물이 아직 사천으로 들어오다니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건가?'

구랍의 무공은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본 장천인지라 독문에서의 서열이 낮지 않

음을 알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이렇게 직접 나선 것을 보면 심상치 않은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케케케 저 눈 째진 놈을 유심히 살피는 것을 보니 무슨 연유가 있는 모양이구

나?"

"헉..."

호청명이였다.

그는 장천이 쌍두편 구랍을 보며 이를 갈더니 유심히 관찰하는 것을 보며 그와

무슨 연관이 있는 자라는 것을 알고는 또 다시 심술보가 터진 것이다.

"응?"

쌍두편 구랍은 호청명이 말하는 눈 째진 놈이란 것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고개를 돌려 장천들을 처다보았다.

'젠장! 이 빌어먹을 노인네가!!'

장천으로선 제대로 일을 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시비만 거는 호청명을 보며 욕

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흑흑흑....할아버지..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여기에 눈이 째진 사람이 또 어디있

다고 그러세요..흑흑흑...정정하시던 분이 망령이 드셔서...흑흑흑.."

"무슨 소리냐 이 놈아 망령이 나다니!!"

장천의 말에 호청명은 노기가 터뜨리며 소리를 지르니 장천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망령이라니 제게 말 실수를 했군요."

호청명을 보며 그렇게 말한 장천은 급히 변태변골을 사용하여 얼굴을 급히 바

꾸고는 고개를 돌려서는 사람들을 보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몸이 좀 안좋으셔서.."

"누가 네 할아버지냐! 이 녀석아!"

"흑흑흑..할아버지...제발 좀 정신 좀 차리세요..흑흑.."

자신의 말에 화를 내며 소리치는 호청명을 보며 그의 품으로 달려가서는 눈물

을 터뜨리며 소리치니 사람들은 쌍두편 구랍은 늙은이가 망령이 들어서 헛소리

를 했구나 하는 생각에 불쌍한 소년이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열 다섯 정도로 보이는 장천은 호청명의 손자뻘로 보이는데다가 눈물까지 흘리

며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어느 누가 장천이 거짓을 말하

고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미동계라는 희대의 표정연기로 단련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였

다.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장천이 망령난 늙은이로 자신을 몰

아 붙이는지라 호청명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늙으면 서럽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늙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망령난 늙은이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호청명의

한탄이였다.

'휴... 그나저나 이 놈의 늙은이 날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군.'

간신히 위기를 넘긴 장천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다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무튼 저희 철사방(鐵砂 )과 독문과의 동맹권을 잘부탁드리오."

쌍두편 구랍의 앞에 있던 두명의 무사 중 대도를 차고 있는 무사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요. 본문 역시 이번 기회에 중원에 진출할 계획이니 이번 동맹권은 서로

간에 득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오."

'철사방이라...'

철사방은 사천의 서부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사파의 방파 중 하나였다.

물론 사천당가나 아미파, 청성파와 같은 거대문파가 몰려 있는지라 그리 큰 방

파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서부 일대에서는 어느정도 알아주는 이름을 지니고

있으니 남만의 독문이 이용하기에는 쓸만한 방파라고 할 수 있었다.

'독문이 중원으로 나서려나보군.'

녀석이 무엇 때문에 사천에 왔는지 알게 된 장천은 점원을 보며 간단하게 음식

을 시켰는데, 한참 후 십여기의 인마가 객점 앞에서 서더니 쌍도편 구랍과 함께

있는 철사방의 무사들의 앞으로 걸어가서는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방주께 인사드립니다."

"되었다. 일은 잘 머무리 되었느냐?"

"아마 지금 쯤 아미의 비구니들은 난리가 났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잘했다. 이만 물러가도록 해라."

"예."

이런 작은 마을에서 정파나 방해되는 문파의 무사들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아미파에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호청명의 경우에는 원래 오두막에서 혼자 기거하는 지라 옷이 남루하기 그지

없었고, 장천 역시 불괴곡에서 빠져나온지 얼마 되지 않는지라 허름한 옷을 몇

번 빨아 입었을 뿐 남루하기 그지 없었기에 무인이라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미? 가만있자. 전에 청성파의 무사들이 분명 해독약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사파의 무사들과 싸웠단 말이야...음..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중간에 싸움을 목격한지라 장천으로선 그 전후사정을 알지 못했다.

만약 독에 관련되었다면 독문이 관련되었을 확율은 높았는지라 철사방과 독문

이 사천에 있는 정파를 상대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

다.

'이 놈의 독문이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몰라도, 일단 당가에 알려주는 것

이 좋겠군.'

아미나 청성은 모르지만 사천당가의 경우에는 쌍도문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

에 철사방과 독문의 일이 계획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경고

는 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장천이였다.

간단하게 식사를 끝낸 장천과 호청명은 그 곳에서 하룻밤 기거하기로 결심했고,

사천 당가에게 독문과 철사방의 계획을 알리기 위해 장천은 밖으로 나갔다.

어떤일이 모르는 시점에서 하루 빨리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문이다.

장천이 직접 가기에는 당가타까지는 적어도 삼일은 걸리는지라 그가 의탁할 곳

이 없었으니 누구에게 부탁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때 객점에서 쌍두편 구

랍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급히 변태변골을 사용한 장천은 얼굴을 바꾼 후 근처에 자리를 잡았는데, 갑자

기 구랍이 자신을 보고는 천천히 걸어오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녀석이 왜...'

구랍은 장천의 앞으로 걸어와서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자네 아까 노인분과 같이 있던 소년이 아닌가?"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로?"

정체를 드러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 장천은 그를 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어보았는데, 그는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서는 그에게

건네 주었다.

"이건?"

"별거 아니네, 본문에서 정신을 맑게 해줄 때 쓰는 환단인데, 보아하니 자네의

할아버지께서 몸이 안좋은 것 같아 드리는 것이네."

"아! 감사합니다."

일단은 구랍이 호의를 베푸는 것이였기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환단을 받았는

데, 그는 그런 장천은 보며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네?'

지금까지는 자신의 매부라고 할 수 있는 곽무진을 죽일뻔한 사람이였기에 나쁘

게 보고 있었는데, 아무런 면식도 없는 사람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환단을

내주는 것은 그가 심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생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환단의 냄새를 맡아보니 청아한 향이 머리를 맑게 해주는지라 그의 말대

로 복용하며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듯 했다.

한시진 정도가 지난 후 간신히 사천당가로 보낼 사람을 찾은 장천은 그에게 미

리 써놓은 서신과 함께 은자 열냥정도를 주고는 부탁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할 일은 했다고 생각한 장천은 가뿐한 마음으로 객점 안으로 들어섰는

데, 역시나 문제의 노인과 같이 하는 여행을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이 늙은이가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거야?"

"뭣이! 이 비러먹을 똥강아지 같은 녀석이!!"

"뭐야!!"

객점 안으로 들어서자 호청명과 철사방의 무사가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

니 장천은 크게 놀라서는 뛰어 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무사님."

장천은 급히 무사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그는 호청명을 가리키고는 크게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놈의 늙은이가 다짜고짜 크윽..."

무사는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호청명은 호탕한 소리로 웃더니 말했다.

"케케케케 아랫도리가 부실하다는 말이니 지 입으로 못할 수 밖에..케케케"

"뭣이!!"

"내말이 틀렸냐? 쓸데없이 혈기만 드쌔니 흥분을 참지 못하고 조루에 걸릴 수

밖에 크크크"

"저 늙은이 죽여버리겠다!!"

"휴..."

역시나 호청명의 도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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