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126화 (127/355)

제 24 장 대탈출 (5)

불괴대제가 이 곳을 빠져나가려는 방법은 과거 장천이 시도하려던 방법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통로를 빠져나간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인간이 아니라면?"

"강시."

"아!"

그 말에 장천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강시라면 차가운 물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을테지만, 설마 불괴대제가 강시

를 만들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강시를?"

"마교의 역사는 피로 물든 역사라고 할 수 있네, 그 중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던

싸움이 바로 혈교와의 싸움이지."

"설마 혈교의 잔당이 이곳에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 말에 불괴대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물론 혈교의 잔당은 죽었다네, 하지만 그런 자가 이곳에 떨어진 적은 있었고

그의 품에서 강시의 제조비법을 알아 낼 수 있었다네."

"그렇군요."

"하지만 강시 제조비법은 반은 우경이 가지고 있었기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

러버린 거라네."

그의 말대로라면 우경 역시 강시를 이용하여 이곳을 빠져나가려 하는 방법을

취할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한사람만이라도 빠져나가면 가능할테지만, 시야에서 벗어난 강시를 조정

할 수가 있습니까?"

"물론 보통의 강시로는 불가능하지만 혈강시라면 가능하네."

"혈강시오?"

"혈강시는 살아 있는 자를 강시로 만드는 대법이지, 어느정도의 이지는 남아 있

으나 시 자에게 절대 충성을 하는 강시라고 할까?"

"음..."

인간의 윤리로 허용될 수 없는 일이였지만,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

각에 그에게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그였다.

"혈강시의 제조가 끝난 것입니까?"

"혈강시를 만들던 중 염아귀의 습격으로 주화입마의 빠질 뻔 한 덕에 우경 녀

석보다 늦었지만, 내일이면 완성이 될 것이라 생각되네."

"그렇군요."

염아귀가 바로 문성이라는 것을 아는 장천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다음날 불괴대제들은 혈강시들과 함께 계곡의 물이 통하는 입구로 모여 들었다.

"우리가 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들여 완벽한 혈강시를 만들려고 했는지 아는

가?"

"글쎄요?"

"보고 있게나."

불괴대제가 혈강시에게 지시를 하니 녀석은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기 시

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녀석이 들어 간 후 무엇인가 물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고기? 그럼!!"

"그렇다네, 혈강시의 몸에는 시독이 가득하기 때문에 물에 들어간다면 모든 생

물을 죽이고 말지."

"그렇군요. 실패했을시에는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었

다는 거군요."

"그렇지."

물론 물고기 외에 이끼를 먹고 살 수는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물이 없었기 때

문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는 혈강시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이곳을 빠져나가느냐가 문제네,

만약 혈강시가 실패한다면 불괴곡에는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죽을 수 밖에 없다

네."

"자유가 아니라면 죽음밖에 없다는 것이군요."

장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불괴대제였다.

이미 불괴대제는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혈강시가 독으로 물을 오염시키기 전 이미 많은 양의 물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불괴곡 자체가 기온이 낮은 곳이였기에 물이 상할 염려는 없었지만, 오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물의 양은 빠른 속도로 줄어 들었다.

혈강시가 외부로 나간지 삼주일 째 불괴대제는 물의 소비를 최대한 줄여 시간

을 늘일 수 밖에 없었다.

"불괴대제님!!"

"무슨 일인가!"

"만근퇴 우경 쪽에 있는 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음..."

자신들보다 먼저 손을 썼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였

다.

"만근퇴 우경이 저희들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는지.."

그의 곁에 있던 측근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괴대제를 보며 말을 했지만, 그

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근퇴 우경이 우리를 싫어한다하나 치졸한 자는 아니다. 우리를 도와주지는

않겠지만, 방해할 인물도 아니다."

"...예.."

그의 측근 역시 그러한 것들을 알고 있었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마음은 불괴대제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일주일만 더 지난다면 저장해 놓은 물이 모두 떨어질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는지 이틀 후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

다.

"대제!! 드디어!! 드디어!!"

"무슨 일인가?"

"혈강시가 밧줄을!!"

"아!"

수로로 빠져나간 혈강시는 빠져나간 후 그들이 있는 곳에 밧줄을 던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단 밧줄이 하나가 내려오면 그것을 통해 무공이 높은 사람들은 쉽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천 역시 이들과 함께 불괴곡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계곡을 빠져나온

곳을 보자 사방에 수백명의 시체가 널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체의 곁으로 다가가 상처를 살펴보니 손톱에 찢어진 자국이 선명한지라 이들

이 혈강시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혈강시라...'

마교에서 중죄인만을 가두는 불괴곡을 지키는 무인들이라면 그리 약하다고 볼

수 없음에도 수백이 넘는 무인들은 단신으로 상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였다.

마교에게 거의 멸망직전 까지 간 혈교의 비전인 혈강시가 이토록 강한 위력을

나타낸 것을 보며 앞으로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혈강시의 의해 죽음을 당한 시체 말고도 다른 상처의 시체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마에 무엇인가에 뚫린 듯한 상처가 있는 시체였다.

혈강시의 손톱으로는 이러한 상처를 낼 수는 없는 일이였기에 장천으로선 다른

인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백화급의 인물이였다.

이 정도의 인물이라면 이곳의 무사들을 통솔하는 위치일 것이 분명할 터였기에

이자가 먼저 죽자 지휘계통이 흐트러져 나머지 무사들은 제대로 조직적인 반항

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쨋든 탈출을 했다는 자체가 중요하니까.'

자신들을 도와주었다면 적은 아니라는 생각에 골치 아픈 생각은 뒤로하고 사람

들을 도와 무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한 작업을 서둘렀

다.

바구니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그들을 끌어올리기 시작한지 5일만에 드디어 오

백명의 불괴대제 휘하의 사람들은 모두 불괴곡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이 시간에 구천신녀를 구하기 위해 염아귀와 사람들을 보냈지만, 좀처럼

그들이 오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장천은 그녀가 있는 곳의 계곡으로 향했는

데, 그곳에서 염아귀가 한여인을 안은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음..."

가까이 다가간 장천은 그가 안고 있는 여인이 구천신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에 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의 실수다...'

혈강시가 불괴곡의 물 속으로 들어가자 시독으로 인하여 물은 독수가 되어 있

었는데, 구천신녀가 있는 곳까지 그 물이 오염되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독수를 마신 구천신녀는 고통 속에서 외로이 죽음을 당했으니 어

찌 문성이 슬프게 울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녀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야 했음에도 잊어버린 자신을 욕할 수밖에 없는 장

천이였다.

"문성..."

"흑흑흑...형..."

문성은 그가 오자 눈물을 흘리며 돌아보더니 피로 글자가 쓰여져 있는 헝겁조

각을 장천에게 건네 주었다.

"음..."

문성이 준 것은 구천신녀가 마지막 힘을 다해 쓴 유서였다.

필체가 크게 흔들리며 마지막에 와서는 힘이 없이 흐트러 진 것이 그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죽으면서까지 그녀는 문성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장대협님께서 이 편지를 보신다면 아마 도련님과 함께 불괴곡을 빠져나간 후

이겠죠. 천녀는 그 하나만으로도 기쁘답니다.]

'무엇이 그리도 기쁩니까.'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의 편지를 받아볼 문성이 자유를 되찾았을 것이라는 기뻐

했을 그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천신녀의 혈서는 거의 문성을 잘 보살펴달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의 부친인

천마를 주의하라는 내용이였다.

전에 천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장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혈서를 품에 집

어 넣고는 문성을 보며 말했다.

"성아..."

"흑흑흑..."

장천과 성은 구천신녀를 근처의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고는 후일 그녀에게 더

좋은 잠자리를 기약하며 불괴대제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구천신녀의 죽음을 들은 불괴대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의 일로 아까운 사람이 죽고 말았군."

장천이 그녀를 구출하러 갈 때 어느정도 이야기를 들었던 그였는지라 그녀를

만나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홍련교에 있을 때도 백화당은 존재했기에 당주까지 지낸 그녀의 실력을

높이 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로 오랜 시간을 끌 만큼 그들은 한가하지 않았다.

"현재의 저희들의 전력으론 총단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은데, 불괴대

제께선 생각하신 것이 있는지요?"

장천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은 청해성으로 갈까하네."

"청해성이요?"

"본좌의 가문이 있던 곳으로 가볼까 하네, 벌써 60년 가까이 흘렀고 본좌의 일

로 많은 사람들이 숙청되어 가문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본거지가 없는 이

상 한번 찾아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기 때문이네."

불괴대제의 말이 틀리지는 않은지라 장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궁했다.

이렇게 해서 5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청해성으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쉽지 만은 않았다. 사천 최남단으로 남만과

의 경계선에 있는 불괴곡에서 청해까지 가는 도중, 수십년 동안 햇빛을 받아보

지 않은 사람들이나 불괴곡에서 태어난 2세들은 이유 모를 병에 걸려 사천을

넘어가기도 전에 200명에 가까운 수가 죽었고, 100여명의 사람들 역시 병을 앓

아 여정은 길어 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아!"

불괴대제는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병으로 죽거나 쓰러지자 안

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불괴곡을 빠져나가면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될 줄 알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았

기 때문이다.

벌써 이십여명이 이르는 의원들을 납치하여 그들의 병을 치유하려 했지만, 병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그를 가장 좌절하게 만든 것은 바로 손자인 마운성 역시 그 병에 걸

려 쓰러졌다는 것이다.

불괴곡에서 태어난 자들은 모두가 병마의 그물에 걸려있었으니 그의 손자 역시

예외가 아니였던 것이다.

"할..할아버지.."

"운성아...걱정말아라 이 할애비가 너의 병을 꼭 고쳐줄테니말이다."

불괴곡을 나온 일행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사천의 작은 마을이였다.

침상에 누워 고열로 인해 땀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손자의 모습을 보며 그

는 왜 이리 일이 안풀릴까 하는 생각에 한탄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손자의 손을 잡고 있던 그는 운성이 잠이 들자 조용히 방을 나

와서는 한 숨을 내쉬고는 마당으로 나왔는데, 그곳에는 마운성을 치료하기 위해

왔던 의원이 서 있었다.

의원의 모습을 본 불괴대제는 조용히 물었다.

"아직도 병의 원인을 찾지 못했는가?"

"그것이...."

물론 의원 역시 목숨을 부지하려면 방안에 있는 소년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것

을 알고 있지만, 의서에도 나와있지 않은 증상인지라 확답을 할 수가 없었던 것

이다.

"휴..."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 그였는데, 그의 곁으로 한 소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는 마운성의 상태를 물었다.

"성아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본좌의 진기를 사용하여 근근히 버티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한달을 넘기지 못

할 것 같다네."

도문성의 상태를 물어온 소년은 장천이였다.

불괴대제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말하니 그 역시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

었다.

한참을 무슨 방도가 없을까 생각해본 장천이였는데, 그 때 문득 과거의 일이 생

각나는지라 손바닥을 치며 소리쳤다.

"불괴대제님 도문성이 살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방도라도 있는가?"

장천의 외침에 불괴대제는 크게 놀라서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견즉사의 호청명이 사천에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

되물을 수 밖에 없는 불괴대제였다.

60년을 불괴곡에서 살아온 그였으니 견즉사의의 명호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

인지라 장천은 그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견즉사의 호청명은 중원제일의 의원입니다. 성격이 괴팍하긴 하지만 그 의술만

큼은 화타에 버금간다고 하더군요."

"아!"

장천의 말에 불괴대제는 크게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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