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장 불괴곡 (2)
떨어진 자는 몸에 그리 큰 외상은 없었지만, 내기가 크게 흔들린 상태였기 때문
에 여인은 천천히 그를 일으켜 가부좌를 틀게 하고는 염아귀를 보며 말했다.
"도련님. 이 사람의 몸에 기를 불어 넣어주세요. 도련님의 내력이라면 이 자에
게 내식을 안정식켜 줄 수 있을 거에요."
여인의 말에 염아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뒤로 돌아가서 천천히 내력을
부러 넣어 주어 기를 도인해 주기 시작했다.
"윽..."
염아귀가 기를 도인해주기 시작하자 그는 작은 신음을 질렀지만, 어느정도 시간
이 지나자 얼굴의 표정은 점점 평온해지기 시작하니 점차 내기가 안정을 찾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주천이 끝나자 이제 내기는 전과는 달리 안정감을 보인 여인은 염아귀에게
기의 도인을 끝내게 한 후 천천히 자리에 뉘여서는 안정을 찾게 했다.
이마에 가득 흐른 땀을 닦으며 염아귀는 여인에게 무엇인가를 말했다.
"우허엉..."
"예. 괜찮을거에요. 내식이 안정을 찾았으니 내일 정도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겁니다."
여인은 염아귀에게 대답을 해주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 쓰러져 있는 자의 땀을
닦아주었다.
'화의 무공을 익힌 자, 그렇다면 이 자는 교주의 좌를 이을 사람이란 것인데, 왜
이자가 이곳으로 떨어진 것일까?'
하지만 자신들과 이자의 상황은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던 여
인은 이자의 도움으로 염아귀의 병을 치료한 후 밖으로 나간다면 힘이 되어 줄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다음날 여인과 여아귀가 지켜보는 가운데 녀석은 드디어 오랜시간 동안의 잠에
서 깨어났다.
"아우! 잘잤다!"
"....."
잠시 당황스러움을 느낀 두 사람이였다.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무엇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여기저기
돌아보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보며 천천히 물었다.
"저...누구세요..그리고 여기가 어디죠?"
'잠자다가...당한 녀석이란 말인가?'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떨어진지도 모르는 녀석을 보며 여인은 잠시 할 말을 잃
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여기는 마교의 불괴곡이다."
"불괴곡이요?"
"마교내에서 큰 죄를 짓거나 권력쟁투에서 밀린 사람들이 갇히는 곳이지.."
"헉....어쩌다가.내가 이곳으로 왔지? 난 분명히 쌍도문에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자, 그는 바로 장천이였다.
하지만 천천히 그의 기억은 돌아오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은영영과 있었던 일은
물론이요. 마교에서의 탈출과 함께 자신이 처했던 모든 상황이 떠오르니 금새
침울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아!"
탄식을 내뱉은 장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무릎 속으로 숨키고 말았으니 이
자의 변화하는 모습에 여인은 황당할 뿐이였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떨어진거지?'
여인과 염아귀는 장천을 보며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녀는 구천신녀 모란이라 한다. 네 녀석의 이름은 무엇이냐?"
여인의 물음에 장천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천이요."
"장천...본 교와 관련된 것 같은데, 네 녀석의 직책은 무엇이더냐."
"....귀옥각주였어요."
"귀옥각주?"
"마교의 현교주가 천마와 구시독인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든 귀영당에서
도 무공이 높은 인물들만을 모아 놓은 곳이 바로 귀옥각이에요. 전 그곳에 귀옥
각주였고요."
그 말에 여인은 무엇인가 크게 놀라는 듯 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처..천마님이 교주의 좌에서 물어났단 말이냐?!"
"예. 현재의 교주는 유문영이에요."
"천마님의 부교주였던 자 말이냐?"
"예. 전에는 부교주라고 들었어요."
"아! 역시 천마님께서....."
그 말에 여인은 크게 탄식을 지르고 말았으니 장천은 그 모습에 이 여인이 천
마 문천익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천마와 무슨 관련이 있나요?"
"갈!"
장천의 말에 그녀는 손을 들어서는 그의 뒷통수를 갈겨 버렸다.
"끄윽...왜 때려요!"
"감히 천마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버르장머리가 없는 놈이라서 때렸다."
"크윽..."
천마와 깊은 관련이 이다면 그의 명호를 함부로 부르니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
다는 생각에 장천은 뒷통수를 쓰다듬으면서 다시 물었다.
"크윽..그럼 천마님과 무슨 관계이신가요?"
"흠흠..본녀는 천마님의 아드님이신 문성님을 유모의 임무를 맡고 있다."
'쳇! 유모 주제에...잠깐..천마 문천익에게 아들이 있다고?'
유모라는 말에 별로 높지도 않은 직책이라며 투덜거리던 장천이였는데, 천마에
게 아들이 있다는 말에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의 교내의 권력투쟁에서 천마가 교주의 좌에서 물러날 때 부교주에게 교주
의 좌를 물려 준 것은 부교주의 세력이 중립세력이였던 탓도 있지만, 그 외에도
천마에게는 자식이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돼요. 천마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럴만도 하지..대외적으로 천마님의 아드님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예?"
"천마님께선 자신이 화의 무공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 정통성에서 벗어난
다는 것을 알고는 갓 태어난 아드님에게 대법을 펼쳐 화의 무공을 집어 넣으셨
지만 악독한 구시독인이란 놈이 그것을 알고는 문성님을 불괴곡에 떨어 뜨렸
다."
"아!"
교내의 알지 못했던 비사에 장천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녀는 그 것을 알아채고는 급히 녀석들을 쫓아갔지만, 이미 문성님은 불괴곡
으로 떨어지셨으니 천마님의 명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본녀는 문성님의
뒤를 따라 이곳으로 뛰어 내린 것이지.."
하지만 불괴곡에 뛰어내린 후에도 그녀가 살아 있는 것을 보며 장천은 천천히
물었다.
"그렇다면 문성님은..?"
"바로 이분이 천마의 아드님이신 문성님이시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는 염아귀를 보며 말하니 염아귀는 장천은 보며 미소를
짓고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니, 한참을 가만히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장천이였다.
"자네가 떨어졌을 때 내상을 입고 있었으니 한번 운기조식을 해보도록 하게나."
여인의 말에 장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
는데, 몇군데의 혈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우..."
계속 운기조식을 하다가는 통증을 참지 못하고 주화입마를 할 수 있었기에 천
천히 내식을 가라 앉히고는 숨을 내쉬었다.
"어떤가?"
"아직 몇군데의 통증이 남아 있습니다."
"보아하니 음공계열에 내상을 입은 것 같은데?"
여인의 말에 장천은 은영영에게 당했던 상황을 깨닫고는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비파를 듣던 중 갑작스럽게 현이 끝어졌는데, 그 순간 내상을 입고 말았습니
다."
"오! 만화당의 비전절기 중의 하나인 파현절맥공에 당했군."
"파현절맥공이요?"
장천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화당의 당주였던 만음귀녀가 창안한 초식으로 음공으로 상대의 내식을 자신
의 뜻대로 조절한 후 현을 끊는 파열음으로 내식을 흐트리는 음공이다. 익히는
것은 상당히 난해하지만 한번 익혔다면 그 수법을 알지 못하는 자라면 거의 대
부분 내상을 면치 못하는 절기이지."
"그렇군요."
자신이 당하기 직전 은영영의 비파음에 완전히 심취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장천
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었다.
"한번 당하거나 그 음공에 몸을 보호하고 있다면 파해할 수 있는 음공이기에
한번 당한 네 녀석이 주의만 잘 기울인다면 다시는 당하지 않을 초식이다. 이런
이유로 절기라고는 하지만 만화당 내에서 익히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지."
"구천신녀께서도 백화당에 계셨던 모양이군요."
장천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녀가 도련님을 모시기 전에는 백화당의 단주의 직에 있었다."
"아!"
"나 역시 파현절맥공을 익혔으니 그것에 대한 치료법을 알고 있으니 나의 말을
따른다면 일주일 이내에 그 내상을 말끔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구천신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천의 침울한 분위기는 많이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유능혜와 아기를 죽였다는 죄책감은 아직도 마음 속에 가득했다.
'불괴곡에서 나의 죄를 씻으라는 것인가....은영영 네게 원하는대로 해주지...'
자신의 죄에 대해서 어느정도 느끼고 있는 장천이였다.
"그나저나 아이야 너의 몸에서 화의 무공에 대한 기운이 흐르는데, 어찌된 일이
냐?"
"아! 귀영당에 있을 때 암영자에게 화의 무공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암영자라...음..역시나 암영자에 의해서 차대 교주로 추천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
구나."
장천의 말에 어느정도 상황을 알 수 있었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말
을 이었다.
"그렇다면 화기의 내식은 어느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더냐?"
"..미숙하긴 하지만 조화의 초입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아! 4단까지 이르렀단 말이냐!"
"예!"
"하늘이 도움이로구나. 아이야 화의 무공의 구결을 말해 주지 않겠느냐?"
"예?"
여인의 말에 장천으로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를 보며 그녀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우리 도련님께서 화의 무공은 대법을 통해서 주입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후 구
결을 통해 화기를 움직여야 했음에도 그것을 하지 못한 관계로 현재 말과 함께
보름달이 뜰때면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셨다."
"아!"
"네가 화의 무공에 대한 구결을 안다면 우리 도련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느냐?"
"음...저의 생명을 구해주셨으니 저 역시 보답을 해야겠지요. 도련님에게 성심성
의껏 화의 무공에 대한 구결을 전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천의 말에 여인은 감격에 두 손을 잡고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맙네, 도련님과 본녀는 자네의 이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생명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이런 것은 하찮은 일 뿐입니
다."
이렇게 해서 장천은 염아귀와 구천신녀와 함께 불괴곡에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장천과 같은 사람이 이런 좁은 곳에서 산다는 것은 여간 갑갑하지 않았
다.
장천이 있는 곳은 불괴곡 내에서도 막힌 공간이였으니 그 안에 물과 함께 물고
기들, 그리고 이끼들이 자라고 있어 그것을 먹으며 살 수는 있었지만, 그 외에
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불괴곡의 공간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선 바위 틈새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지
금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이는 몸집이 작은 염아귀 한사람 뿐이였다.
장천의 경우에는 축골공을 사용한다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축골공
을 사용할 경우 운신하기가 어려웠기에 조금 어려운 상황이였다.
"이 바위 틈 밖으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우리들이 있는 곳은 불괴곡에서도 비밀리에 숨겨진 곳으로 우리와
같이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되는 사람들을 떨어뜨리는 곳이지만, 저쪽 너머에는
대외적으로 숙청을 당하여 그 동안 불괴곡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
"그렇군요."
"본녀 역시 저 쪽 너머의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네만, 도련님께서
한번 나갈 때마다 큰 상처를 입고 오시는 것을 보니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
구나."
"음...."
그녀의 말에 장천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 가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