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101화 (102/355)

제 18 장 무천무급 (4)

"아..."

하루를 꼬박 세운 장천은 눈이 가물거리고 있었지만, 유능예를 간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니 아침이 되자 그녀는 눈을 떴다.

"정신이 드는가?"

"당신이..."

유능예는 장천이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손을 들어서는 그녀를 다시 눕힌 장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몸이 온전치 않으니 누워 있구려."

"......"

자상한 목소리, 순간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군."

장천은 옆의 바구니에서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더니 그것을 들어서는 유능예에

게 건네 주었다.

"남쪽에서 온 과실이라는데, 주인 말로는 신 것 같으면서도 달콤하다 하는데,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더군."

감귤을 손에 들고는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를 보며 유능예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것을 손에 가져가서는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아.."

장천은 그녀의 유려한 손놀림을 보며 쑥스러운 모습을 지을 뿐이였다.

감귤의 껍질을 벗긴 그녀는 알맹이를 깨끗이 손질해 준 후 그것을 들어서는 장

천의 입에 넣어 주었다.

"음...."

장천은 그 순간 신맛 때문에 얼굴이 조금 찡그렸지만, 그 뒤로 달콤함 맛도 느

껴지는 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은 것 같군. 자 당신도 한번 들어보시구려."

장천은 그녀의 손에 든 귤을 뺏어서는 잔손질을 한 후 입에 넣었주었다.

"어떻소?"

"맛있어요....흑흑..."

장천이 넣어주는 귤을 먹으며 그녀는 미소를 짓다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

니 그는 근처에 있던 천을 들어서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혼인 전엔 그렇게도 당차던 여인이 무슨 눈물이 그렇게 많소."

"..죄송해요."

"죄송하기는.."

장천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조금 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관심을 보였을 뿐인데도 이렇게나 기뻐하는 것은 왜 냉혹하게 대했는지

마음이 아파왔다.

그날 이후 장천은 그녀의 곁에서 벗어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언제나 그녀의 곁에서 간호해주는 장천이였으니 조금 시간이 남을 때면 지필묵

을 가져와서 책을 쓰는 일에 전념을 했다.

그가 쓰고 있는 것은 무천무급해본(無天武 解本)이란 책이였다.

'내가 떠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이진천에 의해 정체가 발각된다. 능예

는 교주의 손녀, 그렇다면 목숨을 잃지 않으리라...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태어날

아이에게 전해줄 글이 전부라면 내 모든 것을 아이에게 전해주리라...'

점점 더 다가오는 위기에서 장천은 하루하루 침착한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가 쓰는 무천무급해본에는 그가 비도문에서 얻었던 깨달음과 함께 문천무급

의 심득등 여러 가지를 써놓고 있었기에 만약 이것이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면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책이였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책을 쓰는 것은 그만큼 장천이 태어날 아이가 잘되기

를 바라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니 의원이 말한 한달의 시간은 거의 다가왔다.

'완성인가...'

한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적었던 무천무급해본은 이제 완성되었고, 장천은 마지

막 한 장을 남겨 놓고 천천히 태어날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기 시작했

다.

[나의 아이여...못난 아비로 인해 넌 교에서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아비는 그런 것을 알면서도 떠날 수밖에 없구나.. 자식으로서 난 고아가 되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준 양부의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구나. 하

지만 배신자의 아들의 칭호를 받을 너를 알기에 이 아비는 그 동안 얻었던 무

공을 모아 이렇게 너를 위하여 남겨 놓는다. 네가 이 책으로 한사람의 남아로서

살아가기를 바라는구나...]

마지막 글을 마칠 때 장천은 눈에선 눈물이 떨구어져 글씨를 흐리고 말았다.

천천히 책을 덮은 장천은 준비해 둔 기름종이에 책을 싸서는 밖으로 나왔다.

'과연 이것이 아이에게 전해질런지...'

저택의 한 곳에는 큰 오동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는데, 장천은 오동나무 뒷편을

파고는 무천무급해본을 묻었다.

흙을 다독여서는 낙옆을 덮은 장천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니 유능예가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어났소?"

"...예.."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유능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 것일까?'

방금 그가 마지막으로 책을 적을 때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

지만, 그녀는 그 이상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장천은 천천히 다가가서는 침상에 걸터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는 말했다.

"..미안하오..."

"....."

그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였다.

"다..다시 돌아오실 건가요..."

"당신과 나의 자식을 두고 어찌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겠소."

"....."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는 장천이였다.

"아이가 글을 읽을 때가 된다면 마당의 오동나무 뒷편을 파보시오."

"....."

그 말과 함께 장천은 천천히 유능예를 가슴에 안아주었다.

무천무급을 모두 쓴 후 장천은 아무도 모르게 홍련교를 떠날 준비를 했다.

비영당에 속해 있는 만큼 다행히 직무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가 준비하는 것

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진천이 자신의 저택으로 배치한 무사들에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는 장

천을 확실히 쌍도문의 소문주라고 믿고 있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천이 모습을 감추었을 시기 정도를 생각한다면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주의 손녀사위인 만큼 확실한 물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기에 이렇게

사람을 배치해 놓고 있는 것인데, 장천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구태여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럴 경우 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삼일 후 장천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는 드디어 짐을 챙겨 들고는 야밤을 틈다

자신의 방에서 조심스럽게 나와 지붕으로 몸을 날렸다.

"음..."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사방에는 이진천이 깔아 놓은 자들의 모습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을 위해 녀석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해 놓은 그였기에 집을 빠

져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총단이 정문을 빠져나가는 것이였다.

총단은 계곡으로 감추어진 분지에 만들어져 있었기에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통

로는 단 한곳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밤중에는 교의 긴급사항이나 교주의 허가를 받은 이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드나

들 수 없는 것이 총단이였기에 장천은 정문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

다.

장천은 마음을 다시 다져먹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아나갔다.

"누구냐!"

아니나 다를까 총단의 입구를 지키는 무사가 소리치니 장천은 잠시 변태변골술

로 교주의 모습으로 위장을 하고는 말했다.

"어험!"

헛기침을 하는 모습에 무사가 다가서 보니 교주인지라 깜짝 놀라는 표정을 하

며 물었다.

"교주님께 인사올립니다."

"험험...밤 늦게 수고 하는구나."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열심히 지키도록 하여라."

"예."

무사들을 따돌린 후 거만한 자세로 천천히 총단으로 나서는 장천이였으니 어느

정도 무사들의 눈에서 벗어나자 급히 변태변골술을 풀고는 경공을 사용하며 앞

으로 뛰어나갔다.

기문숙 사부가 가르쳐 준 변태변골술이 상당히 도움이 되는 순간이였다.

근처에 대로가 있기는 했지만, 도망치는 몸으로 대로로 나갈 수는 없는지라 장

천은 서둘러 경공을 사용하며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때 사방에서 인기척이 느

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응!"

"귀옥각주는 잠시 멈추어서시오!"

"헉!"

귀옥각주란 이름을 부르자 장천으로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들은 한

두명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시나 암혈당인가...'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던지 외지에서도 암혈당의 무사들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자네는 누구인가?"

"암혈당에 제 3 당의 부당주 소천권이라 합니다."

"흠...그런데 본 각주를 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묻고 싶군요. 밤 늦게 각주께선 어딜 그렇게 급하게 나가십니까?"

"흠흠...교주님의 특명을 수행중이네."

"특명이라 하셨습니까?"

쉽게 물러나지 않을 녀석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