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100화 (101/355)

제 18 장 무천무급 (3)

귀영당 안으로 들어선 장천은 당주의 처소 앞에서 조금 망설일 수 밖에 없었지

만, 도망 다닐 수는 없는지라 크게 숨을 몰아쉬고는 문 앞에서 말했다.

"귀옥각주 두형입니다."

"아! 들어오시게."

당주의 말에 장천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는데, 탁자를 사이에 두고 당주 율

명과 응조수 이진천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율당주님과 이당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자 자리에 앉게나."

"오랜만입니다. 두각주님."

응조수 이진천이 암혈당의 당주라고는 하지만, 교주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귀

영당의 귀옥각 각주와는 비슷한 등급이라 할 수 있었기에 그는 어린 장천에게

존대를 해주고 있었다.

장천은 예를 취하고는 자리에 앉았는데, 이진천은 그의 모습을 한번 보고는 미

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에는 각주께서 얼굴을 다치신 관계로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오늘 보니 탄

복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귀옥각주의 외모야 총단에서 알아주는 것인데, 오늘에야 보시게 되었

구려."

"그렇습니까? 이거 외지에만 있었더니 총단의 소식에는 조금 어두웠던 것 같습

니다."

두 사람은 친한 친구이지만 서로간에 존대를 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제가 귀영당에 추천한지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각주의 직위에 오르

셨다니 저의 눈이 틀리지는 않았던 모양이군요."

"모두가 이당주님의 배려 때문입니다."

"하하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런데....이상하게도 각주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

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진천이 자신을 보며 무엇인가 생각하는 표정을 취하자 가슴이 철렁한 장천은

급히 그의 생각을 막으며 말했다.

"하하하. 얼굴에 붕대를 감기는 했지만, 목소리를 들으셨으니 낯설지 않다 생각

하시는 것이겠죠."

"음...그렇수도 있겠군요."

자신의 말에 그가 수긍을 하며 대답을 하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장천이

였다.

"그나저나 이번에 폐관수련을 마치셨다고 하는데, 진전이 있소이까?"

장천의 폐관수련은 총단에서도 유명한 일이기에 율명은 궁금한 얼굴로 물어보

았다.

"두달정도의 짧은 폐관수련이였던지라 그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약간

의 검로만을 깨달았을 뿐이지요."

"오오!"

검법을 수련함에 있어서 검로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서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검로가 존재하고 있었으니 한 무공에 극성에

달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검로를 깨달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였다.

장천이 약간의 검로를 깨달았다는 말에 이진천과 율명이 놀란 표정을 지은 것

은 바로 이 때문이였다.

"이거 축하의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 후로 장천은 이진천과 율명과의 사소한 대화의 자리에 끼여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가 자신을 알아볼까 계속 마음을 졸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 감숙성에 가볼 일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쪽에선 본교의 무사들이 움

직이기가 상당히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럴테지요. 구파일방의 하나인 공동파와 함께 대문파로 성장한 쌍도문이 있으

니까요."

"예. 과거에 쌍도문의 무사들과 한번 부닥친 적이 있었는데, 암혈당의 무사들이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했지요."

"그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과거 사파 십대 거두의 일인이였던 흑철돈녀

무삼랑이 모습을 드러냈다지요?"

"예. 쌍도문의 소문주라는 꼬마녀석이 흑철돈녀 무삼랑님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저로선 부득히 물러 설 수 밖에 없었지요."

"강호는 은원을 중시하는 곳, 평소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우실 이당주님께서

물러서심은 강호에 몸담고 있는 무인으로서 당연한 일일것입니다."

"교에 속한 몸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였지요.....음..."

그 순간 이진천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한 표정을 짓다가는 손뼉을 치며 말했

다.

"아! 그렇군요."

"무슨 일이라도?"

이진천이 갑자기 손뼉을 치고는 크게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자 율명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장천은 그 깨달음이 무엇인지 짐작 할 수 있었기에 당황될

수 밖에 없었다.

"두각주님, 이제서야 각주님을 뵌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를 알 수 있겠

군요."

"말씀하십시오."

"음...얼굴 윤각은 달라지긴 했지만, 두각주님의 외모가 당시 흑철돈녀를 끌어

들인 쌍도문의 소문주인 장천이란 녀석과 크게 닮았습니다."

"하하하. 쌍도문의 소문주가요?"

"그렇습니다."

"이거 재밌는 일이군요."

장천은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진천의 표정은 그것이 아니였다.

눈썰미가 날카로운 그는 한참을 다시 각주를 흝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총단에서 간부라 할 수 있는 각주를 대놓고 의심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

긋난 일인지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 재밌는 일이군요.'

"그렇습니다."

장천으로선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쌍도문의 소주가 몇 년 전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몇년 전부터요?"

"예. 흑철돈녀님과의 일 이후 쌍도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지금쯤

이면 청년의 나이가 되어 쌍도문의 소문주로서 다른 정파에 얼굴을 알릴 때가

됬는데도 틀어박혀 있으니 이상하다 생각될 수 밖에요."

"그렇군요."

그 말과 함께 이진천의 눈은 다시 한번 장천을 노려보고 있었으니 더 이상 앉

아 있을 수가 없었지만, 지금 일어난다면 자신이 쌍도문의 소문주인 장천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꼴인지라 엉덩이엔 땀이 날 지경이였다.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린 장천이였으니 얼마 저도 지난 후 자리에 일어선 그

는 두 사람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오. 가시겠습니까?"

"두각주. 다음에 뵙도록하지요."

이전천은 다음에 보자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에는 다소 억양이 있었던

지라 장천으로선 위기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당주의 처소에서 빠져나온 장천은 하늘을 보며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휴...도망가야겠군."

하지만 그 순간 유능예의 얼굴을 생각났으니 장천으로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젠장...'

다시금 생각에 잠긴 그가 걸음을 옮긴 것은 총단내에 위치한 상점이였다.

"물어보세나."

"예.예."

"음...아이를 밴 여인에게 무엇이 좋겠는가?"

"아이고 그런일이 축하드립니다요."

"별말을..."

"일단은 신맛이 나는 과일이 좋으니 이것을 고르시지요."

"이건?"

"탱자와 비슷하게 생긴 과일인데, 남쪽에서 올라온 과실입죠. 신맛과 단맛이 어

울러져 있는지라 황궁으로 올라가는 극상의 과일입니다."

"음...그것으로 주게나."

"예. 예 은 한냥입니다요."

간단하게 과일을 산 장천은 그것을 들고가며 생각했다.

'그래 떠날 때까지 만이라도 잘 대해주자.'

아무리 사랑없는 혼인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처임은 틀림이 없기에 장천은 이

진천의 손에서 도망가기 전에 유능예에게 잘 대해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온 장천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 때 여종 하나가 급히

뛰어와서는 그를 보며 소리쳤다.

"주인마님 큰일 났습니다."

"응? 무슨 큰일?"

"마님께서..마님께서...독을...."

"뭐!!"

그 말에 크게 놀란 장천은 들고 있던 물건을 팽개치고는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서니 그곳에서 의원이 유능예에게 침을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뭐라고 소리치고 싶은 그였지만, 지금은 치료 중이였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

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반시진 후 모든 치료가 끝났으니 침을 챙기는 의원을 보며 물었다.

"의원어른 제 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음...다행히 발견한 것이 이른지라 여인과 아이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

다."

"아....휴..."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 장천이였다.

"하지만 몸 보다 마음의 쇄락이 문제이니 앞으로 한달정도 몸을 보양함에 여인

에게 근심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까?...알겠습니다. 명심하도록 하지요."

장천은 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사를 했다.

의원이 나간 후 장천은 그녀의 땀을 닦아주는 여종을 내보낸 후 혼자 남아 누

어 있는 유능예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나 때문이구나..'

보통 사람이라며 아이를 배었다고 하면, 크게 기뻐했을 텐데 자신의 차가운 모

습에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려 했다고 생각하니 어찌 장천의 마음이 아프지 않

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 한달인가...'

이진천이 자신을 조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한달 이상은 걸릴 것이 분

명했기에 장천은 그 동안 유능예를 간호하며 그녀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리라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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