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장 재회 (2)
"과연.."
은조상은 대련이 끝난 후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가서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
하니 동방명언이나 데비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이 하는데?"
"음...너희들은 멀리 있어 잘 보지 못했겠지만, 녀석의 검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
각이 들어서 말이야..."
"이상하다니?"
"뭐랄까...검 끝이 뿌옇게 보인다고나 할까?"
"응?"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 가문은 대대로 쾌검술로 이름을 떨친 곳이다. 이런 이
유로 비전의 방법으로 다른 무가에 비해 은가는 움직이는 물체를 포착하는 눈
이 띄어나지 내공으로 안력을 돋구지 않아도 이형환위(以形換位) 정도는 쉽게
잡아내는 정도라고 할까?"
"우와!"
모인 사람들은 은조상의 말에 크게 놀라며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의 속도는 보통인에 비해 수배는 더 빠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이중 이형완위는 순식간에 위치를 바꾸는 신법의 하나로 상승신법을 배우지 않
는 한 아무리 내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꿈도 못 꾼다고 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것
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보통 눈으로 찾아 낼 수 있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은조상은 뛰어난 동체시력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재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내 눈으로도 두형의 검끝이 희미하게 보였다는거야. 그것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음...그만큼 검속이 빠르다는건가?"
"신법이 극한에 이르는 인물은 그 축이 되는 다리의 움직임이 타인이 볼 때는
뿌옇게 보인 다는 말이 있지. 그것은 뛰어난 초고수의 안력으로 보아도 똑같다
고 이유가 뭘까?"
그 말에 사람들은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나 뭐라고 답을 말 할 수가 없
었다.
"무형검이라고 들어봤겠지?"
"검의 극한에 이르는 사람이 손에 강기를 유형화해 만든 검을 무형검이라고 하
지 않나?"
"그래. 하지만 그 전에 하나의 단계가 더 있는데 우리 은가장의 시조 어르신께
서 쾌검으로 그 경지에 이르셨다고 하지. 이름하여 유수무형검(有手無形劍)이란
경지에 말이야."
"그게 뭔데?"
"검을 들고는 있지만, 초식이 펼쳐 졌을 때는 검이 형태가 사라지기 때문에 붙
여진 이름이지."
"우와!"
"자세한 무리는 알려진 것이 없어서 가문에선 쾌검이 극한에 이르면 그 속도를
안력이 따르지 못해 사라지게 보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그것과
는 조금 다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셨지."
은조상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푹 빠져 들어버렸으니 멀리 있던 장천 역시 검술
을 하는 척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면벽굴의 글귀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천의 검이 뿌옇게 보인 현상은 바로 면벽굴의 글귀에서 얻어낸 약간의 심득
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무릇 세상사의 모든 것들은 음양의 법칙이 따르니 작은 것은 큰 것에 동화되
며, 큰 것은 작은 것에 동화되어 비로서 음양이 그 균형을 이루게 되니 음양이
조화를 이룸이 태극이요. 조화로움이 이어져 끝에 이르니 그 것을 무극이라 한
다.]
이 외에도 스님들이나 하는 선문선답과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면 한마디를 들으
며 구토부터 할 것 같은 이야기가 잔뜩 쓰여 있는 것이 바로 면벽굴의 글이였
으니 일년의 시간동안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글귀의 해석이 막힐때면 유명한 절간에 가서 중이나 될까하는 고민도 할 정도
였으니 장천으로선 크나큰 고민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검이 자연에 동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
"응?"
"다 알다시피 인간이나 동물은 자신이 살고 있는 자연환경에 동화되는 형상을
겪게 되지 추운 곳에 사는 사람은 추운 곳에 적응하는 동화현상은 더운 곳에
사는 이는 더운 곳에 적응되는 현상을 말이야. 검법도 그와 같아서 거대한 자연
에 동화되면 그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어 동화(同化)되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
야. 이런 이치 중 가장 흔한 것이 신검합일(身劒合一)이지."
"음..."
물론 이러한 이치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고 무공과 접합하려 할 땐 더욱 더 어
려운 일인지라 아무도 은조상의 말에 무어라 말을 못하고 있었다.
조금 어려운 말이고, 은장로 같은 무공 고수가 말한 만큼 신빙성은 있을 것이라
막연한 생각만을 하는 사람들이였다.
장천은 형산지부에서 할 일이 없었던만큼 무공을 닦는데만 몰두하고 있는 시간
을 계속 보냈을 밖에 없었는데, 드디어 그런 장천에게도 일이 밀려왔다.
물론 이 일은 다른 형제들이나 여인들도 모두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일이였으니
형산파의 무사들과 지부의 무사들이 양인촌(良人村)에서 충돌한 일이 생긴 것이
다.
정파의 대문파인 형산파의 검수에 의해서 형산지부 무사들은 5명이 죽고 12명
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였으니 성질 급한 유능예가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정파의 개자식들이 목을 모두 베어주겠다! 은부지부장! 지부의 모든 무사를 모
아요! 형산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겠어요!"
그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지르고 있지만, 명석한 은조상은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거부의 의사를 보였다.
"불가입니다!"
"불가?"
"지부의 모든 무사를 합친다고 하더라도 형산파의 문도수보다 적을 뿐 아니라
고수의 수 역시 턱없이 부족한지라 유지부장님의 말씀데로 했다간 그날로 형산
지부는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으윽.."
은조상의 말이 틀린 것이 없는지라 그녀로선 이를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
붓을 들어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고 있던 그가 그것을 봉투에 집어넣더니 매의
발에 묶어 놓고는 날려보냈는데, 그녀는 그 매가 지부가 긴급상황에 처했을 때
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뭘 써서 보낸거야?"
"본 지부에서 17명의 사상자가 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본단에선 형
산지부의 힘을 요즘들어 계속 강화시키는 것은 필경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할
터, 이런 소식을 전해준다면 그 이유를 진척시킬 수 있는 하나의 명분이 되겠지
요."
"그런가?"
은조상의 이러한 예측은 적중했는지 일주일이 지난 후 본단에서 답신이 들어왔
고, 그곳에는 약 이백명 정도의 무사들을 파견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물론 단순히 이백여명의 정도의 무사라면 의미가 없는 일이였지만, 이들은 보통
의 지부 무사들과는 크게 다른 자들이였으니 지부의 회의실에서 이 소식을 접
한 형제들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암혈당!!"
"그래 거기다가 이번에 파견된 암혈당의 무사들을 인솔하는 사람은 응조수 이
진천, 무명이 높은 이대협이 직접 나서는 것으로 보면 아무래도 형산에 큰 폭풍
우가 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음..."
"본단에서 내려온 지령은 지부의 무사들을 이용하여 형산파 주의를 분산시키라
고 하는군. 아무래도 우리 지부에서 녀석들의 눈을 돌리면 그 때 암혈당에서 모
종의 일을 추진 할 것 같다."
"음..."
대문파라는 것은 단순히 명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명성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바로 전통, 그 전통을 바탕으로 누구도 손대지 못할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명문정파라는 집단이였으니, 홍련교에서 정파 전
체와 비견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명문정파 하나를 무너뜨리는 것을 주저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정파란 존재보다 하나의 문파에 속해 있어, 그것을 지키려 할 때 명문에 속한
인간은 자신이 가진 힘의 수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부의 무사들을 이용하여 형산파를 도발한다면 이런 지부하나는 순식간에 무
너뜨릴 수 있는 것이 형산파인지라 조금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천을 떨리게 하는 것은 명문정파의 위명 같은 것이 아니였으니 바로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암혈당의 인솔자, 응조수 이진천이였다.
'젠장할!'
언젠가는 마주치리라 생각은 했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그가 교주의 권유를 사양하고 외지로 나간 것은 공을 세우기 위함과 함께 자신
의 얼굴을 아는 유일한 인물인 응조수 이진천의 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
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쁘장한 모습에서 다신 본래의 얼굴의 형태로 모습이 변해 있는지라 그의 눈
에 걸리면 들킬 것은 뻔한 일이였기에 뭔가 타계책을 생각해 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두형, 네가 맡는 것이 가장 나을 것 같다."
"응? 왜 나야?"
"일단은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라 형산파의 무사들에게 의심을 가장 덜 받
을 수 있는 것이 네 녀석이니까."
"음...좋아."
일단은 형산파의 이목을 돌리는 일을 한다면 이진천의 눈을 피할 수 있는데다
가 잠시 잠적하는 것도 가능 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번 일을 승낙한 장천이였다.
모든 회의가 끝난 후 장천은 지부를 돌아다니며 자신과 함께 할 무사들을 뽑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다지 쓸모 있는 사람이 없었는지라 조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부에 있는 연못가에서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장천은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방황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그의 뒤로 한 여인이 모습을 비추었
다.
"어머? 두 대협님 아니세요?"
"응? 아! 소향이구나."
장천의 뒤로 온 여인은 데비드의 막내 마누라인 소향이였는데, 바구니를 위로
호미가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밭일을 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웬 호미야? 일 안하면 데비드가 밥 안준데?"
"호호호! 설마요? 지부에 온 이후로 할 일이 없어서 지부 근처의 작은 땅에 채
소를 가꾸고 있었어요."
"음..역시 건실한 일등 마누라로군."
"호호호."
자신의 말에 호호호를 남발하는 소향을 보던 장천은 갑자기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으니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속이고 형산파의 눈을 속일 수 있
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푸하하하!"
갑자기 일어나서는 크게 대소를 터뜨리는 장천을 보며 소향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원래 천성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못 볼 것을 봤다
는 얼굴로 그의 주위를 벗어나려고 했는데, 그 때 장천이 덥썩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말했다.
"소향...아무래도 데비드를 버리고 나를 따아와줘야겠어."
"어머! 이러시면 안돼요. 제가 아무리 이쁘다고 해도 유부녀랍니다."
"흐흐흐 나 장천에겐 유부녀고 처녀고 눈에 걸리기만 하면 단 끝이야!"
"끼약! 데비드 살려주세요!"
하지만 이 순간 데비드는 무사들을 독려하며 진법을 연습하고 있었으니 소향은
장천의 손에 끌려 어둠침침한 방안으로 사라져만 갔다.
지부의 여인들이 머무는 방에선 소향의 울음소리가 흘러내리고 있었으니 그 소
리 사이론 장천의 거친 목소리도 연이어 들려왔다.
"흑흑흑...."
"....미안하군...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나요.."
"강제로 옷을 찢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네가 완강하게 거부를 했기 때문이잖
아!"
"그래도....."
"젠장할! 얼마면 돼! 얼마!"
"그게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장천은 이제 그녀의 울음소리에 짜증이 났는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니 방의
문 앞에선 한 남자가 떨리는 주먹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불행한 남자의 이름은 데비드였다.
무사들의 훈련으로 이 시간에 소향의 말에 들린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몇가지
준비를 할 것이 있어 잠시 들렸던 것인데, 어이없게도 그 날 아내의 외도를 알
게 된 것이다.
'소향..네가 어떻게 이런 짓을....'
가장 막내 마누라인 소향을 데비드는 어떤 마누라보다 사랑했는데, 그녀가 자신
의 의형제인 장천과 바람을 피우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데비드의 눈에는 주륵주륵 물방울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니 더 이상을
참지 못한 데비드는 등에 차고 있던 대검을 들어서는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파
렴치한 두 놈들 베어버리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